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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3월 13일 23시 00분 등록

A. 저자 소개

도정일
문학평론가. 영어학부 교수.
책 읽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하는 분으로 알고 있다. 간혹 그의 기고문을 읽은 기억이 있는데, 생각이 자유롭고 풍요로운 분이란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대담’을 읽고나니 정말 다방면에서 엄청난 식견을 가지신 분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사진에서 뵌 모습이 인문학자와 정말 잘 어울리는 분이다. 책을 내지 않는 것이 장기라고 하지만 그 분의 책을 한 번 읽어 보고 싶다.
“이성과 상상력은 함께 할 수 있습니다. 어떤 것도 포기해선 안 돼요. 모순되어 보이는 것이 함께 존재할 수 있는 세상, 그런 복합적인 세상이 좋은 세상인 거죠.”

최재천
생명과학부 교수.
소소한 글을 잘 쓰는 유명한 개미 생물학자로 알고 있다. 그가 신문에 기고한 글이나 고령화 사회를 다룬 ‘당신의 인생을 이모작하라’, 국민들에게 커다란 희망과 아픔을 동시에 준 황우석 교수와 함께 쓴 ‘나의 생명 이야기’ 등을 읽은 기억이 있다. 그의 글을 읽었을 때 과학자가 세상을 이렇게 잘 표현할 수도 있구나 하고 감탄하곤 했다. 어릴 적 그의 꿈이 문학도였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시인이 되었어도 참 잘 어울렸을 분이라고 생각했다.
“알면 사랑하게 되죠. 제가 알고 있는 단 하나의 사실이라도 사람들에게 알리렵니다. 그럼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더 자연을 사랑하고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지 않을까요.”


B. 책을 읽은 소감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만나다.’
이 책의 부제가 말하듯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분야의 전문가가 4년여에 걸쳐 대담하고, 인터뷰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근래 기술경영, 인지과학, 환경학 등 다양한 학제간 연구-책에서는 학제 간(inter) 연구, 학제를 통합한 멀티(multi) 학문을 넘어 트랜스(trans)'를 해야 한다는 문구가 있다-가 진행되고 있다. 도정일 교수는 ‘동물을 연구하는 인간’과 ‘인간을 연구하는 동물의 만남’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하지만 이처럼 다른 배경을 가진 전문가 두 분이 하나의 주제에 대해 서로의 생각을 거침없이 이야기하는 것은 이전에 볼 수 없었던 낯설고 특이한 형식이었다.

두 분의 폭 넓고 깊은 사고와 식견에서 새삼 내가 이 세상에서 알아야 할 것, 배워야 할 것들이 무척 많다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 공학과 사회과학을 다 배웠지만 나는 그 다지 아는 것도 많지 않고, 과학적인(?) 사고도 부족하다. 두 분의 배경과 지식, 지혜를 모아 하나하나 읽어가는 것은 큰 기쁨이기도 했다. 뿌리가 넓고 깊게 퍼진 나무가 잘 자랄 수 있듯이 앞으로 다양한 분야의 것들에 관심을 가지고 고민해 봐야겠다는 생각이다. 또 내가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과학적인 방식에서의 접근 능력을 더 키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책에서 다루는 분야는 매우 광범위하다.
진화론과 창조론(지적설계론), 예술, 신화, 거짓말, 섹스, 생명복제(황우석 사태를 예견한 듯한 언급도 있다), 이공계 기피현상, 환경문제, 기술 중시 현상, 대학원 교육 등 인류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부분부터 현재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문제들까지 매우 다양한 분야를 논하고 있다. 이러한 화두와 쟁점에 대해 시종일관 자신들이 몸담고 있는 학문의 입장에서 주장하고, 때로는 합의(?)를 볼 때도 있다. 서로의 주장을 어린 아이 타이르듯이 부정하는 글들은 읽은 이로 하여금 아슬아슬한 기분까지 들게 했다.
결국 두 분이 추구하는 것은 ‘경쟁을 넘어 협동으로’라는 ‘공생인간, 즉 호모 심비우스’로 거듭나는 것으로 결론지어졌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 경쟁은 불가피한 무엇이다. 우리는 입학하기도 전에 또래 친구보다 무엇이든 잘 해야 하고, 학교 성적이 남보다 앞서야 하고, 좋은 대학을 나와서 취업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알게 모르게 경쟁해야 하고, 경쟁을 강요받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살아가면서 개인의 적성과 기호는 무시되기 쉽다. 또한 모난 돌은 정을 맞기 쉽다는 말이 있듯이 다양성이 무시된 사회를 살아가고 있다.

왜 우리는 남을 이겨야만 행복한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지, 모두 비슷한 과정을 거쳐 어른이 되고 있는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분명 “너 죽고 나 살자”는 식의 삶으로서는 우리 사회가 건강하지도, 지속 가능하지도 못할 것이다. 다른 사람을 인정하고, 존중할 때 그러한 마음이 우리 사회를 더욱 성장하게 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가. 자기 밥그릇 챙기기에 급급한 것 아닌지, 나하고 조금이라도 다른 사람은 인정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 본다.

책에서 최재천 교수는 남을 이해하지 못하고서는 이 세상 그 어떤 동물도 살아남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소위 무한경쟁시대에서 다 함께 협력하고 공생하는 분위기가 아쉬운 때이다. 그런 만큼 두 분의 ‘공생인간’이라는 커다란 화두가 더욱 빛을 발하는 것 같다.


C. 다시 보고 싶은 문장

1. 즐거운 몽상과 끔찍한 현실
<65p, 도정일>
당장 시장에 내다 팔 지식만 중요하게 여기는 나라는 미래를 도살하는 나라에요. 기술 관료들은 기술만 문화산업이 되는 줄 압니다. 촬영술을 가르치고 특수효과 기술을 가르친다고 곧바로 좋은 영화가 나옵니까? 문화산업에서 최종적으로 중요한 것은 이야기(storytelling)입니다. 인문학은 문화산업의 기초 자원이죠. 인문학은 온통 ‘이야기 창고’ 아닙니까. 인문학의 관점에서 보면 과학도 이야기의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인문학의 기초가 없는 나라에서는 수준 높은 문화산업이 제대로 되지 않아요.

<79p, 도정일>
고통스럽지만 그 선택은 사람을 행복하게 하고 떳떳하게 합니다. ‘고통을 통해서만 도달하는 진실의 길’이란 말하자면 그런 경우죠. 선택의 고통 속에 이미 행복이 들어와 있는 겁니다. 이 경우 진실은 바른 선택과 분리될 수 없고, 바른 선택은 ‘좋은 삶’과 분리되지 않습니다. 나는 이 ‘좋은 삶’이 행복의 경지라고 생각합니다.

<92~93pp, 최재천>
진리의 행보는 우리가 쳐놓은 학문의 울타리 따윈 거들떠보지 않죠. 학문의 경계란 자연에 실재하는 게 아니라 우리 인간이 진리의 궤적을 추적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그어놓은 거니까요. 진리는 학문의 국경을 비웃기라도 하듯 마음대로 넘나드는데 우리 대부분은 스스로 만들어 놓은 학문의 골방에 쭈그리고 앉아 창 틈으로 새어들어 오는 가는 빛줄기만 붙들고 평생 씨름하고 있지 않습니까?

<106p, 도정일>
과학에 관한 한 서양 문화라고 할 때의 ‘문화’는 문화산업도 대중문화도 아닙니다. 근본적으로 정신 활동의 자유, 곧 탐구와 비판, 검증과 논박의 자유를 허용하고 존중하는 문화가 중요합니다.

<108~109pp, 도정일>
기술에 대한 우리 사회의 매혹은 시장가치, 돈, 신분 상승, 입신양명, 실용성의 요구에 사로잡혀 있어요. 지금 학생들의 이학계열 기피가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데, 과학에 대한 사회의 태도는 물론이고 연구 인력을 위한 고용구조 변화 같은 기본 정책이 달라지지 않는 한 젊은 세대의 이과 기피 현상은 해결되지 않습니다.

2. 생물학적 유전자와 문화적 유전자
<124p, 도정일>
나는 ‘인간’에 대한 인문학의 핵심적 질문으로 세 가지를 꼽습니다. “나는 무엇인가?” “다른 사람에 대해서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여기에 있는가?”

<133p, 도정일>
말하자면 인간의 역사는 부단한 윤리적 개입과 목적과 계획의 역사죠. 이 부분을 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인간이 부단히 실패하고 엎어지고 자빠지는 수가 있어도 윤리적. 도덕적. 정치적 개입이 없다면 인간사회는 망하니까요. 진화론이 망할 수는 있어도 사회가 망하면 안 되죠.

<135p, 도정일>
본능적인 욕구를 제어하는 것이 문명이고, 그 부자연스런 제어가 ‘문명에 대한 불만’을 야기한다고 프로이트는 말합니다.

<154p, 최재천>
르윈턴 교수는 그의 《3중나선》이란 저서에서 유전자만 가지고 생명현상을 이야기하는 것은 상당히 위험하다고 이야기해요. 유전자. 생명체. 환경 세 가지의 상호작용을 봐야 한다는 거죠. 환경이 생명체에 영향을 주고 그 생명체가 어떤 처지에 있느냐에 따라 유전자의 발현이 변한다는 겁니다.

<163p, 도정일>
궁핍으로부터의 자유가 사회적 기획이라면 결함으로부터의 자유는 훨씬 개인적인 생명공학적 기획입니다. “내가 나를 뜯어고치겠다는데 뭐가 문제냐?” “내가 천재 아들을 낳고 싶다는데 당신이 왜 참견이야?” 이런 개인 자유론이 사회 전반의 지배적 에토스가 되는 거죠.

3. 생명복제, 이제 인간만 남은 것인가
<170p, 도정일>
공학적 사고는 공리적 효용을 계산하는 데 아주 빠릅니다. 기술자들은 난치병 치료나 인류의 미래 복지를 위해 필요하다고 말하죠. 하지만 모든 과학적 실험에는 어두운 면이 있어요.

<175p, 도정일>
인문학은 그 방법이란 게 ‘무엇을 위한’ 방법인가를 따집니다. 목적의 정당성 여부를 질문하는 거죠. 어떤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최선의 효과적 방법이 기술이라는 건데, 이때 방법만 생각하고 목적의 정당성은 따지지 않는 것이 기술의 맹목성입니다.

<176p, 최재천>
저는 언제나 자유를 얻는 가장 좋은 방법은 스스로 구속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남이 날 구속하기 전에 내가 스스로 나를 구속하고 그걸 남이 인정하면 가장 이상적이라는 말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저는 우리 과학자들이 충분한 인문학적 소양을 쌓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87~188pp, 최재천>
사회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비합리성이나 비리 등은 과학적 사고가 결여된 상태에서 문제를 기술적으로 해치우려고 했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라고 봅니다.
저는 늘 “과학적인 사고를 하자”고 떠들고 다닙니다. 앞서 말한 자립형 사립고 문제도 마찬가지죠. 교육 전체의 문제는 더하겠죠. 문제가 될 만한 일도 아닌데 첨예하게 대립까지 하는 걸 보면 정말 답답합니다. 그래서 저는 언제부터인가 ‘과학의 대중화’가 아니라 ‘대중의 과학화’를 추구해야 한다고 이야기하게 됐습니다.

<189p, 도정일>
한국인은 두 개의 시계를 차고 있다, 하나는 전근대의 시간에 멈추어선 왕조의 시계이고, 다른 하나는 무섭게 내달리는 현대의 시계다, 어떤 때는 왕조의 시계에 맞춰 행동하고 어떤 때는 현대의 시계에 맞춰 행동한다,

<191p, 최재천>
학위라는 게 그 사람이 그 분야의 대가가 되었다고 주는 게 아니잖아요. 홀로 설 수 있다는 자격증을 주는 건데. 제가 보기에 우리 대학들에서 박사학위를 받는 사람들 중에 진정으로 홀로 설 수 있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아요.

4. 인간 기원을 둘러싼 신화와 과학의 격돌
<207p, 도정일>
“생물세계(biosphere)에서 일어나는 모든 혁신과 모든 창조의 유일한 기원은 우연이다. 순수한 우연, 절대적으로 자유롭고 맹목적인 그 우연만이 진화라 불리는 거대한 건축물의 뿌리이다. 그것은 우리가 생각해볼 만한 여러 가능한 가설들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현대 생물학의 중심 개념이다. 오늘날 우연은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유일한’ 가설이며, 그동안의 관찰과 실험에서 ‘사실’로 확인된 것들과 일치하는 유일한 개념이다.”

<212p, 최재천>
생물학이라는 학문이 죽음을 연구한다는 게 장난으로 하는 소리가 아닙니다. 생명체가 하나 만들어진 후에 죽어야 한다는 것을 설명하기가 대단히 어렵습니다. 유전자가 하나의 생명체를 꽃피웠는데, 사람 같으면 100조 개의 세포를 만들어서 잘 사는데, 과학적으로 생각할 때 사실 이것을 끝내야 할 이유가 딱히 없습니다. 잘 하고 있는데, 기왕에 만들어놓았는데, 그 생명체로 하여금 계속 유전자를 복제하게 하면 되는데 말이죠.

<240~241pp, 도정일>
생태 파괴와 자연 오염은 인간이 저지르는 가장 우매한 행위죠. 종의 절멸을 초래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도 지금 지구상의 거의 모든 나라는 개발과 생태 파괴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 그런데 그 결과는 인간이 번식할 기회가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되레 오그라들게 되는 겁니다. 환경 호르몬 증가와 정자 감소 같은 것은 생식능력의 위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결국 유전자의 관점에서 보면 기술 발전이 유전자의 자기복제에 도움을 주어야 하는데, 오히려 반대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어 보인단 말이죠.

5. DNA는 영혼을 복제할 수 있는가
<252p, 최재천>
여기저기서 복제인간을 만들다 보면 언젠가는 복제인간이 좀 시시해질 거라는 생각입니다. 몇 사람 만들어보고는 어느 정도 흥미를 잃어버릴 것 같다는 얘기죠.

<264p, 최재천>
‘만질 수 있다’는 점에서가 아니라 ‘변화한다’는 측면에서, 과학자의 입장에서는 영혼도 결국 물질을 바탕으로 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생각하는 겁니다. 과학자의 입장에서는 영혼도 DNA의 산물일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269p, 도정일>
인간이 영혼을 생각해낸 것은 유한성에 대한 보복의 한 형식이라고 우선 말하고 싶습니다. 시간성을 초월하려는 인간의 욕망은 현실적으로는 충족 불가입니다. 그러나 상상으로는 가능하죠. 이 관점에서 말하면 영혼은 시간의 한계를 벗어나려는 욕망의 산물이면서 그 욕망의 상상적 충족방식이 됩니다.

<277p, 도정일>
영혼은 복제되지 않고 유전되지 않는다, 그러나 영혼이란 것을 끊임없이 생각하게 하고 그 존재를 믿고 싶어 하는 성향(disposition) 자체는 인간의 DNA에 들어 있다, 생물학적으로 복제되고 유전되는 것은 이 성향이라는 게 제 수정안입니다.

6. 인간, 거짓말과 기만의 천재
<285p, 최재천>
저는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결정적인 차이는 ‘구라’의 유무가 아닌가 싶어요.

<285~286pp, 도정일>
한때 진리로 여겨졌다가 진리가 아닌 것으로 판명되어 나자빠진 이야기들, 곧 ‘구라’들이 즐비한 동네, 그게 과학사 아닌가요? 이건 픽션이 아니라 진리다, 그랬다가 가설이 엎어지면 한판의 ‘구라’가 되는 거죠.

<293p, 최재천>
우리 인간의 뇌 발달 과정에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 중 하나가 자기기만(self-deception)이에요. 다른 동물들도 자기를 속여가면서 온갖 행동들을 할까 싶어요. 자기기만의 대표적인 경우가 ‘난 할 수 있어’, ‘하면 된다’ 같은 겁니다. 누가 봐도 못할 일인데 스스로에게 하면 된다고 하는 거죠. 그래놓고 때론 불가능한 일들을 실제로 해내잖아요.

<302p, 최재천>
과학도 인문학이 없으면 할 수 없습니다. 과학도 결국 언어를 사용하는 학문 활동이고, 기본적으로 분석과 종합으로 이뤄진 학문이라고 하는데, 분석은 어떨지 몰라도 종합을 하려면 결국 인문학적 소양이 필요합니다.

<315p, 최재천>
“생명은 어떻게든 길을 찾는다(Life will find a way)"

7. 예술과 과학, 진화인가 창조인가
<323p, 최재천>
도대체 예술이라는 행위가 인간사회에서 어떻게 진화할 수 있었는가. 도무지 쓸모없는 짓 같아 보이는 예술이란 행위가 왜 이렇게 고도로 진행될 수 있었는가. 이런 질문에 대해서는 어떤 생물학자도 속시원하게 대답하지 못했죠. 상당히 오랫동안 고민했지만요. 생물학이 설명하기 어려운 몇 가지 문제들이 있습니다. 인간은 왜 자살하는가, 그리고 왜 인간은 동성애를 하는가. 이런 문제는 여전히 생물학이 속시원히 풀어내지 못한 숙제입니다. 유전적으로나 진화론적으로 전혀 효용이 없는 행동들이니까요.

<330p, 최재천>
실용 가치도 없고 생존에 득보다는 해가 더 많이 될 때도 예술 행위를 하는 걸 보면 번식에 결정적인 이득이 있었을 것이라는 결론이 가능한 겁니다.

<334p, 도정일>
근본적 질문은 단 하나의 정답 찾기보다는 이런저런 생각을 촉발하게 하기 때문에 중요하다는 소리도 했고요. 요즘은 근본적 질문이란 것이 너무 외면당하고 있는 것 같아 자꾸 강조하게 됩니다.

<354p, 최재천>
우리 인간이 고령화하면서 나이 든 여성들은 더 이상 자식을 낳지 않고 젊은 여성들이 낳은 자식들을 돌봐줄 수 있게 되어 삶의 여유가 생겼다는 겁니다. 그 여유가 우리로 하여금 문자를 개발할 수 있게 했고, 그로 인해 예술과 문화가 탄생했다는 설명입니다.

<361p, 도정일>
새로운 것을 내고 싶어 하는 것도 과학과 예술의 공통점일 겁니다. 과학은 새로운 발견이나 설명을 내려 하고, 예술은 새로운 표현을 내놓고자 하죠. 그래서 예술과 과학에는 자유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365p, 도정일>
죽어도 거짓말을 하는 게 인간입니다.

8. 동물의 교미와 인간의 섹스
<381p, 최재천>
오로지 인간만이 스스로를 자제해야 하는 순간에 와 있는 유일한 생물이죠.

<386p, 최재천>
사회 전체를 보면 마치 우리가 섹스를 자제하고 번식을 자제하는 동물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 중에서 잘 나가는 개체들은 여전히 번식을 극대화하고 있죠. 단지 힘없는 존재들만이 사회적으로 어떤 이념과 체제에 의해서 번식을 못한 채 밀려 있는 것이고, 가장 힘 있는 존재는 그것을 교묘하게 조절하면서 자기 유전자의 전파를 극대화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겁니다.

<387p, 도정일>
“노인, 병자, 사회적 약자들을 얼마나 보살펴줄 수 있는가가 문명의 품질을 결정한다.”

<399p, 최재천>
영국 시인 블레이크(William Blake)는 일찍이 “욕망을 절제할 줄 아는 사람이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그 욕망이 절제할 수 있을 만큼 약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지만, 저는 인간이 욕망을 절제하도록 진화했다고 생각합니다.

9. 판도라 속의 암컷, 이데올로기 속의 수컷
<423p, 도정일>
자연 임신과 출산의 여러 가지 불편함, 출산의 고통과 위험. 이런 것을 다 절감하거나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면 누가 그 세상을 마다하겠습니까? 미래 사회의 사람들은 기술이 열어놓는 가능성과 그 가능성 때문에 잃어버려야 하는 것들 사이에서 아마 심각한 고민을 해야 할 겁니다.

<427p, 도정일>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차별과 문화적 편견을 넘어서야 한다는 것이 지금의 인문학적 입장이죠.

10. 섹스(sex), 젠더(gender), 섹슈얼리티(sexuality)
<440p, 최재천>
이건 매우 위험한 발상일 수도 있는데, 저는 인간은 누구나 동성애적인 성향을 갖고 있을 것이라고 봐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모두 그런 성향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선천적으로 그런 성향이 많은 사람은 주변 환경이 어떻든 결국은 그 성향을 드러내는 것이고, 많지 않은 사람은 주변 환경이 억압적이면 결국 드러내지 못하는 거죠. …… 저는 그런 성향이 식물이나 동물 세계에도 있고 우리 인간에게도 있는데, 이것이 사회적으로 보이느냐 안 보이느냐의 차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447p, 도정일>
권력을 많이 가진 자는 덜 가진 자보다 당연히 우수하거나 우세한 것으로 여겨지게 되죠.

<452p, 최재천>
대개 자기와 너무 다른 남자는 아니지만, 또 자기와 너무 가까운 남자도 고르지 않는 메커니즘들이 있어요. 암컷들이란 하릴없이 다른 것에 대한 매력을 엄청나게 느끼는 동물들인 것 같아요.

11.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소설인가 과학인가
<463p, 최재천>
프로이트의 이론은 저 같은 진화생물학자의 입장에서는 문학적 상상력에서 나온 일종의 신화에 불과해요. 한마디로 과학적 근거가 전혀 없는, 근거를 주려고 해도 도저히 줄 수 없는 이론이죠.

<473p, 도정일>
미신은 비합리적이면서 통찰도 없고, 신화는 비합리적이면서도 깊은 통찰을 담을 수 있습니다.

<477p, 도정일>
방법은 철저히 과학적으로 하되, 머리는 신화적으로 돌리는 게 과학의 묘수가 아닐까요?

12. 다양한 생명체와 문화가 공존하는 세상
<499p, 도정일>
경제 발전보다 수십 배 더 어려운 것이 정치 발전이고 민주주의예요. 사회 민주화는 제도나 법률의 힘만으로는 되지 않습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전통사회는 수직 서열 사회죠. 이 수직성의 사회를 수평성의 사회로 바꾸고 합리성을 확장하는 일, 이것이 ‘사회적 근대’의 알맹이입니다.

<500p, 도정일>
“되는 일도 없고 안 되는 일 없는 나라”

<505~506pp, 최재천>
일본이 월드컵을 준비하는 모습과 우리가 월드컵을 준비하는 모습을 비교하더라구요. 우리는 거국적으로 준비했고, 일본은 지방자치단체들이 제각기 조용히 준비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한 가지 예를 드는데 일본은 도쿄를 개최 도시로 뽑지 않았다는 거에요. 우리나라는 당연히 서울을 뽑아놓았는데, 일본 사람들은 이 기회에 작은 지방 도시를 키우자고 생각했다는 거죠. 누구나 도쿄로 들어올 테니까 도쿄는 지정하지 않아도 어차피 인지도가 올라간다는 거죠.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런 생각을 전혀 할 줄 모른다는 겁니다.

<510p, 도정일>
문명이 망할 때에는 망할 이유가 있는데, 그 이유 중에 아주 중요한 것이 생태환경의 파괴라는 게 다이아몬드 교수의 지적입니다.

<515~516pp, 도정일>
나는 두 가지 방법으로 인간의 탁월성을 생각해 보고 있습니다. 첫째, 인간은 틀림없이 이기적 동물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 이기적 성향을 거스를 줄 아는 존재입니다. …… 두 번째 생각은 인간이 ‘지금 여기’에 매어 있으면서도 그 결박을 넘어 다른 것을, 지금 여기의 ‘너머’를 보는 능력을 갖고 있다는 겁니다. ‘지금’을 넘어 과거와 미래를, ‘여기’를 넘어 다른 곳, 다른 세계, 다른 가능성, ‘저기’를 보는 거죠.

<521p, 도정일>
지금 시대의 인간이 모르는 문제, 지금은 눈에 띄지 않는 문제들이 미래에는 얼마든지 제기될 수 있어요. 그 미지의 문제들에 대한 해답을 소리 없이 저장해 놓고 있는 것이 생태계입니다.

<543p, 도정일>
가장 강한 문화는 왕성하게 다양성을 유지하는 문화일 겁니다.

<546p, 도정일>
“신의 언어와 짐승의 언어에 가까이 다가가는 것, 그것이 시다”

13. 21세기형 인간, 호모 심비우스의 번식을 위하여
<559p, 도정일>
아무리 투명성을 강조해도 인간의 가슴은 투명해지지 않아요. 한 자도 안 되는 가슴이 사실은 깊은 골짜기거든요. 그 가슴의 골짜기는 신도 들여다볼 수 없습니다. 어둡고 컴컴하고 깊어서 하느님의 눈으로도 그 안을 볼 수가 없어요. 신조차도 들여다볼 수 없는 세계, 그게 내가 말하는 ‘두터운 세계’입니다. 인간에게는 그런 두터움, 심연(深淵)이 필요합니다. 유한한 인간이 그런 심연을 가질 권리도 없다면 억울하죠.

<559p, 최재천>
그게 소위 ‘경쟁배제의 원리’입니다. 두 종이 생태적인 요구 조건이 비슷한 경우에는 같은 지역에 공존할 수 없다는 거죠. 그래서 종들은 언제나 서로 원하는 것을 달리 하는 방향으로 진화해 갑니다. 이른바 ‘니치(niche)'를 달리 하며 존재하는 거죠. 진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모든 동식물이 서로 조금씩 달라진 이유는 상대방하고 똑같으면 둘 중 하나가 멸종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에 공존하기 위해 서로 다른 니치를 갖도록 변화한 겁니다.

<564p, 도정일>
두터운 세계는 다양성. 다수성. 다원성의 세계입니다. 이 ‘3다’의 세계를 유지하는 데 무엇보다 ‘관용의 윤리학’이 필요한 것 같아요. 이 때 관용은 강자가 약자에게 베푸는 자비가 아닙니다. 다른 것, 타자, 타인, 차이에 대한 존중이 현대적 의미에서의 ‘관용’이죠. 이게 없으면 자유민주주의도 안 돼요. 그런데 ‘존중한다’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아요.

<565p, 도정일>
좀 난삽한 이야기일지 모르겠는데, ‘나’라는 존재, ‘나’라는 주체가 사실은 타자에 대한 책임 속에서 만들어진다는 생각이 필요해요. 여기서 주체라는 것이 발생하는 기원 지점은 ‘나’가 아니라 ‘타자에 대한 책임’입니다. ‘나/너’를 절대적으로 구분하던 태도에서 벗어나 “네가 없으면 나도 없다”라는 ‘책임의 윤리학’이 나오게 되죠. “나는 누구인가?”라는 건 전통적인 정체성 질문입니다. 이 질문을 책임의 윤리학으로 대답하면 “나는 타자에 대해 책임지는 자다”가 됩니다.

<595p, 도정일>
한정된 자원을 가진 상태에서 경쟁을 불가피합니다. 그러나 경쟁에서 이기는 방법이 무차별적 전투만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다른 생물들과 동맹을 맺은 생물들이 더 잘 살아남았죠. 저는 우리 인간이 이번 세기에 반드시 해야 할 일은 다시금 공생인간, 즉 호모 심비우스로 거듭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596p, 도정일>
지금처럼 풍요의 맛을 본 시대에는 삶의 방식을 바꾸기가 더 어렵고 정치 민주주의 아래서는 국민을 설득하고 동의를 얻어야 하니까 본질적 변화를 시도하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민주주의가 두터운 다양성을 위한 체제인데, 그것이 또한 다양성을 어렵게 하는 얇은 사회를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이 문젭니다.

<597p, 최재천>
지구에서 무게로 볼 때 가장 성공한 생물이 현화 식물이고, 숫자로 가장 성공한 생물이 곤충입니다. 두 생물이 서로 꽃가루받이를 통해 공생하고 협동하여 함께 큰 성공을 거둔 겁니다. ‘너 죽고 나 살자’ 식으로 살아남은 생물보다 서로 돕고 산 생물들이 훨씬 더 잘 살아남았습니다.


D. 내가 만약 저자라면

‘대담-인문학과 자연과학이 만나다’라는 책을 어떻게 재구성하면 좋을까.

먼저 열 세 개의 테마에 덧붙여 보다 구체적인 사회적인 쟁점이나 문제를 두세 가지 더해서 다루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 책에서는 생명복제 문제에 대해 자세하게 논의하고 있으며, 환경이나 고령화 문제도 언급하고 있다. 그 밖에 다양한 사회적인 쟁점들을 논하고 있다. 그렇다면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인문학자와 자연과학자가 내놓은 실제적인 해결방안을 같이 논의하고 정리해 보는 것이다.

예컨대 자동차에 의한 대기오염이 날로 심각해 져가고 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우리나라의 도로 포장율이 선진국에 비해 낮은 수준이기 때문에 도로 건설을 계속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건설된 도로를 다시 자동차들이 채우고, 다시 모자란 도로를 건설하고... 결국 자동차와 도로 건설의 악순환으로 환경오염이 심해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구체적인 문제에 대해 조금 더 심도 있는 두 분의 말씀을 들어 보고 싶다. 그 과정에서 미처 우리가 알지 못했던 것들도 깨닫고, 좋은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더욱이 두 분은 사회문제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계신 분들로 알고 있다.

두 번째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모습이 그대로 유지된다면 10년, 20년 후의 미래상은 어떻게 될 것인지 인문학자와 생물학자의 자세한 견해를 듣는 것이다. 일부 책을 인용하거나 대담하는 과정에서 미래를 언급하고 있지만 조금 더 비중 있는 주제로 다루었으면 어떠했을까 한다.
최근 변화나 미래의 트렌드에 대해 언급한 책이나 자료가 많이 발간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내용은 실용적인 면에 치우친 감이 있다. 경제. 경영분야 또는 공학뿐만 아니라 인문학, 자연과학에서 보는 현재의 우리가 나이 들어 살게 될 미래의 모습도 궁금하다.

미래학자는 아니지만 독자, 특히 청소년에게 앞으로의 세상이 어떻게 변할 것인지 대담하고, 두 분께서 마지막에 강조했던 21세기형 인간의 모습을 첨언했더라면 더욱 좋았을 것이다.

세 번째는 두 분의 강의를 듣고, 청중들과 자유롭게 질의. 응답하고 토론하는 내용을 더하는 것이다.
우선 두 분께서 가르치는 직업을 가지고 계신 만큼 각계각층에서 모인 수십여 명의 청중을 대상으로 대담과 인터뷰에서 중요하게 다루었던 것들을 강의하신다. 그리고 청중들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여 이를 하나의 소주제로 정리하는 것이다. 청중들도 두 분의 의견에 공감하는 것과 그렇지 못한 의견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리고 책이라는 중요한 매개체를 통해서 뿐만 아니라 직접적인 만남을 통해 두 분의 소통이 수십여 명의 소통으로 이어지고, 이는 수천 명, 수만 명의 소통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두 분 저자께서 다양성, 협동과 공생을 강조하신 만큼 많은 사람들의 배경과 견해는 아주 소중하고, 뜻 깊은 내용들로 채워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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