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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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티프원 1. "사진 촬영의 가장 중요한 인식은 '무엇을 어떻게 찍을 것인가'보다 '왜 찍으려고 하며 그것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함인가'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진은 '찍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 것'입니다." - 작가 이안수 ->
거실에 들어서니 웃음꽃이 피었다. 이안수님이 와계셨고, 자연스럽게 자리에 끼었다. 이번에 새로 장만한 카메라를 보시더니 한 말씀하신다.
"이것은 소주를 찍으면 와인처럼 나오는 카메라지요! 그런데 카메라는 그냥 모셔놓으라고 있는게 아니죠~ 하하!"
하시며, 내 카메라를 들고 마구마구 찍어보신다. 세로로도 찍고, 가로로도 찍고, 여러 각도에서 우리들 모습을 찍으신다. 난 한 컷을 진중히 생각하며 찍는 편인데 반해 이안수님은 직관적으로 일단 많이 찍는 스타일이셨다. 뭐랄까 "사진을 밥 먹듯이 생활화 하고 계시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는 소주를 찍으면 와인처럼 나온다는 말에 박장대소하며 웃고 있다. 벌써 이선생님의 웃음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이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벌써 아내는 우리 부부의 과거사를 쭉 풀어놓은 모양이다. 젊어서 꿈이 '해탈'이었다는 말이 인상적이셨는지, 이선생님은 계속 그 이야기를 하신다. 나중에 알고 보니 사모님도 몇 년 전 출가를 생각하신 적이 있으셨다하신다. 이선생님은 우리의 얘기를 하나하나 잘 들어주셨다. 메모도 하시고 궁금한 부분은 계속 물어보신다. 그러다 변경연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나를 포함한 가족을 성찰하는 글을 쓰고, 그것을 책으로 내는 과정에 있다는 얘기며, 가족여행이라는 주제에 대해 이야기했다. 변경연의 연구원과정에 대한 것과 구본형 선생님에 대해서도 이것저것 물어보셨다. 선생님이 잘 모르셔서 그런가 보다하고 자세히 얘기했는데, 대뜸 이러신다.
"예전에 로이스님이라고 이곳에서 모임을 한 적이 있지요. 모닝페이지 모임이었던 것 같군요. 그리고 김용규님도 알지요." 하시며 <숲에서 길을 묻다> 책을 꺼내 보여주신다. 변화경영연구소에 대해 이미 많이 알고 계신 듯 했다. 이선생님이 기억하는 로이스님은 '호기심 왕성한 소녀, 열린 마음의 소유자, 자신의 생각을 설득력 있게 피력할 수 있는 멋진 분'이셨다. 그러면서 한 말씀 하신다.
"내가 이런저런 질문을 하는 것은, 양선생님을 진단하기 위해서입니다. 하하!"
잉, 진단? 내심 결과를 궁금해 하면서, 난 참았던 질문들을 털어 놓았다.
"어떻게 하면 사진을 잘 찍을 수 있나요?"
"먼저 찍으세요. 찍고 의문이 생기면 책에서 답을 구하세요. 책만 읽고 찍지를 않으면 안되요. 어떤 이에게는 귀납적 공부가 더 효과적일 수 있지만 어떤 이에게는 연역적 방법론이 더 효과적일 수 있어요."
상추를 심어도 책을 먼저 읽는다는 나를 위한 맞춤 조언이셨다.
"가족여행을 주제로 글을 쓰려고 하는데요."
"너무 광범위해요. 경전을 읽고 종합하고 해석하는 일은 진입장벽이 높습니다. 한학도 알아야 하고 철학적 지식도 있어야 하기 때문이지요. 전문성만 확보된다면 쉽게 주목받을 수 있는 분야입니다. 하지만 여행서적은 누구나 쓸 수 있으므로 진입장벽이 낮습니다. 속된 말로 개나 소나 쓰지요. 하하! 왠만한 차별화와 색다른 시각이 아니라면 독자의 시선을 받기 어려울 것입니다. 과감하게 주제를 좁히고 깊이를 더해야 할 것입니다."
이 코멘트는 구본형선생님의 것과 일맥상통한다. '그래 그렇구나, 그런데 어떻게 그 차별화를 이뤄낸단 말인가?' 속이 타기는 여전했다.
벌써 밤 한 시가 넘어서고 있었고, 사모님은 병원 출근을 위해 벌써 일어나셨다.이선생님은 우리가 밤을 세자면 세우실 작정을 하신 것 같았다. 실례가 되지 않기 위해 우리가 먼저 정리를 하고 일어섰다.
<모티프원 2. 작가 이안수>
방에 돌아와 전날 올린 '서문'을 수정하기 위해 앉았다.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을 다 털어놓은 초고를 핵심만 남기고 다 잘라냈다. 그리고 이렇게 썼다.
"나의 가족여행의 계획은 화려하다. 그리고 너무 많고, 넓다. 하지만 곧 하나의 주제로 초점이 맞춰질 것이다. 어떻게? 그것은 앉아서 하는 계획을 통해서가 아니라 직접 떠나고 부딪히면서 깨닫게 될 것이다. 지금 말할 수 있는 것은 그것뿐이다. 우린 온 몸으로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무책임 하지만 이렇게 밖에 쓸 수 없었다. 그게 최선이었다.
다음날 아침. 민호와 재미있게 샤워를 하고, 놀다가 우린 다시 공동 거실을 점령하러 내려갔다. 갈아먹는 커피와 빵을 들고. 이선생님은 벌써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하고 계셨다. 아침을 준비하는 도중에도 이선생님은 계속 질문을 던지시며 사진도 찍으신다. 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다 여쭤보았다.
"진단 결과가 나왔습니까? 하하!" 무슨 의사에게 물어보는 느낌이었다.
"예, 선생님 가족은 좋은 모델이 될 것 같습니다. 하하!" 쌩뚱 맞은 결과였지만, 나의 화두를 '가족'이라고 생각하고 격려한다는 뜻으로 이해했다.
선생님은 우리 가족의 여행과 책을 쓰는 행위가 해탈을 향한 길과 같을 것이며, 글쓰기는 우리에게 명상이고 요가일 것이라는 글도 남겨주셨다.
마지막 나서는 순간까지 저희 가족사진을 찍어 주시고, 그걸 또 직접 프린트까지 해주시며 싸인을 해주신다.
기다리면서 아내는 방명록에 이런 글을 남겼다.
"새로운 꿈과 희망을 품고,
세상으로(삶으로) 나아갑니다.
그 동안 잘 살았구나,
칭찬 많이 받고 가네요.
'행복'이라는 추상적인 단어를
온 몸으로 기억할 수 있었던 하루(정말로 말이죠)였습니다.
오랜 시간 품었던 꿈을
이제는 세상에 펼쳐도 두렵지 않겠네요.
좋은 시작을 이곳에서부터 했습니다.
다음에 또 찾아뵐께요.
-당진에서 바쁘게 살아가고 있는
민호엄마 정해심 올림-"
나 또한 같은 마음이다. 참 좋은 시작이라 말하지 아니하지 않을 수 없다!
<모티프원 3. 이안수 작가님이 직접 찍어주시고 프린트해주신 사진들>
P.S. 며칠 후 이선생님으로부터 메일이 왔다. 안부인사와 찍어주신 사진화일과 함께. 그리고 직접 쓰신 뉴스 기사를 링크해 주셨다. 선생님은 자신이 가진 글쓰기와 사진 찍기의 재능을 아낌없이 나누어 주셨다. 그분처럼 살고 싶다.
닮고 싶은 마음을 살피다보니 얼마 전 읽은 홍승완 선배의 <마음을 나누는 편지> '내면의 황금'이란 글이 떠오른다.
"내 안에 이미 그 특성이 잠재해 있기 때문에 그 특성이 잘 계발된 사람을 쉽게 알아차리고, 그에게 끌리고, 그 사람처럼 되고 싶은 것입니다. 내가 존경하는 그 특성은 사실 내 안에서 깨어나기를 기다리고 있는 잠재력인 것입니다."
아마 난 이안수 선생님의 모습 속에서 나의 잠재력을 발견한 것이리라. 훗날 내가 '모티프원'과 같은 공간에 자리하고 앉아 가족과 함께 사진 찍고, 글을 쓰며, 사람들을 만나는 그런 모습을 그려보며 웃음 짓는다. 민호야 너도 좋지?
<모티프원 4. WOOD 방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민호>
이안수님이 쓰신 우리부부에 대한 오마이뉴스 기사: 링크
강민지님에 관한 기사 "몸은 힘들지만 마음은 깃털같아요" : : 기사링크

어떤 증상에 대해 분석이나 해석을 통해 방법론적인 접근하지 않고 내담자의 자발성에 의해서 이루어지는데, 그 원리는 단순합니다.
개인의 내적인 모든 것은 통합적이므로 어디서 찔러도 결국은 전체로 전이되어 확산 될 수 있으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유일하게 강조하는 것은 자발성입니다.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천개의 눈, 백만년동안 진화한 감각과 직관이라는 것으로 무질서 하게 진행되지만 환경과 교육을 통해 얻어진 방법들에 의해서 일부는 패턴과 법칙을 가지고 구체적으로 표현되어 집니다.
의식의 생각이라는 작은 그릇을 통해 감각과 무의식이라는 큰그릇에 접근한다는 것은 어렵지만 경험이라는 다소 산만하고 혼란스러운 실재하는 내면의 반응의 결과들을 잘 관찰할 때 생각은 직관과 연결되어 보이지 않는 질서와 원리를 발견할 수 있게 해 줍니다.
그 보이지 않는 질서와 원리, 그 길,모든 인간이 걸어갔으면서도 언제나 새로운 그 아주 오래된 새길 하나를 발견하면 우리의 삶은 완성의 길로 들어 서게 되는지도 모름니다.
어쩌면 사람들이 그리고 그대가 여행을 사랑하는 이유가 그 때문인지도 ...
가족이라는 이름의 길에서 펼쳐지는 꿈과 사랑의 여정이 궁금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