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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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견뎌내기
#1. 풀리지 않는 숙제, 엄마와의 갈등
친구와의 맥주 한잔이 몹시 간절했던 저녁이지만, 퇴사를 앞두고 맡은 일을 하루라도 빨리 마무리 해야 된다며 친구는 저녁만 먹고 사무실로 돌아갔다. 두 세번 맥주를 마시고 싶다는 생각을 내비쳤음에도 불구하고 야근에 대한 의지가 너무 확고해 차마 친구를 잡을 수 없었던 그녀는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한 채 집으로 향했다. 집에 가는 길에 동네 카페에 들러 이력서를 좀 써볼까 했지만, 집에 가서 맥주를 한잔 하며 쓰기로 했다. 집에 도착한 그녀는 티비를 켜고 말았다. 엄마가 사다 놓은 복숭아를 안주 삼아 맥주를 마시며, 일일 드라마를 본다. 티비를 잘 보지 않는 그녀이지만, 요즘은 스트레스도 풀 겸 몇 가지 티비 프로그램을 찾아서 보고 있다. 그러다가 피곤했는지 10시쯤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그 때 엄마가 들어와서 그녀를 향해 뭐라고 하는데 듣지도 못하고 계속 잠에 취해 있었다. 큰 움직임 없이 사람들이 하는 설문조사를 지켜보는 아르바이트를 6시간 정도 했더니 많이 피곤했던 모양이다.
다음 날 아침, 잠결에 엄마가 그녀에게 하는 소리가 들린다.
“집 좀 치우지? 더러운 집안 보면 청소하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들어?? 엄마가 왠만해서 잔소리 안 할려고 했는데, 이제 도저히 못 참겠다. 엄마 요즘 몸도 안 좋은데, 너 이럴거야?”
이렇게 한바탕 잔소리를 듣고 나서, 그녀는 대충 알았다고 대답을 하고 다시 잠들어 버렸다. 얼마 전부터 엄마의 몸이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주말이 되면 아픈 어깨와 팔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기 위해 찜질방에 가자고 하셨다. 여동생이 있었으면 동생이 함께 갔겠지만, 이제 찜질방에 함께 가 줄 수 있는 사람이 그녀뿐이라서 엄마와 함께 갈 수 밖에 없다. 그런 엄마를 보며 ‘엄마도 이제 늙었구나.’라는 생각과 ‘내가 빨리 자리 잡아서 엄마 일 더 이상 하지 않고 편히 살 수 있도록 해 드려야 할텐데.’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마음만큼 엄마에게 표현을 하지도 않을뿐더러, 하는 행동도 아침처럼 엄마가 잔소리를 하게 만드니 더욱 마음이 복잡하다. 그리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빨리 집에서 나가야지’라는 생각도 한다. 서로의 정신 건강을 위해서 따로 떨어져 사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나가기 전에 날을 잡아서 집안 환경을 한번 싹 바꿔야겠다. 어지럽게 널려 있는 옷들도 정리를 하고, 몇 주 째 계속 널려 있는 빨래와 1년이 지나도 쓰지 않는 부엌도구들도 버릴 것들은 버려서 깔끔하게 만든 베란다에 엄마가 혼자서 책을 볼 수 있는 테이블과 의자를 놓아 두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번에 하기에는 치워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아서, 매일 조금씩 정리를 해야 하는데, 게으른 그녀가 잘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다시 잠에서 깨어 밥을 먹고, 그 동안 미뤄 둔 쓰레기 정리, 화장실에 던져 둔 가방 빨기, 버릴 텔레비전을 카트에 올려두고, 드라이 할 옷들과 내다버릴 쓰레기를 챙겨 집을 나섰다.
얼마 전에 보험회사에서 일을 하기 시작한 친구를 만나 점심을 먹고, 커피를 한 잔 했다. 그 동안 있었던 일들을 서로 얘기한다. 오래간만에 본 친구가 그녀에게 한 마디 한다.
“와우~ 너 완전 자유로워 보인다~!!! 너 이렇게 편하게 옷 입은 거 진짜 오래간만에 봐”
“그래? 나 이렇게 입고 다닌지 오래 됐어.ㅋ 나 요즘 너무 좋아. 자유로운 영혼이지. 돈만 있으면 딱인데!!!”
정장만 입고 다니던 그녀였기에, 당시에 그녀를 봤던 사람들은 요즘 청바지 차림을 하고 있는 그녀를 보면 많이 새로운가 보다. 그리고 많이 편안해 보인다고 이야기를 한다. 이런 얘기를 들으면, ‘내가 그렇게 자유롭지 않게 보였나?’라는 생각도 든다. 어쩌면 보험회사에 그만두기 직전1년 동안 많이 힘들었고, 힘든 것이 주변 사람들에게 너무 잘 보여서 사람들이 많이 안쓰럽게 생각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감정 표현을 잘 하지 못하는 그녀이지만, 감정들이 표정을 통해 너무 드러나기 때문에 약간은 불편한 감정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힘든 모습을 사람들이 알아봐주고 위로해 주는 것이 감사하기도 하다.
친구와 만난 이후에 지난 번에 면접을 봤던 회사에서 미팅이 있었다. 그녀는 마시던 커피를 들고 회사로 향했다. 담당자와 마주 앉아 이후의 일정과 싱가폴에서의 생활, 급여 등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들었다. 그런데 교육과 관련된 부대 비용이 150만원이 아니라 180만원이었다. 그 중에서도 이해가 안 됐던 부분은 입사할 경우, 초기 3개월 간 싱가폴 현지에서 받는 교육에 대한 비용을 그녀가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다. 거기에 계약 기간이 2년인데, 입사 후 1년 이내에 퇴사할 경우, 패널티로 돈을 싱가폴 달러로 3000불이나 내야 한다는 조항이 있었다. 그녀는 듣는 내내 너무 어이가 없었다. 일 하는 사람에게 투자를 전혀 하지 않는 회사라는 것도 이해할 수가 없는데, 회사를 그만두었을 때 패널티는 또 뭔가?? ‘이 회사 뭐야? 자기들이 손해는 전혀 안 보겠다는 거잖아?’라는 생각이 든다. 이 회사에서 일하기 위해서 그녀가 부담해야 하는 돈은 초기에 입금해야 하는 180만원과 3개월간 그녀가 받을 수 없는 수당 약 180만원까지 거의 400만원 정도의 금액이다. 돈을 벌겠다고 들어가는 회사인데 오히려 돈을 내야 한다는 것이 많이 꺼림칙하다. 실제 싱가폴에서 필요한 생활비보다 훨씬 모자란 월급이라는 것도 그녀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
아마 5년 전, 대학을 졸업한 직후였다면 이런 조건에도 불구하고 일을 하겠다고 계약서에 싸인을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미 이런 비슷한 것들에 혹해서 금전적으로 손해를 여러 번 봤던 그녀라서 쉽게 결정을 내리지도 않을뿐더러, ‘이상한 회사’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게 되었다. 비싸게 얻은 경험이긴 하지만, 그런 경험조차 없었다면, 아마 그녀는 지금도 여전히 그녀를 유혹하는 그런 손길들을 덥썩 붙잡았을 것이다. 이것은 그녀가 조금 더 현실적이고 신중해 졌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세상을 더 이상 순수하게만 보지 않고, 한걸음 물러나서 상황이나 사람들이 그녀에게 하는 이야기들의 이면에 존재하고 있는 위험과 숨겨진 의미들을 의심하게 된 것이기도 하다. 무작정 믿을 수 없는 세상이라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덕분에 더 이상 무작정 당하지도 않고 손해를 보지 않을 거라는 의미에서는 긍정적이다.
#2. 누워서 떡 먹기에서 땅 파서 헤엄치기로… “돈 버는 게 이렇게 어려웠나?”
첫 번째 면접 본 곳은 그냥 날려버리기로 마음을 먹고, 아르바이트를 했던 곳에서도 더 이상 그녀에게 일 거리를 주지 않게 되자, 하루하루 지나가는 시간이 너무 아깝기도 하고, 매일 조금씩 가까워오는 신용카드 결제일이 두려워진다. 그 날 저녁, 그녀는 아르바이트 정보가 있는 웹사이트에 회원등록을 하고, 단기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하루 일당 5만원은 최소로 벌어야 여러 가지 필요한 생활비 및 공과금을 충당할 수가 있어서, 그런 일자리를 찾는데 쉽게 눈에 띄지가 않는다. 이상한 광고들도 꽤 많이 보이고 말이다. 두 세 군데 괜찮은 곳이 있어서 입사지원서를 보냈다. 새벽 2시까지 무거운 마음으로 알바자리를 열심히 뒤져서 겨우 찾은 곳들이었다. 눈꺼풀이 자꾸 무거워져서 잠자리에 드는데, 잠도 잘 오지 않는다.
다음 날 아침, 이메일이나 연락이 한 군데 정도에서는 올거라고 예상했는데, 한 군데도 오지 않는다. 그래서 메일을 확인을 했는지 봤더니 메일을 열어보지도 않았다. 그 중 핸드폰 번호가 있는 곳 담당자에게 이메일 보냈으니 확인 부탁한다는 문자를 보냈다. 메일이 안 왔다길래 메일을 다시 보냈다. 그런데 메일을 보내고 한참이 지났는데 연락이 없다. 아무래도 아르바이트 자리도 짤린 모양이다.
아르바이트 할 곳을 찾으면서 풀타임으로 9시간 근무를 해도 하루 5만원 밖에 벌지 못하고, 월급으로 받는 곳들도 생각보다 너무 적은 돈이라 그녀는 사실 무척 놀랐다. 얼마 전 아르바이트를 할 때 4시간 일하고 4만원을 벌었고, 4-5시간 출근해서 주급 20만원을 벌었던 그녀였기에, 그때는 정말 몰랐다. 그녀가 받는 급여가 평균 아르바이트생이 버는 돈보다 두 배 가까이 많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제서야 드는 생각은 ‘힘들어도 그냥 다닐걸 그랬나?’라는 생각이다. 그만한 곳을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최저임금이 왜 올라가야 하는지 절실하게 공감되는 순간이다. 그리고 새벽시간까지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기 위해 싸이트를 뒤지고 있는 자신이 왜이리 비참하게 느껴지는지 갑자기
더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채용 공고에 하나 같이 ‘연락 두절되거나, 알바하는 도중에 무단 결근하는 것’에 대해 경고성 글을 적어 두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처럼 어느 정도 사회 생활 경험이 있고, 책임감이 강하다고 어필하는 사람에게 연락이 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연락이 오지 않는 것이 단순히 사람을 이미 구했거나, 그녀가 마음에 안 들어서일텐데, 마음에 안 드는 가장 큰 이유가 아마 ‘그녀의 나이’일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아르바이트를 하기에는 적지 않은 나이다. 아마 그녀를 알바생으로 부려야 하는 사람들이 그녀보다 나이가 적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되면 ‘막 부리기’가 쉽지 않을 터이니 연락을 안 할 것이다. 그녀의 추측이 100% 정확하지는 않겠지만, 어느 정도는 일리가 있는 생각인 것 같다.
그녀가 먼저 이력서를 보내거나 연락을 한 곳에서 먼저 연락이 오지 않자 그녀의 이력서를 아르바이트 채용 사이트에 공개를 해 버렸다. 공개한지 10분도 채 되지 않아 전화가 왔다. 그녀처럼 이력서를 공개 한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매칭해 주는 전화를 하는 업무였다. 전화 거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전혀 없던 그녀였고, 근무 조건도 나쁘지 않아서 다음날부터 바로 출근을 하기로 했다. 이 전화를 끊은 후에 10통 이상의 전화를 받은 그녀. 전화를 받고 나니 너무 쉽게 결정 해 버렸나? 라고 살짝 후회를 해 보지만, 이미 한번 내 뱉은 말이라서 우선 가서 어떤 업무인지는 얘기를 들어보기는 해야겠다고 결심을 한다. 그런데 이렇게 전화를 하는 업체들이 많은 거라면 왠지 다음날부터 하기로 한 전화하는 그 일이 쉽지만은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그래도 이미 약속한 것이니 다른 전화들은 다 물리쳐 버렸다. 다음 날 아침, 회사가 있는 가산 디지털단지역으로 갔다. 아침부터 오고 있냐는 확인 전화가 오는 걸 보니 ‘아르바이트 하겠다고 연락하고선 안 오는 사람들이 많긴 많은가보다’라는 생각을 하며 회사 사무실을 찾아간다. 사무실에 도착하니 그녀와 같이 오늘부터 일을 하기로 한 것처럼 보이는 남자분이 있다. 그녀와 함께 일에 할 때 쓰는 전화용 스크립트를 가지고 자세한 설명을 듣는다. 알고 보니, 이 회사에서는 편의점 앞에 있는 현금인출기의 현금을 수송하는 업무를 할 보조인력을 찾는 것이다. 그런데, 6시 칼퇴근 하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그렇다고 얘기해야 하고, 주말 근무에, 한 달에 한 번은 일요일 근무까지 있다. 그런데 앞에 앉아서 설명을 해 주는 분이 교묘하게 그런 단점들을 흘리면서 이야기하는 법을 알려주신다. 왠지 꺼림칙하다. 누군가를 속이는 것을 결코 좋아하지 않는 그녀이기에 이 일을 하기 힘들 것 같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 문자가 왔다. 전날 그녀가 면접조사원으로 지원했던 리서치 회사의 인사 담당자에게 온 문자다.
“혹시 사무실 관리 보조 알바는 가능하신지요?”
“넹. 가능합니다”
“혹시 오늘부터 가능하세요? 한 이십일 정도고 업무강도는 낮고요. 일 오만원인데 일곱시간 정도에요.ㅋ”
순간 ‘아싸라비아!!!’를 외친 그녀. 그리고 설명을 듣고 실전으로 바로 투입되기 위해 자리를 일어서면서 열심히 교육을 해 주신 그분께 말씀을 드렸다.
“저기… 죄송한데, 저 전공과 관련된 곳에 일자리가 났다고 연락이 와서요. 그 쪽으로 가봐야 할 것 같아요. 죄송합니다..”
담당자는 당황스러워하면서도 ‘알았다, 괜찮으니까 가 보시라. (그녀와 통화를 했던) 팀장님에게 말씀드리겠다’고 얘기하고선 그녀를 보내 준다. 나오자 마자 그녀는 문자가 왔던 리서치 회사 담당자에게 전화를 했다. 당장 와달라고 부탁을 한다. 1시간 반이나 가야 하는 거리이긴 하지만, 어차피 오늘부터 아르바이트를 하기로 마음 먹은 그녀였기에, 별 고민 없이 그 곳으로 출발을 했다. 어렵게 아르바이트를 하는 장소에 도착을 했다. 아침에 먹은 게 잘못 됐는지 배가 아파서 화장실에 들린 후에 그다지 좋지 않은 컨디션으로 아르바이트 장소에 도착을 했다. 그녀가 하는 일은 생각보다 매우 간단했다. 설문조사를 하기 위해 오는 사람들에게 확인 전화를 하고, 오는 분들의 키와 몸무게만 재면 되는 것이다. 사람들이 설문조사를 위해 나가는 20-30분 가량은 혼자 책을 보거나 인터넷을 할 수 있는 시간이다. ‘이게 왠 떡인가’ 싶다. 이렇게 쉽게 돈을 벌게 될 줄이야. 20일동안 하기에 그녀에게는 최적의 아르바이트인 것 같다. 예상시간보다 한 시간이나 일찍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생각보다 집까지 오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한 시간 반에 걸쳐 집에 도착해서 거의 종일 굶은 상태라서 남은 밥에 라면을 끓여 허겁지겁 저녁을 먹고는 잠시 누웠다. 그런데 이상하게 몸 상태가 좋지 않다. 전날 밤에도 거의 종일 밥을 먹지 않고 있다가 잠자기 직전에 폭식을 하고, 이틀 연속 그런 식으로 밥을 먹었더니 결국 탈이 난 모양이다. 8시도 안 되어서 잠 들었는데, 몸이 좋지 않아 새벽에 여러 번 깼더니 아르바이트를 하러 출발해야 하는 시간에 잠에서 깨버렸다. 부랴부랴 옷을 챙겨 입고 출근길 만원 지하철을 탔다. 그 순간 그녀의 핸드폰에 도착한 문자. 아르바이트 하는 곳의 대리님이다.
“죄송해요. 오늘까지만 일하셔야 할꺼 같네요 ㅠ 팀장님이 저희 직원 두자고 하시네요. ㅜ 일하신 일당은 보내드릴게요. ㅠ 다시 한번 죄송해요. ㅠ 다음에 좋은 인연으로 뵙길 원합니다.”
“네. 도착해서 말씀하셨어도 됐을텐데. 저 늦을 것 같다고 문자보내고 있었거든요.^^;; 죄송합니다. 빨리 갈게요”
썩 좋지 않은 기분으로 문자를 보내고 가고 있는데, 대리님에게 전화가 왔다. 다시 한번 미안하다고 얘기한다. 그래서 그녀는
“그럼 오늘 안 가도 되는 건가요? 알겠습니다.”라고 얘기하고 전화를 끊었다.
가던 지하철에서 내려 반대편으로 오는 지하철을 탔다. 학교 앞 카페에 가서 음료를 하나 주문하고 문자를 다시 확인했더니, 어제 밤에 온 문자였다. 그녀의 몸이 안 좋아 일찍 잠든 바람에 문자를 못 본 것이었다. 어제 알았어도 기분이 안 좋았겠지만, 출근 길에 그 소식을 알게 돼서 기분이 더 좋지가 않다.
아르바이트마저 짤리고 나니 온갖 생각이 든다. ‘내가 부족해서 그런 건가?’ 아니면 ‘너무 쉽게 돈을 벌게 되었다고 신이 벌 주시는건가?’ 등등의 잡생각들이 그녀의 머리 속을 떠나지를 않는다. 점심시간에 만나기로 한 분에게 문자를 보내서 약속 장소를 변경하고, 카페에 앉아 다시 이력서를 쓴다. 그녀가 일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 자리도 다시 찾는다. 또 다른 좋은 곳이 있겠지 라고 생각해 보지만 한번 떨어진 자신감을 회복하기는 쉽지가 않다. 안 그래도 좋지 않은 컨디션이 더 안 좋아지는 것 같아서 집에 일찍 들어가서 쉬면 좋겠는데, 약속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자리를 지키고 앉아서 다시 노트북으로 이것저것 작업을 시작한다.
점심시간이 다 되어서 만나기로 모 보험사 매니저님이 도착했다. 예전에 고객의 친구분으로 한번 만났던 분이 그녀를 소개해서 연락을 했다는데, 남자분인데 굉장히 가느다란 특이한 목소리를 가진 분이다. 첫 인상이 썩 나쁘지는 않다. 속이 좋지 않아 밥을 못 먹는다고 하니, 스파클링 사과주스와 치즈케잌을 사오시는 걸 보니 센스가 없진 않은 것 같다. 자리에 앉자마자 1시간 가량 본인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구 쏟아 내신다. 워낙 듣는 것이 익숙한 그녀이기에 잠자코 듣고 있다. 다행히 그녀의 웃음코드와 맞는 분이라서 1시간이 나름 즐겁게 지나갔다. 그러더니 갑자기 DISC 검사지와 적성검사지 두 가지를 꺼내서는 그녀에게 해 보라며 건네신다. 워낙 성격검사 따위를 하는 걸 좋아하는 그녀라서 거부감 없이 앉은 자리에서 체크를 해 나가는 그녀. 결과가 궁금한데, 그녀의 친구가 오기로 되어 있었고, 이 분도 약속이 있어서 자리에서 일어서야했다. 그 분은 대뜸 그녀에게 시간 많지 않냐며 두 시간 후에 다시 만나자는 제안을 한다. 결과가 궁금하기도 해서 그녀는 그러겠다고 대답을 했다.
두 시간 후, 그 분의 사무실에서 두 사람은 다시 만났다. 회의실에 가서 그녀가 작성한 설문조사의 결과를 얘기해 주면서 계속 그녀가 보험 영업과 맞는 사람인지, 그녀가 영업에 맞는 적성이긴 한데, 왜 그만두게 되었는지가 궁금한지 계속 이것저것 질문을 한다. 이야기를 하면서도 의문이 풀리지 않는 모양이다. 결국 처음 만난 두 사람은 그날 저녁식사까지 함께 하게 된다. 저녁을 먹으면서도 이 분의 대화는 끊이질 않는다. 그녀는 최근 이렇게 오랜 시간 만난 사람이 많지 않아서 ‘참 대단하시네’라고 생각한다. 식사하고 차까지 마시면서 두 시간 남짓의 시간동안 많은 이야기를 하고 나서 그녀는 집으로 그리고 그 분은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에 그녀에게 얘기한다.
“미나씨의 데이터는 영업에 매우 적합한 사람이라고 나오는데, 실제 영업이 왜 힘들었을지를 모르겠네요. 뭔가 퍼즐을 맞추는 기분이에요. 풀리지 않는 퍼즐을 해결하고 나서 연락 한번 할게요. 그 때 다시 한번 봐요.”
“네, 알겠습니다. 연락 주세요”라고 얘기하며 두 사람은 헤어진다.
사실 그녀는 다시 보험영업을 할 생각이 전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험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 전화를 했을 때 만나자는 제안을 받아들인 이유는 사람 인연이란 모르는 것이기에 만나보고 괜찮은 사람이라면 인연의 끈을 남겨 두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른 인간관계에서도 그렇다. 그녀는 굳이 적을 만들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이든 그녀가 만나는 사람들과는 적당한 거리를 두기 때문에 이런 인간관계들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그녀가 지금껏 만나 온 많은 사람들이 대부분 그녀의 곁에 남아 있다. 연락을 굳이 자주 하지는 않아도 언제든 연락하면 반갑게 맞아줄 그런 사람들이다. 하지만 이런 그녀에게도 그녀 나름의 기준에서 ‘더 이상 관계를 유지 할 필요가 없겠다’는 어떤 특정한 사건이나 상황이 발생하면 매몰차게 끊어 버린다. 물론 상대방은 이 관계가 매몰차게 끊어졌다고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그녀 마음 속에서 영원히 사라지는 것이므로, 그녀가 먼저 연락할 일이 절대 없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녀에게 걸어 오는 연락도 받지 않지만 말이다. 그녀가 내리는 어떤 선택이든, 사람 관계에서 정리를 하든, 이미 결정한 부분에 대해서는 어떤 미련도 후회도 갖지 않고 쿨하게 잊는 사람이다.
#3. 이탈리아를 상상하다.
토요일. 한달 전 따로 모임을 해서 청첩장을 전해 주었던 그녀가 좋아하는 과 선배언니의 결혼식이다. 집에서 꽤 먼 거리에 있는 결혼식장을 가기 위해 결혼식 시작하기2시간반 전에 집에서 출발을 했다. 결혼식을 보는 것도 목적이긴 했지만, 조금 일찍 가서 글을 좀 쓸 생각이었다. 그러다 보니 결혼식 시작 1시간 전에 도착을 했다. 결혼식장이 공항 내에 있어서 그런지, 김포공항역에 내려 국제선 출구 근처에 있는 웨딩홀까지 가는 길이 꽤 멀다. 그런데 공항까지 가는 그 시간동안 그녀의 가슴에는 묘한 설레임이 찾아온다. 한 손에 캐리어를 끌고 가는 사람들을 보니 그저 부럽기만 하다. 길고 긴 무빙워크에 서서 잠시 눈을 감았다.
‘이 길로 출국을 하면 나는 어디로 가는 비행기 티켓을 손에 들고 있을까?’
‘이탈리아 루카? 아씨시? 아니면 호주?’
그녀가 루카 마을을 둘러 싼 성벽 위를 바람을 타고 자전거에 몸을 맡긴 채 달리고 있다. 뜨거운 햇살을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온 몸으로 흡수하며 달리고 또 달린다. 루카에 온지 한 달. 이제 그녀는 반대쪽에서 그녀를 향해 달려오는 현지의 사람들과 눈도 마주 치고 여유롭게 인사도 할 수 있게 되었다. ‘Ciao~~’ 한 달 정도 이탈리아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다 보니 이탈리아어가 그녀의 입술을 타고 술술술 나오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Conversation Exchange 사이트를 통해 만난 네덜란드에 사는 이탈리아 청년 Vincenzo가 그의 한국어를 배우고 싶은 욕구만큼이나 그녀에게 열정적으로 이탈리아어를 가르쳐준 덕분이기도 하고, 그녀 역시 한국 대중가요와 분위기가 무척 비슷한 이탈리아 대중가요를 즐겨 듣게 되면서 많이 익숙해 질 수 있었다. 2011년 여름에 이탈리아 여행으로 우연히 이탈리아에 푹 빠져버린 그녀와 같은 해의 봄에 한국 여행을 왔다가 한국과 완전한 사랑에 빠져 버린 Vincenzo. 처음에 왜 서로의 언어를 배우고 싶어 하는지를 얘기하면서 상황이 비슷해 무척이나 신기했다. 그랬던 한국인 그녀는 지금 그토록 꿈 꾸던 이탈리아에 와 있고, 이탈리아인 그는 첫 만남에 완전히 반해 버린 대한민국의 부산에 가 있다. 각자의 생활터전에서 꿈을 꾸며 서로의 언어를 배울 때만큼 자주는 아니지만, 지금도 여전히 두 사람은 가끔 서로의 안부를 묻고, 언어를 가르쳐 주고 있다. 처음에 비해 왠만큼 각자의 언어로 대화가 되어서 꽤 재미가 있기도 하다. 요즘 그녀는 루카에서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하는 새로운 친구 voceli를 일주일에 세 번씩 만나고 있다. 그와 이야기를 하면서 지난 여름 열흘간 느끼지 못했던 이탈리아를 몸소 체험하면서 더욱 더 이탈리아의 매력에 푹 빠져들고 있다.
‘덜컹’
루카에 있는 그녀를 신나게 상상하고 있는데, 무빙워크 끝자락에 발이 걸려 버렸다. 어느 새 그녀의 눈앞에 다시 나타난 현실. 당장이라도 저 출구를 통해 한국을 떠나고픈 마음을 단단히 부여잡고 웨딩홀 옆 카페로 향한다. 하지만 루카에 대한 상상만으로도 그녀의 가슴은 미친듯이 쿵쾅거리고 있었다.

1권.. 으하하핳.. 연재소설이 되는건가요?? 그것도 사실 조금은 생각하고 있긴했는데...
루카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2권이 시작되면 좋겠네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를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네... 저야 뭐. 지금.. 남아도는게 시간이니까요..ㅋㅋㅋ..
아 근데 사부님 머리가 나빠서 마지막 말씀 제대로 이해한건지 모르겠어요.. 훔.. 일기 쓰지 말고, 이제 내일의 일을 오늘 쓰라는 말씀이신거죠?? 진짜 소설을 쓰라는 말씀. 제가 제대로 이해한거 맞나요??? 하하하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