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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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일지, 김구 저, 도진순 엮음, 돌베게 2003
1.
백범일지를 읽으면서, 내가 참으로 무식했었구나 생각했다.
내가 ‘김구’라는 인물에 대해 아는 것이 무엇이었나 생각하니, 수업시간에 배운 임시정부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공산, 민주사상에 얽매이지 않았던 중도적 인물이었다는 것. 그리고 그의 트레이드마크였던 동그란 뿔테 안경, 나의 소원... 이 정도였다.
변명은 아니지만, 대다수의 또래 젊은이들도 나의 역사적 인식과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나는 그의 사진만으로 온화하고, 재기가 넘치는 인물일 것이라 예상했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나는 그 인물의 위대성을 넘어서 당황함을 느꼈다. 예상과 달리 김구 선생은 무척 단단하고, 강한 사람이었다. 그의 호방한 기질과 기개가 이끈 그의 젊은 시절은 한편의 수호지를 연상케 했다. 과거의 사람들이 가졌던 ‘의리’와 ‘충효’는 놀라움 그 자체였다. 자신의 목숨을 던져서 더 큰 무언가를 이루고자 한 사람들을 보면서, 내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삶을 살아간 사람들에게 조의를 표했다. 그 활동이 어느 사상에 기반을 했건, 옳은 판단에서 행해졌든 간에 나는 그 행동을 이끌어낸 신념에 놀라고 있었다.
죽음자체를 두려워하고, 개인의 안위를 우선시 하는 현대인의 삶 속에서 백범일지를 읽는 자체만으로 마음의 풍파가 일어난다. “죽음과 삶의 경계가 없구나.” 언제고 죽을 준비를 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선 범접할 수 없는 氣가 느껴진다.
내가 두 번째로 놀란 것은 옛사람들의 사귐이었다.
“연산 이천경이나 지례 성태영은 모두 내 동지입니다. 우리는 새 동지가 생기면 반드시 몇 군데를 돌아다니며 1개월씩 함께 지냅니다. 그리하여 각자 관찰하고 시험한 것을 모아서, 벼슬살이가 적당한 자는 벼슬자리를 주선하고, 상업이나 농사에 적당한 인재는 상업이나 농사일을 하게 하고 있소.” -124
백범을 위해 가산을 탕진하면서까지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었던 김자경이나 의리를 저버리지 않고 백범의 가솔의 안위를 보살펴 주었던 많은 이들, 밤새 시국을 논의하고 머리를 싸매었던 이들. 이들은 사람 사귐에 거리를 두지 않으면서도 거리를 유지하는 법을 아는 것 같다. 사람과 교류해봐야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인재라면 먼 길이라도 찾아가서 사귐을 청하던 옛 사람들의 풍류를 본 받고 싶다.
2.
우리의 독립을 위해 ‘무력투쟁’을 감행하고 준비해온 백범을 보며, 한편으로 ‘오사마 빈 라덴’이 떠올랐다. 어린시절 국모의 원수를 갚는다 하여 일인이라는 이유로 ‘스치다’를 죽인 일, 윤봉길 의사의 도시락 폭탄, 이봉창의사의 일왕암살시도, 광복단을 준비하고 훈련시키던 것이 모두 백범의 무력투쟁의지에서 비롯된 일이다. 투쟁에 있어서 간디가 세계적인 인물로 추앙받을 수 있었던 것과 라덴이 중동지역에서는 추앙받지만 그 외 지역에서는 한낱 ‘테러분자’로 지목된다는 것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앞서 읽었던 <금빛 기쁨의 기억>을 통해 생각했던 ‘세계인과 한국인’이란 화두를 다시금 떠올렸다. 한국인의 시각에선 백범은 둘도 없을 민족주의자이며, 존경받아야 할 인물이다. 그렇게 교육받았고 이에 대해서 한 치의 의심도 없었다. 그러나 세계인의 입장에서 보면 어떠할까?
나라의 독립과 자주를 위해 몸바친 백범은 그 수단으로 ‘무력투쟁’을 택했다. 그가 중일 전쟁을 보며, 언젠가 우리도 우리의 피로 강산을 물들일 날이 올 것이라며 다짐하는 부분에서 미대사관에 폭탄테러를 자행하고, 9.11 테러의 배후로 지목된 라덴이 오버랩 되었다면 지나친 것일까?
한국인의 관점에서 보면, 나라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던, 한 시대인인 백범일지를 보고 눈물을 흘리거나 가슴이 먹먹해지는 감동을 받아야 할 터이다. 나 또한 그러했다. 자신의 명성이나 지식을 자랑하기 위해서라 아니라 언제나 죽을 준비가 된 상태에서 남긴 유서로서의 ‘책’을 접하는 심정은 남달랐다. 그의 숭고한 뜻에 머리를 조아리며 책장을 넘겨갔다. 그의 기개와 울분을 토해낼 줄 아는 용기, 솔직하게 자신의 행적을 그려나가는 그의 기상이 부러웠고, 한편 부끄러웠으며, 본받을 만 했다. 그러나 광복군을 키우는 와중 일본이 항복해버린 상황에서 아쉬움을 느끼던 그의 모습에서 궁금증이 생겼다. 그의 무력투쟁은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이었을까? 어떠한 신념에서 나온 것이었을까? 우리에게만 ‘자랑스러운 한국인’이었을까, 아니면 잔혹하고 야만적인 일본의 식민지배하에서 일어난 ‘세계적인 거사’였을까?
그가 세계적인 인물이 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어쨌든 그는 최선을 다해 나라를 지키는데 몸 바쳤고 많은 공로를 세웠다. 어떤 이는 백범일지가 역사적 사료에 불과할 뿐 어떠한 교훈도 얻을 수 없다고 하기도 한다.
나는 백범일지를 두고 다음의 질문에 예상치 못한 기습을 당하였다.
이 책을 나에게 어떻게 주어야 할 것인가?
나는 어떤 관점에서 그를 볼 것인가?
3.
글은 글쓴이를 보여준다. 백범일지는 백범의 일부를 아주 솔직히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그는 무엇을 특별히 부각시키거나, 없애려 하지 않고 물 흐르듯이 자신의 일생을 보여준다. 건조한 문체다. 그러나 힘이 넘친다. 수식 없는 글이지만, 흡입하는 힘이 있다. 백범이 자신을 드러낸 몇 군데를 뽑아보았다. 이는 순전히 나의 판단이다.
“산골 가난한 집에서 이름 있는 의사를 부른다거나 기사회생의 명약을 드시게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할머님이 임종하실 때 아버님께서 손가락을 자르신 것도 이런 절박함 때문이었다. 그러나 내가 또 그리한다면 어머님의 마음이 상하실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어머님이 계시지 않은 틈을 타서 왼쪽 넓적다리 살을 한 조각 베어내었다. 고기는 불에 구워 잡수시게 하고, 흐르는 피는 드시게 하였다.” -128
백범으로 인해 부모님의 고생도 만만치 않았지만, 백범이 부모에 대해 행한 효도 만만치 않았다. 과연 범하기 어려움이 있다. 옛말에 ‘충효’를 같이 말하던 것이 틀리지 않다. 효가 강하면, 충도 강하다는 것을 백범이 손수 보여준다.
“ 저주하리로다, 해주 서촌의 양반들이여! 스스로 충신입네 공신의 자손입네하며, 평민을 소나 말이나 노예처럼 천시하던 기염은 오늘 어디에 있느냐!
저주하리로다, 해주 서촌의 상놈들이여! 오백 년 기나긴 세월 동안 썩은 양반 앞에서 큰기침 한번 마음 놓고 못하다가, 이제는 신선한 신식 양반이 될 수 있지 않은가! -145p
백범은 자신이 뜻하거나 말하고자 하는 바를 관철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 울분을 제때에 터뜨릴 줄 아는 용기와 객기를 동시에 가진다. 이것에 제대로 표출되었기에 백범은 임시정부를 이끌고 각종 애국운동을 지휘하고, 일본을 호령할 수 있었다.
“나는 문가에게 친절 또 친절하게 굴었다. 집에서 부쳐주는 사식도 틈을 타서 나눠주고, 감옥 밥이라도 문가가 곁에만 오면 나는 굶으면서도 주었다. 그러다 문가가 먼저 만기 출옥하니 내가 출옥하는 것 못지않게 시원하였다. ” -187p
온갖 고문에도 꿋꿋이 견뎌내던 백범이 늘 굳세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상황에 맞게 자신을 유연하게 만들기도 하였던 것이다.
“이후 반포한 규칙대로 일을 시행하였다. 나는 날마다 일찍 일어나서 소작인의 집을 찾아다녔다. 늦잠 자는 자가 있으면 깨워서 집안일을 시키고, 집이 더러운 자는 깨끗이 청소하게하며, 땔감을 거두어 오게 하고, 짚신삼기와 자리 짜리를 장려하였다. 평소 소작인들이 일하는 태도를 장부에 정리해 두었다가, 추수절에 농장주의 허가 범위 안에서 부지런한 자에게는 상을 많이 주고 게으른 자에게는 경작권을 허락하지 않겠다고 일러 주었다. ” -198p
책을 읽다보면 백범이 굉장히 솔직하고 단순하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는 잔머리를 쓰거나 하는 법 없이 평생을 자신의 믿음대로, 자신이 가진 원칙대로 말하고 행하였다. 위가 하나의 예가 될 듯 하다.
또한 그는 부와 명성을 따지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신념과 사람들을 위한 길을 좇았다. 자신을 내세우는 법이 없었다. 임시정부의 문지기를 청할 만큼 겸양했다. 어린시절 자신의 관상을 보다가 좌절할 지언정, 무슨 일을 함에 있어 자신의 약점을 핑계 삼지 않았다.
4.
우리의 서울은 오직 우리의 서울이라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철학을 찾고, 세우고, 주장해야 한다. 이것을 깨닫는 날이 우리 동포가 진실로 독립정신을 가지는 날이요, 참으로 독립하는 날이다. -4p
어떤 사람이 나에게 ‘어떻게 죽기를 원하는가?’ 묻는다면, 제일 큰 소원은 독립 달성 이후 본국에 입성식을 하고 죽는 것이다. 그것이 안 된다면, 작은 소망은 임시정부를 후원한 미주, 하와이 동포들이라도 만나보고 돌아오다 비행기에서 시신을 던져 산중에 떨어지면 짐승들의 뱃속에, 바다에 떨어지면 물고기 뱃속에 영원히 잠드는 것이다. -226p
백성들의 작은 의견은 이해관계로 결정되거니와, 큰 의견은 그 국민성과 신앙 및 철학으로 결정된다. 여기서 문화와 교육의 중요성이 생긴다. 국민성을 보존하는 것이나 수정하고 향상하는 것이 문화와 교육의 힘이요, 산업의 방향도 문화와 교육으로 결정됨이 큰 까닭이다. 교육이란 결코 생활의 기술을 가르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교육의 기초가 되는 것은 우주와 인생과 정치에 대한 철학이다. 어떠한 철학의 기초 위에, 어떠한 생활의 기술을 가르치는 것이 곧 국민교육이다. 그러므로 좋은 민주주의의 정치는 좋은 교육에서 시작될 것이다. -314p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우리의 부는 우리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힘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도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지금 인류에게 부족한 것은 무력도 아니오, 경제력도 아니다. 자연 과학의 힘은 아무리 많아도 좋으나, 인류 전체로 보면 현재의 자연과학만 가지고도 편안히 살아가기에 넉넉하다. 인류가 현재에 불행한 근본 이유는 인의가 부족하고, 자비가 부족하고, 사랑이 부족한 때문이다. 이 마음만 발달이 되면, 현재의 물질력으로 인류 20억이 다 편안히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인류에게 이 정신ㅇ르 배양하는 것은 오직 문화이다. 나는 우리나라가 남의 것을 모방하는 나라가 되지 말고, 이러한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원이 되고, 목표가 되고, 모범이 되기를 원한다. 그래서 진정한 세계의 평화가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로 말미암아 세계에 실현되기를 원한다. -31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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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백범일지를 읽으면서, 내가 참으로 무식했었구나 생각했다.
내가 ‘김구’라는 인물에 대해 아는 것이 무엇이었나 생각하니, 수업시간에 배운 임시정부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공산, 민주사상에 얽매이지 않았던 중도적 인물이었다는 것. 그리고 그의 트레이드마크였던 동그란 뿔테 안경, 나의 소원... 이 정도였다.
변명은 아니지만, 대다수의 또래 젊은이들도 나의 역사적 인식과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나는 그의 사진만으로 온화하고, 재기가 넘치는 인물일 것이라 예상했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나는 그 인물의 위대성을 넘어서 당황함을 느꼈다. 예상과 달리 김구 선생은 무척 단단하고, 강한 사람이었다. 그의 호방한 기질과 기개가 이끈 그의 젊은 시절은 한편의 수호지를 연상케 했다. 과거의 사람들이 가졌던 ‘의리’와 ‘충효’는 놀라움 그 자체였다. 자신의 목숨을 던져서 더 큰 무언가를 이루고자 한 사람들을 보면서, 내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삶을 살아간 사람들에게 조의를 표했다. 그 활동이 어느 사상에 기반을 했건, 옳은 판단에서 행해졌든 간에 나는 그 행동을 이끌어낸 신념에 놀라고 있었다.
죽음자체를 두려워하고, 개인의 안위를 우선시 하는 현대인의 삶 속에서 백범일지를 읽는 자체만으로 마음의 풍파가 일어난다. “죽음과 삶의 경계가 없구나.” 언제고 죽을 준비를 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선 범접할 수 없는 氣가 느껴진다.
내가 두 번째로 놀란 것은 옛사람들의 사귐이었다.
“연산 이천경이나 지례 성태영은 모두 내 동지입니다. 우리는 새 동지가 생기면 반드시 몇 군데를 돌아다니며 1개월씩 함께 지냅니다. 그리하여 각자 관찰하고 시험한 것을 모아서, 벼슬살이가 적당한 자는 벼슬자리를 주선하고, 상업이나 농사에 적당한 인재는 상업이나 농사일을 하게 하고 있소.” -124
백범을 위해 가산을 탕진하면서까지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었던 김자경이나 의리를 저버리지 않고 백범의 가솔의 안위를 보살펴 주었던 많은 이들, 밤새 시국을 논의하고 머리를 싸매었던 이들. 이들은 사람 사귐에 거리를 두지 않으면서도 거리를 유지하는 법을 아는 것 같다. 사람과 교류해봐야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인재라면 먼 길이라도 찾아가서 사귐을 청하던 옛 사람들의 풍류를 본 받고 싶다.
2.
우리의 독립을 위해 ‘무력투쟁’을 감행하고 준비해온 백범을 보며, 한편으로 ‘오사마 빈 라덴’이 떠올랐다. 어린시절 국모의 원수를 갚는다 하여 일인이라는 이유로 ‘스치다’를 죽인 일, 윤봉길 의사의 도시락 폭탄, 이봉창의사의 일왕암살시도, 광복단을 준비하고 훈련시키던 것이 모두 백범의 무력투쟁의지에서 비롯된 일이다. 투쟁에 있어서 간디가 세계적인 인물로 추앙받을 수 있었던 것과 라덴이 중동지역에서는 추앙받지만 그 외 지역에서는 한낱 ‘테러분자’로 지목된다는 것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앞서 읽었던 <금빛 기쁨의 기억>을 통해 생각했던 ‘세계인과 한국인’이란 화두를 다시금 떠올렸다. 한국인의 시각에선 백범은 둘도 없을 민족주의자이며, 존경받아야 할 인물이다. 그렇게 교육받았고 이에 대해서 한 치의 의심도 없었다. 그러나 세계인의 입장에서 보면 어떠할까?
나라의 독립과 자주를 위해 몸바친 백범은 그 수단으로 ‘무력투쟁’을 택했다. 그가 중일 전쟁을 보며, 언젠가 우리도 우리의 피로 강산을 물들일 날이 올 것이라며 다짐하는 부분에서 미대사관에 폭탄테러를 자행하고, 9.11 테러의 배후로 지목된 라덴이 오버랩 되었다면 지나친 것일까?
한국인의 관점에서 보면, 나라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던, 한 시대인인 백범일지를 보고 눈물을 흘리거나 가슴이 먹먹해지는 감동을 받아야 할 터이다. 나 또한 그러했다. 자신의 명성이나 지식을 자랑하기 위해서라 아니라 언제나 죽을 준비가 된 상태에서 남긴 유서로서의 ‘책’을 접하는 심정은 남달랐다. 그의 숭고한 뜻에 머리를 조아리며 책장을 넘겨갔다. 그의 기개와 울분을 토해낼 줄 아는 용기, 솔직하게 자신의 행적을 그려나가는 그의 기상이 부러웠고, 한편 부끄러웠으며, 본받을 만 했다. 그러나 광복군을 키우는 와중 일본이 항복해버린 상황에서 아쉬움을 느끼던 그의 모습에서 궁금증이 생겼다. 그의 무력투쟁은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이었을까? 어떠한 신념에서 나온 것이었을까? 우리에게만 ‘자랑스러운 한국인’이었을까, 아니면 잔혹하고 야만적인 일본의 식민지배하에서 일어난 ‘세계적인 거사’였을까?
그가 세계적인 인물이 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어쨌든 그는 최선을 다해 나라를 지키는데 몸 바쳤고 많은 공로를 세웠다. 어떤 이는 백범일지가 역사적 사료에 불과할 뿐 어떠한 교훈도 얻을 수 없다고 하기도 한다.
나는 백범일지를 두고 다음의 질문에 예상치 못한 기습을 당하였다.
이 책을 나에게 어떻게 주어야 할 것인가?
나는 어떤 관점에서 그를 볼 것인가?
3.
글은 글쓴이를 보여준다. 백범일지는 백범의 일부를 아주 솔직히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그는 무엇을 특별히 부각시키거나, 없애려 하지 않고 물 흐르듯이 자신의 일생을 보여준다. 건조한 문체다. 그러나 힘이 넘친다. 수식 없는 글이지만, 흡입하는 힘이 있다. 백범이 자신을 드러낸 몇 군데를 뽑아보았다. 이는 순전히 나의 판단이다.
“산골 가난한 집에서 이름 있는 의사를 부른다거나 기사회생의 명약을 드시게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할머님이 임종하실 때 아버님께서 손가락을 자르신 것도 이런 절박함 때문이었다. 그러나 내가 또 그리한다면 어머님의 마음이 상하실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어머님이 계시지 않은 틈을 타서 왼쪽 넓적다리 살을 한 조각 베어내었다. 고기는 불에 구워 잡수시게 하고, 흐르는 피는 드시게 하였다.” -128
백범으로 인해 부모님의 고생도 만만치 않았지만, 백범이 부모에 대해 행한 효도 만만치 않았다. 과연 범하기 어려움이 있다. 옛말에 ‘충효’를 같이 말하던 것이 틀리지 않다. 효가 강하면, 충도 강하다는 것을 백범이 손수 보여준다.
“ 저주하리로다, 해주 서촌의 양반들이여! 스스로 충신입네 공신의 자손입네하며, 평민을 소나 말이나 노예처럼 천시하던 기염은 오늘 어디에 있느냐!
저주하리로다, 해주 서촌의 상놈들이여! 오백 년 기나긴 세월 동안 썩은 양반 앞에서 큰기침 한번 마음 놓고 못하다가, 이제는 신선한 신식 양반이 될 수 있지 않은가! -145p
백범은 자신이 뜻하거나 말하고자 하는 바를 관철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 울분을 제때에 터뜨릴 줄 아는 용기와 객기를 동시에 가진다. 이것에 제대로 표출되었기에 백범은 임시정부를 이끌고 각종 애국운동을 지휘하고, 일본을 호령할 수 있었다.
“나는 문가에게 친절 또 친절하게 굴었다. 집에서 부쳐주는 사식도 틈을 타서 나눠주고, 감옥 밥이라도 문가가 곁에만 오면 나는 굶으면서도 주었다. 그러다 문가가 먼저 만기 출옥하니 내가 출옥하는 것 못지않게 시원하였다. ” -187p
온갖 고문에도 꿋꿋이 견뎌내던 백범이 늘 굳세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상황에 맞게 자신을 유연하게 만들기도 하였던 것이다.
“이후 반포한 규칙대로 일을 시행하였다. 나는 날마다 일찍 일어나서 소작인의 집을 찾아다녔다. 늦잠 자는 자가 있으면 깨워서 집안일을 시키고, 집이 더러운 자는 깨끗이 청소하게하며, 땔감을 거두어 오게 하고, 짚신삼기와 자리 짜리를 장려하였다. 평소 소작인들이 일하는 태도를 장부에 정리해 두었다가, 추수절에 농장주의 허가 범위 안에서 부지런한 자에게는 상을 많이 주고 게으른 자에게는 경작권을 허락하지 않겠다고 일러 주었다. ” -198p
책을 읽다보면 백범이 굉장히 솔직하고 단순하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는 잔머리를 쓰거나 하는 법 없이 평생을 자신의 믿음대로, 자신이 가진 원칙대로 말하고 행하였다. 위가 하나의 예가 될 듯 하다.
또한 그는 부와 명성을 따지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신념과 사람들을 위한 길을 좇았다. 자신을 내세우는 법이 없었다. 임시정부의 문지기를 청할 만큼 겸양했다. 어린시절 자신의 관상을 보다가 좌절할 지언정, 무슨 일을 함에 있어 자신의 약점을 핑계 삼지 않았다.
4.
우리의 서울은 오직 우리의 서울이라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철학을 찾고, 세우고, 주장해야 한다. 이것을 깨닫는 날이 우리 동포가 진실로 독립정신을 가지는 날이요, 참으로 독립하는 날이다. -4p
어떤 사람이 나에게 ‘어떻게 죽기를 원하는가?’ 묻는다면, 제일 큰 소원은 독립 달성 이후 본국에 입성식을 하고 죽는 것이다. 그것이 안 된다면, 작은 소망은 임시정부를 후원한 미주, 하와이 동포들이라도 만나보고 돌아오다 비행기에서 시신을 던져 산중에 떨어지면 짐승들의 뱃속에, 바다에 떨어지면 물고기 뱃속에 영원히 잠드는 것이다. -226p
백성들의 작은 의견은 이해관계로 결정되거니와, 큰 의견은 그 국민성과 신앙 및 철학으로 결정된다. 여기서 문화와 교육의 중요성이 생긴다. 국민성을 보존하는 것이나 수정하고 향상하는 것이 문화와 교육의 힘이요, 산업의 방향도 문화와 교육으로 결정됨이 큰 까닭이다. 교육이란 결코 생활의 기술을 가르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교육의 기초가 되는 것은 우주와 인생과 정치에 대한 철학이다. 어떠한 철학의 기초 위에, 어떠한 생활의 기술을 가르치는 것이 곧 국민교육이다. 그러므로 좋은 민주주의의 정치는 좋은 교육에서 시작될 것이다. -314p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우리의 부는 우리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힘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도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지금 인류에게 부족한 것은 무력도 아니오, 경제력도 아니다. 자연 과학의 힘은 아무리 많아도 좋으나, 인류 전체로 보면 현재의 자연과학만 가지고도 편안히 살아가기에 넉넉하다. 인류가 현재에 불행한 근본 이유는 인의가 부족하고, 자비가 부족하고, 사랑이 부족한 때문이다. 이 마음만 발달이 되면, 현재의 물질력으로 인류 20억이 다 편안히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인류에게 이 정신ㅇ르 배양하는 것은 오직 문화이다. 나는 우리나라가 남의 것을 모방하는 나라가 되지 말고, 이러한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원이 되고, 목표가 되고, 모범이 되기를 원한다. 그래서 진정한 세계의 평화가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로 말미암아 세계에 실현되기를 원한다. -31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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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2 | 11-화인열전 [1] | 김귀자 | 2006.05.19 | 27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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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8 | 백범일지 | 박소정 | 2006.05.16 | 26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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