- 범해 좌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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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 5. 울고 싶은가?
스테판이 긴 수술을 마치고 중환자실로 옮겨갔다. 닥터 고는 수술이 잘 끝났다고 말해준다. 함께 밤을 새우며 기다려주던 아이들 고모부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평택으로 돌아갔다. 지친 마음을 달래며 나도 집으로 돌아왔다. 늘 있던 자리에 보이지 않는 모습 하나. 불을 끄고 나도 긴 잠에 들어갔다.
다음날 아침, 면회시간에 맞춰서 병원으로 갔다. 소식을 들은 형제들이 찾아왔다. 고모들은 신심 깊은 기도를 해준다. 막내 동생이 표정에 변화가 없는 형을 보며 말을 건다. “형, 이제 좋으우? 그러고 있으니 편해?” 긴 세월을 옆에서 지켜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다. 나보다 더 오랜 세월을 지켜보았으니.... 그로서는 오랜만에 속 깊은 마음을 형에게 말해보는 것 같다. 면회시간이 끝나고 우리는 다 밖으로 나왔다. 멍하다. 잘 끝난 수술인데 그의 표정이 돌아오지 않는다. 불러도 반응이 없다. 평소에도 조금 느리게 반응을 하는 사람이었지만 이 속도는 너무 느린 것 같다.
어찌어찌 다 인사를 하고 떠났다. 이런 일이 한주일 내내 반복되고 있다. 소식을 듣고 면회시간에 사람들이 다녀간다. 그렇지 않은 날은 나 혼자 돌아보고 온다. 그날도 그렇게 똑같은 시간에 가서 똑 같이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 주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버스를 타고 맨 앞에 앉아서 눈을 감고 있었다. 핸드폰이 울렸다. 나와 동갑인 친정 올케다. 우리는 같은 띠답게 취향이 비슷했다. 작은 오빠가 그녀를 처음 우리 집에 소개 하던 날, 항렬에 상관없이 생년월일로 사람을 존중하던 우리 오빠가 살짝 생월을 사기쳤다. 내 생월보다 서너 달 앞세워 태어났다고 했다. 그러나 나중에 밝혀진 진실이다. 동갑 올케는 밥그릇으로 위계를 정하자면 나보다 밥그릇 수가 모자란다. 아들 많은 집 외동딸이었던 올케는 무척 고왔다. 우리 집에 시집와서 참 많은 일을 해낸 어른스런 올케이다. 그녀가 내게 전화를 했다.
“고모, 어디 있는데...”
“응, 문병 마치고 집에 가는 길이야.“
“에이그..... 불쌍한 것~”
세상에, 원 세상에 내가 그렇게 되었다. 세상에 불쌍한 사람이 되었다. 뭔가 알 수없이 진행되는 , 그리고 예고 없이 다가온 이 이상한 일이 그제서야 감이 잡혔다. 그리고 폭포처럼 눈물이 쏟아졌다. 그냥 그렇게 721번 버스 제일 앞자리에 앉아서 울었다.
집으로 돌아왔다. 조용하다. 막막했다. 조금 눈물이 났다. 점점 더 크게 울어보았다. 내가 이제 불쌍한 것이 되어버린 순간이다. 전화벨이 울린다. 놀랍다. 이런 순간에 어떻게 이 분이 전화를 주셨을까? “전화를 다 주시다니요.... 가문의 영광입니다.” 갑자기 늘 하던데로 너스레가 나왔다. 그러나 조금 있다가 진심이 저 혼자 튀어 나갔다. “저 지금 울고 있는데요.....” 전화기 속에서 그 분은 마구 웃기셨다. 참을 수가 없어서 막 웃었다. 한참을 웃다가 보니 이건 정말 정상이 아니다. 어린 시절 형제들과 놀면서 불러대던 노래가 생각이 났다. “울다가 웃으면..... 어쩐 데요.....” 슬그머니 확인해보니 그건 아니다. 그래서 또 그렇다고 말하며 웃었다. 그렇게 한 삼십분은 말을 했을 것이다. 듣고 또 말하고 또 듣고 웃고 또 말하고..... 이제 전화기 속에서 다시 정답게 목소리가 전하는 말이 들려온다. “그럼 전화를 끊고 또 우십시요.”
말 잘 듣는 착한 아이가 되려고 정말 다시 울어보려고 했더니 이미 상황은 끝났다. 괜히 우습기만 했다. 절묘한 타이밍에 실컷 울고 실컷 웃었다. 그리고 다시 쉬다가 저녁 면회를 위해 병원으로 갔다. 이렇게 얼마나 계속되었는지 모른다. 아침과 저녁, 단 30분의 면회를 위해 묵묵히 갔다. 때론 문 앞에서 책을 읽었고 때론 친구와 함께 밥을 먹었다. 앞날은 생각하지 않았다. 내게는 오늘 하루도 무사히 그를 보고 돌아오는 것이 참 감사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