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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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첫 책의 소재는 '가족'과 '여행'이다. 가족이 함께 여행할 수 있는 아름다운 숙박 장소를 소개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이런 소재를 택한 가장 큰 동기는 독특하고 의미 있는 공간을 찾아가 그곳을 즐기고 좋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 언제나 내 가슴을 설레게 하기 때문이다. 나의 '보물지도(소망을 적거나 이미지를 붙여놓은 노트)'에는 언제나 여행이 빠지지 않았으며, 결혼 후 떠난 1년 정도의 인도 여행은 내 인생의 가장 멋진 추억으로 남아있다. 민호가 어린이집에 다니기 전, 내가 쉬는 날이면 일어나자 마자 묻는 게 "아빠, 오늘은 어디가?" 라는 질문일 정도였다. 민호가 4살이 되고서는 일 년에 한 번 정도는 비행기를 타고 가야 하는 먼 곳으로의 여행을 계획했다. 본격적으로 사진을 찍게 된 동기도 태어난 아기와 함께하는 여행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보다 근사한 곳을 향한 이동은 수백만 년 인류의 역사 속에서 유전자에 새겨진 인간 본능일 것이다.
이제 내 첫 책의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전에 대답해야할 질문이 생겼다. 소재는 정해졌는데 내 살아온 인생과 이 가족 여행 프로젝트를 꿰뚫는 키워드는 무엇인가. 다른 말로 내가 평생 공부하고 싶고, 온 몸을 던지고 싶은 주제는 무엇인가? 라는 것이다. 이 주제를 명확히 그려야 내 일생일대의 프로젝트가 일회적 이벤트로 끝나지 않고, 의미 있는 첫 책으로 갈무리되어 다음의 일로 연결되고, 또 나의 브랜드를 만들어 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선 '가족'에 대해서 개인적인 탐색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이 글을 시작했다.
결혼 전의 가족
20대의 나는 집을 하숙생처럼 드나들었다. 집은 매일 밤늦게 기어들어와 잠만 자고 나가는 곳이었다. 머리가 크면서 내가 추구하는 가치관과 부모님의 생각이 많이 틀리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동안 울타리가 되어준 집을 벗어나려고 부단히도 노력했다. 결국엔 대학교 2년을 마치고 다 늦은 가출을 했다. 가출이라고 하지만 부모에 대한 반항보다는 하고 싶은 일에 온 몸을 던져본다는데 목적이 있었다. 고시공부를 하는 선배의 자취방에 얹혀살기로 했다. 과외로 월 20만원을 받고, 그 중 5만원을 월세로 보탰다. 살만했다. 학교 식당에서 천원에서 천 오백원하는 밥을 사먹고, 좋은 선배들이 있어서 가끔 술도 먹었다. 학교에서 버스로 30분만 가면 되는 집에도 가끔 들어갔다. 어차피 하숙생처럼 지내왔던 터라 나도 부모님도 이전과 크게 다르게 이 상황을 대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부모님이 대단하게 느껴진다. 집놔두고 자취방에서 생활하며 집에서는 대화를 단절하다시피한 아들에게 크게 이러저러해라는 이야기를 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좋게 말하면 나의 독립을 인정해주신거고, 나쁘게 말하면 무관심하신 거였다.
내가 가출을 한 구체적인 이유는 학교 주변에 진행되고 있던 철거지역에 아이들을 돌보고 공부도 가르치는 공부방을 만드는 일을 하기 위해서였다. 신나게 그 일을 하고 그 해 가을 난 군대에 갔다. 군대에 다녀와서도 난 집이라는 틀을 벗어나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집보다는 학교, 동아리, 여자 친구가 우선이었다.
전환점
졸업과 결혼이라는 이벤트가 있었던 2002년은 개인적으로 생의 전환이 된 시점이다. 주변사람들의 시선에 신경 쓰기보다도 내 삶을 살고자 하는 의지가 더 강해졌고, 그것을 선택했다. 처음엔 부모를 바꾸려고 노력했었다. 내가 볼 때 어머니는 이기적인 짠돌이 아줌마였고, 아버지는 무심한 듯이 뒤에 숨어있는 삶의 의지를 상실한 아저씨였다. 아버지에게는 새로운 일에 도전해보시라, 어머니에게는 자신을 위해 투자를 하시라고 얘기하고 화도 냈었다. 부모가 바뀌어야 내 삶이 바뀌는 줄 알았다. 그러다가 그들에게 저항하느라 내 안에 내면화 되어버린 그들의 모습이 있음을 알아차리고 말았다. 내가 먼저 변해야겠구나. 이런 깨달음이 오자 부모님과의 심리적인 분리가 되었고, 변화가 일어났다. 두 분을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부모님은 나를 인정해주는 조력자이자 든든한 후원자로 변했다. 나의 시각이 바뀐 것 뿐이다. 내 삶의 진정한 독립은 그렇게 이루어졌다.
결혼 후의 가족
독립을 통해 가족은 벗어나야할 공간이 아니라 내가 가꾸고 지켜야 할 공간이 되었다. 극적인 전환이었다. 심리적인 독립을 했으니 경제적인 독립도 중요했다. 내 마음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생각과 취향을 가진 다른 이와 사는 법도 배워야 했다. 그런 면에서 아이를 낳기 전 아내와 함께한 긴 인도 여행은 큰 도움이 되었다. 우선 이 여행은 이상주의적 성향의 우리 부부를 땅에 발붙이도록 만들었다. 경제적인 것을 무시하고 살 수 없다는 생각은 안정적인 직장을 갖도록 했다. 나도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아보자는 꿈을 이루었다. 그런데 평범함 속에는 별게 없었다. 그냥 먹고 사는 게 다였다. 삶의 철학이 필요하지도 않았다. 직장에서는 기계의 부품처럼, 가정과 일상에서는 미디어가 만들어내는 대중의 모습으로 살아가면 모든 게 정해진 거였다. 다행스럽게도 아내와 난 평범함 보다는 독특함, 더 나아가 우리만의 위대한 삶의 모습을 꿈꿨다. 하고 싶은 일도 많았고, 이루고 싶은 것도 많았다. 욕심이라면 욕심이고, 삶의 이유라면 이유다. 그래서 난 다시 공부를 했다. 명상과 달리기를 통해 수련의 끈을 놓치지 않고, 방송대 문화교양학과를 시작했으며 사진을 배웠다. 아내도 상담심리학부를 다시 하며, 당진 지역의 시민단체 활동을 시작했다. 나의 공부는 지금의 변경연 연구원으로 이어졌고, 아내는 졸업을 하고 사회진입을 모색하고 있다.
가족은 내가 영향력을 발휘하는 최소한의 공간이다. 이제 이 영향력의 원을 넓히기 위한 발버둥이 시작되었다. Goo!선생님이 말씀하시듯이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내 세상' 하나를 갖기 위한 창조의 과정이 지금이다.
글을 맺으며
가족은 나라는 존재가 확장된 최소한의 공간이다. 나만 있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모든 선택에는 조율이 필요하고, 서로의 욕구를 조정해야 하는 복잡한 과정이 필요하다. 이젠 아이도 생겼고 6살이 되면서 본인의 주장을 인정해 주어야 할 때가 되었다. 적어도 민호가 독립할 때까지는 세 명이 한배를 탄 항해가 시작된 것이다. 물론 혼자 마음대로 하는 여행이 더 가볍고 자유로울 것이다. 하지만 혼자 은둔의 삶을 살 것이 아니라면 다른 이들과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다. 그런 관계를 훈련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가 '가족' 아닌가. 게다가 우린 서로를 비쳐줄 거울이 필요하다. 서로의 밑바닥 깊은 곳을 비춰주는 존재가 필요한 것이다. 공동체가 사라진 현대 사회에 가족만한 거울이 어디 있을까. 가족이 아니라면 친구라도 좋다. 우리에겐 다른 누군가가 필요하다.
선생님은 얼마 전 유끼 미옥선배의 글에 단 댖글에서 "모든 문명은 원시를 품고 있고, 사랑은 그 원시로 우리를 데려가는 열차이며, 모든 결혼은 그 원시 속 남녀의 동굴이니, 마주보고 서로 안고 자고 애 낳고 먹고 싸우는 것이다." 라는 글을 다셨다. 긴 울림을 주는 문장이었다. 가족을 통해 원시의 동굴이 펼쳐졌다. 그 속에선 벌거벗은 채 있어도 되고 서로 이해한다면 미친척도 용서가 된다. 이제 본래의 나를 확인하고 또 그로인해 타인을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빛이 될 수 있음을 확인했다. 동굴에서 빛이 새어나간다. 동굴 밖으로 확장해야할 순간이다. 동굴을 떠나 우리와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고, 하고자 원하는 다른 배들을 만나러 가야할 때이다. 이 망망대해에 분명히 우리처럼 무작정 여행을 떠난 이들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이 여행의 키워드는 무엇인가? 다른 배들을 만나서 무엇을 하려는 것인가? 아직 한 마디로 하긴 어렵지만 이 여행의 키워드는 '서로 개성을 가지고 자유롭게 살되 공존하는 것'이며, 다른 배들을 만나서 하고 싶은 것은 '소박한 파티' 일 뿐이다. 그리고 이 여행의 재료는 '가족', '여행', '집'이라는 공간, '파티' 그리고 '사진', '예술' 이다. 이것들이 부딪치며 만들어낼 아름다운 풍광들이 기대되는 시점이다.
<도종환 시인은 말했다.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2011, 사진/양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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