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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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신치의 모의 비행> 혹은 <청춘으로부터의 사색> 서문쓰기
‘맷돌’이라는 단어를 놓고 생각해봅시다. 여러분은 맷돌이란 단어에서 무엇을 연상합니까? 아니 어디에 있는 맷돌을 머리에 떠올리고 있습니까? 생활사 박물관이나 청진동 빈대떡집에 있는 맷돌을 연상하는 것이 고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곳에서밖에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는 외갓집 장독대 옆에 있던 맷돌을 떠올리고 있습니다. 언어는 소통의 수단입니다. 맷돌이라는 단어는 그 단어가 연상시키는 경험 세계의 소통 없이는 결코 전달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나의 동양고전 독법, 강의> 중 p301)
청춘. 청춘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연상시키는 경험이란 무엇일까? 2011년 대한민국에서의 ‘청춘’은 백수, 백조, 알바, 불완전노동, 비정규직 등의 단어들과 동의어이다. ‘88만원 세대’라 불리기도 한다. 하지만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단어는 ‘불린다’는 것이다. 이런 단어들은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청춘들 스스로가 붙인 단어가 아니다. 이미 ‘청춘’이란 시기를 지나쳐 온 많은 기성세대들이 그들을 그렇게 부르고 있는 것이다. 신문, 뉴스, 책, 강연 다양한 매체들을 통해 청춘을 보이는대로 명명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온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듣고 있는 청춘들의 직접적인 목소리는 듣기가 쉽지 않다. 현재의 청춘과 이미 청춘을 거쳐간 이들의 경험은 다르다.
그래서 나는 지금 대한민국에서 청춘으로 살아가고 있는 나의 이야기를 내 목소리로 들려 주기로 결심했다. 이 시대의 수많은 청춘들은 중, 고등학교 시절에 오로지 ‘대학’만을 목표로 열심히 달렸다. 대학에 가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당연히 찾을 거라 기대했지만, 시간이 흐르고 졸업에 가까워질수록 인생은 미궁 속으로 빠져 들었다. 졸업을 앞둔 시기에는 다들 약속이라도 한 듯 대기업 공채에 입사지원을 한다. 하지만, 수십만명의 청춘들 중 대기업에 ‘간택’되는 이들은 소수에 불과하다. ‘불합격’ 통지서를 받는 횟수에 비례해 대학 졸업만 하면 어디에서든 일을 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거품처럼 서서히 사라져버린다. 시간이 흐를수록 불안감은 점점 커져만 간다.
평범한 척 조용히 사는 건 따분하고 지루해 정신차려 나를 말려도 어쩌겠니 그게 나인데
오늘은, 하고 싶은 이대로 보여 줄 거야. 세상에. 하나뿐인 나를.
모두 삐딱한 채로 내 얼굴 본척 만척 한대도 주눅들지 않아 나에겐 이루어질 미래가 있어.
너! 그렇게, 날 무시하지마. 내일은 내가 별이 될 테니까 (가수 윤하, ‘Auditon’ 중)
알바, 백수, 백조 따위의 꼬리표가 끊임없이 따라다니면서 그들을 괴롭히기도 한다. 하지만, 청춘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꿈을 꾸고 있다. 취업에 실패해 군대에 다시 가는 청춘은 그가 다시 접할 그 세계에서 또 다른 꿈을 꾸고, 그곳에서 기회를 모색한다. 대한민국이 아닌 호주의 고기 공장을 선택한 청춘은 그 세계에서 다른 꿈을 찾거나 이미 다른 꿈을 찾아 그곳을 선택했다. 비정규직으로 1-2년마다 회사를 옮겨다니는 청춘도 회사가 아닌 다른 어떤 곳에서 자신만의 꿈을 꾸고, 그 꿈을 향해 달려간다. 흰 쌀밥과 검은 김으로 만들어져 있으면 다 똑같은 김밥처럼 보이지만, 그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맛을 보면 모두 다른 재료들로 채워져 각기 다른 이름의 김밥으로 불린다. 이처럼 청춘들도 청춘이 아닌 이들의 눈에는 그저 똑같은 청춘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의 머리 속, 가슴 속에는 보이지 않는 꿈의 불씨가 살아있다. 그리고 그 불씨는 바람 한번 훅 불면 날아갈 정도의 그런 꿈은 아니다. 그 불씨로 청춘들의 가슴을 뜨겁게 달구고, 청춘들 스스로 뗄감을 열심히 넣으면서 불씨를 점점 키워나간다. 이렇게 각자의 가슴에 불씨 하나씩 심고 살아가는 청춘들은 생각보다 많다.
88만원 세대 등의 단어들로 불리기에 청춘은 너무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지고 보이지 않는 그들만의 꿈을 꾸고 있다. 기성세대들이 청춘을 보며 안타깝고 안쓰러워 하는 알바, 비정규직 노동은 청춘들에게 어쩌면 하나의 수단일지도 모른다. 그들의 가슴에 있는 꿈의 불씨를 활활 타오르게 수많은 뗄감 중의 하나일 뿐이다.
나는 그저 내 경험의 세계를 있는 그대로 솔직히 보여줌으로써 각자의 가슴에 불씨를 지닌 이들과 소통하고 싶다. 좌충우돌 구직기를 통해 직장 구하기는 정말 힘들지만, 꿈이 있기에 지금 잠깐 겪고 있는 어려움은 아무것도 아님을 보여주고 싶다. 졸업한지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학자금 대출을 갚느라 쥐꼬리만큼 받는 월급으로는 먹고 살기 힘들지만, 나에겐 꿈이 있기에 전혀 힘들지 않음을, 지금의 내 인생을 온전히 즐기면서 살고 있음을 얘기할 것이다.
물론 청춘들 중에서 아직 자신의 가슴 속에 품을 불씨를 발견하지 못해서 괴로워하고 있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 대학에 들어와 한창 꿈에 부풀어 있는 이들에게는 ‘니가 잘못해서 그런 것 아니냐? 나는 그렇게 살지 않을거야’라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그들에게 빨리 당신의 내면에 꿈틀거리는 불씨를 찾아서, 너답게 살라고 충고하고 조언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그저, 당신과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청춘들 중에 한 명에 불과한 내가 나의 이야기로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도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싶다. 그래서 당신이 생각하는 것 외에도 당신의 청춘을 즐길 수 있는 의외의 길이 존재하고 있음을 이야기해 주고 싶다.
청춘이 들려주는 청춘의 이야기. 이것이 리얼이다.
내 인생의 모토는 이것이다. “신나고 치열하게 살자!!!”
인생에 정답이란 없다. 나는 그저 내 인생이 끝나는 그 시점이 다가왔을 때, “내 인생의 모범답안이 완성되었다.” 라고 이야기하고 싶을 뿐이다.
#꼭지9. 노세노세 젊어서 노세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대학 동기, 선후배부터 시작해서 첫 직장을 다닐 때에 수없이 만났던 나의 고객들. 이렇게 많은 이들 중에 10명 중 8-9명이 한결같이 하는 이야기가 있다.
“대학 다닐 때 실컷 놀았어야 하는데… 여행도 많이 다니고 말이지.”
대학생 시절엔 돈이 없어서 마음껏 놀러 다니지를 못한다. 그리고 막연히 생각한다. 직장생활을 시작하면, 돈을 벌 테니, 그 때 돈을 벌어서 열심히 놀러다녀야지. 라고 말이다. 그런데 막상 직장생활을 시작하면, 돈은 있는데 돈 쓸 시간이 없다. 그리고 시간 많았던 대학생 시절에 빚을 내서라도 여기저기 많이 돌아다니고 놀았어야 하는데..라는 후회를 하곤 한다.
이렇게 후회하는 사람들과 만나면, 나는 늘 그들에게 얘기한다.
“아… 그러시군요… 저는 대학 다닐 때 너무 많이 놀아서 아쉬운게 없어요. 오히려 저는 지금이 훨씬 좋아요~~!!!”
이렇게 얘기하면, 대부분의 반응은 이렇다.
“정말요? 부럽다. 아쉬울 것 하나 없을 정도로 열심히 다녔다니. 부러워요.”
물론 그 중에 일부는 “아, 저도 아쉬울 것 없이 실컷 놀았어요. 저도 지금이 훨씬 좋은데요?”라는 반응을 보인다.
정말 대학 다니는 4년동안 하루종일 집에 붙어 있었던 날이 단 하루도 없었을 정도로 엄청나게 돌아다녔다. 심지어 몸이 아무리 아파도 약을 먹고, 약 기운에 잠을 푹 자고 일어나서, 새벽에 나갈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해외 여행을 1년에 한번씩 다닐 정도로 돌아다녔거나, 대학 생활 중 1년을 어학연수로 해외에 나가서 시간을 보낸 경험은 없다. 그저 사람을 좋아하고, 그 사람들과 만나서 편하게 한잔 하고 그들과 마음 속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술자리가 좋았다. 물론 이런 생활을 위해 다른 친구들이 가진 것을 모두 가질 수는 없었다. 내가 유일하게 포기했던 것은 ‘학점’이었다. 매 학기마다 나의 ‘목표 학점’은 ‘3점만 넘기자’였다. 졸업을 앞두고 온갖 기업들에 입사원서를 내면서, ‘내가 학점 목표를 조금 더 높이, 3.5 정도로 잡았어야 했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하지만, 학생회, 동아리, 학회 등 온갖 활동들을 하면서 목표 평점은 한 학기를 제외하고 모두 채웠고, 결과적으로 졸업학점도 목표치를 넘겼다. 계절학기 등의 정규 수업 외에 학점을 더 잘 받기 위한 학비를 더 내야 하는 부가적인 수업을 듣지 않은 것만으로도 스스로 만족하고, 대견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얼마 전, 요즘 일 때문에 어깨가 자주 아프다고 하시던 엄마가 침을 맞으러 병원에 갔다오셔서 화장실에 앉아 있는 내게 말씀을 하셨다.
“오늘 병원 갔더니, 침 맞으러 온 사람들이 대부분 나이는 50-60대이고 젊어서부터 아직까지 몸 쓰고 힘든 일 하는 사람들이야. 젊어서 고생하면 늙어서도 고생한다니까. 그러니까 너도 힘든 일 하지마. 편안한 일 해.
옛날 여자들 수명이 왜 그렇게 짧았겠어? 애 열명씩 낳고 서방한테 마고자 지어주면 서방은 나가서 바람이나 피고 말이지. 그 옛날에 전기밥솥이 있길 했어? 아궁이에 밥하고, 밭에 나가서 일하고. 그렇게 고생하니까 일찍 죽을 수밖에 없는 거야.”
이 말을 듣고 있는데 왜 이렇게 웃음이 나는지. 보통의 엄마 나이 또래의 부모님들 같으면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 젊었을 때 많이 고생해라.”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보통인데, 우리 엄마의 생각은 정말 독특하다. 물론 옛날 사람들이 여자들 뿐만 아니라 남자들도 수명이 짧았고, 수명이 짧은 것은 의료환경 등 여타의 다양한 환경들이 있었겠지만, 왠지 엄마의 말이 틀린 것만 같지는 않다. 그리고 엄마의 말 이면에는 젊어서 고생 하지 않으려면, 공부 열심히 해라.는 말도 생략되어 있음을 알고 있다. 또한 젊어서 고생한 사람이 늙어서도 고생할 수 밖에 없는 사회적 구조라는 것도 말이다.
하지만, 여행 가고 싶어도, 나이 들어 여유 생기면 가기 위해 젊을 때 허리가 휠 정도로 일을 하면서 돈을 벌고, 하고 싶은 것들을 포기해 가면서 살고 싶지는 않다. 주변에 이런 생각으로 젊을 때 열심히 일하면서 집 장만하고, 애들 키우고, 나이가 들어서 여행을 다니는 부모님을 가진 친구들이 내게 하는 말이 있다.
“이제서야 여유가 있어서 여행 다니는 엄마가 나한테 그러더라고. 나이 드니까 무릎 아파서 돌아다니지도 못하겠다. 이래서 젊을 때 많이 다니라고 하는가벼. 너는 지금 팔팔할 때 여기저기 많이 다녀.”
나와 내 친구들만 보더라도, 지금 이렇게 자유롭게 잘 살 수 있는 것은 다 부모님들이 그 분들의 삶을 희생해 가며 우리를 키워주셨기 때문임을 알고 있다. 그리고 언젠가는 부모님들께 우리가 받은 것만큼은 아니더라도 그분들의 희생에 보답해야 하는 날이 올 것이라는 것도 말이다. 그렇지만, 내 삶을 내가 아닌 누군가를 위해 온전하게 희생하기보다는 나의 인생을 찾고, 충분히 즐겨가면서 나누고 싶다. 이기적으로 보일지라도.

대책없이 미치고 싶음. 그러나 쉽지 않지.
그런 글을 쓰고 싶다면 너 역시 그런 삶을 살아야겠지.
이리 살아도 사는 구나. 이리 살아도 남자가 있구나.
그래 남자를 구해라....ㅋㅋㅋㅋㅋ
너의 엄마는 정말 멋진 분이다. 여전히 너에게 개쳑이라는 코드를 던져 주시지.
자유를 꿈꾸게 해주시는 분이고.
아는 동생중에 학자금 대출을 받고 홀 아버지가 있는 동생이 있다.
선택을 할 때마다 신중해 지더라고,
그런 그녀가 이제는 "그래 내 인생인데,"하며 꿈을 꾸기 시작했다.
이런 사람들에게 희망적인 글이면 어떨까?
어쩌면 교육과도 맞닿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20대가 꿈꾸는 인생.
현실에 찌들더라도 우리가 항상 꿈꾸워 왔던 그 인생
그건 그 때가 아니면 절대 꿈꾸지 못한 그런 무모한 인생.
그것을 위해 나아가는 하나의 인생 길잡이.
내면의 소리를 듣고 따라나가세요.
네가 떠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우리는 알고 있다.
얼마나 많은 현실의 제약이 걸린 일인지 우리는 알고 있지.
하지만 네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떠난다면 우리는 그것을 희망이라 기억하겠지.
네 나이를 살아내는 많은 이들이 그것을 희망이라 위로라 기억할 거다.
그리고 다시 꿈을 꾸겠지.
다른 세계로 나아가는 것은 네 꿈이겠지만
그 안에서 어떤 누군가는 자신의 꿈을 위해서 한 발을 걸을 꺼다.
그럼 대단한거 아니냐?

사부님이 말씀하신 처칠의 삶 - "딱 달라 붙어 있어라"
그렇게 착 달라붙어서 세번째 서문을 썼구나.
군대간 친구의 이야기가 단 한줄로 줄여버린 그대의 글.
그런 느낌들이 이전 서문에서 느끼지 못했던 정갈함을 준다. 나는 좋다.
하지만 제목으로 달아놓은 두가지 중 후자의 사색이라는 것은 느낌이 그다지...
"미나의 모의비행"이라는 제목은 궁금증을 준다. 들춰보고 싶다. 무슨 내용인지.
"청춘으로부터의 사색"이나는 제목은 짐작하게 한다. 그런 내용이겠지....눈길을 주면서 지나친다.
첫끝발이 개끝발이 되지 않도록...
계속 길~~~~~~~~~~~~~~~게 쓰도록...너는 그렇게 시작하였으니....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