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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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의 대한민국 (박노자 지음, 한겨레신문사, 2001)
서로 잡아먹기를 탐내는 사회, 전근대와 국가주의를 넘어서
박노자.. 본명 '블라디미르 티호노프'.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St. Petersburg)에서 태어났다.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 동방학부 조선학과를 졸업하고, 모스크바 국립대학에서 고대 한국의 가야사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모스크바 국립대학교, 러시아 국립 인문대학교 강사를 거쳤으며 경희대학교 러시아어과 전임강사를 역임했다. 2001년 한국인으로 귀화했고 현재 노르웨이 오슬로 국립대학에서 한국학 부교수로 재직 중이며 활발한 연구 및 강의 활동과 함께 국내 매체 기고를 통해 한국에 대한 변함없는 애정을 과시하고 있다.
< 1부 한국사회의 초상 >
▶ 전근대적이고 극단적인 '우상숭배'
내가 상대한 젊은이들은 대부분 그를 ‘핵무기를 개발하려다 미국인에게 살해당한 진정한 민족주의자’, ‘후대 정권이 망가뜨리고 말았지만 나라경제를 바로 세운 위대한 경세가’, ‘도덕적이고 용맹한 정치인’으로 인식하고 있다. 기형적이고 안타까운 현상이다. 물론 박정희 숭배 분위기를 조장하는 극우파 언론과, 경제‧사회적 실책으로 이반한 지역 민심을 박정희 숭배와 복잡하게 얽혀있는 지역감정을 이용하여 무마하려는 집권층의 책임도 만만찮지만, 지배층의 권모술수에 그 정도로 쉽게 넘어가는 젊은이들에게도 안타까움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북한의 대형 김일성묘에 담긴 개인숭배를 비판하면서도 국가적인 사업으로 박정희 기념관을 짓는 남한의 자기모순(남한 사람들은 대부분 잘 보지도 못하는), 홍경래와 같은 혁명가를 영웅시하는 북한을 못마땅히 여기면서도 충신 이순신과 김유신 동상의 존재를 당연시하는 남한 현실의 아이러니가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가. 분명한 것은 ‘집단에 대한 충성’에서 ‘개인의 자유‧책임’으로 가치 중심이 이동하지 않는 한, 주연(酒宴)에서 쓰러진 폭군에 대한 ‘사모’와 그 ‘사모’의 정치적‧상업적 이용이라는 희비극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 사대주의와 멸시가 공존하는 사회
옛날에는 꿈만 꿀 수 있었던 통일이 최근 들어 실현 가능한 것으로 나타나자 통일과업에서 가장 큰 걸림돌이 무엇인지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된다. 보통 ‘통일의 걸림돌’을 거론할 때 주변 강국의 간섭과 남한의 극우세력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이들 문제가 단순하지만 않다는 것을 나도 잘 안다. 그러나 내 생각에는 우리 머리에 자주 떠오르지 않으면서도 매우 위험한 통일의 걸림돌이 한 가지 더 있다. 바로 많은 남한 사람, 특히 대다수 젊은 세대가 보여주는 북한 멸시 풍조와 북한에 대한 무절제한 우월의식이다.
남한에서는 ‘공부’라는 것이 성공의 ‘수단’에 불과하지만, 비자본주의 지역에서는 ‘공부를 위한 공부’라는, 남한 사람들은 좀처럼 믿기 어려운 일이 가능하다. 사회주의 말기에 나와 같이 동양학부에 입학한 신입생 중 절반 이상이 ‘차후의 진로’보다 동방의 문화나 종교 자체에 관심이 있어 입학을 결심했다는 것을 나는 증언할 수 있다. 남한 학생에게서는 거의 찾아보지 못한, 공부를 위해 공부하는 태도를 나는 북한 사람에게서도 많이 느꼈다. 그들은 남쪽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때묻지 않은 순수함’을 지닌 세상에서 보기 드문 한민족이다. 내가 예측할 수 있는 것은, 분단체제의 족쇄가 풀리기만 하면 그들의 힘을 빌려 통일 한반도가 예체능과 학술 분야에서 크게 두각을 나타내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 한국의 종교와 패거리 문화
종교 신앙의 본질을 따져보면, 진정한 신앙이라는 것은 남에게 결코 쉽게 보여줄 수 없는, 아주 개인적인 부분이다. 기도하려면 골방에 들어가서 남이 보지 않게 하라는 예수의 말씀은 바로 이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신앙 증명서’를 요구하는 한국 일부 종교 계열 대학교의 자세는 과연 진정한 의미에서 신앙적인가? 원수까지도 사랑하라는 예수의 말씀을 진정으로 이해한다면, 최소한 원수도 아닌 타종교의 신도 정도는 포용할 줄 알아야 하지 않을까?
올바른 종교를 위해서라면 타종교인과 무신론자를 동등한 인격체가 아니라 ‘선교의 대상’으로 삼는 강요의 악습과, ‘우리 모두 다 같이’식의 ‘집단 동질성’만 강조하는 전근대적 패거리주의는 하루빨리 청산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이 땅의 마지막 왕조였던 조선조는 외형적으로 유교적인 도덕적 보편주의를 표방하였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기존에 형성된, 또는 수시로 형성되어 가는 주요 집안의 서열(귀족주의)과 지역의 서열(지역주의)을 묵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는 바로 전근대적 사회의 통치형태가 보여주는 특징이자 한계였다. 그러나 권위주의적 통치방식과 통치이념을 통해서 메이지 유신의 이상인 ‘부국강병’을 이루려고 한 박정희는, 이 한계를 극복하기는커녕 지역주의를 절대화해 통치기반으로 삼았다. 거기에다 전두환은 한술 더 떠서 ‘홀대를 받아야 할’ 특정 지역에 대한 대량 학살도 서슴지 않았다. 지구가 한 마을이 되어가는 마당에 ‘부여가 낳은 인물’이나 ‘칠곡의 자존심’을 내세운다는 것은 퇴행 중의 퇴행이다.
▶ 아직도 폭력이 충만한 사회
한국 남성들은 대부분 어릴 때부터 군대에 대해서 상당히 복합적인 감정을 느낀다. 한편으로는 맞을 고생과 음식을 급하게 먹어야 할 고생, 상사의 ‘닦달’을 대꾸 없이 참아야 할 고생 등을 처음부터 충분히 예상하여 군대에 대해 엄청난 공포감과 거부감을 갖는다. 아무래도 인간의 존엄성과 최소한의 신병 안전을 지향하는 것은 고금동서를 막론한 인류의 상정(常情)인 셈이다. 특히 ‘운동권’의 영향을 받은 학생들은 군대에 가서 동족과의 싸움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에 강한 거부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사회의 전체적인 분위기상 군대 복무가 남성에게 가장 중대한 통과의례로 인식되었고, ‘군대 복무’와 ‘사회적 성공’이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었다. 즉, 병역 미필자는 이른바 ‘조직사회’에 제대로 적응‧진출할 수 없다고 여기고 있었다.
자유 박탈과, 양심이나 이념에 전혀 구애받지 않는 절대적인 복종을 당연시하게끔 하급자를 훈련하는 군대에서는 구타 같은 형태의 폭력이 필수적이다. 이 문제는 앞으로 일정한 정도 완화는 가능하겠지만 보수 정권과 징병제가 존재하는 한 엄금은 불가능할 것이다. 구타와 상습화한 아부, 맹종의 강요로 졸병의 인간성을 극도로 파괴하는 것은 징병제의 가장 큰 폐단이다. 이와 함께 약자에 대한 폭력 사용의 일상화, 상사에 대한 공포심리 발생 등 가정생활이나 학습에 상당한 악영향을 끼치는 무수한 부정적인 효과들이 생긴다. 한마디로 폭력의 왕국인 군대가 개개인의 인간성과 국민 전체의 정신을 망가뜨리는 주범이라고 봐야 한다.
▶ 역사 속의 교훈들
고구려가 강한 군사력을 키우고 영토를 넓힌 힘의 바탕은 다종족적‧다문화적 포용이었다. 고조선이 나중에 왕위 찬탈자로 변신한 위만의 이민자 집단을 호의적으로 받아들인 사실은 고조선의 종족 구성이 매우 복잡했음을, 곧 다종족사회였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넓은 역사적 의미에서는 고조선의 전통을 이은 고구려는 포용과 관용, 다종족적 융화의 풍토를 더욱더 발전시켰다. 말갈과 예맥‧옥저 등 수많은 변방 종족의 전통과 문화를 존중해 주면서 거점을 중심으로 간접 지배했는가하면, 문화 수준이 높은 중국 귀화인들을 우대하여 중용하기도 했다. 민족사의 자랑거리가 된 고구려에 의한 낙랑군의 멸망은, 사실상 상당수의 중국 인구를 고구려가 흡수했음을 의미했을 것이다.
공자의 이상인 ‘군자’는 세상 물정에 전혀 구애받지 않는, 자유롭고 도덕적인 지성인을 뜻하는 말이다. 오로지 우주와 인륜의 도를 터득하기 위해서만 살고, 가난과 역경 속에서도 이 넓은 세계의 조화로움을 기쁘게 보면서 설사 벼슬을 하더라도 한점 사리사욕 없이 공익만 챙겨주는 사람이 ‘군자’다. ‘군자’에게는 예의라는 것도 맹목적으로 따라야 할 형식은 아니고 ‘인’의 연장이다. 즉, 어진 마음을 품은 ‘군자’가 쉽고 편리한 것들을 남에게 주고, 자신은 험난하고 위험한 길로 가는 것이 바로 진정한 예의다. 그리고 ‘군자’의 또 하나의 특징은 불의를 보면 물러서는 법이 없고, 대의를 위해서 중요한 일을 해야 할 때 자신의 힘을 먼저 헤아리지 않고 무조건 몸을 바치는 것이다.
학문과 실천, 우주의 신비와 인간의 정의를 한 몸에 겸비한 ‘군자’의 상은 사실 고대 중국이 이룩한 문화 발전의 종합적인 결론이라 볼 수도 있다. 이는 기독교의 ‘성인’과 대승불교의 ‘보살’과도 상통하는 인격상이며, 세계 문화에 극동문화권이 기여한 업적이기도 하다.
< 2부 대학, 한국사회의 축소판 >
▶ '진보' 꺼풀 속에 숨은 전근대성
진보적 지향을 하나의 지적인 전통으로 갖고 있는 한국의 ‘대학’은, 동시에 역설적으로 청년들에게 ‘규율’과 ‘복속’을 가르치는 사회장치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보수적인 사회에 ‘진보적인’ 대학을 나온 사람들이 가장 적합하다는 이율배반적인 현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한 관점에서 보면, 왕년의 학생 지도자들이 한나라당의 공천을 따내려고 사력을 다하는 것이 무엇이 이상할까. 그리고 나아가서 ‘진보적인 소장파’로 통하던 젊은 한나라당 의원들이 본인의 본래 소신과 무관하게 ‘보스’의 지시대로 국회에서 투표를 하는 것도 이와 같은 위계질서와 타협한 그들에게는 당연한 일일 뿐이다.
원래 시험이라는 인재 선발 방법은 일단 실시하고 나면 여러 가지 부정이 따르게 마련이다. 그런데 옛날부터 청나라나 조선왕조의 과거시험 비리에 대해서 많이 읽은 나는, 교수로 한국에 오게 된 뒤 중세 관료사회의 폐습들이 현재도 대학교에서 살아남은 것을 보고 대단히 놀랐다. 여기에서 말하는 것은 바로 ‘커닝’의 폐풍이다. 그런데 수법의 정교함보다 나를 더욱더 놀라게 만든 것은 이에 대한 학생과 교수-특히 교수-들의 태도다. 현재 대학교에서 ‘커닝’을 당연지사로 아는 ‘점수 관리 도사’가 나중에 사회에 진출하여 정직한 시민이 되리라고 어찌 믿을 수 있는가. 결국 ‘커닝’을 포함한 이기적인 부정행위들이 사회적 진보를 가로막는 요소 가운데 하나가 되는 것이다.
▶ 대학교수, 또 하나의 코리안 드림
예외도 없지 않지만, ‘교수’라는 것은 ‘인격’이나 ‘도덕’과 관계없는, 체제가 일정한 조건에서 부여하는 특권적인 ‘신분’일 뿐이다. 그리고 재벌 임원이나 고급 관료의 신분과 마찬가지로, ‘교수 신분’의 획득도 출세 지향적인 많은 인물의 목표다. ‘성공한 사업가’가 미국식 민간 재벌 위주의 자본주의의 ‘드림’이라면, 정가나 언론기관에 자유로이 출입하면서 ‘아랫사람’과 사적인 예속관계를 맺을 수 있는 ‘교수’의 ‘신분’은 한국식 관료주의적 재벌 자본주의의 모습을 그대로 담은 ‘코리안 드림’의 일종이다.
▶ 상아탑에 드리워진 망령들
다 알다시피, 현재와 같은 한국 자본주의를 건설한 60, 70년대의 개발독재는 북한과의 ‘체제경쟁’, 개발주의‧성장 제일주의 논리에 여지없이 치중하여 환경, 생활의 질, 교육과 같은 ‘불요불급’한 분야들을 철저하게 주변화시켰다. 교육의 경우에는, 국가가 주민의 높아져가는 교육 욕구를 직접 충족시키기보다는 사립학교의 설립을 무분별하게 인가하고 지원함으로써 이 분야 전체를 사실상 ‘사유화’해 버렸다. 그 결과, 대학 교육의 약 85%를 사립재단이 차지하는 기괴한 현상이 나타나게 되었다.
< 3부 민족주의인가 국가주의인가 >
▶ 민족주의에 대한 몇 가지 생각
모든 것이 서로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서로 의존하면서 공존하고 발전해 나가는 이 복잡다단한 세상에는 ‘우리’도 ‘남’도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통상적으로 ‘우리’에 포함되는 모든 영역에서는 실제로 수없이 많은 복잡한 요소가 혼합을 이룬다. 그래서 이 복잡한 현실에서 확고하고 분명한, 되도록 잘 변모하지 않는 ‘우리’를 걸러내서 ‘우리’의 구성원이 될 자격을 갖추었다고 판단되는 모든 이에게 ‘우리’라는 소속의식을 주입하기 위해 민족주의라는 ‘상징기계’가 필요하다.
사실 현대의 민족주의는 전통사회의 유교와 비슷한 기능을 맡고 있다. 유교는 인간의 천부적 감정을 이데올로기화해 몇몇 당위적‧인위적 덕목(충효, 인의예지 등)으로 분류한 뒤 세상만사를 그 잣대에 따라 선과 악으로 철저하게 구분했다. 민족주의는 인간의 천부적인 소속감을 이데올로기화해 세상만사를 ‘우리’와 ‘남’의 것으로 철저하게 구분한다. 민족주의는 철학적으로 유교에 비해 빈약하기 짝이 없지만, 그만큼 이데올로기 도구로 이용하기는 편리하다.
인간은 너무나 불완전하고 무력하다. 우리는 남이 만들어준 옷과 음식을 그대로 입고 먹는 것처럼, 남들의 생각과 관념들도 알게 모르게 일상적인 언어나 교육, 언론을 통해서 그대로 받아들인다. 한국인들이 일반적으로 ‘동‧서양’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지역들(예컨대 아프리카나 파키스탄)과 그 출신에 대해서 별다른 관심을 안 보이거나 몹시 무시하고 멸시하는 현상은 ‘동‧서양’의 개념을 어릴 때부터 알게 모르게 익힌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우리가 말로 표현하지 않는, 또는 표현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에게 존재하지도 않는다. 반대로 일단 표현체계가 잡히면, 우리는 그 표현 대상물(記意, the signified)의 존재를 별로 의심하지 않는다. 애석하게도 우리는 탈출할 줄도 모르는 언어의 포로들이다.
▶ 한국 민족주의의 진면목, 국가주의
보편적인 의식들은 사회의 법적 구조를 통해 만들어지기도 하고, 법의 제정에 상당한 영향을 주기도 한다. 한국의 경우에는 ‘민족’개념과 가장 관계가 밀접한 법이 ‘재외동포법’이다. 그러나 재미있는 것은, 국민의 약 80%가 모든 해외동포를 ‘같은 한민족’으로 인식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1999년 12월부터 시행된 ‘재외동포법’이 혈통주의가 아닌 국적주의를 ‘동포’개념 설정의 기준으로 채택했다는 점이다. 즉, 1948년 정부 수립 이전에 외국으로 이주한 동포들을 ‘재외동포’의 개념에서 제외했다. 현재 재외한국인(약 50만 명) 중에서 사실상 대다수를 차지하는 중국(대략 200만 명), 구소련(대략 50만 명), 무국적 재일(15만 명) 동포들이 법적으로 ‘동포’의 지위를 얻지 못한 셈이다. 그 대신, 새 법의 각종 혜택이 미국 동포를 중심으로 한 이른바 ‘선진국’ 거주 한국인에게 집중되었다.
< 4부 인종주의와 대한민국 >
▶ 서울의 이방인
“민족과 국적이 너무 우스운 개념 같아요. 핏줄이 비록 달라도, 나를 살려주고 믿어준 내 친구가 있는 나라를 나는 이미 ‘남의 나라’로 볼 수 없죠. 그는 나에게 형제와 같은 사람이니 그의 나라도 내 나라처럼 느껴지지 않겠어요? 그러나 나의 이런 마음을 믿고 나를 ‘같은 종족’으로 쳐줄 한국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어요? 인간들이 왜 겉만 보고 속을 들여다보지 못하는지 모르겠어요. 나의 서류에 적혀 있는 ‘몽골’이라는 말만 읽고 내 마음을 보지 못하니 우스운 일이죠. 옛날에 씨족과 부족의 구분이 없어졌듯이, 국가와 민족의 구분이 소멸될 날이 오기를 가만히 기다리는 수밖에 없죠.”
마음속의 나라 차별, 인간의 내면을 보기 전에 그 소속 국가의 명칭을 보는 우리의 관습에서 해방되는 것이 그가 사회주의 시대부터 지금까지 꿈꾸어온 진정한 자유였던 셈이다.
▶ 일그러진 증오와 멸시의 논리
‘도리’와 ‘예의’에 통달하면 ‘남’을 ‘우리’의 일원으로 삼을 수 있던 전통시대가 가고, 여권과 피부색이 현대판 ‘노예문서’의 역할을 하여 세계에서의 개인의 위치를 결정짓는 침략과 학살의 시대, 근대가 도래했다. 미국인‧서구인들의 살인적인 인종적 광기를 ‘문명’으로 오인하여 한국에 그대로 수입한 유길준‧윤치호‧서재필류의 일그러진 ‘유산’을 어떻게 청산할 수 있을까? 조직에 순응하는 것, 부, 성공, 출세 등과 함께 ‘미국/서구’, ‘백인종’이 무조건 위에 있다는 단선적인 가치체계의 단조로움에 이미 습관이 된 사람들로서는 아주 힘든 일이지만, 다양성만이 가치가 있다는, 다양하고 다른 것들 사이에 우열을 가리면 안 된다는 다원주의를 마음으로 익히는 것이 첩경이 아닌가 한다.
***
‘아직도 감옥에 있는 모든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게 바친다’로 시작하는 이 책은 귀화 러시아인 박노자 교수가 바라본 한국사회의 초상이다.
1980년대 후반 대학교육을 받은 `옛 소련의 마지막 세대`인 그는 1991년 고려대학교 3개월 연수, 1996∼2000년 경희대 전임강사를 거치며 한국 여성과 결혼했고, 한국인으로 귀화했다.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모순을 모두 체험한 시선으로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상처를 우리 삶과 역사를 통해 날카롭게 지적한 비판서인 이 책은, 그의 다채로운 한국어 구사력에 대한 감탄은 둘째치고 우리글임에도 이해하는데 적잖은 시간이 걸렸다.
自己相吃人 又怕被別人吃了 都用看疑心极深的眼光 面面相覤
"자기가 남을 잡아먹고 싶으면서도, 남에게 잡아먹히기를 겁내며… 다들 의심의 깊은 눈으로 서로서로 쳐다보면서…."
- 노신(魯迅), 「광인일기(狂人日記)」 중에서
박교수는 이 말보다 우리의 초상화를 정확하게 그려낸 말은 없을 것이라 말한다. 그가 말하는 “서로 잡아먹기를 탐내는 사회”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폭력적인 권위주의, 미국 사대주의와 특정 외국인 멸시가 혼합된 인종주의, 편협한 ‘우리’만의 울타리 민족주의, 체제 유지용으로 조장된 국가주의, 천박한 패거리주의와 그 극단을 보여주는 지역(차별)주의 등 우리 사회에 녹아있는 것들을 끄집어내 골고루 이름을 붙여주는 친절한 박노자 교수. 예술인지 외설인지 모를 집단누드화를 보고 있는 듯 했다.
민족적인 감정에서 자유로운 세계화된 시선에서 나온 우정의 비판은 우리나라 대학문화에 초점을 맞춰 군대문화에 속박된 젊은이 문화와 군대만큼이나 서열이 분명하고 권위적인 사제관계에 대한 답답함을 비판하며, 이는 현대사로 이어져 ‘한국적 오리엔탈리즘’을 지적한다. 재외한국인(조선족, 고려인 등)과 외국인 노동자를 대하는 우리의 모습이 바로 그것인데, 여기에서 나아가 미국 등 강대국 섬기기와 탈북자들에 대한 멸시가 동전의 양면을 이룬 ‘사대주의와 멸시가 공존하는 사회’인 우리를 돌아보게 한다.
물론 조언도 빠지지 않는다. 그는 역사 속의 다민족‧다문화 국가 고구려를 예로 들면서 한국사회의 선택은 외부문화에 대한 ‘열린 정신’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 책을 읽다보면 참 공허하단 생각이 든다. 오랫동안 공통의 경험이 누적된 공동체로서의 ‘일그러진’ 문화 자체가 아마도 한국인의 문화가 아닐까라는 강한 느낌 때문일 것이다. 한국사회에 내재된 집단주의의 모순을 ‘우리’는 즐기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느낌말이다. 그게 바로 한국인의 문화인 것 같다는 이 모순 말이다.
IP *.226.27.248
서로 잡아먹기를 탐내는 사회, 전근대와 국가주의를 넘어서
박노자.. 본명 '블라디미르 티호노프'.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St. Petersburg)에서 태어났다.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 동방학부 조선학과를 졸업하고, 모스크바 국립대학에서 고대 한국의 가야사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모스크바 국립대학교, 러시아 국립 인문대학교 강사를 거쳤으며 경희대학교 러시아어과 전임강사를 역임했다. 2001년 한국인으로 귀화했고 현재 노르웨이 오슬로 국립대학에서 한국학 부교수로 재직 중이며 활발한 연구 및 강의 활동과 함께 국내 매체 기고를 통해 한국에 대한 변함없는 애정을 과시하고 있다.
< 1부 한국사회의 초상 >
▶ 전근대적이고 극단적인 '우상숭배'
내가 상대한 젊은이들은 대부분 그를 ‘핵무기를 개발하려다 미국인에게 살해당한 진정한 민족주의자’, ‘후대 정권이 망가뜨리고 말았지만 나라경제를 바로 세운 위대한 경세가’, ‘도덕적이고 용맹한 정치인’으로 인식하고 있다. 기형적이고 안타까운 현상이다. 물론 박정희 숭배 분위기를 조장하는 극우파 언론과, 경제‧사회적 실책으로 이반한 지역 민심을 박정희 숭배와 복잡하게 얽혀있는 지역감정을 이용하여 무마하려는 집권층의 책임도 만만찮지만, 지배층의 권모술수에 그 정도로 쉽게 넘어가는 젊은이들에게도 안타까움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북한의 대형 김일성묘에 담긴 개인숭배를 비판하면서도 국가적인 사업으로 박정희 기념관을 짓는 남한의 자기모순(남한 사람들은 대부분 잘 보지도 못하는), 홍경래와 같은 혁명가를 영웅시하는 북한을 못마땅히 여기면서도 충신 이순신과 김유신 동상의 존재를 당연시하는 남한 현실의 아이러니가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가. 분명한 것은 ‘집단에 대한 충성’에서 ‘개인의 자유‧책임’으로 가치 중심이 이동하지 않는 한, 주연(酒宴)에서 쓰러진 폭군에 대한 ‘사모’와 그 ‘사모’의 정치적‧상업적 이용이라는 희비극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 사대주의와 멸시가 공존하는 사회
옛날에는 꿈만 꿀 수 있었던 통일이 최근 들어 실현 가능한 것으로 나타나자 통일과업에서 가장 큰 걸림돌이 무엇인지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된다. 보통 ‘통일의 걸림돌’을 거론할 때 주변 강국의 간섭과 남한의 극우세력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이들 문제가 단순하지만 않다는 것을 나도 잘 안다. 그러나 내 생각에는 우리 머리에 자주 떠오르지 않으면서도 매우 위험한 통일의 걸림돌이 한 가지 더 있다. 바로 많은 남한 사람, 특히 대다수 젊은 세대가 보여주는 북한 멸시 풍조와 북한에 대한 무절제한 우월의식이다.
남한에서는 ‘공부’라는 것이 성공의 ‘수단’에 불과하지만, 비자본주의 지역에서는 ‘공부를 위한 공부’라는, 남한 사람들은 좀처럼 믿기 어려운 일이 가능하다. 사회주의 말기에 나와 같이 동양학부에 입학한 신입생 중 절반 이상이 ‘차후의 진로’보다 동방의 문화나 종교 자체에 관심이 있어 입학을 결심했다는 것을 나는 증언할 수 있다. 남한 학생에게서는 거의 찾아보지 못한, 공부를 위해 공부하는 태도를 나는 북한 사람에게서도 많이 느꼈다. 그들은 남쪽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때묻지 않은 순수함’을 지닌 세상에서 보기 드문 한민족이다. 내가 예측할 수 있는 것은, 분단체제의 족쇄가 풀리기만 하면 그들의 힘을 빌려 통일 한반도가 예체능과 학술 분야에서 크게 두각을 나타내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 한국의 종교와 패거리 문화
종교 신앙의 본질을 따져보면, 진정한 신앙이라는 것은 남에게 결코 쉽게 보여줄 수 없는, 아주 개인적인 부분이다. 기도하려면 골방에 들어가서 남이 보지 않게 하라는 예수의 말씀은 바로 이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신앙 증명서’를 요구하는 한국 일부 종교 계열 대학교의 자세는 과연 진정한 의미에서 신앙적인가? 원수까지도 사랑하라는 예수의 말씀을 진정으로 이해한다면, 최소한 원수도 아닌 타종교의 신도 정도는 포용할 줄 알아야 하지 않을까?
올바른 종교를 위해서라면 타종교인과 무신론자를 동등한 인격체가 아니라 ‘선교의 대상’으로 삼는 강요의 악습과, ‘우리 모두 다 같이’식의 ‘집단 동질성’만 강조하는 전근대적 패거리주의는 하루빨리 청산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이 땅의 마지막 왕조였던 조선조는 외형적으로 유교적인 도덕적 보편주의를 표방하였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기존에 형성된, 또는 수시로 형성되어 가는 주요 집안의 서열(귀족주의)과 지역의 서열(지역주의)을 묵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는 바로 전근대적 사회의 통치형태가 보여주는 특징이자 한계였다. 그러나 권위주의적 통치방식과 통치이념을 통해서 메이지 유신의 이상인 ‘부국강병’을 이루려고 한 박정희는, 이 한계를 극복하기는커녕 지역주의를 절대화해 통치기반으로 삼았다. 거기에다 전두환은 한술 더 떠서 ‘홀대를 받아야 할’ 특정 지역에 대한 대량 학살도 서슴지 않았다. 지구가 한 마을이 되어가는 마당에 ‘부여가 낳은 인물’이나 ‘칠곡의 자존심’을 내세운다는 것은 퇴행 중의 퇴행이다.
▶ 아직도 폭력이 충만한 사회
한국 남성들은 대부분 어릴 때부터 군대에 대해서 상당히 복합적인 감정을 느낀다. 한편으로는 맞을 고생과 음식을 급하게 먹어야 할 고생, 상사의 ‘닦달’을 대꾸 없이 참아야 할 고생 등을 처음부터 충분히 예상하여 군대에 대해 엄청난 공포감과 거부감을 갖는다. 아무래도 인간의 존엄성과 최소한의 신병 안전을 지향하는 것은 고금동서를 막론한 인류의 상정(常情)인 셈이다. 특히 ‘운동권’의 영향을 받은 학생들은 군대에 가서 동족과의 싸움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에 강한 거부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사회의 전체적인 분위기상 군대 복무가 남성에게 가장 중대한 통과의례로 인식되었고, ‘군대 복무’와 ‘사회적 성공’이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었다. 즉, 병역 미필자는 이른바 ‘조직사회’에 제대로 적응‧진출할 수 없다고 여기고 있었다.
자유 박탈과, 양심이나 이념에 전혀 구애받지 않는 절대적인 복종을 당연시하게끔 하급자를 훈련하는 군대에서는 구타 같은 형태의 폭력이 필수적이다. 이 문제는 앞으로 일정한 정도 완화는 가능하겠지만 보수 정권과 징병제가 존재하는 한 엄금은 불가능할 것이다. 구타와 상습화한 아부, 맹종의 강요로 졸병의 인간성을 극도로 파괴하는 것은 징병제의 가장 큰 폐단이다. 이와 함께 약자에 대한 폭력 사용의 일상화, 상사에 대한 공포심리 발생 등 가정생활이나 학습에 상당한 악영향을 끼치는 무수한 부정적인 효과들이 생긴다. 한마디로 폭력의 왕국인 군대가 개개인의 인간성과 국민 전체의 정신을 망가뜨리는 주범이라고 봐야 한다.
▶ 역사 속의 교훈들
고구려가 강한 군사력을 키우고 영토를 넓힌 힘의 바탕은 다종족적‧다문화적 포용이었다. 고조선이 나중에 왕위 찬탈자로 변신한 위만의 이민자 집단을 호의적으로 받아들인 사실은 고조선의 종족 구성이 매우 복잡했음을, 곧 다종족사회였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넓은 역사적 의미에서는 고조선의 전통을 이은 고구려는 포용과 관용, 다종족적 융화의 풍토를 더욱더 발전시켰다. 말갈과 예맥‧옥저 등 수많은 변방 종족의 전통과 문화를 존중해 주면서 거점을 중심으로 간접 지배했는가하면, 문화 수준이 높은 중국 귀화인들을 우대하여 중용하기도 했다. 민족사의 자랑거리가 된 고구려에 의한 낙랑군의 멸망은, 사실상 상당수의 중국 인구를 고구려가 흡수했음을 의미했을 것이다.
공자의 이상인 ‘군자’는 세상 물정에 전혀 구애받지 않는, 자유롭고 도덕적인 지성인을 뜻하는 말이다. 오로지 우주와 인륜의 도를 터득하기 위해서만 살고, 가난과 역경 속에서도 이 넓은 세계의 조화로움을 기쁘게 보면서 설사 벼슬을 하더라도 한점 사리사욕 없이 공익만 챙겨주는 사람이 ‘군자’다. ‘군자’에게는 예의라는 것도 맹목적으로 따라야 할 형식은 아니고 ‘인’의 연장이다. 즉, 어진 마음을 품은 ‘군자’가 쉽고 편리한 것들을 남에게 주고, 자신은 험난하고 위험한 길로 가는 것이 바로 진정한 예의다. 그리고 ‘군자’의 또 하나의 특징은 불의를 보면 물러서는 법이 없고, 대의를 위해서 중요한 일을 해야 할 때 자신의 힘을 먼저 헤아리지 않고 무조건 몸을 바치는 것이다.
학문과 실천, 우주의 신비와 인간의 정의를 한 몸에 겸비한 ‘군자’의 상은 사실 고대 중국이 이룩한 문화 발전의 종합적인 결론이라 볼 수도 있다. 이는 기독교의 ‘성인’과 대승불교의 ‘보살’과도 상통하는 인격상이며, 세계 문화에 극동문화권이 기여한 업적이기도 하다.
< 2부 대학, 한국사회의 축소판 >
▶ '진보' 꺼풀 속에 숨은 전근대성
진보적 지향을 하나의 지적인 전통으로 갖고 있는 한국의 ‘대학’은, 동시에 역설적으로 청년들에게 ‘규율’과 ‘복속’을 가르치는 사회장치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보수적인 사회에 ‘진보적인’ 대학을 나온 사람들이 가장 적합하다는 이율배반적인 현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한 관점에서 보면, 왕년의 학생 지도자들이 한나라당의 공천을 따내려고 사력을 다하는 것이 무엇이 이상할까. 그리고 나아가서 ‘진보적인 소장파’로 통하던 젊은 한나라당 의원들이 본인의 본래 소신과 무관하게 ‘보스’의 지시대로 국회에서 투표를 하는 것도 이와 같은 위계질서와 타협한 그들에게는 당연한 일일 뿐이다.
원래 시험이라는 인재 선발 방법은 일단 실시하고 나면 여러 가지 부정이 따르게 마련이다. 그런데 옛날부터 청나라나 조선왕조의 과거시험 비리에 대해서 많이 읽은 나는, 교수로 한국에 오게 된 뒤 중세 관료사회의 폐습들이 현재도 대학교에서 살아남은 것을 보고 대단히 놀랐다. 여기에서 말하는 것은 바로 ‘커닝’의 폐풍이다. 그런데 수법의 정교함보다 나를 더욱더 놀라게 만든 것은 이에 대한 학생과 교수-특히 교수-들의 태도다. 현재 대학교에서 ‘커닝’을 당연지사로 아는 ‘점수 관리 도사’가 나중에 사회에 진출하여 정직한 시민이 되리라고 어찌 믿을 수 있는가. 결국 ‘커닝’을 포함한 이기적인 부정행위들이 사회적 진보를 가로막는 요소 가운데 하나가 되는 것이다.
▶ 대학교수, 또 하나의 코리안 드림
예외도 없지 않지만, ‘교수’라는 것은 ‘인격’이나 ‘도덕’과 관계없는, 체제가 일정한 조건에서 부여하는 특권적인 ‘신분’일 뿐이다. 그리고 재벌 임원이나 고급 관료의 신분과 마찬가지로, ‘교수 신분’의 획득도 출세 지향적인 많은 인물의 목표다. ‘성공한 사업가’가 미국식 민간 재벌 위주의 자본주의의 ‘드림’이라면, 정가나 언론기관에 자유로이 출입하면서 ‘아랫사람’과 사적인 예속관계를 맺을 수 있는 ‘교수’의 ‘신분’은 한국식 관료주의적 재벌 자본주의의 모습을 그대로 담은 ‘코리안 드림’의 일종이다.
▶ 상아탑에 드리워진 망령들
다 알다시피, 현재와 같은 한국 자본주의를 건설한 60, 70년대의 개발독재는 북한과의 ‘체제경쟁’, 개발주의‧성장 제일주의 논리에 여지없이 치중하여 환경, 생활의 질, 교육과 같은 ‘불요불급’한 분야들을 철저하게 주변화시켰다. 교육의 경우에는, 국가가 주민의 높아져가는 교육 욕구를 직접 충족시키기보다는 사립학교의 설립을 무분별하게 인가하고 지원함으로써 이 분야 전체를 사실상 ‘사유화’해 버렸다. 그 결과, 대학 교육의 약 85%를 사립재단이 차지하는 기괴한 현상이 나타나게 되었다.
< 3부 민족주의인가 국가주의인가 >
▶ 민족주의에 대한 몇 가지 생각
모든 것이 서로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서로 의존하면서 공존하고 발전해 나가는 이 복잡다단한 세상에는 ‘우리’도 ‘남’도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통상적으로 ‘우리’에 포함되는 모든 영역에서는 실제로 수없이 많은 복잡한 요소가 혼합을 이룬다. 그래서 이 복잡한 현실에서 확고하고 분명한, 되도록 잘 변모하지 않는 ‘우리’를 걸러내서 ‘우리’의 구성원이 될 자격을 갖추었다고 판단되는 모든 이에게 ‘우리’라는 소속의식을 주입하기 위해 민족주의라는 ‘상징기계’가 필요하다.
사실 현대의 민족주의는 전통사회의 유교와 비슷한 기능을 맡고 있다. 유교는 인간의 천부적 감정을 이데올로기화해 몇몇 당위적‧인위적 덕목(충효, 인의예지 등)으로 분류한 뒤 세상만사를 그 잣대에 따라 선과 악으로 철저하게 구분했다. 민족주의는 인간의 천부적인 소속감을 이데올로기화해 세상만사를 ‘우리’와 ‘남’의 것으로 철저하게 구분한다. 민족주의는 철학적으로 유교에 비해 빈약하기 짝이 없지만, 그만큼 이데올로기 도구로 이용하기는 편리하다.
인간은 너무나 불완전하고 무력하다. 우리는 남이 만들어준 옷과 음식을 그대로 입고 먹는 것처럼, 남들의 생각과 관념들도 알게 모르게 일상적인 언어나 교육, 언론을 통해서 그대로 받아들인다. 한국인들이 일반적으로 ‘동‧서양’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지역들(예컨대 아프리카나 파키스탄)과 그 출신에 대해서 별다른 관심을 안 보이거나 몹시 무시하고 멸시하는 현상은 ‘동‧서양’의 개념을 어릴 때부터 알게 모르게 익힌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우리가 말로 표현하지 않는, 또는 표현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에게 존재하지도 않는다. 반대로 일단 표현체계가 잡히면, 우리는 그 표현 대상물(記意, the signified)의 존재를 별로 의심하지 않는다. 애석하게도 우리는 탈출할 줄도 모르는 언어의 포로들이다.
▶ 한국 민족주의의 진면목, 국가주의
보편적인 의식들은 사회의 법적 구조를 통해 만들어지기도 하고, 법의 제정에 상당한 영향을 주기도 한다. 한국의 경우에는 ‘민족’개념과 가장 관계가 밀접한 법이 ‘재외동포법’이다. 그러나 재미있는 것은, 국민의 약 80%가 모든 해외동포를 ‘같은 한민족’으로 인식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1999년 12월부터 시행된 ‘재외동포법’이 혈통주의가 아닌 국적주의를 ‘동포’개념 설정의 기준으로 채택했다는 점이다. 즉, 1948년 정부 수립 이전에 외국으로 이주한 동포들을 ‘재외동포’의 개념에서 제외했다. 현재 재외한국인(약 50만 명) 중에서 사실상 대다수를 차지하는 중국(대략 200만 명), 구소련(대략 50만 명), 무국적 재일(15만 명) 동포들이 법적으로 ‘동포’의 지위를 얻지 못한 셈이다. 그 대신, 새 법의 각종 혜택이 미국 동포를 중심으로 한 이른바 ‘선진국’ 거주 한국인에게 집중되었다.
< 4부 인종주의와 대한민국 >
▶ 서울의 이방인
“민족과 국적이 너무 우스운 개념 같아요. 핏줄이 비록 달라도, 나를 살려주고 믿어준 내 친구가 있는 나라를 나는 이미 ‘남의 나라’로 볼 수 없죠. 그는 나에게 형제와 같은 사람이니 그의 나라도 내 나라처럼 느껴지지 않겠어요? 그러나 나의 이런 마음을 믿고 나를 ‘같은 종족’으로 쳐줄 한국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어요? 인간들이 왜 겉만 보고 속을 들여다보지 못하는지 모르겠어요. 나의 서류에 적혀 있는 ‘몽골’이라는 말만 읽고 내 마음을 보지 못하니 우스운 일이죠. 옛날에 씨족과 부족의 구분이 없어졌듯이, 국가와 민족의 구분이 소멸될 날이 오기를 가만히 기다리는 수밖에 없죠.”
마음속의 나라 차별, 인간의 내면을 보기 전에 그 소속 국가의 명칭을 보는 우리의 관습에서 해방되는 것이 그가 사회주의 시대부터 지금까지 꿈꾸어온 진정한 자유였던 셈이다.
▶ 일그러진 증오와 멸시의 논리
‘도리’와 ‘예의’에 통달하면 ‘남’을 ‘우리’의 일원으로 삼을 수 있던 전통시대가 가고, 여권과 피부색이 현대판 ‘노예문서’의 역할을 하여 세계에서의 개인의 위치를 결정짓는 침략과 학살의 시대, 근대가 도래했다. 미국인‧서구인들의 살인적인 인종적 광기를 ‘문명’으로 오인하여 한국에 그대로 수입한 유길준‧윤치호‧서재필류의 일그러진 ‘유산’을 어떻게 청산할 수 있을까? 조직에 순응하는 것, 부, 성공, 출세 등과 함께 ‘미국/서구’, ‘백인종’이 무조건 위에 있다는 단선적인 가치체계의 단조로움에 이미 습관이 된 사람들로서는 아주 힘든 일이지만, 다양성만이 가치가 있다는, 다양하고 다른 것들 사이에 우열을 가리면 안 된다는 다원주의를 마음으로 익히는 것이 첩경이 아닌가 한다.
***
‘아직도 감옥에 있는 모든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게 바친다’로 시작하는 이 책은 귀화 러시아인 박노자 교수가 바라본 한국사회의 초상이다.
1980년대 후반 대학교육을 받은 `옛 소련의 마지막 세대`인 그는 1991년 고려대학교 3개월 연수, 1996∼2000년 경희대 전임강사를 거치며 한국 여성과 결혼했고, 한국인으로 귀화했다.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모순을 모두 체험한 시선으로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상처를 우리 삶과 역사를 통해 날카롭게 지적한 비판서인 이 책은, 그의 다채로운 한국어 구사력에 대한 감탄은 둘째치고 우리글임에도 이해하는데 적잖은 시간이 걸렸다.
自己相吃人 又怕被別人吃了 都用看疑心极深的眼光 面面相覤
"자기가 남을 잡아먹고 싶으면서도, 남에게 잡아먹히기를 겁내며… 다들 의심의 깊은 눈으로 서로서로 쳐다보면서…."
- 노신(魯迅), 「광인일기(狂人日記)」 중에서
박교수는 이 말보다 우리의 초상화를 정확하게 그려낸 말은 없을 것이라 말한다. 그가 말하는 “서로 잡아먹기를 탐내는 사회”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폭력적인 권위주의, 미국 사대주의와 특정 외국인 멸시가 혼합된 인종주의, 편협한 ‘우리’만의 울타리 민족주의, 체제 유지용으로 조장된 국가주의, 천박한 패거리주의와 그 극단을 보여주는 지역(차별)주의 등 우리 사회에 녹아있는 것들을 끄집어내 골고루 이름을 붙여주는 친절한 박노자 교수. 예술인지 외설인지 모를 집단누드화를 보고 있는 듯 했다.
민족적인 감정에서 자유로운 세계화된 시선에서 나온 우정의 비판은 우리나라 대학문화에 초점을 맞춰 군대문화에 속박된 젊은이 문화와 군대만큼이나 서열이 분명하고 권위적인 사제관계에 대한 답답함을 비판하며, 이는 현대사로 이어져 ‘한국적 오리엔탈리즘’을 지적한다. 재외한국인(조선족, 고려인 등)과 외국인 노동자를 대하는 우리의 모습이 바로 그것인데, 여기에서 나아가 미국 등 강대국 섬기기와 탈북자들에 대한 멸시가 동전의 양면을 이룬 ‘사대주의와 멸시가 공존하는 사회’인 우리를 돌아보게 한다.
물론 조언도 빠지지 않는다. 그는 역사 속의 다민족‧다문화 국가 고구려를 예로 들면서 한국사회의 선택은 외부문화에 대한 ‘열린 정신’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 책을 읽다보면 참 공허하단 생각이 든다. 오랫동안 공통의 경험이 누적된 공동체로서의 ‘일그러진’ 문화 자체가 아마도 한국인의 문화가 아닐까라는 강한 느낌 때문일 것이다. 한국사회에 내재된 집단주의의 모순을 ‘우리’는 즐기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느낌말이다. 그게 바로 한국인의 문화인 것 같다는 이 모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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