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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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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0월 5일 11시 10분 등록
제1부 훈련

삶은 고해(苦海)다. 이것은 삶의 진리 가운데서 가장 위대한 진리다(석가는 四海 가운데서 삶을 가장 큰 苦海라고 했다). 그러나 이러한 평범한 진리를 이해하고 받으들일 때 삶은 더 이상 고해(苦海)가 아니다. 다시 말해, 삶이 고통스럽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래서 이를 이해하고 수용하게 될 때, 삶은 더 이상 고통스럽지 않다. 왜냐하면 비로소 삶의 문제에 대해 그 해답을 스스로 내릴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p. 15)

그러나 우리는 대부분 그렇게 현명하지 못하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고통을 두려워하고, 가능한 한 문제들을 피하려고 한다. 우리는 문제를 질질 끌면서 저절로 없어지기를 바란다. 무시하거나 잊어버리려 하고, 문제가 없는 것처럼 여기려 한다. 심지어는 고통을 잊어버리기 위해 약물을 먹고 자신을 마비시키기도 한다.
(p. 16)

어떤 경우든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어야 하며, 그때 생겨나는 고통을 회피한다는 것은 문제에 직면함으로써 성취할 수 있는 정신적 성장을 거부하는 것이 되고 만다. 그렇게 되면 만성 정신질환 상태에서 정신적 성장은 정지하게 되며, 이것을 치료하지 않으면 인간 정신은 시들어 가기 시작한다.
(p. 17)

아이들을 제대로 가르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아이들에게 내줄 시간이 없고 그럴 마음도 없으면, 아이들을 가까이 관찰할 수 없기에 언제 부모의 가르침이 아이들에게 필요한지도 모르게 되고, 또 그런 도움을 원하는 아이들의 무의식적인 표현을 부모가 제대로 알아차릴 수도 없게 된다. 아이들을 단단히 가르칠 필요가 있다고 뼈저리게 의식하면서도 우리는 "오늘은 애들을 봐줄 기력이 없어." 하며 저희들 마음대로 하도록 내버려 두는 수가 많다. 그러다가 결국 아이들이 잘못되면 그때서야 부모들은 화를 내며 아이들을 가혹하게 야단치게 된다. 문제가 어떤 것인지 알아볼 여가도 없고, 그 문제에 대해서 어떤 방법으로 교육을 시키는 것이 가장 좋은지 곰곰이 생각해 보지도 않고 무작정 훈련시키려고 덤비게 되는 것이다.
(p. 23)

부모들이 아이들을 위해 보내는 시간, 그것이 바로 아이들이 부모로부터 얼마만큼 귀중하게 취급다고 있는가를 가늠하게 해준다. 사랑이 없는 어떤 부모들은 자기들의 사랑이 부족한 것을 감추려고 아이들에게 자주 사랑한다는 말을 기계적으로 반복해서 아이들을 소중히 여긴다고 느끼게끔 하고는 있으나 애정에 가득 찬 마음으로 아이들을 위해 시간을 내누지는 않는다. 자녀들은 결코 그런 마들에 속지 않는다. 부모들이 사랑한다고 믿기를 원하므로 의식적으로 그 말에 집착하기도 하나, 무의식적으로는 부모들이 말로만 그러지 진심과는 다르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p. 24)

자신을 스스로 존중하는 느낌은 정신건강의 가장 중요한 요인이며, 자기 훈련의 주춧돌이다. 이것은 부모 사랑의 직접적인 산물이다. 이러한 신념은 어렸을 때 얻어져야만 한다. 어른이 되어서 얻는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p. 25)

"내가 하라는 대로 하지 않으면, 나는 너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을 테야. 그게 무얼 의미하는 것인지 알겠지? 자, 그렇다면 이제 네가 해야할 일은 뭐지?"
이런 부모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않을 때, 오는 결과가 무엇일까? 어린아이에게 있어서 그것은 버림받는 것이고, 죽음을 뜻하는 것이다.
이런 부모들은 자기 아이들을 조정하고 지배하려고 사랑을 희생시키는 것이고, 그 대가로 아이들은 장래에 대해 엄청난 공포심을 갖게 된다. 이런 아이들은 심리적으로 늘 버림받았다고 느끼기도 하며 세상이 안전하고 보호가 있는 장소라는 믿음 없이 성인이 된다. 따라서 그들은 오히려 세상이란 위험하고 무섭다고 인식하게 되고, 현재의 어떤 즐거운 일이나 안전한 일을 미래에 악속된 어떤 즐거운 일이나 안전한 일을 위해 결코 양보하려 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미래란 참으로 의심스러운 것이기 때문이다.
(p. 27)

문제란 그대로 사라져 버리지 않는다. 문제들은 직면해서 해결을 하지 않으면 그대로 남는 것이며, 영원히 정신적인 성장과 발전의 장애물이 되고 만다.
(p. 32)

우리는 자신의 행동에 따른 책임을 회피할 때, 그 책임을 다른 어떤 개인이나 조직 등에 준다. 그러나 이것은 자신의 권리를 양도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에리히 프롬은 나치즘과 권위주의에 대한 그의 연구에서 이를 '자유로부터의 도피'라고 했다. 아주 적절한 표현이다.
(p. 46)

대다수의 환자들에게 존재하는 '무기력한 느낌'은 자유에 대한 고통을 피하고 싶은 욕망에서 생겨난다. 그래서 그들은 그들의 삶이나 문제에 대해 책임질 줄을 모른다. 그들이 무력하게 느끼는 것은 사실 자신들의 권리를 포기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치유되고 건강해지려면, 조만간 성인의 생활 전체가 개인의 선택과 결정의 연속이라는 것을 배워야만 될 것이다. 그들이 이런 것을 전적으로 수용할 수 있을 때에만, 자유로울 수 있다. 이런 것을 수용하지 못하면 그들은 영원히 자신들을 희생자라고 느끼게 될 것이다.
(p. 47)

현실에 대한 우리의 견해란 지도(地圖)와 같아서 그걸 지표로 삶의 모든 영역을 판단하게 된다.

우리는 처음부터 지도를 가지고 이 세상에 태어나지는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지도를 만들어야 하는데, 이걸 만드는 데는 노력이 필요하다. 현실을 감수하고 파악하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우리의 지도는 정확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

단지 소수의 사람들만이 다행스럽게도 죽을 때까지 현실의 미궁을 탐색하여 세계에 대한 이해와 진실이 무엇인가를 더욱더 넓히고 정리하며, 재정리하고 있다.

지도 제작에 있어서 제일 큰 문제는, 아무 것도 ㅇ벗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지도가 정확해질 때까지 우리가 계속해서 지도를 고쳐 그려야 한다는 데 있다.
(p.48)

오랫동안 애쓰고 노력해서 유용하고 쓸만한 지도를 만들어 지니게 되었는데, 그가 가진 견해가 잘못 되어서 지도의 대부분을 다시 그려야만 하는 새로운 정보에 당면하게 된다면 기분이 어떨까? 그런 작업은 대단한 고통이 요구되므로 공포와 두려움에 질려 버릴 것이다. 이런 경우 우리는 대개 무의식적으로 새로운 정보들을 무시해 버리려 한다. 이 무시하려는 행위는 아무 것도 안하려는 수동적인 행위보다 더 많은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우리는 새로운 정보들을 거짓된 것이며, 위험하고, 이단적인 악이라고 거부해 버릴지도 모르다. 우리는 세상과 주위를 조작해서라도 자신의 현실에 대한 견해에 맞춰 가려고 할 것이다.
(p.49)

자유로운 사람이 되려면 우리는 자신에 대해 전적으로 책임을 져야만 하고, 동시에 진실로 우리의 책임이 아닌 것은 거절할 줄 아는 능력을 소유해야만 한다.
(p.68)


제2부 사랑

나는 여기에서 이런 다양한 범주들을 무시하고, 다소 부적절하게 보일지는 모르나 사랑을 간단히 다음과 같이 정의 내리고자 한다. '자기 자신이나 혹은 타인의 정신적 성장을 도와줄 목적으로 자기 자신을 확대시켜 나가려는 의지'라고 말이다.
(p.87)

둘째 문제는 사랑에 빠지는 경험이 예외없이 일시적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누구와 사랑에 빠졌든 간에 시간이 지나면 그 사랑에서 빠져나오게 마론이다. 이것은 우리가 사랑에 바졌던 사람을 사랑하지 않게 된다는 말은 아니다. 사랑에 빠지는 경험의 특징인 황홀한 사랑의 느낌은 항상 지나가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신혼여행은 언제든 끝이 나고 만다. 연애의 꽃은 피었다가는 항시 시들해지게 마련이다.
(p.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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