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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3월 20일 10시 32분 등록

[1. 저자에 대하여]

제러미 리프킨은 사회 비평가이자 『노동의 종말』,『바이오테크 시대』같은 베스트셀러의 저자로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20여 년 동안 15권의 저서를 통해 경제, 노동, 사회,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다각도로 분석했다. 특히 1995년에 발표한 『노동의 종말』은 폭발적인 반향을 불러일으켰으며 노동 시간 삭감을 위한 사회운동가의 기폭제 역할을 했고, 『바이오테크 시대』(1998)는 생명공학 연구가 가져올 수 있는 문제를 제기하여 사회적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1994년부터는 워튼 경영 대학원Wharton School 최고 경영자 과정의 교수로 재직하면서 전세계의 최고 경영자와 고위 간부들에게 과학 기술의 새로운 조류와 이것이 글로벌 경제, 사회,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강의하고 잇다. 또한 비영리 조직인 〈경제 조류 재단〉을 설립하여 이사장으로 재직하면서 사회의 공공 영역을 수호하기 위한 활발한 계몽운동과 감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리프킨은 표면적으로는 전혀 관련성이 없어 보이는 현상들의 저변에 흐르는 조류를 날카롭게 파악하는 안목과 복잡한 현실을 명쾌한 개념으로 요약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 책『소유의 종말』에서도 그는 자연과학과 사회과학, 인문과학을 종횡무진 넘나들며 그 누구에게도 높은 조망대 위에서 인간 사회가 나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나는 미래 트렌드에 관한 책을 좋아한다. 그래서 엘빈 토플러의 제3의 물결이라든지 피터 드러커의 미래경영 등의 책은 읽었지만 제러미 리프킨의 저서는 처음 접해 본다.역자가 언급했지만 이 책이 나오기 위해 6년이 소요되었다 한다. 또한 350권의 책과 1천여 편의 논문, 5만장의 색인카드와 약 2천개의 주석이 동원되었다. 가히 대단한 학자라는 생각이다. 그러다보니 인용구가 눈에 띄게 많다. 마치 작가의 생각보다는 다른 학자의 생각들이 곳곳에 인용되어 책읽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한 권의 책을 쓰기 위해 경제, 사회, 문화, 정치, 노동, 환경 전 부분을 이해하고 인간의 삶에 대한 다각적인 분석을 통해 향후 도래할 미래를 논한 책은 처음일 것이다. 엘빈 토플러는 제3의 물결에서 정보혁명의 도래를 암시하면서 미래 사회는 정보화 사회임을 암시했고, 피터 드러커는 지식경영자 또는 지식노동자를 언급하면서 향후 미래는 지식사회임을 지적했지만 제러미 리프킨은 마치 제4의 물결을 이야기하면서 정보화는 미래사회의 편린에 불가하고 향후 미래는 정보를 넘어 접속이 지배할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미래를 예측하고 사회를 조망하는 데 탁월한 학자임은 틀림없어 보인다.


[2. 책을 읽고 나서]

제러미 리프킨은 말한다. 접속의 시대(The age of access)가 오고 있다고. 소유의 종말로 표현된 이 책은 한 학자가 쓰기에는 너무나 방대하고 광범위하다. 자신의 전공에 대한 책을 쓰는 것도 힘든데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정보, 기술 등 전 분야를 섭렵하고 무려 6년여에 걸쳐 지어낸 책이라 한 번 읽고는 잘 정리가 안 되는 책이다.

일단 책을 한 번 쭉 흩어 봤다. 대강 저자가 무엇을 말하려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다. 그러고 나서 중요부분을 요약하기 시작했다. 이런 요약정리를 끝난 이후에야 이 저자가 말하려는 내용을 알 수 있었다.

우선 저자는 역사적 자료의 이해 및 다방면의 전문가에 대한 서적을 전부 읽고 정리한 듯하다. 대부분 전문가의 의견을 인용한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그리고 난 후 결론이 21세기는 접속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단언한다.

접속은 이제까지 자본주의 사회에서 통용되었던 소유의 시대가 지나가고 있음을 뜻한다. 이러한 현상이 인간이 살아가고 있는 전부분에서 나타나고 있음을 제1부에서 자세히 언급한다.

접속의 시대가 도래한 이유의 첫 번째로 네트워크의 발달에서 찾는다. 자본주의 시대의 시장이 통신기술의 발달에 따른 인터넷의 보급으로 서서히 사라지고 사이버스페이스를 통한 새로운 시장의 등장으로 기존의 판매자와 구매자가 공급자와 사용자로 전이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둘째로는 무게 없는 경제가 도래하고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의 세상은 보이는 않는 힘이 우선시된다는 것이다. 즉 급속한 탈물질화가 진행되고 있음을 언급한다.

셋째는 지적 재산의 독점을 들면서 유형 재산은 경제적 주도권을 점점 잃고 변방으로 밀려나는 반면 무형 재산은 접속에 기반을 둔 새로운 시대의 주역으로 급격히 부상한다는 것이며 이것이 다국적 기업 등에 의해 독점된다는 것이다.

넷째는 서비스 세상이 올 것이며 이제 소유보다는 임대를 선호하고 자본주의가 상품의 교환이 아니라 경험영역에 접속하는 데 바탕을 둔 체제로의 변화가 급속히 이루어진다고 설명한다.

끝으로 인간관계 모두가 상품화 된다는 것이다. 사방에 널려있는 네트워크를 통해 인간의 경험이 상품화되면서 이에 대한 병리적 현상도 언급한다.

저자는 접속의 시대가 필연적이지만 모든 부분에서 일어나는 현상이기에 접속은 자본주의의 프론티어로 자리잡을 것임을 단언한다.

그러나 이러한 광범위한 접속의 시대는 필연적으로 상품자본주의에서 문화자본주의를 가져오고 이것이 궁극적으로는 자본주의의 토대를 허물고 있다고 지적한다.
역사적으로도 문화는 늘 상업에 선행했고 상업은 문화의 파생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문화가 상업화의 재료공급원으로 전락했음을 개탄한다. 더구나 문화적 다양성을 발굴하여 상품화함으로써 사회적 기반이 흔들리고 인간의 문명은 위기를 맞을지 모른다고 말한다.

결국 접속의 시대에서는 사회현상들은 필연적으로 문화 자본주의를 초래하고 이를 통해 인간의 문명의 위기를 맞을 것이고 이러한 위기에서 탈출하는 것은 생물의 다양성을 보존하듯 문화의 다양성을 보존하는 것이 새로운 세기의 가장 커다란 숙제이며 문화와 상업이 적절한 균형을 이룬 생태계를 복원하는 일이 다가오는 시대에 우리가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업임을 지적하면서 글을 맺는다.

미래학자의 탁월한 분석과 사회현상의 방대한 접근으로 인해 너무 산만하다는 느낌이지만 그의 지적들은 현재 우리의 삶에 깊숙이 펴져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IT 강국인 우리나라는 저자가 지적하는 내용의 모든 것이 적용되는 듯한 착각마저 들게 한다. 세계 최고의 인터넷 보급률로 인해 앞으로 우리나라를 짊어질 젊은 세대들은 이미 저자가 예언하는 방향대로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는 느낌이다.

나는 주택을 건설하는 회사에 근무하다보니 저자가 언급한 부동산과 공동체에 유난히 관심을 집중해 보았는데 저자가 지적한 주택의 소유에서 임대로 그리고 CID같은 공동 관심 단지는 현재 우리들 주변에서 추진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주택에 대해서 특히 공동주택은 현재 네트워크가 확보되어 있고, 홈오토메이션 그리고 언제 어디서나 네크워크에 접근할 수 있다는 유비쿼터스가 도입되면서 이미 한차원 높은 방향으로 접속의 시대로 전이되고 있다. 또한 CID같은 공동 관심단지는 부유층 위주로 서울의 한복판에 지워지고 있으며 앞으로도 더욱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한 부분의 치밀한 미래 예측이라기 보다 접속이란 용어를 통해 광범위한 사회현상을 언급하다 보니 전반적으로 미래트렌드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한편으로 향후 쉽게 도래하지 않는 부분도 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우선 저자가 언급하듯 소유의 시대가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접속의 시대는 필연적 현상이며 정도의 문제라 본다. 그러나 사회가 자본주의 제도를 취하는 이상은 소유가 접속으로 바뀌는 현상은 다분히 부분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 생각된다. 왜냐하면 소유는 인간의 본원적인 욕구라 보아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본원적 욕구를 무시한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는 이미 소멸되고 있음이 이를 반증한다.

또한 저자는 접속의 시대의 부작용으로 문화의 치명적 손실을 언급하는 내용이 주류를 이룸으로써 어찌 보면 접속의 시대가 도래하지 않았음을 의연 중에 가지고 있는 듯한 인상을 주는 부분도 없지 않았다.

그리고 접속의 시대는 가진 자의 시대라는 점이 문제의 하나라는 것이다. 저자는 접속의 시대에 살고 있는 인구는 지구 전체의 1/5에 지나지 않음을 지적한다. 지구 인구의 4/5는 접속의 시대는커녕 자본주의 시대도 접해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중국이나 인도의 급속한 자본화로 이러한 사실이 기정화 되겠지만 여전히 그렇지 못한 인구가 지구상 대부분이기에 이 문제는 다분히 있는 자의 논리임을 알 수 있다.
더구나 마지막 장에 언급한 놀이문화의 도래는 나를 가장 거슬리게 하는 대목이다. 지금 대부분의 나라들은 경제적 궁핍에서 벗어나기 위해 더욱 열심히 일하고 노력해도 부족한 데 놀이문화가 궁극적으로 접속으로 가는 통로라는 지적은 다분히 노동지향적인 사회를 비판한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물론 우리와 같이 놀이문화를 좋아하는 민족이 발전할 가능성을 제기하는 것과 놀이의 창의성을 지적한 것은 바람직하나 미래사회가 일보다는 놀이문화에 치중할 것이라는 인식은 다분히 사회주의적 사고에서 나온 지적인 듯하다.

이러한 나름대로의 생각을 갖게 함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여러모로 나에게 많은 식견을 제공한 좋은 책이었다. 향후 어떤 책을 만들겠다는 과정에서도 이같이 폭넓고 깊이 있는 분석이며, 많은 자료의 수집 그리고 진지한 노력이 필요할 것임을 알고 과연 나도 책을 쓸 수 있을 까하는 경외감을 갖기에 더 좋은 경험이 아닐 수 없었다.


[3. 책 속으로]

1부. 자본주의의 새로운 프론티어

"거시적 흐름을 읽는 리프킨의 통찰력은 이 책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많은 사람들이 미래를 정보화 시대라는 용어로 표현하지만 리프킨에 따르면 이것은 산업 시대를 인쇄의 시대라고 부르는 것처럼 협소한 정의다. 지금 우리가 목격하는 것은 정보화추세가 아니라 접속화 추세다. 접속이라면 컴퓨터에 접속하는 것을 말하는 것인가? 또 정보나 접속이나 비슷한 현상을 가리키는 말이 아닌가? 또 정보나 접속이나 비슷한 현상을 가리키는 말이 아닌가? 리프킨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정보는 인터넷이라는 부분적 세계를 전체 세계로 확대 적용한 개념이지만, 접속은 인터넷은 물론 자동차, 주택, 전자제품, 공장, 체인점, 같은 다양한 실물 영역에서도 일관되게 발견되는 포괄적 추세다." p441


1. 접속의 시대가 오고 있다

시장은 네트워크에게 자리를 내주며 소유는 접속으로 바뀌는 추세다. 기업과 소비자는 판매자와 구매자로서 시장에서 재산을 교환하던 근대 경제의 기본 구도를 포기하기 시작했다. 네트워크 경제에서 기업은 물적 재산이건 지적 재산이건 교환하기보다는 접속하는 쪽을 택한다. p11

자본이 물적 자본에서 지적 자본으로 이동하면서 이미 기업은 소유보다는 접속으로 궤도를 수정하고 저만큼 나가 있다. 예전에는 판매자와 구매자가 시장의 주역이었지만 이제는 공급자와 사용자가 주역이다. p12

같은 인간들과 어울려 지내는 우리의 일상적 삶 속에서 얼마나 많은 부분이 이미 순전한 상업적 관계로 얽혀 있는지를 한번 생각해 보라. 타인의 시간, 타인의 배려와 애정, 타인의 공감과 관심을 돈으로 사는 경우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우리는 오락과 놀이를 사들이고, 예의범절과 호의를 사들이고, 이 둘 사이의 모든 것들을 사들인다. 우리가 누리는 시간은 정확히 측정된다. 우리의 삶은 점점 상품화되고 공리와 영리의 경계선은 점점 허물어져 간다. p18

산업 자본주의를 딛고 올라선 문화 자본주의는 이미 인간 사회에 대한 우리의 근본적 통념을 수없이 뒤흔들어 놓고 있다. 재산관계, 시장 교환, 물질 축적에 바탕을 둔 과거의 제도는 서서히 허물어지고, 문화가 가장 중요한 상품 자원이 되고 시간과 관심이 가장 귀중한 소유물이 되고 개개인의 삶이 궁극적으로는 하나의 시장이 되어버리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p20

문화 영역과 상업 영역의 적절한 균형을 회복하는 것은 어쩌면 접속의 시대가 해결해야 할 가장 어려운 과제일지 모른다. 산업시대에 자연 자원이 인간의 남용으로 고갈되어 버릴 위기를 맞이했던 것처럼, 문화 자원도 과도한 영리 추구로 인해 언제 고갈되어 버릴지 모른다. 상품화된 문화 체험에 점점 무게 중심이 놓이는 지구 네트워크 경제에서 문명의 생명수라 할 수 있는 풍요로운 문화적 다양성을 지키고 끌어올릴 수 있는 지속 가능한 방법을 찾는 것이 새로운 세기의 으뜸가는 정치적 숙제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p21

접속은 결국 구별과 분리의 문제다. 들어가는 사람과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의 문제다. 접속은 우리의 경제관과 세계관을 재고할 수 있는 막강한 개념적 도구가 되었다. 다가올 시대의 성격을 예고하는 가장 강력한 메타포가 되었다. p27

2. 시장이 네트워크에 밀리는 날

현대 과학 기술은 상거래의 새로운 길을 열어주었다. 바로 경제학자들이 말하는 〈네트워크 방식〉의 경제 활동이다. 새로운 교역은 시장처럼 지리적 제약을 받지 않는 사이버스페이스라는 전자 매체 안에서 일어난다. 지리적 공간에서 사이버스페이스로 상업의 중심 무대가 이동하는 것은 인간 조직에서 일어나는 중요한 변화의 하나다. p28-p29

네트워크는 복잡한 의사소통 통로, 다각화된 관점, 정보의 병렬 처리, 지속적 피드백, 우물 안 개구리에서 탈피한 사고를 요구하므로, 여기에 참여한 주체들은 새로운 유대를 쌓고 새로운 발상을 흡수하고 새로운 시나리오를 만들고 초경쟁환경에 걸맞는 새로운 행동 전략을 짤 수 있는 기회를 그만큼 많이 얻게 된다. p39

3. 무게 없는 경제

물리적 경제는 움츠러들고 있다. 물리적 자본과 재산의 축적이 산업 시대의 특징이었다면, 새로운 시대는 정보와 지적 자산의 뭉치에 얹혀 있는, 눈에 안 보이는 힘을 중시한다. 산업 세계에서 오랫동안 부를 재는 잣대로 군림해 왔던 물질 제품은 탈물질화 되고 있다. p48

모든 분야, 모든 업종의 기업이 자신의 핵심 사업에 필요하지 않은 자산을 앞다투어 과감하게 처분하고 있다. 기업인들을 지배하는 새로운 사고 방식은 〈의심스러우면 밖으로 돌리라〉는 것이다. 기업의 일차적 목표를 달성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자산이나 업무가 아니라면 외부 하청업자에게 맡기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이다. 새롭게 부상하는 네트워크 경제에서 아웃소싱은 거의 종교처럼 떠받들어지고 있다. p69

소유권 중심의 시장 지향 체제는 내 것과 네 것으로 경제 활동을 확연히 구분하기 때문에, 〈내 것이 네 것이고, 네 것이 내 것〉이라는 발상을 한 발 앞서 실천에 옮기는 기업이 성공을 거두는 네트워크 기반 경제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네트워크에 바탕을 둔 사업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경제 활동의 공유라고 할 수 있다. p77

우리는 빵과 포도주만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는 아이디어와 사고도 중요하다. 산업 시대가 우리의 물질적 생활을 키워주었다면 접속의 시대는 우리의 마음과 감정, 영혼에 양식을 준다. 새로운 경제에서는 생각을 관리하고 파는 능력이 궁극적으로 기업의 성패를 좌우한다. p84

4. 지적 재산의 독점

네트워크 경제에서는 모든 종류의 재산이 구입될 가능성보다는 접속될 가능성이 높지만, 유형 재산과 무형 재산의 차이는 엄연히 존재한다. 유형 재산은 경제적 주도권을 점점 잃고 변방으로 밀려나는 반면 무형 재산은 접속에 기반을 둔 새로운 시대의 주역으로 급격히 부상한다. p87

산업 시대에서의 자원은 처음부터 끝까지 사고 팔 수 있는 재산으로 다루어졌고, 그 소유권은 경제 과정의 단계를 거칠 때마다 판매자에서 구매자로 이전되었다. 그러나 유전자는 이런 식으로 다루어지지 않는다. 유전자는 팔지 않고 빌려줄 뿐이다. 사지 않고 빌릴 뿐이다. 유전자 정보는 특허의 형태로 공급자의 재산으로 남아 있다. 공급자는 이것을 사용자에게 잠시 빌려줄 뿐이다. p98

무형 재산과 다양한 지전 재산권에 대한 지배를 통해 다국적 기업은 강력한 공급자-사용자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전에 없었던 새로운 방법으로 경제력을 집중할 수 있는 유리한 고지에 올라선다. p108

5. 서비스 세상

하이퍼 자본주의 사회의 새로운 시간 현실은 산업 시대의 여명기에 인쇄기, 기계식 시계, 나침반, 증기 기관의 발명으로 이 세상이 돌아가는 속도가 빠르게 변한 것처럼 재산을 시장에서 교환한다는 발상을 근본적으로 다시 검토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앞으로 경제 생활에 대한 우리의 의식을 지배하는 것은 물건에 대한 소유가 아니라 서비스와 경험에 대한 접속일 것이다. 소유권의 시대는 막을 내리고 접속의 시대가 열릴 것이다. p114-115

서비스는 물질이 아니며 손으로 만질 수 없다. 그것은 수행되는 것이지 생산되는 것이 아니다. 서비스는 실행되는 순간에만 존재한다. 보유하고 축적하고 상속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물자는 사는 것이고 서비스는 받는 것이다. 서비스 경제에서 상품화되는 것은 인간의 시간이지 장소나 물건이 아니다. 서비스는 사람과 물건의 관계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호소한다. p126-127

제품의 수명이 점점 짧아지고 물품과 서비스의 이동 영역이 날로 확대되는 네트워크 경제에서 부족한 것은 사람의 관심이지 물건이 아니다. 잠재 고객의 관심을 끌어 모으기 위해 물건을 그냥 주는 것은 마케팅 전략으로 점점 각광을 받을 것이다. 고객의 관심이 계속 유지되느냐는 기업이 효과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지속적인 관계를 맺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느냐에 달려 있다. p142

6. 인간 관계의 상품화

접속의 시대는 한마디로 모든 인간 경험의 상품화가 가속화되는 시대이다. 온갖 유형의 상업 네트워크가 인간 생활을 거미줄처럼 사방에서 에워싸서 살아 있는 경험의 모든 순간은 상품으로 자리매김된다. 소유 중심의 자본주의 시대에는 물건을 사고 파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러나 사이버스페이스 경제에서는 물건과 서비스의 상품화보다 훨씬 중요한 것이 인간관계의 상품화다. p145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기업이라 하더라도 진정으로 소유할 만한 가치가 있는 유일한 소프트웨어는 〈고객관계〉이다. 페로스와 로저스는 〈당신이 만든 모든 제품은 뜬구름처럼 덧없이 사라진다. 믿을 건 당신의 고객밖에 없다〉라고 말한다. 새로운 마케팅 전략에서 중점을 두는 것은 시장을 얼마나 차지하느냐가 아니라 고객을 얼마나 사로잡느냐이다. p146

기업은 새로운 공동체의 문지기 역할을 하면서 돈을 받고 고객이 사교장으로 들어올 수 있는 권리를 준다. 공동체가 형성되면 회사는 서비스나 제품에 대한 관심이 비슷한 고객들끼리 만날 수 있는 장을 제공한다. 회사가 이런 공동체를 만드는 이유는 긴 안목으로 상업적 관계를 구축하고 개별 고객의 평생 가치를 최대화하기 위해서이다. p162

모든 노력이 상업적 서비스로 변질될 때 우리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일종의 시간의 덫에 빠져들 위험성이 있다. 시간 그 자체를 사고 팔고, 삶이라는 것이 한낱 계약과 금전적 도구에 의해서 결합된 상업적 거래의 연속에 불과한 것으로 변질될 때, 애정, 사랑, 헌신에서 비롯된 인간의 전통적 상호 관계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p166-p167

7. 삶으로서의 접속

우리는 지금까지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자본주의의 새로운 단계를 맞이하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가 떠받들어 온 모든 경제적 토템은 하나둘 허물어지고 있다. 이 자리에 대신 들어서는 것은 역사의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상업적 우상이다. p169

〈CIDs(common-interest developments, 공동 관심 단지)〉라는 주거 공동체가 미국 전역에서 빠른 속도로 번지고 있다. 해마다 4,5천개씩 늘어나고 있다. 이 같은 속도로 계속 늘어날 경우 공동 관심 단지는 기존의 지방자치단체를 대체할 강력한 경쟁자로 부상할 것이라고 한다. p171-p172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장기적 소유보다는 단기적 접속에 역점을 두는 기업이 늘어나는 것처럼 부동산 시장에서도 똑같은 문제의식이 작용하여 부유층과 젊은 세대에서는 주택을 소유하기보다는 임대하려는 추세가 늘어나고 있다. p186

장소에 대한 갈망을 가진 사람들은 여전히 있지만 공간을 폐지하고 우리의 경험을 시간화하려는 욕망은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 호소력을 발휘하고 있다. 우리의 생활공간을 소유에서 접속으로 어느 정도까지 탈바꿈시킬 것인가 하는 것은 우리가 누구이며 21세기를 어떤 식으로 살고 싶어하는가에 대한 두 가지 감수성의 우열에 따라 판가름 날 것이다. p198

2부. 문화를 고갈시키는 자본주의

"리프킨은 지리적 공간에 뿌리를 둔 문화적 다양성을 지켜나가는 것만이 인간의 문명을 유지할 수 있는 길이라고 말한다. 산업시대에 인간의 무분별한 남용으로 말미암아 자연이 고갈되어 버릴 위기를 맞이했던 것처럼 문화 자원도 과도한 영리 추구로 인해 언제 고갈되어 버릴지 모른다. 상품화된 문화 체험에 점점 무게 중심이 놓이는 지구 네트워크 경제에서 문명의 생명수라 할 수 있는 풍요한 문화적 다양성을 지키고 끌어올릴 수 있는 지속가능한 방법을 찾는 것은 새로운 세기의 으뜸가는 정치적 숙제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수천 년을 이어온 인간 체험의 풍부한 문화적 다양성을 상실한다는 것은, 생물 다양성을 잃는 것 못지않게 앞으로 우리가 생존하고 번영하는 데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리프킨은 결론짓는다." p445

8. 자본주의의 새로운 문화

우리는 디지털 통신 기술과 문화 상업주의의 새로운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이 둘은 실제로 경제 패더라임의 강력한 쌍두마차이다. p202

수천 년 동안 반독립 영역에서 존재해 왔고 때에 따라서는 시장의 영향을 받기도 했지만 단 한번도 시장에 흡수당한 적은 없었던 문화-인간이 공유하는 경험-가 이제 새로운 통신기술이 일상생활을 지배하는 추세 속에서 점점 경제 영역으로 끌려들어가고 있다. p202-p203

문화생활은 사람들이 공유하는 경험이기 때문에 늘 접속과 포함의 문제에 직결된다. 사람은 공동체와 문화의 일원으로 의미와 경험을 공유하는 네트워크에 접속하는 권리를 누리든지 배제당하든지 둘 중의 하나이다. p206

접속의 시대에서 사람들은 살아 있는 체험을 접속할 수 있는 권리 자체를 산다. 체험 산업의 등장은 토지의 상품화에서 시작되어 주택과 공예의 상품화로, 나아가 가정과 공동체 기능의 상품화로 이어진 자본주의체제 진화의 다음 단계라 할 수 있다. 이제 우리가 먹는 음식, 우리가 생산하는 물건, 우리가 남을 위해 수행하는 서비스, 우리가 공유하는 문화적 체험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존재 전체가 상품화되고 있다. p213-214

관광을 어엿한 산업으로 발전시킨 주역은 토머스 쿡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대 관광 여행 산업의 아버지로 사람들은 선뜻 이 사람을 꼽는다. 쿡은 관광을 패키지로 만들고 여행을 유료 체험으로 전환시킨 최초의 인물이다. p216

자연 경관, 성당, 박물관, 궁전, 공원, 의식, 축제 같은 전세계의 다양한 문화 영역이 점점 시장으로 흡수되어서 여유 있는 사람의 오락과 정서 함양을 위한 문화 상품으로 탈바꿈되고 있다. 한 때는 당당히 제몫을 해냈던 역사적 유산이 이제는 그저 돈을 받고 문화적 체험을 제공하는 데 필요한 무대나 소도구, 배경이 되어버렸다. p222

메가몰과 오락 센터는 공동 관심 단지나 인위적으로 조성된 관광 단지처럼 문화 공연과 살아 있는 체험의 상품화된 형식에 접속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성공의 잣대로 평가받는 새로운 경쟁적 풍토의 일부로 자리 잡았다. 문화 경제에 누구를 집어넣고 누구를 뺄 것인가 하는 문제는 21세기에 커다란 사회적 문제로 부각될 것이다. p236

오락 산업이 급속히 부상하는 현상은 물건을 축적하고 재산을 소유하는 것을 낙으로 삼아온 세대가 체험을 축적하고 관계에 접속하는 것을 선호하는 세대로 바뀌고 있음을 웅변한다. p241

문화 생산은 21세기의 고부가 가치 산업을 선도할 것이다. 접속의 시대에 문화 생산은 경제생활의 제1열로 부상하고 정보와 서비스는 제2열로, 제조업은 3열로, 농업은 4열로 내려간다. 이 네 개의 열은 소유 관계에 바탕을 둔 체제를 접속에 바탕을 둔 체제로 꾸준히 탈바꿈시킬 것이다. 그리고 현실 세계와 사이버 세계를 통합한 네트워크 관계 안에서 더 많은 활동을 할 것이다. p246

9. 문화의 광맥을 찾아서

앞으로 우리의 삶 중에서 어느 만큼을 물리적 공간 안에서 살아가고 어느 만큼을 사이버스페이스 안에서 살아가게 될지 아직은 정확히 말하기 어렵다. 그러나 적어도 한 가지는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우리의 일상 체험 중에서 점점 많은 부분이 인공전자 환경 안에서 일어나리라는 사실이다. 모든 것이 추상화되고 상징화, 탈물질화되는 가상 현실이라는 하이퍼 세계에서 재산과 소유라는 낡아빠진 관념은 설득력을 잃을 것이다. 사이버스페이스에서는 문화 생산이 산업생산을 앞지르고 접속의 치열한 경쟁의 기초가 될 것이다. p251-p252

접속의 시대에는 돈을 내고 개인적으로 즐길 수 있는 오락과 체험의 형태로 문화를 상품화하고 우려먹고 재포장하는 가상 또는 현실의 네트워크와 대중문화의 입구에 버티고 서서 출입을 통제하는 문지기가 실권을 휘두른다. 사사로운 대화를 주고받는 자리에서건 공개적인 토론이 벌어지는 자리에서건 〈관문gateway〉과 〈문지기gatekeeper〉라는 단어가 점점 많이 쓰이고 있다. p261

〈문화의 중개자〉로 불리는 이 새로운 계급의 실력은 지식과 창조성, 예술적 감수성과 기획력, 전문가적 식견과 마케팅 안목 같은 무형 자산에서 발휘된다. 그들은 예술가와 지식인, 광고의 귀재와 홍보의 달인, 그리고 대중과 문화상품을 체험이라는 거미줄로 결합시키기 위해 기업이 동원되는 스타와 유명 연예인이다. p268

새로운 시대에는 지역 문화와 세계 문화에 대한 접속의 문제, 상업화된 형태로 문화적 내용을 담고 있는 커뮤니케이션 회로를 둘러싼 지정학적 쟁탈전이 점점 전면으로 부각된다. 다국적 기업을 위해 일하는 새로운 문화 중개자들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접속이 체험의 유일한 통로가 되는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문지기의 노릇을 하게 된다. p273

10. 탈근대

새로운 인간형이 탄생하고 있다. 그는 사이버스페이스의 가상 세계안에서 자기 몫의 인생을 즐기고 네트워크 경제가 돌아가는 이치를 잘 알고 물건을 쌓아두는 데는 관심이 없지만 흥미롭고 신나는 체험에는 관심이 많고 온라인 세계와 오프라인 세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들 수 있고 가짜든 진짜든 눈앞에서 펼쳐지는 새로운 현실에 자신의 인격을 재빨리 적응시킬 수 있다. p274

탈근대가 현실을 보는 눈은 다르다. 근대와는 전혀 다른 가정에서 출발한다. 그런 가정은 소유에 대한 근대인의 가정을 허물어뜨리고 인간관계를 접속 원리를 중심으로 하여 재구성한다. p281

새로운 시대는 모호하고 다양하며, 재미와 유머를 추구하며, 어수선하고 너그럽다. 절충을 중요하게 여기며 권위를 우습게 여긴다. 이데올로기, 만고 불면의 진리, 절대로 어겨선 안 되는 철칙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고 대신 그 자리에서 온갖 유형의 공연이 펼쳐진다. 근대의 핵심이 근면이라면 탈근대의 핵심은 유희다. p288

상품과 서비스의 소비에서 체험의 소비로 다시 한번 글로벌 경제의 중심축이 바뀌고 있는 오늘날, 인간의 본성도 다시금 변화를 겪고 있다. 새로운 세대 사이에서는 스스로를 문화라는 장터를 이루는 수많은 드라마에서 연기하면서 각본과 무대 사이를 경쾌하게 옮겨 다니는 〈창조적 공연자〉로 간주하는 경향이 늘고 있다. p297

인간의 의식을 바꾸어놓은 데 기여한 요인의 수는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통신 기술이 인쇄에서 컴퓨터로 바뀐 것이다. 인간의 의식에서 일어난 커다란 변화는 사회적 관계를 창조하는 데 사람들이 이용하는 통신 형태의 변화와 함께 일어났다. p301

컴퓨터, 하이퍼텍스트, 접속점, 링크, 네트워크로 이루어진 새로운 세계에서 자아를 섬에 비유한 19세기의 발상, 다시 말해서 자아는 자율성이 있고 시장에서 거래되는 책이나 공산품처럼 확실한 경계선과 실체가 있다고 하는 생각은 이제 유지되기 어렵다. 새로운 자아는 섬처럼 고립된 자아가 아니라 관계를 지향하는 자아이다. p307

우리는 서로의 관심을 끌어당기고 붙들어 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세계에서 살아간다. 온갖 종류의 관계가 우리의 생활의 한가운데에 온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데카르트의 명제는 〈나는 접속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새로운 명제로 바뀌었다. 개인의 자율성이라는 오래된 관념은 복수의 관계라는 새로운 관념에 밀려나고 내 것과 네 것을 가르는 뚜렷한 경계선은 더욱 희미해진다. p309

세계를 연극 무대로 보는 데 익숙한 새로운 시대의 남녀에게는 상업 세계가 제공하는 대본, 무대, 다른 배우, 청중에 접속할 수 있는 권리를 끊임없이 사는 것이 자신들이 거느리고 살아가는 다양한 인격을 살찌우는 데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연기를 할 수 있고 변신을 할 수 있는 능력은 생존의 필수 조건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p322

11. 접속자와 비접속자

21세기는 과거의 재산권처럼 접속의 문제를 놓고 열띤 논란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접속은 재산권보다 훨씬 더 포괄적인 현상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재산권은 내 것과 네 것이라는 협소한 물질의 차원을 다루지만 접속은 체험 자체를 누가 지배하는가라는 좀더 광범위한 문화적 문제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p323

네트워크 시대에는 시민과 국가의 관계가 시민이 국가 바깥에 세우는 무한히 많은 연합체들과 경쟁을 벌여야 한다. 이제 정치가 사회생활을 조직하는 원리라는 소리는 그야말로 옛말이 되어버린다. 정치는 현대 세계의 현실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무력하기만 한 인위적 구성물로 전락했다고까지는 말할 수 없을지 몰라도 아무튼 주변적 지위로 밀려난다. p338

세계 각국이 통신․방송 인프라의 규제를 완화하고 민간에 매각하는 쪽으로 나아갈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상업 영역은 네트워크 글로벌 경제에 접속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가 된다. 새로운 생존의 지평을 형성하는 사이버스페이스와 네트워크 공유 세계에 접속할 수 있는 경제력을 가진 사람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전자 대문 바깥에 그대로 머물러 있을 것이다. p340-p341

사이버스페이스는 종래의 장소와는 성격이 다를지 모르지만 그래도 수많은 사람들이 의견을 주고받는 엄연한 사회적 교류의 장이다. 앞으로 인간이 영위하는 문명 생활의 상당 부분은 전자 세계에서 일어날 것이다. 따라서 접속의 문제는 다가오는 시대가 성찰해야 할 가장 중요한 화두의 하나가 된다. p346

12. 문화와 자본주의의 생태학을 향하여

접속의 시대는 인간의 경험을 조직할 수 있는 새로운 수단을 제공할 뿐 아니라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새롭게 정의한다. 여기서 핵심이 되는 문제는 도대체 〈접속〉이 무엇을 뜻하는가이다. 이것은 기술이나 데이터에 대한 협소한 차원의 접속이 아니라 좀더 광범위한 맥락의 접속을 뜻한다. p348

배제되지 않을 권리, 곧 접속의 권리는 개인적 자유를 재는 잣대가 된다. 정부는 사람들이 그 속에서 의사소통을 하고 어울리고 상거래를 하고 문화를 만들어가는 수많은 네트워크에 모든 개인이 접속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그러나 점점 확대되는 글로벌 네트워크 세계에서 정부가 과연 누구나 접속의 권리를 누리도록 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지는 지극히 의심스럽다. p353

상업영역은 깊은 공동체 의식과 개인적 변신으로 나아가는 관문을 제공할 수 있는 것처럼 과시하지만 그것은 자기의 능력을 넘어서는 일이다. 경제는 물질적 안녕, 육체적 안락, 특정한 지식, 오락과 유희 같은 가치 있는 것을 제공하며, 이것들은 충만한 삶을 영위하는 데 하나같이 중요하다. 하지만 경제는 문화와 인간성의 기본틀을 세우는 데 가장 중요한 가치와 감정, 다시 말해서 사회적 신뢰와 공감을 만들어낼 능력은 없다. 상업 영역이 인간 문화와 체험의 조각조각을 닥치는 대로 짜깁기하여 제공할 때, 우리가 중요한 인간적 가치와 감정을 끌어낼 수 있는 우물은 독으로 오염될 위험성이 있다. p364

생명의 다양성이 중요한 것처럼 문화의 다양성도 중요하다. 전세계에 존재하는 풍부하고 다양한 인간의 경험을 상업 영역이 근시안적 영리 추구를 위해 착취하기만 하고 순환이나 재충전의 기회를 주지 않는다면, 경제는 결국 문화 생산의 재료가 되는 인간 경험의 방대한 수원지를 잃게 될 것이다. p365

문화를 소생시켜야 하는 까닭은 그것이 문화 생산하는 데 원료가 되기 때문이어서만도 아니고 시장이 제대로 기능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사회적 신뢰와 공감을 문화가 만들어내기 때문만도 아니다. 문화는 다른 이유를 모두 접어두고서라도 그 자체가 중요하기 때문에 소생되어야 한다. 인간의 가치를 낳는 유일한 원천이 문화이기 때문이다. p372

많은 시민 사회 조직의 정서는 마하트마 간디의 말에 집약되어 있다. 〈나는 사방이 담으로 둘러싸여 있고 창문을 굳게 닫아놓은 집에서 살고 싶지 않다. 온 세계에서 불어오는 문화를 자유롭게 느낄 수 있는 그런 집에서 살고 싶다. 그러나 밖에서 불어온 문화에 덩달아 휩쓸려 가지는 않겠다.〉 시민 사회 조직이 되었건 근본주의 세력이 되었건 앞으로 지역 문화를 정치적으로 결집하여 동원하는 데 성공하는 집단이 큰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것이다. p383

수천 년을 이어온 살아 있는 인간 체험의 풍부한 문화적 다양성을 상실한다는 것은 생물 다양성을 잃는 것 못지않게 앞으로 우리가 생존하고 번영하는 데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문화와 상업이 적절한 균형을 이룬 생태계를 복원시키는 일은 다가오는 시대에 우리가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업이다. p392

접속의 시대는 〈우리는 타인과 맺는 가장 기본적인 인간관계를 과연 어떤 방향으로 재설정하고 싶어 하는가〉라는 근본적 물음으로 우리를 내몰 것이다. 접속이라는 것은 참여의 수준만이 아니라 참여의 유형을 결정하는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단순히 누가 접속권을 얻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유형의 체험과 세계가 과연 접속할 만한 가치가 있고 추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가를 따지는 물음이다. 21세기에 우리가 만들어나갈 사회의 성격은 이 답변에 좌우될 것이다. p392


[4. 내가 저자라면]

이 책의 저자 리프킨은 과거의 역사적 변천과 현재의 흐름을 통해 미래의 우리의 모습을 많은 학자의 의견과 자신의 지식을 더하여 예견해 나가고 있다. 미래예견의 키워드가 바로 접속이다. 과거와 현재의 조류는 소유이지만 네트워크로 연결되는 통신기술의 발달과 인터넷의 보급은 현대사회가 접속으로 가는 토대를 제공했다. 하지만 접속은 단순한 정보화 사회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현상 속에 있는 모든 물질적 존재에 나타나는 흐름임을 강조한다. 즉 향후 미래는 모든 부분에서 소유의 시대가 아니라 접속의 시대(The age of access) 가 도래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역자는 이것을 소유의 종말이라고 명명했는데 다분히 주관적인 표현이라 생각된다. 저자 리프킨은 어디에도 소유의 종말이란 표현을 하지는 않았다. 그는 지속적으로 접속의 시대를 주장하면서 접속의 시대에는 문화의 상품화로 인해 문화가 고갈되고 궁극적으로 인간의 자아실현 등 인간의 가치가 등한시됨으로써 이에 대한 해결책의 하나로 문화의 다양성을 추구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미래는 소유보다는 접속이라는 용어에 걸 맞는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예견하면서 접속의 시대에 대비해야 함을 강조한 점을 미루어 역자가 명명한 소유의 종말은 마치 자본주의가 다른 이데올로기로 전환되는 듯한 표기여서 부적절 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나는 책 제목을 ‘접속’이라든지, 아니면 원제인 ‘접속의 시대’로 표기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책은 저자의 학문적 깊이가 남달라 감히 어느 부분을 지적하기가 어렵지만 독자적 측면에서 두 가지를 지적했으면 한다.

첫째, 책의 편재부분이다. 소유보다는 접속의 시대에 나타나는 현상이 보다 체계적이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광범위한 부분을 다루다보니 정렬이 미흡하다는 느낌이다. 접속의 시대에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요소를 명확히 구분하여 나열했으면 이해가 쉽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즉 제1장은 접속의 시대의 도래, 제2장 접속의 시대에 나타나는 현상, 제3장은 접속의 시대의 문제점, 제4장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인간의 노력 등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면 더 좋지 않았을까?

둘째는 접속으로 인한 문제가 무엇인지는 진단하였지만 이에 대한 해결책은 제지하지 못한 점이 아쉽다. 저자는 소유의 시대가 끝났음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접속의 시대가 더욱 가까이 다가옴을 직시하고 이에 따른 문제점을 문화 자본주의 및 문화 상업화 등의 표현을 빌어 접속의 시대에 대한 어두운 측면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단순히 문화의 다양성만을 주장하는 선에서 끝냄으로써 향후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청사진이 없다.

저자는 아마 지나치게 광범위한 영역에서 접속의 시대를 예견함에 따라 이를 나열하는 수준에서 멈추고자 한 흔적이 역력하며 이 모두를 해결하려는 일련의 대책들을 열거하려면 아마 또 다른 시간과 세월이 필요했을지 모르겠다. 그래서 이것을 독자에게 맡긴 듯 하다.

소유의 종말은 아니 접속의 시대는 이미 우리주변에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 되었다. 이러한 현상이 인간의 삶에 긍정적 측면으로 흘러갈 수 있도록 나침반의 역할을 제공해 줄 수 있는 책이 바로 소유의 종말임이 틀림없어 보인다. 나는 이러한 귀중한 책을 읽을 수 있는 기회를 가진 것은 정말 행운이었다고 생각한다. 끝.

IP *.57.36.18

프로필 이미지
오성민
2006.03.20 16:03:48 *.200.97.235
잘 읽었습니다. 도명수님의 책읽는 방법에 대해 배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많은 자료의 수집 그리고 진지한 노력이 필요할 것임을 알고 과연 나도 책을 쓸 수 있을 까하는 경외감을 갖기에 더 좋은 경험이 아닐 수 없었다는 말씀이 저에게도 와 닿는 이유는 무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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