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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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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5월 20일 12시 41분 등록
소 같은 성실함으로 (황우석, 「나의 생명 이야기」중에서)

내게 소가 친구였다면, 우리 어머니에게 소는 자식이었다. 농사일하는 틈틈이 시간만 나면 어머니는 외양간을 들여다보았다. 잘 잤느냐고 머리를 쓸어주고, 밥 많이 먹으라고 머리를 쓸어주었다. 똥이 덕지덕지 묻은 다른 집 소와 달리 우리 집 소가 말끔하게 윤이 흐르던 것도 다 어머니의 정성 때문이었다.

겨울이면 우리 식구들은 쇠죽 쑤는 고소한 냄새와 함께 잠에서 깨어났다. 마당에 나가면 어머니는 컴컴한 어둠 속에 쭈그려 앉아 쇠죽 끓이는 가마솥에 불을 지피고 있었다. 소를 귀히 여기지 않는 시골 사람이 어디 있었을까마는 어머니의 정성은 유독 남달랐다. 가장이 없으니 소를 자기 몸처럼 귀히 여기지 않으면 어린 자식들을 먹여 살릴 수 없다는 절박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우리 어머니는 힘든 일제 식민지 시절을 보내고, 육이오 동란을 경험한 가장 불행한 세대였다. 양반집 딸로 태어나 시집 올 때는 몸종을 데리고 올 정도였지만, 시댁은 가난했고, 시어머니도 남편도 일찍 세상을 떠났다. 게다가 시아버지가 중풍으로 쓰러져 15년이나 자리보전을 했다. 남편도 없이 올망졸망 어린 자식 여섯을 키워낸 어머니의 자식 사랑은 얼마나 굳세고 강인한 것이었을까. 그런 어머니는 천생 조선 아녀자라 자식들은 굶겨도 늙고 병든 시아버지 끼니만큼은 반드시 챙겨드리고 아무리 몸이 고달파도 지극정성으로 병 수발을 들었다.

고행자처럼 세상의 온갖 시련을 겪어온 분이지만 나는 어머니가 화내는 모습을 본 기억이 없다. 소리 내어 웃는 모습도 본 적이 없다. 아주 좋으면 빙그레 미소를 지으시는 정도였다. 어머니가 편하게 방바닥에 몸을 누이고 쉬는 모습도 나는 보지 못했다. 자식들 입에 뭐라도 넣어주려면 늘 종종걸음으로 바삐 뛰어다녀야 했다. 그래도 어머니는 힘든 내색 한번 없이 담담한 표정으로 보살이라도 되는 양 우리 가족의 슬픔과 고통을 고스란히 짊어지고 묵묵히 일했다. 내 어머니는 정말 소와 닮으셨다.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그러면서도 쓰다 달다 군소리 한번 하지 않는 우직하고 슬픈 소.

내가 어렸을 때는 면사무소 직원들이 마을을 돌아다니며 두엄자리 치수를 재곤 했다. 혹 규격에 맞지 않을까봐 가슴을 졸이면서 어머니는 내게 말했다.
"아이고, 너도 커서 면사무소 서기만 되면 얼마나 좋겠냐."
면사무소 서기만 되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나는 귀가 얼얼하도록 들으면서 컸다. 나와 내 여동생을 제외한 내 형제들은 다들 초등학교밖에 졸업하지 못했다. 그런 환경이었으니 면사무소 서기가 얼마나 대단해 보였으랴.

언젠가 존경하는 고등학교 선배인 심대평 충남지사에게 내 어머니 꿈이, 내가 면사무소 서기가 되는 것이었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심 지사님은 언젠가 부여 가는 길에 내 고향에 들러 내 어머니를 찾아뵈었다고 한다. 그리고 어머니에게 절을 하며 이렇게 말했다.
"제가 충청남도 도지사인데, 아드님은 저보다 더 훌륭한 사람입니다."
그 말을 듣고 날아갈 듯 기뻤을 어머니는 아마 말없이 미소만 지었을 것이다. 그렇게밖에 기쁨을 표현 못하는 일생을 살아온 애처로운 내 어머니.

최근에는 국외에 나가 있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하지만 어디에 가 있든 나는 매일 어머니에게 전화를 드린다. 내 전화를 받고서야 비로소 편안히 잠자리에 드시는 어머니를 알기 때문이다. 멀리 나가 있는 자식, 혹 무슨 일이라도 있을까봐 가슴 졸이며 잠 못 드는 어머니를 위해 나는 아무리 중요한 회의를 하는 중이라도 어떻게든 틈을 내어 전화를 드린다. 평생 자식을 위해 사랑으로 헌신하신 어머니께 더 많은 보답을 드릴 수 없음을 안타까워하면서.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는 어머니에게 넘치게 많은 것을 받았다. 그 중 가장 큰 것은 물론 가없는 사랑이리라. 우리 마을에서는 드물게 중학생이 되어 대전에 유학하던 시절, 나는 1년에 딱 두 번밖에 집에 가지 못했다. 그 시절 12원이었던 차비가 없어서였다. 어쩌다 돈을 모아 집에 가는 날이면 동네 어귀에 이르자마자 저 멀리서도 귀신처럼 내 모습을 알아차린 어머니가 논에서 피를 뽑다 말고 맨발로 달려오셨다. 잃어버린 아들이라도 되찾은 양 허겁지겁 내게로 달려오시던 어머니는 거머리에 물려 다리에서 피가 줄줄 나도 모르셨다. 소리 내어 웃을 줄도 모르던 어머니 입가에 번지던 눈부신 미소, 말없이 어쩔 줄 모르며 내 얼굴을 쓸어내리던 어머니의 손길이 지금도 그립다.

또 하나, 내가 어머니에게 받은 큰 선물은 소 같은 우직함이다. 앞뒤 재지 않고 당장 눈앞에 잇속 같은 것 따지지 않고, 어머니는 평생 성실히 일하셨다. 하루도 쉬는 날이 없었다. 별이 총총한 새벽부터 달이 밝은 한밤중까지 우리를 위해 지칠 줄 모르는 소처럼 일하던 어머니를 고스란히 보고 배웠는지, 나도 일이라면 누구에게 지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나는 남달리 명석한 두뇌도 아니고, 배경도 없었다. 오직 소 같은 성실함만이 최선의 자세라는 사실을 늘 간직하고 살아왔다. 그러니 오늘날 나의 자세는 오롯이 어머니의 땀과 눈물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싶다.

***

"백신이나 항생제 발견보다 더 큰 획기적인 사건이 일어났다고 볼 수도 있다. 산업혁명이 영국에서 일어났지만 당시에는 아무도 그것이 혁명인 줄 몰랐다. 한국의 서울에서 어쩌면 인류 역사의 흐름을 바꿔놓을 생명과학 혁명이 일어났는지도 모른다."(제럴드 새튼(Gerald Schatten) 미 피츠버그대 의대 교수)

19일 오후 12시 30분(현지시각) 영국 런던 시내 알베마를 스트리트의 `사이언스 미디어 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황우석 서울대 석좌교수는 "난치병 환자의 체세포를 복제하는 방식으로 배아줄기세포를 만들어 내는데 성공했다"면서 "난치병 정복을 향한 긴 여정에 첫 발을 내디뎠다"고 연구 성과가 갖는 의의를 설명했다.

기쁘고도 행복한 기사를 접하면서 소박사님의 글을 읽고 가슴 찡했던 부분을 옮겨 본다..참 자랑스럽다..
IP *.39.22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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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주
2005.05.22 12:09:20 *.201.224.98
아 ! 어머니 어머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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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영
2005.05.23 12:45:51 *.39.220.118
......!
아무 말이나 좀 써볼까 했는데..아무 생각도 나질 않네요..
어머니..라는 단어 앞에서는 말이예요..
특히 '소' 같다고 비유한 어머니를 생각하면 말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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