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범해 좌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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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 7. 네 노래를 불러라
밤바람이 차다. 계절을 잊고 지냈다. 강물을 내려다본다. 고개를 들어 올려 달도 바라본다. 맑다. 조금 머리가 무거운듯하지만 종일 글 감옥에 갇혔으니 어떻게든 버텨봐야지....
나만 가수였던 임재범이 바람에 실려 버클리대에 갔다. 유학생들의 요청으로 강연과 공연을 하러 간 것이다. 임재범의 젊은 날의 꿈은 로커가 되는 것이었다. 롹은 곧 열정이고 자유란다. 잘생긴 탈렌트 이준혁은 임재범에게 음악을 배우려고 함께 바람에 실려 따라왔다. 그날 임재범의 <비상>이란 노래를 무대에서 부르기 위해 준혁이 혼신의 힘을 다해 연습을 했다. 긴장을 해서 떨어 좀처럼 좋은 노래가 나오지 않는 준혁에게 임재범이 선배로서 그리고 스승으로서 조언을 해 준다.
“오만 잡생각으로 노래를 하는 게 아니야. 게다가 가사가 틀리까봐 두려워하면서...아니야, 뭔가를 일부러 만들어 내려고 하지마, 그냥 네 스타일대로 노래를 불러. 질러, 소리를 지르란 말이야. 그래야 비로서 자기의 말을 할 수 있고 너 자신이 또한 음악에 빠져 들 수 있는거야....”
지난 오월 이후로 임재범의 노래에서 많은 위로를 받고 있는" 여러분" 가운데 한 사람인 나는 그가 준혁에게 해 준 이 말이 마치 오늘 내게 해주는 말 같이 들렸다. 그래 그냥 내 스타일대로 글을 쓰자. 그래야 비로소 글에 빠져들게 되고 글을 즐길 수 있는 거야......
내가 지금 사는 방법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고민을 심각하게 했다. 이 시간들이 내 인생에서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지금 나는 즐겁지도 않고 긴장되어 마음을 졸이면서 몹시 애를 쓰고 있다. 그런데 어디로 가기위해서 무엇을 얻으려고 이 일을 하고 있는가? 며칠째 팔장을 끼고 생각을 하고 있는 의문이다. 옛날에 팔짱을 끼고 수학문제를 푸는 아이가 있었다. 남들은 끙끙거리는 시간에 경계를 뛰어넘은 듯 초연했던 이 아이는 결국 과외선생님에게 숙제를 해오지 않았다고 꾸중을 들었다. 아이를 전적으로 믿어주던 부모는 이 아이가 더 이상 과외에 끄달려다니기를원하지 않았다. 팔짱을 끼고 생각을 하고 있는 나를 보며 그 이야기가 생각났다. 수영을 하는 방법을 연구하느라 시간을 다 보내지 말고 이젠 그만 바로 물로 뛰어들어가라! 이제 그만 팔짱을 풀고 펜을 잡아라.
인간은 극복되어야 할 그 무엇이다. 시장터에서 광대가 줄을 타기 시작한다. 인간의 극복이란 이렇게 하는 것이라고 시범을 보이듯이. 그 광대가 줄을 타고 중간 쯤에 이르자 뒤에서 다른 광대가 빠른 걸음으로 쫓아오더니 냉큼 비키지 못하겠느냐고 호통을 친다. “너는 지금 너보다 뛰어난 자의 길을 가로막고 있지 않느냐...” 그리고는 길을 막고 있는 광대를 훌쩍 뛰어 넘어 버린다. 이런 갑작스러운 사태에 당황한 앞의 광대는 땅 바닥에 곤두박질 치고 , 결국 죽고 만다. 인간의 극복은 광대의 줄타기와 같은 것일까? 남이 죽든 말든 자신만이 살아남아야 하는 치열한 생존 경쟁의 과정을 의미하는 것일까?
자기 극복은 쉬운 것이 아니다. 우리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결국은 우리 자신이다. 마음도 행동도 뜻대로 제어하지 못해서 힘든 것이 우리의 삶이다. 내 자신의 머리를 딛고 내 자신의 심장을 뛰어넘어 저기 저쪽으로 가는 것이 위대함에 이르는 길이다. 그 길에 수많은 위험이 있지만 결코 남을 타고 넘을 것이 아니라 자신을 타고 오르는 방법 밖에 없다. 죽어야 산다. 생물학적 죽음이 아니라 본성의 변화, 가치관의 변화를 겪는 몰락과 죽음만이 우리를 새롭게 만들어 준다. 그러니 이제 부디 팔짱을 풀고, 헤엄을 쳐라. 바다로 나가서 다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해라. 몰락이 있는 곳에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 부활은 무덤이 있는 곳에만 있기 마련이다.

샘 글 읽고 샘이 권해준 책에서 떠오른 구절이에요.
'화답가' 가 되려나 해서 붙여 보아요. 맑고 청명하고 속은 바짝 타고 얼굴은 재미로 넘쳐나는 노래 부르시는 날들이시기를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은 진흙길이다. 예수의 본보기와 진흙 계절의 경험은 가혹한 진실을 상기 시킨다.
부활하기 위해서는 먼저 죽어야 한다는 것.
죽음은 진흙처럼 수많은 형태를 취할 수 있지만, 모든 죽음은 - 내가 생각하는 의미에서는 - '놓아버리는 것' 이다.
우리는 야심과 자만과 자아를 놓아 버린다. 인간관계와 건강을 놓아 버리고, 우리 보다 먼저 자신의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사랑하는 이들을 놓아 버린다.
세상은 어떠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고집을 놓아 버린다.
이런 것들을 놓아 버리는 것은 모든 계획이 실패로 끝나고, 소중하게 간직했던 모든 소망을 잃어버린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을 놓아 버리면 두려움도 놓아 버릴 수 있다.
손가락 관절이 하얘질 만큼 단단히 움켜쥐고 있는 삶, 우리의 기대를 결코 채워주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는 삶도 놓아 버릴 수 있고, 부쩍 성장한 우리의 정신에 비해 너무 작아서 쓸모가 없어졌는데도 고통스럽게 움켜잡고 있던 자아도 놓아버릴 수 있다.
때로는 생명 자체를 놓아 버린 것처럼 느낄 수도 있지만, 우리가 상상할 수 있었던 것보다 훨씬 자유롭고 여유롭고 기쁨에 찬 새로운 생명속에 들어가 있는 자신을 깨닫게 된다.
그런 부활의 영적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예수의 몸이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실제로 일어났다고 믿을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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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한번쯤은 자기만의 세계로 빠져들게되는 순간이있 지
너무 많은 생각과 너무 많은 걱정에 온통 내 자신을 가둬 두었지.
이젠 이런 내모습 나조차 불안해 보여. 어디부터 시작할지 몰라서
나도 세상에 나가고 싶어.당당히 내 꿈들을 보여줘야해.
그토록 오랬동안 움추렸던 날개 하늘로 더 넓게 펼쳐 보이며
날고 싶어
감당할 수 없어서 버려둔 그 모든건 나를 기다리지 않고 떠났지.
그렇게 많은 걸 잃었지만 후회는 없어.그래서 더 멀리 갈 수 있다면
상처 받는 것보단 혼자를 택한거지.고독이 꼭 나쁜것은 아니야.
외로움은 나에게 누구도 말하지 않을 소중한걸 깨닫게 했으니까
이젠 세상에 나갈 수 있어.당당히 내 꿈을 보여줄거야.
그토록 오랬동안 움츠렸던 날개 하늘로 더 넓게 펼쳐 보이며
다시 새롭게 시작할거야.더이상 아무것도 피하지 않아.
이 세상 견뎌낼 그 힘이 되줄거야
힘겨웠던 방황은



어설픈 실증주의나 행동주의자는 아니지만
심리를 전공하고 인간행동에 대한 학습과 제어를 마빡 깨지게 공부해본 결론은
어떤 인지적인 노력도 행동을 위한 세부계획을 세울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됐죠...
두려움에 떨어야 했던 날들이... 참... 많았죠...
아무리 훈련을 많이 하고 치밀하게 계획을 세워도
그 시합장에서 매 번 겪는 '머리털이 팍팍 서고 심장이 방망이질을 하고 오줌이 마려운'
그 증상은 없앨 수가 없었죠
대신에 나는 그걸 '긴장'이란 단어 대신 '흥분'이란 단어로 대치했죠....
20cm 손잡이를 움켜쥐고 90cm 칼 날에 매달려 살아온 30년이 넘은 세월을 들여서 알아낸 것이
결국 인간은 자신의 경험과 학습을 바탕으로 하는 '자기 스타일'일 수 밖에 없다는 거...
'새로워진다'는거는 그 반복속에서 '돌연변이' 처럼 오는 작은 ... 너무 작은 시행착오속에서
환상적으로 일어나는 '통찰' 이라는 것...
꿈이나 미래하고는 눈꼽만치도 관련이 없는 현실주의자일 수 밖에 없는 칼잽이인 내가,
어느 날 내가 듣는 소리는 ''구름위에서 놀고 있는 부적응자"라는 ...
잠을 잘 때도 거의 꿈을 꾸지 않는 내가,
살았던 그 모든 삶이 꿈이었다는 것을 스승의 그늘 아래서 알게 되었죠.
사람들은 꿈을 꾸는데 나는 곰텡이처럼 행동하고 있었으니
그래서 사람이 꿈을 꾸는 것이 아니라 꿈이 나를 사는 ... 참 희안한 일이 일어났다는 거...
사는게 꿈인데,,,
아마, 저는 죽으면 그 꿈에서 깨어나겠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