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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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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8월 30일 19시 19분 등록
한국인 트렌드 (김경훈, 김정홍, 이우형 지음, 책바치, 2004)

< 머리말 : 우리 사회의 낮은 개울물 소리를 따라서 >

멀지 않은 곳에 강이 있음을 알고 있다면, 비록 산중에서 길을 잃었을지라도 낮은 곳으로만 흐르는 개울물 소리에 귀 기울일 일이다. 개울물은 언젠가 강물과 만나고, 마침내 바다로 흘러갈 것이다. 따라서 지금 작은 소리로 흐르는 개울물을 찾는 것은 곧 미래의 실마리를 잡는 일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미래 예측은 이처럼 그리 거창하지 않다.

이 책은 사회에 편재하는 우리네 삶의 단편들로부터 영감을 얻어서 쓴 것이다. 엄밀한 학문적 시각은 배제하고, 작은 개울물 소리들을 좇아가며 그것이 장차 어떤 큰 물줄기로 합류할 것인가를 추적해보았다. 우리는 그 개울물들이 트렌드임을 확인하기 위해 두 가지 절차를 거쳤다.

첫째로 현상과 그 현상의 주체인 한국인들의 마음속에 확실한 심리적 동기가 있는가를 살펴보았다. 남이 하니까 그저 따라 하려는 것은 일시적인 유행 심리에 불과하지만, 성공의 욕망이든 본능이든 강력한 심리적 동기가 내재해 있다면 그것은 좀더 먼 미래까지 이어질(우리는 10년을 기한으로 삼았다) 트렌드가 될 것이다.
둘째로는 사회적 토대가 마련되어 있느냐는 것이다. 심리적 동기가 있다 할지라도, 사회적 토대가 무르익어 가지 않으면 지지할 바닥이 없는 공중누각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 1부 우리 사회의 지형도를 바꿀 새로운 흐름들 >

1장 소비 세상을 뒤흔드는 ‘두 손 문화’의 탄생

컴퓨터를 사용함에서 한 손 문화의 상징은 마우스다. 손가락 하나만으로도 모든 걸 할 수 있을 듯 보인다. 그러나 마우스 문화는 이미 주어진 것들을 받아들이고 ‘클릭’할 때에만 번성하는 수동적 방식의 문화다. 컴퓨터를 사용할 때 한 손으로 쓰는 마우스로 선택한 것들과 두 손으로 두들기는 자판으로 하는 일을 비교해보라. 만일 당신이 문서를 만들고, 당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뭔가에 대해 자기 의견을 주장하려고 한다면 마우스를 버리고 다시 두 손으로 자판을 두들겨야 한다. 당신의 사고를 사이버 세상에 등록하려면 ‘두 손’이 필요하다.

‘두 손’은 두 가지를 상징할 수 있다. 하나는 기존의 소비문화와 소비-생산 관계에 대한 ‘저항’(소극적이든 적극적이든)이고, 또 하나는 자신의 시간을 소비해가면서 직접적으로 ‘참여’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두 손 문화는 기성 소비문화에 대한 저항 성향이 참여의 형식을 통해 실질적 변화를 이끌어내는 문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두 손 문화’는 또한 두 가지 조건 위에서 가능하다. 상품에 대한 리뷰가 되었건, 목재를 사서 만들건 간에 이런 일에 시간을 들일 여유가 있어야 한다는 것과, 그런 여유를 뒷받침할 소득 수준의 향상이 전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유와 소득은 ‘두 손 문화’를 번성시키는 에너지이자 이것을 새로운 트렌드로 만드는 힘이다.

2장 ‘임의 접속’-굴레 없는 관계 맺기

조선시대 사랑방의 폐쇄적 성격과 비교해보면 인터넷 동호회 600만 개 시대에 우리의 관계 맺기 방식이 ‘임의적’ 방식, 즉 ‘제 뜻대로 이루어지는 관계 맺기 양상’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정과 관습에 연연하지 않고 ‘필요’와 ‘상황’에 따라 자유롭게 접속과 해제를 되풀이하는 관계 맺기가 보편화하고 있는 것이다. 정보통신 기술의 발전은 접속의 공간 또한 ‘임의적’인 것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임의 접속 문화의 특징 중 하나는 붙박이 삶에 대한 염증과 떠나는 삶의 보편화에 있다. 이 같은 경향은 글로벌 시대를 맞아 해외 이민 붐을 이루거나 유학을 선택하는 사람들의 증가로도 나타나고 있다.

임의 접속 시대에는 삶의 경량화가 화두가 된다. 유목민은 언제라도 떠날 채비를 갖추고 있으며, 짐이 되는 것을 기꺼이 버린다. 그러므로 ‘소유’보다는 ‘경험’이야말로 그들이 욕망하는 대상이 된다.

직장이라는 닫힌 공간을 떠나 일상적 생활 자체가 부가가치 생산의 활동이 되고, 일상 공간 자체가 생산의 장이 되는 것. 바로 ‘임의 접속’ 시대의 새로운 직업 풍속도이다.

3장 파워풀한 문화 소비자―페로몬 공동체

인간에게도 페로몬이 있다고 추정하는 학자들이 많다. 사랑을 하게 되면 동물과 마찬가지로 향기를 내는 방향성(芳香惺)과 쉽게 날아가는 휘발성을 가진 페로몬이 분비된다는 것이다. 문명의 정화(精華)인 인터넷 세계에서도 이 페로몬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면 믿어지는가?

문화 상품은 소비의 경험을 통해 감성 충족이라는 목표를 얻게 되기 때문에, 다른 어떤 상품보다 기소비자의 주관적 경험 정보가 상품 선택에 절대적 영향을 끼친다. 대표적 문화 상품인 영화에서 관객의 입소문만큼 무서운 것이 또 있을까? 인터넷을 통해 주관적 경험에 대한 입소문, 즉 페로몬이 떠다니기 시작하면 수많은 더듬이들이 이것을 받아들이거나 혹은 거부한다. 그러다가 딸깍! 하는 공감이 일면 그들은 바로 공동체를 형성하고, 상품에 대한 평가와 더불어 생산자에게까지 영향을 끼친다. 이들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유행을 창조하는 곳은 이제 인터넷 게시판들이다. 특정한 페로몬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모여 공동체 게시판을 만들기도 하고, 누군가가 홈페이지를 열었을 때 그가 발산하는 감성의 분비물에 유혹당한 사람들이 몰려와 공동체를 형성하기도 한다.

10대들은 20대와 함께 인터넷 동호회 활동에 가장 열심인 세대다. 발랄한 감수성을 주체할 수 없는 그들이지만, 1980년대에는 표현의 창을 아예 갖지 못했고, 1990년대에는 그저 열광하는 소비자였을 뿐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그들은 스스로 문화 상품의 소비자이면서 기획자이고, 스타의 팬이면서 스스로 스타가 되고, 유행을 좇아다니지만 스스로 유행을 만들어 유포시키기도 한다. 이제 누구도 그들의 페로몬이 새로운 문화 상품을 만드는 것을 막을 수 없다.

4장 머니 게임 경주자들의 조기 은퇴

돈이 돌고 돌아 인생을 지배하는 머니 게임 사회. 우리는 이 쳇바퀴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한다. 그런데 지금 이 머니 게임의 경주장에서 ‘조기 은퇴’를 꿈꾸는 이들이 생겨나고 있다. 머니 게임에서 조기 은퇴하려는 흐름을 우회적으로 표현하자면 결국 ‘다른 사람이 베풀어주는 즐거움이 아닌 자기 스스로 선택한 것을 즐기며 살고자 하는 동시대 의식의 쏠림 현상’이라고 규정할 수 있겠다. 또한 적어도 어디 가서 밥을 굶지는 않을 만한 경제 발전의 조건은 우리 시대의 하운드레이서들에게 트랙 벗어나기를 향한 꿈을 구체화할 수 있는 물질적 토대를 만들어 준다.

이른 은퇴의 대표적인 케이스는 돈 버는 일이 아닌, 하고 싶은 일을 찾아 훌쩍 떠나는 것이다. 머니 게임의 경주장에서 그들의 때 이른 은퇴는 다른 이들에게 놀라움을 선사하는 깜짝 이벤트다.

완전 은퇴를 향한 꿈이 더 큰 노력과 희생을 필요로 할수록, 그 대안으로서 트랙의 성격을 바꾸려는 시도는 더욱 늘어날지도 모른다. 지금 당장의 결심과 몇 가지 준비만 가능하다면, 다소 경제적 고달픔을 겪더라도 무한한 보람과 삶의 즐거움을 안겨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 주변에서는 주어진 트랙을 벗어나 내 마음에 드는 트랙을 선택하여 떠나는 사람들의 빈자리가 점점 더 늘어날 것이다.

5장 여자들의 우정이 사회를 바꾼다

단순 논리적으로 생각하면, 네트워크의 특질이 여성화되고 있으므로 여성 자신의 지위도 혁신적으로 향상될 것이라 기대할 수 있다. 여성 자신이야말로 여성적 특질을 가장 잘 구현할 수 있는 존재들이 아닌가?
하지만 여성의 지위 향상을 위한 노력은 아주 오래 전부터 지금껏 늘 현재 진행형이었다는 점에서, 앞으로도 상당 기간 쉽지 않은 문제로 남을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하다.
‘여성의 우정’이 파워를 발휘하는 것은 바로 이 지점에서부터이다. 여성들은 오랜 차별과 억압의 경험을 통해 그들만의 연대와 우정, 단결의 중요성을 몸으로 학습해왔다. 따라서 그들이 사회적 네트워크로 쏟아져 들어올 때, 그 위력은 상상 이상의 폭발력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여성이 비즈니스 세계 속에서 성공하기 힘든 이유는 곧바로 남성 직업문화의 특질과 연결된다. 남성들은 온갖 공식‧비공식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정보를 독식하고, 인맥을 쌓고, 충성해야 할 대상과 친해져야 할 상대를 구한다. 룸살롱, 폭탄주로 대별되는 남성 놀이문화가 개입될 때 여성의 입지는 더욱 좁아지게 마련이다.
하지만 전통적으로 남성들이 독식하다시피 했던 비즈니스 세계에서도 남성 중심의 네트워크는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여성들의 조용하지만 의미 있는 반격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몇 년 전부터 여성계에서 벌이고 있는 ‘멘토링(Mentoring)'은 바로 그 전형적인 사례이다.

이제까지 여성들이 수집하는 디지털 정보는 무척 제한적이었다. 컴퓨터에 대한 접근 자체가 용이하지 않았고, 정보의 수집과 활용이라기보다는 인터넷을 사교의 수단(채팅, 이메일)으로 삼는 경향이 짙었다. 여성들의 ‘수다 문화’가 인터넷을 통해서도 여실히 구현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최근 불어 닥친 아줌마 바람은 이런 소극적인 양상에서 탈피하여, 여성으로서의 주체적 삶과 그것을 가로막는 사회에 대한 비판을 거침없이 쏟아내기 시작했다. 남성들이 자신의 ‘성공’을 위한 ‘거대’ 정보를 나누는 사이, 여성들은 육아로부터 시작해 교육‧문화‧성과 사랑‧가족 등의 자잘한 일상을 자신들의 콘텐츠로 개발해냈다. 이런 콘텐츠들은 근본적으로 사회 비판적 요소를 포함할 수밖에 없으며, 기존 사회가 강요하던 낡은 이데올로기에 균열을 가져오게 마련이다. 결국 인터넷이라는 신기술이 일상을 통한 여성들의 정치 행위가 시공간을 초월해 폭넓게 전개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한 셈이다. 그들은 이런 움직임을 바탕으로 ‘나의 성공’이 아니라 ‘우리의 행복한 생활 공동체’를 꿈꾸기 시작했다.

6장 노인, 생산적 현역의 시대

의학 기술의 발달로 비롯된 장수 혁명의 시대는 인간의 평균 수명을 크게 늘려놓았다. 이런 현상은 2003년 현재 가임 여성의 출산율이 1.17명으로 떨어진 저출산 시대의 흐름과 맞물려, 우리나라를 급속히 ‘늙어가는 나라’로 바꿔놓고 있다.
따라서 새 시대의 노인 규정은 ‘그가 사회적 가치 생산의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은가’로 변화할 수밖에 없다. ‘사회적 노화와 생물학적 노화의 비대칭 시대’ 혹은 ‘생산 현장에서 최종적으로 손을 떼는 순간에야 비로소 노인’이 되는 새로운 ‘생산적 현역의 시대’가 화려한 개막 선언을 준비하고 있다.

나이 들어서도 가치 있는 인간으로 살고자 하는 그들의 꿈은 단지 경제 분야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그들은 꼭 돈을 버는 일자리가 아니더라도, 자신의 능력이 사회적으로 가치 있게 쓰이기를 바란다. 따라서 지금 우리 사회에서 노인들이 봉사단을 조직하고, 자신의 능력과 경륜, 지혜를 다음 세대의 더 나은 삶을 위해 서비스하는 현상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현실은 아직 이 같은 흐름을 전면화하고 있지는 못하다.

사회로부터 강요된 엄숙주의와 ‘노인다움’이라는 이데올로기를 깨려는 노력은 노인들 편에서 더욱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나타난 것이 바로 노인 동거 커플의 증가 현상이다.
그러나 여생을 함께할 반려자를 구하려는 노인들의 노력은 그동안 번번이 좌절되기 일쑤였다. 우선 재산 상속이나 호적 문제 따위를 내세우는 자식들의 반대가 거셌다. 하지만 더 곤혹스런 문제는 ‘다 늙어서 벌이는 주책 맞은 행동’이라는 편견에서 노인들 스스로가 자유스럽지 못했다는 데 있다. 그러나 이제 노인들은 다시 욕망하기 시작하고, 그들이 망각하고 있던 권리를 다시 찾아오겠다고 나서고 있다.

< 2부 성공의 꿈과 욕망이 빚은 자본주의적 트렌드 >

1장 새로운 시대의 인재상―멀티태스커

단일한 언어, 기능과 지식, 문화의 경계를 뛰어넘어 다양한 분야에서 전문적인 능력을 갖추고, 이질적 콘텐츠의 조율에 능숙한 사람.
프로페셔널이 뜨던 199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이런 사람들은 쓸데없이 여러 분야를 기웃거리고, 어느 한 분야에서도 원숙한 실력을 갖추지 못한 사람 정도로 치부되던 인종들이다. 그러나 2002년 월드컵을 통해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박지성, 이영표 등이 ‘멀티플레이어’로 각광을 받으면서, 인재를 바라보는 잣대가 많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멀티태스커는 멀티플레이어에 비해 좀더 이질적인, 좀더 다양한 업무 능력과 지식을 가진 사람을 일컫는다.

다른 나라의 문화를 접하지 않고 평생을 살기란 시골 농부들에게도 어려운 시대가 왔다. 그러나 섬이라고 해도 좋을 한국의 독특한 지리적 특성 때문에, 문화와 문화가 정식으로 교류되는 것은 아직 일부 사람들에 해당되는 일이다. 하지만 이미 벽의 한 귀퉁이는 허물어졌고, 다른 벽으로도 빠르게 전파되고 있다. 문화의 경계인 이 벽을 허물지 않고는 글로벌 시대의 멀티태스커로 거듭날 수 없기 때문이다.

타문화를 이해하고 국제적인 감각을 갖는 멀티태스커는 흔히 말하는 디지털 노마드(Digital Nomad:디지털 시대의 유목민)와 구별된다. 디지털 노마드는 고향 상실과 망각을 주요 특징으로 한다. 하지만 멀티태스커는 문화의 경계를 뛰어넘어 하나의 문화를 소단위로 삼고, 단위와 단위를 연결하는 고리를 찾아내고, 문화 충돌이나 갈등의 해소책을 제안하고, 문화 융합의 길을 제시하기 위해 국제적인 감각을 기른다. 노마드는 국경 없는 자유인이지만, 멀티태스커는 어느 경우도 무시하지 않는 세계인이다.

2장 네버랜드(Neverland) 러시

단순히 ‘무병장수’만을 빌던 시대는 지나갔다. 젊은이 흉내가 아니라 진짜 젊은이로 살아가려는 것이다. 30대에서 50대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불고 있는 이 ‘젊음’ 바람은 결국 ‘오래도록 현장에 남아 행복하게 살고 싶은’ 소망의 증거다. ‘구닥다리로 보이면 사업에 불리하다’거나 ‘나이 들어 보이는 사람은 승진하기 어렵다’는 이유부터 ‘성 기능을 회복하고 싶다’, ‘애인이 젊고 깔끔한 이미지를 원한다’는 개인적인 이유까지 동기는 다양하다.

경기가 불안할수록 건강 관련 업종이 호황을 누린다고 한다. 믿지 못할 경제 상황, 불안한 미래가 사람들의 심리를 위축시키고, 결국 ‘몸이 재산’이며 ‘믿을 건 몸 뿐’이라는 인식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자본과 과학 시술과 불로장생의 꿈이 쌓아올린 탑의 맨 꼭대기에 위치한 것은 현재 진행 중인 게놈 프로젝트이다. 게놈학(Genomics)의 발전은 곧 개인의 ‘맞춤의학 시대’를 뜻하며, 결국 질병 퇴치 및 수명 연장의 꿈을 실현시켜 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그 핵심에 DNA칩이 있다.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인류 최대의 프로젝트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상황은 현대인들의 젊고 오래 살기에 대한 기대를 한껏 높이는 구체적인 동기가 되고 있다.

3장 고객 존중을 넘어선 메모리 마케팅

기업들은 상품을 더 잘 팔기 위해서는 고객을 완벽하게 이해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고객의 욕망, 그의 버릇, 그의 가치관, 심지어는 그의 입냄새까지도. 기업들은 고객에 대한 모든 것을 완벽하게 기록하고 기억했다가 필요할 때 가장 유용하게 써먹어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이것은 대(對)고객 서비스의 새로운 트렌드를 이끄는 근본 동력이다.
우리는 이것을 ‘메모리 마케팅’이라고 부르려 한다. 왜냐하면 새로운 시대에 마케팅 경쟁의 핵심은 어느 공급자의 고객 기억력이 더 완벽하고 효율적인가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 소비자들의 가장 중요한 변화는 기성복 고르듯 하는 소비에 싫증을 느끼게 된 것이다. 아무리 재빠른 주기로 새로운 디자인과 기능을 가진 신상품을 공급해도, 기성품에 싫증을 느끼는 각 개인의 욕망을 일일이 충족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기업이 고객에 대한 완벽한 기억력을 갖춘다 해도, 생산 측면에서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는 여전히 남게 된다. 완벽한 주문 생산만이 이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으니까….

고객의 요구는 선택의 폭과 다양성 면에서 더 높은 수준을 필요로 할 것임에 틀림없다. 대량 맞춤이 좋은 생산 방식이긴 하지만, 그래도 완벽한 것은 아니다. 대량 맞춤이 새로운 정보통신 기술과 생산조립 기술의 발전에 힘입은 결과였듯이, 앞으로 어떤 신기술이 출현해 고객의 다양한 욕구를 100% 만족시킬지는 아무도 모른다.

4장 시간을 팔아서 시간을 산다

시간이 없다. 열심히 살아갈수록 시간은 점점 줄어든다. 시간이 없다 보니, 이제 돈을 주고 시간 절약 상품과 서비스를 산다. 그러나 그 돈을 벌기 위해 또 시간을 써야 한다. 이 과정에서 또 시간이 줄어든다. 결국 사람들은 수면 부족에 허덕이며 쓰지 말아야 할 시간마저 자꾸 꺼내 쓰기 시작한다. 인간의 무한한 소비 욕구가 계속되는 한, 시간 부족은 피할 수 없는 원죄다.

‘무소유’를 선언하고 산 속으로 들어가거나 ‘적게 벌어 행복하게 살기’를 실천하는 혁명적인 라이프스타일을 선택하지 않는 이상, 현대인들은 돈과 시간의 핑퐁 게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결국 사람들은 주어진 24시간 중 휴식을 위한 시간들을 쪼개어 다시 생산 활동에 투자하기 시작한다.
투잡스, 혹은 멀티 잡이 등장하고, 자야 할 시간에 일을 하는 올빼미족, 새벽 시간 눈 비비고 일어나는 ‘아침형 인간’등이 생겨나면서 사회 문화적으로 커다란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밤을 중시하든, 아침이나 새벽을 중시하든,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은 어쩔 수 없는 수면 시간을 제외하고는 모든 시간을 쪼개고, 찾아내는 쪽으로 가고 있다. ‘시간=돈’의 개념으로 봤을 때, 건강만 지속적으로 뒷받침된다면 이들의 라이프스타일은 변함없이 시간 소비의 효율성 극대화라는 화두에 매달리게 될 것이다. 우리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시간을 쪼개고, 시간을 남겨서, 다시 시간을 사게 될 것이다.

5장 안전벨트를 맨 모험가들

‘앉은뱅이 사회’가 현대인의 몸과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다.
현대 자본주의적 삶을 묘사하는 핵심 키워드는 ‘무한 경쟁’이다. 이 경쟁에서 승자가 되기 위해 필요한 능력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오래 앉아 있기 능력’이다.

언제부터인가 판에 박은 듯한 현대 사회의 획일적 삶을 거부하고 ‘죽은 삶’을 싱싱하게 되살려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우후죽순처럼 늘어나고 있다. 그들은 ‘짜릿한 스릴’을 찾아 산으로, 바다로, 도시 속에 들어온 인공 자연과 사이버 세상의 환상 속으로 모험을 떠나고 있다.

번지 점프는 번지를 포기하지 않는 점프다. 그것은 우리가 그토록 분리되고 싶어 했던 ‘앉은뱅이 사회’와 우리를 연결하는 탯줄이다. ‘앉아 문화’의 쌍이 ‘반복’이듯, 모험과 스릴의 대응 쌍은 ‘안전’이다. 그 속에서 현대인들은 ‘안전벨트를 맨 모험가’로 전화(轉化)한다.

지루한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전벨트를 맨 모험가들은 ‘떠난다’. 생생한 자연의 숨결 속에서 활력을 되찾은 모험가들은 자신의 가정과 집으로 ‘안전하게 돌아온다’. 그리고 훨씬 더 ‘잘 앉을 수’ 있게 된다.

6장 e-불안한 세상 : 24시간 경비 사회

더 안전한 삶을 원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생존 본능이다. 그런데 세상은 갈수록 더 위험해지고 있다. 12시간 동안 위험할 때, 우리는 나머지 12시간은 안전장치 없이도 안전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24시간 위험한 사회에 살고 있다. 그래서 24시간 경비를 서야 한다. 누가 우리를 이런 위험에 빠뜨렸는가? 우리는 안다. 그건 바로 우리 자신이다.

편리함과 위험, 이 두 가지는 영원히 함께 갈 수밖에 없는 문명의 동반자처럼 보인다. 편리함을 포기하지 않는 한, 불안과 공포의 증가 역시 막을 수 없는 것이다.

가정, 거리, 직장 어디서나 상시적인 위험에 노출되는 사회. 그것이 24시간 경비 사회의 모습이다. 그런데 과연 우리가 불안과 공포에 떨어가며 지키는 것은 무엇일까? 도‧감청, 몰래 카메라, 기업 스파이, 인터넷 해킹, 도둑, 강도의 위험이 전혀 없는 지리산 속 화전민이 있다면 당신은 그의 행복과 당신의 불안을 바꿀 용의가 있는가?
결국 24시간 경비 사회로의 에너지원은 기술 진보라는 이름으로 무한하게 허용한 우리의 욕심이 아닐까?

< 3부 오래된 과거를 깨고 나오는 한국인 >

1장 벌거벗고 뛰는 할리우드식 일등주의

할리우드는 엄청난 제작비를 들여 영화를 만든다. 그들은 늘 성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10편 중 성공한 단 1편은 나머지 모든 실패를 만회하고도 남는다. 단 하나의 일등, 그것을 위해 그들은 뛴다. 이것이 할리우드식 일등주의다.
영화 시장만큼 승자독식의 세계가 한눈에 보이는 곳도 없다. 일등만 있고 이등은 없는 판이 영화판이다. 그런데 이 영화판 같은 세상이 한국 사회에 고스란히 재연되고 있다.

사람들은 현실을 알고 있다. ‘돈이 돈을 번다’는 당연한 진리를 뼈아프게 깨닫고 있다. 1%의 부자 대열에 합류하기란 ‘부자가 천국 가기’만큼 어렵다는 사실을 잘 안다. 또한 승자가 너무 많은 걸 가져간다는 것도 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포기하지 않는다. 승자독식의 세계는 이제 너무나 일반화되어서, 사람들은 겉으로 욕은 해대지만 이미 내재화된 자신의 가치로 받아들이고 있다. 로또 복권과 마찬가지로, 현실은 알지만, 꿈은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승자독식의 사회에서 사업 기회는 틈새시장에 있다. 틈새시장이란 승자가 차지하고 남은 시장이기도 하지만, 승자가 차지한 시장 내의 틈을 비집고 들어가서 만들어낸 시장이기도 하다. 부실해 보이고, 수요가 없어 보이던 곳에서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는 시장이다(시장의 발견도 수요를 창출한 것으로 봐야 한다).
출발 시간이 뒤처진 사람들로서는 그것이 유일한 방법이기도 하다. 그것은 ‘유행가 시장’에서도 만들 수 있고, 시장이 없던 장르를 통해서도 만들 수 있다. 영화‧출판‧음악‧게임 등 문화예술 분야만큼 승자독식이 뚜렷한 분야도 없지만, 또 그래서 틈새가 승부수가 된다.

2장 충동조절장애 증후군과 불신 사회

충동조절장애(Impulse Control Disorder)는 병적인 징후가 있는 도박, 방화, 도둑질, 머리카락 쥐어뜯기 등과 모든 종류의 중독(쇼핑, 마약, 인터넷)을 포함한다. 본능적 욕구가 너무 강하거나 자기방어 기능이 약해져 충동을 조절하지 못하는 증세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에는 이와 유사한 준 환자들이 급증하고 있다.

자본주의적 무한 경쟁은 이미 우리 사회의 주류적 체제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취업 스트레스에서 보듯 경쟁의 강도가 높을수록 스트레스는 쌓여만 가고, 황폐해지는 인간의 내면이 있다. 또 권력 집단의 무능과 부패에 대한 불신이 축적되면서 사회적 울화가 깊어지는 것도 한 가지 원인일 것이다. 이러던 차에 군사 문화적 권위 구조가 해체되고 수직적 상하서열 사회에서 수평적 네트워크 사회로의 이동 등, 권력 이동기에 억눌려왔던 충동이 뚫고 나갈 틈이 생긴 것이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 익명성이 보장된 인터넷 문화의 번성도 충동을 억제할 필요가 없는 공간을 제공한 셈이다.

나만 이겨 살아남으려는 태도는 경제발전 우선주의 속에서 나만의 성공을 찾던 개인들이 만들어낸 이기주의적 모습이다. 억제와 금기에 비자발적으로 억압된 한국인들이 찾아낸 탈출구가 지금 먼 거리를 돌아서 우리 자신을 겨누고 있는 것이다.

현대의 소비 사회는 기호와 상징의 소비 사회다. 충동적 행동들, 자기 이외의 모든 타인에 대한 불신이 사회 곳곳에서 우리 사회의 안전을 허물어뜨리는 중이지만, 바로 그 때문에 ‘신뢰’는 소비자들이 원하는 새로운 기호다.

3장 나를 꼭 안아주는 체온 커뮤니티

어머니의 품이 따뜻한 것은 사랑이 전해지는 체온 때문이다. 그 품안에서 어머니와 나는 다른 사람이 아니다. 한국인은 그렇게 따뜻한 내부자들의 커뮤니티에 너무나 익숙하다. 낯선 이방인을 대하는 태도에서 한국인처럼 배타적인 사람들이 또 있던가?

흔히 한국인은 공동체 의식이 강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공동체 의식의 실상은 거의 극단에 가까운 이중성을 노출시키고 있다. 전형적인 내 편, 네 편의 편가르기를 내용으로 하고, 그 안에서의 편안한 정서적 동질성을 에너지로 하는 ‘공동체 의식’인 셈이다.
편가르기를 기반으로 하는 공동체 의식의 소유자가 준거 집단을 잃게 되었을 때, 어떤 현상이 일어날까? 현재의 우리 사회가 그 양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 자기 편을 찾아내려는 끊임없는 노력과 상대편을 전혀 이해하지 않고 비난부터 하려는 태도로 이중화되고 있다. 이로부터 나를 이해해주고, 나와 정서가 맞고, 나와 생각이 비슷하며 정서적 동질성을 가질 수 있는 집단을 찾는 트렌드가 시작된다.

4장 금기를 깨고 쾌락하기

홍수처럼 쏟아지는 미디어의 정보들 속에서 어른들의 시선이 가장 쏠리는 것은 성에 대한 각종 통계와 현상들이며, 그것들은 늘 숨가쁜 질주를 이야기한다.
그러나 조금만 주의 깊게 주위를 살펴보면, 관습과 법의 테두리를 넘어서는 행위는 비단 성적 일탈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주류 질서를 해치지 않는 선의 가벼운 앙탈에서부터 폭력적인 일탈에 이르기까지, 마치 사회 전체가 금기 깨기에 도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바른 생활을 통해서는 즐거움을 얻지 못한다고 믿을 때, 그것은 괴로움이 된다. 예정된 미래를 따라가거나 유행을 좇다가는 진정한 나를 발견하지 못한다고 믿게 될 때, 우리는 절망한다. 정해진 틀, 넘지 말라는 금을 믿는 한 우리는 쾌락의 부재를 경험할 뿐이다. 그래서 금을 밟고 싶은 충동에 휩싸인다. 그 너머엔 내가 소유하지 못한 것이 있는데, 그것을 소유하는 순간 쾌락이 나를 전율시킬진대 예서 멈출 수 없는 것이다. 금기를 넘어서 쾌락을 향해 질주하는 집단 이동은 이렇게 해서 시작된 것이다.

5장 10인 10색, 성 르네상스의 시대

긴 중세를 지나 마침내 인간이 신에 대해 당당해졌던 유럽의 르네상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도 길고 음성적이던 성의 중세기를 지나, 자신의 쾌락에 솔직하고 사회와 타인의 시선에 당당해진 성 르네상스의 시대를 맞았다. 이것은 단지 표현 수위가 높아지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성적 당당함으로 인해 쾌락을 추구할 자유가 시민권을 획득하고 있는 것이다.

자율적 성 도덕이 확산되면서 가장 치열한 균열이 생기는 곳은 ‘일부일처제’의 울타리다. ‘치열한 균열’이라고 한 것은 부부의 성이 (아직까지는 강력한) 법적 테두리의 보호 아래 있기 때문이고, 또 그만큼 성적 일탈 욕구에 대한 감시가 엄중하기 때문이다.
아시아 5개국의 혼외정사율을 조사한 결과 한국이 1위였다는 미국<타임>지의 보도를 믿건 안 믿건, 이제 우리 사회의 일부일처제가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인정해야 한다.
일부일처제가 ‘강요된 제도이며 폭력’이라는 주장은 새로울 게 없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는 개인이 늘어나고, 게다가 당당하기까지 한 현실은 새로운 변화다.

6장 향기로운 남자로 거듭나기

‘향기’라는 것은 기분을 좋게 하는 냄새 입자의 작용이기도 하지만, 사람의 인품과 태도에서 배어나오는 그 무엇까지도 상징한다. 남자들의 변화는 단지 몸에 향수를 뿌리는 꾸미기를 넘어, 과거의 남자다움에서 벗어나 부드러운 태도, 타인(특히 여성)에 대한 배려 등 인생관과 대인 관계의 태도에까지 이르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의 남자가 ‘권위’에 의존했다면, 21세기의 남자들은 상큼하고, 부드럽고, 상대를 기분 좋게 만드는 향기를 찾아가고 있다.

그 시대의 남성상 변화가 가장 뚜렷하게 감지되는 영역은 광고다. 광고 회사들은 누구보다 소비자의 가치관에 가장 민감한 탐지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꽃미남 전성시대라는 사실은 아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부드러운 남자 대신 유머스런 남자가 자리바꿈을 한 것으로 보인다.
‘부드럽고 유머러스하고 향기나는 어떤 것’이 남자들의 무기가 되고 있는 것이다.

7장 신생 인류, 호모 유머리스트

이 시대의 유머는 상황에 대한 통찰력과 교양, 재치, 그리고 삶을 관조하는 여유를 밑바탕에 두고 있다. 풍부한 독서와 사색의 과정을 거친 교양, 그리고 고정 관념을 깨는 재치와 여유에서 비롯되는 유머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유머 감각이 후천적 노력으로 길러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에서, 유머를 지닌 사람이 되기 위한 일련의 움직임들이 그 증거다.

관계와 관계가 대등해지는 사회에서, 유머란 곧 자신을 가장 효과적이고 확실하게 알릴 수 있는 홍보 수단이 된다. 분위기를 띄우는 우스개가 경박한 성품의 표현으로 매도되던 시절은 지났다. 이제 교양 있는 유머 한마디는 곧 여유의 상징이 되었다. ‘하면 된다. 안 되면 되게 하라’ 식의 강요된 설득, 일방적 대화는 성공의 걸림돌이 될 것이다. 이제 부드럽고 재치 있는 유머로 웃음을 주면서 ‘부지불식간에’ 설득시키기, 이것이 오늘날 호모 유머리스트들이 꿈꾸는 진화된 소통 방식이다.

8장 풍류를 즐기는 안단테, 안단테

‘속도가 가치를 창출한다’는 디지털 신화는 급기야 속도 맹신으로 이어져 큰 대가를 치르기도 했다. 되새김질의 기본 속도를 무시하고 동물 사료로 소를 키우다 보니 광우병 파동이 일어나지 않았던가. 따라서 가장 민감한 음식 문화에서 ‘느림’의 움직임이 먼저 시작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른바 ‘빠르게 점령하기’식 미국 자본주의(맥도널드 햄버거)와의 ‘작은 전쟁’이기도 한 슬로 푸드 운동은 틈새시장에서의 성공을 불러오기도 했다.

풍류란 ‘풍치가 있고 멋스럽게 노는 일’, 혹은 ‘속된 것을 버리고 고상한 유희를 하는 것’이다. 옛 선비들은 풍류를 ‘멋’ 그 자체라고 했으며, 자연과 어울리는 삶을 추구하는 것이 풍류의 핵심이라 했다.
느리게 사는 습관이 삶의 방식으로 자리 잡을 때, 그 외양은 풍류적인 성격을 띠곤 한다. 느리게 살기란 단순히 속도의 완화만이 아니다.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늘어나는 것이기도 하다. 일정한 거리를 두고 멈춰 서서 자기 삶을 조망하려는 태도는 ‘느리지만 제대로 된’ 사회를 만들어가는 심지 굳은 동력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


‘변화의 물결’이라는 부제를 단 트렌드 서적인 이 책은 일시적 유행이 아닌 대략 10년 정도의 기간을 두고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흐름을 읽어낸다. 단순한 흥밋거리로 가볍게 넘기기엔 곳곳에 널린 ‘성공’의 증거들이 눈길을 잡아 머물게 한다. 이 책에서 말하는 앞으로 10년의 기본적 흐름은 ‘개인화’와 ‘실용주의’로 요약할 수 있다. 이제는 자신에게 실제로 무슨 도움이 되는가와 스스로 즐길 수 있는가의 자기규정이 더 중요해진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서도 전제는 필요하다. 한국 경제가 지속적으로 발전해야 한다는 것과 개인들 각자가 이런 일에 시간을 들일 여유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여유를 뒷받침할 소득 수준이 향상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그렇다면, 또 돈인가?
돈이 돌고 돌아 인생을 지배하는 머니 게임 사회. 어느 정도의 경제력을 가지지 않은 사람들은 마케팅 대상에서조차 제외되는 차별 속에서 주체적으로 자신을 규정한다는 것은 과연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생각해 보게 된다.

한 발자국만 물러서면 피안이라고 했던가.
어느새 무덥던 계절이 지나간 하늘은 저만치 높아져서는 스스로를 빛내고 있다.
어떻게 살면 잘 사는 건가 싶은 생각 끝에는 건강한 육체에 감사하자 하면서도 또 다른 뭔가를 찾고 있는 모습을 만나면 이게 다 욕심인가 하는 생각을 한다.
시원하게 다가온 계절을 맞이하며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만들어 봐야겠다.
그리고 내게 물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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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찰맨
2005.08.30 20:44:15 *.55.118.189
나는 손으로 노를 젓는 작은 배에서 시작해 큰 배를 만들어 왔네. 조류와 바람의 흐름을 읽어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는 인생을 실현 시켰다네. 그것은 무엇보다도 조류의 흐름을 읽는 힘이 있었기 때문이라네. 성공하는데 필요한 것은 흐름을 읽는 힘이라네. 사물의 이면을 깊숙이 꿰뚫어 볼 수 있는 힘이지. 사회의 흐름과 돈의 흐름이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예측하는 것이라네. 부자가 되는 사람은 그것에 모든 신경을 쓴다네. - 혼다켄, 스무살에 만난 유태인 대부호의 가르침 -

트랜드란 점점 커져가는 경적소리에 비유될 수 있다. 어떤 현상이 처음에는 3퍼센트에서 시작하여 몇 달내에 7퍼센트. 그러고는 눈 깜짝할 사이에 10%로 증폭된다면, 그것은 하나의 트랜드 라고 할수 있다. 일반적으로 앞으로 나타날 트렌드를 암시해 주는 것은 단 하나의 두드러진 요인이 아니라, "수많은 작은 징후들"이다.
- C.브릿비어, 떠오르는 트랜드 사라지는 트랜드 -

정말 괜찮은 책 입니다. 저도 추천을 합니다. 정리가 너무 잘 된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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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영
2005.08.31 13:53:31 *.226.27.248
개 경주장엔 엄청난 스릴과 흥분이 흘러넘친다. 타임 버저가 울림과 동시에 출발 부스에서 뛰쳐나온 경주견들은 토끼처럼 생긴 기계 미끼를 따라 최고 시속 70㎞의 엄청난 속력으로 달린다.
기계 미끼는 경주견들의 6m 앞에서 개들을 약올리며 달리도록 고안돼 있다. 물론 그런 일이 생길 리는 없겠지만, 개들이 결승선 이전에 미끼를 잡아챈다면 그 시합은 자동무효로 선포된다.
500m의 정해진 트랙을 도는 동안, 개들의 욕망은 절대 충족될 수 없다. 욕망이 충족되는 순간 원천무효가 되는 게임. 이 게임의 이름은 하운드레이싱(Houndracing)이다.

고개를 돌리면 하운드레이서들이 보입니다..
그 옆에서 고개를 숙이고서 쪼그려 앉아있는 나는 그들을 보기만해도 가슴이 울렁거려 눈을 감곤 하죠..
나는 어떤 레이싱을 할까 고민하면서 말이예요..

답글..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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