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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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이 원하는 학업을 마치지 못하셨던 아버지는 나에 대한 기대가 무척 크셨다. 장차 S.K.Y 대학 중 한 곳에 입학하기를 원하셨던 아버지는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과외선생을 붙여주셨다. 그렇게 어릴 적부터 받아먹는 공부습관에 익숙해진 나는 학교 수업시간엔 거의 집중을 하지 않았고 과외로 그럭저럭 성적을 유지할 수 있었다. 고등학교에 올라가면서 아버지는 누군가와 끊임없이 비교를 하기 시작하셨다. 스트레스는 커져갔고 직접적인 반항을 할 용기가 없었기에 다른 이들은 비교 당할수록 더욱 공부에 박차를 가하기도 한다는데 나는 반대로 공부에서 손을 놓는 것을 선택하였다. 공부한답시고 독서실을 다니면서 나는 책에 붙어 있는 시간보다 책상에 붙어있는 시간이 더 많았다. 그때는 엎드려 자는 잠이 왜 그렇게도 달콤했던 건지. 공부와 담을 쌓고 살았기에 수능성적은 좋을 리가 없었다. SKY는 커녕 in Seoul도 힘든 성적을 받게 되어 재수를 하게 되었지만 다시 치른 수능성적도 그다지 좋지는 않았다. 대충 성적에 맞추어 과는 깊게 생각해보지도 않고 한 분교의 불문학과에 입학하게 된다. 재수까지 해서 들어간 학교가 분교라니. 내 자신이 너무 창피했다. 거기다 전공수업은 첫날부터 나에게 좌절감을 안겨주었다. 나는 불어 알파벳도 어떻게 읽는지 몰랐지만 대부분의 동기들은 제2외국어를 불어로 배웠던 아이들이었기에 기본 실력차이가 많이 났다. 학교도 싫었고 전공수업에도 재미를 붙이지 못했던 나는 2학년 1학기를 마치고 휴학을 하고 반수를 하게 된다. 대학입시가 어디 그리 만만한 시험인가? 겨우 몇 개월 공부해 놓고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렇게 나는 대학이라는 간판에 목매며 보통의 사람들은 1번 치르는 대학입학시험을 3번 치르게 되었고 학벌을 극복할 수 없었던 나는 그때부터 학벌에 대한 열등감에 시달리게 된다.
학교간판이 딸린다고 생각했던 나는 모든 것에 자신이 없었다. 늘 부족하다고 느꼈다. 대학에서 밀린다고 생각했기에 내가 가진 모든 것들이, 외모도 친구도 다 부족하게 느껴졌다. 다른 이들은 다 자신만의 색깔을 가지며 세상에서 당당하게 살고 있는 듯이 보였지만 나는 무채색의 아무것도 드러낼 것 없는 보잘 것 없는 존재로 생각되었다. 이런 생각이 강해질수록 타인에 대한 의식은 높아만 갔다. 어떤 행동을 하던 그 순간의 나에게 집중하기보다는 타인에게 어떻게 비춰질지가 먼저 신경 쓰였고 그들 시선에 내가 어떤 존재로 보여질지에 대해 더 집중하였다. 타인을 향한 안테나를 곧게 세우면 세울수록 내가 가지고 있는 것과 타인의 것을 비교하게 되었고 그럴수록 스스로 너무 작은 존재로 여겨졌다. 늘어만 가는 것은 한숨과 열등하다는 하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럴수록 부족한 것을 완벽하게 보완하고 준비하여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신화학자 조셉 캠벨은 이렇게 말한다.
완벽으로부터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 모든 과정은 우선 무언가를 깨뜨리는 것과 연관된다. 생명이 움트기 위해서는 반드시 흙이 부서져야만 한다. 씨앗이 죽지 않는다면 식물이 생길 수 없다. 빵이란 결국 밀의 죽음으로부터 나온다.
필요한 것은 완벽함이 아니라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한 발 내딛는 용기와 기꺼이 깨질 수 있다는 마음가짐이었다. ‘나는 이것이 부족하기 때문에 할 수가 없어. 한다 해도 잘 해낼 수 없을 거야.’ ‘실수하는 내 모습을 보면 사람들이 나를 무시할거야’란 생각에 쌓여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 것은 이런 생각을 함으로써 현실에 나를 던지려 하지 않는 스스로에 대한 합리화일 뿐이다.
열등감은 실제 능력이 있고, 없고와는 상관없이 나와 남을 비교하면서 자기 자신에 대해 평가절하하고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마음이다. 이런 마음이 들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우리 자신의 기준으로 우리를 평가하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능력에 견주어 우리를 평가하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이런 일은 ‘나도 저 사람처럼 되어야 할 텐데’ 라던가 ‘나도 최소한 이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라는 생각이 깊게 자리 잡게 한다. 자신이 세운 어떤 기준에 도달하려는 마음을 가지는 것은 잘못된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 기준을 세운 이유와 거기에 부합되지 않는 자신을 보며 열등감에 빠져 있다면 한번 생각해 봐야 한다. 원하는 기준에 부합될 때 과연 어떤 기분을 느끼게 될 거라 기대하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타인이 가진 것을 나의 것과 비교하여 만약 내가 더 뛰어나다고 여길 수 있다면 그것을 통해 우월감을 느끼고 싶었던 것은 아닌가? 그렇다면 어느 한 부분에서 자신이 더 뛰어나다고 판단되었을 때 자신에 대한 뿌듯함 보다는 저 사람보다 낫다는 우월감을 먼저 느끼게 되고 그 감정을 느끼고 싶었던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결국은 스스로에 대한 만족감 보다는 내가 더 잘났다는 감정을 느끼기 위해 그토록 타인의 시선에만 집중하게 되었고, 그렇기 때문에 타인의 시선이 중요할 수밖에 없게 되었으며 나를 위한 삶이 아닌 타인을 위한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타인의 시선이 두렵다면 한번 생각해 보자. 사람들은 타인이 가진 것에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있을까? 그들의 학벌이 어떤지, 어떤 직업을 가지고 있는지, 부모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어떠한 친구들과 교류하고 있는지, 외모는 어떠한지에 대해서 자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궁금해 할까? 사람들은 그들의 바쁘게 흘러가는 삶에 집중해야 하기에 한가하게 그렇게 다른 이의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을 쓸 여유가 없다. 그것에 집중을 하고 손가락질 하는 사람은 단 한 사람, 자신밖에 없다. 자신이 아무리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며 그들 속에 자리 잡고 있는 나의 모습에 대해 생각한다고 해도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이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물어보았는가? 그들과 비교했을 때 내가 그렇게 모자란 존재인지? 설사 그렇게 느낀다고 해도 어쩔 것인가 그 사람의 기준에 부합되기 위해 자신의 것을 바꾸려고 노력한다면 그것은 자신을 위한 삶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제3자를 위한 삶을 살아가게 될 뿐이다.
사람들이 느끼는 열등감에는 학벌, 외모, 직업, 집안(부모), 실패, 지적, 인적, 나이, 돈 등이 있다. 상대적으로 내가 부족하다고 느끼게 된 이유는 객관적인 이유와 함께 그로인한 아픈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부족하다고 느끼는 학벌 때문에 누군가에게 무시를 당하는 일이 생겨서 학벌에 대한 열등감이 더 커졌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마음에 꽂혀 있는 독화살을 빼는 것이다. 내가 왜 학창시절에 공부를 하지 않아서 좀 더 좋은 학교에 가지 못한 걸까? 라 자책하며 화살을 맞게 된 이유로만 마음을 채우게 되면 독화살의 독은 점점 더 넓고 깊게 마음 구석구석으로 스며들 뿐이다. 자신의 아픈 마음을 위로해 주고 그 다음에 해야 할 일은 어떻게 하면 내가 학벌에 대한 열등감으로부터 자유로워 질 수 있을까? 하는 방법적인 부분을 찾아나서는 것이다. 단순히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대학입시를 다시 치르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학이 주는 것은 간판일 뿐이지 좋은 대학을 나왔다고 해서 나의 위치가 그만큼 성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필요한 것은 수능을 다시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키우고자 하는 전문분야를 찾아 목표를 정하고 그것에 도달하기 위한 계획을 세워 단계를 밟아가는 것이다. 학벌이 자신의 인생을 보장해 주지 않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만약 학벌이 인생을 보장해 준다면 서울대 졸업생들부터 취업을 하고 성공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학벌을 떠나서 미리 자신의 분야를 찾고 준비한 자에게만 삶의 기회가 주어지게 마련이다. 누군가는 수능을 다시 보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최선의 방법이 최고의 결과를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차선을 선택하고 차선의 조합들을 이루어 가는 것이 결국 장기적으로 본다면 훨씬 더 큰 인생의 성과를 이룰 가능성이 크다.
학벌에 대한 열등감이 컸던 나는 아주 뛰어나지 않는다면 모든 것이 부족한 학벌로 인해 채워질 수 없다는 생각을 하였다. 학벌이 부족하니 외모는 출중해야 겨우 중간이나 따라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무엇을 하던지 완벽하게 준비를 하지 않고 섣불리 움직이게 되면 실수를 하게 될 것이 뻔하고 그렇게 되면 사람들로부터 무시를 당할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외모, 직업, 지적, 인적에서 오는 열등감은 각기 다른 원인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은 만족스럽지 못한 학벌 때문에 다른 외부적인 것들은 아주 뛰어나지 않다면 중간도 따라갈 수 없다는 생각이 깊게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가진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자신이 가진 열등감을 하나하나 나열하고 그것을 풀어가려 한다면 너무나 많은 에너지와 시간을 낭비만 하게 될 뿐이다. 그 중에서 가장 처음 가지게 되었던 열등감을 찾아보자. 그곳에서 모든 것이 시작되었을 것이다. 그 시발점을 찾으면 그것부터 원인을 분석해 들어가 보자. 열등감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사용할 수도 있다. 부족하다고 여기는 부분을 보완하기 위한 동기를 부여해주고 발전하게끔 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열등감을 잘만 활용한다면 자신의 인생을 새롭게 디자인할 수 있다. 먼저 타인에게 집중되어 있는 시선을 나에게로 돌려보자. 그리고 찾아보자. 과연 자신의 열등감의 시작은 어디인지. 그래야 열등감을 디자인 하든 깨부수든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