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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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 완성되기 전에는 J의 세계와 나의 세계는 별 개다.
내게 꿈그림을 그려달라고 의뢰한 J는 보험영업한다. 나는 J가 사는 세계, J가 꿈꾸는 세계를 듣는다. 그를 더욱 알아갈수록 나는 이번의 꿈그림은 내가 아닌 그가 그리는 것이 더 적합할 거란 생각을 한다. 그는 디자인을 전공한 자신이 원하는 바를 시각적인 것으로 만들어 낼 수 사람이다. J에게 직접 그리지 않고 내게 의뢰하는 이유를 물었다. 그는 타인이 그것을 어떻게 그리는지 보고 싶다고 한다.
J는 자신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기록한 많은 글들과 이미지를 내게 내보인다. 자신에 대해서 잘알고 있다. 그것들을 다 읽지는 못하고 그가 생각하고 있는 꿈을 일러달라고 한다. J는 꿈을 아주 명확하게 이야기한다.
나는 그가 일러준 것 중에 다음해의 목표인 그와 같이 보험영업을 할 팀을 짜는 것은 잠시 생각해본 후 그가 보험영업에서 갖고 있는 철학 부분에 집중한다. 고객의 가정을 소중히 지켜주고자 하는 마음에 집중하여 그것을 형상화한다.
그가 원했던 그림스타일에 맞추기 위해 정확한 묘사를 위한 여러 가지 손 모양의 사진을 수집하고 그려넣어 배치를 레오나르도다빈치의 수많은 메모가 적힌 공책같은 것은 분위기로 만든다. 펜으로 기록한 정확한 스케치와 관찰한 것을 메모한 것. 단색의 메모. 공책의 분위기를 내려면 묘사는 정확해야 할 것이고, 주제나 다른 부분에도 색의 사용을 자제해야 할 것 같다. 그런데, 나의 상황을 생각하니 조금 막막하다. 나의 묘사는 정확하지 않고, 충분하지 않고, 또한 색이 없으면 나의 그림은 초라하다. 이걸 어떻게 할 것인가 걱정이다. 서로 잡고 있는 가족의 손과 가족을 연상하게 하는 글귀를 찾아서 옮겨 적었지만 여전히 부족해 보인다.
가족을 지키고자 하는 아버지의 마음같은 J의 마음을 형성화한 그림을 그렸지만 왠지 부족해 보인다. 지금까지의 그림은 구상도 내가 한 것이고, 그린 것도 나이지만 그곳에는 내가 없다. 나는 기술자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이때까지의 그림에 ‘조금 더 나답게’를 주문했다. 이미 그려진 그림에 색을 더 진하게 넣고 거기에 흐름을 넣었다. J가 이야기한 다빈치의 공책같은 느낌은 거의 사라졌다. 에너지가 뭉글뭉글 모이거나 흐르는 것을 그려 넣은 선 때문이다. 그런데 그게 나다워서 만족했다. 그도 만족할까?
액자에 넣기 전에 J에게 그림을 찍은 디지털사진을 보냈다. 답변이 오기까지 긴장되었다. 기다리는 동안 J가 원한 스타일에서 벗어나서 다시 그려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충돌이다. 두 세계의 충돌. 꿈그림을 그려서 그의 꿈을 응원하고 싶다는 말을 했지만, 막상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는 한 화면에 그의 꿈이라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그’와 ‘나’가 동시에 들어간다. 한 화면에 2개의 세계가 섞이고 있다. 보여주고 OK라는 말이 나오기까지 내가 많이 개입된 그의 미래의 세계가 그가 마음에 품어도 괜찮을지 조마조마하다. 그가 거부한다면 그것은 응원이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림 속에서 나는 아주 시끄럽게 유혹하는 사람이다. 하고 싶은 수많은 말을 색과 선에 담아서 ‘이봐요, 여기 좀 보라구요.’라고 외친다. 꿈그림 의뢰자를 만났을 때도 수다쟁이이지만, 그림 속은 현실보다 더 요란하다. 꿈그림을 그릴 때는 나의 말은 조금 덜하고 그의 말을 내가 대신한다고 하더라도 나는 여러 가지 색으로 선으로 요란스럽게 떠들어댄다. 이번 J의 경우처럼 그림 속에 담긴 나의 열정을 이해해 준다면 나는 아주 신이 난다.
나는 그의 세계로 들어가고, 그가 나의 세계로 들어온다. 나는 그림으로 그의 꿈을 신나게 이야기하고 그의 세계로 들어간다. 충돌을 우려했던 그와 나 둘의 세계가 아닌, 이제 우리의 세계가 된다. 그의 꿈의 세계와 나의 꿈은 이제 우리의 세계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