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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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이면 나이 마흔이 된다. 18년은 학생으로 살았고, 14년은 회사원으로 살았고, 1년이 조금 안 되는 시간은 자유인으로 살았다. 또한 28년은 미혼자로 누군가의 딸로 살았고, 11년은 기혼자로 누군가의 엄마로, 며느리로, 그리고 아내로 살았다. 40년이 조금 모자란 그 세월 동안 나를 움직이는 에너지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단연코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였다.
나는 왜 인정받고 싶은가? 아마도 그 시작은 아버지로부터였던 것 같다. 완고하고 고지식한 아버지는 당신 아버지의 그런 태도를 못마땅해하셨지만 그 모습을 그대로 닮으셨다. 아버지는 항상 할아버지가 ‘네 까짓 놈이 뭘 아냐? 시키는 대로 해라’라고 하셔서 부아가 치밀었다고 하시지만 당신도 자식들에게 똑같이 하셨다. 거기에 이 말도 덧붙이셨다. ‘자식 잘못 되길 바라는 부모가 어디 있으랴, 다 너 잘 되라 하는 말이니 들으라’
그가 나를 위해 심사숙고해 만들어준 옷은 ‘교사 자격증을 가졌지만 남편 잘 만나 집에서 살림하는 현모양처’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은 아버지의 방식으로 가능한 큰 딸에 대한 최대의 바람이었다. 아버지가 알고 있는 가장 좋은 여자의 직업은 교사였고, 당신 딸이 사회적으로 인정받으며 큰 고생하지 않고 평탄하게 살길 바라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아버지가 만들어 준 옷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버지가 여동생에서 만들어 준 의사 가운과 남동생에게 만들어 준 판사 법복에 비해 나의 옷은 너무나 초라했다. 나는 아버지가 다른 형제들에 비해 나에게 너무 적은 기대를 하고 있는 것이 서운했다. 그리고 그에게 인정받고 있지 못하다고 확신했다.
아버지는 나와 여동생에게 이런 말을 하곤 했었다.
“나중에 너희들 시집가서 내가 찾아가면
그럴 거다. 재경이는 ‘아빠, 밖에 나가봐야 그러니 집에서 먹어요.’하면서 찌게 끊이고 나물 무칠
거다. 그런데 재옥이는 이럴 거다. ‘아빠, 우리 귀찮은데 밖에 나가서 맛있는 거 사먹어요.’하면서 나가자고
할거다.”
나는 아버지의 말을 듣고 생각했다. ‘역시 아버지는 동생에게만 기대를 하는구나. 나는 대충 시집 보내 부엌데기로 살길 바라시는구나. 참으로 서운타’ 대학을 졸업하고 14년 동안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나는 아버지에게
내가 번 돈으로 무언가를 해드릴 때마다 속으로 우쭐했다. ‘거 보세요,
아버지. 아버지가 틀리셨어요. 저 부엌데기 아니에요. 이렇게 돈 벌어 아버지께 좋은 거 사드리잖아요.’
내 인생의 전반기는 아버지로부터의 인정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의 역사였다. 대학 진학부터 시작된 아버지와의 갈등은 결혼에 이르러 최악의 고비를 맞았다. 나는 교대에 진학하지 않았고 아버지가 원하는 ‘사’자 사위를 데려오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대학 졸업부터 취업, 그리고 직장생활을 하면서 있었던 어려움들에 대해서 아버지에게 입도 뻥끗하지 하지 않았다. 또한 아버지의 바람대로 결혼하지 않았기에 결혼 후 있었던 수많은 우여곡절을 친정에 하소연하지 않았다.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 그것의 근원은 어디일까? 어린 시절로 돌아가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나는 삼남매의 맏이다. 칠남매의 맏이인 아버지는 대를 이을 아들이 필요했고 엄마는 그 아들을 기필코 낳아야 했다. 그래서 내가 태어난 후 여동생 하나와 남동생 하나가 각 두 살 터울로 세상에 나왔다. 나는 딸이었지만 환영 받는 존재였다. 그런 말도 있지 않은가? ‘큰 딸은 살림 밑천이다’ 나는 살림 밑천의 역할을 할 정도로 어려운 집안에서 자라지는 않았지만 동생들을 잘 보살피고 부모님 말 잘 듣는 큰 딸의 역할은 똑소리 나게 해내었다. 엄마는 나의 어린 시절을 다음과 같이 회상하신다.
“네 언니는 하루 종일 입은 옷에도 티끌
하나 묻지 않았어. 아주 깨끗했지. 엄마가 시장 다녀올 테니
동생들 잘 보고 있어라 하면 틀림없이 그렇게 했지.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어. 내가 시장에 가면서 ‘누가 문을 열어 달라해도 절대 열어주지 마라’ 했거든. 그런데 얼마 안 있어 옆집 아줌마가 와서 초인종을 누른
거야. 아줌마가 아무리 문을 열어 달라해도 언니가 그랬대. ‘우리
엄마가 문 열어 주지 말랬어요.’”
고지식한 것으로 치자면 나도 우리 아버지 못지 않다. 그런 모습이
어릴 적부터 있지 않은가? ‘장녀 콤플렉스’ 이것이 나의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의 근원일지 모른다. 동생들에게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과 부모님의 기대에 어긋나면
안 된다는 생각들을 나는 어린 시절부터 가지고 있었나 보다.
학교 생활은 어떠했나? 나는 항상 모범생이었다. 숙제는 꼭 해가야 하는 것이었고 결석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수업시간에는
맨 앞줄에 앉아 선생님의 말씀에 집중했고 공부도 열심히 했다. 시험이 가까워오면 내 노트는 누구나 빌려가고
싶은 족집게 과외 선생이요, 요점 정리집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에는 전교 어린이 부회장으로 당선되었고, 중학교 때에는 교지편집위원에, 고등학교 때에도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어떤 감투든 쓰고 있었을 것이다. 학급
반장부터 시작해 대학 때는 과대표까지, 독일철학 연구회 회장까지 그룹의 리더 역할을 내게 낯선 것은
아니었다. (지금도 7기 연구원 웨버를 하고 있지 않은가?)
작년인가 아이들의 지문 검사를 한 적이 있었다. 지문으로 적성검사를 한다는 것이 다소 생소하게 생각되었지만 검사 결과를 신뢰할만 하다는 지인의 권유로 하게 되었다. 큰 아이의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언어능력이 뛰어나며 남들에게 주목 받고
싶은 욕구가 큼. 부모님을 비롯한 주위 사람들로부터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이며 예민한 성격임. 장래 직업으로는 아나운서나 변호사 등이 추천됨.’
큰 아이는 내가 보기에도 그렇다. 수줍음을 타기도 하지만 동시에 남들에게 주목 받기를 좋아한다. 예를 들면 가수나 개그맨과 같은 연예인이 되고 싶다고 하기도 하고 자신의 장기를 뽐내는 TV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싶다고 한다. 말도 조근조근 잘 한다. 가끔 열 살 어린아이의 생각이라고 하기에 놀라운 말을 하는 경우가 있다. 내
딸이니 내 성향을 많이 물려 받았을 것이다. 나 또한 주목 받는 것을 좋아하고 말과 글에 재능이 있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이러한 나의 성향과 재능은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감출 수 없었다. 홍보 일을 하면서 내가 만든
홍보제안서를 사람들 앞에서 발표할 기회가 많았다. 아이디어를 짜내어 제안서를 만드는 일을 쉽지 않았지만
내가 그 내용을 발표하는 동안 사람들의 시선을 받는 것은 즐거운 경험이었다. 내가 만든 보도자료가 토시
하나 바뀌지 않고 활자화되는 것을 보는 기쁨도 만끽할만한 했다. 10년간의 홍보 경력을 마감하고 제약
영업에 뛰어 들었을 때도 다르지 않았다. 의사들을 모아 놓고 진행하는 약품 설명회에서 나는 ‘약사도 아닌데 약에 대해서 잘 아는 영업사원’으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그리고 작년 여름, 500명이 넘는 세일즈와 마케팅
직원을 대상으로 한 영업회의에서 새로 도입되는 소프트웨어를 소개하며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짜릿한 경험을 했다. 스폿
라이트가 나를 비추고 천 개의 눈이 나를 주시할 때, 이 세상은 내 것이었다. 한번도 경험하지 못했지만 환각상태에 이르면
이런 느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황홀한 기분이 지금도 생생히 느껴진다.
다시 원래의 문제 제기로 돌아가보자. 나의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의 근원은 무엇인가? 지금까지의 고찰에 따르면 장녀라는 환경적 요인에 말과 글에 대한 재능을 기반으로 한 주목 받고 싶은 성향이
더해져 만들어진 것이라 분석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이러한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긍정적인 작용을 하기도 하지만 부정적인 결과 또한 초래한다는 것이다.
직장생활 11년 차부터가 그랬다. 그 전 10년까지는 괜찮았다. 크고 작은 조직에서 나는 키 플레이어로 인정받았고
괄목할만한 성과도 만들어 내었다. 인정의 맛에 푹 젖어 신바람 나는 인생을 살았다. 그렇게 살다 보니 어느 순간 욕심이 커졌다. 더 빨리, 더 높이 올라 사람들을 내려다보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영업에 뛰어
들었다. 높이 올라가려면 홍보 경력 만으로는 부족했다. 세일즈와
마케팅 경력이 필요했다. 나는 자신이 있었다. 내 방식으로
일해도 승산이 있을 거라 확신했다. 하지만 나는 너무 조급했다. 새로운
일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그저 ‘성공에 필요한 경력’이었다. 그러니 그 과정을 즐길 여유가 없었다. 영업에서 성과를 내려면 기술도
필요하지만 느긋하게 기다릴 줄 아는 베짱이 있어야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영업한지 1-2년 내에 성과를 내겠다고 생각한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었다. 그
때 내가 좀 더 그 과정을 즐기고 성과에 대해서 초연할 수 있었다면 나는 그 일을 오래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쫓기듯 내근으로 복귀해서는 ‘관계’가 문제였다. 연구원 동기인 경수가 나에게 준 조언에서 그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재동누님은 어디서든 리더의 자리에 있을
사람입니다. 남들도 알아볼 것이고 스스로도 그게 편할 것입니다. 허나
비슷한 기질의 사람은 질투의 마음을 품을 것입니다. 그들에게 존경을 강요하지 말고, 알아봐주는 사람들에게 힘을 쏟으면 에너지의 분산을 막을 수 있겠지요!’
그랬다. 호랑이 두 마리가 우두머리일 수는 없었다. 나는
그에게 나의 권위를 내세워 복종과 존경을 강요했지만 그는 만만치 않는 상대였다. 사실 그는 나와 똑같은
인간이었다. 권위 따위에 복종할 인간이 아니었다. 그의 모습을
보면서 나의 모습을 반추해 볼 수 있었다. 관계에서 실마리를 풀지 못하자 나는 점점 지쳐갔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인간관계가 내 발목을 잡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내가
이 문제를 풀어내지 못하는 것을 인정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현실이었고 내 능력의 한계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건강의 적신호가 이어졌고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된 나는 회사를 그만두고
안식년 휴가를 선언했다.
자, 정리해보자.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는 나의 성장과
발전을 위한 추진력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반대로 나를 너무나도 세차게 몰아세워 지치게 만드는 악역을
하기도 했다. 그럼 결론은 하나다. 그 에너지의 주인이 되어
이를 긍정적으로 제어하고 활용하는 것이 관건일터인데 나는 지금 그것을 하고 있는가?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에 대한 이야기가 여기에서 끝날 수는 없을 것 같다. 안식년을 선언한 지금도 나는 그 욕구에 쫓겨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하고 있으니 말이다.
정신과 전문의 이무석 박사는 그의 저서 『30년 만의 휴식』에서 경쟁심이 유난한 사람은 그 내면에 ‘시기하는 아이’라는 무의식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시기하는 아이는 다른 형제보다 부모로부터 더 많은 사랑과 인정을 받고 싶은데 그렇지 못할 때 생겨난다. 이러한 비교의식은 형제를 넘어 타인에게 투사되고 남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지고 싶은 욕심과 그것을 통해 남을 지배하고 싶은 지배욕구로 발전된다. 이러한 지배 욕구는 자아존중감이 부족한 것의 역반응이다. 스스로에 대한 평가에 자신이 없는 상태에서 타인들이 동료를 높이 평가할 때 내가 작아져 화가 난다는 것이다.
여동생은 나보다 공부를 월등해 잘했다. 경시대회에 참가해 상도 타오고 초창기 특목고인 과학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어린 시절의 나는 동생보다 성적이 좋지 못한 것에 대해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나는 어느 한 순간도 부모님의 인정을 받지 못한 적이 없었다. 나는 언제나 믿음직스러운 큰 딸이었다. 나는 아버지의 딸로 태어나는 순간 이미 아버지로부터 인정받았다. 나에 대한 기대가 적었던 것이 아니고 그것은 별로 많이 배우지 못한 아버지의 소박한 바람이었다.
저자는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다른 사람보다 나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스스로 소중한 존재임을 깨달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나는 남과의 비교를 통해 존재의 이유가 들어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인 것만으로도 존재의 이유가 충분하다는 것이다. 장단점을 가진 자신의 모습 그대로를 인정하고 사랑해 주어야 한다고 충고한다.
나는 『인정받고 싶은 여자의 휴식』이란 책을 쓸 것이다. 나의 책은 나와 같이 인정받기 위해 가정에서 직장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여성들에게 도움이 되는 책이 될 것이다. 나는 그녀들이 우선 자신을 자신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랑하는 것부터 시작했으면 좋겠다. 이 세상에 단 하나 뿐인 나, 그 모습 그대로 자신을 사랑하는 것, 그것이 인정받고 싶은 여자가 잠시라도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첫 걸음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인정받고 싶은 여자, 당신 그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라.
당신은 아름다운 사람이다. 매사에 열심이며 사람들에게 의지가 되는 존재이다.
당신은 충분히 사랑 받을 자격이 있다.

남들을 잘 인정해 주는 사람이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를 바탕으로
다른 이들의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를 잘 알아차리고 칭찬해 주는 모습이었어.
그게 언니가 가진 하나의 강점이라는 사실을 깊이 느꼈어.
언닌 앞으로도 아이들이 가진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를 잘 채워 주는 엄마일꺼야.
그렇게 인정받고 자란 아이들은 건강하게 자라겠지
언니를 옆에서 보며 많은 것을 배운 여행이었어.
누구보다 먼저 도착하고 누구보다 늦게 떠나는 언니의 그림자 같은 모습도 보았지
언니가 우리를 리드하고 있는 것에 깊이 감사함을 느낀 여행이었어.
언니에게 밥을 한끼 사줄 수 있어서 매우 감사한 여행이었고....ㅋ

인정에 대한 욕구. 내 여동생도 나보다 공부를 잘 했거든. 울 엄마가 혀를 내 두를 정도로 독하게 공부하는 녀석이지.
그냥. 쉬면서도 끊임없이 일을 만들어서 하는 언니를 보니 정말 언니에게 꼭 맞는 몸도 마음도 편안할 수 있는 휴식을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지난주 사부님이 쓴 댓글을 보고 울컥했다는 언니 말에 언니가 그동안 많이 힘들었구나..라고 생각했거든.. 많이 힘들고, 지쳐있을 때, 사부님이 그런 언니를 알아주셔서 언니가 더 큰 위안을 받은 것 같아서 말이지..)
언니는 존재만으로도 동기들에게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