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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이 다가왔다.
계약 기간이 만료되는 시기.
어디로 가서 살 것인가라는 주거에 대해 일차 탐색을 한다.
해당지역 부동산에 가서 시세, 평수, 입지 등에 대해 의견을 구했다.
애로점은 혼자 사는 경우에는 자신의 구미조건에 따라 신속하게 의견 결정이 이루어지지만, 함께 사는 가족이 있는 경우에는 조율이 필요 하다는 것이다.
“나는 조망이 우선이야.”
“아니야, 나는 주차 등 편리성을 일차적으로 보았으면 좋겠어.”
“도배를 할까 말까.”
함께 살아가는 동반자로써 배려와 양보로 절충점을 찾는다.
살 곳이 확정되자 먼저 이삿짐센터의 견적과 흥정이 이루어지고 조금은 번거로운 우편물, 전화, 가스등의 주소지 변경 작업이 행해진다.
디데이.
오전 이사가 이루어지는 동안에도 바쁘다.
살고 있던 아파트 관리비와 가스비 정산 그리고 평소 만져보지 못하는 잔금의 큰돈이 순식간에 이동을 하고 복비가 지급된다.
그리고 짧은 기간이었지만 정들었던 주변 분들에게 안부를 전한다.
“이사를 가게 되었어요.”
“그래요. 아쉽지만 딴 곳에 가서도 잘살아요.”
살아간다는 건 그런가 보다. 정들만 하면 떠나가고 이동을 하고 새로운 정착지를 형성하고.
죽음이라는 명제가 아니라도 우리는 항시 떠나갈 여행자의 채비를 희망한다.
그러기위해 유연성과 기동성이 가미될 수 있도록 새들처럼 가벼운 무게를 유지하려 하지만 생각일 뿐.
회사라는 조직생활을 하다보면 종종 여러 사유 등으로 인해 퇴사하는 직원들을 만나게 된다. 오랫동안 몸담았던 사람들일수록 연수만큼 챙겨야할 짐들이 많다. 책, 서류, 인맥, 관련자료 및 여러 정보들.
몇 개나 되는 박스에 가득 가득 쌓아가는 부피를 볼 때마다 나는 떠날 때 그러지 말아야지 하는 다짐을 해본다.
그런데 실상은 그렇질 않다.
“아니, 몇 사람 살지 않는데 짐이 왜이리 많아요.”
이삿짐 견적을 보러온 사장이 하는 이야기이다.
그런가? 짐이 많은가.
젖어진 공간에 살아가던 사람들은 모른다.
내가 얼마만큼 많은 무게의 짐들을 가지고 있는지.
내가 얼마나 갖가지 소유물들을 부둥켜안고 살아가는지.
차량에 실려진 과거의 흔적들은 그렇게 그렇게 존재로써 뒤뚱거린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떻게 하면 더가질 것인가라는 명제가 이루어지는 건 당연하지만, 그래도 한때는 무소유를 주창했었던 입장에서 본다면 조금은 낯이 뜨겁다.
욕심 가득함으로 더편리하기 위해서 더좋은 것을 차지하기 위해서 살아가지만, 조금은 비어있는 충만함으로 여백을 남겼으면 하는 다짐을 다시 가져본다.
그럼에도 채워져 있던 짐이 빠지고 난 허전함은 찬바람이 불고 왠지 퀭한 느낌이 든다.
이곳에서 우리가 이년을 거주 하였구나.
이곳에서 우리가 아옹다옹 다투며 살을 부대끼며 살아왔었구나.
하지만 텅 빈 공간은 을씨년스러울 수 있지만 한편으론 새로운 자극일수 있다.
다시 무언가를 채울 수 있다는 다시 다른 형태로 디자인 할 수 있다는 시점이 주어졌기에.
마흔 살이 되면 생애전환기라고 해서 통지서가 날아온다.
무엇이지?
이시기가 되면 필수적으로 건강검진을 받으라는 내용문과 무료 쿠폰이 들어있다.
웃긴다. 생애전환기라니.
사십년을 보내온 만큼 앞으로 살아갈 또 다른 사십년을 미리미리 체크하고 대비하라는 친절한 국가의 배려인가.
하지만 그 느낌이 묘하다. 앞으로 남은 날을 카운트다운 하는 기분이.
이사를 한다는 것도 매한가지다.
전세 만기가 돌아오는 시점에 사전 정지작업이 이루어져야 한다.
포유동물이 동면에 들어가기 전 먹을 것을 부지런히 뱃속에 채우듯이
찬바람이 불어 오기전 김장, 연탄으로 따뜻한 겨울나기를 마련하듯이
우리는 익숙함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준비를 가진다.
실제로 짐을 챙기다 보면 필요가 없어지고 이제는 소용이 없게 된 물건들이 의외로 많다. 그것을 아깝다고 버리지 않고 마음과 새로운 그곳에 부둥켜안고 가다보면 부피가 더욱 커지고 과욕으로 남게 된다.
그러기에 이년의 기한이 끝난 후 움켜잡고 있던 것들을 교체할 수 있는 지금은 기회이다.
남들은 전셋집의 설움이라고 이야기를 하지만, 과거 시간의 묵은 먼지를 털어내고 현재를 다시금 재정리 할 수 있다는 것 이것은 감사함이다.
새로운 꿈터의 포맷을 어떻게 꾸밀 것인가 탐구하였다.
“책상 배치를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
“커튼 색깔을 바꿔 보는 건 어때.”
누군가 뱉어놓은 과거의 흔적위에 청소기를 돌리고 물걸레질과 도배를 다시금 하는 것들이 어쩌면 힘들고 귀찮을 수 있지만, 새롭게 살 수 있는 순간이 주어졌기에 우리는 또 다른 물감으로 다름의 채색을 한다.
호기심으로 바라보는 이들에게 안녕하세요 하고 먼저 인사를 건네고
비어있는 공간에 짐을 풀고
방방마다 실험적인 배치를 하다보면
내 마음에 낯선 이와 낯선 환경이 어느새 하나둘 자리 잡는다.
초등학교 소풍 가기전 잠을 이루지 못하는 아이처럼 또 다른 들뜸이 손을 내밀며.
신혼여행지에서의 하룻밤을 보내고 난 세상처럼 이튿날은 모든 게 달라져 있다.
거실이며 베란다며 창밖으로 비춰지는 갖가지 조망들.
아마도 세상 환경은 그대로인데 나의 시야, 나의 마음, 내가 바라봄이 달라졌으리라.
이곳에선 어떤 일이 벌어질까. 어떤 일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오늘 아침 난 노선이 바뀐 지하철 구내에서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다.
설렘을
또 다름을.
그리고 웃어본다.
배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