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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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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6월 28일 21시 13분 등록
내비록 환쟁이라 불릴지라도..

고독한 나날 속에도 붓을 놓지 않고...

조선적인, 가장 조선적인 불세출의 화가

처음 붓글씨를 배운 국민학교 미술시간, 덜덜떨려서 글씨가 씌어지지 않던 느낌이 생생하다. 이번에 나는 목차에 따르지 않고 우선 겸재 정선과 단원 김홍도를 먼저 읽어가게 되었다. 장마를 일으킬 유월의 뜨디더움속에서 나를 집중케하는 것은 [화인열전]이라는 책을 샀을 때의 아련한 추억들이다. 친구에게 약속을 지키지 못한 나.. 그 약속이란 멀리 아랍에 가있는 그녀에게 편지를 쓰겠다던 약속이었다. 그녀는 아랍에서 한국에 대해 알려주려고 그 책을 가져가길 원했고, 나는 그녀에게 책을 선물했다. 그리고 나도 기념으로 똑같이 그 책을 사두었던 것이다. 오년이 넘는 그 긴 시간동안 한 장의 편지도 보내지 못했다. 도대체 난 무얼하고 지냈던가 싶다.
겸재 정선의 개인소장품 중에 유독 간찰(簡札)에 눈붙이고 서 있었던 곳은 지난 2001년 6월말 [조선시대 명화 개인소장품 특별공개전]이 인사동 학고재이다. 그리고 2004년 5월에 간송미술관에서 정선대전이 열렸다. 그림에 대해 아는 것이 없는 나는 몇 백년전 서울의 아름다움을 상상할 수 있다는 것이 그가 그린 현장에 내가 살고 있다는 것에 흥분했다. 아침이면 늘 보게 되는 인왕산에 어느 토요일 올라가 한강을 바라보면서 정선이 그려낸 인왕제색도를 생각했다. 어찌보면 언덕같은 작은 산의 칼바람이 쉴새없이 부는 벼랑을 바라보면서 그래, 어쩌면 호랑이도 살만하지 않은가 공상에 빠진적도 있다. 아버지의 엄한 이마같이 보이는 바위들 중 하나에 올라 경복궁을과 그 아래 서울시내를 내려다 보던 정경은 근사했다. 그림속에 있던 한강의 백사장이 남아있다면 얼마나 한강이 더 멋들어졌겠는가하고 또 생각했다.
올해 같은곳에서 단원대전이 열렸다. 그 두 전시회는 지난 어느 전시회보다도 작품의 출품수가 가장 많다고 들었다. 프랑스의 화가 중에 세느강변과 파리풍경을 많이 담아낸 마르케라는 화가가 떠올랐다. 그림속의 풍경은 말만 무수한 '빠리히'라는 도시에 대한 그의 일상적 시선이 머물러 있다. 어떤 환상도 장식도 없이 우울한듯이 내려앉는 지친 회색구름아래 밋밋한 센강이 흐른다. 그러나 내가 만약 파리에서 살았다면 그 그림은 어떻게 다가왔을까. 지난해 정선의 그림들 중 소품이라 할 수 있는 작품들이 전시된 2층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것은 그림을 잘 몰라 대작이 주는 위압과 상징성 그리고 생략들을 소화할 수 없어서 이기도 하지만 그림속의 풍경에 가보지 못한 것이 더 큰 이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비로소 든다. 2층 전시실의 서울의 풍경은 그래서 내겐 2001년도의 簡札처럼 소박한 기쁨을 만난듯하고, 몇백년전에 화가가 우리에게 부친 그림편지를 받아든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갑자기 지금은 활동하지 않는 가수의 노래가 지나간다. '나의 고향 서울을 힘껏 껴안고 싶다' ... 일찍 시작된 장마로 식혀진 보도블럭위를 지나 출근하면서 흥얼거리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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