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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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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7월 28일 16시 16분 등록
떠남과 만남 : 변화를 꿈꾸는 영혼의 게으른 남도여행 (구본형 지음, 생각의 나무, 2000)

<책머리에>
나는 아주 천천히 걸었다. 달팽이처럼, 온몸으로

달팽이가 지나간 자리에는 언제나 움직임의 궤적이 남는다. 온몸으로 걸어가기 때문이다.

***

두 번째 인생은 절대로 바쁘게 보내지 않을 것이다. 첫째, 더 자유로워지고 싶다. 오직 나만이 나에게 명령할 수 있는 시간을 더 많이 줄 것이다. 둘째, 더 많이 배울 것이다. 때로는 진지하고 때로는 진지함을 버릴 것이다. 셋째, 배운 것을 통해 기여할 것이다. 주제넘지 말 일이다. 내가 만족한 나의 삶만이 이 땅에서 내가 기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여행은 생략할 수 없는 새로운 시작의 상징이다.

한 다리가 움직이기 위해서 다른 한 다리는 땅에 닿아 있어야 한다. 걸어서 다른 곳으로 움직여 간다는 것은 두 다리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는 작업이라는 것을 사람들은 늘 잊고 지낸다.

크든 작든 모든 잔인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다른 사람들의 희생과 어려움 그리고 불행 위에 자신의 기쁨을 쌓는다는 것이다.

줄곧 혼자 있는 사람은 외롭지 않다. 이미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고독 속에 누군가 며칠 다녀가고 다시 혼자가 되면 그때는 허전해진다.

매화의 향기는 코로 맡는 것이 아니다. 귀로 듣는 것이다. 바늘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릴 만큼 마음이 잔잔해져야 그 향기를 느낄 수 있다.

모름지기 달라지려는 사람은 단 하나의 일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

대개의 경우, 하나의 일을 아직 잘하지 못하기 때문에 방황하는 것이다. 어떤 일에 깨달음을 얻어 밝아지면 자신이 곧 그 일의 미래라는 것을 알게 된다.

여기 있는 나무들 중에 아주 오래된 놈들은 충무공이 아침에 일어나 해변으로 나가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다음날 충무공의 시신이 배에 실려오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거북선을 만들고 선박을 축조한 것은 그가 전장에서 용감히 싸우다 죽는 것만을 최선으로 아는 일개 무장이 아니라 미래를 스스로에게 유리하도록 만드는 개척자라는 것을 의미한다. 스스로 미래를 만들어내는 것만큼 확실한 승리는 없다.

산다는 것은 약간 우물쭈물하는 것이다. 산다는 것은 망설이는 것이다. 그것은 어리석음이며 미련이며 우유부단함이다. 그러고는 나중에 그것을 후회하고 그것이 차마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다.

진지함은 불완전한 노력일 뿐이다. 그는 알고 있는 지식을 소화하여 자신의 인생관과 관련시킨다. 그래서 어떤 때는 단순하다. 역설적이지만 단순하다는 것만큼 깊이 있는 것은 없다. 그는 세상에 속한 듯하지만 자신에게 속해 있다.

상징을 빼면 인간의 정신은 빈약해진다. 땅끝의 아름다움은 여기가 반도의 끝이라는 생각 때문에 비장하고 단호한 정취를 갖게 만든다.

길은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다. 살며 만나는 어려움도 늘 그것이 최초는 아니다. 이미 누군가가 건너간 길이다. 지금은 나뭇가지를 붙잡고 천애의 절벽을 발밑에 두고 아슬아슬 건너가지만 내가 지나온 자리는 결국 나중에 길이 될 것이다.

군대란 전쟁을 하기 위해 조직된 소비적 집단이다. 이런 집단을 해상 무역에 투입시켜 해상 제국을 건설했다는 것은 장보고가 대단한 개척자였다는 것을 증명해준다. 그는 당시 사회의 전통적인 패러다임을 넘어서 있었다.

심심하다는 것은 자기 속에 데리고 놀 자기가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늘 밖에서 친구가 될 만한 것을 찾는다.

불행을 통해 배우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그 사회는 불행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든다.

문화는 쉽게 말해 잘 노는 것이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하고, 자기가 스스로의 삶을 조직하는 능력을 배양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자유 시간이 부족하면 자기의 삶을 자율적으로 조직할 수 있는 가능성이 낮아진다. 문화는 본질적으로 스스로를 유한 계급으로 만드는 과정이다.

작은 아이 하나가 아버지를 따라 들어왔다. 탕 속에 들어와 혼자 노는데 조금도 지루해 하지 않는다. 수건의 한쪽 끝을 잡고 커다란 고기처럼 끌고 다니기도 하고 세숫대야를 물위에 띄우고 재빨리 올라타기도 한다. 그러면서 수없이 많은 이야기를 자신에게, 수건에게 그리고 세숫대야에게 한다. 그 아이는 목욕탕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 아이는 바다에서 커다란 고래를 타고 자기 집보다 더 큰 흰 갈치를 잡아끌고 있는 중이다. 그의 영혼이 놀고 있는 곳은 마법의 세계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흙이 그리워지는 것이다. 살면서 흙이 좋아져야 비로소 죽을 수 있다. 흙 속에 묻혀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무섭지 않아야 죽음 또한 삶의 일부로 받아들일 수 있다.

빠르다는 것은 늘 되돌아올 수 없이 멀리 가게 만든다. 우리는 이미 편리의 이름으로 개발된 시멘트 덩어리와 오염 속에 살고 있다. 편리는 생명을 넘어설 수 없다.

인생은 길이다. 길을 걷는 것이 아니라 길 그 자체다.
아름다운 나무 가득하고 옆으로 작은 시내 하나 흐르는 그런 길이었으면 한다.

위로를 해주었지만 위로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견뎌내야 하는 것은 늘 자신의 몫이다. 그래서 안타깝기도 하고 그래서 다행이기도 하다. 자식들의 어려움을 대신할 수 있다면 세상의 모든 부모들은 이미 모두 죽어 없어졌을 것이다. 과로와 지나친 심려 때문에.

갑자기 대박이 터지는 행운을 거머쥔 사람들. 어마어마한 액수의 복권에 당첨된 사람들이 대체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이혼이다.
갖고 싶은 바지 한 벌과 치마 한 벌을 한꺼번에 살 수 있으면 그대는 이미 위험하리만큼 부유한 것이다. 더 이상 바라지 마라.

길이 끊어진 곳에는 늘 다른 길이 있게 마련이다. 길이 끊겼다는 당황스러움과 되돌아가야 한다는 머뭇거림이 새로운 길을 만들어내게 한다.

비극은 늘 자신의 힘으로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찾아온다. 미국 흑인의 비극은 그들을 해방시킨 링컨이 흑인이 아니라는 것에서 연유한다. 해방 후 우리 민족이 겪은 비극은 우리의 힘으로 해방되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변화의 핵심은 새로운 상황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새로운 상황을 창조함으로써 스스로 그 주인이 되는 것이다. 성공할 때도 있고 실패할 때도 있다. 중요한 것은 주체적인 자기로서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신이 허락한 대로.

감탄은 자신을 잊게 한다. 자신과 세계 사이에 존재하는 벽을 허물고 어두운 자아 속으로 햇빛을 가득히 받아들이게 한다.

바다는 내 삶이 추구하는 상징이다. 아이들의 이름 속에 모두 바다를 넣은 것처럼 바다는 나의 미래다. 그리고 꿈이다. 바다는 늘 낮은 곳을 선택하는 물의 승리다. 바다는 모든 것을 그 안에 담고도 오직 하나의 색, 푸른빛을 유지하고 있다.

공자와 노자와 장자가 서로 다른 사람들이 아니고 우리의 삶을 서로 보완하는 한 사람으로 인식될 때, 우리는 세상에 나가서도 자신으로 들어와서도 자유롭다. 나아가 세상을 바꾸고 들어와 자신을 바꾸는 것은 자유가 아닐까?

기술이든 돈이든 이데올로기든 그 무엇 때문이든 간에 변화를 통해 자연이 황폐해지고 인간이 서로에게 소외된다면 그것은 부정적 변화다. 삶은 기술이 아니다. 삶은 돈이 아니다. 삶이 이데올로기가 아니라는 것 또한 우리는 잘 안다. 삶은 그 자체로서 중요하다.

한국의 산수 속에서 한국의 인물을 보고, 그 인물 속에서 그를 길러낸 한국 산수의 힘을 느끼는 것, 이것이 내가 여행이라는 매력적인 휴식을 통해 즐기고자 하는 것이다. 나는 이런 휴식을 통해 정신적 지평을 넓혀갈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휴식은 자신에게 선사하는 따뜻한 시간이다. 자신에게 시간을 주지 않고 어떻게 더 나아질 수 있겠는가? 왜 우리는 늘 바쁘고 또 다른 사람을 바쁘게 하는가? 바쁜 사람은 바보다. 자신을 괴롭히고 남을 못살게 할 뿐이다. 휴식이 게으름이나 소비로 느껴지지 않을 때, 한 사회가 이에 진심으로 공감할 때, 우리는 훨씬 나아진 사회에 살게 된다. 우리가 좀더 나은 사람(a better person)이 되는 것, 이것이 바로 긍정적 변화인 것이다.


***


날씨 탓을 하자니 치사스럽지만, 한동안 멍하니 늘어져 있었다.
축 쳐져서 숨쉬기도 힘들어하고 있었다.
쏟아 붓는 빗줄기에 이렇게 식어버릴 줄 모르고서.
이 책은 그.냥. 손이 가서 읽게 되었다. 휴가를 앞두고 있어서였을까?
뜨거운 계절에 만나는 매화와 동백이 새삼스러웠다. 천리향과 수수꽃다리도.

한 달 반의 남도 여행..
나도 나에게 이런 여행을 선물할 수 있을까?
상상만으로도 신나는 일이니 가까운 미래에 시도해 보기로 하자.
혼자여도 좋겠고, 누군가와 함께여도 좋겠다.

내일부터 시작되는 휴가는 빗줄기에 식어버린 대지처럼 썰렁해졌다. 이럴 수도 있다.
그래도 떠날 짧은 휴가를 앞두고 몇 가지 바란다면..
일상에서 벗어나는 동안 멍했던 정신을 추스르면 좋겠다.
신나는 방학에 들뜬 아이들처럼 놀았으면 좋겠다.
하늘만큼 땅만큼 맘을 열어놓는 시간이면 좋겠다.

마음은 벌써부터 분주하다. 소란한 물가에 이미 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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