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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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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2월 26일 21시 29분 등록
구본형 - 오늘 눈부신 하루을 위하여

‘자신의 이중성을 칭찬하라’ 에서

[직장의 중견 간부들이 ‘자신의 삶이 조화롭지 못하다’고 응답한 이유 하나는 잘못된 사람이 잘못된 자리에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이유는 반대로 일을 아주 잘하고 또 좋아할 뿐 아니라 조직에게 사랑을 받는 사람들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그들의 딜레마는 개인생활에 있었다. ]

->조화로운 삶이란 단순히 열심히 살아가는 것과는 조금 다른 문제이다. 열심히 살아갈수록 조화롭지 못한 방향으로 나갈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눈 앞에 주어진 과제에만 집중한 시야를 달리하여 좀 더 객관적이고 넓고 길게 자신의 삶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항상 새로운 미래를 꿈 꾼다. 지금의 현실이 막연히 좋아지기를 바라기도 하고 ‘인생 역전’ 이라는 전혀 새로운 삶을 꿈꾸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에게 다가올 미래는 과거로부터 이어져 오는 것이다. 시간은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은 미래에서 과거로 흘러 지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정해진 과거에서부터 인과관계를 가지고 미래로 흘러가는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지난 자리는 다시 과거가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조화로운 삶, 보다 나은 지금을 위해 과거와 미래를 이어주는 인과관계 속에 있는 자신의 모습을 살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 모습을 정확히 인지할 수 있고 그 뿐 아니라 그 속의 모든 부분들을 인정할 수 있다면 우리가 힘써 노력함에도 조화롭지 않은 방향으로 나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 구체적인 방법론으로써 ‘자신의 이중성을 인정하고 더 나아가 칭찬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긴장을 경영할 수 없으면 성공할 수 없다. … 리더쉽은 자신을 믿으면서 또 늘 의심하는 것이다. 믿음 속에 의심의 여지를 살려두어 현실 감각을 잃지 않는 것이다.]

->긴장을 경영한다는 말은 여러 가지를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단순히 긴장한다는 말과는 사뭇 다른 것 같다. 긴장할 줄 안다는 말에 더 가까울 것이다. 긴장할 줄 안다는 것은 여유를 가지지만 필요에 따라서는 자신을 반성하고 하는 일에 좀 더 집중할 수 있다는 뜻이다. ‘자신을 믿으면서 또 늘 의심하는 리더쉽’ 또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늘 의심하고 긴장하는 중에 얻게 된 자신에 대한 믿음은 어느 순간에는 여유로 다가와 단순히 긴장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판단에 근거해서 긴장할 줄 알게 된다. 그러한 리더쉽은 주위 사람들을 피곤하게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은근하고 무게감 있는 신뢰를 선물한다.

[이중성은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점을 받아들여야 한다.]

->다른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에 대한 이중성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는 것은 좀 더 많은 가능성을 열어 두는 것과 같다. 자신의 일면에 대한 단정은 위험하기까지 하다. 특히나, 자신이 정확하고 자세하게 알지 못하는 부분에 대한 성급한 단정은 인생을 비참하게 만들 수 도 있다. 술에 취해 실수로 저지른 폭행 사건에서 가해자로 낙인 찍힌 젊은이의 경우, 주위 사람들뿐 아니라 자신마저도 자신의 난폭함에 좌절하고 자책한 채 살아가는 것은 실제 그 사건 자체보다 훨씬 더 불행한 일이다. 마찬가지로 여러 조직 속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단순히 몇 가지 사실로 ‘이러하다’ 고 단정지었을 때 생기는 오해는 이루 헤아릴 수 없다. 어떠한 한 가지 면모만으로는 당연히 부조화다. 오히려 이중성이라고 나누어 놓은 것 자체가 부자연스러운 것일지 모른다. 그 이중성을 만들어 낸 기준은 여러 가지 편견과 관습이 만들어 낸 것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어떠한 편견도 두지 않고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이중성을 칭찬해야 하는 이유인 것이다.

[파트너를 고를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을 개인적으로 좋아하고 존경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능력은 있지만 존경할 수도 없고 좋아할 수도 없는 사람은 결국 믿지 못하게 된다. 어려운 때를 극복하기 위해 팀을 이룬 것인데, 어려움에 처해 헤어진다면 얼마나 허무한 동맹인가]

->이 대목에서는 현실적인 면을 두고 이야기해야 한다. 파트너를 직접 선택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좋아하고 존경할 수 있는 사람과 함께 일할 수 있다면 아마도 자신이 원하는 삶의 1/3은 이미 이룬 것이나 다름없다. 그 일 자체가 이미 사교의 장이며 배움의 연속일 테니 말이다. 과연 그렇게 일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전세계에서 두 번째로 재산이 많은 워렌 버펫은 자신의 성공은 돈이 아니라 행복이며 그 행복은 자신이 원하는 사람들과 일할 수 있기 때문에 이루어졌다 고 말한다. 큰 돈을 벌 수 있는 기회 앞에서도 그가 좋아하지 않는 사람과 일해야 하는 경우에는 그 기회를 포기했다고 말하며 그것은 전혀 후회되지 않는 일이라고 한다. 버펫처럼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조직 내의 한 구성원으로 일해야 하는 경우, 버펫이 누리는 행복은 현실성이 없어 보인다. 다만, 믿음을 쌓을 수 있는 사람과도 만날 수 있는 것은 가능할 것이다. 모든 이와 같은 수준의 신뢰를 쌓지는 못하겠지만 자신과 함께 일하는 이들에 대해 호감을 가지고 서로 다른 점을 존중하며 믿음으로 일을 할 수 있다면 완전하지는 않지만 일할 맛이 날 것이다. 직장에서의 만남을 믿음으로 쌓아간다는 것은 직장 내에서 행복을 만들어 가는 방법이 된다.



[과거의 성공에 집착하지 말라. 이중성을 다룰 때 가장 큰 장애물은 역설적이게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장점일 수 있다. … 성공과 오만은 서로 매우 닮았다는 점이다 … 과거의 성공 속에 매몰되어버린다. 정신적으로 죽은 사람들에게서 배울 것은 없다.]

->어느 날, 각서를 하나 쓰기로 했다. 이름 하야 ‘기득권 포기 각서’였다. 왠지 신체 포기 각서를 연상케 하여 비장함 마저 감돈다. 아직 20대인 사람이 무슨 기득권이 있겠냐 만은 마음 속에 조금은 더 나은 대학의 이름과 별 어려움 없이 들어간 대학원, 마찬가지로 단 한 번 지원해서 입사한 대기업에 대한 기득권 의식이 은근히 똬리를 틀기 시작했다. 따지고 보면 크게 성공한 것도 없는 지금 오만에 가까운 이러한 의식이 자리잡는 것은 위험한 것이다. 뭔가 조금 괜찮은 자리에 있다는 느낌은 시간이 흘러 그 자리를 고수하게 만들고 급기야 새로운 곳으로의 도약이라는 명제 자체를 삼켜 버린다. 이에 7년에 한 번씩 기득권 포기 각서를 작성하기로 한다. 7년의 세월 동안에 쌓아 올린 모든 기득권을 포기하고 당시에 처한 상황을 냉철히 판단하여 새롭게 시작하기로 하는 것이다. 5년 또는 10년이 아니라 7년이 되는 이유는 특별하지는 않지만 다음과 같다. 우선 5년은 한 가지 목적을 두고 성과를 이루어 내어 평가하기에 다소 짧은 느낌이 있다. 반면 10년은 목표한 성공이 이미 기득권이 되어 노회한 속성을 가득히 담아 낼지도 모른다. 이에 7년을 두고 각서를 쓰겠다. 개인적으로는 1999년 대학을 입학하여 대학원 마지막 학기를 보내는 2005년이 7년이 되는 해이다. 지난 시절에 나에겐 별 도움이 안되고 다만 사람들이 보기엔 뭔가 있어 보이는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벗어 버리기로 하자.

[경영자의 철학과 인생을 제도와 상품 속에 담아내지 못한 채 이익만 쫓는다면, 경영은 우리에게 의미 있는 행동일까?]

->기업 활동을 꿈꾸는 이에게는 항상 그의 철학에 대한 숙고부터 요구된다. 경영철학이나 기업 이념이 빈 말이 아니라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이유가 있다. 이 세상에는 기업 활동이 아니라도 거액의 자금이 있다면 상당한 기득권을 가지고 유리한 위치에서 돈을 벌 수 있다. 올바른 기업활동을 해서 성공한 이와 단순히 재산이 많은 이는 다르다. 올바른 기업활동은 많은 불법적인 이득에 대해서 초연할 수 있어야 하고 단순히 돈을 벌겠다하는 욕심으로는 불가능한 것이다. 주식투자로 성공한 인물 중에 전설적이라고 평가 받는 필립 피셔의 주장에 의하면 부정한 방법이나 불법적인 기업활동을 저지르는 기업은 위대한 기업이 될 수 없고 따라서 그 회사에 투자한 투자자에게 이익을 되돌려 주지 못한다고 하였다. 기업활동의 최종 목표가 단순히 재정적인 성공이라면 그것은 마치 자동차를 운전하면서 속도만 높혀 빨리 달리면 된다는 것과 같다. 원하는 목표에 향한 정확한 방향성이 제시되어야 하고 곳곳의 신호등과 운전 규칙들을 준수해야 하는 것이다. 기업의 가장 기본적인 목표가 이윤 추구이지만 그것은 기업의 사회적 존재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할 때 가능한 것이다. 기업이 사회적으로 어떠한 역할을 하느냐를 모른 채, 기업활동으로 이윤 추구만 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기업이 아니다. 이윤 추구 집단일 뿐인 것이다. (?)

[우리는 지금 개인의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경영진과 관리자들은 조직과 개인의 이중성을 다루기 위한 기본적 전제를 신중하게 검토해 신속히 바꾸어나가야 한다…. 이제 사람들은 자율적 개인이 되고 싶어한다. 일과 여가, 그리고 가정생활 사이의 균형을 잡아가고 싶어한다. … 새로운 리더쉽의 핵심은 직원을 인사 관리의 대상이 아니라 인사 정책의 주체로 인식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이다. 직원에게서 육체만 빌리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두뇌와 영혼을 빌릴 수 있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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