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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5월 1일 09시 06분 등록
[1. 저자에 대하여]

신 윤복은 누구인가? 나는 그 분에 대해 들어본 바도 없고 그 분의 저술을 접해본 적도 없다. 다만 강의라는 책을 통해 그 분의 동양고전 독법을 접하면서 처음 그 분의 숨결을 읽을 수 있었다.

1941년 생 나보다는 20여년 인생의 선배이다. 그는 우리나라 최고의 학부인 서울대 경제학과 출신이고 상당한 인텔리라는 조건에서 출발할 수 있었음에도 스스로 험한 길을 택한 분이다. 물론 스스로라는 내용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지만 내가 잘 알지 못하는 통일혁명당 사건에 연루되어 20여년 동안 옥중생활을 하셨던 분이다.

그래서 우선 통일혁명당사건이 무엇인가 찾아보았다. 통혁당사건이라고도 한다. 제3공화국 당시인 1968년 중앙정보부가 발표한 대규모 대남간첩단 사건. 나는 그때 국민교육헌장을 암기하고 있었던 나이였다. 중앙정보부는 김 종태를 정점으로 한 통일 혁명당이 북한노동당의 실질적인 재남지하당으로 70년대 무장봉기를 노려 「청맥회」「학사주점」등 서클을 거점으로 암약하다 일망타진됐다고 발표했다. 이 사건으로 1백58명이 검거돼 그 중 73명이 검찰에 송치됐으며, 김 종태, 이 문규 등 5명은 사형선고를 받고 4명이 집행되고 1명은 20년 복역후 출소했다. 이 출소된 분이 바로 신 영복이다.

참으로 기구하다. 만약 그 분이 5명에 포함되어 사형이 집행되었다면 이 강의라는 책은 내가 읽지도 보지도 못할 책이었다니

그분은 1심과 2심에서 사형,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고, 지난 88년 8월 15일, 20년 만에 감옥으로부터 해방되었다. 민족분단은 이 시대의 수많은 사람들을 감옥으로 몰아넣었다. 20대의 청년은 40대의 불혹을 훨씬 넘긴 나이에서 특사라는 형식으로 풀려나올 수 있었다. 아마 88올림픽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려는 국가적 대사가 있어서 그랬더란 말인가.

서울대를 졸업한 후 숙대 강사를 거쳐 육사 교관을 하다가 구속되어 일반적으로는 상상하기 힘든 긴 세월 감옥을 살게 된 신 영복교수님은 이 분단시대의 진보적 지식인이 당하는 수난을 단적으로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 분의 책 속에서 어떻게 20년이 넘는 옥고를 치러할 사람으로 느낄 수 있겠는가. 그 점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지만 굳이 찾으라면 당시 정권의 중심에 있었던 사람들과 생각이 틀렸다는 점이었을 것이다. 그 당시는 그것이 제일 큰 죄라고 생각한 사람들이 총자루를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신 영복교수님은 누군가의 이런 질문에 도저히 사형을 당할 만한 일이 아니었다고 이야기한다.

-통혁당 사건이란 도대체 무슨 사건이었습니까? 무엇을 했길래 20년 이상이나 감옥살이를 했나요?

- 통혁당사건은 나도 잘은 모릅니다.
그러나 그렇게 오래 감옥을 살았던 것은 내가 했던 일보다도 남북의 정치적 상황에 근본적인 원인이 있지 않나 합니다.

우리가 한 일을 좀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연구 모임을 하면서 학생서클들을 조직해 지도했고 나아가 일부 학생시위를 조직했었는데, 요즘의 학생운동수준이지요.

오늘의 학생운동수준에 불과한 것을 가지고 그 분은 가장 생의 중요한 시절을 옥중에서 보내야 했다. 그러나 옥중의 20여년의 세월은 그 분의 생에 가장 심오한 성찰과 사색의 기회를 주었으며 이 시대의 위대한 지성인의 한 사람으로 새롭게 태어나게 했으니 세상의 공평함을 또 한번 느낄 수 있는 인생역전의 드라마를 보는 것 같다. 그 가운데 이 강의라는 책자는 이 분을 더욱 빛나게 해준 역저임에 틀림없다.

그 분은 지금 대학강단에서 과거의 자신을 뒤로하고 오늘과 미래를 펼치려는 우리 젊은이들에게 사색의 깊이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2. 책을 읽고 나서]

나는 책을 다 읽기도 어려웠지만 이 책이 나에게는 주는 의미에 대해서 다각도로 생각해보았다. 정말 신 교수님의 사상의 깊이에 대해 놀랐다. 한 인간으로서 경제학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그토록 어렵다는 동양고전 전부를 명쾌하고 깊이 있는 통찰을 통해 해석해내는 신 교수님은 삶의 깊이를 누구보다 차원 높게 사유한 분이 아닌가 한다.

어떻게 이토록 한 대상을 보면서 철학적 사유가 가능했을까? 나의 좁은 사유관과 인생관으로 감히 범접하기 어려운 자괴감을 느낀다. 한 번의 책읽기로 이 책을 읽었다고 할 수 없다. 몇 번을 읽어도 새로운 이미지로 다가올 것이 분명한 이 책을 내가 무슨 말을 통해 감히 이야기 한다는 것조차 두렵다.

구 본형 선생님은 이러한 책은 6개월 동안 읽었다면 잘 읽은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또한 매번 읽은 때마다 색다른 맛을 느낀다고 하셨다. 그토록 심오한 책을 단 한 번 읽고 그것을 평가하는 것은 너무 죄스럽다. 하지만 일단 읽었기에 그에 대한 나름대로 의견을 내 놓을 수밖에 없다. 그것이 왜소하고 보잘 것 없더라도 말이다.

우선 그 분의 태어난 배경을 한 번 읽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그 분은 1941년에 태어났고 대학59학번이다. 물론 연륜으로는 18년이지만 호적상 꼭 20년 선배님이시다. 일정시대에 태어나 어린 시절 6.25를 경험하고 청춘의 꿈이 무르익을 때 양 독재정권하에서 4.19와 5.16을 경험한다. 나는 그 당시 모든 젊은이들은 독재에 투쟁하지 않았던 사람이 없었을 정도였다고 기억한다. 나도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 후 20여년이 흐른 79년 박정희 대통령시해 때 또 다른 군사정권에 맞서 데모에 열중했던 시절이 있었기에 하는 말이다.

이 비극의 종말을 맞은 군사정권이 유지 지탱하기 위해 사상적 차이를 모든 적대세력의 전진기지를 치부한 암흑의 시대가 있었다. 그 암울한 시대에 젊은 혈기로 구국을 바라는 심정이 적국의 사상에 몰입된 다른 인상으로 비쳐짐에 따라 무참히도 짓밟힌 젊은이 가운데 그 중심에 있었던 분이 신 교수님이 아닌가 한다.

그러한 젊은이를 무조건 두둔하려는 것은 아니나 그 상황이 대부분의 식견인들에게는 통념적 사고였기에 드리는 말이다. 그 분은 20여년을 육체적 영어(囹圄)속에 있었지만 정신적 해탈을 경험한 듯하다. 일이년을 그 같은 세월 속에 있어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깨달음을 맛볼진 데 하물며 20여년이라니 그 기나긴 세월의 깊이가 몸서리치도록 다가온다.

나는 이 책의 내용을 논하고 싶지가 않다. 그것은 이미 그 사람의 정신적 사고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깊이에서 이미 다 찾지 않았던가. 논어가 무엇이고 주역이 무엇인가 인간의 삶의 의미를 한 숭고한 사상가의 혼을 빼앗아 가고자 했던 무지한 칼에 맞서 모든 것을 던진 결과물로 잉태한 내용인데 감히 어찌 그 깊이를 못 느끼겠는가.

그저 자본주의의 딜레마를 치유하고 신자유주의의 부조리한 단면을 들쳐 내려는 한 사상가의 이야기가 이미 아니다. 나는 오늘을 사는 한 사람으로서 행복과 진실된 삶이 무엇인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이 책은 그저 단순한 과거의 사상을 통해 우리의 학식이나 식견을 넓히려는 고전의 퍼레이드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너무나 깊이와 폭의 경계가 없기에 나는 이 책을 언제나 읽고 또 읽는 기회를 갖기를 갈구한다.

나의 무지로 인해 이 책에 대한 변의 짧음을 개탄하면서 시대의 잘못된 판단으로 하마터면 우리의 기억에서 사라질 수도 있었던 분이기에 그리고 너무나 많은 사색과 인격적 수양을 통해 이룩된 흔적이기에 과거와 오늘 그리고 미래를 연결하려는 사람들의 가슴에 남는 서적이기를 희망해 본다.


[3. 책 속에서]

1. 서론

요즈음 대학생이나 젊은 세대들은 근본적 성찰을 하는 일이 별로 없는 것같이 느껴집니다. p17

고전에 대한 우리의 관점이 중요합니다. 우리의 고전 강독에서는 과거를 재조명하고 그것을 통하여 현재와 미래를 모색하는 것을 기본 관점으로 삼고자 합니다. p21

또 한 가지는 고전 강독의 전 과정이 화두(話頭)들 걸어놓고 진행한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걸어놓는 화두는 ‘관계론(關係論)’입니다. p23

유럽 근대사의 구성원리가 근본에 있어서 ‘존재론(存在論)’임에 비하여 동양의 사회 구성 원리는 ‘관계론’이라는 것입니다. 존재론적 구성원리는 개별적 존재를 세계의 기본 단위로 인식하고 그 개별적 존재에 실체성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근대사회는 자본주의 사회이고 자본의 운동 원리가 관철되는 체계입니다. 근대사회의 사회론이란 이러한 존재론적 세계 인식을 전제한 다음 개별 존재들 간의 충돌을 최소화하는 질서를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에 비해서 관계론적 구성 원리는 개별적 존재가 존재의 궁극적 형식이 아니라는 세계관을 승인합니다. 세계의 모든 존재는 관계망으로서 존재한다는 것이지요. p23-p24

고전 강독은 결코 과거로의 회귀가 아닙니다. 우리의 당면 과제를 조명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p24

오늘날의 주류 담론인 전 지구적 자본주의와 세계화 논리는 한마디로 거대 축적 자본의 사활적 공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p33

진리란 일상적 삶 속에 있는 것이 아니며 고독한 사색에 의해 터득되는 것임을 선언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진리란 이미 기성의 형태로 우리의 삶의 저편에 또는 높은 차원에 마치 밤하늘의 아득한 별처럼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며, 사람들이 그것을 사랑하고 관조하는 구도 속에 진리는 존재합니다. p37

동양에서는 자연이 최고이 질서입니다. 최고의 질서란 그것의 상위질서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자연 이외의 어떠한 힘도 인정하지 않으며, 자연에 대하여 지시적 기능을 하는 어떠한 존재도 상정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자연이란 본디부터 있는 것이며 어떠한 지시나 구속을 받지 않는 스스로 그러한 것(self-so)입니다. 글자 그대로 자연이며 그런 점에서 최고의 질서입니다. p38

인성의 고양을 궁극적 가치로 상정하고 있는 것, 그리고 인성이란 개별 인간의 내부에 쌓아가는 어떤 배타적인 가치가 아니라 개인이 맺고 있는 관계망의 의미라는 것이 동양 사상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p42

동양 사상은 과거의 사상이면서 동시에 미래의 사상입니다. 과거를 성찰하고 미래를 전망하는 뛰어난 관점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특징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p45

고정을 재조명하는 작업은 어쩌면 오늘날처럼 속도가 요구하는 환경에서 너무나 한가롭고 우원(迂遠)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현대 자본주의가 쌓아가고 있는 모순과 위기 구조는 근본 담론을 더욱 절실하게 요구하는 상황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바쁠수록 돌아가라는 금언이 있습니다. 길을 잘못 든 사람이 걸음을 재촉하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p47

2. 오래된 시(詩)와 언(言)

『시경』은 동양고전의 입문입니다. 그만큼 중요합니다. 우리가 『시경』에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그것의 사실성에 있습니다. 이야기에는 거짓이 있지만 노래에는 거짓이 없다는 것이지요. p52

『시경』독법은 우리들의 문화적 감성에 대하여 비판적 시각을 기르는 일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논리적이고 이성적으로 접근되기보다는 정서적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어야 함은 물론입니다. p53

거짓 없는 생각이 시의 정신입니다. 『시경』은 중국 사상과 문화의 모태가 되고 있습니다. 『시경』은 제후국 간의 외교 언어로 소통되었으며 이를 통하여 공통 언어가 성립되고 나아가 중국의 문화적 통일성에 중요한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되기도 합니다. p56

『시경』의 시가 바로 이러한 진실을 창조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이란 결국 진실을 구성하는 조각 그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의 조합에 의하여 비로소 진실이 창조되는 것이지요. 이것이 문학의 세계이고 시의 세계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p62

『시경』은 황하 유역의 북방 문학입니다. 북방 문학의 특징은 4언체에 있고 4언체는 보행 리듬이라는 것이지요. 이것은 노동이나 생활의 리듬으로서 춤의 리듬이 6언체인 것과 대조를 보입니다. 『시경』의 정신은 이처럼 땅을 밟고 걸어가듯 확실한 세계를 보여줍니다. 땅을 밟고 있는 확실함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되찾아야 할 우리 삶의 진정성이기도 합니다. 오늘날 우리의 삶은 발이 땅으로부터 유리되어 있는 상태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확실한 보행이 불가능한 상태이며 지향해야 할 확실한 방향을 잃고 있는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경』에 담겨 있는 사무사(思無邪)의 정서가 절실한 상황이 아닐 수 없습니다. p66-p67

무엇보다도 불편함이야말로 우리의 정신을 깨어 있게 하는 것이라는 깨달음이 없는 것이지요. 살아간다는 것이 불편한 것이고, 살아간다는 것이 곧 상처받는 것이라는 성찰이 없는 것이지요. p72

미래는 과거로부터 옵니다. 여러분은 무엇이 변화할 때 사회가 변화한다고 생각합니까? 그리고 여러분은 미래가 어디로부터 다가온다고 생각합니까? 미래는 과거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미래는 외부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내부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변화와 미래가 외부로부터 온다는 의식이 바로 식민지 의식의 전형입니다. 권력이 외부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곳으로부터 바람이 불어오기 때문입니다. p77

3. 『주역』의 관계론

『주역』은 대단히 방대하고 난해합니다. 어디서부터 이야기해야 하나 난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만 강의 서두에서 합의한 바와 같이 ‘『주역』의 관계론’에 초점을 두기로 합니다. 『주역』에 담겨 있는 판단형식 또는 사고의 기본 틀을 중심으로 읽기로 하겠습니다. 판단형식 또는 사고의 기본 틀이란 쉽게 이야기한다면 물을 긷는 그릇입니다. 생각한다는 것은 바다로부터 물을 긷는 것입니다. 자연과 사회를 바라보고 이해하는 나름의 인식 틀이라 할 수 있습니다. p87

나는 인간에게 두려운 것, 즉 경외의 대상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꼭 신이나 귀신이 이니더라도 상관없습니다. 인간의 오만을 질타하는 것이면 어떤 것이든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점을 치는 마음이 그런 겸손함으로 통하는 것이기를 바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점치는 사람을 좋은 사람으로 생각합니다. p89

우리가 보통 점이라고 하는 것은 크게 상(相), 명(命), 점(占)으로 나눕니다. 상은 관상, 수상과 같이 운명 지어진 자신의 일생을 미리 보려는 것이며, 명은 사주팔자와 같이 자기가 타고난 천명, 운명을 읽으려는 것입니다. 상과 명이 이처럼 이미 결정된 운명을 미리 엿보려는 것임에 반하여 점은 ‘선택’과 ‘판단’에 관한 것입니다. p89

『주역』은 오랜 경험의 축적을 바탕으로 구성된 지혜이고 진리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진리를 기초로 미래를 판단하는 준거입니다. 그런 점에서 『주역』은 귀납지이면서 연역지입니다. 『주역』이 점치는 책이라고 하지만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바로 이와같은 경험의 누적으로부터 법칙을 이끌어내고 이 법칙으로써 다시 사안을 판단하는 판단 형식입니다. 그리고 이 판단 형식이 관계론적이라는 것에 주목하자는 것입니다. p90

나는 그 ‘자리’가 그 ‘사람’보다 크면 사람이 상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나는 평소 ‘70%의 자리’를 강조합니다. 어떤 사람의 능력이 100이라면 70정도의 능력을 요구하는 자리에 앉아야 적당하다고 생각합니다. 30 정도의 여유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30 정도의 여백이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 여백이야말로 창조적 공간이 되고 예술적 공간이 되는 것입니다. p101

반대로 70정도의 능력이 있는 사람이 100의 능력을 요구하는 자리에 앉을 경우 그 부족한 30을 무엇으로 채우겠습니까? 자기 힘으로 채울 수 없습니다. 거짓이나 위선으로 채우거나 아첨과 함량 미달의 불량품으로 채우게 되겠지요. 결국 자기도 파괴되고 그 자리도 파탄될 수밖에 없습니다. p101

개체의 능력은 개체 그 속에 있지 않고 개체가 발 딛고 있는 처지와의 관계 속에서 생성된다고 하는 생각이 바로 『주역』의 사상입니다. 어떤 사물이나 어떤 사람의 길흉화복이 그 사물자체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주역』사상입니다. 이러한 사상이 득위와 실위의 개념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이것이 곧 서구의 존재론과는 다른 동양학의 관계론입니다. p102

『주역』은 사회 경제적으로 농경적 토대에 근거하고 있는 유한 공간사상이며 사계가 분명한 곳에서 발전될 수 있는 사상이라는 주장이 더욱 설득력이 있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의 반복적 경험의 축적과 시간 관념의 발달 위에서 성립할 수 있는 사상이기 때문입니다. p107

『주역』은 이처럼 어떤 괘를 그 괘만으로 규정하는 법이 없고 또 어떤 괘를 불변의 성격으로 규정하는 법도 없습니다. 한마디로 존재론적 관점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p120

나는 세상에 무엇하나 끝나는 것이라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바람이든 강물이든 생명이든 밤낮이든 무엇 하나 끝나는 것이 있을 리 없습니다. 마칠 수가 없는 것이지요. 세상에 완성이란 것이 있을 리가 없는 것이지요. p127

속도와 효율성, 이것은 자연의 원리가 아닙니다. 한마디로 자본의 논리일 뿐입니다. 그래서 나는 도로의 속성을 반성하고 ‘길의 마음’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길’은 도로와 다릅니다. 길은 길 그 자체로서 의미가 있습니다. 길은 코스모스를 만나는 곳이기도 하고 친구와 함께 나란히 걷는 동반의 공간이기도 합니다. 일터이기도 하고, 자기발견의 계기이기도 하고, 자기를 남기는 역사의 현장이기도 합니다. p129

『주역』사상을 계사전에서는 단 세 마디로 요약하고 있습니다. “역(易) 궁즉변(窮則變) 변즉통(變則通) 통즉구(通則久)”가 그것입니다. “역이란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고 통하면 오래간다.”는 진리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주역』사상은 한마디로 ‘변화’입니다. p130

『주역』에서는 위에서 본 것과 같은 철학적 구도 이외에 매우 현실적이고 윤리적인 사상이 일관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절제(節制)사상입니다. 절제와 겸손이란 자기가 구성하고 조직한 관계망의 상대성에 주목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p131

『주역』독법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절제와 겸손이란 것이 곧 관계론의 대단히 높은 차원을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 가지 사정을 배려하는 겸손함 그것이 바로 관계론의 최고 형태라는 것이지요. p132

『주역』강의를 마치면서 시 한 구절 소개합니다. 서산대사가 묘향산 원적암에 있을 때 자신의 영정에 쓴 시입니다.

八十年前渠是我(팔십년전거시아) 80년 전에는 저것이 나더니
八十年後我是渠(팔십년후아시거) 80년 후에는 내가 저것이로구나. p132-p133

4. 『논어』, 인간관계론의 보고

『논어』는 여러분이 잘 알고 있는 공자어록입니다. 공자의 시대는 기원전 500년 춘추전국시대입니다. 이 시기는 사회에 관한 근본적인 담론이 가장 활발하게 개진된 시기라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시기의 사회 경제사적 성격을 이해하고 『논어』를 읽는 것이 순서라고 생각합니다.

첫째, 춘추전국시대는 철기의 발명으로 특징지어지는 기원전 5세기 제2의 ‘농업혁명기’에 해당합니다.
둘째, 춘추전국시대는 사회 경제적 토대의 변화와 함께 구사회질서가 붕괴되는 사회변동기입니다.
셋째, 춘추전국시대는 제자백가의 백화제방의 시기입니다. p137-p139

우리가 이 지점에서 합의해야 하는 것은 고전과 역사의 독법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제(時制)라는 사실입니다. p141

우리가 『논어』에서 읽어야 하는 것은 사회 변동기에 광범하게 제기되는 인간관계에 대한 담론입니다. 앞으로 여러 가지 문안을 통해 다시 확인되겠지만 『논어』는 인간관계의 보고라 할 수 있습니다. p145

사회 변화 역시 그것의 핵심은 바로 인간관계의 변화입니다. 인간관계야말로 사회 변화의 최초의, 그리고 최후의 준거입니다. 『논어』에서 우리가 귀중하게 읽어야 하는 것이 바로 이 인간관계에 관한 담론입니다. p145

덕치가 평화로운 시대 즉 치세의 학이라고 한다면 행정명령과 형벌에 의한 규제를 중심에 두는 법치는 난세의 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p153

‘아름다움’이란 우리말의 뜻은 ‘알 만하다’는 숙지성(熟知性)을 의미한다는 사실입니다. ‘모름다움’의 반대가 아름다운입니다. 오래되고, 잘 아는 것이 아름답다는 뜻입니다. p159

우리가 미의 문제를 재조명해야 하는 이유가 단지 미인론에 있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런 점에서 미의 본령을 그 외적 형식으로부터 인간관계의 문제로 되돌려놓는 이 『논어』의 대화는 매우 뜻 깊은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p160

화(和)의 논리는 자기와 다른 가치를 존중합니다. 타자를 흡수하고 지배함으로써 자기를 강화하려는 존재론적 의지를 갖지 않습니다. 타자란 없으며 모든 타자와 대상은 사실 관념적으로 구성된 것일 뿐입니다. 문명과 문명, 국가와 국가간의 모든 차이를 존중해야 합니다. 이러한 차이와 다양성이 존중됨으로써 비로소 공존과 평화가 가능하며 나아가 진정한 문화의 질적 발전이 가능한 것입니다. 가장 민족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명제가 바로 이러한 논리라고 생각하지요. p165

도대체 자기를 흉내 내는 사람을 존경하는 사람은 없는 법이지요. p166

낯선 거리의 임자 없는 시체가 되지 마라 p166

백범일지에는 백범 선생이 상서의 한 구절인 상호불여신호(相好不如身好) 신호불여심호(身好不如心好)에 관해 이야기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물론 이 글의 뜻은 얼굴 좋은 것이 몸 좋은 것만 못하고 몸 좋은 것이 마음 좋은 것만 못하다는 것으로 미모보다는 건강이 더 중요하고 건강보다는 마음이 더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p166-p167

나는 이 ‘신호불여심호’에 한 구절을 더 추가하고 싶습니다. 심호불여덕호(心好不如德好)가 그것입니다. ‘마음 좋은 것이 덕 좋은 것만 못하다’는 뜻입니다. p168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정치란 신뢰이며 신뢰를 중심으로 한 역량의 집결이라는 사실입니다. p172

우리는 사랑하지 않는 것도 알 수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애정 없는 타자와 관계없는 대상에 대하여 알 수 있다는 환상을 버려야 합니다. p175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 것을 탓하는 것이 이를테면 존재론적 사고라고 한다면, 관계론적 사고는 내가 남을 알지 못하는 것을 근심하는 것(不患人之不知己 患不知人也)이라 할 것입니다. p183

세상 사람은 현명한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으로 분류할 수 있다고 당신이 먼저 말했습니다. 현명한 사람은 자기를 세상에 잘 맞추는 사람인 반면에 어리석은 사람은 그야말로 어리석게도 세상을 자기에게 맞추려고 하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세상은 이런 어리석은 사람들의 우직함으로 인하여 조금씩 나은 것으로 변화해간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p187

『논어』는 사회의 본질을 인간관계에 두고 있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붕(朋)이건 예(禮)건 인(仁)이건 사회는 사람과 사람이 맺는 관계가 근본이라는 덕치(德治)의 논리입니다. 바로 이 점이 다른 사상에 비하여 『논어』가 갖는 진보성의 근거로 평가되기도 합니다. p193

고대 사상을 오늘의 시제에서 평가할 수 없는 것이지요. 그것이 당시의 사회적 조건에서 어떠한 의미로 진술된 것인가를 기준으로 삼아야 합니다. 모든 사상은 역사적 산물입니다. 특정한 역사적 조건 속에서 태어나고 묻히는 것이지요. 당시의 가치, 당시의 언어로 읽는 것은 해석학의 기본입니다. p194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 p199

내가 있는 성공회대학교를 찾아오는 분들을 환영하는 인사에게 내가 자주 인용하는 글입니다.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먼 곳에서 벗이 찾아오니 어찌 즐겁지 않으랴 207

5. 『맹자』의 의(義)

많은 연구자들의 일치된 견해는 공자의 인(仁)이 맹자에 의해서 의(義)의 개념으로 계승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중심 사상이 인에서 의로 이동했다는 것이지요. 인과 의의 차이에 대해서 물론 논의해야 하겠지만 한마디로 의는 인의 사회화라 할 수 있습니다. p212

인과 의의 차이가 곧 공자와 맹자의 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인이 개인적 관점에서 규정한 인간관계의 원리라면 의는 사회적 관계로서의 인간관계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인이 개인적 관점에서 규정한 인간관계의 원리라면 의는 사회적 관계로서의 인간관계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에 비하여 사회성이 많이 담긴 개념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p213

사실 『맹자』는 그의 주장과 같이 “문구의 생략과 중복이 절묘하고, 흐름이 경쾌하고 민첩하며, 비유가 풍부하고,..... 어떠한 상대도 설복시킬 정도로 논리가 정연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의문, 감탄, 부정구 등 문장의 형식도 다양하고 자유자재하여 한문의 문법과 예문의 교범이 되고 있는 것이 바로 『맹자』입니다. p215

오늘날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많은 숙어들의 출전이 바로 이 『맹자』입니다. 연목구어(緣木求魚), 오십보소백보(五十步笑百步), 농단(壟斷), 호연지기(浩然之氣), 인자무적(仁者無敵), 항산항심(恒産恒心) 등 이루 다 예거하기가 어려울 정도입니다. p215

(한 국가에 있어서)가장 귀한 것은 백성이다. 그 다음이 사직이며 임금이 가장 가벼운 존재이다. p217

성선설의 요지는 모든 사람은 ‘불인인지심(不忍人之心)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고, 이것을 입증하는 것으로 우물에 빠지는 어린아이의 예를 들고 있습니다. p225

중요한 것은 개인이든 국가든, 자기반성이 자기 합리화나 자위보다는 차원높은 생명 운동입니다. p234

한마디로 오늘날의 우리 사회는 만남이 없는 사회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의 주변에서 ‘차마 있을 수 없는 일’이 버젓이 자행되는 이유가 바로 이 ‘만남의 부재’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만남이 없는 사회에 ‘불인인지심’이 있을 리 없는 것이지요.

나는 사회의 본질은 인간관계의 지속성이라고 생각합니다. 맹자가 사단의 하나로 수오지심(羞惡之心), 즉 치를 들었습니다. 나는 이 부끄러움은 관계가 지속적일 때 형성되는 감정이라고 생각합니다. p239

자본주의 사회는 상품사회입니다. 상품사회는 그 사회의 사회적 관계가 상품과 상품의 교환으로 구성되어 있는 사회입니다. 당연히 인간관계가 상품 교환이라는 틀에 담기는 것이지요. 다시 말하자면 사람은 교환가치로 표현되고, 인간관계는 상품 교환의 형식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게 되는 제도입니다. p240

나는 우리 사회의 가장 절망적인 것이 바로 인간관계의 황폐화라고 생각합니다. 사회라는 것은 그 뼈대가 인간관계입니다. 그 인간관계의 지속적 질서가 바로 사회의 본질이지요. p242

불영과불행(不盈科不行)도 우리가 특히 명심해야 할 좌우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이 흐르다 구덩이를 만나면 그 구덩이를 다 채운 다음에 앞으로 나아가는 법이지요. 건너뛰는 법이 없습니다. p245

맹자는 자기를 돌이켜보고 그 품성을 곧게 간추리기에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었습니다. 어린아이들이 부르는 노래로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발을 씻으리”라는 노래가 있다. 물이 맑을 때는 갓끈을 씻지만 물이 흐리면 발을 씻게 되는 것이다. 물 스스로가 그렇게 만든 것이다“라고 하셨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람도 모름지기 스스로를 모욕한 연후에 남이 자기를 모욕하는 법이며, 한 집안의 경우도 반드시 스스로를 파멸한 연후에 남들이 파멸시키는 법이며, 한 나라도 반드시 스스로를 잣밟은 연후에 다른 나라가 짓밟은 것이다. 『서경』「태갑」편에 ”하늘이 내린 재앙은 피할 수 있지만, 스스로 불러들인 재앙은 피할 길이 없구나“라고 한 것은 바로 이를 두고 한 말이다.” p249-p250

6. 『노자』의 도와 자연

도는 자연을 본받습니다. 중국사상은 지배 담론인 유가 사상과 비판 담론인 노장사상이 두 개의 축을 이루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p253

유가 사상은 서구 사상과 마찬가지로 ‘진(進)’의 사상입니다. 인문 세계의 창조와 지속적 성장이 진의 내용이 됩니다. 인문주의, 인간주의, 인간중심주의라 할 수 있지요. 그에 비하여 노자 사상의 핵심은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되돌아가는 것입니다. 근본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지요. 노자가 가리키는 근본은 자연입니다. 노자의 귀(歸)는 바로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p253-p254

『노자』는 산문이라기보다는 운문입니다. 5천여 자에 불과한 매우 함축적인 글이며 서술 내용 역시 담현입니다. 더욱이 노자사상은 상신과 기존의 고정관념을 근본적으로 반성하게 하는 고도의 찰학적 주제입니다. 그 위에 간결한 수사법은 여타 철학적 논술에 비하여 월등한 경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p261-p262

노자 철학에 있어서 무(無)는 ‘제로(0)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인식을 초월한다는 의미의 무입니다. p264

결론적으로 무의 세계든 유의 세계든 그것은 같은 것이며, 현묘한 세계입니다. 유의 세계가 가시적이기 때문에 현묘하지 않다고 생각할 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무의 작용이며, 현상 형태이며, 그것의 통일체이기 때문에 현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p271

자연이야말로 최고(最高), 최선(最善), 최미(最美)의 모델이라는 것이 노자의 인식입니다. 천하 사람들이 알고 있는 미와 선이란 사실은 인위적인 것이라는 인식이지요. 자연스러움을 외면한 인위적인 미나 선은 진정한 미나 선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p273-p274

노자는 백성들이 무지무욕(無知無欲)하게 해야 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무지무욕은 자본주의 경제 체제하에서는 불가능합니다. 나는 사실 경제학을 전공으로 하고 있습니다만 지금도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것이 ‘소비는 미덕’이라는 자본주의 경제학의 공리입니다. 절약이 미덕이 아니고 소비가 미덕이라니, 끝없는 확대 재생산과 대량소비의 악순환이 자본 운동의 본질입니다. 자본주의 경제의 속성입니다. p280

『노자』독법의 기본은 무위입니다. 여러 차례 이야기했습니다만 무위는 무행(無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무위는 그 자체가 목적이나 가치가 아니라 방법론입니다. 실천의 방식입니다. 그것이 목표로 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난세의 극복입니다. 혼란이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입니다. p283

물은 낮은 곳으로 흘러서 바다가 됩니다. 노자 철학은 한마디로 ‘물의 철학’이라고 합니다. ‘상선약수(上善若水)’는 인구에 회자되는 명구입니다.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

『노자』마지막 장인 제81장의 마지막 구가 ‘천지도(天地道) 이이불해(利而不害) 성인지도(聖人之道) 위이부쟁(爲而不爭)’입니다. “천지의 도는 이로울지언정 해롭지 않고, 성인의 도는 일하되 다투는 법이 없다”고 하고 있습니다. p285

세상에서 가장 낮은 물이 ‘바다’입니다. 바다가 세상에서 가장 낮은 물입니다. 낮기 때문에 바다는 모든 물을 다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이름이 ‘바다’입니다. p289

간디는 “진보란 단순화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p304

노자사상을 몇 마디 말로 정리하기는 어렵습니다만 그것의 핵심은 동(動)보다는 정(靜)을, 만(滿)보다는 허(虛)를, 교(巧)보다는 졸(拙)을, 웅(雄)보다는 자(雌)를, 그리고 진(進)보다는 귀(歸)를 더 높은 가치로 보는 데 있습니다. p304

노자의 철학은 귀본(歸本)의 철학입니다. 본도 도이며 자연입니다. 노자철학이야말로 동양 사상의 정수를 담고 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사람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고 하늘은 도를 본받고 도는 자연을 본받는다.(人法地 地法天 道法自然)는 것이 노자의 철학이기 때문입니다. p305

7. 『장자』의 소요

“우물안 개구리에게는 바다를 이야기할 수 없다. 한곳에 매여 살기 때문이다. 메뚜기에게는 얼음을 이야기할 수 없다. 한 철에 매여 살기 때문이다.” p309

장자 사상이 가장 잘 나타나고 있는 것이 『장자』제1편 「소요유」(逍遙遊)입니다. ‘소요유’는 글자 그대로 아무 거리낌 없이 자유롭게 거닌다는 뜻입니다. 장자의 소요유는 ‘궁극적인 자유’, 또는 ‘자유의 절대적 경지’를 보여주기 위한 개념입니다. p311

높이 나는 새가 먼 곳을 바라봅니다. 세상의 모든 존재가 부분이고 찰나라는 것을 드러내는 근본주의적 관점이 장자 사상의 본령입니다. p317

장자의 세계에서 최고의 경지는 도를 터득하여 이를 실천하는 노자의 경지가 아닙니다. 오히려 도와 일체가 되어 자유자재로 소요하는 경지를 의미합니다. 아무것에도 기대지 않고, 무엇에도 거리낌 없는 경지가 장자의 절대 자유의 경지라 할 수 있습니다. p318

학의 다리가 길다고 자르지 마라. 오리의 다리가 비록 짧다고 하더라도 늘여주면 우환이 되고, 학의 다리가 비록 길다고 하더라도 자르면 아픔이 된다. 그러므로 본래 긴 것은 잘라서는 안 되며 본래 짧은 것은 늘여서도 안된다. 그런다고 해서 우환이 없어질 까닭이 없다. 생각건대 인의(仁義)가 사람의 본성일 리 있겠는가! 저 인을 갖춘 자들이 얼마나 근심이 많겠는가. p326

한마디로 인(仁)을 거부하고 천(天)과 합일해야 한다는 것이 장자 사상의 핵심입니다. p327

기계보다는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효율성보다는 깨달음을 소중하게 여기는 문화를 복원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절망적인 것은 우리의 현실이 그러한 반성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p333

자기의 문화, 자기의 생산물, 자기의 언어, 자기의 신을 강요하는 제국과 패권의 논리가 반성되지 않는 한 참다운 문명의 발전은 요원할 수밖에 없습니다. p335

세상에서 도를 얻기 위하여 책을 소중히 여기지만 책은 말에 불과하다. 말이 소중한 것은 뜻을 담고 있기 때문이며 뜻이 소중한 것은 가리키는 바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말은 그 뜻이 가리키는 바를 전할 수가 없다. 도대체 눈으로 보아서 알 수 있는 것은 형과 색이요 귀로 들어서 알 수 있는 것은 명과 성일 뿐이다. p338

"나는 하늘과 땅을 널고 삼고, 해와 달을 한 쌍의 옥으로 알며, 별을 구슬로 삼고, 세상 만물을 내게 주는 선물이라 생각하고 있네. 이처럼 내 장례를 위하여 갖추어지지 않는 것이 없는데 무엇을 또 더한단말이냐?“ p354

중요한 것은 그물입니다. 모든 사물과, 모든 사건과, 모든 사태가 그 위에서 생성 변화 발전하는 거대한 관계망을 잊지 않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지요. 한 마리의 제비를 보고 천하의 봄을 깨달을 수 있게 하는 것이 바로 관계망이지요. 중요한 것은 한 마리의 제비가 아니라 천하의 봄이지요. 남는 것은 그물입니다. 그리고 그물에 관한 생각이 철학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p357

8. 『묵자』의 겸애와 반전 평화

여러 시내가 몸을 섞어 강이 됩니다. 학파간의 차이는 그 시대의 과제를 인식하는 관점의 차이에 불과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각 학파 간의 차별화가 진행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각 학파 간의 침투가 진행되는 것이 사상사의 일반적 발전 과정입니다. 여러 시내가 몸을 섞어 강이 되듯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상호 침투합니다. p363

묵자의 검은 얼굴. 첫째로 하층민의 이미지입니다. 검은 노동복을 입고 전쟁을 반대하고 허례와 허식을 배격하며 근로와 절용을 주장하는 하층민이나 공인들의 집단이 묵가라는 것입니다. p364

둘째로는 근검 절용하며 실천궁행하는 모습입니다. p365

묵자는 제자들에게 우임금을 배울 것을 주장하여, 거칠고 남루한 의복도 고맙게 생각하며 나막신이나 짚신에 만족하며 밤낮으로 쉬지 않고 몸소 실천하는 것을 근본 도리로 삼도록 가르쳤습니다. p366

기층 민중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며 검소한 삶을 영위하고 신명을 다하여 실천궁행하는 모습이 묵가의 이미지입니다. p367

백성들은 세 가지의 고통을 받고 있는 바, 주린 자는 먹을 것이 없고, 추운 자는 입을 것이 없고, 일하는 자는 쉴 틈이 없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현실 인식을 보더라도 묵자가 기층 민중의 고통에 주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 인식에 근거하여 묵자는 겸애(兼愛)라는 보편적 박애주의와 교리라는 상생이론을 선언합니다. p370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 묵자는 혼란의 궁극적 원인은 서로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p374

겸애는 별애의 반대 개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겸애는 세상의 모든 사람을 차별 없이 똑같이 사랑한다는 뜻입니다. 평등주의, 박애주의입니다. p375

성공회대 정보과학관 휴게실에 ‘兼治別亂’이란 액자가 결려 있습니다. 내가 쓴 글씨입니다. 겸애하면 평화롭고 차별하면 어지러워진다는 뜻이며 물론 묵자의 글에서 성구(成句)한 것입니다. p376

단 한 줌의 의로움도 있을 수 없는 것이 전쟁입니다. 따라서 비공(非攻), 즉 침략 전쟁을 반대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인간적인 사상이지요. 그런 점에서 반전 평화론이야말로 전국시대 최고의 사상이며 최상의 윤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나쁜 평화가 없듯이 좋은 전쟁 또한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p379

"옛말에 이르기를 ‘군자는 물을 거울로 삼지 않고 사람을 거울로 삼는다’고 했다. 물을 거울로 삼으면 얼굴을 볼 수 있을 뿐이지만 사람을 거울로 삼으면 길흉을 알 수 있는 것이다. p382

"거울에 비추지 마라“는 묵자의 금언은 비단 반전의 메시지로만이 아니라 인간적 가치가 실종된 물신주의적 문화와 의식을 반성하는 귀중한 금언으로 읽어야 할 것입니다. p382

마치 소비가 미덕이듯이 전쟁이 미덕이 되고 있는 것이 자본주의 체제입니다. 자본주의 발전 과정은 제국주의적 팽창과정이었으며,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을 해소하는 방식이 냉전이든 열전이든 항상 전쟁에 의존해왔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p383

『묵자』의 비공편은 전쟁 일반에 대한 잘못된 의식뿐만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 시대에 만연하고 있는 자본주의에 대한 우리들의 허위의식을 반성케 한다는 점에서 대단한 현재성을 갖는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p383

미리 아궁이를 고치고 굴뚝을 세워 화재를 예방한 사람의 공로는 알아주지 않고, 수염을 그을리고 옷섶을 태우면서 요란하게 불을 끈 사람은 그 공을 칭찬하는 것이 세상의 인심인 셈이지요. 개선장군에 대한 환호가 그러한 것입니다. p386

자본주의 체제하의 생산과 소비 수준은 한마디로 사람들의 삶을 기준으로 하여 그 규모가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의 필요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자본 축적 논리에 의해서 결정됩니다. p390

무엇을 삼표라고 하는가. ..... 본(本), 원(原), 용(用)이 그것이다. 묵자의 삼표는 첫째는 역사적 경험이며, 둘째는 현실성이며, 셋째는 민주성입니다. 묵자의 입장은 기층 민중의 이익입니다. 그리고 기층 민중의 이익은 전쟁을 반대하고 서로 사랑하고 나누는 것입니다. p393

묵자 사상은 인간관계 그리고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성을 철학적 토대로 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p393

이러한 논리의 연장선상에서 묵자는 겸애와 교리를 하늘의 뜻이라고 합니다. 묵자의 천지론(天志論)입니다. p394

묵가는 중국 사상사에서 이론과 실천을 겸비한 최초의 좌파 조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좌파사상과 좌파 운동이 그 이후 장구한 역사 속에서 겪어 나갈 파란만장한 드라마를 역사의 초기에 미리 보여준 역설적인 선구자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p399-p400

9. 『순자』, 유가와 법가 사이

순자가 유가학파로부터 배척당한 가장 큰 이유는 아마 그의 천론(天論)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순자의 천은 물리적 천입니다. 순자의 하늘은 그냥 하늘일뿐입니다. 인간 세상은 하늘과 아무런 상관이 없음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p405

순자는 인간의 능동적 참여를 천명합니다. 천이 해결해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순자의 천론은 당시 생산력의 발전, 그리고 천문학의 발달과 무관하지 않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p408

이러한 점에서 노장의 입장과는 근본을 달리하고 있는 것이지요. 인간의 적극 의지와 능동적 실천에 근거하여 인문 세계를 창조하고자 하는 것이 그의 궁극적 목표입니다. p409

순자의 성악설과 함께 우리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주제가 있습니다. 맹자의 성선설이든 순자의 성악설이든 우리는 본성론 자체를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이 본성에 대하여 선악 판단을 한다는 것 자체가 올바른 태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p414

우리가 명심해야 하는 것은 순자의 성악설은 인간에 대한 불신이나 절망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순자는 모든 가치 있는 문화적 소산은 인간 노력의 결정이라고 주장하는 인문 철학자임을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p417

순자의 냉정함은 그의 문장에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순자의 문장은 화려한 수사보다는 뜻의 창달에 주안을 두었으며, 논설 기능을 가일층 발전시켜 논리가 정연하고 주장이 분명한 위에 전체적인 구성에도 짜임새가 있는 것으로 정평을 얻고 있습니다. p420

순자의 예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예를 곧 법과 제도의 의미로 발전시켰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론의 핵심이기도 합니다. p421

순자의 체계에 있어서 인간 사회의 문화적 소산은 사회 조직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 사회 조직이 바로 예(禮)입니다. 그리고 그 예가 곧 제도와 법입니다. 이러한 제도와 법을 준수하게 하기 위해서는 교육이 필요합니다. p423

순자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인도(人道)와 인심(人心)입니다. 천도(天道)와 천심(天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순자의 도는 천지의 도가 아니라 사람의 도일 뿐입니다. p425

10. 법가와 천하 통일

법가를 읽을 때 가장 중요한 점은 이러한 법가의 현실성에 초점을 맞추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실성이란 점에 있어서 다른 학파와 어떠한 차별성을 갖는 것인가에 대하여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p431

법가의 사관을 미래사관 또는 변화사관이라 하는 이유입니다.이는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발상의 전환이라 할 수 있습니다. p432

법가의 가장 큰 특징은 이처럼 변화를 인정하고, 변화된 현실을 받아들이는 현실성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p433

나는 법가의 법치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이 공개 원칙이라고 생각합니다. p439

현재 우리 사회에서는 범죄와 불법행위라는 두 개의 범죄관이 있습니다. 절도, 강도 등은 범죄 행위로 규정되고, 선거사범․경제사범․조세사범 등 상류층의 범죄는 불법행위로 규정합니다. 범죄행위에 대한 우리의 관념은 매우 가혹한 것임에 비해,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더없이 관대합니다. p443

법의 도리는 처음에는 고생스럽지만 나중에는 오래도록 이로우며, 인의 도리는 처음에는 잠깐 동안 즐겁지만 뒤에 가서는 곤궁해진다. p443

체(體)로서의 법과 그 체의 기반 위에서 용(用)으로서의 술(術)을 활용함으로써 군주가 세(勢)를 확립해야 한다는 것이 한비자의 주장입니다. p447

한비자의 사상은 그것이 군주 철학이란 점에서 비판되기도 하지만, 한비자의 군주철학은 분명한 논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강력한 중앙집권적 권력이야말로 난세를 평정하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논리입니다. p447

나는 그 인간을 알지 못하면 그 사상을 알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람과 사상은 서로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이지요. 사상과 시대, 사상과 사회가 분리될 수 없다는 것도 같습니다. p456

교사(巧詐)가 졸성(拙誠)보다 못하다는 이 말의 뜻을 나는 세상 사람들 중에 자기보다 못한 사람은 없다는 의미로 읽고 있습니다. 거짓으로 꾸미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자기보다 지혜롭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인 것이지요. p457

그림이든 노래든 글이든 그것이 어떠한 것이든 결정적인 것은 인간의 진실이 담겨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혼이 담겨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비자의 이러한 인간적 면모가 적어도 내게는 법가를 새롭게 이해하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습니다. p458

모든 사상은 다른 모든 사상과 관련되어 있으며 파란만장한 역사적 전개 과정의 일환으로 출몰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어떠한 철학체계라 하더라도 그것이 우리의 인식을 제약해서는 안 되는 것이지요. 그런 점에서 모든 사상은 기본적으로 기존의 개념적 인식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키는 것이어야 한다는 점을 잊지 않는 것이 필요합니다. p460

11. 강의를 마치며

우리가 깨닫는 것, 즉 각(覺)에 있어서 최고 형태는 바로 “세계는 관계”라는 사실입니다. 세계의 구조에 대한 깨달음이 가장 중요한 깨달음입니다. 풀 한 포기, 벌레 한 마리마저 찬란한 꽃으로 바라보는 깨달음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눈앞에 펼쳐진 바로 이 현실을 수많은 꽃으로 가득 찬 화엄의 세계로 바라볼 수 있는 깨달음이 중요합니다. p475

깨달음의 의미를 지극히 명상적인 것으로 해석하는 것 그 자체가 바로 이데올로기라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깨달음은 고전 읽기의 시작이며 그 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p477

세계는 화엄의 찬란한 세계이면서 동시에 덧없는 무상의 세계임을 수긍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한계 내에서 우리의 삶을 영위하고 우리의 생각을 조직하고 우리의 시공에 참여하는 존재일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p479

『대학』은 수기치인(修己治人)을 체계적으로 설명한 것으로 유가 사상 중에서 가장 깊이 있는 내용이라 평가됩니다. p486

『대학』의 내용을 요약한다면 첫째 명덕을 밝히는 것, 둘째 백성을 친애하는 것, 셋째 최고의 선에 도달하는 것이라 할 수 있는데, 이 세 가지를 3강령이라 합니다. 그리고 격물(格物)․치지(致知)․성의(誠意)․정심(正心)․수신(修身)․제가(齊家)․치국(治國)․평천하(平天下)가 8조목입니다. p487

『대학』의 목적은 궁극적으로 평화로운 세계의 건설입니다. p488

평천하, 즉 평화로운 세계는 명덕과 친민과 지선이 실현되는 세상을 의미합니다. 인간관계가 존중되는 사회, 민주적인 사회, 선량한 사회를 만들기 위하여 개인의 품성이 도야되어야 함은 물론이며 개인뿐만 아니라 가(家)와 국(國) 그리고 국가 간의 관계가 평화로워야 합니다. p492

『대학』은 그런 점에서 소학밖에 없는 오늘의 학문 풍토에서 다시 한번 주목되어야 할 인문학이라 할 수 있으며, 우리가 모색하는 새로운 문명론의 서장이라 할 것입니다. p494

『중용』이 가장 중요하게 선언하는 것이 바로 이(理)입니다. 성즉리입니다. 이는 법칙성입니다. 이 이가 성이며 성이 천명입니다. p497

중용지도(中庸之道)가 세계으 근본이며 세계의 보편적 ‘도리(道理)라는 것은 유가의 도덕적 규범을 이로 선언하여 인간이 관여할 수 없는 절대적 원리로 올려놓는 것이지요. 그리하여 중(中)은 천하의 대본이며 화(和)는 천하의 달도가 되는 것입니다. p499

견고한 구조는 변화에 대한 무지와 지체로 이어지고 당연히 19세기 말 근대 절서의 도전을 맞아 힘겨운 대응을 하게 되는 원인이 되는 것이지요. 우리나라의 경우도 조선 후기 성리학의 완고한 구조로 말미암아 사회 역량의 내부 소모와 전체 과정의 지체를 겪지 않을 수 없었음은 물론입니다. p500

신유학은 13세기까지 중국이 경험하였던 정치 사회적 성취와 지적 유산이 학문적으로 재구성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대단히 성공적인 역사 발전의 과정을 보여주는 것으로, 서구 근대 사상에 의하여 치명적인 충격을 받을 때까지 중국 사상과 중국 사회구조의 견고한 토대가 되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p501
명나라 중기에 신유학에 대한 비판 이론으로서 양명학이 소위 심학(心學)으로 등장하게 됩니다. p501

심론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주체성의 강조입니다. 주체성이 심(心)이라는 또 하나의 주관적 관념론으로 표상되고 있다고 할 수 있지만, 이 심론의 가장 큰 특징이 바로 주체성이라는 적극 의지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p502

사상은 사회변화를 이끌어내고, 다시 사회적 변화를 정착시키고 제도화하는 역할을 합니다. 우리가 잊지 않아야 하는 것이 바로 이 사상 고유의 전개 과정을 확인하는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p504

과거란 지나간 것이거나 지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과거는 흘러가고 미래는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 미래는 다 같이 그 자리에서 피고 지는 꽃일 따름입니다. p505

우리의 고전 독법은 관계론의 관점에서 고전의 의미를 재조명하는 담론이었습니다. 이러한 담론을 통하여 우리가 발견한 가장 중요한 것은 동양적 삶이 지향하는 궁극적인 가치는 ‘인성의 고양’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p506

인성의 고양은 ‘바다로 가는 여행’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지요. 바다로 가는 겸손한 여행이라 할 수 있습니다. p506

자본주의 체제가 양산하는 물질의 낭비와 인간의 소외, 그리고 인간관계의 황폐화를 보다 근본적인 시각으로 재조명하는 것이 당면한 문명사적 과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p507

우리는 우민화의 최고수준을 보여주는 상품 문화의 실상을 직시하는 것에서 비판정신을 키워가야 하리라고 생각합니다. 비판적 성찰이 새로운 문명에 대한 모색의 출발점이 되기 때문입니다. p507

동양고전의 독법에 있어서는 고전의 내용을 이해하는 것보다는 이러한 성찰적 관점을 확립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입니다. p507

가슴에 두 손. 그 사람의 생각을 결정하는 것이 머리가 아니라 가슴이라는 뜻입니다. 가슴을 강조하는 것은 가슴이 바로 관계론의 장이기 때문입니다. p508

문사철(文史哲)과 나란히 시서화(詩書畵)에 대한 교육을 병행해야 합니다. p509


[4. 내가 저자라면]

논어에서 시작하여 양명학으로 끝나는 신영복 교수님의 강의는 모든 사람을 탄복시키기에 충분한 내용으로 가득차 있다. 경제학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한문학과 중국고전에 대해 이토록 깊이 있게 파헤친 사람은 아마 없지 않나싶을 정도로 전부분에서 이를 심층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참으로 인간의 깊이가 끝이 없음을 느끼게 하면서 경외감마저 갖게 한다.

겨우 한 번 읽은 나로서 지식의 깊이에 한계를 느끼고는 감히 무엇이라 평하기 어려움을 갖지만 이토록 중국고전에 대해 상세한 설명과 접근의 용이함에 탄복하면서 몇 마디를 언급하고자 한다.

우선 책의 독자들에 대한 접근성을 이야기하고 싶다. 강의라는 제목이 마음에 안 든다. 마치 대학생이나 공부하는 학생을 겨냥한 듯한 제목에서 독자들의 시선을 집중시키는 데 한계를 느끼게 한다. 책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자신의 의견과 사상을 폭넓게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이점에서 이 책은 실패한 듯하다. 이토록 중국고전에 대해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을 책의 제목을 보고는 일반 독자가 접하기 어렵다. 그러기에 독자들에게 접근할 기회의 폭을 넓히는 책이름이 아쉽다. 쉽게 말하면 마케팅차원에서 소홀히 했지 않았나는 느낌이다. 내가 보기에 책이름을 ‘중국고전의 손쉬운 이해’라든지 아니면 경제학과의 접목을 강조하는 측면에서 ‘자본주의는 중국고전에서 배운다’라고 명명함으로써 독자들의 이목을 집중시킬 필요가 있었다. 또한 존재론이 아닌 관계론을 집중 조명하는 저서라는 점에서 이를 강조하는 저서로 독자에게 어필하였으면 좋지 않았을까 지적하고 싶다

둘째는 책의 부피이다. 나는 독자가 책을 잡는 범위를 알고 있다. 그것은 일전에도 언급 했지만 독자가 책을 읽고 싶은 리드를 갖게 하려면 400페이지 이상을 넘기지 않으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된다고 본다. 그게 독자들의 심리라고 본다.

수많은 책을 만지고 느끼지만 이 분량을 넘기면 대부분의 독자는 책 자체를 외면한다. 그것이 책의 분량에 대한 부담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독자는 심리적으로 책의 내용도 중요하다고 보지만 책을 읽음으로써 오는 성취감에 더욱 무게를 두는 경향이 있다. 이는 책을 만드는 사람에게는 중요한 사안이 아니지만 이를 읽는 독자로서는 매우 중요한 요건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 점을 도외시한 저자는 자신의 이상과 꿈을 펼치는데 한 번 더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기에 이 책은 나에게 엄청난 부담으로 다가왔다. 내용의 심오함보다는 지루함을 달래려는 독자에 대한 배려가 결여되었기에 드리는 말이다.

그것의 대안으로 중국고전의 주류와 비주류로 나누던지 아니면 유가와 유가이외의 학파라든지 2권 이상으로 나누면 좋았지 않나 생각하게 된다.

끝으로 자본주의에 대한 지나친 비관론이 거슬린다. 신교수님은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비판적 사고를 일관되게 주장하면서 사상에 대한 끝없는 비판정신과 비판적 성찰이 새로운 문명의 모색의 출발점임을 강조하지만 자본주의도 하나의 사상이므로 장점과 단점이 있음은 분명하다. 중국고전이 5천년역사를 자랑하지만 그 또한 장점과 단점이 있는 한 조류에 불과하며 이 또한 배울 것이 있고 버려야 될 것이 있다.

어떠한 사상과 조류는 그것이 어떠냐의 현상을 논하기 전에 그것을 실천하는 인간의 노력에 대한 결실이라고 단정하고 싶다. 자본주의도 그것을 실천하는 인간의 노력여하에 따라 옳고 그름이 판가름난다고 본다. 교수님은 마치 그 사상 자체가 잘못됐다고 평가하는 것에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본주의의 궁극적인 목적은 가짐이 아니라 나눔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물론 영국에서 자란 자본주의는 그 진행과정에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왔고 지금도 부작용이 없지 않다. 그러나 이 제도나 사상이 그렇지 못한 제도와 경쟁하면서 상대적 우위를 점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기에 이 제도의 비판정신도 좋지만 무엇이 이 사상을 유지하는 비결이며 장점이 무엇인가를 찾고 노력하는 자세도 학자의 기본이라 생각한다. 세상을 주도하는 사람은 그것을 비판하는 사람보다는 그것을 긍정적이고 실천적으로 가꾸는 자에게 많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 같은 나의 생각을 인고의 세월을 통해 터득한 진리를 언급한 분에게 드리는 것은 감히 있을 수 없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로 이 책의 깊이는 남다르다. 든다. 동양고전의 독법에 있어서는 고전의 내용을 이해하는 것보다는 성찰적 관점을 확립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시다고 말씀하신 것은 어느 독자에게도 폐부에 와 닿는 이야기며 앞으로도 진리의 한 자리를 점할 것이 분명하다는 점에서 이 책은 우리가 두고두고 가지고 가야할 책장의 보고임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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