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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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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7월 26일 15시 05분 등록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 바퀴 반 2 (한비야 지음, 금토,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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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에 실린 내용은 1994년 2월부터 12월까지 북미 알래스카부터 중미를 거쳐 남미 최남단 마젤란 해협까지 여행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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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공짜 트럭 얻어타기로 남미대륙 1/3관통

누가 세계 역사상 가장 잔혹한 민족을 몽고족이라고 했던가? 그건 한때 칭기즈칸의 말발굽 아래 짓밟혔던 유럽인들의 허언이다. 다지고 보면 그보다 더 잔인한 민족은 얼마든지 있다. 이스라엘인들로 보면 게르만족이요 아메리카 인디오들로 보면 유럽의 침입자들이다. 남북아메리카 도처에 인디오들이 뿌린 피의 흔적이 흥건하다. 침입자들이 인디오를 몰아낸 후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등 유럽 각국에서 사람들이 물밀 듯 쏟아져 들어왔다. 이들이 현재는 아르헨티나 인구의 90%를 차지하고 있다.

2. ‘남미의 파리’에 흐르는 관능의 탱고

나는 공동묘지에 오면 늘 깊은 생각에 빠지게 된다. 사람은 태어나면 죽는다. 열심히 살든 대충대충 살든 사람은 누구나 죽는 것이다. 오는 순서는 있어도 가는 순서는 없다는 옛말처럼 방정맞은 소리지만 가능성으로만 따져보면 바로 내일 죽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나는 당장 죽어도 후회가 없을 만큼 잘 살고 있는 것일까. 아니, 자랑스럽지는 못할망정 부끄러운 인생을 살고 있는 건 아닌가. 어떻게 사는 것이 후회없이 사는 일인가. 무슨 일을 하고 무슨 생각을 가지고 살아야 잘 사는 것인가. 공동묘지에 오면 평소에는 하지 않았던, 이런 아주 중요하고도 근본적인 생각을 하게 된다.

3. 남아메리카의 등뼈 안데스 산맥을 따라

국민의 대다수가 백인인 칠레에서 ‘인디오 경험’은 틀린 일이니 ‘자연경험’이 주가 될 것 같다. 저경비 여행자인 주제에 비행기보다도 비싼 거금 180달러짜리 유람선을 탄 이유는 딱 한 가지. 푸에르토 나탈레스까지 배로 가야만 남미대륙의 등뼈인 안데스 산맥을 제대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배에서 바라보는 안데스 산맥은 무엇보다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거대한 봉우리들이 절경이다. 해안선의 구불구불 복잡한 피요르드 해안도 볼 만 하다. 바다라기보다 군데군데 섬이 있는 커다란 호수에서 뱃놀이를 하는 기분이다.

4. 환상의 봉우리 토레스 델 파이네는 안개에 젖어

정말 한일관계는 미묘하다. 일본사람이 조금이라도 비위에 거슬리는 짓을 하면 온갖 심통을 발휘해 기를 죽이거나 약을 올린다. 그런데도 여행을 다니다가 세계 각국 사람들과 섞여 있는 일본인을 만나면 같은 동양사람이라는 것 하나만으로도 서양아이들보다 훨씬 빨리 친해진다.

5. 이 세상 경치 아닌 우주사막 아타카마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뼈와 가죽으로 변해버린 여자 미라 ‘미스 칠레’. 얼굴, 등, 허리, 가슴의 살점과 머리카락은 물론 눈썹까지 고스란히 붙어있다. 몇 천 년 전의 미라라고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다. 한때는 아름다운 여인이었을 그 미라를 보면서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사람이 죽으면 얼마나 미인이었는지, 얼마나 몸매가 좋은지, 피부색이 무엇이었는지에 상관없이 저렇게 뼈와 가죽만 남게 된다. 그런데 사람들은 두께 3㎝도 안되는 겉껍질을 가지고 이렇게 생겨서 좋으니, 저렇게 생겨서 마음에 안드니 한다. 많은 경우에 외모가 사람을 판단하는 거의 유일한 기준이 되기도 한다.

6. 평생 목욕 않지만 정겨운 인디오들

경제적으로 풍요롭지 못한 나라 사람들일수록 더 따뜻하게 느껴지는 것은 어쩐 일일까? 인간적인 것과 물질은 대척점에 있기 때문일까? 무엇보다도 가난하지만 ‘인간의 냄새’를 지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때가 더덕더덕 붙어 있지만 인디오 아이들을 보면 그냥 덥석 안아주고 싶을 만큼 정이 솟는다. 이런 인디오들에게 신기한 동물 보듯 무례하게 아무데서나 카메라를 들이대는 구미 관광객들이 밉다.

7. 포르노 도자기 박물관, 생생하고 기기묘묘한 체위

나스카 라인이란 사막을 캔버스 삼아 벌새, 거미, 도마뱀, 원숭이 등 30개의 그림과 기하학적 무늬, 해석할 수 없는 선들을 그려놓은 것이다. 이 선(그림)은 돌을 들어내서 그 밑의 흰 돌이 드러나게 하는 방식을 썼다. 그 크기는 도마뱀이 180m, 원숭이가 90m, 날개를 펴고 있는 콘도르는 130m가 넘는 것이라 비행기를 타지 않고는 전체 모습을 볼 수 없다. 서기 100년에서 600년 사이, 해안지방을 중심으로 한 이 나스카 문화를 일으킨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이유로 이런 대형 그림을 그렸던 것일까. 자기들은 그 큰 그림을 볼 수도 없었을 텐데.

8. 잃어버린 제국 찾아가는 ‘잉카의 길’

마추픽추는 왜 건설되었을까. 이곳은 봉우리를 개간하여 지은 도시로 한쪽은 깎아지른 절벽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오로지 내가 걸어 온 ‘잉카의 길’이 그곳에 도달하는 유일한 길이다. 산 아래쪽에서 올려다보면 보이지 않고 공중에서밖에 볼 수 없기 때문에 ‘공중도시’라고 불렸다. 어떤 연유든 1911년까지 340년간 저 도시가 어느 인간의 손에도 더렵혀지지 않고 고스란히 보존되어 온 게 정말 다행이라고 느껴진다.

9. 티티카카 호수에서 발견한 내 고향

남미에서 세 번째로 넓다는, 바다같은 티티카카 호수는 해가 나면 밝은 푸른색이지만 흐린 하늘 아래서는 탁한 연두색이다. 도착한 섬마을은 마치 우리나라 전라도 지방 어느 섬을 연상케 한다. 초가지붕이며, 흙벽으로 된 집이며, 좁은 마당에 땔감이 여기저기 놓여있는 것 그리고 바깥쪽에 있는 부엌에서 솟는 연기와 냄새까지 마치 우리나라 시골에 온 듯했다.

10. ‘카미노 데 초로’ 4박5일 빗속 트레킹

산행 3일째. 오늘은 또 어떤 아름다운 경치가 내 여러 가지 고통을 낙으로 바꿔놓을지 모르겠으나 며칠째 아침마다 잘 때 입는 단 한 벌의 마른 옷을 전날 입었던 젖은 옷으로 갈아입는 순간은 정말 고역이다. 젖은 티셔츠, 젖은 바지, 젖은 양말, 그 위에 젖은 운동화까지 신을 때의 기분은 정말 차가운 뱀을 몸에 친친 감는 기분이다.

11. 아마존 정글 탐험, 겸손한 사람만이 살아남는다

정글이라고 하면 우리는 호기심을 가지기는 하지만 먼저 무섭고 위험한 곳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막상 그곳에 가보니, 정글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참으로 안온한 삶의 터전이 되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정글에 대한 막연한 공포는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만 생각하는 문명인들의 허약함의 표징은 아닐까. 이를테면 정복하지 못한 것에 대한 두려움 같은 것 말이다.
우리가 미개한 사람들이라고 여기는 밀림의 주민들은 정글의 법칙을 충실히 지킴으로써 정글의 일부가 되고, 정글로부터 필요한 것을 부족하지 않게 얻고 있었다. 아주 현명하게.

12. 현대판 노예들이 죽어가고 있는 볼리비아 은광

한 달에 10t의 돌을 캐고 나르며 몸이 부서져라 일하면서도 끼니를 때울 돈이 없다니? 이들이 옛날 노예들과 무엇이 다른가 말이다. 매맞아 죽지는 않는다는 것이 다른 건가? 사고로 죽고 배고파 죽기는 마찬가지인 걸. 다른 점이라면 지난날의 고용주는 무력으로 이 땅을 점령한 스페인 정복자들이었는데 지금은 돈으로 이 땅을 좌지우지하는 강대국의 자본가들이라는 것뿐이다.

13. 백야마라톤 출전, 97등으로 신문에 나

그때가 새벽 2시경. 그제서야 붉은 해가 지평선으로 떨어진다. 주위는 온통 주홍빛. 그러나 해가 지고 나서도 사방은 책을 읽을 수 있을 정도로 밝다. 말대로 하얀 밤(白夜)이다. 그리고는 한 4시쯤 되니까 동이 트더니 조금 아까 진 해가 다시 떠오르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것도 바로 해가 떨어졌던 바로 그 자리에서. 원 세상에! 이건 정말 믿을 수 없다. 해가 서쪽에서 뜨다니. 이게 무슨 조화란 말인가.
나중에 알고 보니 이곳(알래스카)에서는 여름이면 해가 북쪽에서 떠서 북쪽으로 지고 겨울이면 남쪽에서 떠서 남쪽으로 진다고 한다.

14. 알래스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연

미국 어디를 가나 원래 이 땅의 주인이었던 인디언들은 알코올 중독자가 많다. 인디언들을 보호구역에 몰아넣고 아무 일도 못하게 하면서 돈은 무제한으로 주니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무력하게 술이나 마시는 것밖에. 그래서 알래스카 원주민들도 알코올중독자들이 많다.
원래는 에스키모인들의 생활 터전인 북극지방에는 술이 없었다. 자라는 게 없으니 술을 만들 재료도 없고 날씨가 추워 발효하지 않으니 말이다. 술은 외부인의 문명과 더불어 들어와 결국 이들을 조금씩 갉아먹고 있는 것이다.

15. 멕시코 지하철, “어딜 만져?” 따귀 철썩

계획과는 달리 4일이 지나도록 멕시코 시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세계에서 제일 크고 공해가 심하다는 이 도시에서 나를 붙드는 것은 도시 전체에 산재한 아즈테카 유적들이다.
멕시코 최후의 문화라고 할 수 있는 이 문화는 정복자 스페인에 의해 손발이 묶이고 머리 속까지 철저히 바뀌는 수모를 당했다.
그렇지만 인디오들은 그런 극악한 압박 속에서도 자신들의 토착신과 기독교를 잘 혼합해 ‘검은 성모’등 자신들만의 독특한 신앙을 창조해냈다. 1500년경에 들어온 스페인사람들이 광적인 혼혈정책을 편 탓에 국민의 60%가 혼혈인 메스티조가 되었다. 그러니 이곳 인디오들의 그만한 융통성이 없었더라면 지금쯤 칠레나 아르헨티나처럼 원주민은 씨도 없이 도륙당하고 말았을 것이다.

16. 애니깽, 조선 이민의 슬픔 어린 유카탄 반도

1905년 271세대, 1033명의 조선인이 고종황제가 발행한 여권을 품에 안고 인천항을 떠났다. 몇 년째 흉년이 들어 초근목피로 연명하고 있는 사람들을 일본업자들은 4년만 멕시코 농장에서 일하면 큰돈을 벌 수 있다고 꾀었다. 이들이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곳은 멕시코 유카탄 반도의 애니깽 농장이었다. 애니깽은 선인장의 일종으로 독성이 강한 가시가 많은 선인장과의 용설란이다. 이들은 여기 일본인 소유의 애니깽 밭에서 4년간 노예와 다름없는 생활을 하게 된다.
이 뼈아픈 이민사 중에서도 나를 가장 가슴아프게 한 대목은 그들에게는 그들의 아픔을 호소할 조국이 없었다는 것이다.

17. 버섯 먹고 영혼여행, 일곱빛깔 무지개 속으로

사람은 자기가 받은 교육과 자란 환경에 얼마나 크게 영향을 받는 걸까. 우리나라에서는 마리화나의 ‘마’자만 꺼내도 큰일 날 일이지만 볼리비아나 페루의 산악지대에서는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하루종일 코카인의 원료인 코카 잎을 씹으면서 지낸다.
이들에게는 이것이 일상이다. 나도 페루에서 잉카의 길을 가는 동안 고산병에 걸리지 않으려고 내내 코카 잎을 씹어야 했으니까.

18. 흐느끼는 재즈의 도시 벨리즈

벨리즈 국경을 넘으니 마치 미국의 한 남부도시에 온 것 같다. 우선 말부터 다르다. 멕시코에서는 스페인어를 쓰는데 여기서는 영어를 쓴다. 영국의 식민지였기 때문이다. 길에 지나다니는 사람들도 느릿느릿 걷는 흑인들만 눈에 띈다. 라틴 아메리칸의 명랑함은 간 곳 없이 뉴욕 빈민가 사람들처럼 무관심하거나 반항적인 눈길과 자주 마주치는 것도 그렇고 길에 지천으로 널려 있는 노란색 택시, 소위 옐로 캡까지도 미국 흑인동네와 비슷하다.

19. 잊혀진 ‘마야의 땅’ 과테말라의 속삭임

연전에 일본인 자연과학자의 책에서 아주 그럴 듯한 이야기를 읽었다. 이 과학자는 48억년이라는 지구의 역사를 인간이 인식할 수 있는 시간단위인 1년과 대비해놓았다. 그의 계산에 따르면 한 달이 4억년이고, 하루가 1천3백 만년, 한 시간이 55만년이었다. 그렇게 따져보니 공룡이 지구상에 나타난 것이 12월 11일부터 16일까지이고 인류의 출현은 놀랍게도 12월 31일 저녁 8시의 일이라고 한다.
농사를 짓기 시작한 것은 밤 11시 30분, 현대과학이라는 것을 알고 누린 것은 12월 31일 자정 직전의 2초간이다. 이렇게 보면 마야문명과 현대문명은 불과 10초의 차이가 날 뿐이다.

20. 청년처럼 뜨거운 지구 숨소리 듣다

유럽에서 온 아이들에게는 나를 레즈비언으로 몰고 가는 반응이 심심치 않다. 사람은 자신이 아는 대로 보인다고, 유럽인들은 30대 중반인데도 독신인 나를 자기 나라의 사회나 문화의 창을 통해서만 바라보는 것이다.
아프리카나 중동에서는 과년한 여자가 혼자 다니는 것, 그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내게 그게 정말이냐고 되묻는 경우가 흔하다. 제일 재미있었던 반응은 인도에서였다.
“아이고 이를 어쩌나. 아가씨 부모님이 지참금을 마련하지 못해 이렇게 처녀로 늙혀 죽이는구려.”

21. 아티틀란 호숫가 진실로 아름다운 가족

그에게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1초의 여유도 없이 내 가족, 내 아내와 내 아이들이란 대답이 튀어나온다. 별달리 차린 것은 없지만 같은 식탁에 앉아 웃으면서 식사하는 것, 그리고 한 지붕 밑에서 평화롭게 잠드는 것이란다. 이 평범하지만 아름다운 대답에 나는 하마터면 눈물이 나올 뻔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나는 진심으로 이 아저씨와 그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식구들을 도와주고 싶었다.

22. 엊그제까지 함께 놀던 아이가 설사병으로 죽어

기가 막혔다. 사람 목숨이 이렇게도 쉽게 끊어지는 건가. 그 어린 것의 죽음이 너무도 억울했다. 끓인 물에 설탕만 넣어 먹였어도 이렇게 허무하게 죽지는 않았을 텐데. 저 울고 있는 엄마가 간호사를 하루만 일찍 불렀더라도 살릴 수 있었을 텐데. 아니 내가 학교에서 매일 만나는 셀리에게 우리 옆집 아이가 아프니 왕진 가봐 달라고 얘기할 수도 있었는데. 어른들의 무지와 무관심이 그 아이를 죽게 한 것이다. 거기에 나도 일조를 한 것이다.
가슴이 미어진다. 닭똥같은 눈물이 주르르 흐른다. 가여운 수엘라, 정말 미안하다.

23. 흙탕물 강에 배 타고 온두라스 밀입국

운전사 말에 의하면 이런 초대형 바나나 농장은 여기 말고도 온두라스, 코스타리카 등지에 얼마든지 있다는데 거의가 미국 과일회사들 소유란다.
그 과일회사들이 얼마나 힘이 센지 대통령선거 등을 좌지우지해서 한 나라의 정치‧경제를 한손에 쥐고 주물럭거린다나. 이 때문에 과테말라나 온두라스를 ‘바나나 공화국’이라고 부르는 자조의 목소리가 높다고 한다. 중남미 국가들은 아직도 미국의 텃밭이나 뒷마당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건가.

24. 흑인 노예의 후예 가리푸나 마을 사람들

가난한 집에서 식량을 축내며 민박을 하고 다니는 내게도 나름대로 원칙이 있다. 너무 조금 주어서 기분을 섭섭하게 해서도 안되지만 너무 많이 주어 ‘우리집에 왔다 간 손님’이라기보다 ‘우리집에 왔다 간 봉’이라는 인상을 남기기도 싫다. 10달러, 20달러를 더 쓰고 덜 쓰고는 여기 시골동네에서 얻어가는 잊지 못할 경험에 비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나는 돈으로 경험을 사는 허술하고도 어리석은 여행객은 되고 싶지 않다.

25. 아름다운 카리브 해변에서 다시 한 번 인생공부

사람은 가끔씩 자기만의 시간과 공간이 필요한 것이다. 이렇게 논스톱으로 사람을 만나게 되면 생각을 정리할 새도 없이 여러 가지가 한꺼번에 겹쳐 더 이상 처리할 수가 없는 한계상황이 온다. 그런 때가 오면 내 안에 있는 내가 혼자 있고 싶다고 신호를 보내온다.
일단 생각이 둔해진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 잘 모르게 되고 무얼 해도 재미가 없다. 변덕이 심해지고 자꾸만 글이 쓰고 싶어진다. 그때가 며칠간 혼자 있어야 하는 시간이다. 그리고 지금이 바로 그때다.
그래서 그후 며칠간 영어도, 스페인어도 할 줄 모르는 체하면서 입에서 군내가 나도록 조용히 지냈다.


***


1권에 이어서 2권에서는 따뜻한 마음을 구석구석에서 읽어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중미와 남미의 오지에서 만난 가난하지만 정직하고 아름다운 사람들과의 만남 속에서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참 따뜻했고,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아주 많은 것들을 생각해 보게 했다.

오지 여행가 한비야는 여행이 인생을 배우는 가장 빠른 길이라고 말한다. 문화충돌의 체험을 통해 자연스럽게 서로 다른 문화의 다양성을 인정하게 되는 것, 자신을 발견한 것, 그것이 여행의 소득이었다고 한다. 내가 누구인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사는 사람인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지 자기에 대해 충분히 정리하고 계획할 시간이었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다보면 정말 그 말이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상상조차 힘든 참으로 다양한 경험은 둘째치고라도 그 시간들을 통해서 자신을 돌아보는 그 시선이 부러울 뿐이다.

‘첫째,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자. 둘째, 심플하게 살자. 셋째,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살자.’
별 것도 아닌, 특별할 것도 없는 이 말들이 특별하게 읽히는 건.. 내가 잘못 살고 있기 때문일까? 신나는 방학을 시작한 아이들과 온종일 부대끼며 세끼 식사를 챙겨야하는 이 뜨거운 계절에는 혼자만의 여행에 대한 유혹이 더 심하기 때문일까?

부러운 건 부러운 거고.. 오늘도 난 식구들을 위해 저녁을 준비해야 한다.
‘첫째,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 수는 없다. 둘째, 간단하게 먹자. 셋째, 다 재워놓고 샤워 후 책 한 권.’
별 것도 아닌, 특별할 것도 없는 이 말들이 나의 일상이다. 남편, 아이들과의 충돌을 통해 서로 다른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 그 속에서 나를 발견하는 것, 나는 일상을 통해서 인생을 배운다. 일상을 즐기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1권에서는 터키, 2권에서는 카리브해.. 아!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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