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범해 좌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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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 8. 끝나지 않은 죽음
내가 너를 사랑했을 때
너는 이미 숨져 있었고
네가 나를 사랑했을 때
나는 이미 숨져 있었다.너의 일생이 단 한번
푸른 하늘을 바라보는 일이라면
나는 언제나
네 푸른 목숨의 하늘이 되고 싶었고
너의 삶이 촛불이라면
나는 너의 붉은 초가 되고 싶었다.너와 나의 짧은 사랑
짧은 노래 사이로
마침내 죽음이
삶의 모습으로 죽을 때
나는 이미 너의 죽음이 되어 있었고
너는 이미 나의 죽음이 되어 있었다.정호승 <어떤 사랑>
영화나 소설 속에 등장하는 장례식 풍경들. 그곳에 함께 둘러 서있는 사람들의 표정. 사이프러스 사잇길로 끝없이 펼쳐진 길을 또박또박 걸어가는 뒷모습. 엄마의 무덤 앞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는 어린 아이의 얼굴. 그위로 흘러가는 구름. 그리고 서늘한 바람에 불리워 날아가는 나뭇잎 하나. 가을이 되니 울긋불긋 오색 단풍 사이로 또 다른 삶의 모습들이 보인다.
여자대학을 다니던 친구가 있었다. 그 학교 뒷동산에는 이름 모를 무덤이 하나 있었다. 바람이 불지 않고 양지바른 곳이어서 학생들은 그곳을 좋아했다. 개인적인 사연은 알 수 없지만 학생들은 그 무덤을 총각무덤이라고 불렀다. 그곳은 참 따뜻했다. 그리고 적당한 햇살이 정답게 따라다녀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기에 참 좋았다. 빛나는 청춘, 웃음도 많고 수줍음도 많았을 아가씨들이 풀어놓는 수많은 사연들을 이 총각은 다 듣고 있었을까? 말없이 빙그레 웃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그 총각은 "원더풀 카운슬러" 였을 것이다 .나도 그 친구네 학교에 놀러가면 그 총각 무덤에 등을 기대고 앉아 소근소근 현재 진행중이었던 나의 연애 비밀을 다 말하고는 했다.
성묘객을 유심히 살펴보는 일은 흥미롭다. 명절빔을 잘 차려입은 아이들과 함께 오는 가족들은 화기애애하다. 아이들은 종달새마냥 쫑알거리며 뛰어다니다가도 절을 할 때면 앙증맞기 짝이 없다. 대규모 기족도 있고 혼자 오는 사람도 있다. 풀을 뽑고 돌멩이를 주워내며 정성스럽게 가꾸기도 하고 , 오래 머물러 있는 가족도 있다. 봉분이 초라해도 그 앞에 주과를 펴고 정성스럽게 절을 하는 가족들을 보면 면면히 남아 자손들에게 전해지고 있는 망인의 생애가 보이는 듯하다. 물론 의무성 절만 하고 황급히 사라지는 사람들도 있다. 보고 있는 사람도 쓸쓸해지는 순간이다.
사고로 죽은 애인을 잊지 못해 날마다 무덤에 가서 함께 지내다 오는 사람이 있었다. 그리고 그 긴 사연을 책 2권으로 풀어놓은 소설가가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그리운 사람을 따라 갔다. 때로는 먼저 떠나면서 내 무덤에 자주 놀러오라고 당부하는 연인들도 있다. 특히 젊은 여자가 혼자 다녀가면 그 외로운 모습 위로 영화의 한 장면 장면들이 스쳐지나가기도 한다. 그곳엔 분명 아직 끝나지 않은 죽음들이 남아 있는 것 같다.
갇혀있는 마음을 달래보려고 시집을 꺼내 처음부터 하나씩 읽어나간다. 나뭇잎 하나에도 정성을 다하는 이 시인은 학창시절, 수줍음이 너무 많아 사람들 앞에서 말을 할 수가 없었단다. 얼굴이 새빨개지면서 목구멍을 지나 입술까지 온 말들이 좀처럼 튀어나가질 못해서 두근두근 심장만 크게 뛰었단다. 마침내 담력을 키우기 위해 매일 밤 12시에 혼자 뒷동산 공동묘지에 올라갔단다. 그리고 말을 하기 시작했단다. 세월이 많이 흘러 이젠 술이 한 잔 들어가면 이런 지나간 얘기도 낯선 사람들 앞에서 할 수 있게 되었다. 차분한 목소리로 그가 읽어 내린 시 하나.
그 사람의 마지막 길 배웅하며
나는 큰절 두 번을 하고
소주 두 병으로 목을 축였다.
울지 못할 바에야 웃으며 보내는 거라고
사람들 환한 등불아래 날벌레처럼 모여
취기에 날개 접고 앉아 있었다.
간간이 곡哭으로 손님을 맞는 상주의 얼굴이
바람에 떠는 조등처럼 흔들릴 뿐
영정 사진의 그 사람은 웃고 있었다.
태풍이 다녀간 지 얼마 안 되는데
그 사람 가야할 길이 끊기지 않았는지
술기운을 타고 걱정이 올라오기도 했지만
이미 그것은 산 사람의 몫이 아니었다.
술이 취했어도 감히 내가
욕심내지 말아야 할 생각이었다.
배웅을 마치고 발길을 돌리는데
불어난 강가에서 개구리들만 목놓아
울고 있었다.길상호 <배웅을 다녀오다>

먹물에 붓으로 기록한 400년 세월을 뛰어넘는 사모곡
7기와 함께 안동을 다녀왔습니다. 그곳에서 400년전에 씌여진 思夫曲 하나를 들고 왔습니다.
한번 들어보셔요.
‘원이 아버지에게’
-병술년 (1586년) 6월 초하룻날 아내가- 라는 날짜가 적힌 편지였습니다.
당신 언제나 나에게
"둘이 머리 희어지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고 하셨지요.
그런데 어찌 나를 두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30대 초반에 자신과 어린아이와
아직 태어나지 않은 또 한 명의 아이를 남기고
훌쩍 더나버린 남편 그런 남편을 향한
젊은 아낙네의 애끓는 사랑과 원망이 절절한 편지였습니다.
그 시대엔 대부분 부모님이 정해준 상대와 만나 싫든 좋든
부부의 연을 맺고 의무처럼 듬듬이 산 줄 알았습니다.
생전의 아내가 남편에게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까요?
남들도 정말 우리 같을까요.
언제고 물어 볼 만큼 절절히 사랑하고 아낀 부부도 있었던겁니다.
하긴 그때라고 그런 부부와 그런 사랑이 없었을까?
당연히 있었을텐데도 두 사람의 사랑은 참으로 드물고 각별하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그런 각별하고도 절절한 사랑을 그토록 일찍 잃었으니
남은 마음이 얼마나 캄캄하고 원망스러웠을까?
그걸 생각하면 미워서 헤어지고, 마음이 갈라서서 헤어지는 것조차
어느 만큼은 오히려 행복한 일입니다
살아가다보면 때론 진심으로 사랑했던 존재를 너무나 어이없게 잃기도 하고
그래서 견딜 수 없는 슬픔과 절망에 힘들어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래도 그 사람에게
이응태의 아내 원이엄마 같은 질문을 했던 기억이 있다면
그래도 그 큰 슬픔의 반은 행복의 몫이 아닐까
당신 언제나 나에게
"둘이 머리 희어지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고 하셨지요.
그런데 어찌 나를 두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나와 어린아이는 누구의 말을 듣고 어떻게 살라고
다 버리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당신 나에게 마음을 어떻게 갖고 왔고
또 나는 당신에게 어떻게 마음을 가져왔나요?
함께 누우면 언제나 나는 당신에게 말하곤 했지요.
"여보,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까요?
남들도 정말 우리 같을까요?"
어찌 그런 일들 생각하지도 않고 나를 버리고 먼저 가시는가요?
당신 여의고는 아무리 해도 나는 살 수 없어요.
빨리 당신께 가고 싶어요.
나를 데려가 주세요.
당신을 향한 마음을 이승에서 잊을 수가 없고,
서러운 뜻 한이 없습니다.
내 마음 어디에 두고 자식 데리고
당신을 그리워하며 살 수 있을까 생각합니다.
이 내 편지 보시고 내 꿈에 와서 말해주세요.
꿈속에서 당신 말을 자세히 듣고 싶어서
이렇게 써서 넣어 드립니다.
자세히 보시고 나에게 말해주세요.
당신 내 뱃속의 자식 낳으면 보고 말할 것 있다 하고
그렇게 가시니 뱃속의 자식 낳으면
누구를 아버지라 하라시는 거지요?
아무리 한들 내 마음 같겠습니까?
이런 슬픈 일이 하늘 아래 또 있겠습니까?
당신은 한갓 그곳에 계실 뿐이지만
아무리 내 마음같이 서럽겠습니까?
한도 없고 끝도 없어 다 못쓰고 대강만 적습니다.
이 편지 자세히 보시고 내 꿈에 와서 모습 자세히 보여주시고
또 말해주세요.
나는 꿈에 당신을 볼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몰래 와서 보여주세요.
하고 싶은 말이 끝이 없어 이만 적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