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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승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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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월 8일 19시 01분 등록
학문의 즐거움(Joy of learning, 1984)
: 히로나카 헤이스케 저 / 김영사 / 1992년




■ 저자와 나의 대화: 소고
좋은 책은 읽을 때마다 다른 맛과 새로운 통찰을 보여준다. ‘학문의 즐거움’이 바로 그런 책이다. ‘학문의 즐거움’을 이제껏 4번 읽었다. 읽을 때마다 나는 새로운 배움과 느낌을 가졌다. 그 이야기를 하고 싶다.

내가 처음 이 책을 읽은 것은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누나는 입학 선물로 내게 이 책을 주었다. 나는 평소에 책을 거의 읽지 않았다. 누나도 ‘학문의 즐거움’이라는 따분한 이름을 가진 책을 내가 끝까지 읽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은 예외였다. ‘학문의 즐거움’은 당시 내가 끝까지 읽은 몇 권 안 되는 책 중 하나가 되었다.

처음 이 책을 읽고 나서 든 생각은 이런 것이었다. ‘공부란 것을 한 번 해보고 싶다. 나도 한 번 해보고 싶다. 진짜 해볼까?’. 나의 고등학교 입학 성적은 형편없었다. 앞 보다 뒤에서 세는 것이 빨랐다. 훨씬 빨랐다. 내신등급으로 따지자면 나는 15등급으로 최하위에 속했다. ‘학문의 즐거움’ 때문만은 아니었겠지만, 어쨌든 나는 이 책을 읽은 후부터 공부를 시작했다. 1학년 때 거의 꼴찌였던 나는 2학년 말에는 반에서 2~3등을 다투게 되었다. 내신등급은 2등급으로 수직 상승했다. 선생님들은 내 성적에 경악했다. 졸업할 때도 내 성적은 좋았다. 뒤 보다 앞에서 세는 것이 훨씬 빨랐다. 고3 시절, 마지막 6개월을 방황한 나는 결국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지 못했다. 그러나 2년 간 열심히 공부했던 과정과 그 결과는 내게 훌륭한 성취 경험으로 남아 있다.

사실인지 믿을 수 없는 여담 하나. 한 후배의 말에 따르면 내가 졸업한 후에 나의 입학 등수와 2학년 시절 성적, 그리고 졸업 등수를 보여주는 자료가 3학년 복도에 붙어있었다고 한다. 들리는 말로는 그래프였다는데, 그 선의 기울기가 의미심장하여 여러 학생들에게 희망을 안겨줬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학문의 즐거움’을 두 번째 읽은 것은 2000년 봄을 앞둔 시기였다. 책의 끝장에 나는 재독(再讀)의 소감을 이렇게 적어 두었다.

“내가 방황하던 고3시절에 이 책을 한 번 더 읽었더라면... 아니, 처음 이 책을 읽은 후 다시 한 번만 더 읽었다면, 나는 아마도 원하던 대학에 들어갔을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그 어둡고 옹졸했던 방황의 터널에서 빠져나올 수는 있었을 것이다. 이 책을 다시 한 번 읽었더라면.”
- 2000년 4월 4일 새벽 3시 35분 승완.

두 번째 여담. 당시 이 책을 읽고 대학 3학년 2학기에 복합했다. 졸업까지 남은 3학기에서 나는 1개의 과목을 제외한 모든 과목에서 A+를 받았다. 학점은 두 학기 연속으로 4.5점 만점이었다. 꼭 필요한 시기에 장학금을 받을 수 있었고, 졸업은 수석이었다. 믿거나 말거나.


2002년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준비하면서 세 번째로 읽었다. 당시 나는 3개월 동안 취업을 못하고 있었다. 달랑 하나의 회사에 이력서를 냈는데, 면접에서 아주 확실하게 떨어졌다. 면접에서 떨어지고 이 책을 읽었다. 당시 왜 이 책을 읽었는지 모르겠지만, 어느 날 보니 내 손에 책이 들려 있었다. 하여튼 읽었다. 세 번째로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평범함이 위대함으로 가는 길일 수 있구나. 평범한 나도 위대한 뭔가를 하나쯤은 분명히 해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읽고 힘을 얻은 사람이 나 뿐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2005년 ‘아름다운 퇴장’으로 우리를 감동시켰던 안철수는 ‘CEO 안철수 영혼이 있는 승부’에서 이 책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내가 그리 뛰어난 재주를 가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남보다 먼저 어떤 일을 할 수 있었다면, 그것은 일본인 수학자 히로나카 헤이스케가 쓴 ‘학문의 즐거움’이란 책에서 배운 바가 크기 때문이다. ... 나는 이 책을 통해 평생을 간직할 좌우명을 얻었다.”

안철수가 ‘학문의 즐거움’에서 발견한 평생의 좌우명은 무엇일까? 바로 이것이다.

“어떤 문제에 부딪히면 나는 미리 남보다 시간을 두세 곱절 더 투자할 각오를 한다. 그것이야말로 평범한 두뇌를 지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이제 나의 세 번째 여담을 말해야겠다. 나는 책을 읽고 얼마 안 있어 첫 직장을 갖게 되었다. 이상한 일이지만 이력서를 내지 않고 취업에 성공했다. 사실은 사장의 눈에 띠여서 들어간, 말하자면 일종의 특채였다. 믿거나, 말거나.


2006년 1월 초, 내 마음은 심란했다. 새해에 대한 기대감은 적었고 자신감도 떨어진 상태였다. 뭔가 계기가 필요했다. 다시 한 번 ‘학문의 즐거움’을 펼쳤다. 그리고 몇 시간 만에 끝장을 넘겼다. 네 번째 독서에서 내가 얻고 느낀 것은 무엇일까? 이제까지 이 책을 읽으며 배우고 느꼈던 것들이 되살아났다. 여기에 더해 한 가지 강렬한 통찰이 번개처럼 머리로 침투해 익어갔다. 그 통찰이란 바로 ‘모두가 스승’이라는 것이다. 어찌 보면 평범한 이 생각이 지금 내게는 너무나 소중하다.

난 확신한다. 산다는 것은 배우는 것이다. 히로나카 헤이스케도 그렇게 말한다. “사는 것은 배우는 것이며, 배움에는 기쁨이 있다. 사는 것은 또한 무엇인가를 창조해 나가는 것이며, 창조에는 배우는 단계에서 맛볼 수 없는 큰 기쁨이 있다.”, “살아 있다는 것은 부단히 무엇인가를 배우고 노력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바로 그 배우고 노력한 것이 인생을 만들어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절실히 하게 된다.” 그저 평범한 말 같지만 가슴을 적신다. 그는 수학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필드상을 수상했고 일본 정부로부터 명예로운 상도 받았다.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의 경지에 오른 인물이다. 그러나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는 자리가 최고의 자리라면 그는 미련 없이 그곳을 떠났을 것이다. 최고의 자리는 늘 배우는 자리이다.

‘히로나카 타이스케, 히로나카 마쓰에, 후지모토 시게루, 미나모토 이와오, 다나가와 미사오, 후지다 오사무, 고바리 아카히로, 자리스키(Zariski), 하버드 대학의 천재들, 오카 기요시, 그로센딕(Grothendieck), 이름을 알 수 없는 한 소녀’, 이 사람들은 ‘학문의 즐거움’에 등장하는 히로나카 헤이스케의 스승들이다.

히로나카 헤이스케는 정말이지 모든 사람에게서 배웠다. 아버지로부터 근면함과 강한 생활력을 배웠다. 어머니에게 ‘생각하는 기쁨과 생각은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는 점을 배웠다. 어린 시절 친구인 후지모토라는 친구에게서 깊이 생각하는 힘을 배웠다. 숙부인 미나모토 이와오로부터 ‘학문과 꿈의 멋있음과 아름다움’을 느꼈다. 중학교 시절 은사인 다나가와 미사오로부터는 ‘발상의 중요성’을 철저히 배울 수 있었다. 대학 친구인 후지다 오사무에게서 ‘수학에서는 아무리 작은 방심도 허용되지 않는다’는 점을 배웠다. 수학을 공부하면서 문학도 좋아했던 고바리 아카히로에게서 ‘풍부한 감수성’과 ‘배짱’의 중요함을 배웠다. 하버드 대학 유학 시절의 엄격하고 철저한 스승인 자리스키는 그가 수학자의 길을 흔들림 없이 갈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하버드 대학에서 만난 천재들을 통해 그는 더욱 겸손해졌고 소심(素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체득할 수 있었다. 일본의 수학자인 오카 기요시로부터는 ‘특이점 해소’ 문제를 푸는 실마리를 배울 수 있었다. 프랑스의 수학자인 그로센딕은 그에게 ‘수학자로서의 다양성’과 ‘수학에 대한 열정’을 가르쳐 주었다.

‘책 한 권이 사람을 바꿀 수 없다’, 옳다! ‘책 한 권이 사람을 바꿀 수 있다’, 이것 또한 옳다! 변화는 어려운 것이지만, 사람은 책 한 권, 이야기 한 개, 장면 하나로도 변할 수 있다. 돌아보면 누구나 이런 경험이 있다. ‘학문의 즐거움’의 저자인 히로나카 헤이스케도 그랬다. 그를 도와준 많은 사람들 중에서 한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히로나카 헤이스케는 이 사람이 자신을 ‘수학자로 만들어 줬다’고 말한다. 누구일까? 바로 ‘교토 대학 교내에서 만난 한 소녀’이다. 대학원 1학년 때 히로나카는 깊은 방황 속에 있었다. 대학원생이 되었으므로 논문을 쓰고 발표해야 했지만 그는 좀처럼 논문을 쓸 수 없었다. 그 이유는 수학사(數學史)에는 ‘세계의 대수학자들이 발표한 완벽한 완성작들(논문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히로나카는 자신이 이런 논문을 쓰지 못 할 바에는 차라리 쓰지 않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논문을 쓰고 자신의 이론을 창조해 가지 않으면 수학자로의 길이 막힌다’는 고민도 하고 있었다. 딜레마였다. ‘써야 하나, 쓰지 말아야 하나?’, 그의 고민은 계속 됐다. 심각한 그의 고민을 한 방에 날려준 사람이 바로 어느 날 교토 대학 교내에서 만난 한 소녀이다. 그 소녀는 그에게 무엇을 준 것일까? 신비한 마술이라도 부린 것일까? 대답은 이 책 안에 있다. 그 소녀와의 짧은 만남, 긴 인생에서 그 장면 하나가 그를 변화시켰다. 소녀는 그가 창조를 향한 여행을 떠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궁금하면 이 책을 읽어보자.


히로나카 헤이스케는 자신에 대해 ‘평범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내가 봐도 그렇다. 그는 가우스(Johann Carl Friedrich Gauss)나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같은 천재는 아니었다. 하버드 대학에서 만난 동료 학생들 중에도 천재라 불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그들에 비하면 히로나카는 평범 그 자체였다. 하지만 ‘끈기’라는 측면에서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는 ‘끈기의 천재’라고 불릴만 하다. 그가 수학자의 길을 걷기로 결심한 것은 대학 3학년 때였다. 느리다고 볼 수 없지만 빠른 것도 아니었다(세계적인 수학자들 중에는 어릴 적부터 영재교육을 받으면서 수학자의 길을 준비한 사람들이 많다). 그는 하버드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당시 같은 해에 탄생한 박사들 중에서 그는 나이가 가장 많았다. 히로나카는 ‘특이점(特異點) 해소’에 대한 일반 이론을 정립하여 1970년 ‘수학계의 노벨상’이라는 불리는 필드상(Field medal)을 받았다. 당시 그의 나이 37살이었다. 필드상은 40세 미만인 수학자에게 상을 수여한다는 연령 제한이 있었으므로, 그는 역대 수상자 중 최고령자에 속했다.

히로나카가 ‘특이점 해소’ 문제에 대해 처음으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대학 3학년 때였다. 그리고 이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는 데에 10년이 걸렸다. 히로나카는 1963년 미국의 ‘수학연보(Annals of Mathematics)’에 ‘표수 0인 체상의 대수적 다양체 특이점의 해소’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다. 그의 끈기를 닮아서인지 논문의 분량이 엄청났다. 그의 논문은 전화번호부책 두 권 분량이었다. 당시까지 하나의 정리를 증명한 논문으로서는 수학사상 최장의 논문으로, 사람들은 이 논문을 ‘히로나카의 전화번호책’이라 불렀다. ‘특이점 해소’ 문제 해결에 대한 일반 이론은 그의 스승이자 이 문제에 대해 오랜 시간 연구해온 자리스키도 해내지 못한 것이었다. 자리스키는 히로나카에게 지속적으로 진심어린 조언과 지원을 해준 훌륭한 스승이었다. 그의 논문이 발표되고 얼마 안 되어 자리스키는 공식적인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히로나카가 이겼다.”

‘가장 나쁜 제자는 스승을 영원히 빛나게 하는 자’라고 말한 사람은 니체다. 그의 말이 맞다면, 히로나카는 훌륭한 제자이다. 나도 이런 제자가 되고 싶다. 순수한 마음인 동시에 과욕인 것을 안다. 다만, 히로나카 처럼 끈기 있게 노력할 것을 다짐한다.


'학문의 즐거움‘이라는 책은 읽을 때마다 다른 배움과 느낌을 전해주었지만, 나는 이 책을 읽고 나면 늘 힘이 났다. 그리고 이 책은 내게 행운을 안겨주었다. 마음을 밝게 하고 힘을 주는 책이라면 아주 좋은 책 아닌가. ‘학문의 즐거움’에 대해서 더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이쯤에서 멈추려 한다. 멈추기 아쉬워, 히로나카 헤이스케가 어떤 사람인지 잘 보여주는 대목을 남긴다. 이 부분은 학문이나 배움에 대한 것 이상이다. 삶의 방식이고 삶에 대한 철학이다.

“나는 눈앞에 나타난 문제를 처음에는 막연히 쳐다만 본다. 주변의 학자들이 그 문제에 맞붙는 모습도 그저 쳐다보고 있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동안에 무엇이 중요한 문제인지, 혹은 어떤 문제에 몰두하면 좋은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문제의 윤곽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우선 그렇게 되는 데까지 상당한 시간을 소모한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이러한 상태에 머물러 있으면 창조를 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마음속에 있는 욕망을 발동시켜서 비약하려하고 행운을 잡으려 한다. 운(運)이라는 불연속적인 비약을 하지 않으면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가 없다.

그러고 나서 문제에 몰두하기 시작하는데, 그 때 자기 자신에게 상기시키는 것은 항상 소심을 잊지 말라는 것이다. 수학자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발상이며 아이디어다. 그 아이디어는 문제의 입장에서 서서 자기 자신과 문제가 혼연일체, 즉 소심(素心)의 상태가 되어야 비로소 탄생한다고 생각한다.

느긋하게 기다리고, 기회를 잡을 행운이 오면, 나머지는 끈기이다. 나는 남보다 두 배의 시간을 들이는 것을 신조로 하고 있다. 그리고 끝까지 해내는 끈기를 의식적으로 키워 왔다. 끝까지 해내지 않으면 그 과정이 아무리 우수하더라도 결과가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두뇌가 우수하더라도 업적을 쌓지 않으면 수학자라고 말할 자격이 없다.

노력이란 말은 나에게는 남보다 더 많은 시간을 들인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 나의 목소리: 저자되기
‘학문의 즐거움’은 스테디셀러다. 1992년 12월에 처음 나왔고 요즘도 제법 많이 팔리고 있다. 이 책은 히로나카 헤이스케라는 수학자의 자전적 수필집이다. 그는 자신이 걸어온 길과 인생관을 담담한 어조로 풀어낸다. 그의 이야기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보통 사람의 특별한 이야기’이다. 사람들이 이 책을 좋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특별한 사람의 평범한 이야기’는 재미가 없다. 가치도 없다. ‘특별한 사람의 특별한 이야기’는 재밌기는 하겠지만 읽는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기는 어렵다. 너무 다르니까. ‘보통 사람의 특별한 이야기’는 보편성과 차별성을 함께 갖고 있다. ‘나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고 그런 희망의 구체적인 증거가 되어준다. 안철수는 ‘학문의 즐거움’에 대해 “젊음을 낭비하는 자에게는 충격으로, 알차게 살고 있는 자에게는 자신의 도전의지를 다시 갈게 하는 연마제로 다가온다. 오직 열정만으로 도전의지를 불태워 성공을 거머쥔 저자의 인생 이야기는 지금 이 순간도 마냥 흘러가는 내 청춘의 시간을 아까워하게 한다”고 평했다.

보통 사람의 이야기가 힘이 있으려면, 성과가 필요하다. 히로나카 헤이스케가 수학계의 노벨상이라는 ‘필드상’을 수상하지 못했다면 어떤 출판사도 그의 이야기를 책으로 만들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가 수학이라는 학문을 사랑하고 오랜 시간 끈기 있게 열심히 노력했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한 것이다. 나도 언젠가 이런 책을 한 권 쓰고 싶다. 나의 이야기를 담은 그 책이 40번째 생일날 출간되는 것을 상상하는 것은 큰 즐거움이고 아름다운 희망사항이다.

나는 마흔 살에 자신의 이야기를 정리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것으로 다른 사람을 감동시키고 도울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늘을 치열하게 보내야 하고 미래를 열심히 준비해야 한다. 실패를 경험하고 그것을 극복해야 한다. 빛나는 성과를 쌓아 올리고 그것을 스스로 무너뜨림으로써 다시 시작할 수 있어야 한다.


■ 저자의 목소리: 인용
- ‘[]’ 안의 숫자는 page를 지칭한다.
- ‘인용’에서 별다른 표기가 없을 경우, 저자의 말이다.

1장 배움의 길

[22] “창조하는 인생이야말로 최고의 인생이다.”

[22] 나는 창조의 기쁨 중의 하나는 자기 속에 잠자고 있던,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재능이나 자질을 찾아내는 기쁨, 즉 새로운 나를 발견하고 더 나아가서는 나 자신을 보다 깊이 이해하는 기쁨이라고 말하고 싶다.

[23] 천재가 아닌 나 같은 보통 사람이 무언가를 창조해내기까지는 그 이전에 ‘배운다.’는 단계를 거치지 않으면 안 된다. 창조하려면 먼저 배워야 한다.

[56] 나는 수학을 연구하는 데 있어 ‘끈기’를 신조로 삼고 있다. 문제를 해결하기까지에는 남보다 더 시간이 걸리지만 끝까지 관철하는 끈기는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이 한 시간에 해치우는 것을 두 시간이 걸리거나, 또 다른 사람이 1년에 하는 일을 2년이 걸리더라도 결국 하고야 만다.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가 하는 것보다는 끝까지 해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게 나의 신조이다.

이러한 신조가 몸에 배어서인지 나는 한 가지 문제를 택하면 처음부터 두세 배의 시간을 들일 각오로 시작한다. ...
그것이 보통 두뇌를 가진 인간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최선의 방법이라고 믿고 있다.

[69-70] 살아 있다는 것은 부단히 무엇인가를 배우고 노력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바로 그 배우고 노력한 것이 인생을 만들어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절실히 하게 된다.


2장 창조의 여행

[106] 소심심고(素心深考). “소박한 마음으로 돌아가서 다시 깊이 생각하라.”

[135]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생각하는 것, 즉 상대방과 일체가 되어 생각하는 겸허나 소심(素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상대방과 일체가 되어서 생각하면 자기가 상상도 못했던 문제의 원인이, 자기 혹은 상대방 안에서 발견될 때가 있기 때문이다.

[136] 수학 문제를 푸는 데 있어서도 ‘문제’의 입장에 서서 생각하여, 궁극적으로 ‘문제’가 ‘자기’인지 ‘자기’가 ‘문제’인지 모를 정도로 서로 융합한 상태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해결의 실마리가 되는 발상이 떠오르거나 법칙을 찾게 되는 것이다.

[137] 우선 사실을 사실로 인정하는 일이 중요하다. 그것은 억측 또는 희망적 관측이나 선입관을 완전히 버리고 바로 사실과 일체가 되는 것이다.

가설이나 목표를 세워도 그것과 일체가 안 되면 전진하는 정신 에너지는 생기지 않는다. 분석이나 그에 필요한 추상도, 또 대국을 본다는 것도 문제와 일체가 되어 있지 않으면 결국은 분산되어 헛된 노력이 되기 싶다.

요컨대 창조의 방법론은 모두 ‘소심’이라는 것을 기반으로 하고 있지 않으면 별 쓸모가 없어지고 만다.


3장 도전하는 정신

[154] 창조의 과정에는 비약이라는 것이 필요하다. 창조하려고 하는 것이, 과거에는 없었던 새로운 것일수록 더한층 비약하는 일이 중요해진다. 그리고 비약하기 위해서는 속에 있는 욕망의 힘을 활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 비약의 원동력은 필요가 아니라 욕망이기 때문이다.

[162] “문제와 함께 잠자라(Sleep with problem).”
- 하버드 대학의 보트(Bott) 교수

[165] “물기 위해서는 이를 단단히 하라(You need strong teeth to bite in).”
- 자리스키(Zariski), 하버드 대학 수학과 교수

[167] “신중을 기하라.”
- 자리스키(Zariski), 하버드 대학 수학과 교수

[170] 논문 제목은 <표수 0인 체상의 대수적 다양체 특이점의 해소(Resolution of singularities of an algebraic variety over a field of charac-teristic zero)>이다. 원고량은 매사추세츠 주의 전화번호책 두 권에 달하는 긴 논문이었다. 사람들은 이 논문을 ‘히로나카의 전화번호책’이라고 불렀다. 하나의 정리를 증명한 논문으로서는 수학사에 있어 가장 긴 논문이라고 한다.

[170] “히로나카가 이겼다.”
- 자리스키
* 히로나카의 스승인 자리스키는 이 논문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특이점 해소라는 문제에 관심을 가진지 10년 만에 성공했다. 이런 제자가 훌륭한 제자다. 니체는 “가장 나쁜 제자는 스승을 영원히 빛나게 하는 자”라고 말했다.

[182] “나를 가리켜서 재주가 뛰어나다라든가 두뇌가 명석하다고 말해주시는 것은 대단히 기쁩니다만,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히로나카 헤이스케는 뛰어난 노력가일 뿐입니다.”

[183] 솔직히 나 자신이 볼 때 내가 뛰어난 재주를 가졌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나는 노력하는 데 있어서는 절대적으로 자신이 있다. 바꾸어 말해서 끝까지 해내는 끈기에 있어서는 결코 남에게 지지 않는다.

[183-184] 나는 눈앞에 나타난 문제를 처음에는 막연히 쳐다만 본다. 주변의 학자들이 그 문제에 맞붙는 모습도 그저 쳐다보고 있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동안에 무엇이 중요한 문제인지, 혹은 어떤 문제에 몰두하면 좋은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문제의 윤곽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우선 그렇게 되는 데까지 상당한 시간을 소모한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이러한 상태에 머물러 있으면 창조를 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마음속에 있는 욕망을 발동시켜서 비약하려하고 행운을 잡으려 한다. 운(運)이라는 불연속적인 비약을 하지 않으면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가 없다.

그러고 나서 문제에 몰두하기 시작하는데, 그 때 자기 자신에게 상기시키는 것은 항상 소심을 잊지 말라는 것이다. 수학자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발상이며 아이디어다. 그 아이디어는 문제의 입장에서 서서 자기 자신과 문제가 혼연일체, 즉 소심(素心)의 상태가 되어야 비로소 탄생한다고 생각한다.

느긋하게 기다리고, 기회를 잡을 행운이 오면, 나머지는 끈기이다. 나는 남보다 두 배의 시간을 들이는 것을 신조로 하고 있다. 그리고 끝까지 해내는 끈기를 의식적으로 키워 왔다. 끝까지 해내지 않으면 그 과정이 아무리 우수하더라도 결과가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두뇌가 우수하더라도 업적을 쌓지 않으면 수학자라고 말할 자격이 없다.

노력이란 말은 나에게는 남보다 더 많은 시간을 들인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4장 자기발견

[191-192] 창조도 사실은 자기의 알려지지 않은 부분을 발견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행동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 나는 무엇보다도 창조하는 과정에서 내 마음속에 잠자고 있던 것을 발굴하고 나라는 인간을 보다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따라서 창조하는 기쁨의 하나는 새로운 자기를 발견하는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204] 가르치기 위해서는 배워야 한다. 바꾸어 말하면 배우기 위한 방법의 하나는 남에게 가르치는 것이다.

IP *.147.17.49

프로필 이미지
박노진
2006.01.09 08:37:30 *.118.67.206
잘 읽었습니다.
저도 안철수 사장이 추천한 기사를 보고 사서 읽었거든요.
대단한 감동이었어요.
지금 우리집 가훈이 "素心深考" 예요.
소박한 마음으로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하라.
이 책에서 얻은 내용이죠.
많은 분들이 꼭 읽어야 할 내용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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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성
2006.01.09 15:12:32 *.30.254.28
승완님의 글을 읽는 것이 날이 갈수록 즐거움이 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마흔이란 나이가 많이 회자되는 군요..승완님의 글에서도, 내 안에서도...하하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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