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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재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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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3월 13일 21시 48분 등록
1.

도정일: 기초학문을 우습게 아는 것이 한국의 장기입니다. 곧바로 돈이 되지 않는 것을 ‘똥’(이런 말 해도 되나?)으로 여기는 나라니까요. 당장 시장에 내다 팔 지식만 중요하게 여기는 나라는 미래를 도살하는 나라예요.(p.65)

최재천: … 저는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결정적인 차이는 ‘구라’의 유뮤가 아닌가 싶어요. (하하하) ‘구라’가 표준말인가요? (p.285)

이 책은 아직 국내에서는 생소한 ‘대담’형식을 빌러 생물학자인 ‘최재천 교수와 인문학자인 도정일 교수의 대담집을 엮은 책이다. ‘대한민국 지성사 최초의 프로젝트’ 라는 문안과 함께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만나다’ 라는 부제가 붙어있는 이 책의 표지에는 각 챕터의 제목들이 친절하게도 열거되어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책에 등장하는 두 명의 대담자들이 우리나라의 교육시스템을 논하면서 ‘실험군’과 ‘대조군’ 없이 ‘최고’,‘최초’만을 지향하는 것에 대해서 비판을 가한 부분이 있는데, 묘하게도 이 '최초의 프로젝트'라는 문안이 눈에 들어온다.

도정일: 이 분열상을 저는 어떤 칼럼에서 두 개의 다른 시간대를 가리키는 시계로 비유한 적이 있어요. 한국인은 두 개의 시계를 차고 있다. 하나는 전근대의 시간에 멈추어선 왕조의 시계이고, 다른 하나는 무섭게 내달리는 현대의 시계다, 어떤 때는 왕조의 시계에 맞춰 행동하고 어떤 때는 현대의 시계에 맞춰 행동한다, 뭐 그런 이야기였어요. (p.189)

게다가 앞으로 자주 비교하게 될 책과 형식이 비슷한 것에 대해서도 내가 아는 한 ‘최초의 프로젝트’는 아니 지 않나, 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사실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만남만을 두고 보면 그렇게 신선한 것은 아니다. 신문이나 잡지 등에서도 대담형식의 인터뷰가 심심치 않게 나오고, 토론회나 학술회의에서의 만남 등 실로 많은 프로젝트들이 진행되어 왔다. 그런 생각에 미치자 필자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읽게 된 이 책을 펼치며 다녔던, 지하철, 직장, 약속장소 심지어 화장실에서 조차 표지의 ‘최초의 프로젝트’라는 구절이 눈에 거슬렸다.

그래서 내친김에 출판사에 전화를 해 보았다.
과연 어떤 점에서 대한민국 최초라는 것인지, 과연 내가 알고 있는 전작의 책과 비슷한 프로젝트가 아닌지를 알고 싶었다. 출판사에서 보내준 자료에 의하면 ‘출판 미디어가 매개하여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만나는 최초의 사건’이라는 것이다. 그 출판사는 덧붙여서 '우리 시대의 화두를 가슴에 품고 두 세계가 넓고 깊게 만나는 것이 처음 있는 사건이라면, 그 결과를 다듬고 보충하고 정리하여 616쪽의 만만치 않은 두께의 책으로 펴내는 일 역시 마찬가지'라고 해석한 것이다.

생물학은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하고도 놀라운 연구 분야입니다. 현대 생물학과 그 연관 분야들은 그동안 인문학이 ‘인간’에 대해 말하고 생각해왔던 방식들에 일대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인문학의 인간 그림이 온통 바뀌어야 할 지경이 되었습니다. 학문으로서만 그런 게 아닙니다. 줄기세포, 복제인간, 맞춤아기, 유전자 지도, 성격 개조, 인간 개량 등 생물학 분야가 내놓고 있는 새로운 가능성들은 지금 당장 우리 눈앞에 놀라운 신세계의 도래를 알리고 있습니다. 먼 미래의 가능성이라고 생각되었던 것들을 생물학이 이처럼 빨리 끌어다 우리의 ‘현재’ 속에 실현하게 될 줄이야, 인문학이 미처 몰랐던 일입니다. 그래서 생물학과 인문학의 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초대의 글, 도정일)

개인적으로 대담집을 읽는 것은 그리 낯설지 않다. 대학시절 표지서부터 끝마침표까지 한번도 눈을 떼지 못하게 했던 조셉캠벨과 빌모이어스의 ‘신화의 힘’을 비롯하여, 청중들로 하여금 늘 불안하게 만드는 김용옥 선생과 김우중 전 대우 그룹 회장의 비행기 안에서의 대담을 기술한 ‘대화’, 아직까지 우리나라에는 번역이 되어 있지 않았지만, ‘침묵’이라는 소설로 유명한 일본작가 ‘엔도슈샤쿠’가 일본술집에서 그의 독자들과 문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것을 기록한‘文学の対話’,그리고 비교적 최근에는 월간 ‘세계의 문학’ 100호 기념 특별 기획으로 23명의 대담을 엮은 ‘춘아, 춘아, 옥단춘아, 네 아버지 어디 갔니?’에 이르기까지 대담집을 읽는 것은 그리 생소하지 않았다. 서로 다른 두 세계의 만남은 그러나 서로의 입장을 배려하지 않고서는 만날 수 없다는 점에 있어서 기획 자체가 쉽지 않은 과정을 거친다. 그리고 두 만남의 기본적인 조건은 두 분야가 대등 할 정도의 성장이다. 이 책을 통해 인문학의 사유와 과학의 사유가 만나는 일, 인문학자의 삶과 자연과학자의 삶, 연구실 안팎에서 어떤 식으로 두 분야가 ‘공생’하면서 살아야 할지 그 과정을 짚어낸다.

대담집이 가지는 가장 커다란 장점은 일단은 ‘잘 읽힌다’는 점일 것이다. 책에 기술되어있는 모든 문장들이 구어체로 소개되어있기 때문에 마치 한편의 희곡을 읽는 것처럼 대담이 진행되는 상황을 생각해 가면서 읽게 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실제 대화하는 내용을 최대한 수록하려고 하기 때문에 대화의 내용이 일반 책에 비해서 깊이가 깊지 않고 ‘수박 겉핥기’식으로 이 내용, 저 내용만 잠시 화두에 올린 채 스쳐 지나갈 수 있다는 약점이 있다. 물론 책을 편집하는 과정에서 내용을 더 수정 보완 할 수 있지만, 어느 한 주제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논의 하지 않는 이상 보완하는 내용은 ‘주석’으로 밖에 설명 할 수 없다는 약점이 있다.

또 한가지는 독자의 입장에서 보면, 읽는 동안에는 내내 지속적인 긴장감과 불꽃 튀기는 지성의 향연을 맛볼 수 있을 듯 하나, 읽고 나서 그 내용에 대해서는 뭐라 말 할 수 없는 상태, 즉 정리가 되지 않는 상태로 남아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즉, 내용을 가끔씩 정리하지 않고 이야기의 실타래만 따라가기 때문일 것이다. 한마디로 다른 사람의 ‘수다’에 동조해 주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내용의 산만함을 방지하기 위해 제 3자가 개입해서 두 사람의 대담 속에 깊이 관여해서 전체적인 주제를 이끌어가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중간중간에 의도한대로 질문과 정리를 통해서 독자들로 하여금 지루하지 않고 주제를 다시 재 확인해 주고 더불어 흥미를 유발하는 촉매자 역할을 하는 것이다.

또한 내용을 도식화하여 물처럼 흘러가는 이야기를 잡을 수 있는 장치도 마련해 놓고 있다. 즉, 대담의 주요 쟁점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놓아 쟁점을 찾아 볼 수 있도록 독자를 위한 배려 차원의 편집이 돋보인다. 책 뒤에 추가되어있는 이 항목들만을 쭉 읽어보아도 대담자들이 풀어놓은 화두들과 두 세계의 지식이 어떤 방식으로 소통되고 있는 가를 조망 할 수 있는 것이다.


2.


최재천: … 정글에 처음 갔을 때 비를 맞으며 너무 행복해서 아버지께 편지를 썼어요. 아버지, 저는 정말 행복합니다. (p.50-51)

도정일: 인문학적 삶의 여러 가지 방법 가운데 내가 첫 번째로 말하고 싶은 것이 ‘가슴을 여는 사회’입니다. 자기만이 아니라 자기 존재의 울타리를 걷어치울 줄도 알아야 하죠. 그래야 타자가 들어오거나 자기가 자유로울 수 있는 것 아니에요? 이것이 제가 생각하는 인문학적 삶의 제1조예요. (p.32)

그럼, 오늘의 대담자, 두 사람에 대해서 알아보자.
인터넷 검색창에 두 남자, 최재천, 도정일 중 먼저 ‘최재천’을 검색해 본다. 그 이유는 ‘춘아, 춘아-‘ 에서 대담을 한 23명중 한명의 대담자로 참여했으며, 최근 논란이 된 황우석 박사와 ‘나의 생명이야기’라는 책으로 베스트 셀러를 기록하기도 해서 도정일보다 상대적으로 필자가 조금 더 알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검색된 사람은 같은 이름의 정치인이자 변호사 이다. 간단한 이력이 나와있고, 현재 모 정당의 활동상황에 대해서 나와있다. 정치인이 제일 먼저 검색창에 나와있는 이유를 알 수 없어 고개를 갸우뚱 하며 쭉 검색창을 내려본다. 그러나 내가 찾고자 하는 그 최재천은 보이지 않는다. 스크롤을 좀 더 내려보니 두 권의 책만이 소개 되어있다. 앞서 소개한 책 ‘나의 생명이야기’와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 라는 책이다.
아하, 이 책을 쓴 사람이 최재천이였구나, 하면서 반가운 마음에 무릎을 탁, 하고 친다. 문득,‘학문을 연구하는 사람은 인터넷 검색창에 나오지 않나?’ 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도정일: 우리 문화계에도 자타가 공인하는 저명한 ‘구라’들이 있습니다. 백구라, 황구라, 유구라 같은 분들이죠. 죄송한 이야기 지만 ‘백구라’는 백기완 선생, ‘황구라’는 작가 황석영, ’유구라’는 유홍준 교수죠. 이제 최구라’가 등장한 거네요. (하하하) (p.287)

작년 한해 동안 논란의 중심에 있었던 황우석 사건과 묘하게 겹치면서 베스트셀러를 기록했던, ‘나의 생명 이야기’ 라는 책은 그럼 논란의 전말이 드러난 지금도 베스트셀러를 기록하고 있을까, 라는 호기심이 발동한다. 제일 유명하다는 인터넷 서점을 들어가 ‘베스트셀러’라는 아이콘을 힘있게 꾹- 하고 눌러본다.

1위부터 10위까지는 없다. 10위부터 20위까지도 보이지 않는다. 그럼… 100위까지 소개 되어있는 책에 소위 말하는 ‘황우석 신드롬’이 이 나라를 쉽쓸고 있을 무렵, 수 십 주 동안 베스트 셀러 상위를 지키고 있었던 그 책은 이제 인터넷 서점에서 점점 자리를 잃고 있다.

최재천 교수는 본인이 생물학자가 된 이유에 대해서 이 책에서도 이야기를 하지만, 2001년에 발간된 ‘춘아,춘아 …’를 통해서도 이야기한다.
처음에 의대를 진학하려 했으나, 우여곡절끝에 동물학을 전공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한동안 전공에 대해서 별 관심이 없다가 후에 전공에 마음을 두고는 유학을 결심하게 되고, 결국 미국 하바드 대학교에서 ‘민벌레의 진화생물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게 된다. 스스로 교수가 된 이유를 ‘가르치고 싶은’ 욕망 때문에 되었다고 한다. 가르치는 것을 연구하는 것보다 더 중요시 여긴다고 대담에서 당당히 밝힌다. 그리고 최근의 대학이 ‘가르치기보다는 연구기관으로 전락하는 것 같음에 우려를 나타내기도 한다. 책 날개에 적혀있는 그의 이력과 인터넷을 통해 알아본 바에 의한 그의 이력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서울대학 동물학과를 졸업한 후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을 거쳐 하버드 대학에서 사회생물학의 창시자 에드워드 윌슨 교수의 지도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하버드 대학 전임강사와 미시건 대학 조교수로 미국에서 교편을 잡다가 1994년 귀국하여 지금까지 서울대학 생명과학부에 재직하며 인간을 비롯한 여러 동물들의 성과 사회성의 생태와 진화, 그리고 동물의 인지능력과 인간 두뇌의 진화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해외에서는 주로 열대의 정글을 헤집고 다니며 동물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국내에 머물 때면 "알면 사랑한다!"라는 좌우명 아래 자연사랑과 기초과학의 전도사로 전국을 누비고 다닌다.

저서로는 Ecological Issues in a Changing World 등 다수의 전문서적 외에도 『개미제국의 발견』,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 『여성시대에는 남자도 화장을 한다』, 『열대예찬』, 『나의 생명 이야기』(공저) 등을 집필했으며, 『인간은 왜 병에 걸리는가』, 『인간은 왜 늙는가』(공역), 『인간의 그늘에서』(공역) 등을 번역 소개했다. 그밖에 과학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칼럼들을 써왔으며, TV 강의 등을 통해 대중의 과학화를 위해 힘쓰기도 했다.
'미국곤충학회 젊은 과학자상', '대한민국 과학문화상', '국제환경상', '올해의 여성운동상', '대한민국 과학기술훈장' 등을 수상했고, 현재 『진화심리학(Evolutionary Psychology)』을 비롯하여 네 개의 국제학술지 편집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그럼 이 책의 또 다른 대담자인 ‘도정일’이란 사람은 과연 누구인가?
책 날개에 적혀있는 이력을 먼저 훑어 본 후 같은 방식으로 인터넷 검색창에 그의 이름 석자를 눌러본다.

사실 필자에게는 ‘최재천’이라는 이름이 '도정일’에 비해서 더 익숙해져서 인터넷검색도 나와 같을 줄 알았다. 그러나 왠걸, 의외로 ‘도.정.일.’은 제일 처음에 그의 사진과 더불어 검색이 된다. 문득, ‘내가 너무 무식한 것인가?’ 라는 창피함이 몰려온다.
그러나 그의 이름이 왜 최재천과는 달리 별 힘들이지 않고 처음 검색에서도 나타났는지 이제 이유를 알겠다. 검색창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떠 있다.

1998년 5월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
1998년 10월 한국영상문화학회 공동준비위원회 위원장
1999년 9월 문화개혁시민연대 공동대표

아하, 하면서 조금 전보다 더 크게 무릎을 친다. 사회운동을 하고있구나. 저 정도 이력이면 정치활동을 한다고 볼 수 있지 않은가, 라는 생각을 한다.
경희대학교 인문학부 교수 이외에 ‘책읽는 사회만들기 국민운동’ 상임대표, ‘책 읽는 사회문화재단’ 이사장, ‘북 스타트 운동’ 한국추진위원장 과 ‘기적의 도서관’건립 추진위원장 등 그의 화려한 이력과 인터뷰를 담은 신문 기사들이 줄을 잇고 있다.

그 기사 중 그가 독서운동에 나선 것에 대한 인터뷰 기사를 본다.(2005년 12월17일 서울신문) 그 기사에 따르면, 그는 90년대 ‘인문학의 위기’담론이 불거진 것이 계기가 됐다고 이야기한다. “학자들이 저마다 위기상황을 외치면서도, 자리보전에만 관심이 있을 뿐 구체적 대책 마련이나 실천이 없는 것이 아타까웠습니다. 결국 인문학 위기의 핵심을 독서의 부재다, 인간과 사회의 성장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책읽기 운동부터 시작하자라는 생각으로 책읽기 운동에 나섰지요.” 라고 한다.

두터운 세계. 그것이 그가 내린 결론이었다. 그는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을 언급하면서, 미국이 세계를 너무 얇고 투명하게 만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다른 것, 심지어 대립-모순적인 것이라 하더라도 공존할 수 있도록 세계를 넉넉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것은 우리가 다시 한 번 던진 물음, 즉 인문학적 소양이란 어떤 것인가에 대한 답변이기도 했다. 두터운 세계를 위한 윤리학. 그는 그것을 이렇게 설명했다.

“타인을 이해한다, 타자를 이해한다. 우리말로 하면 역지사지, 바꿔서 상대방의 처지를 이해한다는 건데, 기본적으로 타자를 긍정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죠. 그것은 내가 나의 울타리 속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울타리를 열어서 타인을 받아들이거나, 내가 나를 버리고 타인의 울타리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죠.”(p.31)


도정일.
그는 이 책을 통해서 그의 머리속에 들어있는 담론들을 봇물 터지듯이 쏟아낸다. 개인적으로 그의 전작들을 읽어 본적이 없이 이 책과의 만남이 처음이라 그런지 그에 대한 더 이상의 검색은 하고 싶지 않은 생각이 문득 들었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만나고 싶은 사람’, 혹은 ‘직접 만나서 한바탕 설전을 치르고 싶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에 대한 요약은 하지 않겠다. 다만 그를 만나면 어떤 주제로 ‘대담’을 벌일지 그에 대한 연구를 먼저 해야 할 따름이다.

도정일: 공적인 일이요? 우리는 그런 걸 모르며 움직입니다. 그런 건 역사의 판단이죠. 하지만 판단을 기다리다가는 아무것도 못합니다. 그래서 현재 속에서 늘 결단해야 하고, 그 결과가 어떤 효과를 내는 지를 기다릴 수밖에 없어요. 순간순간 최선의 판단을 내릴 뿐이죠. (p.32)


3.


‘주님께서 나와 함께-, 또한 사제와 함께’

성당에서 미사를 보는 내내 마음이 불편하다.
미사를 보기 바로 직전에 읽은 부분이 바로 'DNA는 영혼을 복제할 수 있는가' 하는 꼭지의 대담이었기 때문이다.

최재천: …과학의 입장에서는 영혼도 결국 물질을 바탕으로 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생각하는 겁니다. 과학자의 입장에서는 영혼도 DNA의 산물일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p.264)

도정일: 이 3대 유일신 종교들은 유대 신화라는 같은 뿌리에서 나왔습니다. 이 위대한 역사 종교들이 왜 그런 혹독한 비판을 받게 되는 가는 깊이 성찰해볼 문제죠. 이 관점에서 말하면 결과적으로 역사상 가장 해로운 구라를 푼 건 유대 민족신화일 겁니다. 저는 유대 신화를 존경하고 좋아하지만 그것이 끼친 정치적 해악을 모른 척할 순 없어요. (p.291)

주 예수 그리스도와 바꿀 수는 없네-, 이 세상 영화와 영광도-.
주 예수 그리스도와 바꿀 수는 없네-, 세상 어떤 보화도-.

최재천: 순전히 정치적 드라마 인가요?

도정일: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고 생각해요. … 인간이 이런저런 신화들을 만들어낸 배후에는 아주 강한 정치적 동기와 이데올로기가 있지만, 이야기를 만드는 gal 자체는 시적 상상력 인 것 같아요.
어떤 신화가 다른 신화들을 압도하고 지배적이 이야기로 올라서는 데는 정치적 이유 외에 다른 이유도 있어보입니다. 그 이야기 틀 안에는 인간을 유한성, 아둠, 타락으로부터 이끌어내어 구원의 희망을 갖게 하는 강한 힘이 있습니다. .. 히브리 신화 플롯이 가장 강력한 기본 플롯의 하나라고 말합니다. 인간 존재의 모순과, 수난, 고통과 해방, 성찰과 희망 같은 걸 풀어내는 이야기 모델로는 히브리-기독교 서사 가 엄청 강력한 플롯이죠. (p.210-211)

주님, 저를 시험에 들지 않게 하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도정일: 가톨릭은 과학을 부정하지 않아요. 다만 어디까지를 인정하고 어디서부터는 인정하지 않는가가 중요합니다.
… 그런데 과학이 진화의 메커니즘을 밝혀내면 낼수록 창조자의 놀랍고 정교한 설계와 창조의 최종 목적이 그만큼 더 잘 드러난다는 것이 가톨릭의 생각입니다. 생물학이 진화에는 목적이 없다, 진화는 맹목이라고 주장하는 부부네 대한 가톨릭의 응답은 상당히 정교해요.
“거봐라, 그부분에 대해서 넌 모르지 않냐? 생명체의 진화 방향과 목적은 진화가 책임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니까 진화론이 그 부분에 대해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 진화의 목적과 방향을 책임지는 존재는 따로 있다. 그가 바로 창조의 설계자다.”
내가 가톨릭을 대변할 입장은 아니지만, 내가 아는 한에서는 이게 대체로 진화론에 대한 가톨릭 교회의 입장인 것 같습니다. (p.231-232)

주 예수 그리스도와 바꿀 수는 없네-.

찬송을 따라 부르다가 눈물이 한 방울 떨어진다. DNA든 뭐든 이런 감정을 무엇으로 설명 할 수 있을 것 인다. 그래. 나를 종교에 세뇌되었다고 해도 좋다. 종교 중독증, 이라고 불러도 좋다.

그러나 어쩔 것인가.

적어도 나는 내 감정에는 충실하고 싶은 것을, 내 자신은 이미 돌이킬 수 없이 너무나도 먼 곳으로 가버렸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러한 깨달음은 이내 감사의 마음으로 돌아선다.

도정일: 그러나 우리가 만약 영혼을 말한다면 그건 생물학적으로 결정되지 않고 남아있는 어떤 여백입니다. 복제할 수 없는 것, 미리 결정할 수 없는 것이죠. 사전에 결정되어 있지 않고 복제되지 않고 생물학적 복제의 방법으로는 전승할 수 없는 것, 극 영혼입니다. 나는 그 여백을 좋아합니다. (p.280)

나는 그 여백 속에 이내 평안함을 느낀다.


4.


'명품 유전자'가 인간의 미래를 결정하지 않는다.

도정일의 말처럼 '비생물학적 차원', 즉 문화적 환경과 생물학적 요인이 적절하게 결합되었을 때만이 생명은 보다 나은 길을 찾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도정일과 최재천이 제시한 미래의 인간형은 어떤 모습일까?

모순과 갈등이 공존하는 사회, 그런 사회에서 서로 화합할 수 있는 공생(共生)인간. 도정일과 최재천의 말을 조합해 보면 아마도 "두터운 세계를 살아가는 호모 심비우스"(p579)가 아닐까?

이 책은 또한, 바로 그런 사회를 위한 첫 걸음은 아닐까?

(아이디 Woogong72 님의 글
http://www.yes24.com/Goods/FTGoodsView.aspx?goodsNo=1810292&CategoryNumber=001001002001)


5.


- 여보세요, 거기 휴머니스트죠? 네. 저는 이번에 ‘대담’이라는 책을 읽은 독자인데요, 몇 가지 여쭈어보고 싶어서 전화 드렸거든요? 혹시 통화 가능하세요?

- 네. 감사합니다.

- 다른게 아니라, 이번에 이 책을 읽고 나름대로 글을 한편 써보려고 하는데요, 혹시 이 책의 편집 과정에 대한 자료를 좀 받아 볼 수 있을까 해서요. 아- 그러니까 제 생각엔 이 책의 편집과정이 흥미로울 것 같아서요.

- 아- 오늘 아침에 다 읽었는데요, 아직 정리가 되지 않아서 그냥 머리 속에만 빙빙 돌고 있는 상태라 뭐라고 말씀 드리기는 좀 그래요. 아- 그럼 그럴까요? 그럼 그냥 두서없이 말씀드릴께요.

- 좋은 말씀먼저 드릴까요? 아님 나쁜 것 먼저요? 네. 그럼 나쁜 것 먼저 말씀드릴께요. 일단은 제가 소양이 부족해서 그런지 열심히 읽긴 했는데, 무슨 내용을 읽었냐고 물어보면 대답을 할 수가 없네요. 실은 요 며칠 전부터 제 집사람이 그게 무슨 책이냐고 계속해서 물었거든요. 그런데 뭐라고 딱히 말하기가 참 애매한 거에요. 뭐- 그냥, 인문학자랑 생물학자랑 대화를 기록해 놓은 책이야, 고 했더니, 그냥 반응이 ‘ 재미없겠네-‘ 였어요. 그게 아니라고, 아주 흥미진진하다고 이야기 했지만, 뭐가 흥미진진하냐고 다시 되묻는 말에 제가 속히 답을 할 수가 없더라고요. 아- DNA 이야기도 나왔다가, 종교이야기도 나왔다가, 성에 관한 이야기도 나왔다가… 그러다 보니깐 저 자신도 막 헷갈려요.

- 다 읽고 나니깐 책 뒷부분에 주제별로 정리를 해 놓은 것이 있네요. 솔직히 이 책을 두 번 읽으라면 읽어낼 자신이 없어요. 그래도 가끔씩 찾아는 볼 것 같아요. 읽다가 줄도 그었는데, 글을 쓰면서 다시 읽을 생각하니까 머리가 아프네요.

- 그래서 말인데요, 혹시 다음 책은 각 대담자가 한 챕터씩 정리를 좀 해 놓는 부분이 있었으면 하는데요, 어떠세요? 저 같이 기억이 남지 않는 ‘우둔한’독자들을 위해서 말이에요. 지금 여기 열 세가지 주제별로 나누어 놓으신 것 있죠? 각 각에 대한 정리 비슷한 것들 말이에요. 책이 좀 유치해 질려나요? 수준이 좀 떨어질려나요? 그냥 그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대담집 마지막에 ‘공생’을 향해서 끝낸다는 것은 너무 뻔한 스토리인 것 같아서 솔직히 좀 맥이 빠졌어요. 한편으로는 이해가 가는 면도 있었어요. 책을 보면 과학에 대한 아주 분명하고 당연한 이야기만 해대는데, 그래야 솔직한 대담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런 것으로 이해했죠 뭐.

- 아- 지금 이메일 받았어요. 보내주신 편집자료 보고 있어요. 에고- 이걸 다 이렇게 꼼꼼히도 적어놓으셨네요. 휴… 2001년에 처음 기획을 하셨네요. 휴머니스트 회의실로 되어있어요. 그런데, 왜 최재천, 도정일이죠?

- 아- 네. 알겠습니다.

- 이 자료 감사하고요, 한가지만 더 여쭈어 볼께요.

혹시 도정일 교수님 이메일 주소 좀 알려 주시면 안될까요? 아- 기회가 되면 한번 만나보고 싶어서요. 어떤 분이신가 궁금해서요. 어떤 분이세요? 하하하.

- 네, 받아 적을 준비 되었어요.

- 아. 네, 알겠습니다.

- 참, 정말 마지막인데요, 이거 혹시 오디오 북으로 내실 생각은 없으시죠? 하긴, 4년 동안 하셨으니, 녹음이 있기가 좀 그렇겠네요. 그렇다고 대담자들 다시 불러다가 녹음 시킬 수도 없겠고..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럼, 이 책 값도 내려야겠네요. 하하하.

- 네- 감사합니다. 그리고 기회가 되면 제가 쓴 글도 보여드릴께요.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 앞으로 더 좋은 책 발간 해 주시길 부탁드릴께요.

- 안녕히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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