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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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유롭게 살고 싶었다. 하지만 늘 내 안에 그 자유를 가로막는 하나가 존재하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타인의 시선이었다. 어떤 일을 하던지 사람들 앞에서 작은 실수도 보이고 싶지 않았던 나는 무엇이든 모든 것이 완벽하게 갖춰진 상태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늘 준비만 하는 삶을 살게 되었다. 채워도 채워도 모자란 것이 보였다. 실수하면 어쩌지? 라는 두려움 때문에 섣불리 발을 내딛지 못하고 있었고, 무언가를 배우고 있어도 전혀 쌓이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아무리 지식을 쌓더라도 그것을 실전에서 활용해 보지 않는다면 내 것으로 흡수될 수가 없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었다. 어느 광고의 문구처럼 나는 춤을 글로만 배우려 하고 있었던 것이다. 거기다 나는 글로 배운 춤으로 한 번에 댄싱 퀸이 되고 싶어 하였다. 단번에 뭔가 큰 결과를 내고 싶었기에 계속 무언가를 배우는 데만 집착하게 되었고, 무엇이라도 하고 있지 않으면 뒤쳐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려웠다. 내가 시시한 존재로 보일까봐... 사람들 앞에서 실수를 하게 되면 그것으로 모든 게 끝장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고, 또한 단번에 큰 것을 기대했기에 어떤 실수도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나를 강하게 누르고 있었다. 단계를 밟아 가야만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는 당연한 과정을 뛰어넘고만 싶었다.
요즘 전부터 배우고 싶었던 악기 하나를 배우고 있다. 레슨을 받을 때도 나는 이 같은 성향이 그대로 드러난다. 선생님이 한 명씩 돌아가면서 봐줄 때는 어찌나 긴장이 되는지 손가락에 너무 힘이 들어가 악기를 튕기기도 힘들다. 배우는 그 순간에도 어설픈 내 모습이 너무 부끄러웠다. 한 번은 선생님이 아예 내 앞에 의자를 끌어다 놓고 앉는다. 너무 위축되어 있다며 자신 있게 치라고 틀리더라도 계속 치는 것이 중요한 거지 정확하게 키를 잡으려고만 하면 늘지 않는다고, 어깨를 쫙 펴고 몸을 의자에 기대라는 말과 함께. 연습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나는 자신 있게 칠 수가 없었다. 거기다 내 맞은편에 앉은 사람은 왜 그렇게 잘 치는지. 내가 칠 때는 이상한 소리가 나는 것 같은데 그 사람이 치면 너무 소리가 좋았다. 그게 의식될수록 손가락엔 점점 힘이 들어갔다. 그래도 선생님의 그 한마디가 효과가 있었는지 그 다음부터는 ‘나도 모르겠다. 일단 치고 보자’라는 생각이 들었고, 코드가 제대로 잡히지 않아도 일단은 다른 사람들의 속도에 맞춰 쳐 나갔다. 그러다 보니 손가락에 잔뜩 들어가 있던 힘도 점점 풀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사실 나는 그 짧은 레슨 시간에도 잘 치는 사람이 나를 보고 ‘쟤는 왜 저렇게 못 치냐?’ 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사람들은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나를 그렇게 주시하고 있지 않은데도 말이다. 설사 그 사람이 그렇게 생각한다고 해도 어쩌겠는가? 내가 타인의 생각까지 조절할 수는 없는데...
내가 원했던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것의 의미는 타인에 대해 신경 쓰는 것만큼, 타인의 시선으로부터의 자유였던 것이다. 어느 공간에 위치하건, 사람이 얼마나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나 이외에 단 두 사람만 더 있어도 타인을 향한 안테나는 자연스럽게 작동하였다. 이러니 삶이 피곤할 수밖에 없었다. 왜 그렇게 나에게는 타인의 시선이 중요했던 것일까? 아마도 스스로에 대해 자신이 없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자신을 당당하게 여기지 못하기 때문에 타인도 내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으로 나를 판단할 것이라 여기고 있었다. 결국 문제는 나를 둘러싼 타인이 아니라 내가 만들어 놓은 허상의 시선이었는지도 모른다. 순간 순간을 나에게 집중하기 보다는 타인의 시선에 집중하기 때문에 하고 있는 일에 제대로 몰입하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쌓인 시간은 후회로 돌아올 뿐이었다. 그 다음에 남은 일은 시간을 그렇게 보낸 나를 자책하는 일이었다. 있지도 않은 시선을, 그것도 내가 만들어 놓은 시선으로 나를 끊임없이 괴롭히고 있는 꼴밖에 되지 않았다. 내가 그토록 원했던 자유는 다른 어떤 환경적인 이유가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 놓은 틀로 인해 누릴 수가 없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내가 나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느냐였다.
얼마나 시간을 들여야 스스로가 원하는 완벽함에 도달할 수 있을까? 아마 그런 순간은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는 완벽하기를 원했다기 보다는 현실에서 부딪치고 단계를 하나하나 밟아 올라가는 과정을 그저 앉아서 지식을 채우는 것으로 실전에서의 노력을 대신해 뛰어넘어 ‘짠’하고 멋진 모습으로 나타나기를 꿈꿔왔는지도 모른다. 손에 단단히 쥐고 있는 완벽함을 버린다면 시작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만은 않을 것이다. 아무리 완벽한 상태라 하더라고 시행하다 보면 결점은 드러나게 마련이다. 그 결점을 보완하는 과정에서 진정한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 아닐까? 또한 어떤 일을 하게 되던지 그 곳에는 뛰어난 사람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 사람을 마냥 부러워하면서 자신의 부족한 능력을 부끄러워 할 것이 아니라 그를 인정하고 자신을 수정하는 것이 어느 모로 보나 나에게 이득이 되는 일이다. 부러워하며 없는 자신의 능력을 한탄하면 그 시간은 후회로 돌아올 것이 뻔하다. 또한 늘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세상은 점점 더 빠르게 변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엄청난 변화의 속도 안에서 선두주자는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 지금의 꽃방석이 미래를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 또한 내가 지금 방석 모양도 갖추지 못한 천 쪼가리를 깔고 앉아 있다고 하여도 미래의 변화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꽃방석 이상의 것을 깔고 앉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그토록 원했던 자유의 가장 큰 장벽이 나였던 것처럼 현실의 장벽을 넘을 수 있는 열쇠는 전혀 다른 공간에 숨겨져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손에 이미 쥐어져 있는지도 모른다. 바로 그것을 발견한 그 순간이 변화의 시작이 되어 줄 것이다.
지금 자신이 이것만은 절대 놓지 못한다며 단단히 쥐고 있는 무엇인가? 그것이 절대적으로 꼭 필요한 것인지 살펴보라. 어쩌면 그것이 자신을 변화하지 못하게 발목을 가장 단단히 붙들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니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