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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2월 15일 10시 34분 등록

내가 기다리는 오늘

 

오늘이 정말 왔으면 좋겠다.

무너져 내리고, 실패해 나자빠져도 또 다시 살아갈 오늘이

그 오늘이 앞으로도 무수히 또 왔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오늘이 일초일초 아주 천천히 나와 함께 했으면 좋겠다.

 

예전에, 아주 예전에 난 오늘이 빨리 가 버렸으면 하고 바랬다.

그것에 비하면, 약간 가난하고, 이름도 없고, 그렇지만 진실과 마주대한

오늘의 내가 나는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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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가버렸으면 빨리 가버렸으면하고 바랐던 시절이 있었다.

그 때 난 알았다.

그렇게 사는 것은 진짜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그 순간 결심했다.

오늘은 기다리는 삶으로 그 살아있는 삶으로 돌아가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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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에 남겨 둔 내 슬픔

그 겨울에 나는 무척이나 슬펐습니다. 정확하게 어떤 것이 나를 슬프게 하는 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그저 사는 것이 슬펐습니다. 잠자는 시간 외에 거의 모든 시간을 회사에서 써야 하는 쳇바퀴 도는 회사 생활이 슬펐고, 내 안에서 움직이지 못한 채 갇혀 있는 내 에너지가 슬펐고, 우리 엄마의 ‘시집가라’는 후렴구가 슬펐습니다. 삶은 손에 잡히지 않았고 나는 그 삶에 자신이 없었습니다. 답이 없었습니다. 나는 점점 죽어 가고 있었습니다. 몸은 방바닥에서 떨어지질 않았고, 머리 속에는 치우지 않은 쓰레기 더미들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이러다가 죽으면 참으로 억울할 거라는 생각이 울컥울컥 올라왔습니다. 내 특유의 발랄함은 어둠에 가려졌습니다. 나는 점점 뾰족해졌고 괴팍해 졌습니다. 누구나 하고 싸우려 들었고 몇몇에게는 ‘살의’마저 품었었습니다.

날마다 일기장에 ‘나는 나를 사랑한다’라고 반복해서 적어봤습니다만, 그건 거짓말이었습니다. 이런 식으로는 천년 만년을 산다 해도 죽은 거나 다름이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냥 단 하루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은 것도 그 즈음이었습니다.



그 때 내 안에 무언가가 말을 걸었습니다.

“너 지금 행복하니?”

“아니, 나는 날마다 행복하기를 결심하지만 그렇지 않은 것 같아. 무언가 못된 놈한테 자꾸 끌려 다니는 것만 같단 말이지.”

“그게 어떤 놈인 줄은 알아?”

“잘 몰라. 그런데, 잠깐, 이건 알겠어. 그 놈하고의 관계를 끊어 버릴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그게 누군데?”

“그건 아마 ‘나 자신’일거야.”

‘나 자신이 열쇠’라는 사실. 그 사실을 알고부터 나는 무모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길 떠날 준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뭔가 잘못되면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죽더라고 행복하게 죽고 싶었습니다. 비행기 표를 끊고 사직서를 썼습니다. 부모님께 편지를 써서 공항 우체통에 넣고 아무도 모르게 그리스 행 비행기를 탔습니다.

11월, 겨울의 문턱이라 그 누구도 그리스로 여행 갈 생각을 하지 않았나 봅니다. 비행기 안에 동양인은 오직 나 혼자 뿐이었습니다. 알아 들을 수 없는 그리스어 대화만이 들려왔습니다. 나는 깊은 잠에 빠졌습니다. 기내식이 두 번인가 세 번인가 지나갔지만 나는 꼼짝하지 않고 잠만 잤습니다.

아테네 공항에 내렸더니 지중해 날씨 다운 파아란 하늘과 따뜻한 햇살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눈부신 햇살에 어울리지 않는 ‘슬픈 나’는 아크로 폴리스 근처에 방을 잡았습니다. 내 슬픔과는 상관없이 너무 아름다운 날씨는 나를 더욱 슬프게 만들었습니다. 햇살을 똑바로 바라볼 자신이 없었습니다. 가슴에 슬픔을 가득 지고 다니던 나는 무슨 일을 해도 슬펐습니다. 햇살이 내리쬐는 곳에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해도 슬펐고, 수니온 곶의 노을을 바라보면서도 슬펐고 야간에 불을 밝힌 아크로 폴리스를 올려다 보면서도 슬펐습니다.

그 슬펐던 아테네의 하루를 겨우 보내고 다음 날 새벽 4시에 눈이 저절로 뜨였을 때, 언젠가 읽었던 책에서의 ‘모닝 페이지’가 떠올랐습니다. 죽어 가던 나를 살려 보기 위해서 무던히도 애쓰던 때에 몇 일 간 시도를 해 보다가 말았었던 것인데, 느닷없이 그 아침에 다시 생각이 났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나는 거실로 내려가 조용히 한 구석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본능적으로 무언가를 계속해서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살아가는 것에 대한 슬픔이 그리고 억울함이 마구 터져 나왔습니다. 누군가에 대한 원망도 있었습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이 났습니다. 울면서 쓰다가 또 쓰다가 나중에는 북 받쳐서 소리 내어 울었습니다. 얼마 간 그러고 나니 가슴 한 켠에 약간 시원해 지는 듯 했습니다. 그제서야 약간은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 날부터 나는 모닝 페이지를 통해서 내 슬픔을 조금씩 내려둘 수 있었습니다. 모닝 페이지를 쓰던 그 거실에, 지중해의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쬐던 그 창가에, 아크로 폴리스의 신전 한쪽 기둥에, 산토리니에서 저녁 노을이 가장 멋지게 보이던 그 카페에, 파랗고 말간 에게해 바다 속에 내 슬픔을 조금씩 내려 두었습니다.

내게는 그리스가 그런 곳입니다.

IP *.56.8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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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산
2011.12.21 01:00:30 *.8.230.133
현정!
오랫만이네... 
너의 웃는 모습이 생각난다.  ^^
시원시원한 목소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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