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칼럼

연구원들이

  • 書元
  • 조회 수 2771
  • 댓글 수 0
  • 추천 수 0
2011년 10월 23일 18시 16분 등록
세상사 쉬운 일이 없다.jpg

회사에 면접을 볼 때의 일이다.

면접관이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였다.

“자네는 술을 얼마나 마시는가?”

생각지도 않던 질문이 나오자 기다렸다는 듯 옆에 있던 사람이 소주를 아홉 병 마신다고 하였다.

허풍이 가미 되었다는 걸 알면서도 난감 해진다. 영업본부 파트의 직원을 뽑는 자리였기에 아무래도 음주량이 무시를 못할 점이었기 때문이다.

“그럼 자네는?”

나는 용감하게 대답 하였다.

“소주는 몰라도 막걸리는 여섯 병 정도는 마십니다.”

(결과는 나는 합격하고 그 사람은 떨어졌다.)

 

이러했던 나 자신도 나이가 들어가니 점점 챙겨야 하는 무언가가 많아졌다.

그중에 하나가 건강관리이다.

가까운 이의 수술 입원에 따른 현실적인 체감이 높아지는 점도 있었지만, 예전과는 다르게 음주 이후의 다음날이 점점 힘들어지는 까닭이었다. 나도 한때는 00동 쓰메끼리로 불리며 펄펄 날아 다녔던 시절이 있었는데 말이다.

 

날을 잡아 대장 내시경 예약 신청을 하였다.

하지만 다른 사람도 그렇듯 쉽사리 마음이 놓이질 않는데 무엇보다 과정에서의 번거로움 탓이었다.

병원 간호사는 상담을 마친 후 전처치용 세장제라며 백색 가루약이 들어있는 통을 내어 놓는다.

허걱~ 그런데 용량이 장난이 아니다. 무려 4L.

이게 무슨 맥주 피처병도 아니고.

“조금 쉽게 복용하는 방법은 없나요.”

나는 철없는 유치원생마냥 간호사에게 콧소리까지 섞으며 애교(?)를 떨었으나 원하는 대답은 돌아오질 않았다.

“저희가 여러 제품을 취급해 보았지만 그래도 이것이 제일 나아요.”

대한민국 남자에게서 대장암 추세가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이 아무래도 신경 쓰이게 하기에 그래도 어쩌랴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검사 전일 오후 6시부터 10분에 한 번씩 잔에 가득 채워 드세요.”

간호사의 이야기가 머릿속에 맴도는 가운데 운명의 시간이 드디어 다가왔다.

아마도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드는 기분이 이러하지 않았을까.

점심도 굶은 상태에서 심호흡을 하고 호기 있게 첫잔을 원샷 하였다.

레몬 맛이 나는 것이 예상보다 그리 나쁘질 않았다.

연거푸 잔을 들이켰다. 이정도 라면 예정된 시간 안에 임무완수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싸~

그런데 웬걸. 절반 가까이 복용하고 나자 서서히 반응이 찾아오기 시작한다.

뱃속이 스멀스멀 거리며 부글부글 끓게 하더니 화장실로 그대로 직행.

인위적으로 무언가 뱃속으로 들이밀어 외부로 빼내게 하는 이것이 사람을 참 미치게 한다.

세상사 모든 게 쉬운 게 없다지만 이런 것마저 힘들게 하다니.

 

하늘이 노란 가운데 마음을 다잡고 조금 더 들이켜 보지만 이젠 목구멍으로 넘어가기 전부터 울컥. 난국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 되나하며 남은 용량만 할 일없이 쳐다보노라니 여러 상념이 찾아든다.

‘계속 마셔야 되나.’

‘아직도 멀었는데 어쩌지.’

‘그냥 버리고 다 먹었다고 하면서 내일 병원 가서 구라를 칠까.’

‘의학이 발달된 이시기에 왜 꼭 내시경은 이렇게 원시적인 방법을 택해야 하는지.’

물로써 배만 점점 불러오는 가운데 속은 메스껍고 예정된 시간은 다가오고 복용량은 아직도 한참 남아있고. 아이고~

그러다 책에서 읽은 구절이 문득 떠올려 졌다.

그렇지. 인간의 뇌는 실제와 허상의 구분을 못한댔지.

마음을 다잡고 숨을 크게 내쉬며 상상의 나래로써 최면을 걸어본다.

‘나는 지금 상큼한 오렌지 주스를 마시고 있는 거야. 레몬 향기도 나는 것이 아이 시어.’

정신무장을 하고 다시 원샷에 도전 하였다. 그런데 이런~

역시 이론과 실전은 다르구나.

 

우여곡절 끝에 네 시간 만에 목표달성을 하였다.

화장실을 몇 번을 들락날락 거렸는지 다리가 후들 거리지만 그래도 고진감래(苦盡甘來) 끝에 광명을 찾은 듯하다.

기분 전환을 할겸 창문을 여니 아랫집에서 눈치도 없이 하필 이럴 때 된장찌개를 끓이고 있다.

염장을 저지르는 것도 아니고.

거기다 염치없는 배는 꼬르륵 으로 자동응답을 해대니.

그래도 안 된다. 내일을 위해서 참아야 하느니라.

IP *.117.112.102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692 [늑대27] 삶의 무대가 바뀐다 file [14] 강훈 2011.10.31 1923
2691 27. 타인을 위한 삶 file [6] 미선 2011.10.31 2109
2690 나비 No.27 - 당신 그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라 file [14] 유재경 2011.10.31 4871
2689 [Sasha] Prism 1 - 검은방 공작새의 꿈 file [15] [1] 사샤 2011.10.31 2869
2688 [Monday,StringBeans-#7] 나에게 가족은, 우리에게 가족은... file [10] 양경수 2011.10.30 3932
2687 #7. 가슴을 뛰게 만드는 일 & 여행 file [13] 미나 2011.10.30 2369
2686 단상(斷想) 84 - 세상 밝은 이름 smile file [3] 書元 2011.10.30 2282
2685 [Sasha] 그대의 꿈을 디자인하라 (10월 오프 수업) [2] 사샤 2011.10.25 2321
2684 [연구원수업] 그대의 꿈을 디자인하라. 강훈 2011.10.25 2191
2683 [양갱] 10월 오프수업 _ 내 인생의 아름다운 3대 풍광 [1] 양경수 2011.10.25 3365
2682 그대의 꿈을 디자인 하라 루미 2011.10.25 2034
2681 26. 이제 미래를 그려보자. 미나 2011.10.25 2213
2680 26. 오프수업 과제 - 그대의 꿈을 디자인 하라. file 미선 2011.10.25 2064
2679 나비 No.26 - 그내의 꿈을 디자인하라 [10월 오프 과제] 유재경 2011.10.24 3630
» 단상(斷想) 83 - 세상사 쉬운 게 없다지만... file 書元 2011.10.23 2771
2677 장미 8. 끝나지 않은 죽음 [3] 범해 좌경숙 2011.10.21 2364
2676 장미 7. 네 노래를 불러라 [6] 범해 좌경숙 2011.10.19 2350
2675 [Monday, String Beans-#6] 그 여자, 그 남자 file [13] 양경수 2011.10.17 4574
2674 당신이 좋아하는 일은 무엇인가요? [13] 루미 2011.10.17 2087
2673 25. 우물을 파기전에 지질조사 먼저 file [11] 미선 2011.10.16 24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