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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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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5월 22일 00시 45분 등록


강영희의 첫번째 저서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94년에 나온 문화비평서로, TV드라마와 영화, 인물에 대한 단문 비평을 엮은 책이다. 이외에도 강영희의 저서에는 인터뷰모음집 “우리는 자유로에서 다시 만났다”가 있다.

그러고 보니 “금빛 기쁨의 기억”을 포함한 강영희의 책 세 권의 제목이 모두 예사롭지 않다. 독자적이고 단단한 어떤 심지 같은 것이 느껴진다. 세상의 주된 흐름에 대해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나직하나 단호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필히 “자유로”에 가야 하는 것이다. “금빛 기쁨의 기억”을 쓰면서 세상의 모든 잡학을 꿰뚫는 깨달음을 얻겠다는 꿈을 꾸게 되었다더니, 이 책은 바로 그 雜學에 대한 雜文인 셈이다.
책 뒤에 실린 문학평론가 이재현의 발문을 보니, 이 책이 본격적인 문화비평집으로서 처음이라고 하니 다소 어리둥절하다. 요즘에는 영화잡지나 인터넷신문 어디에서나 이런 비평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12년 세월의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하기는 나같이 둔한 사람이 느끼기에도 요즘 세태의 변화는 놀랄만큼 빠르다. 영화 산업만 해도, 이 책에서 영화 <서편제>가 관객 50만 명을 넘고 있는 중에 대해 놀라움을 표하고 있는데, <왕의 남자>를 1200만이 보았으니 거의 폭발적인 양적 확대가 이루어진 것이다. 최근 한류의 열풍을 타고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외형과 파급력이 무한대로 확대되고 있다. 2005년 1월에 필리핀에 갔을 때, 내가 접한 모든 필리핀 사람들이 TV드라마 “파리의 연인”에 열광하고 있었으며, 그에 관해 질문을 하곤 했다. ‘아자~~’가 뭐냐, ‘오빠’가 뭐냐, 길을 가다가도 우리가 코리안인 것을 감지한 사람들은 어김없이 ‘Lovers in Paris'를 조잘거리고 있었다. 일개 드라마가 한국과 한국어에 대한 문화적 관심을 확대시키고 있어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영향력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막강하다.

다소 철지난 비평이지만, 강영희와 내가 비슷한 연배라 재미있게 읽었다. 만화가 이현세론이나 방송작가 김수현론의 배경을 이해할 수 있었으며, 탤런트 최진실의 전성기에 쓰여졌음직한 비평들은, 최진실의 고난과 역전을 보아 온 지금 한 줄기 감상에 젖게 했다.
짧은 글들이다 보니 반 이상이 가벼운 소품들이다. 일반론에 그친 글도 있다. 사진에 대한 설명이 따로 없어, 글을 읽으며 일일이 대조해야 하는 불편이 있었다. 각 글이 발표된 지면과 일자도 없다.

영화라는 텍스트가 명확해서인지 강영희의 취향인지 영화비평이 돋보인다. 아, 강영희는 동양사학과를 나와서 국문과와 연극영화과 대학원 두 군데를 다녔다. 영화 <양들의 침묵>이나 <용서받지 못한 자>에 대한 심층적인 비평이 인상적이다.

비교적 짧은 글을 쓰던 강영희로서는 <금빛 기쁨의 기억>이 심혈을 기울인 역작이었던 셈이다. 출판사에서도 기대를 많이 했는데 독자의 호응이 영 맘같지 않았던 모양이다. 감히 그 이유를 분석을 해 보자면 이렇다. 인문학이 독자에게 어필하려면 독자에게 무엇인가 실용성을 주어야 한다. 일반 독자는 책을 통해 자신의 인생에 보탬이 되는 것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가령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가 빅히트를 친 것은 자동차의 보급으로 여행문화가 확대되었는데, 단순히 몰려가서 고기 구어먹는 나들이에 지친 대중에게 문화유산을 보는 법을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강영희의 미의식은 관념적인 이론에서 그쳤지, 독자가 생활에서 활용할 수 있는 팁을 주지 못했다. 누군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해도 뭐 할 말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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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소라
2006.05.23 16:14:25 *.46.15.12
여기 올리신 분들의 글을 가만히 읽고 가기만 했는데, 한명석님의 리뷰가 인상적이어서 글을 남깁니다. 책을 돋보기로도 보고 망원경으로 훑어주는 듯한 리뷰였습니다. '금빛 기쁨의 기억'한번 읽고 싶어졌어요. 관념속에 머물면 머무는대로 저는 좋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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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석
2006.05.23 19:01:42 *.225.18.241
과분한 말씀, 감사합니다. 확실하게 삘받은 책이라면, 리뷰도 훨씬 더 잘 쓸 수 있는데요 ^^ 사실 고만고만하게 읽은 책에서 뭐 그리 할 말이 있겠어요. 그래도 저하고의 약속이고, 또 어느새 버릇이 되어서 리뷰 안하면 마무리가 안된 것처럼 어정쩡하네요. 불과 네 줄짜리 덧글이지만 소라님의 표현력이 반듯한 것을 느낍니다. 본격적으로 자취 남겨주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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