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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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한 일중독자였던 잭 웰치가 그의 책 『위대한 승리』에서 일과 삶의 균형에 대해서 논하는 내용을 듣고 있자면 서글픈 현실에 입맛이 씁쓸해진다. 그가 1961년에 화학공학 박사과정을 마치고 GE에 입사해 1980년에 최고경영자이자 회장이 되고 2001년에 제프리 이멜트에게 회장 자리를 물려주고 은퇴할 때까지 그는 ‘일’이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일’이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사무실이 아닌 다른 곳을 가고 싶어 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는 당신의 상사가 일을 제대로 하는 사람이라면 당신에게 당신의 일을 매우 신나게 느끼게 함으로써 당신이 개인적인 생활에 상대적으로 덜 끌리게 만들 것이라 단언한다. 당신이 만약 조직에서 일과 삶의 균형을 공개적으로 요구하고 지속적으로 문제해결을 요구한다면 당신은 이중적이거나 헌신적이지 않거나 혹은 무능력하거나 아니면 이런 특성들을 모두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 분류될 거라고 경고한다. 어떤가? 창조성이 무엇보다 중요한 21세기에 시대에 뒤떨어진 생각이라고, 잘 놀아야 일도 잘 할 수 있다고, 내가 다니는 직장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소리 높여 말할 수 있는가?
이 책에서 그는 ‘나만 빼고 모두가 행복해(everyone’s-happy-but-me) 신드롬’이 일과 삶의 균형에 관한 것들 중에서 가장 치명적인 것이라고 강조한다. 유능한 사람들은 완벽한 일과 삶의 균형을 만들어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직장과 가정에 충분히 배정하고 한 두 군데의 자원봉사 조직에까지 배정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 완벽한 계획이 정작 그 당사자에게는 만족을 주지 못하고 정신 없고 공허하고 ‘내가 왜 이러고 사나’하는 생각을 들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는 또한 이른바 ‘손톱 끝으로 매달려 있는데 지쳐버린 사람들’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이는 겉으로는 완벽해 보이는 사람들이 경력에 대한 욕망과 가족의 요구 사이를 오가다가 갑작스럽게 멈춰 서고는 급격한 변화를 맞는 사례를 말한다.
나는 14년간의 직장생활에서 나만 빼고 모두가 행복해 신드롬에 빠진 손톱 끝으로 매달려 있는데 지쳐버린 여자들을 많이 보았다. 아니 사실 나 자신도 그런 여자들 중 하나였다. 남자는 결혼이 취업과 승진에 플러스 요인이지만 여자에게는 그 반대다. 그래서 사회적 야망이 큰 여자들은 ‘저는 일과 결혼했답니다’라고 눈을 찡긋하며 말하기도 하지 않은가? 하지만 많은 여자들은 사랑에 눈이 멀어 또는 남들 다 하니까 나도 해야지 하는 생각에 결혼이라는 고난의 굴레를 쓰고 만다. 이어 임신과 출산, 육아라는 큰 산을 맞닥뜨리고 나면 여자들은 선택의 기로에 선다. 1차 관문이다. 아직도 많은 수가 이 관문에서 탈락한다. 남편이 ‘네가 벌어봐야 얼마나 벌겠니. 그냥 애나 키워라’는 말에 못 이기는 척 주저앉기도 하고 내 아이만은 내 손으로 제대로 키우고 싶은 욕심이 발목을 잡기도 한다. 그만두고 싶던 차에 잘 되었다며 영원한 직장인 가정에 안주하게 된 것을 내심 기뻐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1차 관문을 통과한 여자들은 성취욕구가 강하거나 ‘돈’이 필요한 경우들이다. 이들은 젖먹이 아이를 조선족 아줌마나 친정엄마 혹은 시어머니에게 맡기고 억척스럽게 회사에 다닌다. 지금은 아이가 어려 힘든 거라고,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거라고 위안하며 하루하루를 버터 낸다. 이들의 나이가 30대 중반을 지나면 직장 경력은 10년이 넘어 과장 직급을 달고, 조직에서는 실무능력 이외에 ‘그 무엇’을 더 갖추어야 팀장으로 진급할 수 있으며, 아이는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 입학해 엄마의 손길이 점점 더 필요해지고(받아쓰기 60점을 받아오는 날은 더욱!), 이에 반해 기억력과 체력은 하루가 다르게 급강하 하는 상황이 도래한다. 하루하루가 정신 없이 지나가는데 회사에서는 능력 있는 직원으로, 집에서는 현명한 아내이자 자상한 엄마의 가면을 쓰고 고군분투하게 된다. 회사에서는 애 엄마라 늦게까지 일을 시키기도 장기간 출장을 보내기도 부담스럽다는 상사의 푸념을 들어줘야 하고, 집에서는 ‘내 친구 엄마는 집에서 맛있는 간식 만들어주는데 엄마는 왜 맨날 회사에 가냐’는 아이의 하소연을 들어 줘야 한다. 직장과 가정이라는 두 개의 접시를 아슬아슬하게 돌리다 보면 그야말로 손톱 끝으로 낭떠러지에 매달려 있는 느낌이 드는 날이 있다. 잠을 줄이고 시간을 쪼개 쓰며 일하고 살림한 덕에 직장 상사와 남편, 아이들은 나에 대해서 만족하는데 정작 내 삶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하는 생각이 불쑥불쑥 고개를 쳐든다. 2차 관문이다. 겨우겨우 버티던 여자들이 마흔 고개를 앞두고 또 다시 선택의 기로에 선다.
나는 그 갈림길에서 나에게 1년간의 안식년을 선물하기로 결정하고 휴식을 선택했다. 나만 빼고 모두가 행복한 상황을 내가 행복한 상황으로 바꾸고 나의 삶에 손톱 끝으로 매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삶을 두 손 가득히 담을 수 있기를 희망했다. 나는 안식년 휴가 동안 하고 싶은 일을 10가지를 노트에 적었고 내 시간 모두를 나와 내 가족을 위해 사용했다. 나는 책을 읽고 글을 썼으며 아이들을 위해 요리를 했다. 아이들의 얼굴에 조금씩 살이 오르면서 나의 삶도 기쁨과 감탄이라는 것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바싹 메말랐던 감성이 살아나며 살아 있음에 감사하고 삶에 기뻐하는 나날을 보내게 되었다. 그러면서 나는 고민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내 삶을 행복하고 충만한 삶으로 일굴 수는 없을까? 예전처럼 헐떡이는 삶을 살고 싶지는 않다. 속도보다는 방향에 충실한 삶을 살고 싶다. 좋은 계절에 여행을 떠나고 좋은 구절을 읊으며 내 삶에 기름칠을 하고 싶다. 하지만 전업주부로 평생을 살고 싶지는 않다. 일과 삶의 균형을 넘어 일과 삶이 하나가 될 수는 없을까?
나는 아직도 세속적 욕심을 버리지 못했다. 나는 돈을 많이 벌고 싶다. 명품 백이나 외제 화장품에는 별 관심이 없지만 남편에게는 외제차를, 시어머니에게는 아담한 집 한 채를 선물하고 싶다. 내 이름으로 된 건물 하나를 사서 어려운 여성기업인에게 무료 대여도 해주고 스승님을 기념하는 ‘구본형 홀’도 하나 만들고 싶다. 나는 간소한 삶을 원하지만 돈 때문에 비굴해지기는 싫다. 후배들을 위해 망설임 없이 카드를 꺼낼 수 있는 여유가 있으면 좋겠다. 나는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사람이 되고 싶다. 잘 정돈된 내 방을 가지고 반짝이는 회사 차를 모는 임원이 되겠다는 야망은 버렸지만 한 남자의 아내, 아이들의 엄마라는 이름으로는 만족할 수가 없다. 내 이름을 걸고 하는 일이 하나 있으면 좋겠다. 하지만 나는 일을 위해 삶을 희생하고 싶지는 않다. 한 때 나는 그런 삶을 살았고 그 때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나는 삶의 여유를 즐기며 내 속도로 걸어가고 싶다. 그러려면 어찌해야 하는가? 이 까다롭고 이율배반적인 욕구를 어떻게 채울 수 있을까? 나는 아직 그 해답을 찾지 못했다.
하지만 이것 하나는 알겠다. 다른 사람을 위한 삶을 사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마라. 나만 빼고 모두가 행복한 삶이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손톱 끝으로 매달려 있는 삶에서 어떤 기쁨을 찾을 수 있겠는가? 당신
자신을 위한 삶에 집중하라. 그것이 일이든 가정이든 말이다. 당신이
일을 통해 자신을 완성할 수 있는 인간이라면 그렇게 해라. 당신이 가정에서의 시간을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는 인간이라면 그렇게 해라. 일과 삶의 균형을 통해 두 마리 토끼를 잡고 싶다면 그렇게 해라. 하지만 당신 자신을 위한 삶을 살아라. 그것이 당신이 맞을 죽음에
대한 예의다.

훔.. 언니 나도.. 이렇게 살고 싶다.... "나만 빼고 모두가 행복해?" 가 아니라 2NE1 "내가 젤 잘나가"의 패러디 버전 "내가 젤 행복해"가 될 수 있기를..
없는 살림에 계속 어딘가로 후원금을 보내는 내 상황에 엄마가 늘 하시는 말씀.
"지금 니가 어디 후원금 보낼 때냐? 후원금 보낼 여유 있으면, 엄마한테도 후원금 좀 보내라."고..
ㅋㅋㅋ.. 물론 지금은 후원금이 빠져나가는 통장에 돈이 없어서 안 빠져나가고 있지만..
내 삶에 기름칠하면서 충분히 나눌 수 있는 때가 빨리 오면 좋겠어유..ㅜ
그래도 지난주에 언니가 하던 여러가지 활동들을 정리했다는 얘기를 들으니 조금 더 여유가 생긴 것 같아서 좋았음!!!

그런 내가 엉터리 세상사나 부당한 남을 원망이나 분노하지 않게 된 것은 마음의 여유때문이다.
재키가 말하는 무엇을 하고 살던 그것이 자신을 위해 산다는 것이 생활과 경제와 지위의 풍요나 안정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그렇게 미국농구의 전설적인 지도자로 남은 존 우든이 성공은 '마음의 평온'이라고 한 말에 공감하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아마도 내가 고통받았던 것은 자신이 올바로 살고 있다고 믿고 있었던 그 믿음이 붕괴되고
존중이나 사랑받고 싶은 사람에게 인정받기위해 참았던 고통과 인내심에 회의가 들었기 때문이다.
'당신 자신을 위한 삶에 집중하라. 그것이 일이든 가정이든 말이다. 당신이 일을 통해 자신을 완성할 수 있는 인간이라면 그렇게 해라. 당신이 가정에서의 시간을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는 인간이라면 그렇게 해라. 일과 삶의 균형을 통해 두 마리 토끼를 잡고 싶다면 그렇게 해라. 하지만 당신 자신을 위한 삶을 살아라.'
이렇게 살면 분명 '마음의 평온'을 유지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