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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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인열전 1,2 / 유홍준/ 역사비평사 2001
■ 저자, 유홍준
1949년 출샏. 반갑게도 성균관대에서 예술철학 박사를 수료했다. 미술평론가이자, 대학교수이며, 정무직 공무원이라는 3개의 직업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그의 이름은 대표저서 <나의문화유산답사기>시리즈를 통해서 널이 알려졌고, 더불어 답사문화기행이라을 흥성케 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1979년 중안일부 계간미술 기자활동을 하였고, 1984년엔 한국민족 미술협의회 공동대표를 맡았다. 1997년 영남대 박물관 관장을 지내고, 2000년도엔 문화관광부 지역문화의 해 추진위원회에서 문화예술기획 추진위원을 겸했다. 2002년 명지대 문화예술대학원 원장으로 임명된 바 있다. 현재 2004년부터 문화재청 제 3대 청장을 맡고 있다.
“이 책을 쓰는데 나에게 신념이 있었다면 그것은 인문학의 줄기는 문화사이고, 문화사의 꽃은 미술사학이며, 미술사학의 열매는 예술가의 전기라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화인열전』은 인문학의 실천으로서 미술사라고 말하고 싶다.” -9쪽
■ 畵人列傳 감상
1.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오직 하나.
재밌을 것 같아서였다. 화가들은 기행이 많다. 특히 대가일수록 더 볼만한 기록들이 많지 않을까. 총 8명의 화인들의 삶을 다뤘다는 것이 매력적이었다. 내가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더 많았지만.
예술가적 기질과 삶 속에서 고뇌한 8명의 화인들 중 내 맘은 사로잡은 것은 죽는 순간까지 그림과 함께한 겸재 정선이었다. 그는 내가 보기에 가장 행복한 삶을 살며 천수를 누린 화인이었다.
그 외 김명국이나 최북은 평민 출신으로 자신의 기예를 생계수단으로 삼으며 현실에 대한 좌절 분노를 그림으로 표현한 이들이다. 비극적인 가정 환경 탓에 자신의 기량을 천하에 제대로 뽐내지 못했던 현재 심사정, 능호관 이인상. 양반이면서 그림으로 이름나는 것을 꺼렸던 관아재 조영석. 사실상 그가 가장 안타까웠었다.
“세상에는 관아재의 이런 그림 재주와 취미를 간혹 천한 환쟁이와 동일시하며 비방하고 폄하하는 일이 많았다. 그럴 때면 관아재는 선비로서 품위를 잃는 것을 싫어하여 그림에서 손을 떼고는 삼갔다.” -180
기예를 천시하는 당시의 분위기 때문에 관아재 처럼 자신의 역량을 마음껏 발휘하지 못했던 시대가 안타까웠다. 현재도 크게 변한 것 같진 않다. 그러나 겸재 정선 단원 김홍도처럼 ‘비록 환쟁이라 불릴지라도’ 자신의 길을 꿋꿋이 즐기면서 걸어간 겸재와 이가 있었기에 우리는 훌륭한 문화유산을 가질 수 가 있었다.
2..
겸재가 그토록 칭송받는 것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그의 성실하고도, 열정적인 그림에 대한 의지외에도 우리 것만을, 자신의 개성만을 내세우지 않았기에 국제적인 시각에서도 당당할 수 있었다.
“겸재는 위대한 민족적 화풍인 진경산수를 창출하기 위해 『기해년화첩』과 같은 남종문인화풍에도 열중하였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의 진경산수는 고루한 국수주의적 색채나 지방적 낙후성에 빠지지 않고 국제적 시각에서도 당당할 수 있었다. 그것은 기초가 되어있는 사람과 아닌 사람, 국제적 시각을 갖고 있는 사람과 아닌 사람, 고전을 통과한 사람과 아닌 사람의 차이 같은 것이다. ” -230쪽
겸재는 현재의 시점에서 우리가 한국문화를 가지고 국제적으로 ‘놀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를 보여준다. 앞서 강영희씨가 책에서 쓴 대로, 한국인과 세계인의 경계를 구분함 없이 둘 다를 모두 품속에 가지고 있을 때 진정으로 발현될 수 있었던 것과 통하는 것이 아닌가? 개인적으로 겸재 정선을 더 알고, 만나고 싶은 욕심이 있다.
역시나 부러웠던 것은 백범일지에서도 쓴 것이지만, 각자의 예술세계를 존중해주고 인정해 줄줄 알았던 선조들의 ‘친교’가 무척 부러웠다. 정신적인 교류를 나누는 그들의 인간적인 교류가 우리가 현재 가장 크게 잃고 있는 부분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3.
책의 절반은 그림이요, 절반은 글이로다.
그러나 그 글을 읽는 것마저 쉽지가 않았다.
낯 설은 미술 용어들은 나를 곤혹케 했으며 읽는 중간 중간 사전을 펼쳐보느라 흐름이 막히곤 했다. 그러나 미술에 문회한인 나에게도 감탄할만한 그림이 종종 있었으니. 실물이 아니라 찍어놓은 사진만으로도 보는 이로 하여금 마음에 알지 못할 풍파를 던져준 그들은 참마로 환쟁이라 할 만한 이들이었다.
대가들의 그림은 확실히 사람 혼을 빼놓고, 정신을 무장해제 시켜버리는 힘이 있다.
■ 畵人들의 삶과 예술세계
“한국미술사의 대표적인 화가 여덟 명의 전기로 구성되어 있다. 화가의 일상을 연대기로 기술한 것이 아니라 그 예술적 성취를 인생역정 속에서 살펴본 것이니 평전(評傳)이라 해도 좋은 것이다.”
1. 아무도 구속할 수 없었던 신필, 연담 김명국
ꋮ삶
호방하고 농담을 잘하며 술을 즐겨, 그림을 그릴 때면 반드시 실컷 취하고 나서 붓을 휘둘렀다. 그의 득의작 중에는 미친 듯 취한 후에 나온 것이 많다. 예술적 천재성과 거칠 것 없는 기인이었지만 동시대에서는 큰 빛을 보지 못했다. 화단의 흐름을 거역하고 홀로 개성을 지키며 술과 그림으로 살아갔던 당대의 이단아.
ꋮ예술세계
산수화 중에도 인물산수에 뛰어남. 인물화와 수석을 잘 그리고 수묵과 담채를 잘 사용.
작위가 없고, 치밀한 가운데 분방함을 드러나는 필치가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활달한 필치로 아무 거리낌 없이 북북 그어 내린 몇 가닥 선으로 달마대사의 이미지를 이국적으로 형상했던 <달마도>가 가장 유명. 이밖에 <설중귀려도>, <수노인>
2.자화상 속에 어린 고뇌, 공재 윤두서
ꋮ삶
유복한 환경에서 자라났으나 시운을 얻지 못해 경륜을 펴보지 못한 불우한 선비. 꿋꿋한 선비로 살아가고자 했던 의지와 자신의 뜻을 좀처럼 실현하지 못한 선각자의 쓸쓸한 고독이 묻어난다.
ꋮ예술세계
남종문인화를 자기화하면서 현실을 토대로 그리는 리얼리즘 회화, 속화의 길을 열어 놓았다.
말과 인물화부분에서 높은 화명을 얻었고, 소품에 능했다.
<심득경 초상>, <노승도>, <자화상>, <해남윤씨가전고화첩>
3.선비정신과 사실정신의 만남, 관아재 조영석
ꋮ삶
치밀한 관찰력을 지녔던 영조시대 대표적 화가로 인물화의 1인자.
환쟁이임을 부끄러워 할 수밖에 없었던 시대현실로 자신의 재능을 적극 펼치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그림 속에서 인문 정신을 찾고 강조하였다.
ꋮ예술세계
뛰어난 인물묘사력과 관찰력으로 속화의 틀을 갖추어 냄. 속화와 인물화에 능했다. 세속의 소재를 속되지 않게 회화로 표현하는 품격을 보여준다. 조선적인 인문화는 조선 3백 년 역사 속에 관아재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설중방우도>, <조영복 초상>, <사제첩>
4.내 비록 환쟁이라 불릴지라도, 겸재 정선
ꋮ삶
대기 만성형 대가. 관아재와 달리 청을 받으면 그림을 그렸다. 양반의 체통과 명예보다 그림을 더 사랑했고, 천하다고 비웃는 소리에 괘념치 않았다. 내 비록 환쟁이라 불릴지라도 그림과 함께 인생을 살아가겠다는 예술적 열정과 의지로 위대한 성취를 이루어냈다.
ꋮ예술세계
고전을 차근차근 방작하는 겸손과 성실성으로 기존의 화법을 장인적 수련을 통해 거친 이후, 스스럼없는 개성적인 필법을 갖추게 됨. 우리나라 산천의 아름다움을 담은 동국진경산수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 이는 실경의 사생화(寫生畫)가 아니라 실경을 회화적으로 재구성한 이형사신(以刑寫神의) 미학이다.
<인왕제색도>, <금강전도>,<박연폭포>
5.고독의 나날 속에서도 붓을 놓지 않은, 현재 심사정
ꋮ삶
궁핍과 고독 속에서 피어난 아름다운 야생화. 예술적 성과가 제대로 조명 받지 못했던 불우한 화가.
‘하루도 붓을 쥐지 않은 날이 없었다.’ 고 할 정도로 끈기와 완벽성을 가지고 성실히 작품에 임했다.
ꋮ예술세계
화조화에 특히 뛰어남. 중국 남종화를 자기화하여 조선적으로 토착화 시킴.
<강상박약도>, <연지 쌍압도>, <파초와 잠자리>, <딱따구리> 등
6.오직 아는 자만 알, 능호관 이인상
ꋮ삶
서출 출신. 가난. 어린나이에 이미 자신의 화필과 화풍을 확립하였다. 사람됨이 대단히 원칙적인 도덕군자였고, 타협을 모르는 완고한 성격의 소유자.
ꋮ예술세계
문인화에 능하였는데, 대상의 외형보다 내면을 관찰하며 사실(寫實)보다 사의(寫意)를 추구.
‘오직 아는 자만은 알고 있는’ 높고 진실된 예술세계로 일컬어짐.
“능호관의 시는 봄 숲의 외로운 꽃이요, 가을 밭의 선명한 백로다.”
<설송도>, <장백상도>, <검선도>, <송하관폭도> 등.
7. 붓으로 먹고살다간 칠칠히, 호생관 최북
ꋮ삶
붓으로 먹고살았던 기인 중의 기인. 오만한 성품과 예술적 자만심이 중인에 매우 빈한했던 그의 삶을 광(狂)적으로 표출케 함.
ꋮ예술세계
산수화에 특기를 발휘, 황공망류의 남종문인화풍을 보여주었다. 문인화풍을 지향하였으나 부정적 사유
와 반항적 기질로 기존의 통념에 도전하였다. 이런 낭만적 반항으로 허점이 많았다.
<풍설야귀인>, <공산무인도>, <소채도> 등.
8. 가장 조선적인 불세출의 화가, 단원 김홍도
ꋮ삶
어린 나이에 ‘근대의 명수’로 이름을 얻었고, 임금부터 일반백성에 이르기까지 사랑받았다. 말년에 이르러 가난 속에 보냈지만 어떠한 처지에서도 진실된 인간의 모습을 유지했다. 자신의 천재성을 남들과 공감할 수 있는 양식을 창출하는데 발휘함으로써 가장 인간적이고, 조선적이란 평가를 얻을 수 있었다.
ꋮ예술세계
풍속화로 유명하지만, 무소불능의 신필로 칭해질 만큼 모든 장르에 능했다. 그 중에도 신선과 화조, 인물과 풍속을 잘 그려냈다. 삶과 그림을 분리하지 않았고, 배경은 철저히 생략하여 인물의 심성을 깊이 있게 파고 들어갔다. 치밀한 묘사력과 감성적 인지능력, 재창조하는 구성력으로 평범한 우리의 자연을 기가 막히게 회화적으로 승화시켰다.
<송호도>, <군선도 8곡병>, <병진년화첩>, <염불서승도>, <금상사군첩> 등.
위의 팔 화인들은 모두 다른 삶을 살았고, 저마다의 특기가 있었다. 주로 무엇을 그리고, 무엇에 능한가. 이는 대개 그 화가의 삶과 연관되기 마련이다. 대상에 대한 깊은 애정 없이는 좋은 작품이 나오기 힘든 까닭이다.
■ 내가 저자라면
조선시대, 한국미술사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위의 8명을 선정해 저자는 꽤 오랜 세월 동안(10여년)에 걸쳐 자료를 수집하고 평전을 기고하였다. 저자가 겸재 정선과 단원 김홍도에 가장 큰 애정을 가지는 것은 책에 실린 그들의 분량으로 추측할 수 있다. 이 외에도 자료가 모이는 대로 화인열전을 계속 낼 것이라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이것으로 조상에 대한마음의 빚을 갚겠다는 저자의 의지에 나를 돌아보게 된다. 내가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은 없을까?
그림에 문외한인 나로서는 이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꽤 힘들었다. 나오는 용어들이 모두 낯설어 글이 잘 안들어온 경향도 있었다. 자주 등장하는 남종문인화나 서체, 화법에 대해 주석을 달아주었더라면 이해도가 더 높았을 것이다.
■ 책 속 구절
<58>
본래 자화상이라고 하는 것은 작가의 자의식 없이는 그려지지 않는 장르이다. 『거장들의 초상』을 쓴 마누엘 가써는 사람 얼굴은 묘사의 변용이 심하여 기분에 따라 여러 가지로 바뀌는 것인데, 무수한 가능성을 가진 자신의 얼굴 중에서 유일하게 적절한 한 형태를 잡아 불변의 증명에 착수한 것임에 주목하라고 했다.
<140>
그림은 시로서 다할 수 없는 그 무엇을 담아내는 독자적 기능이 있으며, 또 산수화는 자연 그 자체의 아름다움보다 거기에 화가의 마음이 더해지기 때문에 그림이 더 위대할 수 있다. -조영석
<192>
독창성이란 남이 하지 않은 그 무엇을 혼자 제시했다는 것이 아니라, 남들이 이룩하지 못한 또는 생각하지 못한 예술세계를 창출해냈다는 데 있다. -정선
■ 더 알기-네이버 검색
<남종문인화>
남종화에 대한 개념과 문인화는 크게 다르지 않다.
남종화를 작업의 기법이나 정신적 측면에 분류이며, 문인화는 작가의 신분 즉 주로 문인(선비)들이 그렸기때문에 그렇게 불려진 것으로 생각된다. 남종화에 문인화가 속해 있기 때문에 남종문인화라 지칭하기도 한다.
한국화를 기법적으로 분류를 하면 南宗畵(남종화)와 北宗畵 (북종화)로 나눌 수 있으며, 이 두 畵派(화파)의 구분의 유래는 中國(중국)의 禪宗(선종)에서 기인된 것으로 전해진다.
남종화는 寫意的(사의적) 表現(표현) 즉 사물을 그리는데 있어 事實的(사실적) 표현이 아닌, 사물의 뜻(意)을 작가의 心想에 담아 간략히 그리는 것이라 할 수 있으며, 북종화는 形似的(형사적) 표현 즉 사물의 實體(실체)를 그대로 그리는 사실화로서 彩色畵(채색화)가 주류를 이룬 것이다.
문인화는 남종화에 속하며 사물을 常形(상형) 하는 것이 아니고, 常理(상리) 해야 하는 것으로 一筆揮之(일필휘지)하듯 一回性(일회성)의 표현방법으로 그리는 것이다. 우리 나라에서도 문인화는 주로 많은 士大夫(사대부) 등 선비들이 취미로 각자의 主觀(주관)대로 觀念(관념)의 세계를 양식에 구애됨 없이 그렸던 것이다.
그들이 그림 그리는 목적을 여러 사람에게 보이고 評價(평가) 받기 위한 것이 아니라 마음을 가다듬고 자신의 內面(내면)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기 위한, 精神修養(정신수양)을 위한 것에 두었기 때문에 문인화에서는 사실성보다는 그린 사람의 心性(심성)이 더 중요시되었던 것이다.
<서체>
전서 : 진대에 만들어진 중국 최초의 서체로 지금은 잘 쓰이지 않고 있다. 조형성이 뛰어나서 전각에서 주로 많이 사용되고 있으며 또, 예술서로도 많이 사용된다. 특징은 획의 굵기가 일정하며 가로, 세로획이 수직, 수평을 이루며 획이 곡선적이다. 전서에는 은, 주 시대의 갑골문과 금문이 주대에 간략하게 만들어진 대전과 진시대에 더 간략화 되어 만들어진 소전이 있다.
예서 : 한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전서의 곡선을 직선으로 간략화 시킨 서체이다. 특징으로는 획의 굵기 변화가 있으며 가로획의 오른쪽에 파책이 있다. 자형은 가로로 긴 직사각형이며 종류로는 전서를 간략화 한 것으로 파책이 없는 고례와 후한대에 파책이 생기고 우아하게 변한 서체로 가로로 긴 직사각형의 팔분이 있다. 팔분츤 현판이나 책의 제자에 많이 쓰인다.
해서 : 한말에 예서필법이 정리되고 더욱 세련되어 진 것으로 서법을 익히는 기본적이고 근본적인 서체로 가로획보다 세로획이 굵은 정돈된 정자체로 자형은 다양하며 근업하고 정제된 아름다움이 있다.
행서 : 후한대에 해서를 약간 흘려쓴 반흘림체로 가장 널리 실용화가 된 서체이다. 점과 획이 부드럽고 곡선적이며 점과 획의 적절한 연결과 생략에 변화가 있는 서체이다.
초서 : 후한대에 속서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완전흘림의 글자체다. 실용성은 없으나 예술서로 많이 쓰이고 있다. 점획의 연결, 생략, 단순화가 많으나 점과 획의 연결 및 생략에는 일정한 법칙이 있다.
IP *.229.28.18
■ 저자, 유홍준
1949년 출샏. 반갑게도 성균관대에서 예술철학 박사를 수료했다. 미술평론가이자, 대학교수이며, 정무직 공무원이라는 3개의 직업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그의 이름은 대표저서 <나의문화유산답사기>시리즈를 통해서 널이 알려졌고, 더불어 답사문화기행이라을 흥성케 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1979년 중안일부 계간미술 기자활동을 하였고, 1984년엔 한국민족 미술협의회 공동대표를 맡았다. 1997년 영남대 박물관 관장을 지내고, 2000년도엔 문화관광부 지역문화의 해 추진위원회에서 문화예술기획 추진위원을 겸했다. 2002년 명지대 문화예술대학원 원장으로 임명된 바 있다. 현재 2004년부터 문화재청 제 3대 청장을 맡고 있다.
“이 책을 쓰는데 나에게 신념이 있었다면 그것은 인문학의 줄기는 문화사이고, 문화사의 꽃은 미술사학이며, 미술사학의 열매는 예술가의 전기라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화인열전』은 인문학의 실천으로서 미술사라고 말하고 싶다.” -9쪽
■ 畵人列傳 감상
1.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오직 하나.
재밌을 것 같아서였다. 화가들은 기행이 많다. 특히 대가일수록 더 볼만한 기록들이 많지 않을까. 총 8명의 화인들의 삶을 다뤘다는 것이 매력적이었다. 내가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더 많았지만.
예술가적 기질과 삶 속에서 고뇌한 8명의 화인들 중 내 맘은 사로잡은 것은 죽는 순간까지 그림과 함께한 겸재 정선이었다. 그는 내가 보기에 가장 행복한 삶을 살며 천수를 누린 화인이었다.
그 외 김명국이나 최북은 평민 출신으로 자신의 기예를 생계수단으로 삼으며 현실에 대한 좌절 분노를 그림으로 표현한 이들이다. 비극적인 가정 환경 탓에 자신의 기량을 천하에 제대로 뽐내지 못했던 현재 심사정, 능호관 이인상. 양반이면서 그림으로 이름나는 것을 꺼렸던 관아재 조영석. 사실상 그가 가장 안타까웠었다.
“세상에는 관아재의 이런 그림 재주와 취미를 간혹 천한 환쟁이와 동일시하며 비방하고 폄하하는 일이 많았다. 그럴 때면 관아재는 선비로서 품위를 잃는 것을 싫어하여 그림에서 손을 떼고는 삼갔다.” -180
기예를 천시하는 당시의 분위기 때문에 관아재 처럼 자신의 역량을 마음껏 발휘하지 못했던 시대가 안타까웠다. 현재도 크게 변한 것 같진 않다. 그러나 겸재 정선 단원 김홍도처럼 ‘비록 환쟁이라 불릴지라도’ 자신의 길을 꿋꿋이 즐기면서 걸어간 겸재와 이가 있었기에 우리는 훌륭한 문화유산을 가질 수 가 있었다.
2..
겸재가 그토록 칭송받는 것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그의 성실하고도, 열정적인 그림에 대한 의지외에도 우리 것만을, 자신의 개성만을 내세우지 않았기에 국제적인 시각에서도 당당할 수 있었다.
“겸재는 위대한 민족적 화풍인 진경산수를 창출하기 위해 『기해년화첩』과 같은 남종문인화풍에도 열중하였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의 진경산수는 고루한 국수주의적 색채나 지방적 낙후성에 빠지지 않고 국제적 시각에서도 당당할 수 있었다. 그것은 기초가 되어있는 사람과 아닌 사람, 국제적 시각을 갖고 있는 사람과 아닌 사람, 고전을 통과한 사람과 아닌 사람의 차이 같은 것이다. ” -230쪽
겸재는 현재의 시점에서 우리가 한국문화를 가지고 국제적으로 ‘놀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를 보여준다. 앞서 강영희씨가 책에서 쓴 대로, 한국인과 세계인의 경계를 구분함 없이 둘 다를 모두 품속에 가지고 있을 때 진정으로 발현될 수 있었던 것과 통하는 것이 아닌가? 개인적으로 겸재 정선을 더 알고, 만나고 싶은 욕심이 있다.
역시나 부러웠던 것은 백범일지에서도 쓴 것이지만, 각자의 예술세계를 존중해주고 인정해 줄줄 알았던 선조들의 ‘친교’가 무척 부러웠다. 정신적인 교류를 나누는 그들의 인간적인 교류가 우리가 현재 가장 크게 잃고 있는 부분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3.
책의 절반은 그림이요, 절반은 글이로다.
그러나 그 글을 읽는 것마저 쉽지가 않았다.
낯 설은 미술 용어들은 나를 곤혹케 했으며 읽는 중간 중간 사전을 펼쳐보느라 흐름이 막히곤 했다. 그러나 미술에 문회한인 나에게도 감탄할만한 그림이 종종 있었으니. 실물이 아니라 찍어놓은 사진만으로도 보는 이로 하여금 마음에 알지 못할 풍파를 던져준 그들은 참마로 환쟁이라 할 만한 이들이었다.
대가들의 그림은 확실히 사람 혼을 빼놓고, 정신을 무장해제 시켜버리는 힘이 있다.
■ 畵人들의 삶과 예술세계
“한국미술사의 대표적인 화가 여덟 명의 전기로 구성되어 있다. 화가의 일상을 연대기로 기술한 것이 아니라 그 예술적 성취를 인생역정 속에서 살펴본 것이니 평전(評傳)이라 해도 좋은 것이다.”
1. 아무도 구속할 수 없었던 신필, 연담 김명국
ꋮ삶
호방하고 농담을 잘하며 술을 즐겨, 그림을 그릴 때면 반드시 실컷 취하고 나서 붓을 휘둘렀다. 그의 득의작 중에는 미친 듯 취한 후에 나온 것이 많다. 예술적 천재성과 거칠 것 없는 기인이었지만 동시대에서는 큰 빛을 보지 못했다. 화단의 흐름을 거역하고 홀로 개성을 지키며 술과 그림으로 살아갔던 당대의 이단아.
ꋮ예술세계
산수화 중에도 인물산수에 뛰어남. 인물화와 수석을 잘 그리고 수묵과 담채를 잘 사용.
작위가 없고, 치밀한 가운데 분방함을 드러나는 필치가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활달한 필치로 아무 거리낌 없이 북북 그어 내린 몇 가닥 선으로 달마대사의 이미지를 이국적으로 형상했던 <달마도>가 가장 유명. 이밖에 <설중귀려도>, <수노인>
2.자화상 속에 어린 고뇌, 공재 윤두서
ꋮ삶
유복한 환경에서 자라났으나 시운을 얻지 못해 경륜을 펴보지 못한 불우한 선비. 꿋꿋한 선비로 살아가고자 했던 의지와 자신의 뜻을 좀처럼 실현하지 못한 선각자의 쓸쓸한 고독이 묻어난다.
ꋮ예술세계
남종문인화를 자기화하면서 현실을 토대로 그리는 리얼리즘 회화, 속화의 길을 열어 놓았다.
말과 인물화부분에서 높은 화명을 얻었고, 소품에 능했다.
<심득경 초상>, <노승도>, <자화상>, <해남윤씨가전고화첩>
3.선비정신과 사실정신의 만남, 관아재 조영석
ꋮ삶
치밀한 관찰력을 지녔던 영조시대 대표적 화가로 인물화의 1인자.
환쟁이임을 부끄러워 할 수밖에 없었던 시대현실로 자신의 재능을 적극 펼치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그림 속에서 인문 정신을 찾고 강조하였다.
ꋮ예술세계
뛰어난 인물묘사력과 관찰력으로 속화의 틀을 갖추어 냄. 속화와 인물화에 능했다. 세속의 소재를 속되지 않게 회화로 표현하는 품격을 보여준다. 조선적인 인문화는 조선 3백 년 역사 속에 관아재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설중방우도>, <조영복 초상>, <사제첩>
4.내 비록 환쟁이라 불릴지라도, 겸재 정선
ꋮ삶
대기 만성형 대가. 관아재와 달리 청을 받으면 그림을 그렸다. 양반의 체통과 명예보다 그림을 더 사랑했고, 천하다고 비웃는 소리에 괘념치 않았다. 내 비록 환쟁이라 불릴지라도 그림과 함께 인생을 살아가겠다는 예술적 열정과 의지로 위대한 성취를 이루어냈다.
ꋮ예술세계
고전을 차근차근 방작하는 겸손과 성실성으로 기존의 화법을 장인적 수련을 통해 거친 이후, 스스럼없는 개성적인 필법을 갖추게 됨. 우리나라 산천의 아름다움을 담은 동국진경산수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 이는 실경의 사생화(寫生畫)가 아니라 실경을 회화적으로 재구성한 이형사신(以刑寫神의) 미학이다.
<인왕제색도>, <금강전도>,<박연폭포>
5.고독의 나날 속에서도 붓을 놓지 않은, 현재 심사정
ꋮ삶
궁핍과 고독 속에서 피어난 아름다운 야생화. 예술적 성과가 제대로 조명 받지 못했던 불우한 화가.
‘하루도 붓을 쥐지 않은 날이 없었다.’ 고 할 정도로 끈기와 완벽성을 가지고 성실히 작품에 임했다.
ꋮ예술세계
화조화에 특히 뛰어남. 중국 남종화를 자기화하여 조선적으로 토착화 시킴.
<강상박약도>, <연지 쌍압도>, <파초와 잠자리>, <딱따구리> 등
6.오직 아는 자만 알, 능호관 이인상
ꋮ삶
서출 출신. 가난. 어린나이에 이미 자신의 화필과 화풍을 확립하였다. 사람됨이 대단히 원칙적인 도덕군자였고, 타협을 모르는 완고한 성격의 소유자.
ꋮ예술세계
문인화에 능하였는데, 대상의 외형보다 내면을 관찰하며 사실(寫實)보다 사의(寫意)를 추구.
‘오직 아는 자만은 알고 있는’ 높고 진실된 예술세계로 일컬어짐.
“능호관의 시는 봄 숲의 외로운 꽃이요, 가을 밭의 선명한 백로다.”
<설송도>, <장백상도>, <검선도>, <송하관폭도> 등.
7. 붓으로 먹고살다간 칠칠히, 호생관 최북
ꋮ삶
붓으로 먹고살았던 기인 중의 기인. 오만한 성품과 예술적 자만심이 중인에 매우 빈한했던 그의 삶을 광(狂)적으로 표출케 함.
ꋮ예술세계
산수화에 특기를 발휘, 황공망류의 남종문인화풍을 보여주었다. 문인화풍을 지향하였으나 부정적 사유
와 반항적 기질로 기존의 통념에 도전하였다. 이런 낭만적 반항으로 허점이 많았다.
<풍설야귀인>, <공산무인도>, <소채도> 등.
8. 가장 조선적인 불세출의 화가, 단원 김홍도
ꋮ삶
어린 나이에 ‘근대의 명수’로 이름을 얻었고, 임금부터 일반백성에 이르기까지 사랑받았다. 말년에 이르러 가난 속에 보냈지만 어떠한 처지에서도 진실된 인간의 모습을 유지했다. 자신의 천재성을 남들과 공감할 수 있는 양식을 창출하는데 발휘함으로써 가장 인간적이고, 조선적이란 평가를 얻을 수 있었다.
ꋮ예술세계
풍속화로 유명하지만, 무소불능의 신필로 칭해질 만큼 모든 장르에 능했다. 그 중에도 신선과 화조, 인물과 풍속을 잘 그려냈다. 삶과 그림을 분리하지 않았고, 배경은 철저히 생략하여 인물의 심성을 깊이 있게 파고 들어갔다. 치밀한 묘사력과 감성적 인지능력, 재창조하는 구성력으로 평범한 우리의 자연을 기가 막히게 회화적으로 승화시켰다.
<송호도>, <군선도 8곡병>, <병진년화첩>, <염불서승도>, <금상사군첩> 등.
위의 팔 화인들은 모두 다른 삶을 살았고, 저마다의 특기가 있었다. 주로 무엇을 그리고, 무엇에 능한가. 이는 대개 그 화가의 삶과 연관되기 마련이다. 대상에 대한 깊은 애정 없이는 좋은 작품이 나오기 힘든 까닭이다.
■ 내가 저자라면
조선시대, 한국미술사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위의 8명을 선정해 저자는 꽤 오랜 세월 동안(10여년)에 걸쳐 자료를 수집하고 평전을 기고하였다. 저자가 겸재 정선과 단원 김홍도에 가장 큰 애정을 가지는 것은 책에 실린 그들의 분량으로 추측할 수 있다. 이 외에도 자료가 모이는 대로 화인열전을 계속 낼 것이라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이것으로 조상에 대한마음의 빚을 갚겠다는 저자의 의지에 나를 돌아보게 된다. 내가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은 없을까?
그림에 문외한인 나로서는 이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꽤 힘들었다. 나오는 용어들이 모두 낯설어 글이 잘 안들어온 경향도 있었다. 자주 등장하는 남종문인화나 서체, 화법에 대해 주석을 달아주었더라면 이해도가 더 높았을 것이다.
■ 책 속 구절
<58>
본래 자화상이라고 하는 것은 작가의 자의식 없이는 그려지지 않는 장르이다. 『거장들의 초상』을 쓴 마누엘 가써는 사람 얼굴은 묘사의 변용이 심하여 기분에 따라 여러 가지로 바뀌는 것인데, 무수한 가능성을 가진 자신의 얼굴 중에서 유일하게 적절한 한 형태를 잡아 불변의 증명에 착수한 것임에 주목하라고 했다.
<140>
그림은 시로서 다할 수 없는 그 무엇을 담아내는 독자적 기능이 있으며, 또 산수화는 자연 그 자체의 아름다움보다 거기에 화가의 마음이 더해지기 때문에 그림이 더 위대할 수 있다. -조영석
<192>
독창성이란 남이 하지 않은 그 무엇을 혼자 제시했다는 것이 아니라, 남들이 이룩하지 못한 또는 생각하지 못한 예술세계를 창출해냈다는 데 있다. -정선
■ 더 알기-네이버 검색
<남종문인화>
남종화에 대한 개념과 문인화는 크게 다르지 않다.
남종화를 작업의 기법이나 정신적 측면에 분류이며, 문인화는 작가의 신분 즉 주로 문인(선비)들이 그렸기때문에 그렇게 불려진 것으로 생각된다. 남종화에 문인화가 속해 있기 때문에 남종문인화라 지칭하기도 한다.
한국화를 기법적으로 분류를 하면 南宗畵(남종화)와 北宗畵 (북종화)로 나눌 수 있으며, 이 두 畵派(화파)의 구분의 유래는 中國(중국)의 禪宗(선종)에서 기인된 것으로 전해진다.
남종화는 寫意的(사의적) 表現(표현) 즉 사물을 그리는데 있어 事實的(사실적) 표현이 아닌, 사물의 뜻(意)을 작가의 心想에 담아 간략히 그리는 것이라 할 수 있으며, 북종화는 形似的(형사적) 표현 즉 사물의 實體(실체)를 그대로 그리는 사실화로서 彩色畵(채색화)가 주류를 이룬 것이다.
문인화는 남종화에 속하며 사물을 常形(상형) 하는 것이 아니고, 常理(상리) 해야 하는 것으로 一筆揮之(일필휘지)하듯 一回性(일회성)의 표현방법으로 그리는 것이다. 우리 나라에서도 문인화는 주로 많은 士大夫(사대부) 등 선비들이 취미로 각자의 主觀(주관)대로 觀念(관념)의 세계를 양식에 구애됨 없이 그렸던 것이다.
그들이 그림 그리는 목적을 여러 사람에게 보이고 評價(평가) 받기 위한 것이 아니라 마음을 가다듬고 자신의 內面(내면)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기 위한, 精神修養(정신수양)을 위한 것에 두었기 때문에 문인화에서는 사실성보다는 그린 사람의 心性(심성)이 더 중요시되었던 것이다.
<서체>
전서 : 진대에 만들어진 중국 최초의 서체로 지금은 잘 쓰이지 않고 있다. 조형성이 뛰어나서 전각에서 주로 많이 사용되고 있으며 또, 예술서로도 많이 사용된다. 특징은 획의 굵기가 일정하며 가로, 세로획이 수직, 수평을 이루며 획이 곡선적이다. 전서에는 은, 주 시대의 갑골문과 금문이 주대에 간략하게 만들어진 대전과 진시대에 더 간략화 되어 만들어진 소전이 있다.
예서 : 한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전서의 곡선을 직선으로 간략화 시킨 서체이다. 특징으로는 획의 굵기 변화가 있으며 가로획의 오른쪽에 파책이 있다. 자형은 가로로 긴 직사각형이며 종류로는 전서를 간략화 한 것으로 파책이 없는 고례와 후한대에 파책이 생기고 우아하게 변한 서체로 가로로 긴 직사각형의 팔분이 있다. 팔분츤 현판이나 책의 제자에 많이 쓰인다.
해서 : 한말에 예서필법이 정리되고 더욱 세련되어 진 것으로 서법을 익히는 기본적이고 근본적인 서체로 가로획보다 세로획이 굵은 정돈된 정자체로 자형은 다양하며 근업하고 정제된 아름다움이 있다.
행서 : 후한대에 해서를 약간 흘려쓴 반흘림체로 가장 널리 실용화가 된 서체이다. 점과 획이 부드럽고 곡선적이며 점과 획의 적절한 연결과 생략에 변화가 있는 서체이다.
초서 : 후한대에 속서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완전흘림의 글자체다. 실용성은 없으나 예술서로 많이 쓰이고 있다. 점획의 연결, 생략, 단순화가 많으나 점과 획의 연결 및 생략에는 일정한 법칙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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