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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9월 2일 13시 17분 등록
"오리엔탈리즘을 넘어서-한국적 세계화의 출발점"

Edward W. said 저/박홍규 역 | 교보문고

1. 책이 내게로 왔다.(감상)

청소년 시절부터 즐겨보았던 제임스 본드의 007 영화가 언제부터인가 무척 역겹게 느껴지기 시작하면서 가끔 TV에서 보게 되면 채널을 돌리곤 한다. 그러다가 영화배우 차인표가 헐리우드가 기획한 007 영화에 북한장교역으로 출연 요청한 것을 거부한 기사를 보고 ‘과연 그답다’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다. 새삼 웬 007 영화냐고 반문할 지 모르지만 007 영화야말로 오리엔탈리즘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영화라는 판단 때문이다. 동양의 신비와 후진성을 전제로 스토리가 전개되며, (사실 007 영화를 보는 주 이유의 하나이기도 하지만) 항상 후반부에는 미모의 여인이 007을 접대한다. 동양은 정확성을 기피하고 본능적이어서 지배와 개화의 대상이며, 여성적인 흥미거리라는 인식이 고스란히 적용된 ‘오리엔탈리즘 공식 영화’이다.

그렇다면 오리엔탈리즘이란 과연 무엇인가? 그것은 간단히 말하면 동양에 대한 서양의 사고, 지배방식이다. 사이드는 오리엔탈리즘은 ‘동양’과 (대체로) ‘서양’이라고 하는 것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존재론적이자 인식론적인 구별에 근거한 사고방식이라고 표현한다. 오리엔탈리즘의 용도는 동양에 대한 침략과 착취를 정당화하기 위한 이데올로기로 사용하기 위함이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지배하기 위한 논리 (예를 들어 식민사관)도 본질적으로 오리엔탈리즘과 그 맥을 같이 하고 있다. 따라서 그들에게 동양은 평생을 바쳐야 하는 매력적인 사업으로 인식된다.

동양은 유럽을 기준으로 지구의 동쪽을 지칭하는 지리적 개념이다. 최초 동양에 대한 서양의 인식은 징기스칸과 오스만투르크 제국을 경험하면서 얻은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러다가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힘의 균형이 서양으로 넘어오기 시작하면서, 서양의 눈에 비친 동양은 흥미와 무역, 착취의 대상으로 인식되었다. 역사상 서양이 우위를 점한 시절은 불과 300년이다. 동양에 대한 오리엔탈리즘은 처음에는 동양에 대한 직접적 체험의 방식으로 축적되어 진행되었으나, 점차적으로 텍스트, 신화, 사상, 언어 등에 대한 연구로 발전되면서 재구성되고, 나아가 문헌학적인 학문분야로, 최근에는 사회과학의 전문분야로 전환했다. 오리엔탈리즘의 성격도 무의식적인 확신, 신념체계인 잠재적인 오리엔탈리즘과 동양에 대한 객관적(?) 지식을 기반으로 한 명백한 오리엔탈리즘이 혼합되면서 강화된다.

역사적으로는 영국과 프랑스의 식민지 전쟁시대와 맞물려 오리엔탈리즘은 맹위를 떨치게 된다. 그 당시 의욕에 찬 정복욕망은 ‘성 빅토르의 휴고’에 이렇게 표현될 정도였다. ‘고향을 감미롭게 생각하는 사람은 아직 허약한 미숙아이다. 모든 곳을 고향이라고 느끼는 사람은 이미 상당한 힘을 갖춘 사람이다. 그러나 전 세계를 타향이라고 느끼는 사람이야말로 완벽한 인간이다.’
최근에는 특히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적인 힘이 미국으로 기울기 시작하면서 오리엔탈리즘은 이전의 문헌학적인 학문분야에서 사회과학적인 분야로, 중동에 대한 문화관계정책으로 탈바꿈하면서 미국의 세계방위와 국가안전보장의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몇 가지 오리엔탈리즘(편견)에 사로잡혀 있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 아랍인에 대한 나의 생각이 지극히 비정상적이었다는 사실이다. 루이스가 언급한 것처럼 ‘흥분’을 잘하고 선동적이며 과격하고 위험한 인종이라는 동굴의 우상(偶像)에 빠져 있었다. 아랍권에 대한 인식을 새뮤얼 헌팅턴이 말한 것처럼 ‘문명의 충돌’이라는 순진무구한 개념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몇 년 전, 이란 영화 ‘천국의 아이들’을 보면서 중동에서 이런 영화도 만들 수 있구나 하는 오만을 부린 생각이 떠오른다.

둘째 마르크스의 동양관이 당대의 오리엔탈리즘에 근거한 지극히 보수적이라는 사실이다. 아마도 사이드는 아시아적 생산양식에 근거해 비판한 것으로 보인다. ‘영국은 인도에서 이중의 사명을 수행해야 한다. 하나는 파괴의 사명이고, 또 하나는 재생의 사명이다. – 낡은 아시아 사회를 파멸시키는 것 그리고 서양사회의 물질적 기초를 아시아에 심는 것’. 한 때 마르크스주의가 교조적으로 받아 들여진 시절이 있었다. 그때 아시아는 봉건주의가 잔재하고 있기 때문에 자본주의가 먼저 이식되어야 사회주의로 이행할 수 있다는 논리가 있었다. 지금 다시 판단해보면 사회구성체 이론 이면에 오리엔탈리즘이 숨어 있었음을 솔직히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셋째 나폴레옹에 대한 평가에 관한 것이다. ‘불가능은 없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알프스 산맥을 호령하던 영웅의 이미지에서 오리엔탈리즘의 교주로 변모하게 되었다. 프랑스의 이집트 정복 계획은 식민지 지배의 도구로써 최초로 활용된 오리엔탈리즘의 좋은 사례다. 수에즈 운하의 구상은 이슬람의 위협과 동양의 지리적인 아이덴티티를 녹여 없애 버렸다. 진실로 나폴레옹 사전에 불가능은 없었다.

책을 읽는 내내 의문이 들었던 점은 ‘이 책이 왜 연구원 필독서로 채택이 되었을까’ 라는 점이었다. 연구원들의 인내심 테스트 용도인가? 이 구절을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나의 희망은, 문화적 지배의 가공할 만한 구조를 분명히 밝히고 나아가 특히 식민지를 경험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그 구조를 자기자신이나 타인에게 적용하는 것의 위험성과 유혹에 관하여 분명히 인식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한국적인 세계화로 출발하는 지점이기 때문이다.

푸코를 포함하여 양심적 지식인들인 래스키, 오웰, 사르트르, 파농, 촘스키, 레이몬드 윌리암스, E.P. 톰슨, 하버마스, 피에르 부르디외 등 인물에 대한 정보를 얻은 것도 이 책을 읽은 보람이다. 특히 푸코의 책은 꼭 한번 읽어보리라는 다짐을 해본다.

책 두께의 위압에 눌려서, 무더위에 지쳐서, 나의 인내심을 시험해가면서, 슬럼프를 참아가면서 혼이 나게 읽은 책이다. 누군가 이 책을 읽으면 축하해주면서 반드시 책걸이를 해야 한다. 책을 읽고 서평을 쓰고 있는 지금, 아주 개운하고 홀가분하다. 개인적으로 이 책은 그 동안 나 스스로 자신을 대변할 수 없고, 다른 누군가에 의해 대변되어야만 했지만 그건 위험천만하다고 목소리 높여 가르쳐준다.


2. 역지사지(易之思之)-내가 저자라면

에드워드 사이드는 그 이름만큼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 간 인물이다.
“그의 이름 역시 무척 상징적이다. 영국(에드워드)과 팔레스타인(사이드)을 한 몸에 지니게 된 그의 삶은 이름만큼이나 혼란스러웠다. 중동지역에서 성장한 사이드는 미국에 사는 이른바 ‘소외된 팔레스타인인’으로 이스라엘의 탄생, 팔레스타인의 소멸, PLO의 출범, 레바논 내전, 1990년 중동평화협상 과정을 직접 두 눈으로 목격했다. 아버지가 미국에 귀화한 신분이었기 때문에 그의 국적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미국이 됐고 모국어 역시 영어와 아랍어 두 가지였다. 그는 어린 시절의 혼란을 이렇게 설명한다.” - 에드워드 사이드 자서전」의 리뷰 (김중혁)를 김미영 연구원이 인용한 것을 재인용

오리엔탈리즘을 읽으면서 박노자의 ‘하얀 가면의 제국’과 에드워드 사이드의 자서전인 ‘Out of place’가 읽고 싶어졌다.(물론 아직 못 읽었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순전히 에드워드 사이드란 인물에 대한 관심이 생기게 된 것은 지식인의 역할에 대한 그의 신념과 행동 때문이다. 실제로 그는 학자로 머물지 않고 재외국 팔레스타인 망명정부의 의원, 미국 행정부의 대 중동 외교정책의 강력한 비판자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했다. 특히 2000년에는 이스라엘의 무력사용에 항의하는 뜻으로 레바논 국경의 이스라엘군 초소에 돌을 던지기도 해서 ‘테러교수’라는 별명을 얻은 일화는 유명하다.

지식인은 현실과 유리되어 골방에서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땅에 발을 오롯이 딛고 서야 한다는 것을 사이드는 온몸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사이드의 신념은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인식에 극명하게 드러난다. ‘오리엔탈리즘은 허위와 신화로 이루어진 것에 불과하고 만일 그 진실이 밝혀진다면 허위와 신화는 일거에 없어질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미셀 푸코가 말한 것처럼 지식은 기본적으로 권력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고, 따라서 단순히 허위의식을 탈피하면 오리엔탈리즘은 사라질 것이라는 순진한 생각은 불의한 권력에 대한 저항을 의식하지 못한 결과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는 말이다. 사이드는 문학과 문화는 정치에 대하여, 또 역사에 대해서도 책임이 없다는 주장에 대해 비판을 하면서 오리엔탈리즘을 연구한 결과, 사회와 문자문화는 동시에 다루지 않으면 이해할 수도, 연구할 수도 없다는 점을 강력하게 확신하게 되었다고 서설에서 언급한다.

이 책에 대해 몇 가지 아쉬운 점을 지적해야겠다.
일단 분량이 너무 많다. 방대한 지적 작업의 결과로 인해 원저의 양도 만만치 않은데 역자가 ‘옭기면서’를 추가해서 거의 800페이지에 달한다. 전문적인 연구자나 관심자가 아니면 엄두를 내지 못한다. 필독서가 아니면 불가능하다. 물론 이런 용도로 기획됐으리라 짐작은 하지만 그것은 논문의 형태로 제시되면 그만이고 좀 더 대중적인 관점에서 압축적으로 서술되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사이드의 1995년판 ‘오리엔탈리즘’ 이후에 아류(?)들, 예를 들어 박홍규의 ‘에드워드 사이드 읽기’, 박노자의 ‘하얀 가면의 제국’ 등이 출간된 것도 이런 점을 보완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둘째 아랍에만 동양을 한정한 방법론에 대한 문제점이다. ‘영국, 프랑스, 미국의 아랍 및 이슬람을 둘러싼 경험에 다시금 한정했다. 왜냐하면 아랍과 이슬람이야말로 거의 1천 년에 걸쳐 함께 동양을 대표해 왔기 때문이다.’(P44) 사이드의 출생지가 팔레스타인이라는 점은 십분 이해가 되나, 동양에 대한 연구를 ‘중국’을 배제하고 진행한다는 것은 한쪽으로만 기울어진 저울의 모습이 연상된다. 특히 아편전쟁 이후 서구열강에 의해 중국이 재편되기 시작하면서 오리엔탈리즘의 발현은 어떻게 진행되어 가는가에 대한 연구가 아쉽다.

셋째 책을 읽었던 대부분의 독자들이 느낀 점으로 생각되지만 번역상의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사이드가 영향을 받은 미셀 푸코의 구조주의 개념이 어렵기도 하겠지만 개념 이해가 쉽지 않다. 푸코의 핵심 개념인 ‘언설(言設)’을 포함하여 ‘목가적 정경’, ‘단서’ 등의 용어는 낯설고 난해하다. 역자가 특히 이 부분에 대해 주해를 덧붙혀 주었으면 좋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또한 번역이 매끄럽지 못해 문장의 흐름이 자연스럽지 못하다. 해석이 작위적인 느낌도 든다. 우리 말이 참 어렵다는 인식을 갖지 않도록 당부드린다. 책 말미의 ‘옮기면서’를 포함하여 책 곳곳에 역자의 자의적인 해석이 자주 등장한다. 역자가 할 말이 많으면 별도의 책을 내면 될 터인데 (사실 2003년 ‘에드워드 사이드 읽기’라는 책을 출간했음) 굳이 원문에 실은 이유가 궁금해진다. 역자가 개탄한 것처럼 책임 있는 번역이 아쉽다.


3. 책에서 끌어다 쓰기(인용)

그들은 스스로 자신을 대변할 수 없고, 다른 누군가에 의해 대변되어야 한다. – 칼 마르크스 ‘루리 보나파르트의 브루메어 18일’ (P11)

동양이라고 하는 것은 평생을 바쳐야 하는 사업이다. – 벤저민 디즈레일리 ‘탱크레드’ (P11)


[서설]

동양(East)는 유럽을 중심으로 한 세계의 동쪽을 일컫는다. 그곳은 처음부터 서양인과 흥미주의 내지 상업주의 및 침략주의의 차원에서만 인식되었다. 곹 진귀한 물건을 사고 파는 무역과 착취 및 지배의 대상으로서 인식되었다. (P14)

요컨대 오리엔탈리즘은 과거의 것이 그대로 존속하고 있다고까지는 말할 수 없어도, 동양과 동양인에 관한 학설이나 명제를 전개함으로써 여전히 학문으로 살아 있다고 볼 수 있다. (P17)

곧 오리엔탈리즘은 ‘동양’과 (대체로) ‘서양’이라고 하는 것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존재론적이자 인식론적인 구별에 근거한 하나의 사고방식이다. (P17)

간단히 말하자면 오리엔탈리즘이란, 동양을 지배하고 재구성하며 위압하기 위한 서양의 스타일이다. 이 점에 관하여 나는 미셸 푸코의 <지식의 고고학>과 <감시와 처벌> 속에서 설명된 ‘언설’ 이라는 개념을 원용하는 것이 오리엔탈리즘의 본질을 밝히는 데에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P18)

언설(disours)이란 푸코의 사상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 중 하나로서, 글 또는 언어의 연대에 의해 정리된 내용을 갖는 언어표현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그 언어적인 기원은 그리스어의 로고스에 있다고 하며, 직접적이고 직관적인 표현이 아니라 개념작용과 논리적 판단을 거친 질서 있는 표현이라는 뉘앙스-곧 논리적이고 관념적인 이야기라는 점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P19)

<몇가지 한정조건>
1. 동양이 ‘본질적으로’ 부합되는 현실을 갖지 못한 관념 또는 조작된 관념이었다고 단정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디즈레일리는 그의 소설 <탱크레드>에서 ‘동양이라고 하는 것은 평생을 바쳐야 하는 사업’이라고 썼다. 이 책에서 그가 뜻하고자 하는 것은 동양에 대하여 관심을 갖는다는 것이 서양의 똑똑한 젊은 청년들이 일생의 모든 것을 희생할 수 있는 정열적 과제라는 것이다. (P22)
2. 둘째의 한정조건은 관념이나 문화 그리고 역사를 진지하게 이해하거나 연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것의 강제력,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권력의 편성형태(Configuration)를 함께 연구하여야 하는 점이다. (P23)
3. 오리엔탈리즘은 허위와 신화로 이루어진 것에 불과하고 만일 그 진실이 밝혀진다면 허위와 신화는 일거에 없어질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P24)

그리고 탱크레드라는 이름은 제 1차 십자군을 지휘한 노르멘디의 장군 이름이기도 했다. 십자군은 서양에 의한, 세계사에서 동양과 연결되어 알렉산더대왕의 동양정복에 이어 두번째로 등장하는 동양정복군대이다. 동양의 신비와 후진성 그리고 미모의 여성 확보는 오늘의 007에까지 이르는 서구대중문학의 전통이다. (P22)

예컨대 진실규명 따위의 폭로주의나 극단적인 일규주의가 진실의 토착화에 중요한 계기가 될 수는 있으나 그 자체가 진실로써 사는 것은 아니다. 부정정신은 부정을 위한 필요조건이나 긍정을 위한 충분조건은 아니다. (P25)

오리엔탈리즘에 대하여 지금까지 설명해온 지속성과 힘을 부여하는 것이 바로 헤게모니이며, 더욱 정확하게 말하자면 문화적 헤게모니가 작용한 결과인 것이다. (P26)

나는 왜곡과 부정확이라고 하는 두 가지를 우려하나, 그 부정확함이란 도리어 너무나도 교조적인 일반성과 너무나도 실증주의적으로 편중된 개별적 초점으로부터 생기는 부정확함인 것이다. (P29)

<본 연구가 처한 세가지 현실적 측면>
1. 순수한 지식과 정치적인 지식의 상이함
‘참된’ 지식이 기본적으로 비정치적이라고 하는(거꾸로 말하자면 정치적인 지식은 참된 지식이 아니라고 하는) 일반적인 자유주의적 다수의견이라는 것이 지식이 생산되는 시점에서 확보되는 정치적인 환경, 곧 비록 눈에는 보이지 않아도 고도로 조직화된 정치적인 여러 조건을 어떻게 은폐시켰는가를 분명히 밝히는 점에 나는 흥미를 갖고 있다. (P32)

요컨대 일반적인 연구주제로서 ‘러시아’라고 하는 구분은 ‘경제학’이나 ‘문학사’라고 하는 더욱 훌륭한 구분보다도 훨씬 높은 정치적인 우선순위를 차지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람시가 말한 정치사회란 연구기관과 같은 시민사회의 영역에도 영향을 미치고, 정치사회가 직접 관심을 갖는 문제를 시민사회의 영역에 침투시키기 때문이다. (P33)

참으로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오리엔탈리즘이 정치적인 것임과 동시에 지적인 현대문화의 중요한 차원의 하나를 표상하는 것일 뿐만이 아니라 바로 그 차원 자체로서 동양이 아니라 도리어 ‘우리들의’ 세계와 더욱 깊은 관계를 갖는 것이라고 하는 점이다. (P36)

학자로서 나에게 가장 흥미 깊은 것은, 조잡한 정치적 진리 따위가 아니라 세부적인 묘사이다. (P41)

2. 방법론상의 문제
나는 이 책보다 먼저 쓴 책에서, 인문과학의 연구에서는 방법론상 제일보이자 출발점, 곧 단서가 되는 원리의 발견이라는 정식화가 결정적인 중요성을 갖는다고 하는 점을 상당히 중점적으로 고찰하고 분석했다. (P42)

단서라고 하는 관념, 실제로 단서를 연다고 하는 행위는 한계를 설정한다고 하는 행위를 필연적으로 포함하고 있다. 그 한계행위에 의해 소재의 원료덩이로부터 일부가 절단되고 분리된다. 그 부분은 출발점 곧 단서 자체임과 동시에 단서를 표상하는 것이기도 하다. (P43)

영국, 프랑스, 미국의 아랍 및 이슬람을 둘러싼 경험에 다시금 한정했다. 왜냐하면 아랍과 이슬람이야말로 거의 1천 년에 걸쳐 함께 동양을 대표해 왔기 때문이다. (P44)

나아가 샤퍼와 달리 나는, 문학적인 오리엔탈리즘만이 아니라 학문적 오리엔탈리즘의 그 후의 발전도 분명히 밝히고자 한다. 그러한 발전은, 한편으로는 영국의 오리엔탈리즘과 프랑스의 오리엔탈리즘에 관한, 다른 한편으로는 식민지가 영유한 야심을 드러낸 제국주의의 발생에 관한 것이기도 한다. 그리고 나는 이러한 선행되는 여러 문제가 어떻게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미국 오리엔탈리즘 속에서 상당한 정도로 재생되었는가를 분명히 밝히고 싶다. (P47)

독일 동양학의 공적이란 영국 및 프랑스의 제국이 동양에서 실제로 수집한 텍스트, 신화 , 사상, 언어에 적용되어야 할 연구방법을 정밀하게 연마한 것이었다. (P49)

오리엔탈리즘이 여하튼 간에 의미를 지니게 된 것은, 동양 때문이 아니라 도리어 서양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의미는 동양에 관한 언설 속에서, 동양을 가시적이고 분명한 ‘그곳’(there)이라는 존재로 변화시키는 서양의 다양한 표상기술에 직접 의존하여 성립되어 있다. (P53)

오리엔탈리즘이란 결국, 저작과 저자를 인용하는 시스템이다. (P56)

푸코에 의하면, 일반적으로 각각의 텍스트나 작가 개인에는 이렇다 할 중요성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지금까지의 경험을 통해 오리엔탈리즘의 경우에는(필경 이 경우에 한하여)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나는 텍스트를 면밀하게 분석한다는 방법을 사용하여 각각의 텍스트나 저자 그리고 그 저자가 속하는 복합적이며 집합적인 편성 사이의 변증법적 관계를 분명히 밝히고자 한다. (P56)

필경 더욱 중요한 일은 오늘날 오리엔탈리즘에 대체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라는 연구에서, 어떻게 하면 타인을 억압하고 조작하는 것이 아닌 자유로운 입장에 서서 상이한 문화나 상이한 민족을 연구할 수 있겠는가를 묻는 것이리라. 그러나 그것을 위해서는 지식과 권력이라고 하는 복잡한 문제를 전면적으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P57)

나의 희망은, 문화적 지배의 가공할 만한 구조를 분명히 밝히고 나아가 특히 식민지를 경험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그 구조를 자기자신이나 타인에게 적용하는 것의 위험성과 유혹에 관하여 분명히 인식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P58)

3. 개인적 차원
문학과 문화는 정치에 대하여, 또 역사에 대해서도 책임이 없다는 주장을 너무나도 자주 본다. 그러나 그것을 옳다고 생각한 적은 한번도 없다. 그리고 나는 오리엔탈리즘을 연구한 결과, 사회와 문자문화는 동시에 다루지 않으면 이해할 수도, 연구할 수도 없다는 점을 강력하게 확신하게 되었다. (P62)


[제 1부] 오리엔탈리즘의 범위

<제 1장 동양인에 대한 인식>

여기서도 또한 종속적 종족, 곧 동양인에 관한 지식은 그들의 관리를 쉽게 하고 그것을 실로 유익하게 하는 것이라고 주장되었다. 지식은 권력을 낳고 권력의 증대는 지식의 증대를 요구한다고 하는 것에 의해, 소위 정보와 관리 사이에서 이익체증의 변증법이 작용한다는 것이다. – 크로머의 ‘종속적 종족’ (P77)

동양적 심성은 정확함을 기피한다. 이것은 인도에 사는 영국인이 언제나 기억해야 할 격언이다. 사람을 허위와 불성실로 타락시키는 정확함의 결여, 그것이야말로 동양적 심성이 갖는 중요한 특색인 것이다. – 알프레드 라이얼 (P80)

지식이 권력을 추후에 합리화하는 것이 아니라 지식이 권력을 사전에 정당화한다는 사이드의 논의는 한국지성사의 굴절에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예컨대 법학은 음모의 기술로써 악용되어 왔다. 특히 육사와 서울법대라고 하는 지식기관의 야합이 한국의 독재권력을 창출해내었다는 점은 그러한 음모의 본질을 말하여주는 것이다. (P82)

동양은 서양과 구별되는 독자성 내지 특수성을 갖는다는 논의야말로 오리엔탈리즘의 출발 그 자체이다. (P83)

그러나 19세기와 20세기의 서양에 관한 한, 동양과 동양에 속하는 일체의 것이 비록 바로 서양에 열등하다고는 할 수 없어도 서양의 연구에 의해 교정을 받아야 하는 존재라고 가정되었다는 것만큼은 처음부터 인정하여야 할 것이다. 동양은 마치 교실이나 형사법원, 감옥 또는 도감과 같은 틀에 의해 규정된 존재로 비쳐졌다. 곧 오리엔탈리즘은 동양적인 사물을 조사, 연구, 판결, 훈련, 통지의 대상으로서 교실, 법정, 감옥, 도감 속에 배치하는 동양에 관한 지식이다. (P84)

한 쪽에 서양인이 있고, 다른 한 쪽에 아랍인-동양인이 있다. 전자는(특별한 순서가 아니라) 합리적, 평화적, 자유주의적, 논리적이고, 참된 가치를 발견하는 능력을 가지며, 본능적인 시기심을 갖지 않음에 비하여 후자는 그러한 것들이 전부 결여되어 있다. (P98)


<제 2장 상상의 지리와 그 표상 : 동양의 동양화>

따라서 오리엔탈리즘의 경우에만 지리상의 한 ‘분야’가 학문적인 전문분야로 되었다는 것은 상당히 계시적인 사실이다. (P100)

사물이 구별되는 방식에는 언제나 어떤 정도의 순수한 자의성이 작용하고 있다. 게다가 이 구별에 수반되어 가치가 생기는 것이나, 만일 그 가치의 역사적 변천을 완전히 밟아 볼 수가 있다면, 그 곳에는 반드시 같은 정도의 자의성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도 분명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패션의 경우를 생각해보면 명백하다. (P106)

모든 문화란 살아 있는 현실 위에 교정을 가하고, 그것을 자유롭게 유동하는 대상으로부터 일정한 지식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들이 잊어서는 안되는 사실이다. 문제는 이러한 변환이 생기는 것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 다룬 적이 없는 미지의 물체로부터 공격을 받았을 때 인간의 정신이 그것에 저항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러므로 문화는 언제나 상이한 문화에 대하여 완전한 변형을 강요하며 그것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서가 아니라, 받아들이는 측에서 보아 반드시 그러해야 한다는 모습으로 전환시켜 받아들이게 된다. (P131)

오리엔탈리스트는 동양을 있는 그대로부터 다른 어떤 것으로 변환시키는 것을 그의 일거리로 삼는 사람이다. 그들은 그 일을 자신을 위하여, 자신이 속하는 문화를 위하여 그리고 때로는 동양인을 위한다고 믿고서 한다. 이러한 변환의 과정은 규율-훈련에 근거한 것이다. (P131)

오리엔탈리즘이란 동양적인 것이라고 인정되는 문제, 대상, 특질, 지역을 다룬 경우의 하나의 습관에 불과하고, 그것을 행하는 사람이 누구이든 간에 자신이 말하고 생각하는 대상을 어떤 단어나 문장으로 지시하고 명명하며 고정시킨다. 그러면 다음에는 그 단어와 문자의 현실성을 확보하고, 또는 더욱 단순하게 그것이 현실 그 자체라고 인정하게 된다. 수사학적으로 본 경우 오리엔탈리즘은 완전히 해부학적이고 열거적이다. 오리엔탈리즘의 어휘를 사용한다는 것은 동양적인 사물을 개별화하고 다루기 쉬운 작은 부분으로 분할하는 것이다. 심리학적으로 본다면 오리엔탈리즘은 편집광의 한 형태로서 예컨대 통상의 역사적 지식과는 다른 별종의 지식이다. (P140)


<제 3장 사업>

나폴레옹 이전의 오리엔탈리즘 프로젝트 전부에 공통되게 나타나는 특징은, 그 프로젝트를 성공시키기 위하여 사전에 무엇인가를 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고 하는 점이다. 앙크틸과 존스를 보기로 든다면, 그들은 동양에 도착해서야 비로소 동양에 관한 지식을 습득했다. 그들은 소위 동양 전체와 직면했으며, 얼마 동안 상당한 시행착오를 겪은 뒤에야 처음으로 그것을 더욱 작은 영역으로 나눌 수가 있었다. 이에 대하여 나폴레옹은 이집트를 모두 손에 넣는 것만을 희망했을 뿐이고, 그 사전준비의 규모가 장대하고 철저했던 점에서는 달리 찾아 볼 수 없을 정도였다. (P153)

요컨대 나폴레옹에게 동양이란 경험적 현실을 통해서가 아니라 텍스트로부터 추출된 관념과 신화의 영역에 속하는 여러 가지의 경험을 통하여 그의 머리 속에서, 그 뒤에는 정복을 위한 준비 속에서 현실성을 획득한 하나의 프로젝트였다. 그러므로 이집트에 대한 나폴레옹의 계획은, 연면히 계속된 직접 기능적으로 식민지 지배의 도구로써 이용된 최초의 보기가 되었다. (P154)

그러나 나폴레옹의 이집트 점령이 군사적으로 실패한 것은, 이집트나 다른 동양에 대한 전면적인 투사의 풍요성까지 손상시킨 것은 아니다. 점령은 완전히 문자 그대로 근대적이고 전면적인 동양체험을 만들어내었다. 그리고 그 경우의 동양은 이집트에서 나폴레옹이 기초를 놓은 언설의 세계의 내부로부터 해석된 것이고, 그러한 언설의 세계를 지배하고 확산시킨 매체의 하나가 이집트협회와 <이집트지>였다. (P165)

그리고 나폴레옹 이후, 오리엔탈리즘이란 말 자체에 근본적인 변화가 생겼다. 오리엔탈리즘의 서술적 사실주의는 격상되었고, 더 이상 단순한 표상의 한 양식이 아니라 하나의 언어, 실제로 ‘창조’를 위한 수단으로 변했다. (P166)

수에즈 운하의 구상에는, 오리엔탈리즘적인 사고의 논리적인 귀결과, 더욱 흥미 깊은 것으로는 오리엔탈리즘적인 노력의 논리적 귀결이 같이 나타난다. 과거에 서양에서 아시아란 거리감과 소원감의 무언의 표상이었고, 이슬람이란 유럽 기독교 세계에 대한 전투적인 적대심이었다. 이러한 무서운 불변의 상대를 타도하기 위해서는, 먼저 동양을 알고 이어 동양에 침입하여 그것을 소유하고, 그 뒤에 학자나 군인, 재판관의 손으로 재창조하여야 했다. (P174)

마치 육지의 장벽이 수로로 변한 것과 같이, 동양도 또한 반항하는 적대자로부터 협력적이고 순종하는 동맹자로 변질되었다. 레셉스 이후, 동양이 엄밀히 말하면 다른 세계에 속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게 되었다. 단지 ‘우리들’의 세계, 서로 결합된 ;단일의’ 세계만이 있었다. 수에즈 운하가, 몇 개의 다른 세계라고 하는 것이 있다고 생각한 최후의 시골사람의 신념까지 꺾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 후 동양이라고 하는 개념은 행정 및 집무적인 개념이 되었고, 인구통계, 경제학, 사회학의 여러 요소에 종속되었다. (P174)

레셉스는 동양을 서양속에 (거의 문자 그대로) 녹여 없애 버렸고, 이어서 이슬람의 위협을 불식시킴으로써 동양의 지리적인 아이덴티티를 없애버렸다. (P175)


<제 4장 위기>

텍스츄얼한 자세를(책에 따라 사물을 판단하는) 낳기에 적합한 상황은 다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어떤 사람이 비교적 알려지지 않았고 위협적이며 과거에는 멀리 떨어져있던 것과 매우 가깝게 만나는 경우이다. 텍스츄얼한 자세를 낳기에 적합한 또 하나의 상황은 (그러한 텍스트로 인하여) 실제로 성공이 초래되는 경우이다. 가령 우리들이 사자를 맹수라고 하는 책을 읽고, 그 후에 실제로 사나운 사자와 만났다고 하자. 우리들은 다분히 같은 저자의 책을 더욱 많이 읽고자 하는 느낌을 갖게 되고, 나아가 그 책의 내용을 신용하게 될 것이다. (P178)

곧 지금까지 얘기한 것을 요약하자면, 동양을 단순히 텍스츄얼하게만 이해하고, 정식화하고, 또는 정의하는 것으로부터, 동양에서 그러한 모든 것을 실천하는 것으로 이행하는 것이 틀림없이 행해졌고, 이러한 ‘터무니없는’ 전환에 오리엔탈리즘은 크게 관여했다는 것이다. (P182)

오늘의 지식인들이 오리엔탈리즘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한편으로는 그 규율-훈련의 요구의 범위를 현실에 맞추어 한정하거나 확대하는 방법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텍스트, 비전, 방법, 학문 분야가 시작되어, 성장하고, 번영하고, 타락해가는 인간적 풍토라고 하는 것을 볼 수 있는 방법이리라. (P207)


[제 2부] 오리엔탈리즘의 구성과 재구성

<제 1장 재설정된 경계선, 재정의된 문제, 세속화된 종교>

오리엔탈리즘의 선구적인 영웅들-이슬람 연구의 사시, 르낭, 레인-은 이 분야의 건설자이고, 전통의 창시자이며, 오리엔탈리스트의 형제관계의 시조라고 볼 수 있다. 사시, 르낭, 레인이 이룩한 것은 오리엔탈리즘을 과학적, 합리적인 기초 위에 두는 것이었다. 그 결과 그들 자신의 모범적인 저작이 생겨났을 뿐 아니라, 오리엔탈리스트라면 누구나 공유하여 이용할 수 있는 어휘와 관념이 창조되었다. 그들이 오리엔탈리즘을 개척한 것은 주목할 만한 위업이었다. 이것에 의해 과학적인 전문용어의 사용이 가능하게 되었다. (P227)

19세기가 되어 유럽이 동양을 침략하면 침략할수록, 오리엔탈리즘은 더욱더 대중적인 신용을 얻게 되었다. 그러나 설령 이러한 대중적 신용의 획득이 창조성의 상실과 일치했다고 하여도, 실은 그것이 그렇게 놀라운 것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오리엔탈리즘의 양식은 처음부터 재구성되고 반복된 것이기 때문이다. (P227)


<제 2장 실베스트르 드 사시와 에르네스트 르낭 : 합리주의적 인류학과 문헌학의 실험실>

사시의 이름이 근대 오리엔탈리즘의 초창기와 결부되어 있는 것은, 그가 단순히 (1822년에 창립된) 아시아협회의 초대회장이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의 일에 의해 이 (오리엔탈리즘이라고 하는) 직업의 면전에 완전히 체계화된 텍스트의 총체, 교육의 실천, 하나의 학문적 전통이라고 하는 것이 제시되었기 때문이며, 또한 동양에 관한 학술과 공공 정책이 중요하게 연결되었기 때문이다. 그의 작업 속에서 실로 비엔나공의회 이래 유럽에서 처음으로 자각적인 방법론적 원리가 학문상의 규율-훈련과 동시병존적으로 작용하게 되었다. (P230)

이러한 두 가지 특징-학생에 대하여 교육자로서 저서를 제시하고 동시에 개정과 발췌에 의한 반복의 의도를 분명히 인정하는 것-은 지극히 중요하다. (P231)
(왜냐하면) 사시의 톤에는 하나의 원현을 만들고, 그 속에 그와 청중을 집어넣어 일반세상과는 단절시킨다고 하는 효력이 있다. (P232)

그러나 그가(사시) 진실로 얘기한 것은, 오리엔탈리스트에 의해 적절하게 변형되어서야 비로소 아라비아 시는 감상의 대상으로 평가받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곧 아라비아 시란, 유럽인이 알고 있는 풍토적, 사회적, 역사적 조건과는 크게 다른 여러 조건하에서 완전히 이질적인 사람들에 의해 창조된 것이다. 나아가 이러한 시는 ‘우리들로부터 말한다면, 길고 고통스러운 연구를 거쳐 처음으로 습득할 수 있었던 가치판단, 편견, 신념, 미신’ 등에 의해 길러진 것이다. 설령 엄격한 전문적 훈련을 통과했다고 하여도 “더욱 고도의 문명에 도달한 유럽인에게는, 그 시가 묘사하는 것의 대부분은 역시 접근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오리엔탈리스트는 상당이 광범위한 비일상적인 체험을 그의 동포가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히브리민족의 ‘참으로 신성한’ 시를 이해하기에 도움이 되는, 이러한 문학의 일종을 동포의 공유재산으로 삼기 위하여, 더욱 도움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P237)

곧 독자는 오리엔탈리스트가 기울인 노력을 잊고, 각 문집이 뜻하는 동양의 재편성을 통하여 ‘단선적으로’ 동양으로 보게 된다. 객관적 구조(동양이라고 하는 지시대상)와 주관적 재구성(오리엔탈리스트에 의한 동양표상)은 서로 치환 가능한 것이 된다. 동양의 여러 원리가 오리엔탈리스트의 것이 된다. 과거에는 멀리 있었던 동양이 이제는 손에 들어온다. (P239)

사시와 르낭의 다른 점은 창시자와 계승자의 차이이다. 사시는 창시자였고, 그 작업은 혁신적인 낭만주의에 근거한 19세기의 학문으로서 이 분야에서 출현과 지위를 표상한다. 한편 르낭은 오리엔탈리즘의 제2세대 출신이다. 르낭의 작업은 오리엔탈리즘의 공적인 언설을 확고히 하고 그 통찰력을 체계화하여, 그 지적 및 세속적인 여러 제도를 확립하는 것이었다. 사시의 경우 그의 개인적인 노력이 그 분야와 구조를 발족시켰고, 활성화시켰다. 한편 르낭의 경우는 그가 오리엔탈리즘을 문헌학에 적응시켰고, 나아가 이 양자를 동시대의 지적 문화에 적응시켰기 때문에, 구조로서 오리엔탈리즘은 지적인 영속성과 더욱 광범한 시야를 부여받게 되었다. (P240)

르낭의 역사와 학문의 세계는 특이하게 황량하고 광폭할 정도로 남성적인 세계이다. 실제로 그것은 아버지와 어머니, 아이들이 사는 세계가 아니라, 예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카리반 그리고 태양신과 같은 남성들의 세계이다. 그는 과학의 힘, 특히 오리엔탈리즘적인 문헌학의 힘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리고 그 힘의 통찰력과 기술을 추구했다. 그는 그 힘을 이용하여 그 시대의 생활에 개입하고, 자주 상당한 효과를 얻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이상으로 본 역할은 구경꾼의 그것이었다. (P266)


<제 3장 동양체류와 동양에 관한 학문 : 어휘서술과 상상력이 필요로 하는 것>

동양의 셈족에 관한 르낭의 견해가 대중의 편견이나 통속적인 반셈주의의 일종이라기보다도 도리어 과학적인 동양어 문헌학의 영역에 속하는 것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르낭과 사시의책을 읽으면, 문화의 개괄적인 파악이 과학적 진술이라고 하는 갑옷으로 몸을 단단히 싸고 외국문화를 교정하는 연구의 분위기를 갖추기 시작하는 모습을 손쉽게 볼 수 있다. (P270)

이러한 비교연구의 자세는 주로 학문상의 필요성으로부터 오는 것인지, 아니면 자민족중심주의에 근거한 인종차별적인 편견이 그 모습을 변형시킨 것인지, 절대적인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없다. 우리들이 말할 수 있는 것은 이 양자가 서로 도우면서 함께 작용한다는 것이다. 르낭과 사시가 행하고자 노력한 것은 동양을 일종의 인간적인 평범성에 환원시키는 것이고, 그것으로 인하여 동양이 갖는 여러 특징은 쉽게 조사되고 동양이 갖는 복잡한 인간성은 박탈되었다. 르낭의 경우, 그의 노력은 문헌학에 의해 정통성을 부여받았다. 문헌학의 이데올로기적인 원리는 언어를 그 뿌리에 환원시키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P271)

따라서 설령 사람들의 참상에 의해 마르크스의 인간적 심정이, 곧 그의 동정심이 생겨난 것은 분명하다고 하여도, 마르크스의 경제분석은 표준적인 오리엔탈리즘적 시도와 완전히 합치된다. 결국 최후에 승리를 거둔 것은 낭만주의적인 오리엔탈리즘의 비전이고, 그때 마르크스의 이론적인 사회경제적 제고찰은 이 고전적인 표준적 이미지 속에 매몰된다.
‘영국은 인도에서 이중의 사명을 수행해야 한다. 하나는 파괴의 사명이고, 또 하나는 재생의 사명이다. – 낡은 아시아 사회를 파멸시키는 것 그리고 서양사회의 물질적 기초를 아시아에 심는 것.’ (P278-279)

그러나 이 두 학자는(사시와 르낭) 동양에 관한 ‘현지의’ 전문적 지식을 주장한 것이 아니라 완전한 서재파 오리엔탈리즘을 대표한 것이었으나, 한편으로는 동양에 거주하고, 동양과 현실상의 실존적 접촉을 가졌다고 하는, 독특한 강제적인 사실에 의해 스스로의 정통성을 주장한다는 또 하나의 전통도 존재했다. 앙크틸, 존스 그리고 나폴레옹 원정은 그 전통의 전성기의 윤곽을 규정한 것이고, 그 이후 이 윤곽이 오리엔탈리스트로서 동양에 체류한 사람들 모두에게 확고부동한 영향력을 미치게 되었다. (P282)

우리들은 레인이 이슬람교도가 아니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으나, 이제 그가-동양인이 아니라-오리엔탈리스트가 되기 위하여 가정생활이 갖는 관능적인 향락을 단념했어야 했다는 것도 알게 된다. 나아가 그는 인간의 일상사에 들어가서 스스로에게 시간을 부여하는 것도 회피하여야 한다. 이러한 소극적인 방법에서만 그는 관찰자로서 시간을 초월하는 권위를 유지할 수가 있었다. (P294)

동양은 개개인의 조사체험의 연쇄였으나, 이제는 벽이 없는 일종의 상상의 박물관으로 변모하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는, 거대한 넓이와 다양성을 갖춘 동양의 문화로부터 수집되어온 있을 수 있는 모든 것이 무조건 ‘동양적인’ 것이 된다. (P298)


<제 4장 순례자와 순례, 영국인과 프랑스인>

레인은 동양을 동양화함으로써 동양을 정의했을 뿐만이 아니라, 그것을 교정했다고 말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는 그것으로부터 그 자신의 인간적인 공감을, 나아가 유럽인의 감성을 교란시킬 우려가 있는 모든 것을 단절시켰다. 그 대부분의 경우에서 동양이란, 언제나 성도덕에 저촉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P299)

동양순례는 모두 성서에 기록된 여러 지방을 통과하는 것이었다. 아니 통과하여야 했다. 그러한 순례행의 대부분이 실제문제로서는 유태-기독교적, 그리스-로마적 현실의 어떤 부분을 체험하고자 하는 시도이고, 또는 그러한 현실을 광대하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풍요한 동양으로부터 해방시키고자 하는 기도였다. (P302)

19세기에 동양이란 개개의 여행가에게는 어떤 것으로 보였을까? 영국인에게 동양이란 현실적으로 영국의 영토였던 인도를 가리켰다. 따라서 근동을 통과한다는 것은 중요한 식민지인 인도에 이르는 길을 통과하는 것이었다. 그곳에서 상상력을 발동시킬 수 있는 여지는, 행정이나 영토보유의 합법성 및 통치권력이라고 하는 현실에 의해 이미 제약을 받았다. (P303)

이것과 대조적으로 프랑스인 순례자는 동양에서 심각한 상실감을 맛보아야 했다. 그들은 프랑스가 영국과 같은 통치자로서는 존재하지 않는 장소에 왔다. 지중해는 십자군으로부터 나폴레옹에 이르기까지 오직 프랑스의 패배만을 되울리고 있었다. (P304)

볼르네나 나폴레옹과 달리 19세기 프랑스의 순례자들은, 과학적인 현실보다도 엑조틱하고 특히 매력적인 현실을 탐구했다. 이것은 샤또브리앙으로 비롯되는 문학적 순례자들의 경우 가장 잘 나타났다. 그들은 동양 속에서 자신들의 사적인 신화나 강박관념 또는 욕구에 공감하는 장소를 발견했다. (P305)

오리엔탈리스트가 된다는 것은, 동양연구의 분야에서 대학교육의 훈련을 받았다고 하는 것이고, 여행을 위한 보조금이 주어지고, 나아가 권위 있는 형식으로 저술을 발표한다는 것이었다. (P341)

르낭과 사시 그리고 레인과 같은 초기 오리엔탈리스트들의 역할은, 자신들의 작업과 동양의 쌍방에 대하여 ‘무대장치’를 부여하는 것이었다. 그 뒤의 오리엔탈리스트들은 학술적인 사람이든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이든 간에 이 무대를 분명히 지켰다. 나아가 그 뒤에 와서는 무대가 경영을 필요로 하게 되었고, 그것은 경영이라고 하는 일을 위하여 개인보다도 제도를 설정하고 정부를 개입시키는 쪽이 훨씬 낫다고 하는 사실이 분명하게 되었다. 이것이야말로 19세기 오리엔탈리즘이 남긴 유산이고, 20세기는 그것을 받은 상속인이 되었다. (P353)


[제 3부] 오늘의 오리엔탈리즘

<제 1장 잠재적인 오리엔탈리즘과 명백한 오리엔탈리즘>

오리엔탈리즘이란 동양이 서양보다도 약했기 때문에 동양 위를 억누른, 본질적으로 정치적인 교의이고, 그것은 동양이 갖는 이질성을 그 약함에 관련시켜 무시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P361)

동양 그 자체에는 오리엔탈리즘에 대응하는 분야가 존재하지 않으나, 서양에는 오리엔탈리즘이라고 하는 ‘분야’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동양과 서양 사이의 상대적인 힘의 관계를 시사하고 있다. (P362)

1800년부터 1950년까지 근동을 다룬 책은 거의 6만권에 이르렀으나, 서양에 관하여 쓴 동양의 책은 아예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적었다. (P362)

나는 실로 ‘잠재적인’ 오리엔탈리즘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거의 무의식적인(그리고 불가침의) 확신과, ‘명백한’ 오리엔탈리즘이라고도 부를 수 있는, 동양의 사회, 언어, 문학, 역사, 사회학 등에 관하여 표명된 여러 견해를 구별하고자 한다. 동양에 관한 지식에 생기는 모든 변화는 거의 오직 ‘명백한’ 오리엔탈리즘에서 발견된다. 그리고 ‘잠재적’인 오리엔탈리즘에서 합의, 고정성, 지속성은 거의 항구적이다. (P364)

곧 동양이 논의의 대상이 되는 경우에도, 동양은 완전히 부재하며 그 대신 오리엔탈리스트와 그들의 언어가 실재하는 것으로 느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잊어서는 안되는 것은, 오리엔탈리스트의 실재가 동양의 실재적 부재에 의해 비로소 가능하게 된다고 하는 점이다. (P369)

사회라고 하는 것은, 고도의 성숙에 도달하고 강력하게 되면 식민지를 건설한다. 사회는 새로운 사회를 낳고 그것을 비호하며, 성장에 양호한 환경 속에 놓고, 스스로가 낳은 새로운 사회를 성년에 이르게 한다. 식민지 건설이란 사회의 가장 복잡하고 미묘한 생리현상의 하나이다. – 르로리-보리유 (P386)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19세기를 통하여 동양과 서양의 거리는 계속 축소되었다. 동과 서의 사이에서 상업상, 정치상, 기타의 실존적인 접촉이 증대됨에 따라, ‘고전적인’ 동양의 연구에 기반을 둔 잠재적인 오리엔탈리즘의 교의와 여행자, 순례자, 정치가 등에 의해 분명히 나타난 오늘의 명백한 동양의 묘사 사이에는 긴장관계가 높아졌다. 그리고 언제라도 분명히 한정할 수 없는 순간에, 이 긴장관계가 (잠재적인 것과 명백한 것) 두 유형의 오리엔탈리즘의 수렴을 불러일으켰다. (P391)

그러나 잠재적인 오리엔탈리즘의 교의와 명백한 오리엔탈리즘의 체험이 가장 극적인 형태에 의해 하나로 수렴된 것은, 제1차 세계대전의 결과, 아시아에서 터키영토가 영국과 프랑스에 의해 해체되는 듯이 보인 순간이었다. (P392)

실제로 프랑스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북아프리카와 시리아에서는 혼자 힘으로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으나, 계속 일어나는 동양민중과 어디까지나 영국이 통치권을 주장한 법률상의 독립지역을 특별히 구체적으로 관리한다는 것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곧 현대 영국과 프랑스의 오리엔탈리즘 사이에서 언제나 느껴지는 차이는, 양식상의 차이일지도 모른다. (P396)


<제 2장 양식, 전문지식, 비전 : 오리엔탈리즘의 세속성>

‘백인’의 창조와 오리엔탈리즘의 쌍방에 공통되는 다른 요소로는, 각각이 지배하는 ‘영역’ 내지 그러한 영역이 행동, 학문, 소유에 관하여 고유한 양식, 고유한 제식을 필요로 한다는 감각을 들 수 있다. (P400)

스미스는 원초의 범주를 ‘파악’함과 동시에, 경험적으로 알려진 현대 동양인의 기괴한 행동 배후에 숨어 있는, 일반적인 진리를 발견하는 능력도 갖추고 있었다. 이것이야말로 그의 저작이 그렇게도 큰 중요성을 확보하게 된 원인이었다. 나아가 이 두 가지 능력의 특수한 결합이야말로 로렌스와 벨, 필비의 명성의 토대가 되는 전문지식의 양식을 예언하는 것이었다. (P413)

대부분의 경우, 이러한 포괄적인 비전을 만들어내는, 일종의 대행자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 오리엔탈리스트이다. 어떤 개인이 동양이나 동양의 민중으로서 알려진 집합적인 현상 자체를 ‘과학적’으로 보아야 할 필요가 부닥쳤을 때, 그는 자신의 관념이나 자신의 눈으로 본 사항도 이 요구하에 종속시키고자 한다. 그 방법의 전형적인 보기가 레인이었다. 그러므로 19세기 말의 오리엔탈리즘을 채운 과학적인 범주가 고정적인 것임과 마찬가지로, 비전이라고 하는 것도 고정적인 것이 된다. (P419)

내가 이 절에서, 학자가 아니라 제국의 대리인이나 정책결정자들에게만 주의를 집중하여왔다고 한다면, 그것은 동양에 관한 지식, 동양과의 교류로서 오리엔탈리즘에서 아카데믹한 자세로부터 ‘도구적인’ 자세로 커다란 전환이 생겼음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P431)


<제 3장 현대 영국-프랑스의 오리엔탈리즘, 그 극성기>

고향을 감미롭게 생각하는 사람은 아직 허약한 미숙아이다. 모든 곳을 고향이라고 느끼는 사람은 이미 상당한 힘을 갖춘 사람이다. 그러나 전 세계를 타향이라고 느끼는 사람이야말로 완벽한 인간이다. –성 빅톨의 휴고 (P453)

영국을 인도에 결합시키고 있는 정치적 이해로 인하여, 영국인의 일은 언제나 구체적 현실과의 접촉을 유지하면서, 과거의 표상과 현재 눈 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광경 사이의 결합을 지속시켜왔다. 그런데 고전적인 전통에 의해 함양된 프랑스의 경우에는, 그들이 중국에 흥미를 가졌던 것과 마찬가지의 방식으로 인도에서 발현된 인간정신을 탐구하고자 하는 것이다. – 실뱅 레비 (P460)

마시뇽은 그 출발점으로서 세 가지의 아브라함 종교를 택했다. 그 중에서 이슬람은, 이스마엘의 종교, 곧 신이 이삭에게 준 계약에서는 제외된 사람들의 일신교이다. 따라서 이슬람은(아버지인 신과 그 화신인 크리스트에 대한) 저항의 종교이고, 하갈의 눈물로 시작된 슬픔을 그 안에 안고 있다. 그 결과 아라비어는 눈물의 언어 그 자체가 되었고, 동시에 이슬람의 ‘지하드’ 개념 전체가 중요한 지적 차원을 확보한다. 지하드의 사명이란, 외부의 적인 기독교와 유태교 그리고 내부의 적인 이단에 대한 투쟁이다. (P468-469)

마시뇽의 비전이 취한 틀은, 이슬람적인 동양에는 본질적인 고대를, 또 서양에는 현대성을 할당하는 것이었다. 로버트슨 스미스와 마찬가지로, 마시뇽은 동양인이란 현대에 사는 인간이 아니라 셈족이라고 생각했다. (P472)

마시뇽은 구제하기 어려울 정도의 외부인이었고, 기브는 내부인이었다. 두 사람은 모두 각각 프랑스와 영미의 오리엔탈리즘에서 위신과 영향력의 절정을 이룬 인물들이었다. 기브의 경우 동양이란 직접 만나야 할 장소가 아니라 학회나 대학, 학술집회라고 하는 틀 속에서 읽고 연구하고 써야 되는 것이었다. (P480)

동양적인 정신을 다른 것과 구별하는 본질적인 특징이란, 보이지 않는 것을 신봉하기가 쉽다는 것이 아니라 보이는 것의 체계를 구축하는 능력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다. – 기브 (P483)


<제 4장 최근의 전개>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특히 아랍-이스라엘 분쟁 이래, 아랍 무슬림은 미국 대중문화의 문제꺼리가 되었고, 학계나 정계 그리고 재계에도 아랍이 심각한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이것은 국제적인 힘의 배치의 커다란 전환을 상징한다. (P496)

1. 대중의 이미지와 사회과학적인 여러 표상
아랍은 이스라엘이나 서양의 존립을 파괴하는 것으로 간주되고 있고, 또는 같은 것에 대한 다른 관점으로부터는, 1948년의 이스라엘 건국시에는 극복할 수 있는 장애물로도 간주되었다. 이 아랍이 어떤 역사를 갖는다고 한다면, 그것은 오리엔탈리즘의 전통에 의해 그리고 그 뒤에는 시오니즘의 전통에 의해 부여된 역사의 부분이다. (P498)

곧 오리엔탈리즘은 더 이상 근본적으로 문헌학적인 학문분야가 아니고, 동양에 관한 막연한 일반적인 지식도 아니며, 사회과학의 전문분야의 하나로 전환했다. 이것이야말로 특히 미국이 오리엔탈리즘의 역사에 대하여 끼친 공헌이며, 이 시기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미국이 영국과 프랑스에 의해 비워진 빈 자리를 차지하기에 이른 시절부터 비롯된다. (P504-505)

현대 미국의 근동연구에 문학이 결여되고, 문헌학의 지위가 상대적으로 낮다고 하는 것은 오리엔탈리즘의 새로운 편향을 나타내는 것이다. 왜냐하면 오늘날 근동의 전문가가 행하고 있는 작업과 기브나 마시뇽에 이르는 전통적인 오리엔탈리즘과는 닮은 점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계보적으로 미국 오리엔탈리즘의 유래를 따져보면, 그것은 제2차 세계대전 사이 그리고 이후에 창설된 군대의 외국어학교, 전후의 비서양세계에 대한 정부와 여러 단체들의 돌연한 관심, 소련과의 냉전, 그리고 갱생자 재교육의 기회가 있었다고 간주한 동양인에 대한 선교사적인 태도의 잔재이다. (P507)

2. 문화관계정책
1950년에 모티미 그레이브스에 의해 정의된 ‘문화관계정책’의 하나는 ‘1900년 이후 발간된 중요한 근동의 여러 언어에 의한 모든 중요한 저작’을 수집하고자 하는 시도였고, 그것은 “의회에 의해 국가안전보장의 한 수단으로 생각되어야 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레이브스가 논의했듯이 여기서 분명히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미국의 의도를 근동이 받아들일 때 대립하고 있는 여러 세력을 미국이 가장 잘 이해해야 할” 필요성이고, “이러한 여러 세력의 필두는 물론 공산주의와 이슬람”이기 때문이었다. (P513)

3. 단순한 이슬람
일련의 사건과 상황에 의해, 시오니즘운동 속에서 셈족의 신화는 두 가지로 분화되었다. 하나의 셈족은 오리엔탈리즘의 길을 걸었고, 또 하나의 셈족은 곧 아랍인은 동양인으로서 길을 걸었다. (P534)

루이스가 ‘싸우라’를 (여러 가지의 가치를 위한 투쟁과 결부시키지 않고) 낙타의 일어남이나 일반적인 흥분과 결부시키고 있는 것은, 그에게는 아랍이 신경질적인 성적 동물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평소보다도 더욱 분명히 암시하는 것이다. 나아가 그가 아랍의 것이라고 서술한 성욕은, 거의 대부분이 ‘악성의’ 성욕이다. 결국 아랍은 실제로는 진지한 행동을 일으킬 준비가 없기 때문에 그들의 성적 흥분도 낙타의 일어남과 마찬가지로 조금도 고귀하지 않은 행위이다. 그곳에 있는 것은 혁명이 아니라 선동이며, 소규모정권의 수립이고 그리고 더욱 많은 흥분이다. (P548-549)

예컨대 오늘의 아랍세계에서는 아랍연구에 관한 유력한 잡지는 단 한 권도 발행되고 있지 않으며, 아랍세계에 관한 연구는 물론이고 비동양지역에 관한 문제에 관해서도 옥스퍼드나 하버드, UCLA에 필적할 수 있는 아랍의 교육제도는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모든 것이 야기하는 결과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동양인 학생들은 지금 미국의 오리엔탈리스트에게 와서 그 무릎 아래에서 배우기를 희망하며, 그 뒤에는, 내가 오리엔탈리즘의 도그마라고 특징지워온 상투문자를 자국의 청중을 향하여 반복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재생산 시스템에 의하여 동양인 학자는 오리엔탈리즘의 체계를 ‘조작’할 수 있게 되므로, 그들이 스스로 미국에서 받은 훈련성과를 이용하여 자기국민에 대한 우월감을 갖게 되는 것은 불가피한 것이라고도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러나 유럽인 또는 미국인 오리엔탈리스트라고 하는, 자기보다 상위에 있는 인간과의 관계로부터 말하자면, 그들은 단순히 ‘원주민 정보원’에 불과하다. (P562)

나는 오리엔탈리즘의 결함이 지적인 것임과 동시에 인간적인 것이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왜냐하면 오리엔탈리즘은 자신과는 이질적인 것으로 보이는 지구 위의 한 지역에 대하여 확고한 적대자의 입장을 취하여야 했기 때문에, 인간경험과 일체화할 수 없고, 인간경험을 인간경험으로 볼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P569)

특히 내가 독자들에게 이해를 바라는 것은,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해답이 옥시덴탈리즘 곧 서양주의가 아니라는 점이다. (P570)


[1995년판 후기]

오리엔탈리즘이라고 부른 것에 대한 나의 반대는, 동양의 언어와 사회 및 인민들을 오직 골동품취미로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무비판적이고 본질주의적인 입장을 벗어나 이질적이고, 역동적이며 복합적인 인간의 리얼리티에 접근하는 사고의 체계로서이다. 무비판적이고 본질주의적인 입장이란 동양에는 영구적인 실체가 있다는 주장, 그리고 그것에 대립되는, 그러나 마찬가지로 영구적인 것이라고 하는 서양의 본질(동양을 멀리서, 다시 말해 그 위에서 관찰하는)을 주장하는 입장 둘 다를 말한다. 이 그릇된 입장은 역사의 변화를 은폐하고 있다. (P578-579)

나는 포스트콜로니얼리즘의 관심사를 지리학의 문제로 확장하는 것에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다. 결국, ‘오리엔탈리즘’은 수 세기 동안 동양과 서양을 이을 수 없는 간극이라고 믿게 한 것이 무엇이었는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일에 토대를 둔 연구이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나의 목표는 동양과 서양의 차이를 퍼뜨리는 것이 아니라, 그 차이가 적대감, 서로 대립하는 본질이 얼어서 굳어버린 일련의 응결, 그런 것 위에 세워진 전반적으로 반목하는 지식임을 암시하는 개념에 도전하는 것이었다. (P607)


[옮기면서]

간단히 말하여 사이드의 그것은(오리엔탈리즘) ‘동양에 대한 서양의 사고-지배방식’이다. 곧 오리엔탈리즘으로 총칭되는, 동양에 대한 서양의 사고, 인식, 표현의 본질을 규명함과 동시에 그것이 기본적으로 동양에 대한 서양의 지배와 직결된 것임을 밝혀 앎과 힘-지성과 권력의 관계를 식민지적 상황에서 인식시키려고 한 것이다. (P613)

서양인은 낭만적인 이국취미로 장식한 어떤 야릇한 신비적 현상을 동양적인 것이라고 조작했다. (P614)

사이드는 오리엔탈리즘의 근본에 놓여 있는 것은, 동양과 서양 사이에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는 존재론적, 인식론적 구분 즉 흑백논리임을 밝힌다. (P614)

동양에 대해 무엇을 쓰는 사람은, 이미 쓰여진 것을 인용함으로써 더욱더 그 권위를 강화시켜간다. 이것은 동양이 특정한 권위에 의해 표상되고, 재구성되며 창조되는 과정-‘동양의 동양화’-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동양인은 스스로 대변할 수 없고, 다른 누군가에 의해 대변되어야 한다”는 도그마가 숨어 있다. (P615)

동양이란 유럽인에게는 “평생을 바쳐야 하는 사업”(디즈레일리)이다. 동양을 구제한다는 미명의 프로젝트로 나타나는 오리엔탈리즘은, 일본이 우리를 근대화시켜서 야만으로부터 문명에 이끌기 위해 침략했다는 논리와 꼭 같다(바로 일본이 서양에게서 배웠다). 따라서 오리엔탈리즘은 서양의 지리적 확장과 식민지주의, 인종차별주의(반셈주의), 자민족중심주의와 결부되어 지배의 양식으로 대두한다. (P617)

오늘날 서양은 분명히 동양보다 앞선 구석이 있다. 그러나 그것이 식민지 착취에 의한 부의 축적 위에서 가능했었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P632-633)

마치 ‘이성’이 스스로의 ‘외부’로서 ‘광기’를 날조함으로써 성립된 것과 마찬가지로, 유럽문화는 ‘은폐된 자기’이기도 한 동양을 소외시킴으로써 스스로의 아이덴티티와 힘을 획득할 수 있었다고 사이드는 분석한다. (P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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