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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6월 7일 23시 55분 등록
è 프롤로그 : 원질신화
* 신화의 꿈
인간이 가진 심성 중에 가장 끈질기게 남는 성향은, 동물 중에서도 인간이 가장 오랫동안 어머니 젖가슴에 매달려 있다는 사실에서 기인한다. (16)

무의식은 꿈을 통해서, 혹은 벌건 대낮에, 아니면 정신 착란을 이용하여 갖가지 부질없는 몽상과 기이한 상념과 공포와 정신을 어지럽히는 허상을 마음으로 올려보낸다. (19)

영웅은 과거 개인적, 지방의 역사적 제약과 싸워 이것을 보편적으로 타당하고 정상의 인간적인 형태로 환원시킬 수 있었던 남자나 여자를 일컫는다. (33)

* 비극과 희극
신화와 동화 고유의 사명은 비극에서 희극에 이르는 어두운 뒤안길에 깔린 특수한 위험과 그 길을 지나는 기술을 드러내는 일이다. (43)

* 영웅과 신
영웅이 치르는 신화적 모험의 표준 궤도는 <분리>, <입문>, <회귀>의 확대판이다. 즉, 영웅은 일상적인 삶의 세계에서 초자연적인 경이의 세계로 떠나고 여기에서 엄청난 세력과 만나고, 결국은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고, 영웅은 이 신비스러운 모험에서, 동료들에게 이익을 줄 수 잇는 힘을 얻어 현실 세계로 돌아오는 것이다. (45)

영웅의 모험은 세계로부터의 분리, 힘의 원천에 대한 통찰, 그리고 황홀한 귀향의 패턴으로 이루어진다. (50)

* 세계의 배꼽
영웅의 성공적인 모험의 의미는 생명의 흐름을 풀어 다시 한번 세계의 몸 속으로 흘러 들게 하는데 있다. (55)

신의 화신으로서의 영웅은, 영원의 에너지가 시간성 안으로 흘러드는 배꼽, 즉 세계의 배꼽이다. (58)


è 제 1부 : 영웅의 모험
* 제1장 출발
- 영웅에의 소명
영웅은 자신의 의지력으로 모험을 완성할 수 있다. 영웅은 호의적, 혹은 악의적인 세력에 의해 방랑해야 하는 수도 있다. 모험은 우연한 실수로 시작될 수도 있다. (80)

- 소명의 거부
소명에의 거부는 모험을 부정적이게 한다. (81)

소명의 거부에 따르는 부정적인 상태가 뜻밖의 해방의 원리에 대한 행운의 계시일 수도 있다. (87)

- 초자연적인 조력
소명을 거부하지 않은 모험 당사자는 영웅적인 편력 도중 첫번째 보호자를 만난다. 노파나 노인의 모습으로 자주 등장하는 이 보호자는 모험 당사자가 곧 만나게 되는 용과 맞설 호부(護符)를 준다.

- 첫 관문의 통과
자기 생활권이라는 벽에서 한 발이라도 밖으로 나가는 영웅은 반드시 이런 괴물과 만나야 한다. (112)

영웅은 자아에서 해방되어 세계의 벽을 통과하는 것이다. 자아는 끈끈이 터럭에 다 붙여두고 영웅은 제 갈 길을 가는 것이다. (120)

- 고래의 배
마법의 문턱을 넘는다는 것이, 곧 재생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것이라는 관념은, 세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고래의 배라는 자궁 이미지가 상징적으로 나타난 것이다. 영웅은, 그 관문을 지키는 세력을 정복하거나, 그 세력과 화해하는 대신, 그 미지의 힘에 빨려들어, 겉보기엔 죽은 것으로 나타나고는 한다. (121)

<존재를 그만두지 않고는 어떤 생명체든 보다 높은 차원의 존재를 획득할 수 없다> - 아난다 쿠마라스와미 박사 (124)

자아에의 집착을 끊은 영웅은 왕이 자기 궁궐에서 방방을 드나들 듯이, 삶의 지평을 넘나들거나 용의 뱃속을 드나들 수 있다. 스스로를 구원하는 힘은 여기에 있다. 그의 죽음과 회귀는, 모든 현상계의 대립물이 창조되지 않은 불멸의 존재임을 드러내는데 여기에 두려움이 있을 리 없다. (124)


* 제2장 입문
- 시련의 길
영웅은 기묘할 정도로 유동적이고, 모호한 형태로 이루어진 꿈의 세계로 들어간다. 영웅은 이곳에서 거듭되는 시련을 극복하고 살아남지 않으면 안 된다. (128)

인간의 무리는 집단의 이상에 따라 행동하는 법인데, 이 집단의 이상이라는 것은 항상 유아기 상태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다. (132)

자기 정신의 미궁이라는 미로로 내려가 어둠 속을 헤매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상징적인 것들에 둘러싸여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133)

신이든 여신이든, 남자든 여자든, 신화의 등장인물이든 꿈을 꾸는 사람이든, 영웅은 적대자를 발견하고 삼키거나 그에게 삼켜짐으로써 이 적대자를 동화시킨다. 영웅은 자신과 적대자가 사실은 둘이 아닌 하나임을 깨닫게 된다. (143)

- 여신과의 만남
정신적으로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이 여신의 모습을 본다는 것은 엄청난 재앙일 수 있다. (153)

여신은 자기 존재를 알아보는 자에 의해 해방된다. (154)

여신은 오직 부드러움에 의해서만 그 정체가 드러났다. (156)



- 유혹자로서의 여성
참으로 까다롭고 재미잇는 것은 이상적인 삶에 대한 의식적 견해가 실제의 현실적 삶과 잘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우리 자신의 본질을 이루는 것, 우리 친구들에게 내재해 있는 것, 우리가 추구하는 것, 자기 방어적이고, 악취가 나고, 탐욕적이고 음탕한 흥분 상태, 즉 우리 조직 세포의 본질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대신 우리는 이를 윤색하고, 회칠을 하고, 재해석하려고 한다. (160)

- 아버지와의 화해
영웅이 조력자인 여성에게서 희망과 자신을 발견하는 것은 시련을 통해서다. 여성의 마법 덕분에 영웅은 자아가 송두리째 흔들리게 하는 아버지의 무서운 입문 의식 경험으로부터 보호를 받는다. 영웅은 아버지의 끔찍한 얼굴을 믿을 수 없으며 그 믿음을 다른 곳에다 기울이다. (171)

영웅은 자기 몸에 박힌 가시(약점)를 통해 삶을 초월하여, 한순간이나마 그 근원을 투시한다. (192)


- 신격화
영원성이 시간성으로 발전하고, 하나가 둘에 이어 다수로 분열하며, 둘의 재결합으로 새 생명의 세대가 나타나는 것이다. 이 이미지는, 우주 발생적 순환의 시작에 해당하는데, 영웅의 모험이 막바지에 도달하여 낙원의 벽이 허물어지는 순간, 신의 형상은 다시 나타나고, 지혜는 다시 원상으로 회복된다. (200)

에고는 토템과 제식으로 소멸되지 않는다. 오히려 강화된다. (205)

도깨비는 우리 기를 꺾지만, 유능한 후보자인 영웅은 <사나이답게> 입문한다. 보라, 그 도깨비가 바로 아버지였다. 우리는 그의 안에 있고, 그는 우리 안에 있다. (211)

아버지가 바로 어머니, 즉 재생의 자궁이었던 것이다. (211)

종교적인 가르침의 목적은 개인을 일반적인 미망의 상태로 되돌려 놓는 것이 아니라 그 미망으로부터 떼어놓는 것이다. (215)

우리는 어머니 안에서 배태되어, 아버지로부터 격리된 채 산다. 그러나 우리가 때가 와서 그 시간의 자궁을 빠져나오면 우리는 아버지의 손으로 넘어간다. 현명한 자는 그 자궁 속에서도, 자기가 아버지에게서 와서 아버지에게 돌아가고 있음을 안다. 그보다 더 현명한 자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하나의 본체 안에 있다는 것까지 안다. (223)



- 홍익 (弘益)
마차를 모는 이가 두개의 마차 바퀴를 내려다 보듯, 그는 밤과 낮, 선한 행위와 악한 행위, 그리고 모든 대립물의 쌍을 내려다본다. 선한 행위와 악한 행위를 넘어 신을 아는 이는 바로 신에게로 간다. – 카우쉬타키 우파니샤드 (225)

우상으로서의 신들의 존재는 존재 그 자체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들이 연출하는 유쾌한 신화는 그들 수준의 마음과 정신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지나 그 배후의 무(無)에 이르게 한다. (236)

만물은 나아가고, 일어나고, 되돌아온다. 나무는 꽃을 피우나 오직 뿌리로 되돌아가기 위함이다. 뿌리로 되돌아감은 정일을 찾음이다. 정일을 찾음은 천명으로 합일함이다. 천명에 합일함은 영원에 합일함이다. 영원을 아는 것은 깨달음이요, 영원을 깨닫지 못하면 혼란과 마가 인다. (248)

개인적인 한계를 넘는 고통은 곧 전신의 성숙에 따른 고통이다. 예술, 문학, 신화, 그리고 밀교, 철학과 수련은, 모두 인간이 자기 한계의 지평을 넘고 드넓은 자각의 영역으로 건너게 해주는 가교인 것이다. (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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