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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2월 11일 20시 54분 등록
산다는 것은 외줄을 탄다는 것이다.JPG

산다는 것은 외줄을 탄다는 것이다.

 

줄을 잘 잡아야 한다.

굵은 동아줄을.

그런데 하필 고른다는 것이 남들이 쳐다보지 않는 낡고 오래된 줄이다.

어떡해야 하나. 갈아타야 하나. 아니면 이 줄이라도 조심스럽게 잘 부여잡고 가야하나.

인생은 선택이 좌우하는 법.

까닥하면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도 있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수도 있으니, 어떤 놈을 잡느냐에 따라 인생의 또 다른 행보가 펼쳐지게 된다.

 

언제였던가. 내가 이 줄을 잡았던 것이.

그날이었다.

비가 세차게 오는 어느 날.

그랬었지. 그러하였지.

아무도 돌봄이 없는 새까만 밤.

우린 함께 하지 못하고 혼자가 되었었지.

쓰디쓴 소주 한잔에 마음을 달래며 흐느꼈었지.

엿 같은 세상. 나는 왜 이런 거야.

그러다 어느 틈엔가 나는 돌아가야 할 집을 찾지 못하고 목메어 세상을 헤매다 길바닥 모퉁이에 걸려 넘어졌지.

전봇대 하얀 가로등의 창백한 도시가 손을 내밀었지만 나는 그 손을 잡지 않았어.

그래도 나름의 곤조가 있는데.

얼마가 지났을까.

덩더꿍 춤사위에 줄을 올라타며 가고 있던 차 빌딩 사이의 새벽은 떨면서 자고 있는 나를 흔들어 깨웠지.

일어나. 일어나란 말이야.

이제 살아가야할 시간이야.

 

해가 솟았다. 언제나 그렇듯 넉살좋아 보이는 누군가의 웃음으로.

저놈의 해는 보는 사람에 따라 달라진다.

돈독이 오른 놈에게는 파란색 세종대왕 얼굴로 보일 것이고

삼일 밤낮을 굶은 놈에게는 뜨끈한 호빵으로 보일 것이며

마흔이 넘도록 장가못간 노총각의 눈에는 어딘가에 임으로 남아있을 그녀의 둥그렇고 환한 얼굴로 보이겠지.

나에게는…….

이크. 생각할 겨를이 없다. 늦었다.

남들은 곧바로 잘도 가는 길을 나는 앞서가지는 못할망정 매번 뒤처지고 거기다 헤매다 돌아서 가기도 하니.

서둘러야 한다. 이 줄이라도 놓치지 않으려면.

 

가까스로 당도했다. 헉헉.

앞이 보이질 않는다. 도대체 선두가 어디야.

그래도 뒤에 나보다 좀 더 덜떨어진 놈이 달라붙는걸 보고 그제야 가쁜 숨을 내쉰다.

내 뒤에 누군가 있다는 건 그래도 안심이 되는 일이니까.

얼마나 기다려야 되지.

배도 고프고 볼일도 봐야 하는데.

앞사람의 등을 토닥이며 부탁하려 하지만 짜식 눈매가 무섭다. 째려보면 어쩔 거야.

뒷사람을 돌아본다.

인상이 순해 보인다.

어이, 내 자리 좀 봐줘. 얼른 댕겨 올 테니까.

떨면서 볼일을 본다. 추위가 몰아치는 겨울날이지만 신기하게도 이놈은 하얀 연기를 모락모락 피우며 밖으로 나오는 자신의 숨결을 남긴다. 내속에 무언의 동력기가 있는 걸까. 어떻게 뜨거운 것이 나오는 거지. 허참 신기하네. 나도 모르는 비법좀 살짝 알려주지. 손발은 시려 추워 죽겠는데. 요지경 세상이다.

이크크. 그래도 명색이 신사 체면인데 손은 씻고 가야지.

그런데 타올이 없잖아. 나 참 무얼 해도 어설프다.

 

호랑이 없는 곳에 늑대가 설친다더니.

어설프게 보였던 그놈이 나의 자리를 내놓지 않는다.

이봐. 인간이 그러면 쓰나. 내가 부탁을 하고 가질 않았나.

사람이 그러면 안 되지. 허허~

에이, 맘 좋은 내가 참아야지. 하여튼 이런 쓰레기 같은 놈이 있는 세상이란~

그런데 어쩌나. 졸지에 맨 뒤로 가야하니.

나 참 재수 없는 놈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더니.

꼴찌로 이동을 하고나니 마음이 쓰리고 너무 아프다. 인생이 그렇다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지 않나. 돌아가는 게 낫지 않을까.

이번엔 놓치지 말아야해. 그리고 어떤 일이 있더라도 참아야지.

악착같이 줄을 잡고 앞으로 간다. 그것이 인생이기에. 그것이 남들이 말하는 세상의 순위란 것이기에.

그런데 말이다. 거기에는 무엇이 있는 거지.

 

참 돈 많은 놈은 다르다. 저 녀석은 중국집 탕수육을 시켜 먹잖아.

꼬르륵. 속절없는 뱃속은 아직까지 살아 있다는 생존의 메시지를 보낸다.

그래도 다행이다. 뱃가죽이 달라붙어서 희망조차 메말라 버린 그때가 아직 오지는 않았으니.

옆에 놈은 배낭에 어느 샌가 슬쩍 해온 도시락을 꺼낸다.

달콤한 냄새. 꿀꺽. 침이 절로 넘어간다.

맛있게 먹는다. 한입 달라고 그럴까. 그래, 사람 사는 재미란 것이 이렇게 앞선 놈 쳐다보며 욕지거리 해대는 것이지.

후회해 본다. 나도 먹을거리를 준비할걸. 하지만 사람은 망각의 동물. 항상 지난 후에 그것을 그리워하다가도 또다시 반복되는 일련의 행동을 한다. 사람이란 그런 것.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조금만 조금만 참으면 드디어 끝이 보일 그곳.

다와 간다. 힘을내.

쌕쌕되는 숨과 시큰거리는 무릎을 부여잡고 핏대를 세운다.

 

그런데 꼭 이 지랄을 떨면서 가야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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