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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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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월 4일 17시 17분 등록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한비야 지음, 푸른숲, 2005)

한비야.. 1958년 서울 출생. 홍익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미국 유타대학교 언론대학원에서 국제 홍보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국제홍보회사 버슨-마스텔라에서 근무하다 어린 시절 계획한 ‘걸어서 세계일주’를 실현하기 위해 과감히 사표를 던지고 여행길에 올랐다. 그 후 7년간에 걸쳐 이루어진 세계 오지 여행 경험을 담은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 바퀴 반》(전4권), 해남 땅끝마을에서 강원도 통일전망대까지 우리 땅을 걸으며 적어내려간 《바람의 딸, 우리 땅에 서다》, 중국어 공부를 위해 꼬박 한 해 동안 머물렀던 중국에서 건져올린 쫀득쫀득한 이야기 꾸러미 《한비야의 중국견문록》 등을 썼다. 현재 국제 NGO 월드비전에서 긴급구호 활동을 하고 있다.


<견딜 수 없는 뜨거움으로 - 들어가는 말>

우리는 학교나 사회에서 세상을 지배하는 건 무한 경쟁의 법칙, 정글의 법칙이라고 배운다. 이런 세상에서의 생존법은 딱 두 가지. 이기거나 지거나, 먹거나 먹히거나다. 그러나 구호의 세상은 경쟁의 장(場)이 아니었다. 우리 서로는 경쟁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해야 할 대상, 가진 것을 나누는 대상이었다. 세상에는 절대 강자도 절대 약자도 없다. 같은 사람이 어떤 때는 강자였다가, 다른 때에는 한없는 약자가 된다. 이렇게 얽히고설켜 있으니 서로 도와야 마땅하다는 것이 구호 세상의 법칙이었다. 멋있었다. 그리고 나도 그런 세상에 발을 들여놓고 싶어졌다.

난 적어도 세상 많은 사람들에게 새장 밖은 불확실하여 위험하고 비현실적이며 백전백패의 무모함뿐이라는 말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새장 밖의 삶을 살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새장 밖의 충만한 행복에 대해 말해주고 싶다. 새장 안에서는 도저히 느낄 수 없는, 이 견딜 수 없는 뜨거움을 고스란히 전해주고 싶다. 제발 단 한 번만이라도 자신의 가슴을 뛰게 하는 일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오늘도 나는 묻고 또 묻는다.
무엇이 나를 움직이는가? 가벼운 바람에도 성난 불꽃처럼 타오르는 내 열정의 정체는 무엇인가? 소진하고 소진했을지라도 마지막 남은 에너지를 기꺼이 쏟고 싶은 그 일은 무엇인가?
지금으로서는 그것이 긴급구호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그래서 기쁘다.

<한비야, 신고합니다! - 아프가니스탄>

태어날 때부터 전문가인 사람이 어디 있는가. 누구든지 처음은 있는 법. 독수리도 기는 법부터 배우지 않는가. 처음이니까 모르는 것도 많고 실수도 많겠지. 저런 초자가 어떻게 이런 현장에 왔나 하는 사람도 있을 거다. 그러나 이 일을 시작한 지 겨우 6개월 된 나와 20년차 베테랑을 비교하지 말자. 오늘의 나와 내일의 나만을 비교하자. 나아감이란 내가 남보다 앞서 가는 것이 아니고, 현재의 내가 과거의 나보다 앞서 나가는 데 있는 거니까. 모르는 건 물어보면 되고 실수하면 다시는 같은 실수를 하지 않도록 하면 되는 거야.

이곳은 파르시라는 페르시아 말을 쓰는데, 비야는 이곳 말로 ‘여보세요’, ‘빨리 해요’, ‘이리 오세요’ 등 수십 가지의 뜻을 가진, 일상에서 가장 많이 쓰는 단어다. 그래서 내 이름을 말해줄 때마다 얼마나 재밌어하는지 모른다. 어떤 사람은 얼굴이 시뻘게지도록 웃다가 사래까지 들렸다. 하기야 사람 이름이 ‘여보세요, 빨리 해요’라니 웃기지 않은가. 어떻게 이렇게 이상한 이름을 잊을 수 있을까.

우리는 긴급구호 요원이다. 우리에게 사람의 목숨은 두 가지 상태뿐이다. 죽거나 살거나. 죽어간다거나 가망성이 희박하다라는 말은 긴급구호 용어가 아니다. 저 아이들의 목숨이 딱 끊어지기 바로 그 순간까지, 가망성이 0%가 되는 그 순간까지는 어떻게든 살려내려고 노력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의사도 아닌 우리가 아이를 살렸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사이드에게 해준 건 복잡한 수술도, 값비싼 중장비 치료도 아니다. 그저 두 시간에 한 번씩 시간 맞추어 영양죽을 먹였을 뿐. 밀가루와 콩가루에 소금, 설탕을 섞은 그 영양죽 이 주일 치 값은 단돈 만 원이다. 단돈 만 원에 사람이 죽고 사는 곳이 긴급구호 현장이라는 말은 수없이 들었지만, 이렇게 직접 그 일을 하면서도 믿기 어렵다. 바로 눈앞에서 웃고 있는 사이드를 보면서도 말이다.

<아프리카는 더 이상 ‘동물의 왕국’이 아니다 - 말라위·잠비아>

작년에 한정된 구호 자금 때문에 한 마을은 씨를 배분하고 그 옆 마을은 주지 못했단다. 안타깝게 비가 오지 않아서 파종한 씨앗은 싹을 틔우지 못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씨를 나누어준 마을 사람들은 씨를 심어놓았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 수확기까지 한 명도 굶어 죽지 않았는데, 옆 마을은 아사자가 속출했다고 한다. 똑같이 비가 오지 않는 조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씨앗을 뿌렸다는 그 사실 하나가 사람들을 살려놓은 것이다. 이곳에서의 씨앗이란 존재만으로도 사람을 살게 하는 힘이 있었다.

내 생각에 에이즈 확산의 진짜 주범은 가난과 무지다. 가난하기 때문에 학교에 다닐 수 없고 에이즈 및 성교육을 받을 기회가 없어,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고 있는 게 아닐까? 이런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해 에이즈 확산 방지의 가장 기본인 콘돔 사용의 중요성을 모르는 것이 아닐까? 알고는 자기 목숨이 달려 있는 일을 그렇게 소홀히 하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개인의 가난과 더불어 국가의 가난도 문제다. 대부분의 아프리카 국가는 국민총생산액을 몽땅 외채의 이자를 갚는 데 쓰느라 1인당 1달러도 보건비로 책정할 수 없는 실정이다. 현재 아프리카의 어느 나라도 혼자 힘으로 에이즈의 재앙을 막을 수 없다. 선진국이 하루 빨리 아프리카 최빈국의 부채를 탕감해주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당신에게 내 평화를 두고 갑니다 - 이라크>

내가 만난 사람 가운데 그 누구도 미군이 이라크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주둔한다고 믿는 사람은 없었다. 미국은 오로지 이라크의 석유와 이스라엘 보호에만 관심이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속내를 삼척동자도 알고 있는데 부시 대통령이 입만 열면 ‘이라크 국민을 위해’라고 말하는 것이 너무나 가증스럽다며 이렇게 반문한다.
“대량 살상 무기가 있다면 후세인이 이번 전쟁 때 그걸 왜 안 썼겠어요?”
그러나 막상 미군 병영에서 아직 솜털도 가시지 않은 어린 군인들을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저 어린아이들이 이라크 사람들이 증오하는 대상의 실체란 말인가. 이 친구들은 자기들이 이라크 국민과 세계 평화를 위해 여기에 온 거라고 철썩같이 믿고 있을 텐데, 막상 자기들을 벌레처럼 보거나 해치려는 현지인들을 만나면 얼마나 놀라고 당황할 것인가. 들리는 소문으로는 그 괴리를 이기지 못해 심각한 정신 장애로 결국 본국에 송환된 병사가 많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저들도 정의로운 전쟁이라는 미명 하에 매일매일 목숨을 위협받고 있는 소중한 생명들이다. 저 미군들이 정신도 놓지 말고 죽지도 말고 하루빨리 부모 형제의 품으로, 학교나 직장의 일상으로 무사히 돌아갔으면 좋겠다. 죽어도 좋을 목숨이란 이 세상에 없으니까.

<나에게는 딸이 셋 있습니다>

외로움은 혼자 사는 사람들의 인생 패키지 안에 있는 품목 같은 게 아닐까. 장미에 가시가 있는 것처럼 독신으로서의 자유로움과 독신이라서 좀더 외로운 것은 한 묶음이다. 자유로움만 택할 순 없다. 단독 포장이 아니라 패키지니까.
그러니 내 몫의 외로움이 없을 리 없다. 그 존재를 인정하고 같이 사는 수밖에. 여름이면 무더위가, 겨울이면 매서운 추위가 오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처럼 문득 외로워지면, 아 또 때가 된 모양이구나, 생각하면서 말이다. 가끔씩 찾아오는 외로움에게 아직은 ‘어서 와’ 인사를 건네며 반가워할 만큼은 아니니까, 외로움이 올 때마다 그냥 살짝 지나갔으면 좋겠다.

사실 나에게는 딸이 셋 있다. 큰딸은 에티오피아, 작은딸은 방글라데시, 셋째는 몽골에서 살고 있다. 아주 똘똘하고 귀엽다. 올해 안으로 네팔 아들이 한 명 더 생길 예정이다. 모두 월드비전이 맺어준 아이들이다.
매달 내 통장에는 월드비전 이름으로 돈이 빠져나간다. 인출란의 통신비, 식사비 등 여러 항목 가운데 ‘월드비전’이라는 단어가 보이면 기분이 좋다. 뭔가 대단히 훌륭한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아서다. 이 6만원이 내가 매달 지출하는 돈 중에서 가장 멋있게 쓰는 돈, 가장 힘센 돈임에 틀림없다. 그 돈이 산을 넘고 물을 건너가는 동안 커지고 또 커져 내 세 딸과 그 가족들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디딤돌이 되는 거니까.

우리 나라 사람들은 유난히 ‘우리’를 좋아한다. 나도 ‘우리’라는 단어를 무척 좋아하며 즐겨 사용한다. 이 말은 어떤 명사와 붙여놓아도 단박에 정이 가는 말로 변신시킨다. 우리 엄마, 우리 집, 우리 학교, 우리 마을, 우리 나라. 나를 포함한 한국 사람들은 나라에까지 우리라는 말을 붙여 아주 가까운 공동 운명체로 느끼곤 한다.
이제 그 범위를 조금만 확장시켜보면 안 될까? 우리 나라를 넘어 우리 아시아, 우리 세계라고. 그렇게 생각하면 우리 아시아와 우리 세계에서 살고 있는 아이들이 다 우리 아이들이 될 것이다. 그 ‘우리’ 아이들 가운데 굶어 죽는 아이가 있다면, 별것 아닌 병에 걸려 아픈 아이가 있다면, 가난 때문에 노예처럼 하루 종일 일해야 하는 아이가 있다면, 그 아이들을 외면할 수 있을까? 그들도 내 집에 살고 있는 내 아이와 다름없는 우리 딸, 우리 아들인데…….

<별을 꿈꾸는 아이들 - 시에라리온·라이베리아>

한 웅덩이에서 만난 20여 명의 아이들은 모두 일한 지 3년이 넘었다는데 그중 아무도 다이아몬드를 찾지 못했단다. 만약 다이아몬드를 발견했다 해도 그건 아이들이 일하는 동안 그늘에 앉아 노닥거리며 이들을 감독하는 관리자와 광산 소유주에게 돌아가고, 아이는 찾은 다이아몬드 값의 몇 만분의 1도 받지 못한다고 했다.
인생역전을 위해 옆 나라 기니에서 온 청년들도 있었다. 참 이상하다. 삼 주일도 아니고 세 달도 아니고, 무려 삼 년이나 그 많은 사람이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면 ‘이건 헛일이구나’ 깨달을 만도 한데, 오늘도 끈질기게 빈 채를 흔들고 있다는 게 말이다.

“코노에는 논밭도 많고 날씨도 좋은데 왜 농사를 짓지 않니? 씨 뿌리고 5개월만 있으면 밥을 실컷 먹을 수 있잖아.”
“5개월이요? 그렇게 오랫동안 어떻게 기다려요?”
“뭐라구? 넌 3년 동안 다이아몬드 한 개도 못 찾았다며?”
“오늘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아, 바로 이게 문제구나. 이 아이들을 여기서 떠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지난한 과정 없이, 준비나 노력 없이 하루아침에 무엇인가가 하늘에서 뚝 떨어질지 모른다는 헛된 꿈이 아이들의 발목을 붙잡고 있는 것이다.

<평화로워 더 안타까운 산들의 고향 - 네팔>

같이 보냈던 시간은 단 15년이지만 우리 아버지는 늘 내 마음속에 살아 계시다. 아버지와 딱 15분만 만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만나면 우선 세상 사람들에게 이분이 바로 우리 아버지라고 뻐기면서 자랑하고 싶다. 그리고는 눈을 마주 보고 내가 아버지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얼마나 그리워하는지 말해주고 싶다. 나를 이렇게 천방지축으로 키워주셔서, 어린 나를 늘 북돋아주셔서 고맙다는 얘기를 꼭 하고 싶다. 그리고 약속하고 싶다. 나도 아버지의 멋진 딸이 되어 아버지가 하늘에서 마구 뻐기게 해드리겠다고. 적어도 부끄럽게는 해드리지 않겠다고.

지난 봄에 베란다의 화분을 정리할 때의 일이다. 꽃봉오리가 맺혀 있지 않은 화분을 다 버리려니까 옆에 있던 큰언니가 미처 올라오지 못한 게 있을지도 모르니 며칠만 더 두고 보자고 했다. 그런데 글쎄 이 주일 만에 베란다 가득 꽃들이 활짝 피어나는 게 아닌가. 저걸 버렸으면 어쩔 뻔했나. 그러나 그때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이파리만 남아 있는 화분에 그렇게 예쁜 꽃이 숨어 있을지…….
그러나 눈 밝은 사람은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어느 싹이 앞으로 크고 소담스러운 꽃을 피울지, 또 어느 한철 자기 혼자 피었다가 지는지, 피고 나서 많은 씨를 맺어 널리 퍼뜨릴 수 있는지.
그때 초라한 화분 안에서 활짝 핀 꽃을 보는 것이 바로 지도자가 아닐까 생각했다.

<세계의 화약고 - 팔레스타인·이스라엘>

얼마 전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배꼽을 잡고 웃었다. <세계가 100명의 마을이라면>을 패러디한 ‘세계가 한 학급이라면’이라는 유머인데, 작금의 국제 역학관계를 아주 잘 나타내고 있었다. 그대로 정규 교과서에 실으면 일부러 공부하지 않아도 머리에 쏙쏙 들어올 텐데. 그 ‘학급’의 주요 ‘학생’을 간추려보면 이렇다.

「이라키>> 중간 동네에서 진짜 잘나가던 애였는데 미국이가 아즈라엘 편을 들어주면서 틀어졌음. 미국이가 이웃집 이란이를 혼내줄 때는 친했으나 중간 동네 대장 자리를 노리자 미국이한테 팽당했음. 요즘은 미국이가 심심할 때 두들겨 패는 샌드백 신세다.

아즈라엘>> 교실 중간 자리가 옛날에 자기 자리였다고 원래 앉아 있던 빨레스타인을 마구 쥐어패고 그 자리를 꿰차고 앉았음. 반장하고 막역한 사이라서 눈에 뵈는 것이 없음. 머리가 좋고 독특한 정신세계를 가지고 있음. 중간파 열 몇 명과 일대 다수로 싸워 이겨 학교의 전설로 남았다.

북한이>> 키는 작아도 깡과 자존심은 엄청나게 강해서 반장한테도 마구 대듬. 남한하고는 일란성 쌍둥이. 요즘에는 ‘핵’이라는 무시무시한 방귀탄을 들고 반 전체를 협박. 때문에 반장인 미국이랑 유엔 담임선생님이 가정방문을 하려 했으나 배 째라며 버티고 있다.

남한이>> 반장하고는 친한 편이지만 동생(북한이) 때문에 눈치 보고 있음. 예전에 동생 북한이하고 코피 터지게 싸웠는데 (알고 보니 반장 미국이와 당시 부반장 소련이를 대신해서 한판 붙었다고 함) 요즘도 ‘배 째라’ 동생 때문에 바람 잘 날 없다.

미국이>> 학급 반장. 공부 진짜 잘함. 싸움은 더 잘함. 집안도 갑부라서 반 아이들이 설설 김. 하지만 반의 사소한 일에까지 참견해서 욕을 많이 먹고 있음. 그래도 어쩔 수 없음. 건들면 죽음이니까. 최근에 한 친구(이라키)가 제대로 걸려서 개 패듯이 두들겨 패고 있다.

유엔>> 담임선생님. 미국이네서 촌지 받은 거 때문에 싫어도 미국이 말을 잘 들어줌. 최근 미국이가 말 안 듣고 방자하게 굴어도 가만히 놔둬서 권위가 땅에 떨어지고 있음.」

특히 아즈라엘과 빨레스타인 학생 대목이 압권이다. 이 유머를 보니 더욱 궁금해진다. 전학 온 아즈라엘이 어떻게 빨레스타인을 내쫓고 교실 중간 자리를 차지했는지, 반장 미국이는 왜 아즈라엘 편만 드는지, 왜 다른 친구들은 빨레스타인 편을 들어주지 않는지, 담임선생님은 도대체 뭘 하고 있는지.

<쓰나미는 과연 천재(天災)였을까 - 남아시아 해일 대참사>

아, 그렇구나. 사랑하는 가족을, 유일한 생계 수단을,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이 모든 것을 빼앗아간 것 같은 쓰나미 이후에도 삶은 이렇게 계속되는 거구나. 등뒤의 것을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만 나아가는 게 바로 생명의 본능이구나. 새 생명이 태어나고, 아이들이 공부하고, 연인들은 결혼하고, 일터에 나가기 위해 준비하는 일상의 삶이 끈질기게 이어지는구나. 이곳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분명해진다. 바로 저 삶의 끈을 놓지 않게 도와주는 것이다.

내가 오지 여행을 하고 지금은 재난 현장에서 일해서인지, 가끔 사람들은 이렇게 묻는다.
“세상에 무서운 게 없겠어요?”
왜 나라고 무서운 것이 없을까. 내가 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워하는 것은 다름아닌 헛된 이름, 허명(虛名)이 나는 일이다. 평가절하도 물론 싫지만 지금의 나 이상으로 여겨지는 것이 제일 무섭다. 나의 실체와 남에 의해 만들어진 허상의 차이를 메우기 위해 부질없는 노력과 시간을 들여야 하는 것이 제일 두렵다.

<감자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 북한>

평양에 가면서 베이징을 거쳐야 하는 건 너무 억울하다. 서울에서 평양까지는 겨우 200㎞, 3시간 남짓이면 충분히 갈 수 있는 곳인데 말이다. 다음에 갈 때는 인천공항에서 직항을 타든지, 경의선 기차를 타고 가든지, 배를 타고 남포항을 거쳐 대동강까지 갔으면 좋겠다. 베이징의 잔뜩 찌푸렸던 날씨가 압록강을 넘으니 해가 번쩍 났다. 기내 방송을 하는 여자는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김일성 장군님이 항일 투쟁하던 압록강을 넘고 있습니다.”
아, 아래 보이는 곳이 북한 땅이구나. 내 마음도 그 목소리만큼 들떠 있었다. 내게는 93번째로 방문하는 나라. 드디어 중국과 남한 사이에 끊어졌던 구간이 이어지며 내 세계 일주가 마무리되는 순간이다.

나는 여태껏 북한의 식량난 해결은 불가능한 일인 줄로만 알았다. 그래서 남쪽에서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듯, 쌀이건 밀가루건 비료건 한도 끝도 없이 올려보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북한 사람들은 꼼짝달싹하지 않는데 우리만 애가 달아 달라는 대로 뭐든지 퍼준다고도 생각했다. 심지어는 북한 사람들은 우리의 이런 노력을 고맙게 생각하지도 않을 거라고 의심도 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정말 아니었다. 일주일의 짧은 여정이었지만 나는 내내 느낄 수 있었다. 식량난 해결을 위해 이들이 죽을힘을 다해 갖은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을. 왜 그렇지 않겠는가. 다른 것도 아니고 먹고 사는 문제인데, 십 년 넘게 남한이나 국제 사회에게 먹을 것이 모자라니 도와달라고 할 때 얼마나 자존심이 상했겠는가. 어떻게든 자신들의 식량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고 싶지 않을 리가 없다. 같이 일하는 젊은, 혹은 노련한 과학자들은 식량 자급자족을 달성하는 일을 위해서라면 어떤 희생도 불사하겠다는 사명감으로 불타올랐고, 현장의 농부들 역시 이 일을 어떻게든 자신들의 손으로 이루어내겠다는 결의로 가득 차 있었다.

<가슴 밑바닥에서 울려오는 진군의 북소리 - 나가는 말>

나는 인생이란 산맥을 따라 걷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산맥에는 무수한 산이 있고 각 산마다 정상이 있다. 그런 산 가운데는 넘어가려면 수십 년 걸리는 거대한 산도 있고, 1년이면 오를 수 있는 아담한 산도 있다. 그러나 아무리 작은 산이라도 정상에 서는 것은 신나는 일이다. 한 발 한 발 걸어서 열심히 올라온 끝에 밟은 정상일 테니 말이다. 하지만 어떤 산의 정상에 올랐다고 그게 끝은 아니다. 산은 또 다른 산으로 이어지는 것. 그렇게 모인 정상들과 그 사이를 잇는 능선들이 바로 인생길인 것이다. 삶을 갈무리할 나이쯤 되었을 때, 그곳에서 여태껏 넘어온 크고 작은 산들을 돌아보는 기분은 어떨까?

오늘도 나는 행군한다. 지금은 몸에 익지 않은 무거운 배낭을 지고 오르막길을 오르느라 좀 괴롭다. 무엇보다 앞서가는 사람 없이 길 없는 길을 가야 하는 게 제일 힘들다. 이 길 끝은 과연 정상인가. 내가 가진 식량과 장비는 충분한가. 앞으로 닥칠 크레바스와 암벽은 어떻게 넘어가나 하는 생각으로 때로는 버겁고 무섭기도 하다. 그러나 내 능력에 대한 의심이 들 때마다, 기가 꺾여 자신이 없을 때마다, 몸이 지쳐서 한 걸음 한 걸음이 천근만근일 때마다, 그래서 무릎을 꿇고 싶을 때마다 가슴 저 밑바닥에서 울려오는 진군의 북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나에게 내려진 절체절명의 명령 소리가 들린다.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


「나도 집에 거울이 있는 사람이니 나의 객관적인 외모가 B⁺라는 거 잘 알고 있다. 그러니 내가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얼굴로 살고 싶다. 부모님이 물려준 이목구비 예쁜 얼굴이 아니라 밝고 환해서, 당당해서, 쉽게 포기하지 않아서, 매사에 최선의 최선의 최선을 다해서 사랑스럽고 예뻐 보이는 얼굴로 살고 싶다.」

사랑스럽고 예쁜 여자, 한비야. 참 좋은 사람의 고마운 글이다. 오랜만에 만난 그녀의 책에서 가슴 뭉클함과 따뜻함을 골고루 느낄 수 있었다.

「기쁘고 즐거운 일이 더 많았지만 지치고 힘든 날도 많았다. 과도한 업무와 스트레스로 몸과 마음이 곤죽이 되면 저절로 이런 생각이 떠오르곤 했다.
‘정말 힘들어 죽겠군. 이렇게 무리하게 일하는 데가 세상에 어디 있어? 무쇠로 만든 사람이라도 녹고 말겠다.’
그러나 이렇게 입이 댓발이나 나와 죽겠다고 아우성치면 내 안의 내가 곧바로 튀어나와 이렇게 묻는다.
‘누가 시켰어? 그렇게 힘들면 그만두면 되잖아?’
그러면 나는 불에 데기라도 한듯 화들짝 놀라며 즉시 대답한다.
‘누가 그만두겠대? 말이 그렇다는 거지.’
마음속의 불평불만과 몸의 고단함이 이 대답과 함께 한순간에 쏙 들어가버린다. 그러면 내 안의 내가 다시 묻는다.
‘왜 계속 하고 싶은 건데?’
답은 아주 간단하다. 이 일이 내 가슴을 뛰게 하기 때문이다. 내 피를 끓게 하기 때문이다. 참말이지 5년 동안 해왔지만 지금도 ‘긴급구호’라는 말만 들어도 몸이 뜨거워지고 마음은 어느덧 현장에 가 있다. 이 견딜 수 없는 뜨거움, 이 마음이 식기 전에는 긴급구호를 그만 둘 수가 없다. 마음이 온통 여기에 있는데 무슨 다른 일을 할 수 있을까.」

이 뜨거운 여자를 만났던 시간이 행복했다. 떳떳하게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을 논하는 당당함이 부러울 뿐이다. 아름다운 사람은 곁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뿌듯하다. 함께 지도 밖으로 튀어 나가고 싶다. 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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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한자식
2006.01.06 02:34:26 *.229.28.221
내가 꿈을 이루면, 또 다른 사람의 꿈이 된다는 말...
한비야씨를 보면서 느낍니다.
꿈을 이룬 사람이 아름다운건, 그들이 다시 하나의 꿈이 되기 때문이지요. 구본형님도 그렇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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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영
2006.01.06 10:53:46 *.210.111.168
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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