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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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저자소개
강영희 姜英熙
문화평론가. 서울대 동양사학과와 국문학과 대학원, 동국대 영화학과 대학원을 졸업했다. 저서에는 문화평론집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1994)와 인터뷰집 『우리는 자유로에서 다시 만났다』(1998)가 있다. 연극평론에서 시작해서 문화평론으로 영역을 넓혔고,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인터뷰에도 팔을 걷고 나섰다. 6년 전부터는 책을 쓴다는 핑계로 한동안 무위도식하며 전국 방방곡곡을 비롯해서, 중국 프랑스 이탈리아 미국 대만 등지를 열심히 돌아다녔다.
문화평론가로서 세상의 모든 잡사(雜事)에 대한 잡문(雜文)을 써온 그녀는, 이 책을 쓰면서 세상의 모든 잡학(雜學)을 용감하게 돌파하여 그것들을 꿰뚫는 깨달음을 얻겠노라는 야무진 꿈을 꾸게 되었다. 꿈의 주제는 물론 문화이며 인문이며 창조이며 성찰이다. 한국인의 미의식을 다룬 이 책은 그 첫걸음인 셈이다.
b. 독후감
잡부, 취업난이라는 요즘같은 때에도 꾸준히 모집공고가 이루어지는 사람.
잡지, 동서양, 종류와 장르를 막론하고 꾸준히 수요와 공급이 이루어지는 책.
잡금, 녹이 스는 단점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쓰임새로 인해 꾸준히 만들어지는 금속.
그러면 잡문이란?
여기 세상 모든 잡학을 넘나들며 완성하였다는 잡문이 있다. 처음에 아무 부담없이 책을 집어들었다. 책 제목에 취해서였다. 책을 읽기 전 한젬마의 '그림 읽어주는 여자' 라는 책이 문득 떠올랐다. 미처 접해보지 못했던 예술작품에 대해서 문외한인 독자가 보다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안내를 맡아주었던 한젬마처럼, 이 책의 저자 역시 비슷한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 저자의 역할에 대해서 내가 완전 헛다리를 짚었음을 알았다.
이 책은 절대로 인문교양서적의 한 종류로서 한국작품의 차분한 안내서가 아니다. 사실 이 책에서 나오는 작품들은 감상용이라기 보다는 일종의 증거로 채택되었다는 생각이다. 저자는 한국작품을 통해서 한국인의 미의식에 대해 강한 어조로 호소하고 있다. 급속한 근대화를 거치면서 기억상실에 걸린 한국인에게 너 자신을 알라고, 잃어버린 기억을 찾으라고 강력하게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기억상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놀랐던 부분-사실 거의 내내 놀랐다. 내가 한국인인지 싶을 정도로, 아니면 저자가 직관력이 뛰어난 매우 특별한 한국인이지 싶을 정도로-이 바로 이 기억상실과 관련된 것이다. 철저하게 기억상실증을 겪고 있는 현대 한국인의 대표가 바로 나이기 때문이었다.
소설 무정에서 샌드위치가 근대화의 표상으로 쓰이는 반면 구더기가 들어있는 된장찌개가 몰락하는 전근대인의 소품으로 사용되었다는 지적과 함께 제시하는 한국인의 기억상실증, 근본적으로 미적인 위계질서 내에서 지극히 일본의 일본에 의한 일본을 위한 야나기 무네요시의 조선예술론에 대한 논리적인 분석과 비판, 지금까지 공공연하게 한국인의 기저의 감정이라고 여겨지던 恨을 곰삭음 즉 발효의 한 과정으로 신명으로 승화되기 전이라고 재조명한 점, 역시 유사한 맥락에서 백의민족이라고 표현되는 우리의 흰색을 무색이 아닌 자연의 바탕색인 소색이라는 설명과 함께 오늘날 한국에 나타나는 고유색의 부재를 지적하고 이에 대한 원인이 취향을 비롯한 취향 전반에 대한 상실임을 지적한 것 등은 노랍기 그지 없다. 그러나 독자가 지금까지 '사실'이라고 믿어왔던 사항들에 대해서 모두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게 하는 것이 저자의 목적이 아님은 분명하다. 시작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저자가 독자에게 요구하고 주장하는 사항은 단 하나, 저다움을 찾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저다움은 남이 찾아줄 수 있는 것이 아니요, 본인이 인식하고 있다고 해서 항상 옳은 것이 아니니 주체적인 시각과 솔직한 감수성으로 키워나가야 할 어떤 것이라는 설명이다.
책에서는 미의식에 한정하여 이야기를 하였지만 저다움을 찾는데 구분이나 한계는 없다. 책을 읽으면서 이 책은 세계속으로 뻗어나가려고 하는 수많은 한국인에게 필요한 자기계발서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개인에게도 역시 마찬가지다. 변화의 추구, 능동적인 적응, 적극적인 자기계발을 위해서 선행되어야 할 것은 무엇보다 자기발견이다. 취향이란 무엇보다 타인과 자신을 구별함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구체적인 계기이기 때문에 낯익은 자신의 취향을 모욕적으로 내팽개치고 낯선 타인의 취향을 선망의 시선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사소한 에피소드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는 저자 강영희의 말처럼 나도 나의 취향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 무조건적으로 자기계발과 변화라는 화두에 목메는 현상에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왜 나는 변화에 대해 갈구하고 목말라하는지에 대한 나 자신에 대한 탐구가 어쩌면 더 절실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그래서 '나다움'에 대한 확실한 정보, 나의 취향, 나의 근본을 알게 된다면 자기계발에 대한 목마름이나 허기에 따른 마구잡이식 뷔페를 찾는 것에서 벗어나 입맛을 살리는 정갈한 밥상을 찾아갈 수 있지 않을까는 생각이다.
c. 내가 저자라면
구성상 마음에 드는 두 가지, 사진 그리고 참고문헌
강박인지 모르겠지만 책을 사면 항상 책날개를 먼저 본다.
저자의 약력은 두번째다. 우선은 저자의 사진이 있나 없나를 살핀다.
이 책의 날개에는 저자의 어린시절 사진이 나와있었다. 처음에는 이건 또 뭔가 싶었는데 책을 읽으면서 알았다. '기억 속의 심상'이란 애매모호한 말로 설명되어 있던 이 사진이, 사실은 그녀로 하여금 이 글을 쓸 수 있도록 원동력이 되었던 시절의 것임을 말이다. 6년이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닐진데 그 긴 기간동안 지치지 않고 자료들을 모으고 연구하도록 한 기저에는 그녀가 품에 안고 잊지 못하는 어린 시절의 삶이 있었던 것이다. 책을 읽기 전에는 가벼운 흥미거리로 보여지던 사진이 책을 읽고 나서는 그럴만하다는 공감으로 와 닿는다.
책 뒤에 참고한 문헌들을 달았다. 가끔 마음에 쏙 책을 볼 때면 저자가 참고한 서적도 같이 보고싶은 마음이 생기는데-언제 본다는 기약이 없다는 단점이 있지만- 따로 정리가 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결국 본문 중에서 그때 그때 체크를 하거나 뒷날개 부분의 여분종이에 끄적거리는 수고를 해야 하는데 이 책은 그런 수고를 덜어준다. 참고한 서적의 내용을 저자의 것인양 옮겨적지 않고 일일히 내용을 옮기고 출처를 밝히는 것이
구성상 욕심나는 한 가지, 사진자료들의 배치와 양
책을 순서대로 읽는 편이라 특별한 일이 있지 않고는 1부 1장부터 살피는 편이다. 그러다보니 글의 내용과 화보가 같은 페이지에 배치되어 있어서 그림을 보면서 글을 볼 수 있는 곳도 있었고 어떤 부분은 설명이 먼저 나와서 설명부터 보고 난 후에 화보를 보게 되는 경우도 있었는데 개인적으로는 후자가 훨씬 그림이 선명하게 다가왔다. 그림을 보고 설명을 보면 '그렇구나' 정도인데 설명을 한참 듣고 나서 그림을 보면 '아~하' 싶었다. 자료의 배치를 약간 달리하여 한 템포 늦게 화보를 제시하는 것도 책의 재미를 살릴 수 있을 듯한 생각이다.
더불어 지면의 한계 때문인지 본문에 제시되었으나 보여주지 않는(못한?) 자료도 더러 보인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언급되었던 자료들이 모두 제시되었으면 참 좋았겠다는 욕심이다.
d. 책 속에서
지은이의 글 ...4
1부 기억상실과 어제의 한국인 ...13
1.백남준과 서울의 기억 ...15
전통은 '기억 속의 심상'이다│진진묘와 반가사유상
2.기차가 있는 풍경 ...38
시간과의 경쟁│된장찌개와 샌드위치
2부 야나기 무네요시의 한국 예술론 ...53
1.미적인 위계질서 또는 오리엔탈리즘 ...60
조선 도공의 무지와 일본 다인의 안목│일본인과 미의식의 위계질서
2.일본 국학과 야나기의 미의식 ..74
비애의 미와 거세된 일본인
3.선의 미와 야나기의 환상 ...92
4.일본의 기교와 한국의 격 ...104
5.근대적 자의식과 한국 예술의 민예성 ...115
6.자연과 작위를 통합시킨 일본의 세 ...121
3부 한국인의 미의식 ...125
1.음양오행과 상(象)의 미의식 ...132
화강암의 아름다움과 원경의 미학
2.아졸미(雅拙美)또는고졸미(古拙美) ...143
3.발효맛과 생기의 미감 ...153
잘 삭힌, 시원하고 칼칼한 맛
4.상극적인 것을 상생적인 것으로 164
발효와 비보의 원리
5.해학과 신명 ...172
가동적인 정지태│한은 흥으로 발효된다
6.고지도와 명당론 ...182
윤두서의 자화상과 지도│고지도와 공간취향│
땅은 살아 있는 유기체다│명당과 상의 아름다움
7.백의와 색동 ...201
소색의 아름다움│오방색│야나기의 비애와 최남선의 광명│
백의민족이여, 안녕│ 취향의 상실과 색치의 일상│붉은 색 티셔츠와 태극 패션
4부 취향과 성찰 그리고 내일의 한국인 ..229
1.이데올로기에서 취향으로 ...231
2.상생 지향과 탈속의 아름다움 ...238
선비정신과 화해
3.정태적이고 자폐적인 유토피아 ...255
4.허무주의와 샤머니즘의 극복 ...259
5.역동적이고 개방적인 유토피아 ...264
오윤과 도깨비
6.김정희와 연경의 기억 ...270
추사체의 국제적인 안목│'지금 이 순간'의 당대성│회통적인 사고
참고문헌 ...281
1부 기억상실과 어제의 한국인
백남준과 서울의 기억
P15 세계인의 자화상이 세계시민의 대열에 동참하기 위해 밖으로 내닫는 모습을 하고 있다면 한국인의 자화상은 한국인의 동상 앞에서 가슴에 손을 얹고 서서 안으로 옥말리는 모습을 하고 있다.
P16 한국은 탈아입구를 강요당했고 한국인은 자신을 보존하는 동시에 자신을 변화시켜야 하는 모순된 상황으로 내몰렸다. 한쪽에는 척사와 쇄국에서 민족주의와 주체사상에 이르는 구호가, 다른 한쪽에는 개화에서 세계화에 이르는 구호가 등장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 결과 한국인에게는 자기를 굳건하게 다지려는 자화상과 자기를 바꾸려는 자화상이 공존하게 되었다.
P19 강서대묘 사신도의 솟구치는 생기, 금동미륵반가사유상의 정겨운 봉안, 고려 수월관음의 휘황한 신비, 겸재 진경산수의 칼칼한 금수강산 모두 마찬가지다. 이것들은 시대를 앞서가는 세계인에 대한 자랑스러운 한국인의 승리가 아니라 그같은 구별과 경계를 넘어선 곳에 존재하는, 세계를 받아안아 한국을 피워올림으로써 양자를 회통시킨 결과 도달한 창조였다.
P25 세계인이야 한국인이냐가 아니라 세계인인 동시에 한국인이어야 한다. 둘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문제가 아니라 둘을 하나로 통합시키는 문제다. 양자택일이 아니라 회통이다.
P26 당신은 지금 이 순간 세계인과 한국인의 제로섬 게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제는 새로운 개안이 필요하다.
P27 세계인 백남준의 예술이 한국인의 토속적인 자기를 주장하는 내용을 담아낼 수 있는 것은, 그가 전통을 기억의 형태로 몸 속 가득히 저장한 채 살아가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에게 있어 전통이란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쓸 수 있는 '기억 속의 심상'이다.
P28 세계인 백남준에게 한국인 백남준이 죽어버린 과거가 아니라 살아있는 현재가 될 수 있는 비결은 그의 몸 속에 자리잡은 기억이다. 러셀은 <철학의 문제들>에서 현재가 감각을 통해 인식될 수 있는 것과는 달리 과거는 오직 기억에 의해서만 인식될 수 있다고 말했다. 기억의 형태로 몸 속에 저장된 전통이야말로 백남준이 지난날의 수많은 다른 백남준들로부터 물려받아 자신의 작품 구서구석에 숨겨놓은 토속적인 자기의 원천이다.
P32 전통이란 ‘기억 속의 심상’이 지금 이 순간에 새롭게 창조된 것이다. 그리하여 문화의 저력이란 문화 속에 덧쌓인 ‘기억 속의 심상’의 두께이며, ‘기억 속의 심상’을 일관되게 관통하는 취향이야말로 미의식의 본질이다. 따라서 살아 있는 전통을 창조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의 취향을 즐겁게 뛰놀도록 하는 ‘기억 속의 심상’이 ‘생의 지주’와도 같이 우리 안에 늘어서 있어야 한다. 취향의 뜨락인 ‘기억 속의 심상’의 상실이야말로 전통의 단절에서 창조의 불능으로 이어지는 마음의 감옥이다.
2. 기차가 있는 풍경
P48 기억의 상실이란 만취하여 필름이 끊어진 상태와도 흡사하다. 필름이 끊어진 사람들이 그러하듯 기억상실에 빠진 사람들은 성찰을 토대로 한 자기 통제력이 현저하게 낮아진다. 이것이 바로 한국병일고 불리는 사회심리적인 병폐의 원인이다. 하지만 근대 한국인이 기억상실에 빠졌다는 것은 역으로 잠재의식 속에 들어있는 기억을 되살려낼 수도 있음을 의마한다. 그렇다면 일상 속에 존재하는 취향의 도움을 받아 희미해져버린 기억 속의 심상 들을 되살려낸다면, 돌이켜 기억의 상실을 넘어설 수도 있는 것은 아닐까.
P49 낯익은 자신의 취향을 모욕적으로 내팽개치고 낯선 타인의 취향을 선망의 시선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사소한 에피소드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취향이란 무엇보다 타인과 자신을 구별함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구체적인 계기이기 때문이다.
2부 야나기 무네요시의 한국 예술론
P57 가면(Masque)는 아프리카 서부의 코트디부아르에서 수집되 피카소의 컬렉션으로, 피카소박물관 소장품이다. 피카소박물관에서는 이것 말고도 아프리카의 민속공예품을 여러 점 볼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아프리카 민예에 대한 피카소의 각별한 애정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피카소 자신의 작품과의 비교를 통해 알 수 있듯이, 피카소에 의해 간택된 아프리카의 민예는 아프리카의 영광을 위해서가 아니라 피카소의 영광을 위해 존재할 따름이다. 이 점,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 조선의 민예가 그것의 발견자인 일본인의 놀라운 직관을 드러내기 위해 존재하듯이 말이다.
P60 에드워드 사이드는 하위사회와 그 예술에 대한 사랑을 내세워 그들의 미와 상상력을 교묘하게 착취하고 마침내 그들의 영혼을 자기소외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이같은 근대 속의 야만을 동양주의 또는 오리엔탈리즘이라고 불렀다.
P73 왕궁의 뜨락에 깔린 박석이 반듯반듯한 전돌이 아니라 삐뚤빼뚤한 화강암이라는 사실이 흥미롭다. 만약 돌마저 반듯했더라면 정전의 격조는 한 차원 높은 멋으로 올라서지 못하고 한 차원 낮은 형식으로 떨어졌을 것이다. 이것은 작은 돌들을 반듯하게 정렬시키고 가장자리에 금까지 그어놓은 중국 정원의 바닥돌과 대조를 이룬다. 이같은 '다름'의 틈새에서 섬세하면서도 날카로운 빛을 발하는 것이 바로 '토속적인 자기'로서의 미의식이다.
2. 일본 국학과 야나기의 미의식
3. 선의 미와 야나기의 환상
P93 야나기가 말하는 선의 아름다움은 취향보다는 이데올로기의 성격을 강하게 지닌다. 전자가 마음 속에서 자연스럽게 배어나온 심상에 가깝다면 후자는 의도적으로 조작되어 강압적으로 주입되는 표상에 가깝다.
P95 무량수전의 처마선
P96 중국 가옥의 처마선
P98 취향 또는 미의식은 결코 제못대로의 것이 아니라 고유의 풍토와 역사 속에서 형성된 인문적 지혜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P103 일본인의 자의식을 잣대로 한국사를 해석할 까닭은 없다. ‘작은 것을 보살피고 큰 것을 섬기는’ 자소사대의 준말인 사대는, 동북아 세계질서의 중심인 중국과 중국의 문화적 선진성을 인정한 주변 국가들 사이에서 형성된 자율적 질서의 메커니즘이었다.
4. 일본의 기교와 한국의 격
P106 미인도는 그 나라의 취향 또는 미의식을 대표한다. 한국읜 미인도에서 '격식에 맞으면서도 격식을 뛰어넘는' 멋이 느껴진다면, 일본의 미인도에서는 '빈틈없이 따라야 하는' 꼼꼼한 화려함이 느껴진다.
P107 멋은 격식에 맞으면서도 격식을 뛰어넘을 때, 바꿔 말하면 격이 맞는 변격, 변격이면서 격에 제대로 맞을 때 거기서 멋을 느낀다는 말이다............‘격에 들어가서 다시 격에서 나오는 격’이라 할 수 있다.
P109 일본의 격이란 위계질서의 표현인 격식을 의미한다. 따라서 그것은 첫째 '때에 따라 넘나드는 틀거리'인 한국의 격과는 달리 '넘나듦이 가능하지 않은 세부항목'을 말한다. 둘째 그것은 '옛날부터 전해져 내려온 예'가 아니라 '그 시대의 풍속으로 자연스럽게 생겨난 것으로서 풍속의 덧없음을 특징으로 하는 물질적이며 가변적인 것이다.
P110 비엇다는 것은 그 형태이고 중실하다는 것은 그 정기이다. 그 정기라는 것은 제 몸뚱이의 충실한 것이 지극히 빈 가운데에서 무르녹아 맺힌 것이다. 오직 그 충실한 까닭으로 힘이 종이를 뚫고 그 빈 까닭으로 정기가 종이에 맑게 배어나온다.
P114 이 원숙성은 원숙하여 도리어 아졸(雅拙)미에 도달하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대오(大悟)하고 보니 대오하기 전과 같더라는 소식이다. 늙으면 도리어 아이와 같아진다는 얘기다. 그러므로 멋은 원숙을 발판으로 하면서도 그 원숙에서 오는 능란함의 무난을 뛰어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원숙은 초규격의 바탕이지만 초규격이 곧 원숙은 아닌 것이다. 추사의 글씨가 이러한 문제의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5. 근대적 자의식과 한국 예술의 민예성
P118 야나기가 한국 예술에서 민예성을 발견한 것은 무엇 때문일까.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그것은 일본인의 눈으로 한국 예술을, 형식의 기교로 정신의 격을 바라봄으로써 생겨난 발견이자 창작이다. 난쟁이의 잣대로 거인의 키를 잰 것이라고 할까. 그것은 한국 예술의 상의 미의식을 일본인의 형의 미의식으로 바라봄으로써 생겨난 발견이다. 본래 상과 형은 한데 어우러져 사물의 형상을 이루되, 근본적으로 양자는 서로 반비례하기 때문이다.........원경에서는 아하되 근경에서는 졸한 한국 예술을 일본인의 근경의 시선으로만 본 까닭에 오직 근경의 졸함만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이로부터 발견된 것이 바로 무기교, 무작위, 무의식의 민예성이다.
6. 자연과 작위를 통합시킨 일본의 세
P124 도대체 남이 억지로 들이댄 잘못된 근거에 따라 나를 터무니없이 깎아내릴 까닭도 없으며 반대로 터무니없이 높여올릴 까닭도 없다. 이제는 열등감과 우월감으로 착잡하게 덧칠된 지난 세기의 서글픈 자화상으로부터 벗어날 때가 되었다.
3부 한국인의 미의식
P128 아름다움의 취향을 달리 말하면 미의식이 된다.
1. 음양오행과 상의 미의식
P133 상이라는 개념은 형과는 반대되는 개념이다.
P139 사상이 일상의 척도로 작용할 경우 취향의 형태를 띤다는 것이다. 따라서 본래 취향으로 형성된 사상은, 다시 취향을 통해 전승되며, 취향을 통해 퍼져 나간다. 따라서 취향으로서의 한국인의 미의식에는 음양오행사상으로 체계화된, 상에 주목하는 한국인의 사상이 담겨 있다.
P141 한국에 화강암 이외의 돌들 역시 많음에도 불구하고 화강암이 한국인의 손에 유달리 익숙하게 다루어졌을 뿐 아니라 심지어 그것으로 만들어진 작품들이 한국의 미를 대표하는 것으로 손꼽힌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반복하자면 그것은 가까이서 보기에는 졸한 듯 하지만 멀리서 보면 아를 발하는 화강암의 질감이 상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한국인의 미의식과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2. 아졸미 또는 고졸미
P146 비로소 우리는 일그러진 달항아리와 휘어진 대들보를 통해, '형의 어눌함'의 후광에 해당하는 '상의 세련됨'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달리 말하면 ‘상의 세련됨’을 머금은 ‘형의 어눌함’이 되는데, 바로 이것이 한국문화를 마음으로 겪은 이들이 한결같이 이야기하는 고졸이나 아졸, 무관심성이나 비균제성의 본질이다.그 만듦새는 극히 소박하여 전체적으로의 조화나 균제의 미를 찾았을지언정, 부분 부분 뜯어보면 차라리 거칠다 할만큼 잔손질이 가지 않은 것이 한층 우리의 주의를 끈다<김용준>. 그러나 볼수록 여운이 남는 아름다움이 있어서, 초라한 육신에 깃들인 품격있는 정신이 느껴지는 것.
3. 발효맛과 생기의 미감
P163 돌아보건대 지난 세기의 한국인은 된장찌개에 구더기를 처넣은 에피소드가 상징하듯이, 발효맛에서 생기의 미감으로 이어지는 자신의 취향과 결별하는 기억상실의 세월을 살았다. 따라서 우리는 먼저 발효맛의 취향과 화해하고 그것을 일상에서 되살려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기억상실에서 비롯된 정신적인 허기에 따른 마구잡이식 뷔페에서 벗어나, ‘기억 속의 심상’과 알뜰하게 손잡은 입맛을 살리는 정갈한 밥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한국인의 밥상에서 호사스런 취미와 구별되는 까다로운 취향이 옹골지게 자리잡아갈 때에만, 한국인의 미의식 역시 생기발랄하며 웅숭깊은 것으로 제자리를 찾아갈 것이다.
4. 상극적인 것을 상생적인 것으로
P165 상극 역시 만물의 생성변화에 필요악인 까닭에 상생적인 조화를 추구한다고 해서 상극관계를 애당초 부정하고 회피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상극관계를 부정하지 않은 채로 상생적인 조화를 추구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상극관계를 고스란히 껴안은 채 그것을 가능한 한 상생관계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P167 발효를 ‘썩지 않으며, 처음 그대로 유지되지도 않은 은근한 곰삭음’이라고 말할 수 있는 까닭이 이것이다. 그러니까 발효의 원리란 자연의 이치에 따른 상극의 과정인 부패를 인간의 지혜에 따른 상생의 과정인 발효로 변용시키는 것이다.
P169 비보라는 말은 도와서 보충한다는 뜻인데 흔히 풍수지리에서 국면을 이루기 위한 그 중에서도 이른바 명당의 조건을 갖추기 위하여 마을 형태에서 부족한 점을 인공적으로 만들어 보충한다는 것이다.........비보의 원리란 상극의 원리가 관철되는 무정한 자연을 상생의 원리가 숨쉬는 유정한 자연으로 바꾸려는 인문적인 자의식의 소산이다. 인과율에만 따르는 자연적인 상극을 목적률을 지향하는 인문적인 상생으로 변화시키고자 한 것일까.
5. 해학과 신명
P174 한국인은 눈물과 한, 웃음과 흥이 한데 버무려져, 생짜의 것이 곰삭은 것으로 발효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자신의 한 위에 어느새 흥이 겹치는 것을 느낀다. 이것이 바로 한국인의 표정을 대표하는 얼굴이 눈물의 세월을 안쪽에 숨긴 곰삭은 웃음을 떠올리는 까닭이다.
P179 결국 한국인 자화상의 울음이란 웃음으로 승화되어 가는 전단계이며, 恨이란 신명으로 승화되어 가는 과정에 불과하다.................... 따라서 미처 승화되기 전의 한이 한국적인 정서를 대변하는 것으로 보는 것은 잘못이며, 그보다는 충분히 승화되고 난 후의 해학 또는 신명이 한국적인 정서를 대변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P180 이제 한국적인 정서의 한복판에 한이 자리잡과 있다는 식의 처량하고 자기연민으로 넘치는 주장은 그만두도록 하자. 일제 강점기의 정서 역시 한국적인 정서의 일부분을 이룬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부분을 전체로 확대하고 과거의 상처를 미래의 청사진 위에 들이대는 어리석은 주장을 계속할 까닭은 없다. 다만 상극적인 것을 상생적인 것으로 승화시키지 못한 채 상극적인 것의 늪에 주저앉을 가능성이 우리 안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경계하기 위해, 지난 세기의 한에 대한 담론을 역사 책의 한켠에 선명하게 기록해둘 필요는 있을 것이다.
6. 고지도와 명당론
P185 우리 역사와 문화에 대한 시간적 파악이 역사라면, 그 공간적 인식이 지리와 지도이다.
P187 고지도는 삶터로 넘쳐나며, 삶터는 삶의 기억으로 가득 차 있다. 반면 오늘날의 지도에는 더이상 삶터도, 삶의 기억도 존재하지 않는다.
P187 한국인의 공간 의식을 한눈에 실감하게 하는 아름다운 고지도는 매혹적인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고지도가 지닌 이같은 매혹의 근원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그것은 고지도가 오늘날의 지도와는 달리, 땅의 모습을 기록하는 실용적인 기호의 성격과 함께 땅의 형상을 묘사하는 예술적인 도상의 성격을 아울러 지녔기 때문이다.
7. 백의와 색동
P202 색상의 문제뿐 아니라 색배열 또는 색구성의 문제 역시 색 취향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다. 색이란 사실상 어떤 풍경과 관련된 시각 이미지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색배열 또는 색구성의 문제가 색상의 문제보다 중요할는지도 모른다.
P206 한국인은 흰 옷을 즐겨 입었으며 흰색을 좋아했다. 주목해야 할 것은 이 경우의 흰색은 색이 없는 무색이 아니라 자연의 바탕색인 소색이라는 것이다.
P208 은은하고 투명하면서도 다양한 질감을 지닌, 생기 넘치는 소색의 아름다움. 천연 그대로의 색을 간직한 격있고 깊이 있는 아름다움. 이것은 태토의 종류에 따라 눈빛같은 설백이나 젖빛 같은 유백, 잿빛이 도는 회백을 띠는 백자의 색이나 지백이라 불리는 한지의 색, 모시나 삼베, 옥양목이나 광목 같은 옷감의 색을 통틀어 가리키는 것으로 한 마디로 규정할 수 없는 복합적인 뉘앙스를 지닌 것이다.
P211 오방색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모든 색을 청,적,황,백,흑 다섯 계열로 구분하는 색 체계를 가리킨다. 오방색과 관련해서 흥미로운 사실은 우리 민족이 누려온 수많은 색 가운데 순수한 우리말로 된 명칭은 하양, 까망, 빨강, 노랑, 파랑의 다섯 가지뿐인데, 이것이 바로 오방색이라는 것이다. 한국인에게 있어서 오방색이란 관념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색에 관한 현실 자체이기도 하다.
P225 마음의 색이 풍경의 색과 하나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기억 속의 심상이 현실의 풍경과 오버랩되는 일상을 꾸리는 사람들. 그들은 과연 미의식의 행복한 주인공들이다..........고유색의 부재란 한국도시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문화 전반의 문제인데, 이같은 문제의 배경에는 색 취향을 비롯하여 취향 전반을 잃어버린 한국인의 기억상실이 자리 잡고 있다.
4부 취향과 성찰 그리고 내일의 한국인
1. 이데올로기에서 취향으로
P231 이데올로기란 본질적으로 사물을 단면적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적어도 미의 문제에 관한 한, 이데올로기적인 표상보다는 취향적인 심상이 사물의 본질에 입체적으로 다가서는 쿨한 프리즘이다.
P235 물론 취향적인 사고의 가능성은 어디까지나 가능성일 따름이며, 그것이 가능성이나 스타일로만 끝날수도 있다는 것이 취향의 운명이기도 하다.
P236 '나를 살리면서 남을 참고한' 대신 '나를 죽이면서 남을 흉내내는'데 몰두했으니 결과가 신통할 리 없다. '나를 죽이면서 남을 흉내내는' 사람이 무언가를 창조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2. 상상지향과 탈속의 아름다움
245 조선의 선비란 누구인가. 그들은 상생의 자연적 질서에 천지인의 일부로 합류하는 이상적인 풍류는 물론이요 상극의 인간적 질서 속을 피비린내 나는 투쟁으로 헤쳐가는 현실적인 실존도 가벼이 여기지 않았다. 이같은 노력의 과정에서 생성되는 존재의 에너지야말로 그들의 자화상에 해당하는 운룡의 주위에 해학적인 즐거움을 감돌게 한 원천이다.
P251 조선 선비의 자부심과 남산골 샌님의 자존심은 구별되어야 한다. 전자가 싱싱한 원류에 해당한다면 후자는 국망 이후의 골짜기를 힘겹게 통과하느라 초라하게 찢긴 지류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자조와 연민으로 발목잡힌 남산골 샌님이 자존심은 식민사관의 칼을 들어 주체적인 역사의식을 난도질한 결과 생겨난 것으로 격조와 해학이 넘치는 조선 선비의 자부심으로부터 한참 멀어진 것이다.
3. 정태적이고 자폐적인 유토피아
4. 허무주의와 샤머니즘의 극복
P260 우리는 한국인이 상생 지향의 사고방식에 따라 인간의 질서인 상극보다는 자연의 질서인 상생을 추구한 나머지 정신적인 내용을 착안하는 데는 탁월한 반면 육체적인 형식을 완성하는 데는 허술한 측면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육체적인 형식으로 도야되지 않은 정신적인 내용이 허랑한 멋으로 공중분해되는 경향이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P261 이 상상성, 구상성이 진실미를 못 얻을 때 일종의 허랑한 ‘멋’이란 것만이 나게 되고 그것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예술적 승화를 못 얻을 때 한편으로는 ‘군짓’이 잘 나오고 한편으론 ‘거들먹 거들먹’하는 부화성이 나오게 된다(고유섭,조선 미술문화의 몇낱 성격). 따라서 우리는 상생 속의 상극, 정지태 속의 가동성, 매끈함 속의 거칠음, 신명 속의 한을 단단한 핵심으로 보전하는 과제를 잠시라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한에서 흥으로, 울음에서 웃음으로 승화되는 과정은 전자를 지워버리고 후자로 날아오르는 초월의 몸짓이 아니라 전자를 등에 지고 후자를 향해 기어가는 포월의 몸짓이 되어야 한다. 상극의 과정을 과거의 삶의 흔적으로만 남겨두는 정태적인 상생이 아니라 그것을 현재의 삶의 에너지로 확보하는 역동적인 상생 쪽으로 우리의 취향을 자꾸만 밀어내는 의식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태적이고 자폐적ㅇ니 유토피아에 들어앉고자 하는 닫힌 마음 대신, 역동적이고 개방적인 유토피아를 향해 걸어나가는 열린 마음이 필요하다. 동시에 우리의 저다움 속에 숨어 있을지도 모르는 은자의 소극성 또는 폐쇄성을 멋어 던지고 세계시민의 적극성 또는 개방성을 추구해야 한다. 자연의 질서인 상생 대신 인간의 질서인 상극을 전면에 내세우는 서구적 근대와 인간의 질서인 상극을 자연의 질서인 상생 속으로 통합시키는 한국적인 저다움을 창조적인 모순으로 통합시켜야 한다.
P262 한국인은 때로는 상생적인 탈속 지향의 안정감에서 벗어나 상극적인 속세의 한복판으로 뛰어드는 불안정을 적극적으로 뒤집어 써볼 필요도 있다. 호생염극(生을 좋아하고 剋을 싫어하는 것)의 마음이 극에 달하면, 결국은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채 제자리만을 맴도는 것으로 끝나거나 아예 자폐적인 은둔으로 삶을 마감할 수도 있다.
5. 역동적이고 개방적인 유토피아
6. 김정희와 연경의 기억
P271 법고창신
P272 법고창신론(옛것을 모범으로 새로운 것을 창안한다는 뜻으로 연암 박지원이 제창하였다)
P275 추사는 올바른 법고를 통해서 개성적인 창신을 이룩하며 이를 불이의 묘경으로 통합했다고 할 수 있다.
P276 새로운 전통의 창조란 언제나 개인의 개성이 집단의 개성을 뛰어넘고 이것이 다시 집단의 새로운 개성으로 자리잡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법고창신, 옛것을 따름으로써 새것을 창조하는 것. 이것은 ‘기억 속의 심상’을 ‘오늘의 심상’으로 탈바꿈시켜내는 것이다..........골동이 되어버린 옛것에 새것의 아우라를 뒤집어씌우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그것은 '지금 이 순간'의 주체가 체험하는 당대성이다.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의 주체로 하여금 당대성을 체험하게 하는 지렛대는 무엇일까. 추사가 '연경의 기억'을 통해 획득한 국제적 감각이 그것인데, 그것은 우물 안 개구리와도 같은 토속적인 감각 또는 조선성을 넘어선 곳에 존재하는 세계성이다. 따라서 '지금 이 순간' 우리는 몬드리안의 작품을 통해 만나는 국제적인 감각을 획득하고 나서야 비로소 천연염색 조각보의 토속적인 아름다움에 새롭게 눈뜰 수 있으며, 현대 회화의 개성적인 예술혼을 접하고 나서야 비로소 조희룡 매화도의 진한 매혹과 김수철 화훼도의 간결한 세련에 새삼스럽게 빠져들 수 있다.
P279 회통적인 사고. 한국인과 세계인 사이에서 , 법고와 창신 사이에서 회통적인 사고를 모색한 사람들만이, 창조라는 새 역사의 문을 열어젖힐 수 있다. 유월의 햇살 아래 붉은 악마로 서 있었던 우리 모두가 눈부시게 깨달았듯이, 한국인이기를 원한다면 동시에 세계인이기를 꿈꾸어야 하며 세계인을 꿈꾼다면 결코 한국인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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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희 姜英熙
문화평론가. 서울대 동양사학과와 국문학과 대학원, 동국대 영화학과 대학원을 졸업했다. 저서에는 문화평론집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1994)와 인터뷰집 『우리는 자유로에서 다시 만났다』(1998)가 있다. 연극평론에서 시작해서 문화평론으로 영역을 넓혔고,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인터뷰에도 팔을 걷고 나섰다. 6년 전부터는 책을 쓴다는 핑계로 한동안 무위도식하며 전국 방방곡곡을 비롯해서, 중국 프랑스 이탈리아 미국 대만 등지를 열심히 돌아다녔다.
문화평론가로서 세상의 모든 잡사(雜事)에 대한 잡문(雜文)을 써온 그녀는, 이 책을 쓰면서 세상의 모든 잡학(雜學)을 용감하게 돌파하여 그것들을 꿰뚫는 깨달음을 얻겠노라는 야무진 꿈을 꾸게 되었다. 꿈의 주제는 물론 문화이며 인문이며 창조이며 성찰이다. 한국인의 미의식을 다룬 이 책은 그 첫걸음인 셈이다.
b. 독후감
잡부, 취업난이라는 요즘같은 때에도 꾸준히 모집공고가 이루어지는 사람.
잡지, 동서양, 종류와 장르를 막론하고 꾸준히 수요와 공급이 이루어지는 책.
잡금, 녹이 스는 단점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쓰임새로 인해 꾸준히 만들어지는 금속.
그러면 잡문이란?
여기 세상 모든 잡학을 넘나들며 완성하였다는 잡문이 있다. 처음에 아무 부담없이 책을 집어들었다. 책 제목에 취해서였다. 책을 읽기 전 한젬마의 '그림 읽어주는 여자' 라는 책이 문득 떠올랐다. 미처 접해보지 못했던 예술작품에 대해서 문외한인 독자가 보다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안내를 맡아주었던 한젬마처럼, 이 책의 저자 역시 비슷한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 저자의 역할에 대해서 내가 완전 헛다리를 짚었음을 알았다.
이 책은 절대로 인문교양서적의 한 종류로서 한국작품의 차분한 안내서가 아니다. 사실 이 책에서 나오는 작품들은 감상용이라기 보다는 일종의 증거로 채택되었다는 생각이다. 저자는 한국작품을 통해서 한국인의 미의식에 대해 강한 어조로 호소하고 있다. 급속한 근대화를 거치면서 기억상실에 걸린 한국인에게 너 자신을 알라고, 잃어버린 기억을 찾으라고 강력하게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기억상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놀랐던 부분-사실 거의 내내 놀랐다. 내가 한국인인지 싶을 정도로, 아니면 저자가 직관력이 뛰어난 매우 특별한 한국인이지 싶을 정도로-이 바로 이 기억상실과 관련된 것이다. 철저하게 기억상실증을 겪고 있는 현대 한국인의 대표가 바로 나이기 때문이었다.
소설 무정에서 샌드위치가 근대화의 표상으로 쓰이는 반면 구더기가 들어있는 된장찌개가 몰락하는 전근대인의 소품으로 사용되었다는 지적과 함께 제시하는 한국인의 기억상실증, 근본적으로 미적인 위계질서 내에서 지극히 일본의 일본에 의한 일본을 위한 야나기 무네요시의 조선예술론에 대한 논리적인 분석과 비판, 지금까지 공공연하게 한국인의 기저의 감정이라고 여겨지던 恨을 곰삭음 즉 발효의 한 과정으로 신명으로 승화되기 전이라고 재조명한 점, 역시 유사한 맥락에서 백의민족이라고 표현되는 우리의 흰색을 무색이 아닌 자연의 바탕색인 소색이라는 설명과 함께 오늘날 한국에 나타나는 고유색의 부재를 지적하고 이에 대한 원인이 취향을 비롯한 취향 전반에 대한 상실임을 지적한 것 등은 노랍기 그지 없다. 그러나 독자가 지금까지 '사실'이라고 믿어왔던 사항들에 대해서 모두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게 하는 것이 저자의 목적이 아님은 분명하다. 시작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저자가 독자에게 요구하고 주장하는 사항은 단 하나, 저다움을 찾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저다움은 남이 찾아줄 수 있는 것이 아니요, 본인이 인식하고 있다고 해서 항상 옳은 것이 아니니 주체적인 시각과 솔직한 감수성으로 키워나가야 할 어떤 것이라는 설명이다.
책에서는 미의식에 한정하여 이야기를 하였지만 저다움을 찾는데 구분이나 한계는 없다. 책을 읽으면서 이 책은 세계속으로 뻗어나가려고 하는 수많은 한국인에게 필요한 자기계발서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개인에게도 역시 마찬가지다. 변화의 추구, 능동적인 적응, 적극적인 자기계발을 위해서 선행되어야 할 것은 무엇보다 자기발견이다. 취향이란 무엇보다 타인과 자신을 구별함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구체적인 계기이기 때문에 낯익은 자신의 취향을 모욕적으로 내팽개치고 낯선 타인의 취향을 선망의 시선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사소한 에피소드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는 저자 강영희의 말처럼 나도 나의 취향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 무조건적으로 자기계발과 변화라는 화두에 목메는 현상에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왜 나는 변화에 대해 갈구하고 목말라하는지에 대한 나 자신에 대한 탐구가 어쩌면 더 절실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그래서 '나다움'에 대한 확실한 정보, 나의 취향, 나의 근본을 알게 된다면 자기계발에 대한 목마름이나 허기에 따른 마구잡이식 뷔페를 찾는 것에서 벗어나 입맛을 살리는 정갈한 밥상을 찾아갈 수 있지 않을까는 생각이다.
c. 내가 저자라면
구성상 마음에 드는 두 가지, 사진 그리고 참고문헌
강박인지 모르겠지만 책을 사면 항상 책날개를 먼저 본다.
저자의 약력은 두번째다. 우선은 저자의 사진이 있나 없나를 살핀다.
이 책의 날개에는 저자의 어린시절 사진이 나와있었다. 처음에는 이건 또 뭔가 싶었는데 책을 읽으면서 알았다. '기억 속의 심상'이란 애매모호한 말로 설명되어 있던 이 사진이, 사실은 그녀로 하여금 이 글을 쓸 수 있도록 원동력이 되었던 시절의 것임을 말이다. 6년이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닐진데 그 긴 기간동안 지치지 않고 자료들을 모으고 연구하도록 한 기저에는 그녀가 품에 안고 잊지 못하는 어린 시절의 삶이 있었던 것이다. 책을 읽기 전에는 가벼운 흥미거리로 보여지던 사진이 책을 읽고 나서는 그럴만하다는 공감으로 와 닿는다.
책 뒤에 참고한 문헌들을 달았다. 가끔 마음에 쏙 책을 볼 때면 저자가 참고한 서적도 같이 보고싶은 마음이 생기는데-언제 본다는 기약이 없다는 단점이 있지만- 따로 정리가 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결국 본문 중에서 그때 그때 체크를 하거나 뒷날개 부분의 여분종이에 끄적거리는 수고를 해야 하는데 이 책은 그런 수고를 덜어준다. 참고한 서적의 내용을 저자의 것인양 옮겨적지 않고 일일히 내용을 옮기고 출처를 밝히는 것이
구성상 욕심나는 한 가지, 사진자료들의 배치와 양
책을 순서대로 읽는 편이라 특별한 일이 있지 않고는 1부 1장부터 살피는 편이다. 그러다보니 글의 내용과 화보가 같은 페이지에 배치되어 있어서 그림을 보면서 글을 볼 수 있는 곳도 있었고 어떤 부분은 설명이 먼저 나와서 설명부터 보고 난 후에 화보를 보게 되는 경우도 있었는데 개인적으로는 후자가 훨씬 그림이 선명하게 다가왔다. 그림을 보고 설명을 보면 '그렇구나' 정도인데 설명을 한참 듣고 나서 그림을 보면 '아~하' 싶었다. 자료의 배치를 약간 달리하여 한 템포 늦게 화보를 제시하는 것도 책의 재미를 살릴 수 있을 듯한 생각이다.
더불어 지면의 한계 때문인지 본문에 제시되었으나 보여주지 않는(못한?) 자료도 더러 보인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언급되었던 자료들이 모두 제시되었으면 참 좋았겠다는 욕심이다.
d. 책 속에서
지은이의 글 ...4
1부 기억상실과 어제의 한국인 ...13
1.백남준과 서울의 기억 ...15
전통은 '기억 속의 심상'이다│진진묘와 반가사유상
2.기차가 있는 풍경 ...38
시간과의 경쟁│된장찌개와 샌드위치
2부 야나기 무네요시의 한국 예술론 ...53
1.미적인 위계질서 또는 오리엔탈리즘 ...60
조선 도공의 무지와 일본 다인의 안목│일본인과 미의식의 위계질서
2.일본 국학과 야나기의 미의식 ..74
비애의 미와 거세된 일본인
3.선의 미와 야나기의 환상 ...92
4.일본의 기교와 한국의 격 ...104
5.근대적 자의식과 한국 예술의 민예성 ...115
6.자연과 작위를 통합시킨 일본의 세 ...121
3부 한국인의 미의식 ...125
1.음양오행과 상(象)의 미의식 ...132
화강암의 아름다움과 원경의 미학
2.아졸미(雅拙美)또는고졸미(古拙美) ...143
3.발효맛과 생기의 미감 ...153
잘 삭힌, 시원하고 칼칼한 맛
4.상극적인 것을 상생적인 것으로 164
발효와 비보의 원리
5.해학과 신명 ...172
가동적인 정지태│한은 흥으로 발효된다
6.고지도와 명당론 ...182
윤두서의 자화상과 지도│고지도와 공간취향│
땅은 살아 있는 유기체다│명당과 상의 아름다움
7.백의와 색동 ...201
소색의 아름다움│오방색│야나기의 비애와 최남선의 광명│
백의민족이여, 안녕│ 취향의 상실과 색치의 일상│붉은 색 티셔츠와 태극 패션
4부 취향과 성찰 그리고 내일의 한국인 ..229
1.이데올로기에서 취향으로 ...231
2.상생 지향과 탈속의 아름다움 ...238
선비정신과 화해
3.정태적이고 자폐적인 유토피아 ...255
4.허무주의와 샤머니즘의 극복 ...259
5.역동적이고 개방적인 유토피아 ...264
오윤과 도깨비
6.김정희와 연경의 기억 ...270
추사체의 국제적인 안목│'지금 이 순간'의 당대성│회통적인 사고
참고문헌 ...281
1부 기억상실과 어제의 한국인
백남준과 서울의 기억
P15 세계인의 자화상이 세계시민의 대열에 동참하기 위해 밖으로 내닫는 모습을 하고 있다면 한국인의 자화상은 한국인의 동상 앞에서 가슴에 손을 얹고 서서 안으로 옥말리는 모습을 하고 있다.
P16 한국은 탈아입구를 강요당했고 한국인은 자신을 보존하는 동시에 자신을 변화시켜야 하는 모순된 상황으로 내몰렸다. 한쪽에는 척사와 쇄국에서 민족주의와 주체사상에 이르는 구호가, 다른 한쪽에는 개화에서 세계화에 이르는 구호가 등장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 결과 한국인에게는 자기를 굳건하게 다지려는 자화상과 자기를 바꾸려는 자화상이 공존하게 되었다.
P19 강서대묘 사신도의 솟구치는 생기, 금동미륵반가사유상의 정겨운 봉안, 고려 수월관음의 휘황한 신비, 겸재 진경산수의 칼칼한 금수강산 모두 마찬가지다. 이것들은 시대를 앞서가는 세계인에 대한 자랑스러운 한국인의 승리가 아니라 그같은 구별과 경계를 넘어선 곳에 존재하는, 세계를 받아안아 한국을 피워올림으로써 양자를 회통시킨 결과 도달한 창조였다.
P25 세계인이야 한국인이냐가 아니라 세계인인 동시에 한국인이어야 한다. 둘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문제가 아니라 둘을 하나로 통합시키는 문제다. 양자택일이 아니라 회통이다.
P26 당신은 지금 이 순간 세계인과 한국인의 제로섬 게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제는 새로운 개안이 필요하다.
P27 세계인 백남준의 예술이 한국인의 토속적인 자기를 주장하는 내용을 담아낼 수 있는 것은, 그가 전통을 기억의 형태로 몸 속 가득히 저장한 채 살아가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에게 있어 전통이란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쓸 수 있는 '기억 속의 심상'이다.
P28 세계인 백남준에게 한국인 백남준이 죽어버린 과거가 아니라 살아있는 현재가 될 수 있는 비결은 그의 몸 속에 자리잡은 기억이다. 러셀은 <철학의 문제들>에서 현재가 감각을 통해 인식될 수 있는 것과는 달리 과거는 오직 기억에 의해서만 인식될 수 있다고 말했다. 기억의 형태로 몸 속에 저장된 전통이야말로 백남준이 지난날의 수많은 다른 백남준들로부터 물려받아 자신의 작품 구서구석에 숨겨놓은 토속적인 자기의 원천이다.
P32 전통이란 ‘기억 속의 심상’이 지금 이 순간에 새롭게 창조된 것이다. 그리하여 문화의 저력이란 문화 속에 덧쌓인 ‘기억 속의 심상’의 두께이며, ‘기억 속의 심상’을 일관되게 관통하는 취향이야말로 미의식의 본질이다. 따라서 살아 있는 전통을 창조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의 취향을 즐겁게 뛰놀도록 하는 ‘기억 속의 심상’이 ‘생의 지주’와도 같이 우리 안에 늘어서 있어야 한다. 취향의 뜨락인 ‘기억 속의 심상’의 상실이야말로 전통의 단절에서 창조의 불능으로 이어지는 마음의 감옥이다.
2. 기차가 있는 풍경
P48 기억의 상실이란 만취하여 필름이 끊어진 상태와도 흡사하다. 필름이 끊어진 사람들이 그러하듯 기억상실에 빠진 사람들은 성찰을 토대로 한 자기 통제력이 현저하게 낮아진다. 이것이 바로 한국병일고 불리는 사회심리적인 병폐의 원인이다. 하지만 근대 한국인이 기억상실에 빠졌다는 것은 역으로 잠재의식 속에 들어있는 기억을 되살려낼 수도 있음을 의마한다. 그렇다면 일상 속에 존재하는 취향의 도움을 받아 희미해져버린 기억 속의 심상 들을 되살려낸다면, 돌이켜 기억의 상실을 넘어설 수도 있는 것은 아닐까.
P49 낯익은 자신의 취향을 모욕적으로 내팽개치고 낯선 타인의 취향을 선망의 시선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사소한 에피소드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취향이란 무엇보다 타인과 자신을 구별함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구체적인 계기이기 때문이다.
2부 야나기 무네요시의 한국 예술론
P57 가면(Masque)는 아프리카 서부의 코트디부아르에서 수집되 피카소의 컬렉션으로, 피카소박물관 소장품이다. 피카소박물관에서는 이것 말고도 아프리카의 민속공예품을 여러 점 볼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아프리카 민예에 대한 피카소의 각별한 애정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피카소 자신의 작품과의 비교를 통해 알 수 있듯이, 피카소에 의해 간택된 아프리카의 민예는 아프리카의 영광을 위해서가 아니라 피카소의 영광을 위해 존재할 따름이다. 이 점,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 조선의 민예가 그것의 발견자인 일본인의 놀라운 직관을 드러내기 위해 존재하듯이 말이다.
P60 에드워드 사이드는 하위사회와 그 예술에 대한 사랑을 내세워 그들의 미와 상상력을 교묘하게 착취하고 마침내 그들의 영혼을 자기소외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이같은 근대 속의 야만을 동양주의 또는 오리엔탈리즘이라고 불렀다.
P73 왕궁의 뜨락에 깔린 박석이 반듯반듯한 전돌이 아니라 삐뚤빼뚤한 화강암이라는 사실이 흥미롭다. 만약 돌마저 반듯했더라면 정전의 격조는 한 차원 높은 멋으로 올라서지 못하고 한 차원 낮은 형식으로 떨어졌을 것이다. 이것은 작은 돌들을 반듯하게 정렬시키고 가장자리에 금까지 그어놓은 중국 정원의 바닥돌과 대조를 이룬다. 이같은 '다름'의 틈새에서 섬세하면서도 날카로운 빛을 발하는 것이 바로 '토속적인 자기'로서의 미의식이다.
2. 일본 국학과 야나기의 미의식
3. 선의 미와 야나기의 환상
P93 야나기가 말하는 선의 아름다움은 취향보다는 이데올로기의 성격을 강하게 지닌다. 전자가 마음 속에서 자연스럽게 배어나온 심상에 가깝다면 후자는 의도적으로 조작되어 강압적으로 주입되는 표상에 가깝다.
P95 무량수전의 처마선
P96 중국 가옥의 처마선
P98 취향 또는 미의식은 결코 제못대로의 것이 아니라 고유의 풍토와 역사 속에서 형성된 인문적 지혜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P103 일본인의 자의식을 잣대로 한국사를 해석할 까닭은 없다. ‘작은 것을 보살피고 큰 것을 섬기는’ 자소사대의 준말인 사대는, 동북아 세계질서의 중심인 중국과 중국의 문화적 선진성을 인정한 주변 국가들 사이에서 형성된 자율적 질서의 메커니즘이었다.
4. 일본의 기교와 한국의 격
P106 미인도는 그 나라의 취향 또는 미의식을 대표한다. 한국읜 미인도에서 '격식에 맞으면서도 격식을 뛰어넘는' 멋이 느껴진다면, 일본의 미인도에서는 '빈틈없이 따라야 하는' 꼼꼼한 화려함이 느껴진다.
P107 멋은 격식에 맞으면서도 격식을 뛰어넘을 때, 바꿔 말하면 격이 맞는 변격, 변격이면서 격에 제대로 맞을 때 거기서 멋을 느낀다는 말이다............‘격에 들어가서 다시 격에서 나오는 격’이라 할 수 있다.
P109 일본의 격이란 위계질서의 표현인 격식을 의미한다. 따라서 그것은 첫째 '때에 따라 넘나드는 틀거리'인 한국의 격과는 달리 '넘나듦이 가능하지 않은 세부항목'을 말한다. 둘째 그것은 '옛날부터 전해져 내려온 예'가 아니라 '그 시대의 풍속으로 자연스럽게 생겨난 것으로서 풍속의 덧없음을 특징으로 하는 물질적이며 가변적인 것이다.
P110 비엇다는 것은 그 형태이고 중실하다는 것은 그 정기이다. 그 정기라는 것은 제 몸뚱이의 충실한 것이 지극히 빈 가운데에서 무르녹아 맺힌 것이다. 오직 그 충실한 까닭으로 힘이 종이를 뚫고 그 빈 까닭으로 정기가 종이에 맑게 배어나온다.
P114 이 원숙성은 원숙하여 도리어 아졸(雅拙)미에 도달하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대오(大悟)하고 보니 대오하기 전과 같더라는 소식이다. 늙으면 도리어 아이와 같아진다는 얘기다. 그러므로 멋은 원숙을 발판으로 하면서도 그 원숙에서 오는 능란함의 무난을 뛰어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원숙은 초규격의 바탕이지만 초규격이 곧 원숙은 아닌 것이다. 추사의 글씨가 이러한 문제의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5. 근대적 자의식과 한국 예술의 민예성
P118 야나기가 한국 예술에서 민예성을 발견한 것은 무엇 때문일까.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그것은 일본인의 눈으로 한국 예술을, 형식의 기교로 정신의 격을 바라봄으로써 생겨난 발견이자 창작이다. 난쟁이의 잣대로 거인의 키를 잰 것이라고 할까. 그것은 한국 예술의 상의 미의식을 일본인의 형의 미의식으로 바라봄으로써 생겨난 발견이다. 본래 상과 형은 한데 어우러져 사물의 형상을 이루되, 근본적으로 양자는 서로 반비례하기 때문이다.........원경에서는 아하되 근경에서는 졸한 한국 예술을 일본인의 근경의 시선으로만 본 까닭에 오직 근경의 졸함만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이로부터 발견된 것이 바로 무기교, 무작위, 무의식의 민예성이다.
6. 자연과 작위를 통합시킨 일본의 세
P124 도대체 남이 억지로 들이댄 잘못된 근거에 따라 나를 터무니없이 깎아내릴 까닭도 없으며 반대로 터무니없이 높여올릴 까닭도 없다. 이제는 열등감과 우월감으로 착잡하게 덧칠된 지난 세기의 서글픈 자화상으로부터 벗어날 때가 되었다.
3부 한국인의 미의식
P128 아름다움의 취향을 달리 말하면 미의식이 된다.
1. 음양오행과 상의 미의식
P133 상이라는 개념은 형과는 반대되는 개념이다.
P139 사상이 일상의 척도로 작용할 경우 취향의 형태를 띤다는 것이다. 따라서 본래 취향으로 형성된 사상은, 다시 취향을 통해 전승되며, 취향을 통해 퍼져 나간다. 따라서 취향으로서의 한국인의 미의식에는 음양오행사상으로 체계화된, 상에 주목하는 한국인의 사상이 담겨 있다.
P141 한국에 화강암 이외의 돌들 역시 많음에도 불구하고 화강암이 한국인의 손에 유달리 익숙하게 다루어졌을 뿐 아니라 심지어 그것으로 만들어진 작품들이 한국의 미를 대표하는 것으로 손꼽힌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반복하자면 그것은 가까이서 보기에는 졸한 듯 하지만 멀리서 보면 아를 발하는 화강암의 질감이 상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한국인의 미의식과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2. 아졸미 또는 고졸미
P146 비로소 우리는 일그러진 달항아리와 휘어진 대들보를 통해, '형의 어눌함'의 후광에 해당하는 '상의 세련됨'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달리 말하면 ‘상의 세련됨’을 머금은 ‘형의 어눌함’이 되는데, 바로 이것이 한국문화를 마음으로 겪은 이들이 한결같이 이야기하는 고졸이나 아졸, 무관심성이나 비균제성의 본질이다.그 만듦새는 극히 소박하여 전체적으로의 조화나 균제의 미를 찾았을지언정, 부분 부분 뜯어보면 차라리 거칠다 할만큼 잔손질이 가지 않은 것이 한층 우리의 주의를 끈다<김용준>. 그러나 볼수록 여운이 남는 아름다움이 있어서, 초라한 육신에 깃들인 품격있는 정신이 느껴지는 것.
3. 발효맛과 생기의 미감
P163 돌아보건대 지난 세기의 한국인은 된장찌개에 구더기를 처넣은 에피소드가 상징하듯이, 발효맛에서 생기의 미감으로 이어지는 자신의 취향과 결별하는 기억상실의 세월을 살았다. 따라서 우리는 먼저 발효맛의 취향과 화해하고 그것을 일상에서 되살려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기억상실에서 비롯된 정신적인 허기에 따른 마구잡이식 뷔페에서 벗어나, ‘기억 속의 심상’과 알뜰하게 손잡은 입맛을 살리는 정갈한 밥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한국인의 밥상에서 호사스런 취미와 구별되는 까다로운 취향이 옹골지게 자리잡아갈 때에만, 한국인의 미의식 역시 생기발랄하며 웅숭깊은 것으로 제자리를 찾아갈 것이다.
4. 상극적인 것을 상생적인 것으로
P165 상극 역시 만물의 생성변화에 필요악인 까닭에 상생적인 조화를 추구한다고 해서 상극관계를 애당초 부정하고 회피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상극관계를 부정하지 않은 채로 상생적인 조화를 추구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상극관계를 고스란히 껴안은 채 그것을 가능한 한 상생관계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P167 발효를 ‘썩지 않으며, 처음 그대로 유지되지도 않은 은근한 곰삭음’이라고 말할 수 있는 까닭이 이것이다. 그러니까 발효의 원리란 자연의 이치에 따른 상극의 과정인 부패를 인간의 지혜에 따른 상생의 과정인 발효로 변용시키는 것이다.
P169 비보라는 말은 도와서 보충한다는 뜻인데 흔히 풍수지리에서 국면을 이루기 위한 그 중에서도 이른바 명당의 조건을 갖추기 위하여 마을 형태에서 부족한 점을 인공적으로 만들어 보충한다는 것이다.........비보의 원리란 상극의 원리가 관철되는 무정한 자연을 상생의 원리가 숨쉬는 유정한 자연으로 바꾸려는 인문적인 자의식의 소산이다. 인과율에만 따르는 자연적인 상극을 목적률을 지향하는 인문적인 상생으로 변화시키고자 한 것일까.
5. 해학과 신명
P174 한국인은 눈물과 한, 웃음과 흥이 한데 버무려져, 생짜의 것이 곰삭은 것으로 발효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자신의 한 위에 어느새 흥이 겹치는 것을 느낀다. 이것이 바로 한국인의 표정을 대표하는 얼굴이 눈물의 세월을 안쪽에 숨긴 곰삭은 웃음을 떠올리는 까닭이다.
P179 결국 한국인 자화상의 울음이란 웃음으로 승화되어 가는 전단계이며, 恨이란 신명으로 승화되어 가는 과정에 불과하다.................... 따라서 미처 승화되기 전의 한이 한국적인 정서를 대변하는 것으로 보는 것은 잘못이며, 그보다는 충분히 승화되고 난 후의 해학 또는 신명이 한국적인 정서를 대변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P180 이제 한국적인 정서의 한복판에 한이 자리잡과 있다는 식의 처량하고 자기연민으로 넘치는 주장은 그만두도록 하자. 일제 강점기의 정서 역시 한국적인 정서의 일부분을 이룬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부분을 전체로 확대하고 과거의 상처를 미래의 청사진 위에 들이대는 어리석은 주장을 계속할 까닭은 없다. 다만 상극적인 것을 상생적인 것으로 승화시키지 못한 채 상극적인 것의 늪에 주저앉을 가능성이 우리 안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경계하기 위해, 지난 세기의 한에 대한 담론을 역사 책의 한켠에 선명하게 기록해둘 필요는 있을 것이다.
6. 고지도와 명당론
P185 우리 역사와 문화에 대한 시간적 파악이 역사라면, 그 공간적 인식이 지리와 지도이다.
P187 고지도는 삶터로 넘쳐나며, 삶터는 삶의 기억으로 가득 차 있다. 반면 오늘날의 지도에는 더이상 삶터도, 삶의 기억도 존재하지 않는다.
P187 한국인의 공간 의식을 한눈에 실감하게 하는 아름다운 고지도는 매혹적인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고지도가 지닌 이같은 매혹의 근원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그것은 고지도가 오늘날의 지도와는 달리, 땅의 모습을 기록하는 실용적인 기호의 성격과 함께 땅의 형상을 묘사하는 예술적인 도상의 성격을 아울러 지녔기 때문이다.
7. 백의와 색동
P202 색상의 문제뿐 아니라 색배열 또는 색구성의 문제 역시 색 취향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다. 색이란 사실상 어떤 풍경과 관련된 시각 이미지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색배열 또는 색구성의 문제가 색상의 문제보다 중요할는지도 모른다.
P206 한국인은 흰 옷을 즐겨 입었으며 흰색을 좋아했다. 주목해야 할 것은 이 경우의 흰색은 색이 없는 무색이 아니라 자연의 바탕색인 소색이라는 것이다.
P208 은은하고 투명하면서도 다양한 질감을 지닌, 생기 넘치는 소색의 아름다움. 천연 그대로의 색을 간직한 격있고 깊이 있는 아름다움. 이것은 태토의 종류에 따라 눈빛같은 설백이나 젖빛 같은 유백, 잿빛이 도는 회백을 띠는 백자의 색이나 지백이라 불리는 한지의 색, 모시나 삼베, 옥양목이나 광목 같은 옷감의 색을 통틀어 가리키는 것으로 한 마디로 규정할 수 없는 복합적인 뉘앙스를 지닌 것이다.
P211 오방색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모든 색을 청,적,황,백,흑 다섯 계열로 구분하는 색 체계를 가리킨다. 오방색과 관련해서 흥미로운 사실은 우리 민족이 누려온 수많은 색 가운데 순수한 우리말로 된 명칭은 하양, 까망, 빨강, 노랑, 파랑의 다섯 가지뿐인데, 이것이 바로 오방색이라는 것이다. 한국인에게 있어서 오방색이란 관념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색에 관한 현실 자체이기도 하다.
P225 마음의 색이 풍경의 색과 하나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기억 속의 심상이 현실의 풍경과 오버랩되는 일상을 꾸리는 사람들. 그들은 과연 미의식의 행복한 주인공들이다..........고유색의 부재란 한국도시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문화 전반의 문제인데, 이같은 문제의 배경에는 색 취향을 비롯하여 취향 전반을 잃어버린 한국인의 기억상실이 자리 잡고 있다.
4부 취향과 성찰 그리고 내일의 한국인
1. 이데올로기에서 취향으로
P231 이데올로기란 본질적으로 사물을 단면적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적어도 미의 문제에 관한 한, 이데올로기적인 표상보다는 취향적인 심상이 사물의 본질에 입체적으로 다가서는 쿨한 프리즘이다.
P235 물론 취향적인 사고의 가능성은 어디까지나 가능성일 따름이며, 그것이 가능성이나 스타일로만 끝날수도 있다는 것이 취향의 운명이기도 하다.
P236 '나를 살리면서 남을 참고한' 대신 '나를 죽이면서 남을 흉내내는'데 몰두했으니 결과가 신통할 리 없다. '나를 죽이면서 남을 흉내내는' 사람이 무언가를 창조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2. 상상지향과 탈속의 아름다움
245 조선의 선비란 누구인가. 그들은 상생의 자연적 질서에 천지인의 일부로 합류하는 이상적인 풍류는 물론이요 상극의 인간적 질서 속을 피비린내 나는 투쟁으로 헤쳐가는 현실적인 실존도 가벼이 여기지 않았다. 이같은 노력의 과정에서 생성되는 존재의 에너지야말로 그들의 자화상에 해당하는 운룡의 주위에 해학적인 즐거움을 감돌게 한 원천이다.
P251 조선 선비의 자부심과 남산골 샌님의 자존심은 구별되어야 한다. 전자가 싱싱한 원류에 해당한다면 후자는 국망 이후의 골짜기를 힘겹게 통과하느라 초라하게 찢긴 지류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자조와 연민으로 발목잡힌 남산골 샌님이 자존심은 식민사관의 칼을 들어 주체적인 역사의식을 난도질한 결과 생겨난 것으로 격조와 해학이 넘치는 조선 선비의 자부심으로부터 한참 멀어진 것이다.
3. 정태적이고 자폐적인 유토피아
4. 허무주의와 샤머니즘의 극복
P260 우리는 한국인이 상생 지향의 사고방식에 따라 인간의 질서인 상극보다는 자연의 질서인 상생을 추구한 나머지 정신적인 내용을 착안하는 데는 탁월한 반면 육체적인 형식을 완성하는 데는 허술한 측면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육체적인 형식으로 도야되지 않은 정신적인 내용이 허랑한 멋으로 공중분해되는 경향이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P261 이 상상성, 구상성이 진실미를 못 얻을 때 일종의 허랑한 ‘멋’이란 것만이 나게 되고 그것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예술적 승화를 못 얻을 때 한편으로는 ‘군짓’이 잘 나오고 한편으론 ‘거들먹 거들먹’하는 부화성이 나오게 된다(고유섭,조선 미술문화의 몇낱 성격). 따라서 우리는 상생 속의 상극, 정지태 속의 가동성, 매끈함 속의 거칠음, 신명 속의 한을 단단한 핵심으로 보전하는 과제를 잠시라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한에서 흥으로, 울음에서 웃음으로 승화되는 과정은 전자를 지워버리고 후자로 날아오르는 초월의 몸짓이 아니라 전자를 등에 지고 후자를 향해 기어가는 포월의 몸짓이 되어야 한다. 상극의 과정을 과거의 삶의 흔적으로만 남겨두는 정태적인 상생이 아니라 그것을 현재의 삶의 에너지로 확보하는 역동적인 상생 쪽으로 우리의 취향을 자꾸만 밀어내는 의식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태적이고 자폐적ㅇ니 유토피아에 들어앉고자 하는 닫힌 마음 대신, 역동적이고 개방적인 유토피아를 향해 걸어나가는 열린 마음이 필요하다. 동시에 우리의 저다움 속에 숨어 있을지도 모르는 은자의 소극성 또는 폐쇄성을 멋어 던지고 세계시민의 적극성 또는 개방성을 추구해야 한다. 자연의 질서인 상생 대신 인간의 질서인 상극을 전면에 내세우는 서구적 근대와 인간의 질서인 상극을 자연의 질서인 상생 속으로 통합시키는 한국적인 저다움을 창조적인 모순으로 통합시켜야 한다.
P262 한국인은 때로는 상생적인 탈속 지향의 안정감에서 벗어나 상극적인 속세의 한복판으로 뛰어드는 불안정을 적극적으로 뒤집어 써볼 필요도 있다. 호생염극(生을 좋아하고 剋을 싫어하는 것)의 마음이 극에 달하면, 결국은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채 제자리만을 맴도는 것으로 끝나거나 아예 자폐적인 은둔으로 삶을 마감할 수도 있다.
5. 역동적이고 개방적인 유토피아
6. 김정희와 연경의 기억
P271 법고창신
P272 법고창신론(옛것을 모범으로 새로운 것을 창안한다는 뜻으로 연암 박지원이 제창하였다)
P275 추사는 올바른 법고를 통해서 개성적인 창신을 이룩하며 이를 불이의 묘경으로 통합했다고 할 수 있다.
P276 새로운 전통의 창조란 언제나 개인의 개성이 집단의 개성을 뛰어넘고 이것이 다시 집단의 새로운 개성으로 자리잡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법고창신, 옛것을 따름으로써 새것을 창조하는 것. 이것은 ‘기억 속의 심상’을 ‘오늘의 심상’으로 탈바꿈시켜내는 것이다..........골동이 되어버린 옛것에 새것의 아우라를 뒤집어씌우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그것은 '지금 이 순간'의 주체가 체험하는 당대성이다.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의 주체로 하여금 당대성을 체험하게 하는 지렛대는 무엇일까. 추사가 '연경의 기억'을 통해 획득한 국제적 감각이 그것인데, 그것은 우물 안 개구리와도 같은 토속적인 감각 또는 조선성을 넘어선 곳에 존재하는 세계성이다. 따라서 '지금 이 순간' 우리는 몬드리안의 작품을 통해 만나는 국제적인 감각을 획득하고 나서야 비로소 천연염색 조각보의 토속적인 아름다움에 새롭게 눈뜰 수 있으며, 현대 회화의 개성적인 예술혼을 접하고 나서야 비로소 조희룡 매화도의 진한 매혹과 김수철 화훼도의 간결한 세련에 새삼스럽게 빠져들 수 있다.
P279 회통적인 사고. 한국인과 세계인 사이에서 , 법고와 창신 사이에서 회통적인 사고를 모색한 사람들만이, 창조라는 새 역사의 문을 열어젖힐 수 있다. 유월의 햇살 아래 붉은 악마로 서 있었던 우리 모두가 눈부시게 깨달았듯이, 한국인이기를 원한다면 동시에 세계인이기를 꿈꾸어야 하며 세계인을 꿈꾼다면 결코 한국인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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