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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9월 28일 16시 34분 등록
놀이와 예술 그리고 상상력

-유쾌한 미학자 진중권의 7가지 상상력 프로젝트 -


< 책에서 캐낸 글맥 >
* 수백 년간 지속된 근대적 사유의 패러다임은 오늘날 생명력을 다한 것처럼 보인다. 데카르트로 대표되는 합리주의자들에게 상상력은 그저 ‘오류의 근원’일 뿐이었지만 이른바 ‘탈근대’에 접어든 오늘날. 아니, 그것마저 이미 과거로 회고하기 시작한 오늘날, 아는 것만으로는 더 이상 힘이 되기에 부족하다. 우리 앞에 펼쳐진 21세기에는 ‘상상하는 것이 힘’이 될 것이다.

* 과거에 상상은 허구에 불과했다. 그것을 실현하려 드는 시도는 그저 주술일 뿐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허구는 테크놀로지에 힘입어 점점 더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이것이 현대의 징후이다. 컴퓨터 시뮬레이션은 상상과 현실 사이에 놓여 있던 질료의 저항을 점점 더 무력화시키고 있다. 상상이 질료의 저항 없이 곧바로 현실로 전화하게 된 것이다. 미래의 생산력은 상상력이 될 것이다.

* 상상은 정신의 놀이이다. 상상을 할 때 정신은 노동을 하지 않고 놀이를 한다. 미래에는 노동이 유희가 될 것이라는 카를 마르크스의 예언은 맞았다. 미래는 비록 공산주의의 것이 아니었지만, 상상력이 생산력으로 전화하면서 노동은 점차 유희에 가까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상상력은 미학의 영역이며, 이 영역은 진위와 선악의 피안에 있으려 하기 때문이다. 사유가 이미 있는 것을 재현(representation)하려 할 때에는 ‘대상과 일치’라는 인식론적 구속을 받지만, 아직 없는 것을 있게 하는(presentation) 상상력은 그런 구속을 원하지 않는다. 폴 비릴리오의 표현을 빌리면 ‘상상력의 세계는 어린아이의 세계로 회귀하려는 성숙한 자만이 들어 갈 수 있는 초록빛 낙원’이다.

* 상상력 혁명은 논리적, 추론적, 선형적 사유를 배제하지 않는다. 외려 그것을 전제하고 그 한계를 뛰어넘을 뿐이다. 그것은 합리성에 대한 무차별한 공격은 아니다. 합리성이 창의성을 억누르는 지점에서 행하는 즐거운 반역이다. 교육을 통해 획득한 익숙한 사유의 습관을 버리는 것처럼 어려운 것은 없다. 하지만 실은 그것처럼 쉬운 것도 없다. ‘어린이-되기’는 들뢰즈의 말대로 과거의 어리석음으로의 퇴행이 아니라 과거의 천진난만함으로의 ‘동시적 여행’이다. 텍스트라는 말은 직물이라는 뜻이다. 씨줄과 날줄이 포개져야 진짜 텍스트가 된다. 미래의 글쓰기는 합리성의 씨줄과 상상력의 날줄로 이루어진 비선형적 텍스트, 가령 크로스워드 퍼즐을 닮아갈 것이다.

* 상상력의 노마돌로지(遊牧論)는 갑작스런 깨달음, 즉 직관의 모나돌로지(단자론)로 이어진다. ‘모나드’는 개별자이면서 각자 그 안에 온 우주를 담고 있다. 과거에는 수많은 개별자들을 추상하여 보편자로 상승하는 것이 진리였다. 오늘날에는 각각의 개별적 형상 속에서 보편자를 직관하고, 보편적 인식을 개별적 형상으로 압축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상상력 혁명으로 도래한 새로운 사유의 특징은 비선형, 순환성, 파편성, 중의성, 동감각, 형상문자, 단자론의 7가지 키워드로 요약할 수 있다.

* 미래의 생산력은 아직 없는 것을 상상하여 기술로 실현하는 이른바 ‘기술적 상상력’에서 나올 것이다. 기술은 배울 수 있으나 상상력은 배울 수 없는 것. 배울 수 없는 것은 다만 되찾을 수 있을 뿐이다. 창조적 인간이 되고 싶은가? 그럼 성숙의 지혜를 가지고 어린 시절의 천진함으로 돌아가라.

R 우연과 필연 (주사위, 체스, 광대)
* 주사위는 우연의 세계, 체스는 필연의 왕국, 카드 판에서 우연과 필연은 하나가 된다. 신도 놀이를 한다. 그가 하는 놀이는 어떤 것일까?

* 드리핑(dripping)을 기법으로 그림을 만들어내는 잭슨 폴록의 작품은 철저히 우연에 의지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가 그저 물감을 뿌리기만 했을까? 그 역시 뿌려진 물감의 형상을 보고, 다음은 어디에 물감을 뿌릴지 계산을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카오스(혼돈)+코스모스(조화) = 카오스모스(chaosmos)’라 할 수 있다. 고대의 신화적 카오스에서 근대의 신학적 코스모스로, 거기서 현대의 예술적 카오스모스로.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느끼는 세계다. 혼돈 속에도 질서는 숨어 있다. 그거 아는가? 실은 세계 자체가 거대한 숨은 그림이다.

O 빛과 그림자 (카메라 옵스쿠라, 라테르나 마기카 - 마법의 등, 그림자 놀이)
* 그림자는 예술의 주제일 뿐 아니라 철학의 주제이기도 했다. 플라톤은 우리가 사는 세상은 저 천상에 있는 이데아 세계의 그림자라고 주장했다. 그 유명한 동굴의 비유에 따르면 인간들은 세상이라는 거대한 동굴에 갇혀, 동굴 벽에 비치는 그림자 놀이를 참된 실내로 알고 살아가는 죄수와 같은 존재다. 현실을 무상한 이미지의 세계로 본 쇼펜하우어의 영향을 받은 니체는 ‘모든 위대한 사상가는 이 세상이 한갓 가상에 불과하다는 위대한 영감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Y 숨바꼭질 (아나몰포시스, 인형풍경, 물구나무)
* 신은 고독하지 않았을까? 이 우주에서 혼자 내기를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그에게는 사탄이 필요했다. 그가 만든 낙원에는 처음부터 뱀이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신은 매우 무료했을 것이다. 신은 사탄과 내기를 한다. 이 내기에서 시험대에 오르는 것은 인간들.

* 시각의 관습에 사로잡힌 이들은 늘 같은 것만 본다. 그들은 구름에서 구름을 보고, 바위에서 바위를 보고, 풍경에서 풍경을 본다. 하지만 지각의 상투형에 사로잡히지 않은 어린이들은 다르다. 아이들은 구름에서 토끼의 형상을 보고, 바위에서 곰의 형상을 보고, 풍경에서 사람의 얼굴을 본다. 철이 들면서 우리는 이 능력을 잃었으나, 예술가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그 능력을 유지한다.

* 지구를 드는 데에 번거롭게 지렛대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두 손으로 땅을 짚고 거꾸로 서라. 어차피 우주에는 위아래가 없으니 곧 지구를 든 것이나 마찬가지가 아닌가. 때로 세상을 거꾸로 볼 필요가 있다. 사실 인류의 업적 중 위대한 것들은 종종 물구나무의 산물이다. 정신과 기술의 위대한 창조자들은 역사가 답보한다고 느껴지는 시기에 상투적 시각, 고정된 관념을 물구나무 세워 정신의 막다른 골목에서 탈출구를 찾아내곤 했다.

G 수수께끼 (애너그램, 아크로스틱, 리버스- 수수께끼 그림)
* 모든 예언에는 공통점이 있다. 사건이 터진 다음에야 비로소 맞아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예언은 실은 과거의 예언이다.

* 꿈은 은밀한 소망을 행여 들킬세라 수수께끼 그림으로 드러내고, 이 수수께끼 그림에서 다시 감추어진 텍스트를 읽어내는 것이 정신분석학이다. 한마디로 꿈을 꾸는 것은 리버스를 만드는 것이고, 꿈을 해석하는 것은 리버스를 푸는 것이라는 얘기다. 선사시대는 이미지의 시대였다. 역사적 근대는 텍스트의 시대였다. 탈역사의 현대는 다시 이미지의 시대다. 물론 이는 문자 없던 시절의 이미지와는 다르다. 그것은 문자를 바탕으로 한 것이어서 개념을 형상으로, 문자를 그림으로, 텍스트를 이미지로 변환한 것이다.

B 사라짐의 미학 (피크노렙시, 마술)
* 아이들에게 세계는 연속이 아니라 단편들로 주어진다. 이때 어른들은 야단을 치거나 타일러 아이들의 머릿속에서 끊어진 필름들을 이어준다. 아이들은 이를 통해 소위 ‘자의식’리라는 것을 형성하게 된다. 이렇게 의식의 연속성이란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인위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라 한다. 까꿍놀이와 같이 존재와 부재의 교차로 만들어낸 1비트의 정보. 그것만으로도 아기는 빙그레 웃으며 즐거워한다. 숨바꼭질을 할 때 아이들이 몸을 감추면서 느끼는 쾌감은 존재의 연속을 부재로 단절시키는 데서 오는 것이다. 폴 비릴리오에 따르면 ‘놀이는 본질적으로 본 것과 보지 않은 것의 극단들 사이에서 기능한다.’고 했다.


N 순간에서 영원으로 (불꽃놀이, 만화경, 미로)
* 대칭을 이루는 형태는 복잡함 속에 질서를 담고 있어, ‘다양성의 통일’이라는 오랜 미의 정의에 그대로 들어맞는다. 다양한 것은 정신이 사납다. 단순한 것은 금방 싫증이 난다. 하지만 다양성 속에 통일성이 들어 있을 때, 인간은 쾌감을 느낀다.

* 미로에는 세 가지 형태가 있다. 미혹의 여지가 없는 단방향의 ‘고전적 미로’, 갈림길에서 끝없이 선택을 강요받는 퍼즐형의 ‘근대적 미로’, 여기에 더해 ‘탈 근대적 미로’라는 것을 상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 미로에는 입구도 없고, 출구도 없다. 하나의 길은 다른 것들과 교차하고, 그 길들은 다시 또 다른 것들과 어지럽게 교차한다. 이렇게 사방으로 무한히 확산되는 미로, 식물 뿌리처럼 얽혀 있는 이 리좀(rhizome, 뿌리줄기)형 미로에는 안도 없고 밖도 없다. 따라서 미로 밖으로 빠져나갈 수도 없다. 아니, 밖으로 나간다는 개념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현대의 경우 출구가 없는 부조리한 인간실존의 알레고리로 상정되기도 한다.

* 뒤렌마트는 미로를 극복하려면 어린아이가 되어야 한다고도 했다. 창조성은 어린아이와 같은 천진함이 필요하다. 그 천진함이 없을 때에 인간은 영원히 미로 속에 갇혀 버린다. 탈근대적 미로에서 인간을 구원하는 것은 미로 밖으로 인도하는 차가운 길 찾기의 알고리즘이 아니다. 아이와 같은 천진한 창조의 놀이만이 나갈 길 없는 이 보편적 미로 속에서 제 길을 찾게 해줄 것이다.

P 다이달로스의 꿈 (종이접기, 오토마타, 정리정돈)
* 들뢰즈가 지적한 것처럼, 라이프니츠는 ‘접기’를 세계의 원리로 보았다. 세계는 모래알과 같은 ‘입자’가 아니라 레스토랑의 접힌 냅킨처럼 ‘주름’으로 되어 있다. 정신의 지각은 접기다. ‘지각의 작동은 영혼 안에 주름들을 형성하기에 모나드(monad, 개체, 소우주) 내부는 주름들로 덮여 있다.’ 존재의 생성은 펼치기다.

* 노동이 유희가 되는 게 바로 카를 마르크스가 꿈꾸던 이상사회가 아니었던가. 그 사회로 가기 위해 꼭 혁명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형상은 아니더라도 아주 가끔은,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는 것만으로 노동이 유희가 되는 세상으로 날아갈 수 있다.

<소감>
세살배기 아들과 같이 있으면 또 다른 세상으로 들어가는 문이 열린다. 그 세계는 즐거움이 가득 차 있다. 녀석은 치약 거품을 바닥에 뱉으며 눈사람을 만들고, 길가의 돌맹이를 주워 기차가 생겼다며 그 기쁨을 비둘기에게 자랑한다. 김밥을 둥글게 놓고 시계라고 깔깔거리다가 대뜸 시간을 먹어버리기도 한다. 순식간에 호랑이로 변신하여 아빠를 잡아먹고, 배부르다며 토하는 시늉을 해서 다시 꺼내주기도 한다.

‘아는 것이 힘이 되는 세상은 지나가고 이제 상상하는 것이 힘이 되는 세상이 되었다. 배울 수 없는 것은 다만 되찾을 수 있을 뿐이다. 창조적 인간이 되고 싶은가? 그럼 성숙의 지혜를 가지고 어린 시절의 천진함으로 돌아가라.’라고 저자는 말한다. 아마 이 책의 핵심내용일 듯 싶다. 그의 주장에 아무런 이견도 없다. 전적으로 동감한다. 시대는 변하고 있다. 정보에서 지식으로 지식에서 상상력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 상상력은 근대적 사고의 청산에서 나오며 고민이 아닌 놀이에서 시작된다. 그것은 바로 아이의 마음이다. 저자가 소개하고 있는 풍부한 그림에 맞추어 책을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며 보는 것도 남다른 재미다. 7가지 프로젝트로 놀이를 구분하고 자신의 전공인 미학으로 연결시켜 가는 솜씨가 역시 그답다. 고수들은 역시 일상과 철학이 경계 지워지지 않는다.

우리는 잃어버린 기쁨과 재미를 되찾아야 한다. 일과 일상 속에서 기쁨을 느끼는 사회가 바로 유토피아가 아니겠는가! 가치 있는 삶을 고민하기보다 ‘어떻게 하면 좀더 재미있게 살까?’를 일관성 있게 추구하는 것이 건강한 삶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저자의 이야기처럼 거창한 혁명에서 오는 것만이 아니다. 고개를 기울여서 세상을 보고 물구나무를 서서 보고 때로는 눈을 감고 세상을 볼 때 오는 것이기도 하다.

저자는 상상력 혁명으로 도래한 새로운 사유의 특징을 비선형, 순환성, 파편성, 중의성, 동감각, 형상문자, 단자론의 7가지 키워드로 요약하고 있다. 그리고 수 많은 놀이를 통해 그 속에 담겨있는 사유의 특성을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그러면서도 새로운 시대의 사고는 기존의 틀을 벗어나지만 합리성에 대한 무차별적 공격은 아니라며 조심성을 잃지 않는다.

하지만, 희미해진 상상과 현실의 차이는 시계를 흐려놓고, 수많은 역할 속의 다중의 정체성은 분열되기 쉽다.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상상인가? 획일적 가치와 고정된 체계 속에 사고하던 시대와 달리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길을 잃기 쉽고 더 많은 조각으로 흩어져 버리기 쉽다. 세상은 정말 출구 없는 미로처럼 와 닿을 때가 있다. 길을 잃고 갇힌 느낌! 선형적 사고로는 헤쳐 나올 수 없는 그 미로에서 우리는 길을 잃어버리려는 역설적 노력이 의외의 해법임을 느낄 수도 있다. 아무튼 지금의 시대는 ‘굳건한 자기(self)’를 가지고 어린시절로 돌아갈 수 있는 사람이 앞서갈 수 있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못내 아쉽다면 좀 우리나라 이야기를 실어주었으면 좋겠는데 없어도 너무 없다. 그 역시 ‘한국적 미학론’을 고민할 법도 한데....



IP *.231.16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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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tta
2005.09.30 17:54:16 *.120.199.136
읽어봐야겠는데요.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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