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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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지10. 넘겨짚지 않기>
일요일 오후, 예전 보험회사에서 일 할 때 한 고객에게서 문자가 왔다.
“안녕하세요. 아직 펜 못 보내 드렸네요. 고이 모셔놓았는데 정말 우체국 갈 시간도 없어요. 소중한 펜을 찾아가시려면 혹시 연대 근처로 오실 일이 있으면 연락주세요. 아이가 입원해 있어서 내일까지는 여기 있을 것 같거든요. 신치님의 펜과 비슷한 현대해상 펜이 있는데 응급실 온다고 급하게 챙겨 나온다는게 미나님의 펜을 가지고 왔네요.”
친하게 지내던 고객 중에 한 분인데, 예전에 댁에 갔다가 큰 맘 먹고 장만했던 몇 십만원짜리 몽블랑 펜을 집에 두고 온 것이었다. 이 후에 댁에 방문 할 일이 없었고, 그러다가 회사를 그만두게 된 것이다. 그러고 나서 택배로 보내주시겠다고 했는데, 고객이 새로운 일을 시작하게 되면서 바쁘셨나보다.
사실, 얼마 전까지만해도 엄마가 그 펜 언제 찾아올거냐고 나를 계속 괴롭혔다. 심지어 펜을 두고 온 집이 어디냐고 물으시면서 엄마가 직접 찾아오겠다는 말씀까지 하셨다. 펜을 찾긴 해야겠는데, 왠지 계속 연락드리기에는 빚독촉하는 빚쟁이가 되는 것 같아서 연락을 계속 못 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쁜 마음이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비싼펜이라서 일부러 안 보내주시는건가? 라는 생각도 했다. 그래서 더 연락을 못 한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잘 사용하고 계시면 그냥 잃어버린셈 치자고 마음을 먹고 있던 참이었다. 그런 와중에 온 문자는 너무 반갑기도 하고, 이렇게 타이밍 좋을 때 얼른 찾아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굴도 뵐 겸 겸사겸사해서 오래간만에 신촌 나들이를 하기로 했다.
이유야 어찌되었건 병원에 가는데, 뭐라도 사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때마침 엄마가 시지도 않고 달달한 제주도산 귤을 한 가득 사오셨다. 귤을 봉지에 담아서 신촌에 있는 세브란스 병원으로 향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 원래 지인이었던 친구들을 제외하고 고객은 한 명도 본 적이 없어서 조금 긴장이 된다. ‘보면 어색하지 않을까? 무슨 말을 해야하지?’ 온갖 생각들로 또 머리가 복잡해진다. 생각보다 차가 막히지 않아 일찍 병원에 도착해 고객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이가 입원해 있는 어린이 병동에 있는 6인실 방 앞에 도착해서 환자이름이 적힌 이름표에 아기 이름이 있다. 조심스레 병실 안으로 들어갔는데, 그 때 마침 고객이 아이를 데리러 문쪽으로 나오고 계셨다. 너무 오래간만인데도 마치 몇 일 전에 본 것처럼 반갑게 맞아 주셨다. 병실 침대 위에 생긴 건 별론데 맛있는 귤이라고 살며시 올려놓았다. 그 때 복도에서는 환아들을 위한 간이음악회가 열리고 있어서, 아기와 함께 음악이 울려퍼지는 복도로 향했다. 아이는 자그마한 팔에 엄청 꽂혀 있는 바늘과 연결된 약이 달린 것을 끌고 누나들이 노래하는 곳으로 다가갔다. 그 사이 고객과 나는 얘기를 나누었다.
“내가 이 펜 때문에 그 동안 얼마나 마음이 불편했는지 알아요?? 비싼 펜이라고 해서 서랍에 고이 모셔놨는데, 서랍 열 때마다 ‘보내야지’하고는 바빠서 계속 못 보냈잖아. 몇 천원짜리 싸구려 펜이면 그냥 내가 꿀꺽했을텐데, 비싼펜이라서 꿀꺽하지도 못하고.”
하하하하.. 그 동안 괜한 의심을 했던 내가 민망하고 부끄럽고, 또 죄송해진다. 그리고 선의의 거짓말이 또 술술술 입술을 타고 흘러나온다.
“아.. 안 그래도 지난번에 만나 뵐려고 했을 때 너무 바쁘다고 하셔서 계속 바쁘신 것 같아서 저도 연락을 못 드렸어요.”
음악회가 금방 끝나버리고, 아이는 또래의 친구를 만나 신나게 놀고 있는 동안, 병실 입구에 서서 한참 수다를 떨었다. 그 동안 어찌 지냈는지, 요즘은 뭐하는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시간 가량 나누고 숙제를 하기 위해 근처에 있는 카페로 갔다.
앉아서 고객에게 문자를 보냈다.
“그 동안 마음 쓰게 해드려서 죄송해요. 잘 보관해 주셔서 감사하구요!!^^ 오래간만에 얼굴뵈니 너무 좋네요. 일 그만두고 고객분들 중에 처음 뵀거든요.ㅋ 종종 연락드릴게요. 내일 퇴원 잘하세요~!!”
그리고 다음 날, 고객에게 답장이 왔다.
“아이가 귤을 맛있게 잘 먹었어요. 입맛이 없고 혀가 헐고, 갈라져 따갑다고 과일을 안먹더니 맛난 귤 먹고 좋아함. 땡큐”
문자를 받자 왠지 가슴이 찡해진다. 고객을 의심했던 그 시간들이 다시 생각나면서 또 다시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다. 이제 누군가를 쉽게 의심하지는 않으리라 굳게 다짐을 한다.
<꼭지11. 사부!!!>
평일 점심시간이 되기 30분 전. 슬슬 점심시간을 맞이하기 위해 화장실을 다녀왔는데, 부재중 전화가 한 통 와 있었다. ‘어라, 사부님이네???’ 올 해 가을이 가기 전에 밥 사주시러 오시겠다던 사부님에게 전화가 온 것이다!!! 바로 핸드폰을 가지고 다시 화장실로 가서 전화를 드렸다.
“사부님!!!! 전화하셨네요???”
“그래, 너 점심시간이 몇 시부터냐??”
“저요? 12시부터요!!! 점심 사주러 오시게요???”
“그래, 너 있는 데가 광화문이라고 했지? 거기서 충정로 방향으로 가다 보면 투썸플레이스가 있어. 거기 2층에 보면 이탈리아 음식점이 있거든? 거기서 보자. 나는 12시 10분쯤 도착할거야. 먼저 자리 잡고 있어”
“앗!!! 넹~!!!! 알겠습니다. 이따 뵐게요~~~!!!!^^”
어제였다. 어김없이 하루를 마감하며 페이스북에 접속했는데, 그 때 마침 사부님이 칼럼에 링크를 걸어서 담벼락에다가 글을 남기셨다. ‘이때다!!’싶어서 글에 바로 댓글을 달았다.
“사부님, 가을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담주에 점심 사주러 오세요~~~!!!!” 라고 말이다.
그래서 도시락을 싸왔지만, 맛있는 음식과 함께 할 사부님과의 점심을 위해 11시 50분쯤 일찌감치 사무실 밖으로 나와서 약속 장소로 향했다. 멀리서 보니 대각선 맞은 편에 투썸플레이스가 보인다. ‘12시 10분쯤 도착하신다고 하셨지??’ 너무 일찍 가서 오래 앉아있기도 그러니 가는 길에 담배를 한대 피고 5분 정도를 남겨두고 식당에 도착해서 창가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자리에 앉아 메뉴판을 뒤적이고 있는데, 겨울 코트에 목도리를 멋드러지게 걸치신 사부님이 걸어오신다.
엉덩이를 반쯤 들어 배꼽 인사를 한다.
“사부님 안녕하세요~~!!!”
“어, 그래. 왔니? 넌 왜 이렇게 점점 말라가냐?”
요즘 나를 볼 때마다 ‘말랐다’는 말씀을 하시는 사부님이 인자하신 웃음으로 자리에 앉으신다. 메뉴판을 보니 역시 이태리 음식점이라서 가격이 만만치가 않다. 런치 메뉴도 거의 만원이 넘어간다. 도시락을 싸 다니면서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는 나로써는 팀 점심때나 먹어볼 수 있는 메뉴다. 런치메뉴가 있는 면을 뒤적이고 있는데, 사부님이 한 마디 하신다.
“너, 스테이크 먹을래??”
“어… 네!!!!”
이게 웬 떡이냐, 고기 먹어 본지가 백만년은 된 것 같아 왠지 고기가 땡기던 참이었는데, 스테이크를 권해 주시니 덥썩 받아 먹는다.
메뉴를 기다리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는 사부님과 나.
솔직히 사부님이 점심을 사주시겠다고 말씀을 하셨을 때, 좋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걱정이 됐다. ‘사부님과 둘이?? 아… 어색할 것 같은데… 무슨 말을 해야 하지?? 중간에 대화가 막 끊겨서 어색한 침묵이 흐르면 어쩌지??’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사부님이랑 밥 약속을 잡으면 누군가 한 명을 더 불러야 하나??’라는 생각도 했는데, 갑작스레 연락을 주신 사부님 덕분에 이런 고민들은 한번에 물거품이 되고, 내게 주어진 선택지는 오로지 하나. ‘사부님과 단 둘이 점심을 먹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사부님과 밥을 먹는지, 친구랑 밥을 먹는지 모를 정도로 유쾌한 대화가 오고 갔다.
“사부님, 근데, 왜 점심 사준다고 하셨어요?? 물론 제가 먼저 사달라고 말씀드리긴 했지만요.ㅋㅋ”
“응? 니가 너무 말라서 안돼 보여서.”
“(헉!!) 아.. 네… 그럼, 저 광화문 있는 동안 자주 오셔서 맛있는 거 사주세요~!!!!!”
참, 염치도 없다. 사부님 드시는 메뉴의 세배나 되는 가격의 스테이크를 먹으면서 또 사달라고 하니, 나도 대단하다. 고등학생 때 별명이 되살아나는 듯하다. 그 때 한창 부모님한테 용돈을 못 받으면서 학교에 다닐 때였는데, 쉬는 시간에 4층부터 1층까지 힘들게 매점에 다녀온 친구들이 사온 간식들을 맨날 조금씩 뺏어먹었는데, 그 때 친구들이 ‘빈대’라고 놀려댔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꿋꿋하게 맨날 얻어먹고, 아주 가끔 미안한 마음에 친구들에게 맛있는 걸 사주곤 했다. 고등학생 때의 모습이 오버랩되면서 괜히 웃음이 난다. 그래도 흔쾌히 ‘그러마’하고 말씀해 주시니 무척 즐겁다.
“우아!!! 감사합니다. 사부님이랑 점심 자주 먹을려면, 이 회사에 오래 다녀야겠는데요??ㅋㅋㅋ”
많은 직원들이 일거리가 없어서 놀고 있는 이상한 회사 얘기, 요즘 취업준비하면서 원서 쓰고 있는 얘기, 일 할게 없는 덕분에 틈틈이 글 쓰고 있는 얘기, 전화 받기도 힘들어서 담배가 확 줄었다는 얘기 등등 한참을 떠들었다. 남들이 봤으면 ‘저 사람들은 뭐야?’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한참 나이가 많은 아저씨랑 젊은 여자 아이가 하는 대화에 젊은 여자아이가 ‘요즘 담배가 줄었어요!’라고 하는 대화장면이라니, 사실 한국 사회에서는 좀처럼 상상하기 힘든 장면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런 대화를 스스럼없이 할 수 있는 사부님이 참 좋다. 젊은 시절에 이런 분을 만났다는 것은 내 생에 몇 안 되는 큰 복 중에 하나가 될 것이다. 고기를 잡아서 주시기보다 고기 잡는 방법을 몸소 알려주시는 분. 덕분에 조금씩 내가 더 많은 것을 깨달아가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말이다.
신나게 떠들다 보니, 사부님이 한 마디 하신다.
“너, 몇 시까지 가야되냐??”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시계를 보니, 벌써 1시반까지 점심시간인데 1시 20분이다.
“엇!! 벌써 시간이. 저 1시 반까지 가야되는데, 10분 남았어요.”
그제서야 후다닥 겉옷을 챙겨 입고 밖으로 나왔다. 사부님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밖으로 나와 나는 사무실로 향하고, 사부님은 다시 댁으로 가신다. 광화문 사거리 횡단보도를 건너면서 사부님께 물었다.
“사부님, 근데 어제 제가 페이스북에 댓글 단거 보고 오늘 전화 주신거죠??”
“응?? 댓글 달았냐? 아닌데?”
“네?? 저는 당연히 그거 보고 전화주신 줄알았는데. 사부님, 페이스북에 다른 사람들이 쓰는 것도 좀 보세요!!! 페이스북은 SNS 라고요!!!!”
껄껄걸.. 특유의 웃음으로 웃으시는 사부님. 그래도 뭔가 텔레파시가 통했다는 느낌에 더 기분이 좋아진다.
“사부님, 오늘 너무 감사합니다. 조심해서 가세요~~!!!”
“그래, 너도 가서 일 열심히 해라~~”
뜻하지 않은 즐거운 만남은 항상 반복되는 일상에 커다란 활력소가 된다.
‘앞으로도 사부님한테 맛있는 거 많이 얻어먹어야지!!!’라고 굳게 다짐하며,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몇 주 후, 송년회가 있던 날 뒷풀이 자리에서 누군가 사부님에게 물었다.
“사부님, 왜 저는 맛있는 거 안 사주세요??”
“너는 맛있는 거 사주시는 아빠가 옆에 계시잖니???”
이 말을 듣고 있는데, 울컥할 뻔 했다. 나는 정말 내가 요즘 너무 말라서 불쌍해 보여서 사주셨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심오한 뜻이 있었다니!!!
항상, 감사합니다, 사부님. !!!
<꼭지12. 외로움이 나를 찾아올 때>
연말, 송년회로 새벽 4시를 훌쩍 넘긴 시간에 집에 들어와 잠들어 일요일 아침에 잠깐 눈을 떴다. 잠깐 할 일을 찾아서 하다가 다시 잠들었다. 그리고 오후 2시가 다 되어서야 다시 일어났다. 해야 할 숙제가 있지만, 왠지 아무것도 하기 싫은 마음이 들어 티비를 켜서 하루 종일 누워서, 엄마가 차려 주는 밥을 먹고, 다시 누워 티비 보기를 반복한다. 가수를 뽑는 프로그램을 보며 자신의 꿈을 찾아 오디션을 보는 이들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는데, 내가 왜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다. 그러다가 주말 연속극을 본다. 오늘따라 유난히 슬픈 장면들이 나온다. 그리고 이상하게 드라마를 보는 한 시간 내내 철철 울었다. 어릴 적 잃었던 딸과의 재회, 그리고 그 사실을 알게 되어 집에서 쫓겨 나게 된 어느 여인의 이야기. 아이를 가진 엄마도 아니고, 어릴 적 엄마를 잃어 누구인지도 모르고 자라온 딸도 아니다. 드라마 상황에서 어느 누구에게도 100% 공감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나는 왜 그렇게 눈물이 나는 것일까.
때때로 우울함이 나를 찾아와 괴롭힐 때가 있다. 도대체 이 우울이 어디서 오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아무것도 정해진 것 없이 그저 흘러가기만 하는 내 인생의 불확실함에서 오는 불안감이 원인인지, 해야 할 일이 있는데도 이렇게 왠 종일 누워 티비나 보면서 의미 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 내 자신이 너무 싫어서인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 이렇게 특별한 이유가 없는 우울함이 찾아 올 때면, 그냥 가슴이 한 구석이 답답해 진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절대 들어올릴 수가 없는 돌덩이 하나가 가슴을 꽉 막고 있는 것만 같다. 이렇게 우울해지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 밖에 없다. 하나는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우는 것이다. 엄청 슬픈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 우는 것이 좋다. 내가 우는 것에 대한 이유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런 내 모습을 엄마나 동생, 가족들이 보면 내게 꼭 한 마디씩 한다. “또 운다. 또 울어. 니네 엄마 죽었냐?”
그리고 또 하나는 담배를 피는 것이다. 오늘도 저녁을 먹고 늦게라도 씻고 나가서 카페에 갈까 하다가 결국 무기력증과 우울함 덕분에 그것마저 못했다. 주말이 되면 늘 챙겨보는 주말 드라마를 보면서 울다가 퉁퉁 부은 눈이 좀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아파트 복도를 지나 계단으로 갔다. 계단과 계단 사이에 서서 담배를 한대 피워 물었다. 깊이 들어 마신 후 내 뿜는 뿌연 담배연기를 보면 왠지 가슴 속에 단단히 박혀있던 돌 덩어리가 내 몸에서 함께 사라지는 느낌이 든다. 맞은편 동에 왠 사람이 쭈그리고 앉아서 담배를 피고 있다. “저 사람도 나처럼 가슴이 답답해서 이 시간에 담배를 피러 나온 것일까?” 왠지 모를 동질감이 느껴진다. 그리고 ‘외로운 것이 나 뿐만이 아니구라’라는 생각에 묘한 위안이 느껴진다. 이럴 때는 평소에 답답해 보이던 아파트도 살기에 나쁘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만약 내가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그런 아파트나 단독 주택에 살았더라면, 더 외롭지 않았을까? 그런 곳에서는 나 같은 사람을 보며 위로 받을 수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이런 외로움이 덜 찾아올 때, 달빛 하나에도 이와 같은 위로를 받을 수 있을 정도가 되면, 그 때는 사람을 쉽게 볼 수 없는 곳에서 혼자 살아도 괜찮을 것 같다.
종일 집안에만 있다가 처음 바깥 공기를 쐬며 피는 담배에 잠깐 어질하다. 계단 층간에 있는 재떨이에 허리를 숙여 담배를 비벼 끄고는 다시 집으로 들어온다. 혹시나 엄마가 문 여는 소리에 깰까봐 조심스레 문을 열고, 최대한 조용히 문을 걸어 잠근다. 담배 냄새가 남아있을까 집에 들어오자마자 샤워를 한다. 몇 시간 전보다 훨씬 편해진 마음으로 다시 잠자리에 든다. 내게 찾아온 우울함이 조금은 사라진 느낌이다.
<꼭지13. 친구 결혼식 가는 길>
졸업한 이후에 대학 동기들과의 만남이 거의 없었다. 간간히 친구들의 결혼 소식이 들려오는데, 오늘도 문자가 한 통 도착했다.
“미나야~~ 나 회사 합격하고, 결혼도 한다~~ㅋ”
“오, 충쓰 축하축하~~!!! 그 동안 맘고생 많았지? 진짜 축하한다~~^^”
“ㅋㅋ 고생은 무슨. 우리 엄마가 더 고생하셨지~~ㅋㅋ 청첩장 받아야지~~ㅋ”
“청첩장. ㅋㅋㅋ 메일로 보내라~~!! 마음만 갈 가능성도 크단다. 요즘 주머니 사정이 어려워.ㅜ”
“ㅋㅋㅋ e청첩장 안 했는데. 그냥 축하만 해 주면 되지. 축의금은 어려우면 안 내도 됨. ㅋㅋ. 음식 먹어보니까 맛있더라 와서 밥 먹구가~~^^”
“ㅋㅋㅋ 그려 청첩장은 진짜 안 보내줘도 되고, 날짜랑 시간만 알려주면 갈수 있음 꼭 갈게.^^ 연락해줘서 고맙다 충쓰~~”
“요즘 다 힘들다더라. 같이 힘내자~~^^ 그리고 부담 갖지 말고~~”
졸업한지 오래 되고, 취업을 계속 하느라 애를 썼는데, 계속 실패하고 있다는 소식을 다른 친구를 통해 들었던 터라, 친구의 기쁜 소식이 더 반갑다. 하지만, 결혼식 소식은 언제나 부담스럽다. 그나마 어려운 상황을 편하게 얘기할 수 있는 친구라 다행이고, 또 쿨하게 밥 먹으러 오라고 해 주는 친구가 한편으로는 고맙다.
그리고 결혼식 전날 친구에게 결혼식 장소와 시간을 알려주는 문자가 왔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 오후 5시 결혼식인데, 한 시간 전인 4시까지 계속 고민을 했다. ‘직접 연락을 준 친구한테 미안해서라도 가긴 가야 할 것 같은데.. 축의금도 안 내고 그냥 밥만 먹고 오기도 미안하고…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온갖 생각들이 머리 속에 자리를 잡는다. 이런 고민들을 잠시라도 잊기 위해 멍하니 티비를 보다가 4시쯤 씻고 결혼식에 갈 준비를 한다. 5시 반쯤 결혼식장이 있는 건대입구역에 도착했다. 이미 도착해 있을 다른 친구에게 전화를 건다.
“결혼식 다 끝났지?”
“아니, 이제 사진 찍으려고 해. 어디야? 빨리 오면 사진은 찍을 수 있을 거야. 너 지금 오면 그 동안 못 봤던 사람들 엄청 많이 볼 수 있다.”
“그래? 알았어. 지금 역에서 걸어가고 있으니까 빨리 갈게.”
아슬아슬하게 결혼식장에 도착. 친구들 사진을 찍고 있다. 멀리서 친구가 나를 발견하고 사진 찍으러 오라고 손짓을 하지만, 됐다며 손사레를 친다. 사진을 찍고 얼굴 도장을 찍어야 할 것 같아서, 결혼하는 친구에게 다가가 축하인사를 건넨다. 친구가 보더니,
“어 왔어?? 고마워.” 정신 없는 친구를 뒤로 한 채 피로연장으로 향하는 친구들과 계단을 내려온다. 함께 가는 친구에게 “나는 약속이 있어서 먼저 갈게.”라고 얘기하고 피로연장으로 향하는 오래간만에 본 친구들과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다시 지하철역으로 향한다. 집으로 가는 지하철비도 아낄겸, 간만에 건대 나들이니 건대에서 좀 놀아볼까 하는 마음에 근처의 카페에 들어갔다. 하지만 역시 주말의 대학가는 너무 사람이 많다. 결국 다시 지하철에 몸을 싣는다. 뚝섬유원지를 지날 때는 잠시 고개를 들어 한강의 야경을 구경한다. 그리고 얼마 전에 선물 받은 호어스트 에버스의 <세상은 언제나 금요일은 아니지>라는 책을 벗삼아 혼자 낄낄거리며 동네로 돌아온다. 몇 일전 출근 길에 발견한 동네의 새로 찾은 아지트의 카페로 향하기 위해 집에서 한 정거장 더 가서 지하철에서 내린다.
축의금을 낼 돈이 없어서 일부러 결혼식에 늦게 도착한 것은 아니다. 물론 반 정도는 그런 의도가 있었지만, 그것보다는 주말만 되면 더 심각해 지는 게으름이 또 다른 절반의 원인이었다. 그리고 축의금은 안 내고 밥만 먹기 미안해서 밥을 먹지 않은 것도 아니다. 그것보다는 이번 주에 해야 할 숙제가 우선이었고, 오래간만에 보는 친구들과의 어색한 식사가 불편하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주말에 혼자서 카페에서 보내는 시간을 포기하고 싶지가 않았다. 내일은 보너스 항공권으로 예약을 해 두었던 제주도 여행을 포기하고 신청한 토익 시험도 봐야 하고, 이번에 점수를 조금이라도 올리려면 오늘 집에 가서 공부도 좀 해야 한다. 그리고 친구의 결혼식에 가서 잠깐 친구의 얼굴을 보기 위한 목적으로 지하철을 타기도 했지만, 이런 의도로라도 동네를 좀 벗어나고 싶었다. 그렇게 결혼식이 있는 주말의 하루가 지나간다.
<꼭지14. 회사 내의 정치에 대하여…>
금요일 오후. 퇴근을 알리는 음악이 나오기 10분 전. ‘단결 투쟁’이라는 단어가 찍혀 있는 빨간 머리띠를 두른 노조위원장님이 비장한 표정으로 사무실로 들어온다. 얼마 전, 회사에서 있었던 불합리한 징계 결정에 대해 회사의 큰 행사에서 시위를 하려던 노조위원장을 사측이 감금했다고 한다. 그리고 다시 이런 사태가 일어나지 않기 위해 경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야겠다고 모두 회의실로 모이라고 하신다. 정직원의 대부분이 회의실로 몰려간다. 그리고 그것과는 상관없는 계약직 직원들만이 자리에 남아 있다. 그리고 3년 전 회사의 징계로 부장에서 부장대우가 된 부장님이 자리를 지키고 계신다.
금요일 인사발령이 있기 전에 부장님은 자신의 거처에 대한 부탁을 하기 위해 이사람 저 사람을 찾아 다녔는데, “아니, 그 동안 성과를 보여준 적이 없는데, 어떻게 인사발령을 내리겠어요? 그리고 이런 얘기는 본인이 직접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통해 얘기를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 동안 사람관리를 어떻게 한 거에요?”라는 등의 마음에 비수를 꽂는 이야기만 잔뜩 듣고 결국 30여년간 몸담았던 회사에 있는 사람들에게 실망만 잔뜩 하고 부장님은 회사의 결정만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 사이 노조의 설명이 끝나갈 무렵, 팀장님이 회의실 밖으로 나오셨다. 그리고 팀장님은 부장님 사무실로 가신다. 아마 부장님과 팀장님은 노측보다는 사측의 입장에 서 있으리라 예상된다. 우리 나라 회사, 특히 공기업의 경우에 능력이나 실력보다는 학연, 지연, 혈연 등이 승진에 더 큰 영향력을 미친다. 그리고 지금 말년에 마음 고생하고 있는 부장님은 이런 각종 ‘연’에 해당하는 인간관계를 잘 관리하지 못한 사람이고, 팀장님은 잘 관리를 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인간관계의 관리 능력이 곧 그 사람의 실력과 능력을 재는 잣대가 된다.
그리고 얼마 전, ‘이 회사에서 일 할거면, 월급이라도 많이 받아야지’라는 생각으로 신입사원 모집 공고에 원서를 냈다가 서류에서 보기 좋게 떨어진 내 상황이 한편으로는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것 역시 ‘합리화’이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이런데서 정치하면서 일 하기보다는 나의 있는 그대로의 능력을 인정해 줄 수 있는 곳에 가서 자유롭게 일 하리라.’라는 다짐을 다시 한번 한다.

-내 마음에 와닿은 명문장-
'이게 웬 떡이냐, 스테이크를 권해 주시니 덥썩 받아 먹는다.'
‘이런데서 정치하면서 일 하기보다는 나의 있는 그대로의 능력을 인정해 줄 수 있는 곳에 가서 자유롭게 일 하리라.'
일기쓰듯이 써간 한 꼭지마다 하나의 메시지가 담겨 있어서 읽기 편하고 술술 읽힌다.
근데 책 한권을 떠올려보면 아직 어떤 흐름으로 전개될지 잘 그려지지 않는다.
네 책의 클라이맥스는 뭘까? 결론은 어떻게 그려질까?
근데말야 결론까지 생각하게 한다는 것 자체가 부럽다^^

꼭지가 담고 있은 미나가 전달하고자 하는 느낌들이 전해져 온다.
일단 꼭지글들을 쓰고 나중에 전체적인 틀에 맞춰서 손보는 방법도 좋겠구나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책을 염두에 두고 한 꼭지의 분량이나 Fact에 대한 해석등등
그리고 책을 읽는데 방해가 되는 소소한 것들
1. 미나와 신치의 중복 표현
2. 어제였다. 하루를 마감하면서....하는 부분과 같이 어제, 오늘과 같은 시간적 표현이
책에서는 어떻게 처리되어야 할지...
3. 일반독자가 나중에 '사부님'에 대한 등장인물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들..
힘내. 미나야.

눈썹 그리고, 루즈 바르고... 아침에는 그러고 나가는데요. 점심먹고 나면 다 지워져요...;;;;ㅋ
아....... 사부님 말씀에 힘이 불끈!!! 많이 쓰고 1/3만 건지겠습니다~!!!!!^^
근데, 사부님 어제 제 책과 비슷한 책이 곧 출간 예정이라는 소식에 마음이 조금 무거워요.ㅜ..
(http://blog.naver.com/gotozoo3/145365443 -> 요기 책이 곧 나올 모양이에요..;;)
물론, 저만의 방식으로 얘기하면 되겠지만요. 그래서 덕분에 뭔가 책에 대해 더 고민을 하게 될 것 같긴 합니당...
그냥.. 1월 오푸수업까지 많은 고민을 해야할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사부님!!!^^ 헤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