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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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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월 12일 15시 48분 등록
너무 사랑하는 여자들 (로빈 노우드 지음, 이미영 옮김, 한마음사, 1996)
Woman Who Love Too Much.. by Robin Norwood

로빈 노우드.. 1945년생. 차프만 대학 심리학 카운슬링 전공. 알랭 한코크대, 안티오크대 전임강사. 75년 이래 캘리포니아의 병원과 시설에서 알콜환자 등의 카운슬러로 일하고 있다.

<서문 - 당신은 ‘너무 사랑하고’ 있지 않은가?>

과거에 분명 나도 ‘너무 사랑하는 여자’의 한 사람이었다.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그 고통이 너무나 커지고 이성과의 관계를 냉정하게 응시하게 될 때까지 나도 인생의 대부분을 너무 사랑하는 여자로서 살아왔다. 이 몇 년간 나는 이성 관계 패턴을 바꾸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해왔다.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으나 결과적으로 이 몇 년간이 나의 인생 중에서 가장 충실하고 가치 있는 세월이 되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1장> 사랑을 돌려주지 않는 그 남자

‘너무 사랑한다’는 것은 사랑하는 남성의 수나 연애의 횟수가 너무 많은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사랑의 깊이를 나타내는 것도 물론 아니다. 그것은 한 남성에게 강하게 집착하고, 집착을 사랑이라고 생각하고, 자기 인생이나 건강, 행복에 있어서도 마이너스가 된다고 알면서도 그 집착을 끊지 못하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그것은 또한 기쁨이 아니라 고뇌와 고통의 깊이에 의해 애정의 심도를 측정하려고 하는 것이기도 하다.

과거에 그녀들은 부모에게 애정과 배려, 공평한 평가를 원했다. 그러나 부모는 그녀들이 원하는 것을 주지 않았다. 그것들을 얻기 위하여 그녀들은 현명하고 도움이 되고 상냥하고 착한 ‘아이’가 되려고 했다. 그 허무한 노력을 어른이 되어서도 그녀들은 계속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녀들이 이끌리는 것은 공평한 형태로 파트너와 애정이나 이해를 공유할 수 없는, 부모와 비슷한 유형의 남성이기 때문이다.

만일 당신이 알코올 의존증의 환자가 있는 가정에서 자랐다면 당신의 과거와 유전적 체질의 두 가지 점에서 울병으로 고생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게다가 얄궂게도 알코올 의존증의 남성과의 자극적인 관계에 강하게 끌릴 가능성도 역시 많다. 그녀들은 정서가 불안정한 남성을 자극적이라고 생각한다. 신뢰할 수 없는 남성을 도전적이라고, 불안정한 남성을 로맨틱하다고 생각하기 쉽다. 화를 잘 내는 남성은 이해를, 불행한 남성은 위안과 공감을, 미숙한 남성은 격려를, 차가운 남성은 배려를 진심으로 필요로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2장> ‘나쁜’ 관계에서의 ‘좋은’ 섹스

너무 사랑하는 여자는 ‘느낌이 좋은’ 남성과 함께 있을 때 종종 그들을 따분하다고 생각한다. 아무런 자극도 느껴지지 않는 것에 그녀들은 초조해하고 답답한 감각에 빠지고 이윽고 무료감에 빠지는 것이다. 너무 사랑하는 여자는 불공평한 성격이나 태도를 취하는 남성에게 익숙해 있기 때문에 그들과 있는 편이 공평한 남자와 있을 때보다 편안해질 수 있는 것이다. 사랑의 깊이는 사랑하는 사람에의 집착의 깊이에 의해 측정된다. 다른 일이나 물건, 사람에게 쪼개는 시간적, 정신적 여유는 없다.

관능에는 불안이 따르는 법이다. 관능의 사랑을 키우는 고통과 불안이 동시에 그 사랑을 멸하게 한다. 한편 안정되고 성실한 관계에는 일종의 무료감이 따른다. 그리고 성실한 관계를 기르는 안전과 안심감이 그 관계를 때로는 고리타분한, 활기가 없는 것으로 하는 경우도 있다. 그녀들은 자기의 내부나 두 사람 사이에 있는 미지의 것을 두려워하고 성실한 관계에 의해서만 손에 넣을 수 있는 훌륭한 선물, 진정한 친밀성을 무시하고 피하고 있다고도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3장> ‘사랑’이란 이름의 자기희생

코알코홀릭이란 과거에 알코올 의존자와 밀접한 관계를 가졌기 때문에 타인과 불건전한 관계밖에 갖지 못하게 된 사람을 말한다. 알코올 의존자가 부모, 배우자, 어린이, 친구 어느 쪽이든 그들과의 관계는 보통 코알코홀릭에 현저한 어떤 감정이나 행동을 낳는다. 즉 자기를 비하한다, 필요시되는 것을 원한다, 타인을 관리하고 바꾸고 싶다는 강한 충동을 갖는다, 고통받는 것을 마다않는 것 등등이다. 너무 사랑하는 여자들의 특징 모두가 실은 알코올이나 다른 중독환자의 딸이나 아내에게서 보여진다.

부모와의 관계가 보호하고 보호받는 본래 있어야할 모습이었다면, 즉 부모로부터 적절한 애정과 관심과 평가를 받고 있었다면, 어린이는 어른이 되었을 때 부모와 마찬가지로 안심감과 온화함, 건전한 자존심을 보증하는 상대에게 편안함을 느끼는 것이다. 비난하거나 조종함으로써 자기를 부정적으로 느끼게 하는 상대에게는 혐오감을 품고 피하려고 한다.

그러나 부모가 비판적이거나 엄격하거나 지배적인 경우, 또는 자식에게 의존하고 있거나 그밖에 부적당한 태도로 대했다면, 나중에 아이는 부모를 미묘하게 연상시키는 태도나 행동을 나타내는 상대에게 ‘바람직한’ 감정을 품을 것이다. 어린 시절에 몸에 익힌 불건전한 관계의 패턴을 답습할 수 있는 상대에게 편안함을 느낄 것이다. 아마도 친절하고 상냥하고 보다 건전한 상대를 따분하고 답답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4장> ‘필요시되고 싶다’는 욕구

보상받을 것 같지도 않은 상황을 어떻게든 해보려고 헌신적인 노력을 거듭하는 그녀들. 이 헌신적인 사랑의 수수께끼를 푸는 실마리는 대개 그 사람의 성장과정에 있다. 많은 사람은 태어난 가정에서 맡고 있던 역할을 어른이 되고나서도 계속 맡는 것이다. 너무 사랑하는 여자의 경우, 어린 시절에 맡았던 역할은 종종 자기의 욕구를 억제하고 가정의 욕구에 맞추려고 하는 것이었다. 어릴 때부터 제구실을 하는 책임을 떠맡고 일찍부터 어른의 역할을 맡아야 하는 가정환경도 적지 않다.

부모가 아이에게 나이 이상의 강함을 요구하므로 아이는 아이의 권리를 지키기를 체념한다. 그 결과, 부모는 아이에게 필요한 애정과 보호를 주지 않는다는 상황이 거듭된다. 아직 어리고 책임을 질만한 나이에 달해 있지 않더라도 결국 그러한 아이는 부모를 보호하는 입장이 된다. 그런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은 타인을 보살피는 방법을 일찍부터 능숙하게 익힌다. 다만 자기는 보살피지 않는다. 보살핌을 받고 싶다는 마음을 참는 버릇이 붙어 버렸으므로 어른이 되고 나서도 결국 오랫동안 몸에 익은 역할을 할 기회를 찾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상대에게 최선을 다하고, 이윽고 불안이 사라져 사랑에 의해 보상받는 날이 오기를 바라는 것이다.

심각한 사정이 있는 가정에서 끊임없이 정신적 압박을 받고 큰 책임을 떠맡으며 자란 여자는 기분좋은 감정과 불쾌한 감정의 구별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극복해야 할 혼란이나 긴장, 절망적인 사태가 없으면 필요시되고 있지 않은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이 고개를 쳐들고 위협하기 시작한다. 무거운 짐을 걸머짐으로써 자신의 두려움과 고통을 달랠 수 있다. 타고 누르는 무거운 짐이 동시에 안식을 가져다준 것이다.

<5장> 춤을 출까요

사람은 종종 성장기에 싸웠던 아버지나 어머니와 비슷한 상대와 결혼한다. 꼭 닮은 상대를 선택한다기보다는 성장기에 경험했던 것과 같은 감정을 체험할 수 있고, 같은 도전에 맞설 수 있다고 생각하는 상대를 고르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 잘 알고 있는 어린 시절의 분위기를 재현할 수 있고, 이미 여러 번 시도한 수단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이것은 대부분의 여자들에게 있어서 사랑의 구성 요소가 된다.

남자와 여자의 관계에서 우연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신중하게 고른 것도 아닌 남자와 단순한 인연으로 결혼했다고 믿고 있는 여성은, 왜 자기가 그 상대와 친밀해지는 것을 선택했는지, 왜 임신의 위험을 무릅쓸 마음이 들었는지 자문할지도 모른다. 마찬가지로 자기는 일시적 기분으로 결혼했다느니, 너무 어려서 몰랐다느니, 충분히 자기를 확립하고 있지 못했기 때문에 책임있는 선택을 하지 못했다고 변명을 할 때, 그녀는 더욱 깊이 자문해야만 할 것이다.

필요시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여자와, 자기 대신 책임을 떠맡아 주는 상대를 찾고 있는 남자. 극단으로 헌신적인 여자와 극단으로 무책임한 남자. 자기를 피해자라고 정의하는 여자와 타인을 지배하거나 공격하는 경향이 강한 남자. 관리하는 것을 필요로 하고 있는 여자와 관리되기를 필요로 하는 미숙한 남자. 이 양자 사이에 어떤 사인이 점멸하는 것일까? 이런 식으로 노골적으로 말하면 신비성은 다소 빛을 바랠 것이다. 왜냐하면 댄스에서는 파트너끼리 전하는 명확한 신호와 암호가 있기 때문이다.

<6장> 너무 사랑하는 여자를 선택하는 남자들

(톰. 술을 끊은 지 12년. 아버지와 형이 알코올 의존증으로 죽었다)
알코올 의존증 환자의 주위에는 누군가를 도와주고 싶어서 좀이 쑤시는 여성 옹호자가 많이 있다. 그를 감싸고 위로함으로써 병을 오래 끄는데 일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중독에 빠져 있는 환자는 회복을 돕는 파트너가 아니라 안심하고 중독에 빠질 수 있는 상대를 찾고 있다.

(찰스. 은퇴한 토목기사로 아이가 두 명. 이혼 후 재혼하여 현재는 홀아비)
왜 그토록 오랫동안 고통을 참고 기다린 남자와 마침내 인생을 함께 할 수 있게 되었을 때에 갑자기 노골적으로 흥미를 잃었는가, 아내가 있는 동안은 미칠 정도로 사랑한 그녀는 그가 자유로워진 순간 식어버렸는가? 이유는 그녀가 손에 넣을 것 같지 않은 것만을 탐내는 타입이었기 때문이다.

(러셀. 전과자. 청소년 범죄자를 위한 갱생조직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
수형자의 아내는 마음과 마음으로 남자와 결합하는 것이 서투르고, 대신 공상을 가교로 하여 상대가 개심하고 믿음직한 남자가 되는 그날에는 얼마나 사랑하고 사랑받게 될까하는 꿈을 지주로 삼고 살아가는 쪽이 성격에 맞는다.

(타일러. 회사중역. 이혼하고 자녀는 없다)
그가 거의 의식적으로 퇴폐적인 생활을 보낸 것은 아내의 동정과 걱정을 이끌어 내려는 계산에서였으나 실패했다. 그러나 대신 다른 너무 사랑하는 여자의 동정을 샀다. 그녀는 타인의 행복을 인생의 목적의 중심에 두고 있었다. 그의 고독과 슬픔이 그녀의 돕고 싶다는 욕구와 맞물려 두 사람은 서로 이끌렸다.

(에릭. 이혼한 뒤에 재혼)
그의 무뚝뚝한 면이 사랑스럽고 그라면 다른 여자와 골치 아픈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확신할 수 있었고, 그것은 그녀에게 있어서 중요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버림받는 것을 극단으로 두려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애정 깊은 남자와 있다가 버림받기보다는 욕구를 완전히 채워주지 못하더라도 버림받을 우려가 없는 쪽이 낫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7장> 미녀와 야수

상대 남성을 도울 기회가 있는 것이 그녀들을 그 남성에게 끌어당기는 최대의 요인이 되고 있다. 그것에 호응하도록 남자는 남자대로 누군가 도와줄 자가 없는지 자기행동을 관리해줄 자는 없는지, 구제해줄 자는 없는지 찾고 있는 것이다. ‘백의의 천사’가 되어줄 여자를 찾고 있는 것이다.

불행한 남자, 불건강한 남자, 힘에 겨운 남자를 완벽한 반려로 바꾸겠다는 발상이 많은 여자의 마음을 부추기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이 생각이 쇠퇴하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잔인하고 무관심하고 소리만 지르고 정서가 불안정하고 의존벽이 있으며 다정한 애정을 나타낼 수 없는 남자를 파트너로 선택하는 것은,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을 관리하고 싶다는 어쩔 수 없는 욕구 때문이다.

가혹한 심리적 체험을 되풀이한 환경에서 자란 아이는 비참한 체험에 짓눌릴 듯한 것을 참아내고 자위수단을 몸에 익힌다. 이 자위수단에는 반드시 강한 방어기제의 발로인 ‘부인(否認)’과, 마찬가지로 강한 잠재욕구의 발로인 ‘관리’가 포함되어 있다.

문제를 안은 가정에서는 반드시 가족이 일치협력하여 현실을 ‘부인’한다. 문제가 아무리 심각하더라도 ‘부인’이 작용하고 있는 한 가정은 기능한다. 가족의 일원인 누군가가 가족이 놓여있는 상태를 솔직히 지적하여 부인의 껍질을 깨려고 하더라도, 나머지 사람이 강하게 반대하는 것이 보통이다. 종종 당사자를 웃음거리로 만들어 원래의 테두리로 되돌리려고 하는데, 실패하면 가족의 큰 테두리에서 쫓아내려고 한다.

불안한 상황에 놓여있는 사람은 누구나 조금이라도 상황을 관리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 원망은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고뇌에 찬 불건전한 가정에서 자라면 그것이 이상하게 커진다. 버릇없는 행동을 억제하여 ‘착한 아이’가 되거나 도우려고 노력하는 것은 타인을 위해서라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타인을 관리하려고 하는 시도의 표현이다.

도움을 주고 싶다는 매우 강한 욕구에서 미덥지 못한 남자를 상대로 고르는 것, 그리고 상대의 생활을 관리하려고 하는 것은 모두 유아기의 가족체험에서 오는 채울 방법이 없는 마음의 굶주림을 잊기 위해서였다. 문제가 있는 가정의 아이는 가족 문제에 책임을 느끼고 그것을 해결하는데 책임을 느끼고 있다. 그런 경우에 가족을 ‘구제’하려고 아이가 취하는 방법은 내면으로 숨거나 나쁜 아이가 되거나 착한 아이가 되는 세 가지이다.

<8장> 사랑의 ‘중독’증상

너무 사랑하는 여자들이 빠지는 최악의 상태는 고통, 두려움, 사랑에의 갈망, 긴장이 이끌어 내는 ‘남성 의존증’이다. 자기가 어찌할 수 없는 인간이라고 느낄 때, 조금은 자신을 갖게 해주는 남성의 존재를 환영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스스로 자기를 사랑할 수 없으므로 자기는 사랑받고 있다고 확신시켜주는 남자가 필요해지는 것이다.

자기로부터 외면하고 고통을 피하려고 하는 한, 그녀들은 결코 그 ‘병’에서 해방되지 않는다. 발버둥 치면 칠수록, 피할 길은 찾으면 찾을수록 중독증상과 강박관념이 한데 얽혀 막다른 곳으로 몰아넣고 마음의 병은 더욱 깊어간다. 그리하여 마침내 회복 불능의 상태가 된다. 절실하게 구원을 청하고 있는데 그 구원은 어디서도 찾을 수 없다.

<9장> 죽음에 이르는 사랑

중독이 되어있는 사람이 그것을 끊고자 할 때, 그 사람의 생활에는 거대한 공백이 생긴다. 물건 또는 사람에의 의존이 중단될 때에 생기는 불안은 매우 크다. 그러므로 의지할 것이나 격려, 이해가 가까운 곳에 준비되어 있어야만 한다. 그것을 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사람은 중독을 끊기 위해 같은 고통을 체험한 동료이다.

너무 사랑하는 여자에게 있어서 근본적인 병은, 보상받지 못하는 남성과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고통과 공모하는 ‘중독증상’ 그 자체이다. 확실히 이 중독은 어린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장년의 행동 패턴에서 발생하는 것인데, 회복하기 위해서는 우선 현재의 패턴을 고치는 일과 맞서야 한다. 그녀가 자기의 파트너를 바꾸려고, 도우려고, 관리하려고 또는 비난하려고 하는 시도 자체가 질병의 발로인 것이다.

유감이지만 너무 사랑하는 여자는 지금까지와 같은 방식을 계속하기를 선택하는 경향이 강하다. 마음의 공허를 자기 내면의 것으로 채우기를 배우는 것, 즉 행복의 원천을 자기 내면에 구축하도록 훈련하는 것보다는, 자기 이외의 것에서 찾는 것이 훨씬 편하고 친해지기 쉬운 방식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해해 주기 바란다. 파트너를 바꾸려고 한다거나 새로운 남자를 찾기보다는 자기를 바꾸고 싶다고 진심으로 바라는 사람에게 회복에의 길이 준비되어 있는 것이다.

<10장> 당신이 당신을 사랑할 때

너무 사랑하는 여자가 회복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그녀가 품고 있는 문제의 심각성과는 관계가 없다. 어떤 여자가 회복에의 길까지 도달하느냐 못하느냐는 운, 불운에 따라 크게 좌우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의 경험에서 보면 회복한 그녀들은 모두 일정한 단계를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 시행착오를 되풀이하고 이끌어주는 것도 없이 여러 번 넘어지고, 그때마다 다시 일어섰다.

프로그램의 단계는 단순명쾌하지만 쉬운 것은 아니다. 각각이 모두 중요한 스텝이다. 여기서는 가장 전형적으로 거치는 스텝을 예거한다.
① 도움을 구한다.
② 회복하는 것을 생활의 최우선 사항으로 삼는다.
③ 같은 고민의 이해자, 경험자로 만들어진 지원그룹을 발견한다.
④ 일상의 습관을 통하여 정신면의 (영적인) 충실을 꾀한다.
⑤ 파트너를 관리하고 조종하는 행위를 그만둔다.
⑥ ‘의존증 게임’에 열중하지 않도록 한다.
⑦ 자기 결점이나 문제를 용기를 가지고 직시한다.
⑧ 자기 속에서 성장시켜야 할 것은 무엇이든 육성한다.
⑨ ‘자기중심주의’가 된다.
⑩ 자기 경험이나 배운 것을 타인과 공유한다.

<11장> 대등한 사랑으로

너무 사랑하는 여자들이 회복할 때에 뛰어넘어야만 할 장애물이 있다. 그녀들은 한때 문제투성이 남자를 조종하여 자기를 사랑하도록 유도하는 도구로써 섹스를 이용하고 있었으므로 그 필요가 제거되면 파트너와 어떤 섹슈얼 커뮤니케이션을 취하면 좋을지 알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지금 당신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는 당신과 비슷한 캐리어를 가지고 회복할 수 있었던 많은 여자들이 남성과의 공평한 관계를 구축하기 시작했을 때 부딪히는 문제입니다. 거기에는 흥분이나 도전, 위 속의 응어리 같은 것은 전혀 없어요. 그렇지만 이전에는 그것이 바로 ‘사랑’이라는 것이라고 늘 느끼고 있었으므로 당신들은 무엇인가 소중한 것이 부족한 듯한 불안을 느끼는 거예요. 없어진 것은 광기, 고통, 불안, 기대하는 것, 단지 기다리는 것 등이었는데.
문제는 당신이 이전에 바라고 있던 것을 손에 넣은 경험이 전혀 없다는 것이에요. 당신은 그것을 손에 넣고 있지 않은 상태밖에 몰라요. 그리고 그것을 얻으려고 마치 결사적이 되어 있어요. 당신이 익숙해있는 것은 동경과 불안. 그것이 이전에는 두근거리는 흥분을 연달아 만들어 냈던 것입니다.”

두 사람의 인간의 깊은 결합은 매우 드물다. 우리는 경계선을 제거해 버리면 자기가 분해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강한 공포심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그 공포나 위협을 보람 있는 것으로 바꾸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우리들이 정말로 자기를 있는 그대로 보였을 때에만 진실로 사랑하고 사랑받는다는 것이다. 진정한 자기 모습, 본질 그대로 상대와 관계를 구축하고 그것으로 사랑받는다고 하면, 사랑받고 있는 것은 당연히 자기의 본질이다. 인격면에 있어서 이토록 확실한 것은 없다. 이토록 자유로운 것은 없다. 그러나 이와 같은 태도를 취할 수 있는 것은 불안에서 해방된 분위기에 있어서 뿐이다. 그러므로 있는 그대로의 자기로 있는 것을 두려워하는 기분을 극복하는 동시에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태도나 행동을 취하는 사람을 피해야 한다.

회복은 다방면에서 당신의 생활을 바꿀 것이다. 때로는 그것이 불쾌해지는 일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불쾌하다고 해서 그만두어서는 안 된다. 변화에의 두려움, 평상시의 상태에의 집착, 숙지하고 있는 것을 버리는 두려움은 보다 건전하고 높고 정말로 사랑할 수 있는 자기에의 성장에서 당신의 발목을 잡아당기는 것이다.

당신을 되돌리는 것은 고통이 아니다. 지겨울 정도로 맛 볼 위험한 고통을 당신은 이미 충분히 참고 있는 것이다. 당신을 되돌리는 것은 두려움, 미지에의 두려움이다. 그 두려움에 맞서 싸우는 최선의 방법은 같은 길을 걷는 길벗과 힘을 합치는 것이다. 당신이 서 있는 지점에 과거에 섰던 일이 있고, 당신이 목표하는 목적지에 이미 도달한 사람, 또는 더욱 앞을 가는 사람들의 지원그룹을 찾을 것, 그리고 새로운 생활방식을 향해 그 사람들과 같은 길을 개별적으로, 그러나 함께 걷는 것이다.


***


읽을 때마다 불편하기 짝이 없다. 몇 년째 읽고 있건만 여전히 힘들다. 이 책을 처음 읽으면서 집어 던졌던 생각도 떠오르고, 한동안 우울했던 기억도 새삼스럽다. 또 다시 멍해온다.

나는 이 책을 읽고 나서 내가 선택한 결혼에 대해 아주 많은 부분이 이해되었다. 왜 결혼 생활에 대해 부정적이었는지, 왜 계속 이혼을 꿈꾸고 있었는지, 왜 혼자만 힘들다고 생각했었는지, 왜 같은 갈등을 반복하고 있었는지, 왜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버리지 못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동안의 착한 척하고 있던 나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늘 ‘착한 애’로 살려고 노력하고 있었다는 것도 알았다. 그리고 그건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늘’ 착하기 위해서는 꼭 그만큼 거짓으로 꾸며진 채로 살아야 했다는 것을 알아버렸다. 내 ‘가면’을 확인하게 된 일은 충격적이었고 참담했다. 하지만 책을 던진다고 해결될 일은 더욱 아니었다.

나는 나를 버릴 것 같지 않은 남자를 선택했고 그게 사랑이라 착각한 채로 관계를 가졌었다. 그 사랑은 오래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 사랑이 착각이란 걸 알게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꼭 필요한 만큼 걸린 시간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 그렇게라도 나를 위로하고 싶다는 게 맞는 말일 것이다.

불행히도 남편에 대한 나의 사랑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그 사랑이 가짜라는 것을 알게 된 것 정도이다. 아마도 내가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연습을 더 하고 나면 그때쯤엔 진짜 사랑을 알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나는 오늘도 아이들을 통해서 나의 사랑을 시험한다. 매번 낙제점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시험에 든다. 콩나물시루에 물을 계속 주는 건 다 빠진 물기 속에서나마 콩나물이 자라는 것을 믿는 것처럼. 어쩌면 그 콩나물뿌리에 많다는 아스파라긴산이 내 오래된 숙취를 해소해 주리라는 ‘작은 믿음’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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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2006.01.13 10:29:54 *.193.35.232
이 엄청난 책 읽기와 감상! 멀지 않아 또 한분의 아주 예쁜 스타 탄생을 예감합니다. 콩나물국이 숙취에 좋습니까? 대단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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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나무
2006.01.13 11:12:24 *.232.174.217
직설적으로 표현하긴 힘들지만 무언가가 있는것 같아 보입니다.
미영님의 숙취해소에 뭐가 특효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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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영
2006.01.13 14:41:21 *.210.111.168
담 걸렸다고 하나요?
몸에서 신호를 보내네요..
조금 쉬었다가 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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