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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0월 31일 11시 07분 등록
◎ 저자 소개

1969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태어났으며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수학했다. 1993년에 발표한 처녀작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Essays in Love》부터 The Romantic Movement(1994), Kiss & Tell(1995)에 이르기까지 발표하는 소설마다 큰 호응을 불러일으켰다. 뒤이어《여행의 기술The Art of Travel》(2002)을 출간하며 평단으로부터의 찬사뿐만 아니라 독자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다음 작품이 가장 기대되는 작가로 꼽히는 드 보통의 저서들은 현재 20여 개의 언어로 번역 출간되어 세계 각국에서 수십만 부씩 팔리는 베스트셀러이다. 2000년의 역사를 꿰뚫으며 경제적 능력으로 규정되는 사회적 위치에 대한 불안의 문제를 다룬《불안Status Anxiety》은 2004년 발표한 최신작이다. 알랭 드 보통은 2003년 2월에 프랑스 문화부 장관으로부터 <슈발리에 드 로드르 데자르 에 레트르>라는 기사 작위를 받았다. 같은 해 11월에는 유럽 전역의 뛰어난 문장가에게 수여하는 <샤를르 베이옹 유럽 에세이 상>을 수상했다. 현재는 런던에 살면서 건축에 관한 책을 집필하고 있다. 알랭 드 보통의 웹사이트 http://www.alaindebotton.com
에서 그의 근황과 저서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 소감

내 안에 여러 파편으로 나뉘어져 있는 생각들을 깔끔하게 정리해준 책을 종종 만나곤 하는데 오랜만에 그러한 책을 만났다. 하여 이 책을 읽는 내내 저자에게 고마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사회마다 지배관념이라는 것이 있다.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두루 통용되는 관념을 얘기한다.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기에 별다른 의심없이 받아 들여지고 통용되지만 그러한 관념이라고 해서 항상 옳지는 않다는 것은 갈릴레이의 종교재판 예화를 비롯하여 수없이 증명되어 왔다. 그럼에도 다수의 사람이 믿고 따르는 생각이 때로는 잘못 된 것일 수도 있다는 의심을 갖는다는 것은 역시나 어려운 일이다.

가장 큰 이유는 타인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혼자서 살 수 없기에 사회의 지배관념이 내 생각과 달라도 어느 정도는 거기에 보조를 맞출 수밖에 없다. 차라리 자신의 생각을 지배관념과 일치시키는 것이 더 편할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내 안의 욕망과 사회의 요구가 서로 맞아 떨어지니 별다른 심적 갈등없이 내 욕망을 실현시키는 데에만 전념하면 될 것이다.

하지만 나의 진정한 욕망을 살펴보기도 전에 우리에게는 사회적 요구가 주입되어 진다. 부모님으로부터, 학교로부터, 회사로부터, 사회로부터 우리는 이러이러한 사람이 될 것을 요구받는다. 그러한 요구를 하는 사람 혹은 단체의 힘이 워낙 크기에 우리는 별다른 의심 없이 맹목적으로 그러한 요구에 따르게 된다. 어찌 보면 그것은 신의 계시와도 다를 바가 없다. 그렇기에 그러한 요구에 제대로 부응하지 못하면 우리는 죄인이 된다. 가치 없는 인간이 되고, 쓸모 없는 인간으로 스스로를 낙인 찍는다. 성적이 나쁘면 학급 평균을 갉아 먹는 안좋은 학생으로 낙인 찍히고, 사회에서 비공식적으로 통용되는 기준 미만의 수입을 올리는 사람에게는 무능한 성인이라는 낙인이 찍힌다.

그러한 사람들을 안쓰럽게 여기기보다는 그 사람들 본질에 문제가 있기에 그렇게 된 것이라는 시각이 팽배해 있지는 않은지. 어느 시사주간지에서 본 엘리베이터 수리공의 일화가 떠오른다. 열심히 고장난 엘리베이터를 고치고 있는데 아이 한명을 데리고 가던 어느 여인이 그쪽을 가리키며 말하더란다.

“공부 안 하면 저렇게 고생하면서 살게 된다. 알았니?”

그 아이가 공부 잘해서 나중에 그런 고생 안하기를 진심으로 바랄 뿐이다.

장황하게 글을 늘여 썼지만 이 책을 읽고 난 후 나의 결심은 간단하다.

나는 나의 눈으로 세상을 볼 것이다. 하지만 때로는 나의 눈이 무언가를 잘못 바라볼 수도 있다. 그러기 위해 항시 눈의 상태가 건강해지도록 노력할 것이다. 이것은 타인을 전혀 의식하지 않겠다는 얘기가 아니라 타인이 제시하는 의견을 그 사람이 힘이 세다는 이유로 무조건 수용하지는 않겠다는 결심이다.


◎ 인용

◆ 원인

Ⅰ 사랑결핍

윌리엄 제임스가 《심리학의 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회에서 밀려나 모든 구성원으로부터 완전히 무시를 당하는 것 - 이런 일이 물리적으로 가능할지는 모르겠으나 - 보다 더 잔인한 벌은 생각해낼 수 없을 것이다. 방 안에 들어가도 아무도 고개를 돌리지 않고, 말을 해도 대꾸도 안 하고, 무슨 짓을 해도 신경도 쓰지 않고, 만나는 모든 사람이 죽은 사람 취급을 하거나 존재하지 않는 물건을 상대하듯 한다면, 오래지 않아 울화와 무력한 절망감을 견디지 못해 차라리 잔인한 고문을 당하는 쪽이 낫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p. 20)

다른 사람들의 관심이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우리가 날 때부터 자신의 가치에 확신을 갖지 못하고 괴로워할 운명을 타고났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 결과 다른 사람이 우리를 바라보는 방식이 우리가 스스로를 바라보는 방식을 결정하게 된다.
(p. 21)

우리의 '에고'나 자아상은 바람이 새는 풍선과 같아, 늘 외부의 사랑이라는 헬륨을 집어넣어 주어야 하고, 무시라는 아주 작은 바늘에 취약하기 짝이 없다.
(p. 22)

Ⅱ 속물근성

속물의 독특한 특징은 단순히 차별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지위와 인간의 가치를 똑같이 본다는 것이다.
(p. 29)

속물 집단은 분노를 일으키거나 좌절감을 안겨준다. 우리의 내면에 있는 것으로는, 즉 우리의 지위가 아닌 다른 것으로는 그들이 우리에게 하는 행동을 통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솔로몬의 지혜가 있고 오디세우스의 책략과 꾀가 있다 해도, 우리의 자질을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표지로 제시하지 못한다면 우리 존재는 그들에게 전혀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p. 30)

신문 때문에 문제는 더 복잡해진다. 속물은 독립적 판단을 할 능력이 없는 데다가 영향력 있는 사람들의 의견을 갈망한다. 따라서 언론의 분위기가 그들의 사고를 결정해버리는데, 그 수준은 위험할 정도다.
(p. 33)

오만 뒤에는 공포가 숨어 있다. 괴로운 열등감에 시달리는 사람만이 남에게 당신은 나를 상대할 만한 인물이 못 된다는 느낌을 심어주려고 기를 쓴다.
(p. 35)

가난이 낮은 지위에 대한 전래의 물질적 형벌이라면, 무시와 외면은 속물적인 세상이 중요한 상징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에게 내리는 감정적 형벌이다.
(p. 38)

Ⅲ 기대

데이비드 흄은 《인성론》에서 이렇게 말했다.
"질투심을 일으키는 것은 우리와 다른 사람들 사이의 커다란 불균형이 아니라 오히려 근접 상태다. 일반 병사는 상사나 상병에게 느끼는 것과 비교하면 장군에게는 질투심을 전혀 느끼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뛰어난 작가 역시 평범한 삼규작가보다는 자신에게 좀 더 근접한 작가들로부터 질투를 더 받는다. 불균형이 심하면 관계가 형성되지 않으며, 그 결과 우리에게서 먼 것과 우리 자신을 비교하지 않게 되거나 그런 비교의 결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게 된다.
(p. 59)

불평등이 사회의 일반 법칙일 때는 아무리 불평등한 측면이라도 사람들 눈길을 끌지 못한다. 그러나 모든 것이 대체로 평등해지면 약간의 차이라도 눈에 띄고 만다.
(p. 67)

루소(장-자크 루소)에 따르면 부는 많은 것을 소유하는 것과는 관련이 없었다. 부란 우리가 갈망하는 것을 소유하는 것이다. 부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부는 욕망에 따라 달라지는 상대적인 것이다.
(p. 80)

우리는 조상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기대한다. 그 대가는 우리가 현재의 모습과 달라질 수 있는데도 실제로는 달라지지 못하는 데서 오는 끊임없는 불안이다.
(p. 82)

Ⅳ 능력주의

서양이 2000년간 물질적으로 진보했다는 사실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근대에 들어 왜 사람이 가난하고, 무엇이 사람의 사회적 가치를 결정하느냐를 설명하는 방식에는 응보의 관점이 강력하게 개입하게 되었고, 그 결과 낮은 지위에 처한 사람은 점차 감정적으로 견디기 힘든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p. 85)

만일 모든 사람이 똑같은 교육을 받고 똑같은 직업 선택 기회를 가진다면, 수입과 위신에서 차이가 나는 것은 개인의 재능과 약점에 비추어 정당회 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따라서 수입을 평등하게 만들 필요는 없었다. 특권은 능력을 따라가고, 곤궁도 마찬가지였다.
(p. 106)

능력과 세속적 지위 사이에 신뢰할 만한 관련이 있다는 믿음이 늘어나면서 돈에도 새로운 도덕적 가치가 부여되었다. 부가 혈연과 연줄을 따라 세대에서 세대로 내려가던 때에는 돈이 부자 부모에게 태어났다는 것 외에 ㅇ떠한 미덕도 증명할 수 없다는 사실이 당연시되었다. 그러나 자신의 지능과 능력만을 기초로 위엄 있고 보수 많은 일자리를 얻을 수 있는 능력주의 사회에서는 이제 부가 품성의 온당한 지표로 여겨질 수도 있었다. 부자는 단지 더 부유할 뿐 아니라, 더 낫다고도 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p. 111)

존 D.록펠러는 부끄러움 없이 주님이 자신을 부자로 만들었다고 말했으며, 매사추세츠의 감독파 감독 윌리엄 로런스는 1892년에 이렇게 주장했다. "결국 부는 도덕적인 인간에게만 찾아온다. 시편 저자와 마찬가지로 가끔 악한 자가 번창하는 것을 보기도 하나, 그것은 가끔일 뿐이다. 경건한 삶에는 부가 따른다."
(p. 112)

그러나 이 이야기는 낮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불가피하게 어두운 면을 드러낸다. 성공을 거둔 사람이 그럴 만한 자격이 있다면, 실패한 사람 역시 그럴 만해서 실패했다는 이야기가 되기 때문이다. 능력주의 시대를 맞아 정의는 부만이 아니라 빈곤의 분배에도 관여하게 된 것이다. 낮은 지위는 이제 안타까운 것이 아니라, 그래 마땅한 것처럼 보이게 되었다.
(p. 112)

Ⅴ 불확실성

승리를 '행운' 덕으로 돌리는 것은 지나치게(또 심지어 수상쩍을 정도로) 겸손하게 보일 수도 있다. 이 맥락에서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패배를 불운 탓으로 돌리는 것이 궁색해 보인다는 점이다.

우리의 지위의 문제를 우연적 요소들에 맡긴다는 것은 불안한 일이다. 그러나 합리적 통제라는 관념에 완전히 물들어, '불운'이 실패를 설명하는 그럴듯한 이유가 될 수 있다는 관념을 폐기해버린 세상에 산다는 것은 더 힘든 일이다.
(p. 127)

마르크스가 역사가로서는 능력이 떨어져 산업화 이전의 과거를 이상화하고 부르주아지를 지나치게 혹평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의 이론은 고용자와 피고용자 사이의 피할 수 없는 갈등을 포착하고 극화했다는 점에서 여전히 가치가 있다.
(p. 140)

◆ 해법

Ⅰ 철학

명예의 문제에 폭력으로 대응하는 사람들을 비난하는 눈으로 바라볼지 모르지만, 그러는 우리도 그런 사람들의 정신구조의 가장 중요한 측면을 공유하고 있을지 모른다. 다른 사람들의 경멸에 매우 약하다는 것이다. 우리의 자존심 역시 다른 사람들이 부여하는 가치에 의해 결정된다는 점에서 우리도 성집 급하게 결투에 나서는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을지 모른다.
(p. 152)

철학자들은 오래전부터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면밀하게 검토해 보면 서글픈 동시에 묘하게 위안이 되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고 이야기해왔다. 어떤 문제이든 다수의 의견에는 혼란과 오류가 가득하다는 것이었다. 샹포르는 그의 이전과 이후의 여러 세대의 철학자들의 염세적 태도를 반영하여 이 점을 이렇게 간단하게 정리했다. "여론은 모든 의견 가운데 최악의 의견이다."
(p. 163)

철학자들은 함께 모여 연구를 한 것도 아닌데 입을 모아 외부의 인정이나 비난의 표시보다는 우리 내부의 양심을 따르라고 권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떤 무작위 집단에게 어떻게 보이느냐가 아니라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p. 168)

Ⅱ 예술

나의 실패를 다른 사람들이 차가운 눈길로 바라보며 가혹하게 해석한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않는다면 일에서 실패를 크게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실패의 물질적 결과에 대한 두려움은 세상이 실패를 바라보는 냉정한 태도, 실패한 사람을 '패배자'로 지목하는 집요한 경향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더 심각해진다. '패배자'라는 말은 졌다는 의미와 더불어 졌기 때문에 공감을 얻을 권리도 상실했다는 의미까지 담고 있는 냉혹한 말이다.
(p. 202)

우리가 비극 작품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실패에 평소보다 훨씬 더 큰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면, 그것은 그 작품을 통해 실패의 유래를 이해하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더 많이 아는 것은 곧 더 많이 이해하고 용서하는 것이다.
(p. 211)

우리는 정당화할 수 없고 어울리지 않는 것은 조롱한다.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왕, 능력이 권력을 따라가지 못하는 왕은 조롱한다. 인간적 본성을 잊고 특권을 남용하는 높은 지위의 권력자들은 조롱한다. 우리는 조롱을 하고, 웃음을 통하여 불의와 과잉을 비판한다.
(p. 224)

Ⅲ 정치

"필수품이라고 할 때는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상품만이 아니라, 나라의 관습에 따라 아무리 계급이 낮다 해도 평판이 좋은 사람으로서 그것이 없으면 품위를 지킬 수 없다고 여기는 모든 것을 가리킨다."
(p. 250)

스미스(애덤 스미스)의 시대 이후로 경제학자들은 궁핍한 상태를 규정하고 그것을 속상한 일로 만드는 것은 직접적인 신체적 고통이라기보다는 그 상태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부정적 반응에서 나오는 수치감, 즉 가난 때문에 스미스가 말하는 " 기존의 품위 유지 규칙"을 지키지 못하는 데서 나오는 수치감이라는 데 거의 만장일치로 동의하고 있다.
(p. 251)

우리 영혼은 만족을 얻기 위해 필요한 것을 제대로 말하는 경우가 드물며, 어설프게 말을 한다 해도 근거가 박약하거나 모순될 가능성이 높다. 건강해지기 위해 뭔가를 소비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정신과 신체가 같지만, 루소(장-자크 루소)는 몸도 물이 필요할 때 술을 찾고 침대에 누워 있어야 할 때 춤을 찾는 것처럼 정신도 모순된 요구를 하지 않느냐고 묻는다. 우리의 정신은 만족을 하려면 이런저런 것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외부의 목소리의 영향력에 민감하다. 이런 목소리는 우리의 영혼이 내는 작은 소리를 삼켜보리고, 긴요한 것을 정확하게 찾아내는 힘들고 까다로운 일을 방해할 수 있다.
(p. 259)

인생은 하나의 불안을 다른 불안으로 대체하고, 하나의 욕망을 다른 욕망으로 대체하는 과정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불안을 극복하거나 욕망을 채우려고 노력하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노력은 하더라도 우리의 목표들이 약속하는 수준의 불안 해소와 평안에 이를 수 없다는 것쯤은 알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p. 268)

우리는 어떤 직업이 주는 매력도 오해하는 경향이 있다. 그 직업에 포함된 많은 것이 편집되고 오직 감탄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만 강조되기 때문이다. 과정이 아니라 결과만 눈에 보이는 것이다.
(p. 269)

Ⅳ 기독교

죽음에 대한 생각의 가장 큰 효과는 나일 강변에서 술을 마시든, 책을 쓰든, 돈을 벌든, 우리가 당장 일어나고 있는 일고부터 가장 중요한 일로 시선을 돌리게 해준다는 것이다. 동시에 다른 사람들의 판단에 덜 의존하게 해준다는 것이다.
(p. 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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