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루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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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 수업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버스 정류장에 앉아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지요. 사람이 별로 없는 길가였지만 이어폰을 꼽고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서 버스를 기다리는게 그다지 나쁘지 않았어요. 발까지 까딱거리며 제법 신이나게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지났는데도 버스가 오지 않자 조금씩 이상한 생각이 들었어요. 고개를 갸웃거리며 주변을 기웃거리다가 버스 정류장에 붙어 있는 종이를 한 장 발견했습니다. 아뿔싸. 제가 기다리는 버스가 최근 신분당선 개통으로 노선이 약간 변경되었다는 군요. 그곳에서 타는 것이 아니라 판교역에 가서 버스를 타야 한대요. 판교역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습니다. 어디 있는지 위치는 모르지만 도로에 나오는 표지판을 보고 걷기 시작했어요. 그래도 막차까지는 시간이 조금 있으니 찾을 수 있을 거라며 걸었지요. 10분 정도 걷기 시작하니 저쪽에 있는 버스 정류장이 하나 보이더군요. 후다닥 뛰어가서 그곳에 도착하는 버스를 확인해 보았는데 제가 기다리는 버스가 서질 않는 거예요. 순간 눈물이 나려 했습니다. 아무도 없는 밤길에 주변에는 높은 아파트들이 우뚝 서 있고, 간간히 차가 씽씽 달리는 길가였습니다. 그 곳에 제가 혼자 서 있었지요. 이제는 어디로 가야하는지 모르겠다 생각하면서요.
좀 더 걸어서 판교역을 찾아내었고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버스에 앉아서 바보같다고 생각했죠. 제 손에는 분명 스마트 폰이 들려 있었고, 그리고 그 동네는 아는 언니의 동네이니 여차하면 전화를 할 수도 있을테고, 설사 그렇게 헤매다 막차가 끊긴대도 저에게는 택시를 타고 올 수 있는 비장의 카드도 있었는데 말이예요. 그런데 웃을 수가 없었습니다. 모르는 동네, 씽씽 달리는 차들, 그리고 어디로 가야하는지 모르고 서 있는 나. 한번 울적해진 기분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우울한 기억들을 데려왔습니다. 어디서 그리 끄집어 내는지 신기할 정도로 말이예요. 단 한번도 나와 아이를 봐 주지 않았던 사람들 생각도 나고, 입덧에 4시간 마다 혼자서 밥을 밀어 넣던 생각도 났지요. 처음 아이가 눈에 보이도록 태동을 보였던 그날 아무에게도 말 하지 못하고 혼자서 기뻐했던 기억도 떠올랐습니다. 눈물이 왈칵 쏟아지려 했지만 참았어요. 프로필 사진을 찍는 다며 머리도 하고 옷도 잘 입고 있는데 버스에 혼자 앉아서 울고 싶지 않았거든요. 누가 보면 이 밤중에 남자친구랑 헤어지고 버스 타고 가는 여자앤줄 알겠어요. 그건 싫었습니다. 턱이 아프도록 이를 꼭 깨물며, 눈이 빨개지도록 깜빡거리지 않으며 집에 도착했지요.
방안으로 들어와 엉엉 울기 시작했어요. 그리 막막한 것도 아니었는데. 분명 그 길에서도 방법은 있었는데. 괜히 옛날 생각하며 울고 있는 듯한 기분도 들었어요. 가장 행복했어야 했는데. 아이를 안고 그저 소소한 행복이라도 찾고 싶었던 것 뿐인데. 누군가에게 이런 음식이 먹고싶다는 이야기도 하고 싶었는데. 힘차게 움직이는 아이를 보며 아무라도 붙잡고 이것 좀 보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배는 불러 오는데 아무도 아이의 이야기를 할 수 없었지요. 저에게는 아이에게 나는 그 뽀송한 냄새가 코끝을 맴도는데 그 어느 누구에게도 아이의 존재가 보이지 않는 듯 했습니다. 아니 애써 무시하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나 여기 있다고, 여기 내 아이와 내가 있다고 바락바락 소리를 질러도 언제나 그렇게 덩그라니 혼자만 놓여있는 기분이었지요. 그렇게 한참을 울었을 거예요. 더 이상 눈물이 나지 않을때까지 그냥 울었으니까요. 울음을 그치고 화장실에 들어가서 거울을 보았는데 순간 웃음이 났습니다. 아까까지 곱게 화장을 하고 머리를 했던 여자에가 이젠 화장은 번지고 눈은 퉁퉁 부은 채로 서 있었어요. 이건 뭐 초등생도 아니고 버스 정류장을 몰라서 울었다니 누구한테 말이라도 해 보겠느냐며 혼자서 웃었지요. 바보 같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마음 한쪽이 시원한 게 엉망인 제 모습을 보고도 웃음이 나더군요.
어렸을 적 저는 오빠 따라다님쟁이에 울보였습니다. 오빠를 졸졸 따라다니던 아이였는데 어딘가로 저를 떼어놓고 갈 적마다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럴때마다 저의 엄마는 울면 지는 거라고 너도 가면 된다고 달래 주셨지요. 우리는 어렸을 적부터 울면 지는거라고 배웠잖아요. 특히나 여자애들은 툭하면 운다며 울고 있는 여자애를 놔두고 이겼다는 듯 씨익 웃는 남자애들이란. 커가면서 저는 점점 울지 않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울 만한 일이 생겼다면 눈물 흘리고 있을 시간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모색해서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 제가 배운 교훈이었지요. 그러다보니 슬픈 장면 앞에서도 울지 않을 수 있더군요. 우는 대신에 최대한 쿨하게 보일 만큼 씨익 웃는 방법을 나름 터득하게 되었습니다. ‘난 이런 일로 상처받지 않았어. 너 따위는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단다.’ 이렇게 말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울지 않게 되면서 제 자신도 그리 믿기도 했습니다. 어쨌거나 눈물이나 흘리고 있다는 바보 같은 방법 대신에 저는 웃으며 다음 일을 향해 가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제법 뿌듯한 마음도 있었지요.
그런데 오늘 퉁퉁 부은 눈을 하고 저는 생각해봅니다. 과연 그게 그리 아무것도 아닌 일이었을까요? 울고 있다는 건 그리 보잘것없는 일이었을까요? 아니요. 이제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물론 우는 제 자신이 진듯한 느낌이 들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울면서도 바보같았던 기분이 들었던 것도 부인하지는 않겠어요. 내가 울고 있는 시간에 나에게 상처를 주었던 사람들은 어쩌면 화기애애하게 웃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저는 울어야 했습니다. 아무도 없는 듯한 막막한 시간. 그 안에 아직 아파하는 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해는 할 수 있어요, 다들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서 저한테 말 한마디 못했다는 것을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알았기에 더 울 수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해한다고 해서 아프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다들 어렵게 저를 대해주는 가운데 저와 아이가 서 있었지요. 아무렇지 않은 듯, 아무 일 없는 듯 애써 생활하려는 사람들 가운데 제가 아이를 안고 있었습니다. 여전히 사람들은 웃고 떠들고 일상을 사는데 이제는 저의 일상과 멀리 떨어져 부른 배를 안고 있었던 작은 제가 있었지요.
제가 우는 것은 그때 다쳤던 마음이 아팠기 때문입니다. 제 마음을 저도 몰라주면서 괜찮다고, 울고 싶어하는 것은 바보 같은 나라고 꾹꾹 눌러 왔습니다. 결국 그 아픈 마음은 위로받지 못하고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지요. 깜깜했던, 나 이외에는 아무도 없었던 것 같았던 그 때 그 자리에 말입니다. 그렇게 상처 받았던 마음은 누군가가 건드려 주기를, 무언가의 사건이 계기가 되어 터져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듯 합니다. 저는 누군가에게 어떤 말을 하려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울고 싶었던 거예요. 그 일은 이렇게 엉엉 울만큼 아픈 일이었거든요. 그래요, 네가 선택한 길인데 뭐. 그 말도 맞아요. 제가 선택한 길이지요. 철없이 무조건 괜찮을거라며 대책없는 길을 선택한 제 잘못도 분명 있지요. 그렇다고 제가 울 수도 없는 건 아니잖아요? 길에서 넘어져 무릎이 깨진 아이가 아파서 울겠다는 데 누군가의 허락이, 동의가, 이해가 필요한 것은 아니잖아요.
눈물에는, 울음에는 카타르시스가 있다고들 하죠. 처참하게 패배한 듯 보이지만 매우 슬퍼보이지만 그 뒤에 느껴지는 희열이 있다는 말일 겁니다. 극과 극은 통한다하니 그리 볼 수도 있겠네요. 한바탕 울고난 지금 제 마음이 더 없이 평온하고 잔잔합니다. 재밌는 동영상을 보니 웃음도 잘 나오네요. 그래요. 슬플때는 슬퍼하는 것이 맞는 듯 합니다. 슬퍼하는 모습은 나약한 모습일꺼라는 마음에 슬픈데도 슬프지 않은 척하는 우리의 모습은 어쩌면 더 눈물나게 슬픈 장면인지도 모르겠어요. 한껏 울고나서 후련함까지 드는 지금 이 바보같은 모습을 보며 생각합니다. ‘그래 울어도 괜찮구나. 그래도 예쁜데 뭐.’
당시 슬펐던 저의 감정은 바보 같은 감정이 아닙니다. 사람이기에 인간이기에 가졌던 당연한 마음이겠지요. 울고 있으면서 대책을 강구하지 못하는 시간을 누군가는 바보 같은 시간이라 말 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내 인생의 슬픈 장면에서 바로 내가 울어주지 못한다면 그 누가 우리를 대신해 주겠어요? 누가 우리의 슬픔을 울어줄까요? 그건 나만 할 수 있는 일이잖아요. 우는 이유가 하찮다구요? 아닙니다. 아픔은 어차피 자신이 받아들이기 나름 아닌가요? 우리가 느끼는 우리의 감정은 결코 하잖은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를 나타내 주는 것이지요. 아프면 울어도 괜찮습니다. 그 순간에도 우리는 패배한 것이 아닙니다. 다친 자신의 마음을 위해 울어줄 수 있다는 거 그것이 바로 진정한 용기이자 자신을 사랑하는 길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사랑스러운 사람입니다. 그 사실은 우리가 눈물을 흘릴때에도 변하지 않을 거예요.
이 일을 겪고난 후 저는 더 이상예전의 일로 울지 않느냐 물으신다면 할 말은 없습니다. 아마 저는 또 같은 기억을 떠올리며 울고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하지만 더 이상 그렇게 우는 제 모습이 작고 초라하다 느끼지 않습니다. 또 다시 제가 엉엉 울고 있을지 모르지만 그렇게 가지고 있었던 상처는 엷어지고 미움은 흘러내리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눈물 끝에는 활짝 웃는 제 자신이 있다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울음은 갑작스레 터져나와 웃는 얼굴로 피어납니다.
꽃이 피어나는 시점은 꽃 봉우리가 더 이상 감싸고 있지 못해서 터지기 시작할 때입니다. 옥수수도 열을 가하면 쩍쩍 갈라지기 시작해서 꽃처럼 예쁜 팝콘이 되지요. 꼭꼭 싸 두었던 마음의 응어리도 이렇게 터져나오면 더 아름다운 모습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바라는 마음일까요? 하지만 분명한 것 하나는 정말 예쁘다는 것입니다. 퉁퉁 부은 눈에 눈물을 가득 머금고 피식 웃는 당신의 모습이 아마 참 예쁠거예요. 슬프면 울어보세요. 그리고 그 후에 당신의 모습을 꼭 봐두 세요. 아마 사진이라도 한 장 찍어주고 싶은 모습에 웃음이 날 겁니다.
무엇을 꼭꼭 싸안고 있으세요? 아무도 울어주지 않았던, 당신조차 울어주지 않았던 그 일은 무엇인가요? 당신조차 외면하고만 싶었던 그 감정의 응어리들이 터져나와 당신의 꽃 한송이가 되길 바랍니다.
Tip 1
당신의 집 냉동실에 얼음이 있기를 바랍니다. 드라마와 현실은 다릅니다. 엉엉울고난 후 눈은 반드시 퉁퉁 부어오르게 되어 있답니다. 그렇게 쓰러져 자는 것도 조금은 말리고 싶습니다. 아침까지 그 상태일지도 모르니까요. 뭐 요즘은 썬글라스들을 많이 쓰고 다니니까 괜찮을 수 있지만 학생이라면, 직장인이시라면 그리고 그런 내 모습을 다른 이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으시다면 울고 난 직후에 조금의 관리가 필요할 거예요.
Tip 2
어쩌면 당신은 전과 다르게 시시때때로 콧날이 시큰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일을 겪고 난 후 제가 그랬거든요. 티비에서 해주던 드라마를 보다가도 책을 읽다가도 괜히 그러곤 했지요. 그러나 나쁜 것 같지 않습니다. 이제 저는 다른 사람에게 공감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거든요. 자신의 슬픔으로 울지 못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슬픔 앞에서도 공감할 수가 없는 법이잖아요. 저는 조금씩 저의 감정을 나누어 주는 방법을 알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리도 제가 바라던, 제 자신의 모습으로 세상과 소통을 하는 법을 배우는 중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