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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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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3월 15일 03시 23분 등록
* 저자소개
솔직히 저자들은 한두번 들어본 적은 있지만 익숙하지는 않다. 그만큼 그들에 대한 정보도 많이 알고 있지 못하다. 인터넷 검색을 이용해 보기도 했지만, 매끄럽지가 못하다. 책 속에 소개된 그들의 이야기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문구로 그들의 소개를 대신한다.

- 도정일
"타인을 이해한다, 타자를 이해한다. 우리말로 하면 역지사지, 바꿔서 상대방의 처지를 이해한다는 건데, 기본적으로 타자를 긍정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죠. 그것은 내가 나의 울타리 속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닐, 울타리를 열어서 타인을 받아들이거나 내가 나를 버리고 타인의 울타리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죠."
도정일은 다른 사람의 부탁을 뿌리치지 못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오죽했으면 집에서 "좀 원칙을 갖고 생활하라"고 사정했을까. 하지만 그것이 그의 철학이고 천성이었다. 개인적으로 쓰고 싶은 글, 하고 싶은 일이 쌓여 있어도 그의 저울추는 항상 공적인 일로 기울었다.

- 최재천
"알아야 제대로 사랑할 수 있는 겁니다. 자연에 대해 점점 더 알게 되면 될수록 저절로 자연을 사랑하고 자연과 함께 살게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지금 젊은 친구들을 20년 정도만 열심히 가르치면 그들이 우리 사회의 주인이 되었을 때 환경은 저절로 보호될 겁니다. 지나치게 이상적인 생각이라고 탓할지 모르지만 제가 보기엔 그게 그래도 빠르고 현실적일 것 같아요."
최재천은 "학자로서 연구를 멈추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라는 다짐을 한번도 어겨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그가 쓴 많은 칼럼들과 대중용 과학서들은 스스로 결심한 연구 계획을 양보해서 얻어낸 것들이 아니다. 늦은밤 노트북을 꺼내들고 짧은 글이라도 써야겠다고 생각하는 건 그가 가진 소박한 신념 때문이다. "알면 사랑한다."


소감
정말 바쁜 일주일을 보냈다. 몸보다는 마음이 분주했다. 그 사이에는 ‘대담’이라는 책이 있었다. 부담스러웠다. 읽어내야 하는 기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1/3정도를 읽고나서 바쁜 일정 때문에 한참 책을 묻어둬야 했다. 그리고 나서 3일만에 모두 읽어냈다. 잘 읽혔다. 대담이라는 형식을 빌려 쉽게 구성해 놓았기 때문인 것 같다.
다만, 내용은 어려웠다. 내가 읽기에는 많이 어려운 책이었다. 신화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지 못하고, 그렇다고 과학적 지식이 풍부하지 못했기에 여러 학문적(?)단어나 신화의 내용이 나올때면 이해가 조금 어려워 여러 번을 반복해 읽어야 했다.

공부해야 할 것이 굉장히 많다는걸 느끼면서 동시에 세상의 빠름에 뜨끔했다. 특히, 최재천 교수님이 황우석 교수에 대해 발언하는 부분은 불과 2년전의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씁쓸할 정도로 오래전의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과학자의 윤리적 양심과 책임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싶었으나, 적절하지 못한 예가 되어버렸다.
“황교수는 2004년 3월 16일에 이제는 인간 배아로는 실험하지 않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렇게 상식적인 윤리를 가진 과학자라면 막무가내로 실험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잖아요. 황교수 입장에서도 어느 단계까지 도달하기 위해서 윤리적으로 아슬아슬한 경계를 걸어갈 수는 있지만, 그래도 사회가 윤리적 제동을 걸면 가던 길도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겁니다.” (171) – 그러나 황우석은 다시 돌아오지 못했죠? -_-;;;;;
동물의 교미와 인간의 섹스의 가장 큰 특징을 은밀성에 찾는 대목은 흥미로웠다. 그러고보니 우리회사 옥상에서 보면 옆 건물에 키우는 강아지 두마리가 벌건 대낮에도 그짓을 하고 있는게 몇번 눈에 띄었던 그 상황이 이제서야 이해가 됐다. ㅋㅋㅋㅋㅋ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내용을 생물학적으로는 굉장히 부정하고 있는 내용 또한 새로웠다. 내가 대학을 다니면서 교육학을 배웠을 때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을 상세히 다루고, 무의식이나 초자아, 오디푸스 콤플렉스에 대해서도 세분해서 외웠던 기억이 난다. 각 학문마다 받아들이는 방식은 다르겠지만, 그 동안 주어진 내용을 얼마나 개념없이 받아들이고 외웠는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나는 다소 과학적인(?) 사고를 하고 있는 듯 하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도정일교수 이야기 부분이 훨씬 많았고 내용 또한 미사어구와 함께 훨씬 부드럽게 이야기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정리를 위해 밑줄을 그어둔 문구는 최재천교수의 이야기가 더 많았다. 나도 은연중에 과학적으로 증명될 수 없는 신화의 이야기에는 공감하지 않나 보다. 혹은 도정일 교수의 다소 말장난에 가까운 인문학적 풀이보다는 짧고 간결한 최재천 교수의 과학적 정의에 더 동의 하는것 같다.

두 학문의 대가의 만남인 만큼 다양한 이야기와 이론이 나온다. 보이는만큼 읽히는, 그래서 한번쯤 다시 읽으면 조금 더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을것 같은 책이다. 다시 읽어봐야겠다.


*. 책속의 글들

1. 즐거운 몽상과 끔찍한 현실
도정일 : 그리스 신화에서 신과 인간을 갈라 놓는 결정적인 차이는 유한성과 불멸성입니다. "인간은 죽고, 신들은 죽기 않는다"죠. 지금 생명공학은 인간이 불멸성의 문턱에 올라설 수 있다는 기대를 갖게 하고 있습니다. (69)

최재천 : 우울증은 공포에 적응하려는 본성이고, 나쁜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지요. 그래서 우울해질 수 있다는 것은 굉장한 ‘능력’이기도 한겁니다. 공포를 느끼는 능력, 우울함을 느끼는 능력도 중요한 인간의 본성입니다. 생물학자인 제 입장에서는 우리의 정신에화학의 칼 (chemical knife)을 들이대는 약물들의 오남용이 굉장히 걱정됩니다. (72)

도정일 :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좋은 삶이지 행복 그 자체는 아닌 것 같아요. 행복을 위해 바른 선택을 포기하면 좋은 삶이 망가지고 행복도 날아갑니다. 생명공학 기술은 ‘통증 없는 세계’를 제시하지만, 공학 기술이 도덕적 판단과 선택, 그리고 그 선택에 따르는 고통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건 해결될 수 잇는 문제가 아니고, 더더구나 인간이 해결하겠다고 나설 수 있는 문제도 아니거든요. (79)

도정일 : 서양 과학을 낳은 것은 과학을 가능하게 한 문화, 사고방식, 절차들인데 이것들을 다 생략하고 그 결과물인 과학기술만 도입하자는건 안이한 생각이죠. . . 과학에 관한 한 서양 문화라고 할 때의 ‘문화’는 문화산업도 대중문화도 아닙니다. 근본적으로 정신 활동의 자유, 곧 탐구와 비판, 검증과 논박의 자유를 허용하고 존중하는 문화가 중요합니다. (106)

최재천 : 자연은 매우 다양하고 그 자연에 적응하며 사는 방법 또한 무척이나 다양한데 우리는 단 한 개의 잣대로 모든 걸 가늠하려 합니다. 인간이 만일 지금까지 존재하는 동안 하나의 잣대에 맞추려 했다면 벌써 오래 전에 멸종하고 말았을 겁니다. (109)


2. 생물학적 유전자와 문화적 유전자
최재천 :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가 한 계통이라는 사실은 우리의 유전자 안에는 그 모든 역사의 기록이 다 들어 있음을 의미합니다. 갈라진 후의 변화 때문에 우리가 서로 달라진 것 못지 않게, 갈라지기 전에 함께 갖고 있었던 것 때문에 우리가 많은 면에서 비슷할 수 있다는 거죠. 우리의 DNA 안에는 우리가 침팬지의 한 종이었던 시절의 기록은 물론, 우리가 예전에 물속에서 물고기로 살던 시절의 기록도 담겨 있습니다. (145)

최재천 : 유전자가 완벽하게 똑같아도 발생 과정에서 아주 작은 차이가 생기면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오는 거죠. 발생 과정에는 언제나 이 같은 잡음이 잇게 마련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진화의 우연성을 담보하죠. 유전자의 형태가 모두 같아도 표현형은 천차만별이라는 것이죠. (154)

최재천 : 어떤 유전자도 한 가지 일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유전학 개념에 ‘다면발현(pleiotropy)’과 ‘다인자발현(polygeny)’이라는 다분히 관련된 두가지가 있습니다. 전자는 한 유전자가 여러 형질 발현에 관여한다는 걸 말하고, 후자는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여러 유전자들이 한 형질 발현에 관여한다는 걸 말합니다. (162)

도정일 : 문화도 유전됩니다. 생물학적 유전과는 다른 의미에서지만 말입니다. 인간의 탄생은 생물학적 사건이되 그의 성장은 사회문화적 사건입니다. 어떤 문화 속에 태어나 자라는 가에 따라 전혀 다른 인간이 나와요. (162)


3. 생명복제, 이제 인간만 남은 것인가
도정일 : 기술과 과학은 상당한 맹목성을 가지고 있죠. 방법의 맹목성이요. 할 수 있는 방법만 있다면 하자는 겁니다. 하지만 인문학은 그 방법이란 게 무엇을 위한 방법인가를 따집니다. 목적의 정당성 여부를 질문하는 거죠. 어떤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최선의 효과적 방법이 기술이라는 건데, 이때 방법만 생각하고 목적의 정당성은 따지지 않는 것이 기술의 맹목성입니다. (175)

최재천 “ 제대로 된 과학자라면 모름지기 자신이 하고 잇는 연구가 인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대한 최소한의 인문학적 분석을 할 줄 안다고 생각합니다. 사회는 종종 우리 과학자들을 너무 지나치게 단순한 사람들로 매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도 고민합니다. 우리도 인류에게 좋은 공헌을 하고 싶어합니다. 저는 언제나 자유를 얻는 가장 좋은 방법은 스스로 구속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남이 날 구속하기 전에 내가 스스로 나를 구속하고 그걸 남이 인정하면 가장 이상적이라는 말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저는 우리 과학자들이 충분한 인문학적 소양을 쌓아야 한다고 생각 합니다. (176)


4. 인간 기원을 둘러싼 신화와 과학의 격돌
도정일 : 인간에 대한 신화는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어요. 하나는 인간이 누군가의 손에서 ‘만들어졌다’고 말하는 신화이고, 다른 하나는 ‘자생적으로 나왔다’고 말하는 신화입니다. 제조론과 자생론인 셈이죠. 수메르 신화를 비롯해 히브리-기독교의 창조신화 등은 제조론에 속하고, 그리스 신화 중에서 가이아 이야기 전통은 대표적으로 자생론 쪽입니다. 제조론 계열의 신화들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것이 창조론인데, 이 전통에서 인간은 신이 창조한 존재, 곧 피조물입니다. (201)

최재천 : 저는 생물이란 절대로 만들어진 (제조된) 것이 아니라고 확신하는 과학자 입니다. 절대적으로 자연발생 된 것이라고 생각하죠. 그런데 그게 사실은 설명하기가 무척 어려운 부분입니다. 이론도 있고, 누군가는 실험도 해 봤고요. (205)

최재천 : 생명과학의 발달이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 스스로를 지나치게 비윤리적인 존재로 비하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우리는 충분히 윤리적이고, 그렇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이 까다로운 생명윤리의 문제를 슬기롭게 풀어갈 것이라고 믿습니다. (221)


5. DNA는 영혼을 복제할 수 있는가
최재천 : 저는 복제 인간의 몸은 복제될 수 있어도 그 영혼은 복제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쌍둥이 형제가 완벽하게 동일한 유전자를 갖고 있어 모습은 거의 구별이 되지 않을 정도로 비슷해지지만 성격이나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까지 완벽하게 동일해지지는 않잖아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영혼이란 육체보다는 분명히 정신과 더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는 존재일 것 같은데, 유전자가 그 사람의 영혼을 처음부터 결정할 가능성은 전혀 없어 보입니다. (266)

도정일 : 우리가 ‘혼’이라고 부르는 것은 정신과 마찬가지로 문화적 구성물이예요. 문화적 구성물은 문화적으로 만들어지고 전승됩니다. 유전되는 거죠. 그러나 생물학적 유전이 아니라 문화적 유전입니다. 문화는 강력한 복제 메커니즘이에요. 한 세대나 집단, 혹은 개인의 정신이나 가치, 목표 같은 것들을 다음 세대로, 다른 집단이나 개체로 전승시켜 복제되게 하는 것이 문화의 큰 힘 입니다. (267)

도정일 : 영혼은 복제되지 않고 유전되지 않는다. 그러나 영혼이란 것은 끊임없이 생각하게 하고 그 존재를 믿고 싶어하는 성향(disposition) 자체는 인간의 DNA에 들어있다. 생물학적으로 복제되고 유전되는 것은 이 성향이라는게 제 수정안 입니다. . . 인간에게는 자유 추구의 성향이 DNA 속에 들어 있고, 이것이 영혼이란 것의 생물학적 토대라는게 됩니다. (277)

최재천 : 영혼은 DNA든 조물주든 어디선가 받은 것을 우리 인간의 독특한 자유의지로 주물러 재창조한것이다. (280)

도정일 : 유전적으로 동일한 복제인간을 만들어도 그 개체가 어디에서 성장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개성과 전혀 다른 정신을 지닌 전혀 다른 인간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가능성을 생물학 쪽에서도 받아들이고 잇는 것 아닌가요? 생물학적 자질은 이미 결정 되어 있는 것인 반면, 개체의 형성에 개입하는 다른 많은 변인들은 결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죠. (281)

6. 인간, 거짓말과 기만의 천재
최재천 : 우리 인간의 뇌 발달 과정에서 가장 재미 있는 부분 중 하나가 자기 기만 (self-deception)이에요. 다른 동물들도 자기를 속여가면서 온갖 행동들을 할까 싶어요. 자기기만의 대표적인 경우가 ‘난 할 수 있어’, ‘하면된다’ 같은 겁니다. 누가 봐도 못할 일인데 스스로에게 하면된다고 하는 거죠. 그래놓고 때론 불가능한 일들을 실제로 해내잖아요. (294)

도정일 : 자기기만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도덕적 타락의 일종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이 냉혹한 세계에서 살아남자면 자기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세계와의 관계를 설정하고 자기와 세계가 마치 특별한 우호동맹관계에 있는 것처럼 자기 자신을 속이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게 근원적인 자기 기만이죠. (296)

최재천 : 문화를 단순하게 정의하면 우리 인간들이 하는 모든 행동의 결과물이죠. 그렇다면 똑 같은 논리로 문화 역시 기원을 따져 올라가면 유전자가 있을 수밖에 없죠. 동일한 유전자 조합에서 동일한 문화가 생성된다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하지만 인간의 유전자 없이 인간의 문화가 나올 수는 없죠. 이런 의미에서 문화 역시 도킨스의 표현을 빌린다면 유전자의 ‘확장된 표현형’ 입니다. (319)

7. 예술과 과학, 진화인가 창조인가
도정일 : 예술의 발생 원인에 대한 설명은 많습니다. 실용설, 제의설, 놀이설 같은 것이 있죠. 생물학적 설명으로는 아무래도 자연선택론과 성선택론이 가장 유력한 것 같아요. 그런데 성선택론의 ‘유혹론’과 관계지어서는 이런 질문이 필요해요. 인간이 유혹의 필요성을 느꼈을 대상이 성적 대상만이었겠는가라는 질문이죠 . . 최소한 세 가지 다른 대상들을 생각해볼 수 있어요. 신, 죽은 조상, 죽음 같은 거 말입니다. (331)

도정일 : 성선택론이나 줄달음선택이론에서는 선택권을 행사하는 주체가 남자든 여자든 다 ‘인간’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선택자가 사람이 아닐 수도 있죠. 지금 미의 기준을 정하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시장’ 입니다.(347)

최재천 : 예술이 발생한 궁극적인 원인은 아니더라도 근접적인 원인에 대한 설명으로 삶의 여유가 예술을 가능하게 했다는 설명이 있죠... 생활의 여유가 생긴 다음에야 예술도 가능했을 것이라는 설명은 한 번쯤 곱씹어 볼 만 합니다. (354)

최재천 :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을 사회적 동물이라고 정의 했지만, 저는 거기다가 인간은 또한 과학적 동물이라도 덧붙이고 싶습니다. 과학의 발달도 어쩔 수 없는 진화의 산물일 것 같아요. 과학이라는 게 결국 두뇌작용인데 두뇌가 진화의 산물이라면 과학도 진화의 산물이죠. 만일 두뇌의 진화를 받아들인다면, 과학의 진화는 생물학적으로 필연적일 수밖에 없는 거 아닌가 하는 겁니다. 우리 인간이 갖고 있는 것과 흡사한 두뇌를 가진 동물이 또 탄생한다면 그들도 필연적으로 과학을 할거라고 생각합니다. (356)

도정일 : 저는 과학이 진화의 필연이기 보다는 진화사에 발생한 한 사건었다고 보고 싶습니다. 과학의 필요성이 어느순간 압박으러 대두하자 두뇌에 진치고 앉아 졸고 있던 어떤 유전자들이 갑자기 깨어나 그 압박에 적극적으로 반응하기 시작한거죠. . . 저는 인간의 뇌신경에 ‘과학을 해야한다’는 자극 신호를 보내게 된 사건의 발단이 신화에 있었다고 생각해요. 정확히는 신화에 대한 반발이죠. (359)

8. 동물의 교미와 인간의 섹스
도정일 : 생물학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의 모든 행위는 ‘살아남기’와 ‘번식’이라는 두 단어로만 설명됩니다. 생존과 번식은 자연의 명령이라는 점에서 ‘필욘(necessity)’이고 인간도 동물인 이상 이 필연의 명령 체계 속에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인문쟁이들에게는 필연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거기서 이탈하는 행위들도 중요합니다. 성행위가 번식을 위한 필연적인 행위임에는 틀림 없습니다. 지금까지 그 외의 번식 방법은 없었으니까요. 그러나 인간은 기묘하게도 그 필연으로부터 벗어나고 이탈하는 데도 특별한 재주를 가진 동물이에요. 그래서 필연과 자유라는 구도가 생겨나요. 성의 경우도 그렇죠. 인간의 성이 종족 번식이라는 목적에만 꼼짝없이 매인건 아니거든요. 성이 인간에게 특별한 의미를 갖는 것은 그게 번식의 명령에만 묶여 있지 않기 때문이죠. 오히려 번식 이외의 목적을 더 많이 갖고 있어요. 그 ‘이외의 목적’이 말하자면 필연으로부터 이탈하는 영역, 곧 자유의 영역인 셈이죠. (373)

최재천 : 인간을 빼 놓고 산아 제한을 하는 동물이나 식물을 관찰한 경우는 지금까지 전혀 없습니다. 오로지 인간만이 스스로를 자제해야 하는 순간에 와 있는 유일한 생물이죠. 다른 동물들은 아직도 유전자를 더 많이 퍼뜨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사는데, 인간만은 진화의 가장 궁극적인 목적인 유전자 퍼뜨리기에 반하면서 오히려 거꾸로 가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381)

최재천 : 인간의 경우에는 어느 문화권에서나 공통적으로 다 은밀한 섹스를 합니다. 은밀한 섹스를 하는 인간의 성향이 과연 유전자에 새겨져 있는 형질인지, 아니면 문화적으로 생겨난 현상인지는 분명하지 않아요. (390)

9. 판도라 속의 암컷, 이데올로기 속의 수컷
최재천 : 사실 진화생물학에서 보면 수컷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수컷은 꼭 필요하지 않았을 수도 잇는 존재가 만들어진 것에 불과하거든요. 암컷으로만 되어 잇는 종은 있어도 수컷으로만 되어 있는 종은 없잖아요. 번식을 못하니까요. 아마 최초의 동식물은 다 무성생식을 했겠죠. 무성생식을 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다 암컷이에요. 암컷이 암컷을 낳는 거죠. 그런데 유성생식으로 건너올 때 수컷이 만들어진 것이죠. (412)

도정일 : 모든 가부장제 신화에는 남자의 잉여성에 대한 두려움이 까렬 잇습니다. 고대 신화가 여성을 잉여 존재로 강등시킨 것은 사실인즉 남성들 자신이 잉여 존재일지 모른다는 공포를 역으로 투사한 거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남성들의 ‘거세 공포’죠. 없어도 되는 존재라는 것처럼 두렵고 겁나는 일은 없습니다. 그래서 여성들을 내리누르기 시작합니다. 가부장제 사회에서는 자기가 아이의 진짜 아빠라는 걸 확실하게 하는 일이 아주 중요했어요. 여자를 옭아매야 할 필요성이 점점 더 커진거죠. (417)

도정일 : 유성생식만이 최선의 생식 방법이 아니라면, 가족의 구성 방식이 달라질 수도 잇겠죠. 미래 사회에 일어날 가장 큰 변화는 아마도 ‘가족’이 아닐까 싶어요. 아직은 많은 나라들이 동성 결혼을 금지하거나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부분에서도 상당한 변화가 있을 것 같아요. (425)

10. 섹스(sex), 젠더(gender), 섹슈얼리티(sexuality)
도정일 : 동성애에 대한 일반적인 사회적 편견은 ‘반자연’이라는데 근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비정상적이죠. 자연에서 비정상인 것은 인간의 사회에서도 비정상이라고 간단히 규정하는 겁니다. (439)

최재천 : 이건 매우 위험한 발언일수도 있는데, 저는 인간은 누구나 동성애적인 성향을 갖고 있을 것이라고 봐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모두 그런 성향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선천적으로 그런 성향이 많은 사람은 주변 환경이 어떻든 결국은 그 성향을 드러내는 것이고, 많지 않은 사람은 주변 환경이 억압적이면 결국 드러내지 못하는 거죠. 그리고 그 가운데는 조금씩 드러내면서 왔다갔다 하는 사람도 있을 거구요. 저는 그런 성향이 식물이나 동물 세계에도 있고 우리 인간에게도 있는데, 이것이 사회적으로 보이느냐 안 보이느냐의 차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440)

11.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소설인가 과학인가
최재천 : 제 생각에는 지금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프로이트는 인문학적인 사고 체계에 상당한 변혁을 준 사람인데, 전통적인 인문학적 사고 안에서 새로운 논리 체계를 만들어 내려고 했으면 설득력이나 영향력이 지금처럼 크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대신 과학의 객관성을 앞세워 엄청난 설득력을 얻었을 거예요. 그런데 제가 보기에는 그의 이론은 명백하게 ‘과학적이지 못했던 것’ 인데도 버젓이 ‘과학적인 것’처럼 설명되었다는 게 이해가 안 됩니다. 어떻게 보면 프로이트는 과학을 이용해먹은 사람이에요. 만약 프로이트가 “내가 과학적으로 설명하겠다”고 하지 않았으면 과연 그만한 성공을 거둘 수 잇었을까 하고 저는 의심해 봅니다. (472)

도정일 : 현대 과학이 명백하게 틀렸다고 증명한 프로이트의 이론을 인문학자가 옹호하는 것은 절대로 아니에요. 하지만 인간세계에는 과학의 방법으로는 접근할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아요. 그래서 미신이 생기는 겁니다. 미신과 신화는 어쩌면 한 뿌리에서 나온 건지도 모르죠. 하지만 미신은 근거가 없다는 이유에서만 배격되는 것이 아니라, 통찰력이나 설명력이 없기 때문에 불신당합니다. 신화도 황당하고 비논리적이고 비합리적일 때가 많아요. 그런데 미신은 비합리적이면서 통찰도 없고, 신화는 비합리적이면서도 깊은 통찰을 담을 수 있습니다. 결정적 차이죠. 미신의 비합리성은 진실에 도달하지 않는 반면, 신화의 비합리성은 진실에 도달합니다. . . 프로이트가 본 무의식은 ‘비논리의 왕국’입니다. 그 왕국의 문을 자기 딴에는 합리적인 방법으로 열어보려 한 거죠. 이건 프로이트의 모순입니다. (473)


12. 다양한 생명체와 문화가 공존하는 세상
최재천 : 우리가 판단하는 이른바 열성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경우, 예를 들어서 그 사람의 유전자 전체에서 한 부분이 열성이라 해도 다른 부분은 상당히 우성적일 수도 있는데, 우리 사회에서는 열성적인 부분이 두드러지다 보니까 성공하지 못한 사람으로 보일 뿐이지,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유전자 전체가 다 열등하다는 이야기는 분명히 아닐 겁니다. 그리고 그 열성 유전자 자체도 환경이 변하면 졸지에 우성 유전자로 대접받게 될지도 모르는 거니까요. (513)

도정일 : 사회문화적 다양성이나 생태계에서의 다양성이라는 것이 왜 중요할까요? 우선, 생명은 그 자체로서 가치가 있기 때문에 종 다양성이 유지되어야 한다고 말해야겠죠. 생명은 수단적 가치가 아니라 그 자체로 목적입니다. 둘째, 다분히 인간적인 기준일지 모르지만 자연계라는 거대한 생태 창고 안에는 인간이 아직 모르는 문제들에 대한 해답이 들어 있습니다. 지금 시대의 인간이 모르는 문제, 지금은 눈에 띄지 않는 문제들이 미래에는 얼마든지 제기될 수 있어요. 그 미지의 문제들에 대한 해답을 소리없이 저장해 놓고 있는 것이 생태계 입니다. 그런데 그 생태계의 다양성을 파괴해 버리면 인간은 제 손으로 미래의 문제들에 대한 해답을 잃어버리게 되죠. (521)

13. 21세기형 인간, 호모 심비우스의 번식을 위하여
도정일 : 두터운 세계는 다양성, 다수성, 다원성의 세계입니다. 이 ‘3다의 세계를 유지하는 데 무엇보다 ’관용의 윤리학‘이 필요할 것 같아요. 이때 관용은 강자가 약자에게 베푸는 자비가 아닙니다. 다른 것, 타자, 타인, 차이에 대한 존중이 현대적 의미에서의 ’관용‘이죠. 이게 없으면 자유민주주의도 안 돼요. (564)

최재천 : 인간의 역사를 놓고 보면 진화에서 가장 경계해야 하는 것이 지금 우리가 진화의 최정점에 서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에요. 우리는 지금 진화의 최정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아직도 진화의 과정주엥 있죠. 생물 전체의 역사 중에서 인류가 태어난 것은 아주 최근의 일일 뿐만 아니라 인류의 진화도 아주 초기 단계, 혹은 중간 단계에 불과한 거죠. 지금은 경쟁이 최고라고 믿지만, 이 단계를 넘어서서 끼리끼리 돕는 구조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우리가 있는 것인지도 몰라요. (597)

도정일 : ‘경쟁을 넘어 협동으로’라는 단계군요. . . 제가 말한 두터운 세계와 최 선생님께서 말한 호모 심비우스의 세계가 같은 지향을 갖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대담 끝에 이르러 우리가 어떤 미래를 함께 그려볼 수 있게 된 것이 기쁘네요. 두터운 세계를 꿈꾸는 호모 심비우스, 자연과학과 인문학이 충돌하는 지점도 이곳이고, 과학과 인문학이 손잡고 공생을 추구해야 할 지점도 이곳인 것 같습니다. (597)


* 내가 저자라면
- 2%가 부족한
그래서 어쩌라는 거지? 라는 의문이 남는다.
대담 속에서 두 학문 사이에는 많은 이야기와 공감들을 이끌어 냈지만, 그리고 다양성을 유지하면서 호모 심비우스를 번식시켜야 한다는 공통의 결론에 도달하기는 했지만, 결국 단순히 두 개 학문의 대가가 만나서 공통의 합의점을 만들어 냈다는데 의의를 두어야 하는 것인지.
꼭 우리 사회의 문제를 지적하고 해결의 실마리를 제시하기 위한 대담이 아니었다는 것은 안다. 하지만, 사회의 문제에 대해 원인 규명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는 시각인지를 이야기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독자들이 가장 궁금했을 법한 어떻게 해결해 가면 좋은지를 언급해 줬으면 한다.
우리 사회의 문제를 인문학적으로는 어떻게 해결하는 것이 옳은지 학자들의 이야기가 듣고 싶다. 가령, 출산의 문제를 언급 하면서 인간의 출산을 억제하는 부분이 정치적, 사회적 요인인지, 단순히 생물학적인 인간 생식의 특징인지. 어느쪽이든 해결의 실마리는 짚어주지 못한게 조금 아쉽다.

- 소제목이 와 닿지 않는다.
소제목이 있다는 사실은 책을 요약하면서야 눈에 들어왔다. 굳이 의미를 부여하자면 만들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라면 조금 더 눈에 띄도록 잘 정리를 해 놨어야 옳았다.

- 그리고 솔직히는 사탕 모양의 아이콘을 없애고 싶다. 왜 하필 사탕이지? 차라리 문자 ‘Q’ 마크 였으면 조금 더 와 닿았을지도 모른다. 위의 소제목과 사탕이 엮여서 질문 자체가 소제목으로 쓰이는 형태의 구성도 좋았음직 하다.


IP *.84.254.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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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처럼
2006.03.15 01:24:20 *.86.32.211
역시 상큼...발랄...시원하게 정리하셨네 ^^ 인용어귀 가운데 "그 결과물인 과학기술만 도입하자는 건 안이한 생각이죠"는 마치 소장님의 '축구경기'비유를 생각나게 하네요...[8기 참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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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윤민
2006.03.21 01:12:06 *.158.48.67
다양한 관점과 예상치 못한 상상은 모두를 즐겁게 하곤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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