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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3월 13일 11시 01분 등록


대담을 읽고나서


1. 작가 소개

도 정일

문학평론가. 경희대학교 영어학부 교수. 그는 최근 2~3년 동안 대한민국 전역에 세워진 ‘기적의 도서관’을 기획하고 감독한 당사자이다. ‘책읽는 사회만들기 국민운동’ 상임대표, 문화연대 공동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사적인 일보다는 공적인 일에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우리 시대의 대표적 지신인이다. 잡지 편집장, 동양통신 외신부장, 도미 유학을 거쳐 1983년부터 경희대학교에서 본격적인 비평이론 강의를 시작한 후, 이론 교육 분야에 정성을 쏟았고, 1980년대 말부터 문학, 문화, 사회에 관한 명석한 이론적인 글들과 예리한 평문들, 사회문화 칼럼들, 그리고 문학에 관한 내실 있는 담론을 활발히 발표해오고 있다. 책을 내지 않는 것이 그의 주요 장기지만, 평론집으로 《시인은 숲으로 가지 못한다》가 있고, 〈도정일의 신화 읽기〉, 〈쓰잘 데 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 〈만인의 시학〉같은 미리 준비한 지 오랜 책들을 낼까 말까 생각 중에 있다. 대담을 읽고 ‘책 읽는 사회만들기 국민운동’을 접해보니 도 교수님의 사회참여정신에 고개가 숙여진다. 또한 영어학부 교수로서 인간을 연구하는 인문학에 상당한 조예가 있다는 면에서 아주 특별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최 재천

동물행동학의 세계적 권위자. 현재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교수. 서울대학교 동물학과를 졸업한 후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을 거쳐 하버드 대학에서 사회생물학의 창시자 에드워드 윌슨 교수의 지도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하버드 대학 전임강사와 미시건 대학 조교수로 미국에서 교편을 잡다가 1994년 귀국하여 지금까지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에 재직하며 인간을 비롯한 여러 동물들의 성과 사회성의 생태와 진화, 그리고 동물의 인지능력과 인간 두뇌의 진화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그는 과학을 과학자들의 커뮤니티 바깥으로 끌고 나온 귀한 학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과학자는 실험실에도 충실해야 하지만, 사회 문제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과학과 대중의 소통을 적극적으로 실천하고 있으며, 오래전부터 자연과학자와 인문학자의 대화를 강조해온 지식인이다. 저서로는『Ecological Issues in a Changing World』등 다수의 전문서적 외에도『개미제국의 발견』『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여성시대에는 남자도 화장을 한다』『열대예찬』『나의 생명 이야기』(공저) 『당신의 인생을 이모작하라』등을 집필했으며,『인간은 왜 병에 걸리는가』『인간은 왜 늙는가』(공역)『인간의 그늘에서』(공역) 등을 번역 소개했다. 그밖에 과학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칼럼들을 써왔으며, TV 강의 등을 통해 대중의 과학화를 위해 힘쓰기도 했다. ‘미국곤충학회 젊은 과학자상’, ‘대한민국 과학문화상’, ‘국제환경상’, ‘올해의 여성운동상’, ‘대한민국 과학기술훈장’ 등을 수상했고, 현재 <진화심리학Evolutionary Psychology>을 비롯하여 네 개의 국제학술지 편집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작년 최 교수님의 저서인 『당신의 인생을 이모작하라』를 읽은 적이 있는데 주내용이 고령화 사회에 대비해 자신의 인생을 전반50 후반50으로 나누고 인생 후반을 대비하기 위한 준비가 필요함을 역설한 책으로 동물행동학자임에도 사회현상에 대한 날카로운 인식을 갖고 있는 지적인 학자임에 틀림없다.


2. 독후감

신화를 품고 산다는 인문학자 도정일 경희대 영어학부 교수님과 개미를 사랑한 생물학자 최재천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님의 만남은 처음부터 생소한 감마저 든다. 전혀 다른 분야에서 인간을 연구하는 두 교수님이 과연 무슨 이야기를 나누면서 학문적 사고의 일치를 볼 수 있을까 무척 궁금한 가운데 읽어 내려간 대담은 역시 나에게 매우 어려운 책의 하나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우선 독자에게 친근감을 주기에는 독서분량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읽었던 대부분의 책이 200페이지에서 400페이지 이내의 책이었건만 이 책은 614페이지에 달해 책을 잡는 순간 읽기에는 상당한 부담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인간에 대한 근원적 문제를 푸는 전개과정이 전문적 지식의 과다로 인한 이해의 난이와 대담시간차에서 오는 정렬의 미숙으로 독자에게 전달하려는 메시지의 핵심이 산만하지 않았나 하는 인식을 주었다. 또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인문학자와 생물학자의 대담 형식을 빌은 책 구성으로 인해 양쪽의 의견을 모두 인지한 후 자신의 견해를 정리해야 하는 번거러움으로 책이 전하는 깊이를 느끼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다.

그러나 장기간에 거친 독서를 통해 나름대로 책에서 얻은 지식을 한 다섯 가지 컨셉을 가진 용어로 정리할 수 있었다.

첫째, 학문의 통합을 뜻하는 ‘통섭’이라는 용어였다. 도정일 교수님은 인문학자답게 그리스 로마신화 등을 언급하면서 인간은 생명공학에서 이야기하는 한 생명체로서의 인간이 아니라 풍부한 상상력과 창의성을 갖는 그리고 영혼을 지닌 존재임을 강조하였으며 비인간적 실체인 복제인간개발과 생명의 연장을 추구하는 생명공학의 위태로움을 비판하였고 생명과학에서도 단순한 과학을 뛰어넘는 인문적 사고를 갖추기 위해서는 인문학과 생명과학의 통합을 강조했다. 짧은 소견인지는 몰라도 이것을 도교수님은 통섭이라는 표현으로 정리하신 듯하다.

둘째, 인간이 태어나 존재가치를 발현할 수 있는 의미로서 ‘자유의지’라는 용어를 찾을 수 있었다. 인문학에서 인간은 생명공학에서 찾고 있는 인간과 달리 자유의지를 갖고 있기에 단순한 복제인간과 다를 수 있음을 강조한 개념이 바로 ‘자유의지’라는 표현일 것이다. 한 인간으로서 세상에 태어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사람이 하나의 인격체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주어진 환경에의 적응과 인간의지를 통한 성숙이라고 보기에 생명공학에서 말하는 유전자의 우성인자 전수만으로 우리가 바라는 인간이 탄생되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가 바로 인간의 자유의지로 비유한 것이 아닌가 한다. 이점에 전적으로 동감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셋째, 현재 진행되고 있는 트렌드의 하나인 세계화는 문화, 상품 심지어 인간까지도 단일성을 강조하는 시류이기에 이에 대해 비판하면서 ‘다양성’을 강조하고 있다. 사회문화적 다양성과 생태학적 다양성은 그 자체로서 생명을 유지하는 한 존중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유전자적으로 종다양성을 무시하고 우성인자만을 추구하는 것은 아직 발견하지 못한 인간의 문제를 무시하고 미래의 문제들에 대한 답을 잃어버리는 꼴임을 지적한다.

끝으로 21세기 인간형은 최교수님은 ‘호모 심비우스’, 도교수님은 ‘두터운 세계’가 되어야 함을 주장한다. 이는 궁극적으로 인문학이나 생명과학이 하나로 통섭함으로써 앞으로의 인류가 자연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공생밖에 없음을 일깨워준다. 바로 호모 심비우스가 공생인간을 뜻하는 것으로 도교수님은 이것을 두터운 세계에 비유하면서 결론적으로 두터운 세계를 꿈꾸는 호모 심비우스, 자연과학과 인문학이 충돌하는 지점이면서, 또한 서로 손잡고 추구해야 할 방향도 이것임을 강조하면서 대담의 막을 내린다.

인류는 이기적이고 독자적인 길을 걸을 때 패망을 자초했고 공생의 길을 걸을 때 살아남았다는 엄연한 역사적 진실을 외면해서는 안 됨을 깨우쳐 주는 특이한 책이라는 느낌이 나의 머리에 강하게 남았다.


3. 책 속에서

《대담―인문학과 자연과학이 만나다》는 우선 책의 분량으로 인해 독자들이 접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물론 ‘대한민국 지식 사회의 열린 횡적 소통’이라는 개념으로 출발하여 휴머니스트의 대담 시리즈(휴먼아이티:HIT, Human Interlogue Terminal) 1차 완결판이라는 의미가 있지만 인문학자 도정일(경희대 영어학부 교수, 비평이론)교수님과 자연과학자 최재천(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생물학)교수님의 전문지식과 깊이 있는 사유가 주류를 이루어 전반적인 내용의 이해에도 불구하고 테마별 깊이 있는 내용을 놓치는 경우가 많아 읽기가 쉬운 책은 아니었다는 느낌이다. 이 책은 휴머니스트라는 출판사에서 ‘생명공학 시대의 인간의 운명’을 테마로 양 교수님이 2002년부터 2005년까지 벌인 10여 차례의 대담과 4차례의 인터뷰를 토대로 엮은 독특한 편재의 책이다.

즐거운 몽상과 끔찍한 현실

우리 시대의 화두는 정보기술(IT, Information Technology)에서 생명공학(BT, biotechnology)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21세기 초에 우리 사회에 주요 이슈였던 IT는 불황으로부터 번영을 구가하는 동인을 제공했고, 세계를 바꾸고 있는 거대한 트렌드로 인식되었다. 더군다나 2000년 인간유전자지도가 발표되면서 금세기초 새로이 각광을 받고 있는 분야가 생명공학이다. 비록 지금은 진위여부로 인해 수사대상이 되고는 있지만 2004년 황우석 교수의 인간 배아 복제의 성공은 생명공학이 우리나라의 핵심동력임을 입증시키기 시작했고, 이 분야의 연구가 전세계적인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그러나 과학기술, 특히 생명과학의 눈부신 발전은 우리들에게 ‘생명이란 무엇인가?’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전통적인 물음을 다시 던지게 하고 있다. 이 화두는 우리 사회에 ‘생명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요구하고 있다. 과학과 과학기술의 발전이 거듭될수록 ‘그것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하는 점은 반드시 사유(思惟)되어야 한다. 인문학은 과학 발전에 따라 그 의미가 축소되는 것이 아니라 더욱 확장되어야 한다. 인문학의 비판적 사유와 풍부한 상상력이 자연과학에 촉발을 일으키고, 역으로 자연과학의 기술적 상상력이 인문학의 비판적 상상력을 자극하기도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두 세계가 서로에 대해 적극적으로 문을 열어야 하고, 소통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도정일 (p68-69) 지금 생명공학은 사람들의 상상력을 매혹하고 있어요. 죽지 않는 인간, 병에 걸리지 않는 인간, 원하는 대로 자기를 개량할 수 있는 인간, 천재 생산, 성격 개조 등등, 생명공학은 지금까지 인간이 운명으로 받아들였던 자연적 한계를 일거에 제거할 수 있다는 환상을 뿌려주고 있습니다. 그리스 신화에서 신과 인간을 갈라놓는 결정적인 차이는 유한성과 불멸성입니다. “인간은 죽고, 신들은 죽지 않는다”죠. 지금 생명공학은 인간이 불멸성의 문턱에 올라설 수 있다는 기대를 갖게 하고 있습니다. 인간 수명은 정말 얼마만큼이나 연장이 가능할까요? 실제 연구는 어디까지 와 있습니까?

최재천 (p69) 생명과학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미래는 모든 사람이 최대 수명인 120세까지 질병 없이 행복하게 사는 겁니다. 120세 생일날까지 섹스도 하고 테니스도 하는 등 신나게 잘 살다가 120세 생일잔치를 마치고 “잘들 있게나”하며 아무 고통 없이 떠나는 거죠. 이런 세상이 한 사람의 생명과학자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생명공학의 발달로 많은 사람들이 혹시 150세, 200세까지 살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바라겠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인간의 최대 수명이 120세를 넘기기는 힘들 거라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몇 십 억 년 동안 자연선택이 갈고 닦은 결과를 하루아침에 뒤집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겠어요? 그리고 그게 정말 좋은 일일까요? 저는 개인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믿고, 또 그리 좋은 일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생명복제, 이제 인간만 남은 것인가

2004년 2월 12일 한국의 한 과학자가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미국의 과학 전문지 〈사이언스〉를 발행하는 미국과학진흥회(AAAS)가 마련한 자리에서 세계 최초로 복제된 인간 배아로부터 줄기세포를 얻는 데 성공한 연구 결과를 발표한 것이다. 이것이 황우석교수가 발표한 실험결과다. 물론 지금 이것은 진위여부 대상에 올려져 대부분이 허위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세간의 화제가 되고 있지만 과연 인간의 생명은 복제가 가능한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하는데 충분하다. 과연 두 학자는 이에 대해 어떤 의견을 내놓을 수 있을까?

또한 생명공학의 궁극적인 목적은 아마 생명의 연장이고 나아가 생명의 영원성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생명이 무한하다면 그것이 삶이 보장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의 시작이라는 시각이 있다. 그러기에 생명공학이 단순히 생명연장에 그쳐서는 안 된다. 왜 인간이 생명이 유한한지, 인간의 죽음이 나쁘지 않은지를 알아야 한다. 그래서 두 학자분은 인간의 한계성을 인정하라고 외친다.

최재천 (p167-168) 생명체는 정자와 난자와 만나 수정란(배아)이 형성되면서 시작됩니다. 그런데 복제생명체는 다릅니다. 정자와 난자 대신 평범한 체세포와 핵이 제거된 난자만 있으면 되거든요. 이론상으로는 이 두 가지만 결합시키면 마술처럼 체세포와 동일체인 배아가 만들어지는 겁니다.
그런데 대중적으로 알려진 것만큼 복제인간의 탄생이 그렇게 쉽고 가까운 미래의 일이 아닙니다. 현재의 복제기술 자체는 여전히 불안정해서 복제한 배아를 자궁에 착상시키면 유산이나 사산의 확률이 엄청나게 높아집니다. 복제이론 자체는 간단하지만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기술은 아직 매우 불안정한 단계에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걸 두고 바로 생명의 존엄성이라고 하는 것 아닙니까? 복제인간을 만드는 전 과정에서 거의 완벽하게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확신이 서기 전까지는 절대로 복제를 시도할 수 없는 겁니다. 저는 복제인간이 몇 십 년 안에 탄생하리라고 기대하지 않습니다.

도정일 (p169-170) 생명윤리의 관점에서는 배아도 단순한 세포 덩어리가 아니라 생명의 시작이죠. 배아에서 줄기세포를 뽑아내는 일은 아무 때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배아가 세포 분열을 시작하고 나서 일주일 이내에 줄기세포를 뽑아내야 하고, 일단 줄기세포를 뽑아내고 나면 배아는 파괴해야 합니다. 생명체를 죽이는 거죠. 생명윤리의 관점에서 보면 이건 충분히 문제가 됩니다.

최재천 (p176-177) 사실 사람들이 생명과학에 걸고 있는 기대는 대단히 위험한 것입니다. 사람들이 은근히 가장 원하는 것은 불멸이에요. 그런데 어느 순간에 우리가 죽지 않는 방법을 발견하면, 그게 모두가 죽는 순간입니다. 누군가가 죽어주기 때문에 내가 살수 있는 거죠. 죽음이 삶을 허락하는 겁니다. 그러니 모두가 죽지 않게 되는 날이 모두가 함께 죽기 시작하는 날이 되는 겁니다.

도정일 (p181-183) 오래 산다는 것은 나쁘지 않은 일 같지만, 새로 태어나는 세대가 없다면 늙은이들은 누가 먹여살립니까? 오래 살면서 동시에 생산력을 유지해야 하는데 이 생산력은 생식력과 떼놓을 수 없습니다. 혜택의 불평등이 제기하는 문제도 심각할 겁니다. 돈 있는 사람은 생명기술의 혜택으로 오래 살고 가난한 사람들은 적당히 살다가 죽으라면 사회는 뒤집어집니다.
인간의 한계와 유한성에 대한 인식이 사실은 서양 인문학의 본원적인 기조입니다. “너 자신을 알라”는 것은 소크라테스의 말이기 전에 아폴론 신전의 명령인데, 그 말이 의미하는 것은 “인간아, 너는 신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것을 알아라”는 겁니다. 근대 과학은 무한지식을 추구했는데 그 근대 시기에도 인문학은 몇몇 예외적 사상가들을 빼고는 대체로 인간의 한계를 환기시켜왔습니다.

DNA는 영혼을 복제할 수 있는가

생명과학의 발전으로 인해 인간에 대한 복제가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는 점점 가까워 오고 있다. 그러나 인간복제와 관련하여 해결해야 할 과제는 한 둘이 아니다. 그 중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과연 인간의 영혼까지도 복제가 가능할 것인가라는 의문이다. 나에 대한 복제인간이 탄생한다면 그 복제인간의 사고와 행동양식은 과연 나와 동일할 수 있을까? 생명과학적 측면에서 동일한 DNA의 복제가 가능하다면 영혼의 복제도 가능할 것이란 이야기가 될 수 있는데 그것이 가능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제기된다. 이 문제에 대해 두 학자의 견해는 어떠한가? 처음 최교수님은 생명의 존엄성을 들어 영혼의 복제는 불가능함을 제시한다. 이에 도교수님도 영혼은 혼과 달라 개인적 문제이기에 복제의 불가함을 주장한다. 그러나 최교수님은 나중에 영혼도 DNA일 수 밖에 없다면서 영혼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영혼도 DNA의 씨앗일 수밖에 없다”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복제가 가능하다는 이야기인데, 무엇인가 혼선이 있을 거라는 점에서 도교수님은 수정안을 제시한다. 이 점이 두교수님의 논쟁에서 다분히 이해 못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최재천 (p247-249) 제가 귀국 후 여러 번 ‘진화와 창조’를 주제로 강연을 했는데요, 화두가 “영혼은 복제될 수 있는가?”였습니다. 저는 이 문제를 제기하면서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설명을 곁들였어요. “인간의 유전체가 모두 밝혀졌다고는 하지만, 모든 사실을 아는 건 아니다. 지금 밝혀놓은 것은 어느 자리에 어떤 유전자가 앉아 있다는 위치만 찾아낸 것이다.” 그러니까 지도의 얼개를 그려놓은 것에 불과하죠. 그 유전자가 무엇을 하는 유전자인지 알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심각한 문제는 유전자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것을 가지고 뭔가를 만들어내려고 한다는 거죠. 과학의 길은 아직 멀었는데 기술이 덤벼들어 선무당 짓을 하니, 이게 큰 문제입니다. 생명과학을 응용한 기술은 좀 달라야 할 것입니다. 생명을 가지고 실험을 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게 바로 생명의 존엄성이라는 거니까요.

도정일 (p259-263) 인류사에 탁월한 업적을 남긴 사람들의 상당수가 유전적 결함을 가진 사람들이었어요. 그럼에도 만약 한 시대가 우생학적으로 우수하다고 여기는 개체들로만 사회를 구성한다 칩시다. 다 잘나고 우수할 때, 사회가 허드렛일이라고 생각하는 힘들고 더러운 일은 누가 합니까? 할 수 없이 복제기술로 새로운 하층 노예계급을 만들어내야 합니다. 그래서 복제 노예계급이 만들어집니다. 이런 경우 또 어떤 문제가 발생하느냐? ‘영혼’ 문제가 있어요. 노예계급 복제인간들에게는 자연인간이 가진 것과 같은 ‘혼’은 절대로 주어서는 안 된다는 문제 말입니다. 들고일어날 테니까요.
‘육체와 분리되는 독립존재’인 영혼이라는 개념이 등장한 것은 플라톤 철학과 기독교에서부터입니다. 그리스 신화에는 육체와 동떨어져 존재할 수 있는 독자적 ‘영혼’이란 것이 없어요. 플라톤이 이런 것을 다 뒤집어놓은 것이죠. ‘영혼’을 하늘로 올려 보내기 시작한 겁니다. 몸은 가멸성의 세계에 속하고 영혼은 불멸의 세계에 속하니까 사람이 죽으면 몸과 혼은 분리되어 몸은 땅으로, 영혼은 불멸의 세계인 하늘로 간다는 소리죠.

최재천 (p266) 저도 복제인간의 몸은 복제될 수 있어도 그 영혼은 복제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쌍둥이 형제가 완벽하게 동일한 유전자를 갖고 있어 모습은 거의 구별이 되지 않을 정도로 비슷해지지만 성격이나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까지 완벽하게 동일해지지는 않잖아요. 그렇다면 한 인간의 영혼 역시 유전자와 환경의 합작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내가 어떤 유전자를 갖고 태어나서 어떤 삶을 살고 가느냐에 따라 내 영혼이 어떤 모습으로 나를 떠날 것인가를 결정되지 않을까 생각하는 거죠. 그러니 당연히 나의 복제인간이라고 해서 나와 동일한 영혼을 가질 이유는 전혀 없을 테고, 그렇게 엄연히 다른 또 하나의 영혼을 교회가 외면할 수는 없는 거죠.

최재천 (p273-274) 영혼이라는 것이 한 생명체가 가지고 있는 어떤 속성이라고 하면, 그 생명체의 죽음과 함께 영혼도 사라질 수밖에 없겠죠. 그런데 분명히 육체는 다른 세대로 전달되지 않지만, 그 전세대의 혼, 정신은 다음 세대로 전달되잖아요. 생물학자인 제가 보기에는 결국 그것 자체도 DNA일 수밖에 없다는 거죠. DNA가 없다면 영혼이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전달되는 게 상당히 어려울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경우에는 세대가 겹치는 바람에 꼭 DNA 속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더라도 살아 있는 전 세대사람들에게 살아 있는 다음 세대 사람에게 전달되는 것이 있죠. 문화적 유전을 하는 것이죠. 큰 그림에서 보면 혼이 하나의 육체에 들어갔다가 나와서 또 다른 육체를 빌려 그 안으로 들어간다고 볼 수 있는데, 그처럼 혼이 넘나드는 것이라면 생물학자인 제 입장에서는 그게 DNA가 태초부터 지금까지 해온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영혼이 뭐냐고 물으신다면 저는 “영혼도 DNA의 씨앗일 수밖에 없다”고 대답하겠습니다.

도정일 (p276-277) “영혼은 DNA다”라고 말했는데, 대담한 선언입니다. 그런데 최교수님께서 인정하듯 영혼이 DNA라면 영혼도 당연히 유전되어야 하는데 그게 그렇지 않아 보인다는 게 문제입니다. 저는 영혼과 혼을 구분하는데 우리가 혼이라고 부르는 것은 문화적으로 전승되지만, 개인의 영혼일 때는 문제가 달라져요. 영혼의 존재를 인정한다면 그게 유전되지 않는다는 것도 인정해야죠. 신의 경우처럼, 영혼이란 과학적 존재 입증의 대상이 아니라 종교적 믿음의 범주입니다. 입증되지 않으므로 적어도 과학적으로는 그것의 유전 여부를 확언할 수 없죠. 그래서 영혼 문제에 관해서는 수정안을 내놓고 싶습니다.
영혼은 복제되지 않고 유전되지 않는다. 그러나 영혼이란 것을 끊임없이 생각하게 하고 그 존재를 믿고 싶어 하는 성향자체는 인간의 DNA에 들어 있다. 생물학적으로 복제되고 유전되는 것은 이 성향이라는 게 제 수정안입니다. 앞서 저는 ‘영원성에 대한 갈망의 산물이 영혼’이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DNA 베이스를 갖는 것은 ‘영원성에 대한 갈망’이죠. 인간의 DNA 속에 들어 있는 것은 이 갈망이지 영혼 자체는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시간성으로부터의 자유가 영원성입니다. 그래서 다시 정리하면 인간에게는 자유 추구의 성향이 DNA 속에 들어 있고, 이것이 영혼이란 것의 생물학적 토대라는 게 됩니다.

다양한 생명체와 문화가 공존하는 세상

생명공학의 발전은 인간에 대한 복제의 가능성을 제시했지만 그로인한 획일적 인간탄생이 과연 현대사회를 바로 이끌어 갈 수 있는가? 도 교수님은 인간과 자연에서 자연은 전체이고 인간은 부분이라 전체가 부분에 봉사하고 부분이 전체를 지탱해주는 전체성이 필요하다고 역설하였고, 서구 문명이 계몽의 신화와 진보의 신화를 거쳐 개발 신화에 빠져들었고, 오늘날에는 세계화의 신화에 빠져 있다고 꼬집었다. 세계화가 무엇인가, 한마디로 모든 사고의 단일화, 거기에는 근본적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가 핵심이다. 이는 다양한 문화의 본질을 외면하고 동일한 문화를 추구하며 궁극적으로는 힘센 자의 문화수용을 강요한다. 또한 백인의 우월성을 강조하고 다른 민족의 존재를 부인하는 어처구니없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위험도 내포하고 있다. 최교수님은 모든 생물의 진화의 방향은 다양성의 증가라는 점을 강조하며 만일 복제인간이 탄생된다면 이는 다양성을 강조하기 보다는 획일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즉 동일한 인간의 탄생을 이야기하는 것이므로 이건 분명히 다양성을 축소하는 결과이며, 다양한 생명체를 부인할 경우 참으로 위태로울 수 있음을 역설한다.

도정일 (p508) 인문쟁이들이 재미있어하는 건, 외딴 지역 혹은 외부 접촉이 흔하지 않았던 지역의 사람들에게서 그 지역 특유의 흥미로운 행동 방식, 개성, 인격 같은 것이 공유의 특성으로 발견된다는 점입니다. 언어적 특성도 그런 것이죠. 고립지역에서는 그 지역 특유의 문화가 발전할 수밖에 없죠. 세계화시대에는 이런 다양한 특성이 사라집니다. 다양성이라는 자원이 그만큼 고갈되는 거죠.

최재천 (p518) 말씀하신대로 진화를 한마디로 표현하라면 바로 ‘다양성 증가’예요. 생명은 지금까지 무조건 다양해지는 방향으로 진화해왔죠. 과학을 공부하는 저에게 인문학자 냄새가 난다고 하는 건 바로 이런 기본개념을 들먹여서 그런가 봐요.
다음 세대에 어떻게 변화할지 모르는데, 환경이, 우리 스스로가 어떻게 변화할지 모르는데, 우리가 어떻게 그것을 예측해서 거기에 맟춰 일을 하겠습니까? 이건 분명히 다양성을 축소시키는 방향입니다. 만일 미래 사회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만 있다면 그 사회를 이끌 과학기술에 당연히 집중 투자를 해야겠죠. 하지만 그런 예측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전 국민을 끌고 정부가 도박을 하는 형국은 참으로 위태롭기 짝이 없어 보입니다.

도정일 (p521) 사회문화적 다양성이나 생태계에서의 다양성이라는 것이 왜 중요할까요? 우선, 생명은 그 자체로서 가치가 있기 때문에 종 다양성이 유지되어야 한다고 말해야겠죠. 생명은 수단적 가치가 아니라 그 자체로 목적입니다. 둘째, 다분히 인간적인 기준일지 모르지만, 자연계라는 거대한 생태 창고 안에는 인간이 아직 모르는 문제들에 대한 해답이 들어 있습니다. 지금 시대의 인간이 모르는 문제, 지금은 눈에 띄지 않는 문제들이 미래에는 얼마든지 제기될 수 있어요. 그 미지의 문제들에 대한 해답을 소리 없이 저장해놓고 있는 것이 생태계로 미래의 문제들에 대한 해답을 잃어버리게 되죠.
지금 인간은 자기가 아는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는 데는 명민하지만, 모르는 문제들이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굉장히 둔감합니다. 그러다가 몰랐던 문제가 터지면 그때부터 당황하는 거죠. 그제야 해답을 구하자면 이미 때가 늦습니다. 인간 스스로가 파괴해서 없애버렸기 때문이죠.

21세기형 인간, 호모 심비우스의 번식을 위하여

‘생명복제’의 시대, 우리는 이 시대를 어떻게 살아야 하는 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이 기나긴 대담의 결론이다. 바로 21세기형 인간은 호모 심비우스가 되어야 한다고 최교수님은 주장한다. 이를 최교수님은 다른 말로 ‘공생인간’이라고 표현하였으며, 도교수님은 ‘경쟁을 넘어 협동’이라 표현하며 두터운 세계를 지향하는 것이라고 했다. 호모 심비우스는 최교수님이 말씀하신 핵심내용인데 인간이 그동안 성공한 비결은 호모 사피엔스 즉 현명한 인간이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이것이 그렇지 않다는 얘기다. 인간이 똑똑한 것은 사실이지만, 현명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인간이 진정 현명하다면 자신을 망칠 환경파괴나 인간복제는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도교수님도 최교수님의 공생의 철학에 동조하면서 인간은 회생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는 절망적인 순간에 도달할 때까지 좀체 반성하지 않고, 더구나 반성의 결과를 사회 운영에 적용해서 필요한 변화를 일구어내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더는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고통이 절정에 이르거나 죽음이 코앞에 보일 정도로 위기가 닥쳐야 그때서야 움직이기 시작함을 지적하며 인간의 지혜롭지 못한 면을 꼬집는다. 그러면 이 점을 극복하기 위한 인간형 창출은 무엇인가? 그것의 결론이 호모 심비우스다.

경영학적 용어로는 이를 승승적 사고를 가진 인간, 즉 윈-윈(Win-win)적 사고형이라 할 수 있다. 서로 사는 것, 이기는 것 그것이 공생이다. 오늘날 우리 곁에 있는 모든 생물체의 탄생은 가히 존중할 만하다. 왜냐하면 이미 그들이 존재하는 순간 존재의 가치를 타고 나기 때문이다. 무심코 짓밟은 잡초의 존재가 가치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우리가 그 가치를 모를 뿐이다. 이런 점에서 인간은 많은 것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주변에 있는 인간의 삶에서도 우리는 그들의 존재가치를 인정할 필요가 있다. 인간이 얼마나 많은 것을 무시하고 인정하지 않는가를 생각하면 아직 대부분의 인간은 지향해야 할 인간형에서 멀어져 있음을 느낄 때가 많다.

21세기형 인간으로 접근하기 위한 인간의 무한한 노력만이 진정 인간의 궁극적 가치를 찾는 길임을 상기시키는 대담 종결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본다.

최재천 (p593-595) 인간은 호모 사피엔스이기도 하고 호모 폴리티쿠스이기도 하지만 호모 심비우스(Homo symbious), 즉 공생인간이기도 하다는 내용이었어요. 우리가 성공한 비결이 예전에는 호모 사피엔스, 즉 현명한 인간이었기 때문이라고 여겼죠. 우리가 잘나서 잘살게 된 거라고 자화자찬해온 거죠. 그런데 저는 그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인간이 똑똑한 건 사실이지만, 현명하지는 않은 것 같아요. 동물 중에서 가장 두뇌가 발달한 건 사실이지만, 지혜롭다는 생각은 안 든다는 겁니다. 우리가 진정 현명한 인간이었다면 우리가 몸담고 있는 환경을 이처럼 망가뜨리며 살아오지는 말았어야죠. 현명하다는 자화자찬을 멈추고 앞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합니다.
저는 우리 인간이 이번 세기에 반드시 해야 할 일은 다시금 공생인간, 즉 호모 심비우스로 거듭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건 사실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완전히 새로 터득해야 하는 게 아니라 우리 조상들이 했던 것을, 아주 훌륭하게 잘 했던 것을 되살리기만 하면 되니까요.

도정일 (p596) 최 선생님의 공생의 철학, 참 좋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회생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는 절망적인 순간에 도달할 때까지는 좀체 반성하지 않고, 더구나 반성의 결과를 사회운영에 적용해서 필요한 변화를 일구어내지 않습니다. 더는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고통이 절정에 이르거나 죽음이 코앞에 보일 정도로 위기가 닥쳐야 그때서야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지혜롭지 못한거죠. 지금처럼 풍요의 맛을 본 시대에는 삶의 방식을 바꾸기가 더 어렵고 정치 민주주의 아래서는 국민을 설득하고 동의를 얻어야 하니까 본질적 변화를 시도하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민주주의가 두터운 다양성을 위한 체제인데, 그것이 또한 다양성을 어렵게 하는 얇은 사회를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최재천 (p597) 인류의 역사를 놓고 보면 진화에서 가장 경계해야 하는 것이 지금 우리가 진화의 최정점에 서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에요. 우리는 지금 진화의 최정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아직도 진화의 과정 중에 있죠. 생물 전체의 역사 중에서 인류가 태어난 것은 아주 최근의 일일 뿐만 아니라 인류의 진화도 아주 초기 단계, 혹은 중간 단계에 불과한 거죠. 지금은 경쟁이 최고라고 믿지만, 이 단계를 넘어서서 끼리끼리 돕는 구조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우리가 있는 것인지도 몰라요.

도정일 (p597) 그러니까 ‘경쟁을 넘어 협동으로’라는 단계군요. 한 시대의 구호가 될 만합니다. 제가 말한 두터운 세계와 최 선생님께서 말한 호모 심비우스의 세계가 같은 지향을 갖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대담 끝에 이르러 우리가 어떤 미래를 함께 그려볼 수 있게 된 것이 기쁘네요. 두터운 세계를 꿈꾸는 호모 심비우스, 자연과학과 인문학이 충돌하는 지점도 그곳이고, 과학과 인문학이 손잡고 공생을 추구해야 할 지점도 이곳인 것 같습니다.


4. 내가 저자라면

《대담―인문학과 자연과학이 만나다》는 두 세계의 해박한 지식을 가진 지식인의 만남이다. 그들이 살아온 삶의 전반으로부터 전문가적인 시각으로 무려 4년에 거친 담론을 적은 글이기에 그 깊이나 사고가 우리 같은 평범한 독자에게 선 듯 다가올 수 없음을 직감했다. 그러나 전하고자 하는 핵심이 생명공학의 발전에 따른 인간관에 대한 생각을 담은 글이어서 생소하지 않기에 무엇을 의미하는 지는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었다. 다만 독자에게 전달하려는 얘기의 깊이가 학자적 시각으로 전달하려는 의도가 강해 독자가 가장 중요시 하는 책에 대한 접근성에 한계가 있음을 감지할 수 있었다.

또한 책의 내용이 담론으로 진행됨으로 인해 전달하려는 의견의 상이와 목차가 주는 광범위한 범위 등 어떤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인지 논점의 중심인지 간파하기가 쉽지 않았고 세부 목차와 내용이 상이하다는 생각도 들어 독자에게 주는 주제의 중량감에 비해 이해를 용이하게 전달하는 데는 다소 미흡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따라서 이러한 관점에서 대담을 재정리할 필요성이 있음을 느꼈고 내가 저자라면 일단 형식적인 면과 내용적인 면으로 나누어 몇 가지를 정리했으면 한다.

형식적인 측면

첫째, 독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책에 대한 접근성(Access)이라 생각한다. 그것이 전문서적인가, 대중적 메시지를 전하기 위한 것인가에 따라 부피가 조정되어야 할 것이다. 이 책은 전문지식인이 학부에서 공부하는 학생을 위한 책은 분명 아니라는 점에서 전달하려는 핵심을 뽑는 수준에서 책의 부피가 조정되었으면 한다. 학문적 지식이 풍부한 교수님들이라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많았을 것이고 논점에 대한 인식의 폭을 넓히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생명공학 그리고 인간에 대한 얘기를 전하려는 의도는 충분히 읽을 수 있었으나 다년간에 걸친 담론이다 보니 중복과 혼돈이 다소 있었다는 느낌이다. 이를 주제가 전달하는 핵심 순으로 정리하려는 노력이 있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 즉 13개에 거친 테마를 얘기의 핵심인 인문학과 생명과학의 결합이라는 논제에 어울리게 요약 정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부피도 400페이지 내외가 적당하다는 생각이 든다.

둘째, 말하려는 핵심으로 차례가 정리되지 못한 측면이 눈에 거슬린다. 이 글은 유전자와 문화, 복제와 윤리, 창조와 신화, DNA와 영혼, 육체와 정신, 신화와 과학, 인간과 동물, 아름다움과 과학, 암컷과 수컷, 섹스․섹슈얼러티, 종교와 진화, 사회생물학과 정신분석학 등 13개의 분야로 나누어져 있다. 이는 전문적인 지식정도가 없는 일반 독자가 쉽게 접근하기에는 산만한 감이 없지 않다. 마치 독자를 위한 장이 아니라 자신의 지식의 높이만을 강조하는 이기적 구성이라는 생각이 든다. 모름지기 저자는 내가 생각하고 전달하려는 지식의 정도를 독자가 쉼고 간편하게 접근해오는 것을 상정한 후 책을 지을 필요가 있다. 지금 논하려는 핵심은 생명공학이 발달한 이 시대에 왜 인문학과 생명과학이 만나야 하는 것부터 출발해야 한다. 인문학과 생명과학 즉 자연과학과 왜 만나야 하는 가라는 제목조차 없다. 물론 은유적으로 이를 표현하고는 있으나 이러한 제목으로부터 책은 출발해야 되지 않겠는가 생각해 본다. 그리고 13개의 테마보다는 5개 내지 7개의 테마로 구성하는 것이 독자가 접근하기에 용이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보통 책의 접근에 있어 10개 이상을 넘어가는 소제목에 등을 돌리는 경우를 많이 보아왔기 때문이다.

내용적인 측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인문학자와 생물과학자의 전문적 지식을 토대로 엮은 저서이기에 내용을 이야기하는 것은 조심스러운 면이 없지 않지만 일단 대담을 통해 작성한 책인 만큼 새로운 시도에서 오는 미비점도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에서 두 가지를 지적해 보고 싶다.

첫째, 사회자가 있는 듯한 진행이 두 대담자의 이야기의 흐름을 단절하는 인상을 많이 주었다. 또한 사회자가 요구하는 주제와 연관이 없는 듯한 내용을 두 교수님이 논하는 구절이 더러 눈에 뛰어 마치 동분서답하는 듯한 인상을 갖게 하였다. 이는 독자로 하여금 상당한 혼란을 초래한다. 특히 소제목 선정에 있어 상식적인 차원에서도 제목과 내용이 불일치 하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책 내용의 전달방법에서 독자가 스스로 찾아가는 방법을 택함으로써 책에 대한 흥미를 유발하기 위한 수단이 될 수 있으나 시간에 쫓기고 있는 현대의 독자에게는 바람직한 진행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왜냐하면 왜 이 제목에 이런 내용이 와야 되는지에 대한 혼란으로 인해 저자가 전달하려는 메시지를 이해하는 데 많은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둘째는 전문적 용어에 대한 과용과 명확한 정의의 미비이다. 전문적 지식을 전달하려는 저자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의 학문적 깊이를 알리려는 목적에서 이를 원용하려는 것이 나쁘지는 않다고 할 수 있으나 이러한 미확정된 개념이 광범위하게 펴져 있음으로 해서 독자에게 강하게 전달하려는 핵심단어의 포착이 어려워지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도교수님은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만남을 통해 통섭이라는 용어와 두터운 세계 등 매우 개념정의가 불명확한 용어를 사용하였고, 최교수님은 영혼과 DNA의 관계에 대한 전후 다른 의견을 개진함으로써 독자에 대한 신뢰를 잃었으며, 결론적으로 언급한 호모 심비우스의 개념에 대한 정의를 심도 있게 풀어주는 장이 부족하였음이 미련으로 남았다. 이는 독자들에게 혼란을 초래하기 족하다. 독자들은 생명공학의 발달에 따라 제기되는 인간의 문제에 있어서 두 분의 격렬한 다툼이나 현란한 용의의 경쟁이 아니라 그것이 독자들에게 쉽고도 유익하게 전달됨으로써 생명공학의 발달에 따른 사회병리적 문제점을 치유하고 궁극적으로 삶의 올바른 방향의 정립이 무엇인지, 그러한 방향을 정립하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일깨워주는 데 초점을 더 맞추었으면 좋았지 않았는가 하는 아쉬움이 많았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사회에서 대두되는 이슈를 두 지식인의 담론을 통해 날카롭게 지적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반드시 읽어보아야 할 책이라는 점에 공감할 수 있었기에 책을 한 차원 다듬고 정리하여 독자층을 넓히는 작업을 서둘러야 되겠다는 생각을 갖기에 충분한 차원 높은 서적이었음은 틀림없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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