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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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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2월 4일 23시 59분 등록

난 포기가 빠른 편이었다. 어떤 일이 재미있어 보이면 시작을 했고 흥미가 떨어지면 금방 그만두곤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대부분의 동기들이 취업전선에 뛰어들었을 때 나는 미대를 가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프랑스로 떠났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먼 나라로 떠나게 되면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는 것과는 달리 어떤 학교를 가야겠다던가, 가서 어떻게 준비를 해야겠다와 같은 계획은 전혀 세우지 않은 채로 일단 어학연수부터 시작하면서 생각하자는 마음만 가진 채로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지방에서 6개월간의 어학연수를 마치고 파리에서 살아보고 싶어 파리의 한 대학교 어학원에 등록을 하고 파리로 올라간다. 미대를 준비하기 위해 포트폴리오를 만들어야 겠다는 생각에 한 개인 화실에 등록을 하였다. 화실선생님은 동양인이 낯설지 않으신 듯 했다. 간간히 들리는 말로 조합해 보자니 전에 한국 사람이 다녔었다고 하시는 것 같다. 보자르를 준비하고 싶다고 하니 이곳에서 준비해서 보자르에 입학한 학생이 있다고 얘기하신다. 사람들하고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그림 그리는 것 자체에 재미가 붙기 시작해 처음에는 화실 다니는 것이 재미가 있었다. 하지만 하루에 3시간 이상을 꼬박 서서 그림을 그리자니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화실 선생님은 이런 저런 미술관련 잡지를 주며 읽어 보라고 하시는데 모르는 단어가 반 이상이고 원활하게 해석이 되지 않으니 그것을 받아들고 가는 자체가 부담이 되었다. 그렇게 화실을 다니던 중 한 전문학교를 알게 되고 애초에 계획에도 없었던 디스플레이 학과에 덜컥 접수를 하게 된다. 학교를 다니게 되면서 화실을 하루 이틀 빠지게 되었고 돈을 낸 기간이 많이 남았음에도 가서 뭐라 설명도 하지 않은 채 그만 다니게 되었다. 등록한 학교에는 다행이도 같은 반에 나 말고 한국인이 2명 더 있어 적응 하는 데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어학은 여전히 많이 딸렸지만 실습 위주로 수업이 돌아갔기 때문에 눈치껏 다른 아이들이 하는 것을 보고 뭘 해야 하는지 파악을 할 수 있어 수업을 따라가는 데는 큰 문제가 없었다. 처음에는 이것저것 새로운 것들을 배우는 것이 재미있기도 하고 신기했지만 학교를 다닌 지 1년 쯤 되고 프랑스에 온지는 2년 쯤 되었을 때 내가 여기서 계속 학교를 다니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그 당시 내 나이는 26살이었는데 그때는 왜 그렇게도 그 나이가 버겁게 느껴지던지... 어차피 보자르를 다시 준비할 것이 아니라면 별로 대단하지도 않은 지금 학교는 그만두고 한국으로 돌아가서 뭐라도 다시 시작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당시 오페라 근처를 산책하다가 그 건물에 큰 광고 현수막이 걸려 있는 것을 보게 되었는데 거기에 한 여자가 꽃을 들고 실내 장식을 하고 있는 사진이 인쇄되어 있었다. 그 사진을 보며 디스플레이도 조금 배웠겠다 그걸 이용해서 꽃으로 장식하는 일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집에는 별다른 상의도 없이 그만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통보를 한 뒤 학기가 끝나자마자 짐을 챙겨 프랑스를 떠나게 된다.


떠날 때는 학교를 다 마치지 못했다는 데는 전혀 아쉬움이 없었다. 애초에 구체적인 계획이 없이 왔던 것처럼 돌아갈 때도 큰 망설임이 없었다. 한국으로 돌아와서 꽃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을 찾다가 한 프랜차이즈 플라워 샵에 다니게 된다. 꽃일을 배우는 것은 재미있었다. 겉에서 보는 것처럼 우아하게 꽃을 만지는 것보다는 큰 화분을 옮기고 나무를 화기에 심어 옮기고 새벽에 꽃 시장을 다니는 것과 같은 예상치 못한 육체노동이 많았지만 큰 화기에 디스플레이를 위한 꽃을 꽂는 것을 배우고 만들어 직접 설치를 하는 일은 재미있었다. 한 일 년쯤 지났을까? 몸이 여기저기서 아프다는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고 꽃 일을 하는 것에도 재미가 서서히 떨어지자 나는 또 다른 일을 찾기 시작한다. 그때 눈에 들어온 일은 세계 각 지에 체인을 둔 리조트에서 일하는 지오라는 직업이었다. 그 일을 하기 위해선 영어가 필요했다. 마침 그 당시 내가 나가고 있던 한 모임은 필리핀의 한 도시에 소도시를 이루어 각국에서 온 사람들과 공동체 생활을 하며 지역 자원봉사를 하고 있었는데 기간이 적절하게 맞아 떨어져 그곳에서 8개월 정도의 기간을 지내는 것으로 계획을 잡고 필리핀으로 떠나게 된다. 가서 보니 한국에서 온 아이들이 세 명 있었고 베트남, 인도네시아, 독일, 오스트리아, 미얀마, 태국, 필리핀에서 온 아이들이 십여 명이 되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과 함께 지내본 경험도 없었고 아무래도 각각의 문화차이에서 오는 갈등도 있기는 했지만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자 지내는 것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영어가 주목적이었음에도 다들 영어가 익숙한 아이들이 아니고 따로 영어 수업을 받는 것도 아니다 보니 한국에서 콩글리쉬를 배우는 것과 같이 그곳에서는 타글리쉬-필리핀 어는 타갈로그라고 한다-를 배우게 된 것이다. 우리를 관리하던 분은 한국 분이셨는데 우리끼리 말하는 것을 보시고는 통하는 게 신기하다고 하실 정도였다. 언어에서는 그다지 많은 소득을 얻지 못했지만 여러 나라 아이들과 지내게 되었던 일은 새로운 경험이었다. 계획한 기간이 지나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는 영어가 많이 늘지 않아 떠나기 전에 생각했던 일은 엄두도 못 내고 나는 또 다른 일이 없을까 찾기 시작한다.


늘 이런 식이었다. 뭔가를 시작할 때는 큰 망설임 없이 시작하지만 제대로 끝마무리를 짓는 일은 없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뭔가를 시작해서 제대로 끝까지 가보고 그만 두는 것이 아니라 뭔가 잘 될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거나 흥미가 떨어지게 되면 서슴없이 그 자리에서 그만 두었다. 이러다 보니 나의 이십대는 정착하지 못하고 이리 저리 방황하며 후회로 가득 찬 시간으로 채우게 되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참 아쉬운 순간들이다. 프랑스에 있을 때도 나는 어학을 배우기에 참 좋은 환경에 있었다. 어학연수를 하며 지내던 곳은 나 말고 프랑스 아이들 셋이 하숙을 하고 있었는데 그 아이들과 부엌에서 마주치는 것이 꺼려져서 식사시간을 피해 부엌을 사용하였다. 처음 언어를 배우게 되면 어수룩한 게 당연한 것인데도 내가 말 했을 때 그 아이들이 한 번에 못 알아듣는 게 너무 창피했고, 버벅거리는 내 발음도 부끄러웠다. 파리로 올라와서 몇 군데의 원룸을 거쳐 마지막에 지내던 집은 프랑스 가정집이었는데 그 집 부부는 아이가 넷이었다. 내가 살기 전에도 한국학생이 지내서 그런지 그 가족들은 한국 음식 냄새에 거부감도 없었다. 그럼에도 난 여전히 되도록 부엌에서 마주치지 않으려고 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일부러 그런 환경을 만들기도 어려웠을 거란 생각이 든다. 학업을 다 마치지 못한 것보다도 난 그곳에서 내가 누릴 수 있는 환경을 충분히 이용하지 못한 것이 더 후회가 된다.


목표한 바를 이루지 못하고 포기한 것보다도 그때 그 순간에 집중하지 못한 것이 늘 후회로 남았다. 순간에 충실했다면 계획한 결과는 아니더라도 예상치 못한 다른 것을 쥘 수 있었을지도 모르고 설사 표면적으로는 아무것도 얻지 못했을지라도 그 과정 안에서 배울 수 있는 것들은 반드시 있었을 것이다. 플라워 샾에서 일했을 때도 매장에 있다 보니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 당시 환경에 적극적으로 집중했더라면 사람들을 대하는 법을 좀 더 배울 수 있었을 테고, 필리핀에서 공동체 생활을 할 때도 나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을 좀 더 기울였다면 다양한 문화의 아이들과 좀 더 깊게 교류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나를 둘러싼 환경을 어떻게 이용할까 보다는 부족해 보이는 것에 집중하며 불평을 했고 내 뜻대로 일을 흘러가지 않으면 어떻게 극복할까를 생각하는 것보단 빨리 단념하는 것을 선택했다.


왜 그렇게 포기가 빨랐던 것일까? 늘 결과에만 집중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모든 일에서 좋은 결과를 낼 수는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좋은 결과를 낼 것이 아니라면 어느 순간이든 그만 두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거기에 투자한 시간은 중요하지 않았다. 어차피 결과가 좋을 것이 아니라면 지난 시간을 아까워할 것도 없고 시간을 더 투자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결과에 상관없이 그 과정에서 무언가를 배울 수도 있을지 모른다는 것은 고려해보지도 않았다. 과정 안에서 마주치게 되는 장애물은 나에게 넘어야 할 것이 아니라 피해야 할 것이었다. 어쩌면 나는 그 시간을 충실하게 보내지 못했던 것에 대한 후회보다도 앞에 놓인 장애물을 피하기에만 급급했던 것에 대해 더 아쉬워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 장애물이 나를 성장시킬 수 있는 삶의 한 단계였을 테니깐.


지금도 나는 망설이고 있다. 이 단계를 넘어야 할 것인가? 이게 과연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 해보지 않고서는, 끝까지 가보지 않고서는 알 수 있는 것은 없다. 결과의 성패에 상관없이 과정을 한 단계 한 단계 밟아가는 것에 집중하다보면 성패에 대한 압박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 삶에서 중요한 것은 얼마나 성공했느냐가 아니라 앞에 놓은 장애물을 어떻게 넘어섰느냐가 아닐까? 미국으로 입양되어 상원의원을 지내고 있는 신호범 박사는 한 강연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인생은 폭풍이 지나가길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폭풍 속에서 춤추는 것이다.’ 삶에서 만나게 되는 폭풍들을 피하면서 살 수는 없다. 그러니 그 안에서 춤을 출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폭풍은 자연스럽게 지나가게 되고 그 안에서 춤추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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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미
2011.12.05 00:19:22 *.23.188.173
언니의 글은 어떤 의미에서 가장 힘들다.
교과서를 읽는 느낌이랄까?
그래요, 알지요. 세상을 사는 자들은 모두 알아요.
우리가 왜 포기했는지 우리가 왜 그대로 가지 않았는지
우리는 "왜"라고 묻고 싶어요.
그 미친 열등감이라는 대답을 듣고 싶어요.
그 다음엔 이 열등감을 어쩌라고?  라는 대답을 듣고 싶어요.
그 사람의 명언 앞에서 언니는 뭔가를 깨달았나요?
이제 폭풍 속에서 춤춰야 겠다는 느낌이 오나요?
언니의 책을 읽는 자들은 어쩌면 이론에는 충실한 사람들일걸요.
그래요. 열등감이 있어요. 그런데 어떻게 춤을 추지요?
언니는  지금 열등감을 극복하는 삶을 사나요?

제 인생의 화두 하나는 열등감이예요.
저희 오빠는 항상 나보다 나았던 종자예요.
내가 전교 19등을 해오던 그날 그 놈은 매우 떨어진 성적으로 전교 12등을 해왔지요.
아빠는 내가 성적이 올랐다며 외식을 했지만 엄마는 오빠의 떨어진 성적을 마음에 떨쳐버리지 못했어요.
처참한 저녁이었지요.
아직도 이 열등감은 극복이 쉽지 않아요.
그건 정말로 힘든 언니의 테마겠지요.

아무리 노력해도 힘든 의사인 그놈.
그놈에 대한 열등감을 넘어서는 해결책은 무엇일까요?
아직도 저는 그놈이 힘든 걸 보면 꼬신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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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05 22:16:52 *.112.98.15

아직은 나도 이거다 라는 해결책은 제시해 줄 수 없어.
어쩌면 그걸 찾아가는 과정이 바로 책을 쓰는 과정이 되지 않을까 싶네.
지금은 이렇게 내가 해서 후회하고 있으니 그렇게 하지 말라는 말밖에는 할 수가 없다...
루미가 바라는 것이 앞으로 내가 더 많이 고민하고 하나하나 행동으로 옮겨가야 할 부분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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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해
2011.12.05 08:26:15 *.69.159.123

미선아,

내 인생에서 늘, 한숨처럼 따라다니는 "결과물"에 대한 한심함.
아침 해가 떠오르는 창 앞에서도 나를 슬프게 하는 내 글과 글씨들.....
미선아, 이 나이가 되어도 이런 생각은 끝이 나질 않아......

 '최선을 다했으면 됐어' 라고 말하는 순간에도  최선을 다하지 않았던 자신의 모습이 보이는 시간들...

“나는 이 괘를 읽을 때마다 고향의 감나무를 생각 한다 . 장독대와 우물 옆에 서 있는 큰 감나무다. 무성한 낙엽을 죄다 떨구고 앙상한 가지로 서있는 초겨울의 감나무는 들판의 전신주와 함께 겨울바람이 가장 먼저 달려드는 곳이기도 하다. 바야흐로 겨울의 입구에서 그 앙상한 가지로 서있는 나무는 비극의 표상이며 절망의 상징이다. 그러나 그 앙상한 가지 끝에 달려있는 빨간 감 한 개는 글자 그대로 희망이다. 그것은 먹는 것이거나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씨를 남기는 것이다. 나목의 가지 끝에서 빛나는 가장 크고 탐스러운 씨 과실은 그것이 단 한 개에 불과하더라도 희망이다. 그 속에 박혀있는 씨는 이듬해 봄에 새싹이 되어 땅을 밟고 일어서기 때문이다.”

그날, 말했던 그 문장이야, 두 팔을 벌리고 겨울 바람을 맞이해보자. 석과는 불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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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05 22:18:20 *.112.98.15

절망 끝에 다다라서야 그제야 희망의 빛줄기를 발견할 수 있는 건가 봐요.
바람이 매섭게 부는 요즘이 바로 그 희망의 빛을 찾을 때가 아닌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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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갱
2011.12.05 10:24:50 *.166.205.131
어떤 글보다도 그대로의 미선이가 보이는 글이라 좋다.
무언가 벽을 넘은 느낌이랄까.
이 느낌을 놓치지 말고
쭉~ 써보면 미선만의 보물들이 고구마 나오듯이 쑥쑥! 나오리라.

우리 앞에 놓인 '첫 책'이라는 장애물을 바라보며
이번엔 넘어설지 아니면 또다시 다른 흥미를 끄는 곳으로 피해갈지.
너의 선택에 눈길을 모은다.
이 오빠가 눈 커다랗게? 뜨고 보고 있다.
방황은 괜찮아. 쓰러질 수도 있어. 네 어깨의 짐도 무겁다는 걸 알고 있으니...
그렇게 폭풍 속에서도 춤을 추는 춤꾼이 되거라.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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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05 22:20:57 *.112.98.15

이젠 흥미를 끄는 또 다른 것을 찾는 것 보다
내 앞에 놓인 일을 마무리져야 한다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버렸으니
피할 구멍 만을 찾는 일은 없을 거예요.
오빠도 힘내요!! 우리가 맘으로 많이 응원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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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
2011.12.05 11:01:44 *.32.193.170
나도 경수 오빠말에 완전 공감.
뭐랄까. 이번 글을 보니 언니도 모르게 풍겨나오는 언니의 아우라(?)를 애써 겹겹히 막고 있던 그 껍질들을 뚫고 나온 느낌이얌!!!!

앞으로 기대된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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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05 22:21:44 *.112.98.15

껍질을  뚫고 나온 것 같다니 다행이다.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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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훈
2011.12.05 11:09:24 *.33.245.98
미선아,
힘들어 했지만 또 하루만큼 그리고 일주일만큼 걸었구나.
나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그리고 이렇게 지난 시간을 갈무리하고
스스로 넘지 못하고 있었던 벽들을 앞에 두고 마주보고 있구나.
그 마주봄에 지금 답이 없으면 어떻고,
후회로 인해서 마음이 아프면 어떠니...우리는 이렇게
하루만큼 일주일만큼 걷고 있으면 되는거지....
산 너머에 너무 짐착하지 말자. 화이팅.

글에 대해서는...
"왜 그렇게 포기가 빨랐던 것일까? ....." 하는 부분이 나왔을때가
미선의 글에는 나는 의자를 당겨앉는 타이밍이었어.
앞에 이야기가 나도 경험했던 부분들이고, 그래서 너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어.
그런데 앞에서 얻어낸 공감의 기운을
글의 뒷부분이 담아내기는 조금 부족한 분량...
수정을 하게 되면 조금 더 분량을 늘여보는 것은 어떠니..
마음의 들여다 보는 것도 좋고, 좀더 다짐 같은 것을 적어보는 것도 좋고...

수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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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05 22:23:30 *.112.98.15

자꾸 답을 찾으려고만 해서 더욱 어렵게 느껴졌던 것 같아요.
그러니 나를 보는 작업도 더 하기가 싫어졌던거고.
시작은 거기서부터 해야 하는데 말이죠.

이유에 대해서는 좀 더 생각해 볼께요^^
오빠도 화이팅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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뎀뵤
2011.12.05 12:22:31 *.169.218.37
미선아.
우리가 갖고 있는 두려움은 결과(실패)에 대한 두려움도 있지만 끝까지 가지 못할까봐 떠는 두려움도 있어.
전자는 가다가 포기하게 하고, 후자는 아예 시작을 못 하게 하지.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여기서 우리는 너랑 나 ㅎㅎㅎ) 일단 시작은 하자나. ㅋㅋㅋㅋㅋ
끝까지 가지 못할까봐 두려워서 시작도 하지 않는 사람보다는 낫지 않냐? 가다가 포기하는게. ㅎ
난 그렇게 생각해.

음. 하고 싶은 말은.
난 왜 그렇게 포기가 빨랐던 것일까? 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1. 그 안에서 긍정적 의미를 발견하는 작업이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2. 혹은 그게 정말 극복하고 싶은 열등감이었다면 어떤 일을 계기로 끝까지 걸어갔던 경험을 이야기하고, 어떻게 극복했는지를 꺼내야 열등감 디자인에 대한 이야기가 될 것 같아.
포기 그 자체가 끝까지 당신의 열등감으로 남아 있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거지.

어쩌면 자신의 경험을 꺼내 놓는 것보다 다른 글을 네가 더 잘 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잠깐 들었어.
이 이야기는 만나서 하자. ^^

굿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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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05 22:29:06 *.112.98.15


일단 시작이라도 하는 것에 박수는 쳐 줘야 겠다. 그래야 마무리까지 할 수 있는 동기부여를 줄 수 있겠지?
먼저 마무리까지 매끄럽게 한 선배로서 많은 조언 부탁해^^

내 이야기 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생각에  다른 이야기들을 더 넣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은 했는데
어떻게 찾아야 할지 좀 막막했거든.
오프 때 만나면 조언해 줄꺼지?
든든한 조언자를 만나 기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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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경
2011.12.05 20:38:20 *.143.156.74

왓??? 프랑스에서 미술 공부만 한 게 아니라 디스플레이, 플로리스트, 지오도 하나 중간에 관둔겨?
미선아, 이번이 마지막 기회다.
너의 열등감을 이번에는 와장창 깨뜨려버려야 네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맞을 수 있다.
언니가 도와줄 일 있으면 말해라.
마음이 약해질 때마다 정신이 번쩍 차려지는 독설을 해주마. 음하하하.
언니의 독설!!! (위로는 다른 땡7이들이 해줄거다)

PS. 근데 보자르가 뭐니? 유명한 그림 학교인가? 나같은 무식한 독자들을 위한 설명이 필요할 듯
그리고 왜 포기가 빨랐을까에 대해서 여러가지로 생각해봐.
네 안에 있는 이유가 보일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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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05 22:30:55 *.112.98.15

그날 언니가 해준 얘기가 많은 도움이 됐어요, 고마워요^^

보자르는 프랑스에 전역에 있는 국립 미술대학교를 말해요.
미처 설명을 못했네-.-;;

이유에 대해서는 좀 더 생각해 보고 정리하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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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산
2011.12.11 06:27:02 *.8.230.133

 

이런 댓글을 어떻게 받아 들일지 모르겠다.

솔직한 글과 건전한 태도에 깜작 놀랐다.  

미선! 네 글로 봐서는 너 한테는 별 문제가 없는 것 같다. 절박함이 없다는 것뿐인데...

그것도 지금 네가 느끼는 심정으로 보아서 해결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오늘 밖에서 담배를 피우면서 문에 붙여진 그림... 그 그림으로 보아서 재능도 충분하고 그림 솜씨로 보아서 노력도 충분한 것 같다.

 

글로 보아서 프랑스나 필리핀 같은 낮선 곳으로 두려움을 넘어 하고 싶은 것을 향해 뛰어드는 도전과 용기는 충분한 것 같다. 그리고 육체노동을 견디거나 낮가림을 하면서도 연수를 마치거나 플라워 일을 일 년 가까이 일했다면 인내심도 충분한 것 같다. (나도 외국 생활을 많이 해 봤고, 또 나의 친 누나가 플로리스트여서 그 일이 고되다는 거 잘 알고 있다.)

 

좀 미안한 이야기지만 너에게는 절박함이 없었다. 그러나 이 글로 보아서는 너의 문제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넉넉한 집안 형편이거나 부모님의 지나친 배려로 보여 진다.(물론 부모님이 나쁘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너의 예의바른 행동들이나 태도들로 보아서는 가정교육이 잘 되어있기 때문이다. 또 과년한 딸을 선뜻 외국으로 보내 줄 수 있는 것으로 보아서도 그렇고...)

 

열등감을 느낀다면, 그 열등감은 내게도 있다. 내가 맹목에 가까울 만큼 이기는 것에 집착하거나 1급에 이르는 온갖 교육과 박사과정에 책쓰기까지도 사실 다 “운동한 놈은 무식하다” 는 열등감의 발로다. 약간의 차이가 있다면 나는 너와 정반대의 현상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나도 일 저지르기로 한 몫하는데 나는 너와는 정반대로 쪽박을 차는 한이 있어도 끝장을 내는 것이다. 시쳇말로 영양가 없는 짓만 골라서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유는 내게는 비빌 언덕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내가 생각하는 것이다. 사실 나는 운 좋게도 좋은 스승과 후원자를 많이 가졌었다.)

 

나는 늘 배수진을 쳐야만 했다. 비행기를 탈 때마다 이 번에 못 이기면 다시 이 자리에 앉지 못한다. 이 과정을 마치지 못하면 내게는 물러설 자리가 없다. 물러서면 거기에는 천 길 낭떨어지가 있을 뿐이다. 그러니 떨어져서 죽는 것보다는 열대 맞더라도 한 대라도 때릴 생각이었고 그도 안 되면 다리라도 물어 뜯고 죽으리라는 생각이었다.(징하제...완전 미친놈이제 잉...)

 

넌 재미나 흥미가 사라지면 또 다른 뭔가를 시작할 수 있는 든든한 후원자가 있다. 설사 그것이 네 생각에는 쉽게 얻어지지 않을지라도 (부모의 동의나 지원이) 이 글로 보아서는 그렇다. 이유는 단지 그뿐이다.

 

지금은? 아마도 무의식 한 켠에서 점점 막다른 길에 몰리고 있는 것을 느끼고 있다고 보여진다. 그것은 네가 마지막에 정리하고 있는 신호범 박사의 말에서 느낄 수 있다. 너도 점점 절박해져 가고 있다.

 

‘인생은 폭풍이 지나가길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폭풍 속에서 춤추는 것이다.’ 삶에서 만나게 되는 폭풍들을 피하면서 살 수는 없다. 그러니 그 안에서 춤을 출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폭풍은 자연스럽게 지나가게 되고 그 안에서 춤추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에 입양되어간 그가 느끼는 상황은 얼마나 절박했을까? 그가 폭풍이라고 비유한 걸로 보아 충분히 짐작이 가겠지? 폭풍속에서 춤을 춰? 누가 봐도 미친놈이지... 피할 곳이 없다는 거지, 얼마나 절박한 것인지 알 수 있겠지? 그러니 어떤 놈 말대로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라고... 그 자신의 삶이 그랬겠지? 나쁘게 표현하면 지랄발광을 한 거고 좋게 표현하면 온갖 몸부림을 다 한거지... 표현이야 춤을 추는 것으로 미화했지만 말이다.

 

지금도 나는 망설이고 있다. 이 단계를 넘어야 할 것인가? 이게 과연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 해보지 않고서는, 끝까지 가보지 않고서는 알 수 있는 것은 없다. 결과의 성패에 상관없이 과정을 한 단계 한 단계 밟아가는 것에 집중하다보면 성패에 대한 압박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

 

절박함이 없는 한 이 글로 보아서 이미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재능처럼 하나의 시도일뿐 이던 예전과는 달리 이미 종반에 들어선 책쓰기 레이스의 끝을 맺을 수 있을 것 같아 보인다.

 

너에게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참고가 되었으면 한다.

 

내 아버지는 내게 그랬다.

 

“너, 아버지가 반대하는 운동을 네가 하겠다니 말리지는 않겠다. 니 인생은 네 것이니 네 마음대로 해라 다만 너의 인생에 대해서는 네가 책임을 져라! 네가 선택했으니까, 어떤 일이 있어도 부모 원망을 해서는 안 된다. ”

이것이 전부고 나는 평생 이 말에 갇혀 살았다. 그리고 그것이 나의 절박함의 근원이기도 하다.

 

그리고 언젠가 내가 칼을 놓았을 때, 한 선수가 내게 와 그렇게 말했다.

 

“선생님! 저희는요... 선생님은 펜싱에 미친 분이 아니셨던가요? 저희는 선생님이 펜싱을 그만 두면 돌아가실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선생님은 시합장에도 한 번, 안 오세요... 저희들이 보고 싶지도 않으세요? “

“그래! 난 너희들이 말하는 그 미쳤다고 말할 만큼 죽도록 노력했다. 그래서 난 뒤돌아보지 않는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 했는데 어찌 미련이 있겠느냐? 그리고 난 지금 여기서 또 죽을만큼 노력하고 있다. 너희도 그만큼이냐? ”

“왜라고 묻지마라, 싸움이 시작되면 왜 싸워야 되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오로지 사력을 다해서 싸워야 된다. 결과는 둘 중에 하나다. 거기에는 이기든지 죽든지... 둘 중에 하나만 있을 뿐이다. 우리는 오로지 이길 뿐이다. 몸이 살아있는 한 그 썩고 허약한 정신은 죽여 없애고 거듭 태어날 수 있으니까.”

 

하나 더,

“왜 끝을 내야 하냐고?” 그것은 “왜 이겨야 하냐?” 그리고 “왜 산에 오르는가?” 라고 묻는 거나 같아. 그리고 그것은 또한 “왜 사느냐?” 고 묻는거나 같아! “

어느 영화 속에서 k2를 오르려는 공학박사?! 등반가가 그의 아내에게 하던 답이 맞을지도 모르겠어... “나도 몰라, 아마 거기 가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을지 몰라!”

 

나는 그렇게 말하고 싶다.

“ 나, 이겨봤는데 그거 별거 아냐! 중요한 것은 말야 단지 해 봤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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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12 11:04:57 *.194.110.155
선배님 말씀대로 저에겐 절박함이라는 것이 없었어요.
어쩌면 열등감 보다는 절박함이 없었기에 포기가 빨랐던 건지도 몰라요.
이젠 환경적인 배수진은 제가 쳐야 겠어요.
사실 부모님을 설득해야 하는 단계까지 간 적도 없었거든요.
전 늘 통보를 했고 부모님은 대부분 수용해 주셨죠. 한마디로 호강에 족치면서 살아던 셈이예요.
끝까지 가봐도 별 것 아니라고 느끼더라도 거기까지 가봐야 정말 별게 아닌지 별거 였는지 알 수 있겠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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