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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바람이 또 몰아칩니다.
비장한 각오로써 자신의 출사표를 던지고 당선을 위해서 유세 운동을 벌입니다.
자신이 정치에 나설 수밖에 없는 이유와 당위성의 선전이 이어 집니다.
그와 함께 네거티브 흑색선전도 동반 됩니다.
화려한 언변과 외모로써 승부를 거는 이도 있습니다.
쌓아온 내공과 경력을 스펙으로 내거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을 선택해야 할까요.
내면에 도사린 진실한 마음과 그 숨은 속뜻을 알 수는 없는 것일까요.
인생의 길을 찾을 때 선택지의 하나로 나환자들의 정착촌을 염두에 둔적이 있었습니다.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간다는 우쭐댐과 알량한 종교심의 허울 좋은 명분아래 무슨 우국지사(憂國之士)라도 되는 양 거들먹거리며 그곳에 사전 탐방을 갔었습니다.
어떤 곳일까.
골짜기의 외진 곳에 위치한 그곳은 사람들의 시선을 멀리 두려는 양 꼭꼭 숨어 있었습니다.
버스를 타고 내려서 비포장도로를 걸어간 그곳은 외면적으로 볼 때에는 고즈넉한 시골 풍경속의 아담한곳 이었습니다.
멍멍이 개가 먼저 나를 반기는 가운데 왠지 모를 악취가 품어 나옵니다.
어디서 나는 것일까요. 그들의 살이 썩어 문드러지는 곳에서 아니면 치우지 못한 쓰레기 무덤에서 그것도 아니면 혹시 내가 꼭꼭 숨겨둔 속살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아니었을까요.
거동이 불편한 할아버지와 할머니 들이 낯선 이방인에게 누런 치아를 드러내며 씨익 웃음을 보냅니다.
무거운 침묵이 흘렀습니다. 이곳이 내가 살아갈 곳인가. 이곳이 내가 선택할 곳인가.
직원 되는 분과 차 한 잔의 면접.
“이런 곳에 왜 일을 하려고 하시죠?”
그분은 가장 중요한 질문을 나에게 찔러 댑니다.
그렇군. 나는 왜 이런 곳에서 일을 하려고 할까요.
당연히 봉급도 적을 것이고 사명감도 있어야 할 것이고 때로는 육체적 노동도 수반되어야 할 것이고 어떤 비전이 있을까요.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창밖을 바라보았습니다.
내가 이곳을 선택하면 나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역시 이승호야.
그럴 줄 알았어. 이상적인 꿈을 꾸다가 결국 그런 곳을 정했군.
혹시 나는 그런 말들을 듣고 싶지 않았을까요.
가야 되나 말아야 되나 생각을 하였지만 그것은 잠시였습니다.
합격자 발표가 있던 날 혹시나 해서 일반 기업체에 몇 군데 지원을 해놓은 곳에서 동시에 연락이 왔기 때문입니다.
어느 곳에 가야할까. 애초의 소명의식이란 허울 좋은 명분을 가졌던 곳을 선택해야 하나 아니면 남들 다가는 그런 곳을 선택해야 하나.
그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렇게 큰 사람이 아닌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이들이 살아가는 것처럼 나도 결혼을 하고 생계를 꾸리고 번듯한 아파트에 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여행도 가고 여유도 즐기고 인생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한때는 상투스로써 이름을 불렸던 적이 있었기에 지금의 생활을 돌아보면 부끄러울 때가 있습니다.
전세 만기가 다가오면 다시 새로 이사 갈 집을 고민해야 하고 월마다 돌아오는 대출 상환금에 머리가 아파집니다.
뜻하지 않은 목돈이 나가거나 일이 생겼을 때는 이율이 높은 마이너스 통장을 들여다봅니다.
어느덧 하얀 세치가 늘어 가는데 언제까지 직장생활을 할 것인가 하면서도, 막상 나의 길을 모색하는 순간에는 현실적인 두터운 제약과 월급이라는 당근의 유혹이 목덜미를 잡아끕니다.
남들도 다 그렇게 살아가고 있으니 지극히 정상적인 현실적 고민을 한다고 합니다.
콩깍지가 껴서 남녀가 만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아파트 평수를 늘려가고 때론 시름에 젖기도 하고, 그러다 노년이 되면 몸도 마음도 지친 상태에서 죽음이라는 피할 수 없는 명제를 기다리고.
그런가요. 다 그렇게 사는 건가요.
하지만 내가 아는 어떤 이들은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여리디 여린 아름다운 청춘을 재활원의 어린이들에게 바치는 분도 있고
빠듯한 사업체이지만 그런 가운데에서도 월마다 일부분을 떼어 감사 헌금을 꼬박꼬박 바치는 분도 있고
자신의 배로 낳은 자식이 남들이 말하는 지체부자유로 태어났음에도 항시 밝은 표정과 미소로 타인을 대하는 삶을 살아가는 분도 있습니다.
무슨 일을 하고 어떤 곳에 소명을 두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내 앞에 닥친 현실을 어떻게 어떤 마음으로 대하고 살아가느냐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여성들의 정신적 멘토인 한비야씨가 다음과 같은 내용을 대중매체에서 이야기한 것을 본적이 있습니다.
'사십대 중반의 케냐인 안과의사에게 물었다. 당신은 아주 유명한 의사이면서 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이런 험한 곳에서 일하고 있어요? 그러자 이 친구, 어금니가 모두 보일 정도로 활짝 웃으며 말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기술과 재능을 돈 버는 데만 쓰는 건 너무 아깝잖아요. 무엇보다 이 일이 내 가슴을 몹시 뛰게 하지요.'
정답은 내 가슴을 뛰게 하는 일이었습니다.
나환자들의 정착촌을 결국 선택하지 못한 이유로는 그 일이 내 가슴을 뛰게 하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 입니다. 그렇기에 설사 그 길을 갔더라도 나는 얼마 버티지 못하고 나왔을 터입니다.
가을을 타는지 가슴 한구석 찬바람이 서늘히 들어옵니다.
이런 생각 저런 생각 상념에 젖다보면 정작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고 그냥 덧없는 시간이 흘러갑니다.
조금 더 정신을 차려야 하는데 하면서도 머릿속 생각만 복잡합니다.
내 가슴속을 조금 더 들여다봐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