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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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방 공작새의 꿈 by Sasha
Brahms: Requiem
http://www.youtube.com/watch?v=MAnUk6MxXQ0&NR=1
[프롤로그]
혁명! 지지부진한 변화가 아닌 삶의 궤도를 바꿀만한 자신안의 혁명 그리고 주변의 세계에도 공헌할 수 있는 그러한 삶의 변화를 꿈꾼다. 오늘 예전에 썼던 지적혁명의 레퀴엠이라는 나의 컬럼을 다시 읽어보았다. 자신 안의 어둠을 밝히기 위해서 스스로 내면의 불을 켜고자 했던 철학자들처럼 나 역시도 그처럼 굳은 결심을 했던 의지가 엿보였다. 당시 다양한 철학자들과의 만남을 통해서 나는 스스로 내면의 어둠 속에 무지의 장막에 갇혀있던 자신을 넘어서서 빛의 세계로 그 지혜와 무궁무진한 긍정적 에너지의 세계로 나아가고자했던 것이 기억이 났다. 안타깝게도 얼마전에 큰 사고를 당해서 지금은 자리에 누워있는 상황이기는 하지만 그 깊은 밤의 시간을 보내고 나면 공작새가 날개를 펴듯이 그 화려한 레퀴엠을 울릴 준비가 되었으면 한다. 슬픔의 레퀴엠이 아닌 이제야 비로소 찾아온 마음의 평화와 진정한 자신과의 조우를 향한 마중 인사와 같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난 늘 예전부터 자신의 에너지를 창조적으로 활용하는 것에 관심이 있었다. 많은 이들이 얘기해주고 스스로도 어쩔 수 없이 인정할 수 밖에 없는 공감이라는 강점과 창조성이라는 관심 키워드를 통해서 누군가의 삶에 위안이 되고 치유가 될 수 있는 본보기이자 메세지가 되고 싶다. 스스로의 삶이 한 사람에게 혹은 이 세상 살면서 누군가에게라도 공헌이 될 수 있다면 그것만큼 기쁜 일이 어디 있겠는가. 늘 첫 책은 스스로에게 선물이 될 수 있는 책을 쓰라고 사부님께서 항시 말씀하셨듯이, 첫 책에서는 내 자신이 그 검은방으로부터 환한 빛의 세계로 한 걸음 나설 수 있게 도움이 되고, 자아 치유 프로젝트의 시간과 경험을 많은 이들과 나누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구체적으로 생각을 담을 그릇에 대해서는 생각을 해봐야겠지만 분명한 것은 지금의 이 시기가 삶의 큰 터닝 포인트가 될 것이라는 믿음이다. 나비가 번데기에서 나오기 위해 애쓰는 바로 그 과정을 지나고 있는 것 같다. 그렇게 믿고 싶다.
[검은방 공작새의 꿈]
밤에 잠이 오지 않는다. 창 밖에서 비추는 불빛이 불꺼진 검은방에 가녀린 모습으로 찾아든다. 고요한 그 어둠속 그림을 담기에 스마트 폰은 역부족이다. 아무리 기술이 발달한다고해도 이 사람의 눈을 따라올만큼의 실력은 아닌가보다. 하긴 사람의 눈과 같은 성능의 카메라가 등장한다고해도 무서울 것 같기는 하다. 그래도 지금의 심상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프레쉬의 힘을 빌린다. 순간 번쩍하고는 꿈같은 1초가 지나간다. 검은방 속에 깃들어 있던 공작새가 놀라서 파닥이며 창 밖으로 날아가는 것 같다. 밤은 아침을 품고 있고, 꿈은 현실을 품고 있다. 그녀는 그렇게 잠이 오지 않던 그 밤 빛에 놀란 공작의 파닥이는 화려한 꿈을 엿보았다. 어두워서 보이지 않았던 것은 어둠의 탓도 밤의 탓도 아니다. 자신 안의 믿음이 약했기 때문이다. 밤 속의 아침을 보지 못하면 꿈을 논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그만큼이나 그 밤 그 한 장의 사진은 약해져 있던 그녀에게 큰 위안이 되었다. 다시 꿈을 품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마음속에 숨어 있던 화려한 공작에게 손을 흔든다.
꿈처럼 지나갔다. 그 밤의 모습이 분명히 존재했었는데 지금은 아침의 햇살속에 증발하기라도 한듯 사라졌다. 하지만 그 뚜렷했던 환희의 기억은 잔상처럼 남아서 금방이라도 공작처럼 화려한 날개짓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환상속에서 깨어나자 날개가 돋으려고 아픈 것이 아닌 2주간 세발걷기 연습하느라 목발을 짚었던 겨드랑이가 쓰라리고 아프다. 이제 익숙해질만도한데, 매일의 힘에서 멀어져 있던 근육들이 아우성이다. 창문을 열고 길고 천천히 아침의 신선한 공기를 마신다. 환자의 특권이다. 바쁜 월요일 아침이 아닌 이토록 여유로운 월요일은 지난 개천절 이후로 처음인 것 같다. 공휴일이 아니거나 특별한 휴가가 아닌 이상 모든 월요일 아침은 서둘러 회사로 향하기 바빴는데 지금은 조용히 창 밖의 가을이 내려 앉은 자리도 볼 수 있고 원하는 만큼 글도 쓸 수 있다. 소시민적 천국을 만끽하고 있다. 여유있게 인사를 건넨다. 낙엽들에게도 뒷산에게도 구름한점 없는 맑은 가을하늘에게도. 창 밖에서는 누군가 낙엽쓰는 소리가 들린다.
'그냥 잠시 가을의 낭만을 만끽해도 좋을텐데 바로 아름다운 낙엽들을 쓸어버리는구나 쓰레기처럼.'
그리고는 그녀는 자신의 오른발을 내려다본다.
'하긴 내가 이 가을에 남긴 건 쓰레기보다도 더 무겁고 도움이 안되는 부상이 아니던가. 가을빛을 머금은 낙엽보다도 못하다.'
습관이 무서운지라 늘 아침이면 한 잔했던 따끈한 커피가 생각이 난다. 몸은 솔직하다.
부스스해진 머리를 묶고서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킨다. 솔직한 몸 여기저기서 자기에게 주의를 기울여 달라고 아우성치는 것이 들린다.
'넌 아직 환자야. 지금의 아침을 즐기는 것도 좋지만, 잊지말고 오른쪽발은 조심하라고. 지금도 헛디딜뻔했잖아.'
그렇다. 자신의 부상에 익숙할만도 한데 늘 자유롭게 쓰던 다리를 쓰지 못한다는 사실은 급할 때는 깜빡깜빡하기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수술 후 3개월간은 신경써서 자신의 몸을 소중한 사원 다루듯 아껴야 한다는 주의를 들었다. 아침에 눈을 떠 만끽하던 그 여유도 잠깐, 다시금 창살없는 감옥같다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 아니다, 어쩌면 스스로의 바램으로 얻어낸 축복의 시간이다. 스님들이 하안거에 들듯 바램처럼 휴식의 시간을 얻어낸 것일 수 있다. 어쨌거나 사원의 큰 기둥 하나가 무너졌다. 사원의 기둥이 무너져 내린 것은 어디까지나 사원지기의 탓을 해야할터이다. 게다가 사고 당일날 아침은 유난히 부정적인 에너지가 마음가득 불안함을 채워넣었던 것 같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이의를 달수도 없다.
사람이 너무 진실로 바라면 그것이 현실이 된다고 하던가. 그녀 앞에 닥친 지금의 이 현실이 마치 오랜 자신의 기도에 대한 응답만 같아서 정말 우주는 즉각적이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실 그녀는 오래전부터 회사를 그만두고 작가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가면서 조금씩 용기가 없어지다가 당장 회사를 관둔다고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라서 망설이고 있었다. 그러다가 워크샵 당일 날 아침 용기를 내어 어머니에게 카카오톡으로 마음의 통보를 한 것이다.
'엄마 미안해요 그런데 아무래도 회사는 아닌 것 같아. 난 아무래도 회사에서 성공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닌가봐, 무엇보다 행복하지가 않아요. 저 12월까지만 다니고 퇴사할게요.'
잠시 후 어머니로부터 답장이 온다.
'그래 딸아. 아침부터 가슴이 철렁내려앉는구나. 하지만 네 뜻이 그러하다면 우리 신중히 결정해서 정하자꾸나. 일단 오늘은 신나게 즐기고 오렴.'
지금 생각해보니 행복하지 않다는 딸의 문자를 보신 어머니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하지만 그녀 역시 그렇게 가벼운 성품의 소유자가 아니기 때문에 잠깐 마음이 아팠을뿐 더 힘들어하는 자신을 위해서는 큰 결심을 한 것이라 위안해본다. 우유부단함과 신중함은 종이 양면과 같다. 그녀는 자신의 선택이 신중한 것이였다고 믿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고는 뭐든지 최선을 다하는 그녀는 워크샵에서도 자신의 불안한 마음을 감추고서 어머니의 말씀대로 최선을 다해 즐겼다. 그리고는 부득이하게 사고를 당한 것이다. 지금 누워서 생각을 해보니 그건 어쩌면 그렇게 되려고 마치 각본이 짜여 있던 것 마냥 모든 일이 자연스럽게 돌아갔던 것 같다. 여자들 배드민턴 경기에서 혼신의 힘을 다하며 1승을 거둔 그때 심판이 난데없이 남자선수와의 경기를 주도한 것이다. 아주 잠깐 '아니 왜 나만 남자랑 경기를 해야하지? 그리고 이제 난 막 한 경기를 끝내서 너무 피로한데 조금 쉬었다가 하면 안될까?' 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바로 경기는 시작이 되었고 신명나게 남자 선수를 압도하던 순간에 갑자기 '우지끈'하는 소리와 함께 쓰러진 것이다. 정확하게 그 순간을 기억하고 있다. 뒤에서 누군가가 쇠몽둥이를 가지고 발목을 세게 내려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심지어 뒤에 세워져 있던 농구대가 넘어지면서 발목을 찍은 건 아닐까도 싶었으니 어느 정도의 고통이자 충격이였을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어찌되었건 가만히 있으면 통증이 있는 걸 잊을 수 있었고, 괜히 여러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까봐 워크샵 끝나는 그 다음날 응급실로 향했다. 신체 중에서 가장 튼튼하고 굵은 인대인 '아킬레스건 완전 파열'이 병명이였다. 답답하기도 하지, 사실 그 날 바로 가서 검사를 받고 수술을 했으면 더 좋았을것을 남들의 이목을 더 신경쓰느라 참았다니 바보같다. 어찌되었건 지나간 이야기는 해 보았자 본인만 괴로울 뿐 지금의 상황을 더 나아지게 할 수는 없다. 다만 감사한 일은 워크샵을 통한 부상이였기 때문에 모든 경비와 근태가 산재처리로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였다. 말하자면 유급 휴가나 다름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마치 이것이 자신의 바램을 하늘이 해석한 답변이 아닌가 생각을 해본다. 그렇게 회사를 관두고 싶거든 3개월의 편안한 너만의 시간 속에서 신중하게 생각을 해보라고 말이다. 잠시 회상에 젖어 있던 그녀에게 아버지께서 한 마디 하신다.
'동상걸릴지도 모르니까 쉬엄쉬엄하려무나.'
아버지께서 집을 나서시면서 다시금 당부의 말씀을 하신다. 늘 상처부위에 얼음찜질을 해야하는 그녀를 보며 걱정스러우셔서 하신 말씀이다. 13일전에 수술을 하고 지금은 심장보다 높이 다리를 두고 있어야 한다는 - 잘생겼지만 결혼하신- 의사 선생님의 말씀을 따라서 늘상 누워있어야 한다. 심장이 펄떡이면서 머리끝, 손끝, 발끝까지 굵은 동맥을 따라서 신선한 피를 공급하는데 상처부위에는 덜 가도록 하기 위함이란다. 욱씬거림을 줄이기 위해서 그렇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은 정상인처럼 서서 걷는 것은 잠깐 잠깐 화장실갈 때 뿐이고, 거의 대부분은 엎드려 있거나 누워있다. 2주가 다 되어가는데도 여전히 피가 발쪽으로 쏠리면 욱씬거린다. 다행히도, 의사 선생님의 말씀을 잘 들어서인지 발모양이 심각하게 부어있다가 이제는 어느 정도 왼발과 그 크기가 비슷해져가고 있다. 그것도 그럴만한 것이 인체 중에서 가장 굵은 인대인 아킬레스건이 완전히 파열이 된 것이니 그 고통이야 충분히 추측이 가능하고도 남는다.
삶은 늘 생각하는 것처럼 되어가서 지루하다가도 전혀 생각지도 못하는 일들이 튀어나와 놀라게도 만든다. 산다는 것은 그렇게 계획과 비계획이라 불리는 운명의 순간들이 씨실과 날실처럼 얽혀서 이어져가는 보자기같다. 그래서 저마다의 색상의 보자기를 통해서 그간의 삶을 한 눈에 보여줄 수 있는 것이리라. 하지만 특히나 이번 사고의 경우는 더더욱 예상하기 어려웠을 뿐더러 많은 사람들이 황당할 수 밖에 없었다. 어려서부터 온갖 운동은 안해본게 없을 정도로 계주 선수로 테니스 선수로 스케이트 선수로서 단련된 그녀가 이렇게 회사 워크샵 중 재미로 준비한 운동회에서 발목을 다치다니 모두가 어리둥절했던 것은 사실이다. 누구보다 과년한 딸의 수발을 들고 계신 부모님이 가장 놀라셨을 것이다. 지금 나이에 친구들은 아이를 낳는다고 병원을 찾는데 애인은 커녕 이 중대한 시기에 발목까지 심각한 부상을 입었으니 답답할 노릇 아니겠는가. 다 컸어도 어머니에게는 영원한 아기인가보다. 수술후나와서 고통을 호소하는 딸의 얼굴을 보며 가만히 눈물을 훔치시던 강하지만 한없이 여린 어머니의 모습이 생각나 문득 불효자란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자신만 생각하고 있던 그녀는 순간 이 불효를 어찌 갚을 수 있을 것인가, 다 큰 딸이 어머니의 눈물을 보고 있는 것은 쉬운일은 아니다. 더욱 더 이 상황의 무게에 어깨가 무거워진다.
가만히 누워서 할 수 있는거라곤 생각보다 많지 않다. 가까이에 있던 핸드폰을 만지막거린다. 그래도 헛되이 살지는 않았나보다. 소식을 듣고서 지인들이 격려의 문자와 놀랬다는 소식을 전해준다.
'엎어진 김에 쉬어가랬다고 액땜했다 생각해. 그냥 회사일은 생각하지 말고 푹쉬어.'
'어쩌다가 그랬어. 근데 넘 황당하고 웃음만 나온다 체육 소녀인 네가 아킬레스건 파열이라니 말도 안돼.'
'그럼 올해도 결혼은 패스인거야? 문병오는 사람 중에 잘 찾아봐. 언제 문병갈까?'
'의사 선생님이 그렇게 멋지다며 근데 결혼하셨다고? 인턴들을 한 번 잘 봐봐. 혹시 알아? 메디컬 로맨스하나 찍을지?'
'내가 아는 지인도 아킬레스건 파열로 무지 고생했다고 하더라. 그거 끝까지 조심해야 하는 병이래. 방심은 금물. 그간 바빴으니까. 하늘이 주신 시간이라 생각하고서 좀 쉬어.'
무슨 뜻이 있을까? 하필이면 그 순간 왜 그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응원의 메세지에 힘입어 그녀는 다시금 그녀의 미소를 되찾는다. 답답하던 시간의 압박이 이 소중하고 축복의 시간으로 둔갑한다. 그래도 늘상 마음의 수련을 게을리 하지 않았던 것이 도움이 되는듯 싶다. 삶에서 중요한 것은 삶을 대하는 태도가 아닌가. 같은 상황을 두고도 그 시간속에서 새로움을 찾아내고 밝은 미래를 찾아낼 수 있다. 마치 깊고 어두운 밤 속에서 아침이 동트는 새벽이 잉태되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의 심정으로 말이다.
그녀는 다시 머리를 정갈하게 빗어본다. 한 올 한 올 정돈되는 머리카락을 보면 마음의 결도 정리가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여전히 창 너머로 보이는 풍경은 곱다. 유독 올 가을은 더 아름다운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길이 2미터 50센티 폭 3미터 조금 안되는 창으로 느끼는 가을이라서 더 간절하기 때문이려나, 월요일 아침 방안 가득히 울려퍼지는 쇼팽의 녹턴의 효과인가. 은행잎은 더욱 노랗게 단풍은 더욱 붉게 다가온다. 달리의 그림속 시계처럼 축 늘어져 있던 열정들이 건조되어서 뽀송뽀송해지고 있다. 파열되어서 그녀를 쓰러뜨린 아킬레스건은 그녀에게 분명 전달하고 싶던 메시지가 있었을 것이다. 온 몸을 관통하던 그 우지끈 소리가 혁명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과도 같다. 하안거에 들어가신 스님의 어깨위로 내려치는 죽비소리 같다. 무엇을 깨달을 것인가. 지금까지 바쁘기는 했지만 무얼위한 움직이였는지 피상적이였다면 이제 그것을 찾아서 이어보라는 뜻인 것 같다. 산발적인 에너지가 아니라 프리즘을 통해서 모아져서 뿜어져 나오는 무지개빛을 위한 시간을 쓰고 싶어진다. 여전히 화장실의 문턱 10센티미터는 그녀에게 큰 허들이고, 계단을 오르고 내리는 것은 더욱 큰 도전이지만 다시 살아난 열정과 창조의 에너지가 이겨낼 수 있다고 용기를 준다. 그녀는 노트를 펴고 무작정 글을 써내려간다. 예전부터 글은 치유의 과정이라고 믿었기에 이 고요한 시간을 자신의 프리즘을 들여다보는 시간으로 삼고자하는 것이다. 펜 끝에서 빛을 모은다.
Keith Jarrett - 1985 - Standards Live - Prism
http://www.youtube.com/watch?v=FY1_fF7KS8s
*아킬레스건의 유래는 그리스 신화로부터 유래한다. 인간인 아킬레우스의 어머니는 지혜의 여신 '테티스'인데, 자신의 아들을 발뒷꿈치를 잡고 스틱스(저승을 돌아나간다는 강이름)강에 담구었다 빼서 반신반인으로 만들었다고 유래하여 발뒷꿈치만 인간이고 나머지는 신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아킬레우스의 유일한 약점이 발뒷꿈치가 되었고 그 후로 누군가의 치명적인 약점을 아킬레스 건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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