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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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잘 그리고 싶어 인물사진이 많은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왔습니다. 책보고, 사진보고 그리는 것보다는 실제 사람을 보고 그리고 싶은데 선뜻 그런 용기가 나지 않아 먼저 사진보고 연습해 봅니다.
제가 빌려온 책은 브라이언 피터슨이란 작가가 사진찍고 글을 쓴 <뛰어난 인물 사진의 모든 것 Beyond Portraiture>라는 책입니다. 저는 글자는 거의 안 읽고 사진만 봅니다. 엽서를 꺼내서 앞쪽부터 너무 복잡하지 않은 얼굴이 잘 나온 그릴만한 인물사진을 보고 그리다가 눈에 확 띄는 사진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눈을 뗄 수가 없였죠.
희잡을 쓴 여인인데 눈만 내놓고 있고, 그 눈이 정면을 보고있는 사진입니다. 홀리는 듯한 눈빛입니다. 그 눈동자에 주의하면서 엽서에 그사람을 그려 넣었습니다. 그리고나서 사진집을 다시 후르륵 넘겨보니 사람의 얼굴을 크게 중심으로 잡고 찍은 사진 대대분은 카메라맨을 바라보고 있는 사진들입니다. 옆모습이라도 고개를 살짝 돌려서 카메라맨을 보고 있네요.
아~ 왜 이런 구도로, 이런 눈동자로 사진을 찍었을까요?
제가 희잡 쓴 여인에게 마음을 빼앗긴 것과 연관이 있을까요?
좀 어렸을 적의 사건인데, 이런 일이 예전에도 있었습니다. 우연히 들린 전주예술회관에서는 전라북도미술대전에 출품된 작품이 전시되고 있었고 저는 그만 수많은 작품들 중에서 등신상으로 그려진 추곡수매소 앞의 농부와 눈을 마주치고는 그 자리를 뜰 수가 없었지요.
즐겨 읽었던 만화중에 <한눈에 반하다>라는 게 있습니다. 작가는 독자들과 함께하는 재미로 다음번 스토리에 등장하는 인물을 소개하는데 여러명의 남자들을 그려 놓고는 그중에 누구일지 질문을 합니다. 그리고 가끔은 인기투표도 하지요. 그런데 어느 날은 독자들이 다음번에 나올 사람을 맞춘 이야기를 후기로 싣었습니다. 최다득표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자신의 놀람도 함께 표현했는데, 답이 되는 그 사람이 바로 독자들과 눈을 맞추고 있다고 하더군요. 다른 캐릭터들은 다른 곳을 쳐다보는 데, 문제의 그 주인공은 독자를 쳐다보고 있다고. 그래서 작자 자신도 놀랐다고 하더군요.
그건 어쩌면 우연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한눈에 반하다>라는 만화를 그린 작가는 자신도 모르게 그 사람에게 그런 포즈를 취해준 건데, 전 그게 우연같지가 않습니다. 작가의 마음 속에서 탄생한 그 캐릭터는 작가가 그리고 있는 동안에 작가에게 말을 걸고 있었을 거고 작가는 자신을 보고 이야기하는 그사람을 그려 넣었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제 상상이지만, 그 작가는 그럴 것 같습니다.
사진 속의 인물들이 쳐다보고 있으면 그(그녀)가 제게 말을 걸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몇 초라도 더, 몇 분이라도더 그 사진 속의 사람을 들여다보게 되는 거죠. 나를 쳐다보지 않은 사람을 본다는 것은 아름다운 어떤 사람을 잠시 관찰하는 것같은, 혹은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어떤 사람을 잠깐 만나서 나와는 별개의 사람을 좀 떨어져서 보는 듯합니다. 그런데 쳐다보고 있는 사람은 다르죠.
그림도 사진과 마찬가지일 것 같 같습니다. 저편의 어떤 세계가 아니라, 나와 대면해 버린, 바로 눈 앞에 세계, 눈 앞의 사람이 되게 하는 요소를 더 많이 찾아보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꿈 그림을 그리고 싶고, 그림 속의 꿈은 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꿈그림을 보는 그사람과 마주하는 것이어야 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