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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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명지휘자 이탈리아의 토스카니니는 원래 첼로 연주자였다. 불행하게도 그는 아주 심한 근시여서 앞에 놓인 악보조차 잘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관현악단에서 첼로 연주를 할 때마다 토스카니니는 항상 악보를 미리 외워서 연주회에 나가곤 했었다고 한다. 그런데 한 번은 연주회 직전에 갑자기 지휘자가 공석이 되는 사건이 발생하게 되었다. 악단에서는 지휘자를 대신할 사람을 바쁘게 찾았는데, 악단을 지휘하기 위해선 연주할 곡을 전부 악보 없이 외우고 있는 사람이어야 했다. 하지만 그 많은 오케스트라의 단원 중에 곡을 전부 암기하여 외우고 있는 사람은 오직 토스카니니뿐이었다. 그는 임시 지휘자로 발탁되어 지휘봉을 잡게 되었다. 그때 그의 나이 19세, 그 순간 바로 세계적인 지휘자 토스카니니가 탄생하였다.
이 일화를 보면 삶을 살아가면서 만나게 되는 선택의 순간들이 단지 여러 사항들 중에 하나를 고르는 것만이 아니라 동시에 기회의 순간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늘 무엇인가를 배우러 다니는 나에게 어느 날 한 친구는 “도대체 언제까지 배우기만 할 거야? 그걸 이젠 사용할 때도 되지 않았어?” 라는 질문을 했다. 그 질문에 그저 “아직 부족한 게 많은 것 같아서...”라고 얼버무릴 뿐이었다. 새로운 세상으로 발을 내딛기가 두려워 무언가를 배우는 것으로 아예 새로운 시도 자체를 차단하고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부족하니깐 더 배워야해’ 라고 합리화 시키면서. 삶이 조금은 지루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지만 일상이 주는 편안함이 좋았고 이 편안함을 새로운 것을 시작하는 것으로 겪게 될 변화로 깨뜨리고 싶지 않았다.
변화라는 단어는 나를 긴장하게 만든다. 한편으로는 귀찮은 마음까지 들 때도 있다. 별다른 변화 없는 일상에 파묻혀 지내는 것이 지겹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을 떨쳐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반복되는 일상에 뭔가 새로운 사건이 일어났으면 좋겠어라고 생각하다가도 뜻밖의 일이 주어지게 되면 갈등하게 된다. 그동안 배운 것들을 현장에서 경험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하겠다고 말은 했지만 몸이 마치 ‘넌 잘 해낼 수 없을 거야’라고 말하는 것처럼 먼저 반응한다. 신경이 곤두서고 밤에 잠을 이루기가 어렵다. 미리미리 준비 좀 더 할 것을, 그동안 배운다고 한 것들은 다 어디로 간 거니. 괜히 한다고 했나? 지금은 못 하겠다고 하기에는 너무 늦었는데... 겨우 잠이 들었나 싶으면 어느 새 다시 눈이 떠진다. 학교에 가서 상담을 시작하기 전 조를 나누기 위한 O.T.에 참석만 하고 왔을 뿐인데 그것만으로도 압박이 심했나 보다. 소화가 왜 이렇게 안 되냐 하고 있는데 급기야 화장실 변기를 붙잡게 만든다. 시작도 하기 전에 몸은 벌써 ‘나 죽겠네’를 외치고 있다. 이 죽일 놈의 책임감 때문에 그런가? 하는 생각이 든다. O.T. 참석 후 내가 맡은 학생들이 잘 되어야 하는데 혹시 내 능력이 모자라서 그 학생들에게 도움을 주지 못하면 어쩌지? 와 같은 온갖 걱정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뭐가 제일 걱정되는 건데?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첫 발을 내딛게 되는 순간인데 실수할 까봐. 그 실수로 인해 학생들에게 피해가 갈까봐. 그게 겁나.’ 이렇게 대답하고 있지만 이상한 것은 전 같으면 일어날 수 있는 온갖 최악의 상황을 그려가며 미리 걱정을 하고 있었을 텐데, 이번엔 이상하게도 자꾸 긍정적인 그림을 그리고 있는 나를 보게 된 거다. 사실 이게 나를 더 불안하게 만든다. 과거엔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으로는 ‘이제까지 미리 상상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으니깐 이번에도 이런 일은 없을 거야’ 라며 안도 아닌 안도를 했었는데 이번엔 그와 반대로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긍정적인 상상이 되니 오히려 불안한 거다. 이번엔 정말 안 좋게 상황이 흘러가면 어쩌지? 라며 억지로 안 좋은 상황을 그리고 있다. 새로운 방법으로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다. 걱정도 팔자라는 말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다른 이들보다 능력이 모라자다고 느끼며 가졌던 열등감은 나를 끊임없이 무언가를 배우게 만들게는 해주었지만 한편으론 열등감을 하나의 방어막으로 만들고 스스로 어떤 시도도 하려고 하지 않는 것을 합리화 시키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은 부족하니깐 조금 더 하자. 아직은 나설 때가 아니야. 너 아직 자신 없잖아.’ 이런 생각이 새로운 시도를 하기 전에 머릿속을 가득 채우니 선뜻 해보겠다고 나서기가 쉽지 않았다.
잭 웰치는 무엇인가를 시도하고, 실패하여 거기에서 깨달음을 얻거나 혹은 성공을 해도 다시 시도해 볼 수 있는 자신감을 얻는 과정을 통해 사람들은 점점 더 향상된다. 고 하며 아무리 끔찍한 위기라도 모든 위기는 우리에게 교훈을 준다. 고 말한다. 처음 토스카니니가 지휘봉을 잡게 되었을 때 그의 기분은 어떠했을까? 뜻하지 않은 기회를 잡게 된 것에 기뻐하기도 했겠지만 한편으론 두려운 마음도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두려움 때문에 그가 기회를 잡지 않았다면 어쩌면 우리는 한명의 명지휘자를 영영 보지 못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의 첫 지휘가 어떠했는지는 모른지만 완벽하지는 않았을 것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그는 지금 사람들의 기억에는 명지휘자로 남아있다. 첫 시도에서 완벽한 결과가 나기를 바라는 것은 지나친 욕심이다. 중요한 것은 그 과정에서 몸으로 겪게 되는 깨달음이다. 그런 과정들이 하나하나 쌓이게 되면 그 만큼 사람은 서서히 발전하게 된다. 또한 실패도 당당히 자신의 책임으로 돌릴 수 있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다면 설사 지금 당장은 실패했다 하더라도 그것을 딛고 더 높이 뛰어오를 수 있게 된다.
실패를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모든 일에 성공만 하는 사람도 없다. 그러니 실패는 누구나 안고가야 할 마음의 짐 일지도 모른다. 실패를 다루는데 익숙해지지 않는다면 그것을 딛고 다시 일어서기는 어려울 것이다. 삶에서 겪게 되는 위기의 순간은 어쩌면 우리가 무엇인가를 배워야만 하는 시기에 경험하게 되는 지도 모른다. 죽을 것만 같았던 시간도 되돌아보면 힘들긴 했지만 그 만큼 자신의 뿌리를 깊게 내릴 수 있도록 해 주지 않았던가? 매 순간 마주치게 되는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서 그 중 어느 하나는 나에게 큰 기회를 부여할 수도 있다. 과거 뜻밖의 기회 앞에 순간적으로 드는 두려움 때움에 잡지 못한 기회들을 그냥 보내버리지 않고 선택했다면 지금의 삶이 달라질 수도 있지 않았을까? 기회는 준비하는 자의 몫이라는 말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렇다면 그 기회가 왔을 때 당당히 잡으려면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자신의 나아가고자 하는 분야의 필요한 역량들을 키우는 것과 동시에 불완전함을 딛고 나아갈 수 있는 마음가짐도 필요하다. 불완전한 자신을 받아들이고 경험을 통해야만 그 불완전함을 채울 수 있는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힘을 줄 수 있어야 한다.
뒤는 그만큼 봤으면 충분하다. 이젠 앞도 봐가면서 노를 저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