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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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꼭지글은 많이 수정하지 않아, 서문만 올립니다.
#3. <신치의 모의 비행> 서문쓰기
신치가 미나에게.
미나야 초,중,고등학교 12년의 세월의 결과물이었던 대학수능시험이 끝나고 날아갈 듯한 기분이었던 그 때 기억나니? 수능시험이 끝나자마자 너는 미용실로 달려갔어. 머리가죽이 벗겨질 듯 뜨거운 아픔을 이겨내며 노란 머리로 탈색하고, 니가 그토록 원하던 회색으로 염색을 했지. 그리고 고등학교 졸업식날 당시에 니가 하고 싶었던 최고의 모습으로 졸업식에 갔어. 얼마 전, 졸업식 날 찍은 사진을 봤는데 말이야. 마구 즐거워야 하는 니 표정이 썩 좋지가 않더라. 오직 대학을 위해 달려왔던 너인데, 졸업식이 있던 2월 중순까지 원서를 썼던 세 군대 중 두 군데는 이미 불합격 통지를 받았고 나머지 한 곳에서는 여전히 후보자로 합격발표가 나지 않았던거야. 친구들 앞에서는 항상 덤덤한 척했지만, 틈만 나면 집안 구석에 쳐박혀 철철 울기만 하던 니가 아직도 기억 속에 생생하게 남아있어. 12년간 학교 생활의 결과가 단 하나의 시험으로 판가름난다는 건 어쩌면 굉장히 우울한 일이지. 어두운 방 구석에서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너는 생각했을거야.
‘아… 나는 또 대학이란 곳에 들어가기 위해 1년이란 시간을 보내야만 하는걸까? 대학. 꼭 가야하는거야? 이럴 줄 알았으면 서울로 가고 싶은 마음과 적당히 타협해서 그냥 점수에 맞춰 안전하고 무난하게 갈 수 있는 지방 대학 하나 정도는 적었어야 했을까?’라고 말이지.
그렇게 하루에도 몇 번씩 천국과 지옥을 오가던 너에게 입학식을 일주일도 채 남겨놓지 않은 어느 날, 니가 그토록 꿈꾸던 자유와 독립을 너에게 선물해 줄 대학 합격 소식이 전해졌지.
그 누구보다 간절하게 바랬던 대학생활이 시작되었고, 너는 그 누구보다 즐거운 대학생활을 했어. 취업을 위해서 1학년때부터 열심히 공부하던 몇몇의 친구들과는 달리 너는 니가 학교에서 해 볼 수 있는 대부분의 활동들을 했지. 그리고 정확히 4년만에 졸업을 하게 되었어. 하지만 막상 졸업을 앞두니, 고등학교 입시를 마치고 대학입학 원서를 넣을 때와 또 다른 불안한 마음이었지. 너는 니가 그토록 꿈꾸었던 파일럿이 되기 위해 최대한 단기간에 돈을 벌어야 했고, 그래서 수많은 기업들 중에 연봉이 큰 금융권과 대기업들을 위주로 입사원서를 냈어. 금융권을 지원하기 위해 누구나 준비했던 그 흔한 ‘자격증 하나 준비하지 않았던’ 너였고, ‘4점대의 학점과 900점대의 토익점수 등으로 훌륭한 스펙’을 갖추고 있지는 않았지만, 누구보다 다양한 활동들로 많은 경험을 쌓았던 너였기에 분명히 널 알아봐 줄 기업이 있을 거라고 굳게 믿고 있었지. 하지만, 대학입시 때처럼 너를 향해 활짝 문을 열어주는 기업은 거의 없었어. 그렇게 한 달, 두 달 시간은 계속 흘러갔고, 그 시간들 속에서 너는 끊임없이 날아드는 ‘불합격’ 통지로 불안해지기 시작했지. 그 때 기억나니? 너 같은 인재를 알아주는 데가 없다며, 이틀에 한번 꼴로 친구들과 낮술을 했던 그 시절을 말이야. 하지만, 휴학 1년은 필수코스라 여겼지던 그 때, 너와 같은 시기에 졸업하는 친한 친구들이 많지 않았지. 그래서 친구들은 너에게 잘 될 거라고, 걱정하지 말라는 말들로 위로를 해 주곤 했어. 하지만 알잖아? ‘경험해 보지 못하면, 절대적인 공감을 하기는 힘들다는 것’을 말이야. 그렇게 매일 아침 이메일로 합격여부를 확인하고, 입사원서를 쓰고, 느즈막히 친구들과 만나고, 저녁이 되면 고시원의 니 방으로 돌아가 우울함과 불안함을 견디어 내는 일상의 반복이었지.
그러던 4월의 어느 날이었어. 어느 취업사이트에 올려 둔 너의 이력서를 보고 한 회사에서 ‘같이일을 해 볼 생각이 없냐?’고 연락이 왔어. 그 때 너는 정말 뛸 듯이 기뻐했지. 마치 대학합격 전화를 받았던 그 때처럼 말이야. 그렇게 너는 네게 전화를 했던 그 회사로 찾아갔고, 니가 해야 할 일과 회사에 대해 들었어. 일을 하기로 마음의 결정을 하고 면접을 보는 날이었지. 4명의 면접관이 들어 왔고, 1시간 가량 너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이 이어졌어. 심지어 면접을 보다가 울기까지 했지. 몸도 마음도 지치고, 힘든 면접시간을 보내고, 결과를 기다리는데 이번에도 ‘불합격’이란 소식이 들려왔어. 어떻게 잡은 기회인데, 불합격 소식을 알리는 전화를 받는 순간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지. 그리고 전화를 한 면접관에게 이야기를 했어. “한 번만 기회를 더 주시면 안 되요?” 그렇게 어렵게 다시 한번의 면접 기회를 가지게 되었어. 30분 가량의 면접이 끝나고, 면접관이 네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냐고 물었어. 그 때 니가 했던 말.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
“저, 떨어뜨리시면 매일 밤마다 면접관님 꿈에 나타나서 괴롭힐 겁니다. 정말 잘 할 수 있으니 꼭뽑아주세요!!!”
그렇게, 2006년 5월 1일 노동자의 날 새벽 너는 그토록 꿈에 그리던 첫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된거야. 첫 출근을 하던 그 날의 새벽 공기는 유난히도 맑았어. 지구가 온전히 너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만 같았지. 그렇게 부푼 마음으로 교육을 받는 첫 날, 운명의 장난 같은 일이 너에게 벌어졌어. 수십군데 원서를 냈던 대기업 중에서 유일하게 너에게 면접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찾아 온거야. 그것도 출근한지 이틀째 되는 날!!. 이 면접에 가지 않으면 왠지 평생 후회할 것 같았을 거야. 그지? 그 때부터 너의 고민은 시작되었지. ‘도대체 뭐라고 이야기하고 면접을 가야하나?’라는 생각이 온통 니 머리속에 꽉 차 있었어. 다음 날, 결국 너는 출근 이틀만에 엄마까지 동원해서 회사에는 아프다고 거짓말을 하고 면접을 보러 갔어. 다행인지 불행인지 너는 면접에서 떨어졌고, 다시 마음을 다잡고, 첫 회사에 열심히 다니기로 마음을 먹었지. 그런데 회사 생활 일주일만에 너에게는 또 다른 고민이 찾아왔지. 당시에 너는 ‘파일럿’이란 꿈 하나만을 이루기 위해 오로지 ‘많은 돈’을 벌기 위한 회사가 필요했었어. 그런데 니가 첫 사회생활을 시작한 그 회사의 교육을 하루, 이틀 받을수록 ‘고객과의 약속, 고객과 오래 함께 할 사람’을 원하고 있음을 알게 된 거야. 엄청난 책임감이 필요한 일이었던 거지. 니가 생각했던 것처럼 그냥 ‘돈을 벌기 위해 가볍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던 거야. 그 책임감에 대한 중압감이 너무 컸기에 너는 상사에게 찾아가 앞으로의 너의 계획을 이야기하고 왠지 이 일을 시작하게 되면 나중에 일을 그만두지 못할 것 같다고 얘기했어. 왜냐면 너는 책임감이 꽤 강한 사람이었으니까 말이야. 니 애기를 묵묵히 듣고 있던 너의 상사가 네게 이렇게 말했어.
“미나LP 마음 충분히 알겠어요. 그런데 미나LP가 일을 열심하고 있다가 당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이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고 얘기했을 때, 고객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글쎄요….”
“아마, 미나LP를 정말 아끼는 고객들은 미나LP에게 박수 쳐주고, 축하해 줄 거에요. 그 동안 수고했고, 많이 고마웠다고 말이에요.”
그 말을 듣고 생각했지. ‘아… 그래. 내가 고객이어도, 내 담당자가 자기 꿈을 찾기 위해 떠난다고 하면 진심으로 축하 해 줄 수 있을 것 같아.’라고 말이야. 그리고 너는 니가 그 회사에 몸담고 있는 동안은 고객들에게 최선을 다하고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자신이 있었어. 그리고 10명의 동기들 중에 회사에 가장 오래 남을 수 있었고 말이야. 실제로 4년 6개월만에 니가 그 회사를 떠나는 순간, 니가 마지막 메일을 고객들에게 보냈을 때 정말 고객들이 너에게 많은 용기를 주고, 힘을 실어주었지. 그 동안 고마웠다는 얘기와 함께. 그 때 너는 생각했지. ‘아, 내가 제대로 잘 살아왔구나.’라고.
하지만 니가 처음 생각했던 것처럼 ‘파일럿’이란 꿈을 이루기 위해서 회사를 나오게 됐던 건 아니었지. 끊임없이 사람들을 만나야 하는 영업직에서 자신감도 많이 잃고, 가슴앓이하면서 힘들어하다가 오랜 시간 정들었던 그 공간을 떠날 수 밖에 없었어. 그리고 그 때부터 니 인생에 또 다른 방황의 시기가 찾아왔어. 첫 직장을 떠나 두 번째로 몸을 담게 되었던 벤처기업에서는 더 이상 월급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 되어 일 한지 5개월만에 떠날 수 밖에 없었고, 두 번째 회사에서 만난 인연으로 일하게 된 세 번째 회사에서는 처음 약속했던 일이 보류가 되면서 세 달간 제대로 된 일은 해 보지도 못하고, 결국 ‘이 회사에 아무 쓸모도 없는 존재인 것 같다는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으로 또 다시 세 달만에 나올 수 밖에 없었어. 그러는 동안 학자금 대출과 생활비가 모자라 주말에는 니 생에 처음으로 서빙 알바까지 하게 되었고 말이야. 서빙 알바 하면서 많이 힘들었지? 계속 서 있어야 하고, 니 기분과 상관없이 항상 웃어야 하는 게 아마 너한테는 많이 힘들었을 거야. 그리고 아는 선배가 사업을 시작해 일을 시작했지만, 일한만큼 월급을 받아야 하는데, 비젼이 보이지 않는 사업이라 이번에는 일주일도 채 안되어 못하겠다고 뛰쳐 나와 버렸어. 하지만, 나는 알아. 미나야 니가 끈기가 없어서 그 회사들을 나온 게 아니라는 걸. 버는 돈이 적다는 이유만으로 회사를 그만둔 것도 아니었어. 어디에서 일을 하든, 너는 너의 존재감을 느낄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던 거야. 그리고 너에게 찾아 온 두 달간의 백수생활. 처음에는 즐거웠지. 5년만에 처음으로 갖는 휴식시간이었으니까. 슬슬 생활비와 학자금 대출 걱정에 일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또 다시 회사에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니가 두드리는 문들은 굳게 닫혀서 열릴 생각을 하지 않았어. 아르바이트라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아르바이트 사이트에 니 이력서를 올려 놓은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드디어 너의 방황의 끝에 다섯번째 회사의 문이 열렸지. 두번째 회사에서처럼 월급을 못 받을 가능성은 전혀 없는 공기업이고, 세 번째 회사처럼 아무런 일도 하지 않은 채 근무시간을 보내야 하는 회사도 아니야. 단기 계약직으로 일을 하고 있지만, 너는 너만의 존재감을 충분히 드러낼 수 있는 일을 하고, 나름의 능력도 인정받고 있어. 물론, 정규직의 신입사원 월급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월급을 받고 있긴 하지만 말야.
앞으로 너에게 어떤 인생이 펼쳐질까? 내년에 너는 이태리에 가서 살고 싶다는 꿈을 꾸고 있잖아? 나는 니가 꼭 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지금은 비록 단기 계약직에 월급도 얼마 못 받고 있지만, 너는 꿈을 꾸고 있고, 그 꿈을 위해 이탈리아 친구들과 펜팔을 하면서 이태리어 공부도 하고 있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잖아. 앞으로 니가 어떤 선택을 하든 너를 응원할게. 너에게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 펼쳐질 나의 이야기가 너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되어줄 수 있으면 좋겠다. 분명 쉽지 않은, 그리고 힘든 20대를 보내고 있지만, 너처럼 꿈을 꾸면서 살아가고 있는 내 얘기 한번 들어볼래?
청춘. 2011년 대한민국에서의 ‘청춘’은 백수, 백조, 알바, 불완전노동, 비정규직 등의 단어들과 동의어이다. ‘88만원 세대’라 불리기도 한다. 하지만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불린다’는 것이다. 이미 ‘청춘’이란 시기를 지나쳐 온 많은 기성세대들이 그들을 그렇게 부르고 있다. 신문, 뉴스, 책, 그리고 강연 등 다양한 매체들을 통해 그들 눈에 보이는 대로의 청춘을 명명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온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기성세대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고 있는 청춘들의 목소리는 없다.
그래서 나는 지금 대한민국에서 청춘으로 살아가고 있는 나의 이야기를 내 목소리로 들려 주기로 결심했다. 이 시대의 수많은 청춘들은 중, 고등학교 시절에 오로지 ‘대학’만을 목표로 열심히 달렸다. 대학에 가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당연히 찾을 거라 기대했지만, 시간이 흐르고 졸업에 가까워질수록 인생은 미궁 속으로 빠져 들었다. 졸업을 앞둔 시기에는 다들 약속이라도 한 듯 대기업 공채에 입사지원을 한다. 하지만, 수십만명의 청춘들 중 대기업에 ‘간택’되는 이들은 소수에 불과하다. ‘불합격’ 통지서를 받는 횟수에 비례해 대학 졸업만 하면 어디에서든 일을 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거품처럼 서서히 사라져버린다. 시간이 흐를수록 불안감은 점점 커져만 간다.
알바, 백수, 백조 따위의 꼬리표가 끊임없이 따라다니면서 그들을 괴롭히기도 한다. 하지만, 청춘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꿈을 꾸고 있다. 취업에 실패해 군대에 다시 가는 청춘은 그가 다시 접할 그 세계에서 또 다른 꿈을 꾸고, 그곳에서 또 다른 기회를 모색한다. 대한민국이 아닌 호주의 고기 공장을 선택한 청춘은 그 세계에서 다른 꿈을 찾거나 이미 다른 꿈을 찾아 그곳을 선택했다. 비정규직으로 1-2년마다 회사를 옮겨다니는 청춘도 회사가 아닌 다른 어떤 곳에서 자신만의 꿈을 꾸고, 그 꿈을 향해 달려간다. 세계 유수의 대학을 졸업하고 그가 꿈꾸던 세계의 유명한 회사에 취업이 안되어 일단 군에 입대해 한 박자 쉬어가기로 결심한 한 청춘도 있다. 이들은 자신의 꿈으로 가는 길을 향한 지름길이 아닌 조금 돌아가는 길을 선택했을 뿐이다. 흰 쌀밥과 검은 김으로 만들어져 있으면 다 똑같은 김밥처럼 보이지만, 그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맛을 보면 모두 다른 재료들로 채워져 각기 다른 이름의 김밥으로 불린다. 이처럼 청춘들도 청춘이 아닌 이들의 눈에는 그저 똑같은 청춘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의 머리 속, 가슴 속에는 보이지 않는 꿈의 불씨가 살아있다. 그리고 그 불씨는 바람 한번 훅 불면 날아갈 정도의 그런 꿈은 아니다. 그 불씨로 청춘들의 가슴을 뜨겁게 달구고, 청춘들 스스로 뗄감을 열심히 넣으면서 불씨를 점점 키워나간다. 이렇게 각자의 가슴에 불씨 하나씩 심고 살아가는 청춘들은 생각보다 많다.
88만원 세대 등의 단어들로 불리기에 청춘은 너무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지고 보이지 않는 그들만의 꿈을 꾸고 있다. 기성세대들이 청춘을 보며 안타깝고 안쓰러워 하는 알바, 비정규직 노동은 청춘들에게 어쩌면 하나의 수단일지도 모른다. 그들의 가슴에 있는 꿈의 불씨를 활활 타오르게 수많은 뗄감 중의 하나일 뿐이다.
나는 그저 내 경험의 세계를 있는 그대로 솔직히 보여줌으로써 각자의 가슴에 불씨를 지닌 이들과 소통하고 싶다. 지금 돈 때문에, 직장 때문에 힘들고, 하는 일마다 뜻대로 되지 않아 힘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꿈을 꾸고 있는 청춘들. 세상에 나를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무척 고독하고 외롭지만, 꿋꿋하게 마음의 소리를 열심히 따르고자 하는 청춘들. 지금 눈 앞에 보이는 미래는 아무것도 없어서 그저 깜깜하고 막막하기만 하지만, 그래도 내 인생에 봄날은 반드시 올 거라고 믿는 청춘들. 이런 수많은 청춘들과 나의 경험을 나누고 공감하고 서로에게 위로가 되어 주기를 바란다.
물론 청춘들 중에서 아직 자신의 가슴 속에 품을 불씨를 발견하지 못해서 괴로워하고 있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 대학에 들어와 한창 꿈에 부풀어 있는 이들에게는 ‘니가 잘못해서 그런 것 아니냐? 나는 그렇게 살지 않을거야’라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그들에게 빨리 당신의 내면에 꿈틀거리는 불씨를 찾아서, 너답게 살라고 충고하고 조언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그저, 당신과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청춘들 중에 한 명에 불과한 내가 나의 이야기로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도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싶다. 그래서 당신이 생각하는 것 외에도 당신의 청춘을 즐길 수 있는 의외의 길이 존재하고 있음을 이야기해 주고 싶다.
청춘이 들려주는 청춘의 이야기. 이것이 리얼이다.
내 인생의 모토는 이것이다. “신나고 치열하게 살자!!!”
인생에 정답이란 없다. 나는 그저 내 인생이 끝나는 그 시점이 다가왔을 때, “내 인생의 모범답안이 완성되었다.” 라고 이야기하고 싶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