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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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서에 적힌 내 병명은 적응장애였다.
적응장애는 특정한 스트레스나 개인적으로 겪은 충격적 사건을 이겨내지 못해서 발생한다. 증세로는 우울증과 불안증, 수면장애 등이 있다. 돌이켜보니 지난 1월 초, 팀장 발령을 받은 이후로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체력은 이미 바닥나 있었고 본부장의 수많은 요구와 잘 해야 한다는 강박에 억눌려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했다. 항상 우울하고 불안한 느낌이 나를 옥죄었고 남편과 아이들, 회사 사람들의 말 한마디에도 예민하게 반응했다.
그 날은 월요일 아침이었다. 주말 동안 남편과 아이들의 위로로 마음을 추스르고 출근한 직후였다. 그런데 내가 주말 동안 영업팀장들에게 보낸 이메일이 말썽이었다. 회사의 방침에 항의하는 전화가 끊임없이 울렸고 나는 고강도의 비난들을 고스란히 받아낼 수 밖에 없었다. 시계를 보니 12시 10분 전이었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오자 전화가 뜸해졌고 제정신이 돌아왔다. 이렇게 있다가는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내 몸 안에 있는 시한폭탄에서 재깍재깍 카운트 다운 소리가 들려왔다. 폭발이 얼마 남지 않은 듯 초침은 점점 더 빨라지고 있었다. 이렇게 있다가는 몸도 마음도 산산조각이 나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 같았다. 핸드폰과 지갑을 챙겨 사무실을 나왔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동료가 인사를 건네자 반갑게 받아 주었다. 가벼운 농담까지 건넸다. 그리고는 근처 대학병원 정신과로 향했다.
"진료 좀 받으러 왔는데요."
"점심시간이 다 되어 진료가 끝났어요. 2시 이후에 다시 오세요."
"이봐요, 저 지금 자살하기 일보 직전이에요. 이렇게 놔 두었다간 정말 사고 칠 것 같단 말이에요. 어떻게 좀 해주세요."
간호사가 내 얼굴을 흘깃 보더니 마지못해 1층에서 접수를 하고 오면 진료를 해주겠다고 했다. 점심시간이라 안 된다는 접수처 직원과 얼마간 실랑이를 하고 난 후에야 겨우 머리가 하얀 노교수를 만날 수 있었다.
"그래 뭐가 힘들어서 왔어요?"
"사무실에 앉아 있는데 이러다 죽을 것 같아서 왔어요."
"무슨 일이 있었나?"
"최근에 팀장이 되었는데 잘 할 자신이 없어요. 무엇을 해야 할지도,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구요. 하고 싶지도 않아요."
"능력이 있으니까 팀장을 시켰겠지. 이야기를 들어보니 지금까지 잘 해왔을 것 같은데. 우선 진정제 맞고 좀 쉬어요. 결혼했죠? 남편에게 연락하고."
나는 울면서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예상외로 남편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그리고 잠이 들었다. 꿈도 꾸지 않는 긴 잠에 빠져들었다. 얼마 후 깨어 났을 때 남편과 친정 부모님, 동생들이 와 있었다. 진정제를 많이 투여했는지 정신이 몽롱하고 기운이 없었다. 엄마를 붙잡고 울면서 하소연도 했던 것 같다. 열심히 노력해서 성공하려고 했는데 이제 끝났다고, 엄마 미안하다고. 엄마는 눈물을 훔치며 그 동안 얼마나 힘들었으면 이렇게 되었니 하셨다. 나흘 동안 입원해 있으며 이런 저런 검사를 받았지만 특별한 문제는 발견되지 않았다. 이후 수련의로 보이는 젊은 의사가 몇 번 왔다 가고 병원에서 더 이상 해줄 건 없다고 했다. 회사 동료가 다녀가고 남편이 본부장과 통화를 했다고 했다. 퇴원할 때 받은 진단서 병명란에는 적응장애라고 적혀있었다.
길이 없다고 생각했다. 버티는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팀장이 된지 얼마 안 되었는데 제대로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기에는 자존심이 허락치 않았다. 이 나이에 이 연봉 맞추어 옮겨갈 회사는 없다고 생각하니 절망스러웠다. 그만두면 된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 일어나 상황을 모면할 수 있기를 고대했다. 그러다 사단이 나고 만 것이다.
병원에서 퇴원한 후 친정에서 한동안 머물렀다. 정신과 의사는 내가 너무 앞만 보고 달리다 보니 에너지가 소진되어 그렇다고 했다. 약물 치료를 하면서 쉬면 좋아질 것이라고 했다. 한의사는 내가 기력이 없어 그런 거라며 녹용을 넣어 보약을 지어 먹으면 좋아질 거라고 했다. 그래서 양한방 치료를 하면서 요양을 했다. 회사에는 한 달을 쉬겠다고 했다. 병가를 내기가 여의치 않아 비싼 연차를 까먹으며 쉬었다. 쉬다 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 내가 그동안 몸과 마음을 혹사당했구나. 정작 중요한 나 자신과 가족들을 돌보지 않고 허깨비만 좇았구나.' 그러면서 부아가 치밀었다. 나의 정신과 육체를 폐허로 만든 곳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끝없이 추락하다 바닥을 찍고 나니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젠 포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한 달을 쉬고 결국 회사에 복귀했다. 체력이 회복되면서 한 번 더 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해보고 그만두어도 늦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 후 9개월 간 어떻게든 회사에서 버티려 안간힘을 썼다. 여기서 포기하면 지금까지 쌓아놓은 것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질까 두려웠다. 그래서 온갖 시도와 함께 마음을 다잡았다. 거금을 들여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라는 프로그램에도 다녀왔고 글쓰기 모임에 가입해 글을 쓰기 시작했고 가족 모두 결혼 10주년 기념 여행을 다녀왔다. 그 여름 출근길, 졸음운전으로 외제차와 접촉 사고가 나면서 머리 속 신호등에 빨간 불이 번쩍였다. 주변에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하지 않다간 큰일 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 근처 정신과를 찾아 갔다. 의사는 내가 우울증이라고 했다. 국내 제약회사에서 나온 카피약 한 알을 매일 아침 입안에 털어 넣고 악착같이 회사에 갔다. 남편과 테니스도 시작했다. 주말 아침마다 테니스 공에 스트레스를 담아 기합과 함께 날려버렸다. 운동을 하면 체력도 좋아지고 고비도 넘길 수 있을 거라고 끊임없이 주문을 걸었다. 그 즈음 다시 찾아 온 불면증을 치료하기 위해 용하다는 한의원도 찾아 갔다. 10월 어느 날, 하루 종일 집에서 끙끙 앓다 일어나 결심을 했다. 이제는 떠날 때가 된 거라고. 그래서 이렇게 아픈 거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로부터 정말 그 곳을 떠나기까지 한 달 반이 걸렸다.
결국 그 해 말, 나는 14년간의 직장생활을 마감하고 1년 동안의 안식년을 선언했다. 안식년 휴가 동안 하고 싶은 일 10가지를 정했고 내 인생 처음으로 취미생활을 시작했다. 항상 마음에만 담고 있었던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에 지원했고 치열한 경쟁을 뚫고 7기 연구원으로 선발되었다. 연구원 과정에 참여하면서 신화, 역사, 철학, 경영 서적을 읽으며 ‘나는 누구인가’를 탐구했다. 그러면서 나의 과거와 나 자신을 되돌아 보았다. 나의 문제가 무엇일까 고심했다. 그러다 마침내 깨달았다. 나의 문제는 ‘인정받고 싶은 욕구로 인해 쉬지 않고 일하다 결국 지쳐 나가 떨어져 버린다’는 것이었다. 안식년 휴가 동안에도 나는 너무나 열심히 전략적으로(?) 쉬고 있었다. 안식년의 한 가운데에서 나는 예전과 다름없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여전히 분주했으며 여전히 야심차고 시간에 쫓겨 동동거리며 사는 내 모습. 나는 안식년에도 무엇인가를 하고 있지 않으면 불안했다. 쉬지 않고 전진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그래서 안식년은 휴식의 시간이 아니라 그 동안 미루어 놓은 일들을 ‘해치우는’ 시간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나 같은 인간에게도 쉼은 필요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어떻게 쉬어야 하는가? 집에 가두어 놓아도 집안에서 뭔가를 바쁘게 하고 있을 나 같은 인간들에게 휴식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양이 아닌 질적으로 충만한 휴식은 어떤 것일까? 나 같은 인간이 일과 삶의 균형을 얻기 위해서는 어떤 기술이 필요할까? 이 책은 이 모든 궁금증에 대한 나의 결론이다.
이 책은 인정받고 싶은 여자의 휴식법에 대한 것이다. 이 책은 나에 대한 문제제기이자, 해결과정이자, 그 결과다. 나는 누구에게든 인정받지 않고는 한시도 견딜 수 없는 류의 인간이다. 그래서 매사에 열심이다. 무엇이든 대충하는 법이 없다. 나는 완벽한 수퍼우먼이고 싶었다. 나는 근사한 아내, 살가운 며느리, 자상한 엄마, 능력 있는 직업인의 가면을 능숙하게 바꾸어 써가며 열심히 살았다. 그렇게 14년을 살고 나니 나는 없고 껍데기만 남아 있었다. 많은 것을 가졌지만 마음은 가난했다. 나의 주변 사람들은 행복한데 나는 불행했다. 몸과 마음이 무너져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이 책은 나와 비슷한 사람들에게 구원의 손길이 되어 줄 것이다. 특히 직장을 다니며 아이를 키우는, 인정받고 싶은 여자에게는 더욱 그럴 것이다. 그들의 문제는 자신의 욕망과 현실 속에서 자아를 잃고 탈진해 간다는데 있다. 번 아웃 신드롬이란 말을 아는가? 인생은 100미터 달리기 시합이 아니다. 행복하게 인생이라는 장거리 경주를 완주하기 위해서는 쉬는 법도 알아야 한다. 하지만 쉬는 방법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 일하는 것이 더 재미있고 더 쉬운 사람들이 실제로 존재한다. 이 책은 그런 사람들의 삶에서 무엇을 덜어내고 무엇을 더할지, 무엇을 강화하고 무엇을 변화시킬지 조언하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은 전술적 의미에서의 휴식법은 다루지 않았다. 휴식에 효과적인 목욕법, 운동 종목, 여행지, 호흡법, 수면법 등을 이야기하기 보다는 근본적인 해결책을 탐구했다. 즉, 우유를 많이 짜는 기술적인 방법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질 좋은 우유를 얻기 위해 젖소를 행복하게 만드는 방법을 고민했다. 또한 성공한 여자들의 휴식에 대한 인터뷰와 일반 여성들의 <고민 클리닉>을 통해 이 땅에 사는 인정받고 싶은 여자들의 실질적인 고민과 이에 대한 현실적 대안을 모색했다.
나는 이 책의 최대의 수혜자다.
나는 이 책을 통해 나의 문제를 해결하고 나의 삶의 한 가운데 유유히 흐르는 강 하나를 만들었다. 원하는
삶을 살되 에너지가 고갈되지 않게 하고, 나의 역할에 충실하되 남만 기쁜 삶을 일구지 않게 되었다. 나는 전진하되 주변 풍광을 즐기며 갈 수 있게 되었고 나는 성장하되 키만 멀대 같이 큰 콩줄기가 되지 않게
되었다. 쉼의 즐거움을 알게 되었고 일의 고마움을 깨닫게 되었다. 이
책은 나의 삶을 바꾸어 주었다.
나는 이 책이 당신의 삶도 바꾸어주길 바란다. 이 책을 마음으로 읽고 몸으로 실천한다면 당신의 삶도 바뀔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인정받고 싶은 여자, 당신의 건투를 빈다.
2013년 3월
유 재 경

음... 소진 증후군,
이름을 더럽히지 않을려거든 좀 더 열심히 하던지 아니면 욕심을 버려라.
=> 전자는 한계에 와 있고 후자는 버릴 수 없겠지 성품으로 굳어졌으니. 그렇다면...
자신을 태워서 불을 밝혔으니 그랬겠지만 껍데기만 남았다는 생각은 무엇때문에 오는가?
=> 타인의 시각에서 무엇으로 인하여 나는 남으로부터 인정받고 있는가?
나는 무엇으로 인하여 인정받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 생각의 타당도는 확실한가? 그런 만족의 생각을 충족시켜주는 신뢰는 어디서 오는가?
30대의 코칭법과 50대의 코칭법은 당연히 달라야 한다.
20대말에 척추수술까지 받아가며 가르쳤던 2년에 걸친 노력의 성과와
최근에 2년동안 고민하던 선수의 문제를 일주일만에 해결하는 방법은 무엇이 다른가?
그대는 '완전무결 매력 체감의 법칙' 을 알랑가?! ^^
젓소를 행복하게 해 주는 것은 사랑이겠지만 인정받고 싶은 여자를 행복하게 해 주는 것은 무엇일까?
=> 건투를 빌어주는 거 ? .... 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